운남성 일주(곤명 대리 샹그릴라 여강)4박 6일
작년 가을엔 아버지 간병으로 해외여행은 아예 생각하지 못했다. 금년 연초에 5월중에 운남성 여행을 가기위해 《참좋은 여행사》에 예약하였으나, 가원의 건강이 의심되어 부득이 9월로 연기하여 다녀오게 되니 비용은 처음가격으로 인정되어 많이 절감되었다. 작년 6월에 북유럽을 다녀온 후 1년 너머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운남성
성도는 쿤밍(곤명)이다. 면적 은 39.4만km2이니 대한민국의 약 4배이다. 인구는 4,800만 명이다.
민족분포는 한족67% 이족11% 바이족3.6% 하니족3.4% 좡족2.7% 다이족2.7% 먀오족2.5% 회족1.5%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 공인된 56개의 소수민족 중 25개의 민족이 윈난성에 있고, 전체 인구 중 38%가 소수민족이다. 윈난성에서 가장 많은 소수 민족은 리족으로, 471만의 리족들이 윈난에 살고 있다. 또한 윈난은 소수민족의 천국으로 중국에서는 윈난성 밖에 없는 소수민족이 15부족 정도가 존재한다.
지도를 살펴보면 남으로는 베트남 북부와 라오스를 접하고 서로는 미얀마가 있으며 북으로는 티벳 자치구가 있고 라싸가 그리 멀지 않다.
▣행정구역
16개 지급 행정구역, 129개 현급 행정구역을 관할한다.
▣역사
※내가 요즈음 다시 공부하고 있는 고교세계사에는 진시황이 통일 후 남중지역과 베트남 북부를 정복하였다고 기술되어 있고 지도로까지 확인하고 있다. 이후 한무제 때 다시 두 지역을 정복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현재의 윈난성 지역과 서와 쓰촨성의 남부 지역을 합쳐서 남중이라고 불렀다. 한족의 중앙집권체제가 이 지역의 전통 사회에 녹아들어가면서 윈난지역에 대한 자치권 강화와 지역 부족 구조의 강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25년 촉의 제갈량이 3개 군단을 이끌고 이 지역의 부족들을 평정하였다. 이 지역의 맹주였던 맹획을 제갈량이 7번 사로잡아 풀어준 것(七縱七擒 칠종칠금)은 한족의 민담에 유명하게 남아있다.
4세기에 북중국이 유목민족에 의해 완전히 엎어진다. 320년에 찬(爨) 군벌이 윈난에 이주해 오면서 찬침(爨琛)이 스스로를 왕이라고 일컬으며 디안 호수 주변에 자리 잡았다. 이 이후 4세기 가까이 찬 가문이 윈난 지역을 지배했다. 당나라 때는 남조가 출현해 통일왕국을 형성하였으며, 송대에는 대리국이 이것을 대신하였다. 1253년 대리국은 몽골제국의 쿠빌라이에 정복되었으며, 1276년에 운남행성이 정식 설치되어, 쿠빌라이의 서자 후게치를 선조로 하는 양왕가의 세습 영지로 주어졌다. 쿠빌라이가 마련한 삼대왕국, 이소왕국 중 후자의 하나이다. 이 양왕국은 대리의 옛 왕가 단씨의 협력 아래, 1390년까지 이 땅을 계속 지배했다.
명의 홍무제에 의해 양왕국이 멸망되었을 때, 단씨는 양왕가를 배반하고 그 공적으로 이 땅의 왕으로 복귀하여, 대리왕국을 부활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 땅의 많은 은광에 주목하고 있던 홍무제는 이 땅의 통치를 단씨에게 맡기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병합해 명나라로 편입하였고 이로써 남조 이래 독립왕국의 역사는 임종을 맞이했다. 명나라 때는 운남포정사가 설치되었고, 청나라 때에 윈난성이 성립되었다. 명대 이후 한족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 한족의 땅이 되었다.
▣일정
1일차 2025년 09월 17일 (수) 가는 날
오전 10시 30분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다. 공항까지는 군산을 경유하여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2시에 제2터미널에 도착하여 빵과 음료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3시 30분에 미팅하다. 최근 수 년 동안 《참좋은》을 이용하니 우리는 VIP고객이 되었고 가원은 1달러짜리 10달러를 선물로 주고 나는 작년과 같이 여전히 5달러만 준다. 웬 차별인가요?
대한항공 KE161편은 오후 6시 40분 출발인데 40분이나 늦게 이륙하다. 비행항로를 살펴본다. 산뚱반도에 들어서서는 엔타이를 지나고 제남과 정저우를 거치며 항로를 남으로 꺾는다. 우한에서 날개를 다시 꺾어 장가계를 지나 곤명에는 10시 30쯤에 도착했다. 시차는 한 시간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김수성 가이드는 연변 말을 쓰는 30대 후반의 투박한 젊은이고, 보조가이드는 같은 또래로 보이는데 표준말을 쓰는 준수하고 점잔케 생긴 전해룡 군이다.
우리 팀은 30명으로 남녀 각 절반정도이고 남자 단체 4명, 여자 단체 4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부부동반이다. 그 중 전북에서 사는 분은 우리를 포함하여 7명이나 되었다. 앞으로 5일 동안 38인승 리무진으로 여행하게 된다. 곤명 라마다호텔에서 자다.
2일차 2025년 09월 18일 호도협과 차마고도
7시에 출발한다며 일찍 식사를 종용하여 6시 20분에 식당에 가니 아직 음식들이 덜 나온 상태라 먹을 게 변변찮다. 아침식사는 으레 간단히 하고 있는 터라 음료수에 빵 두 개, 수박 두 조각 토마토 두 개, 커피 한잔으로 마치다. 오늘은 중전(샹그릴라)까지 수 백 킬로를 이동하는데 약 6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익산에서 서울 다녀오는 거리보다도 멀겠다. 이번 여행은 선택관광이 무려 8개가 제시되어 있는데 발마사지, 송성가무쇼는 제외하고 전신마사지, 호도협 하이라이트 트레킹, 마차투어와 백년커피, 빙천케이블카, 옥룡산성관광열차, 야크스페셜만 실시하고 송이버섯요리(10달러)를 추가하여 350달러에 가이드비 60달러까지 합하여 총 350달러로 합의를 하다. 이후 가이드가 마실 물과 커피, 과일, 간식거리까지 가끔씩 챙겨주고 호텔에서도 물과 차를 제공하니 달러나 위안화를 쓸 일이 없을 정도로 편하기 그지없다. 다른 지역 여행에서 물 사고 챙기느라 바쁘고, 화장실비 챙기고 커피 챙기고 간식거리 챙기느라 상당히 귀찮은데 이번 여행에서는 일체 그런데에 신경쓸 일이 없다. 가이드에게 감사드린다. 중국의 화장실들도 놀랄만큼 깨끗해 졌다.
오늘 일정이 변경되어 요안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고 대리시 근처의 식당에서 11시에 이른 점심식사를 하다. 가이드가 점심에 식탁마다(10명) 맥주3병, 연태고량주 1병(7만 원짜리) 그리고 사이다 한 병씩을 제공한다. 비싼 고량주인지라 맛이 좋지만 대낮인지라 한잔 만 했다.
호도협 전망대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몇 차례 내려가니 거센 물결의 호도협에 이른다. 좁은 협곡으로 거친 물결이 장관이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본디 3일차 날에 예정된 차마고도 트레킹을 오늘 실시한다. 차마고도는 2007년 KBS에서 6부작으로 방영하여 크게 유명해졌다. 무려 18년 전인데도 당시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았다. 차마고도(茶馬古道)란 중국 서남부 운남성과 사천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장대한 문명교역로인데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교환되던 곳으로 중국 남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문명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가원이 오래 걷는데 부담스러워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까지만 가는 방법을 물으니 중도객잔에서 관음폭포까지는 30여분 왕복하는 코스라며 걱정을 말라한다. 빵차로 이동하여 차마객잔에서 비교적 평탄한 길을 1시간 정도로 걸으니 중도객잔이 나오고 여기서는 조금 험하다 하여 일행의 뒤를 천천히 걷다 되돌아오다. 생각한 것보다 너무 편하니 괜한 걱정을 한 것이었다.
중전(샹그릴라)에 도착하다. 사실 이곳 중전은 티벳인들의 자치주에 속하며 이곳에서 마방들이 차마고도를 따라 다녀온 곳이 바로 지금의 티벳자치구인 것이다. 그런데 저녁밥은 나시족 식사를 하다. 닭고기에 아주 싱싱한 돼지 삼겹살, 로메인 상추, 순창고추장 같은 고추장, 오골계 한 마리가 올라온다. 진수성찬이다. 윈난성은 바다가 없는 고로 해물은 눈에 띠지 않는다. 식사 후 중전고성을 둘러보는데 상가들이 마치 베이징의 상가같이 잘 지어진 집들이고 화려하기 그지없으며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운다. 아마도 청나라시대에 조성된 건물들인 듯싶은데, 조선말 우리 한양의 초라한 육의전과 시전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저 화려함에 압도당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고 K문화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환호함에 늘 감격스럽고 자랑스럽다. 오는 비행기에서는 몇몇 한국팀과 같이 왔는데 여정 중에는 거의 만나지 못하였고 관광지마다 엄청난 중국인들이 국내여행을 다니는 모습이며 서양인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상그릴라 무원호텔에 투숙하다.

3일차 2025년 09월 19일 (금) 송찬림사 수허고진과 수허고성
중전(샹그릴라)는 티벳자치주인지라 여기 저기 티벳인들의 문화가 보이는데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을 본뜬 작은 포탈라 궁인 송찬림사를 찾다. 영락없는 포탈라궁 모습이며 대찰로 머무르는 사람들이 1,700여명이나 된다고 설명한다.
송찬림사를 구경하고는 바로 옆 마을로 걸어가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장족의 민가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마을은 전통민가라고 할 만한 집도 없고, 식당은 2층으로 된 대형 고급 식당이다. 갖가지 푸짐한 음식이 끝없이 제공되는데 상은 비좁아 놓을 자리가 없는데도 막 밀어 놓는다. 빵, 탕수육, 닭요리, 감자요리 등이 나왔다. 여사장이 정성을 다하며 음식을 내오는데 일행은 관심 없는 음식들이 너무 많이 나와 불편한 기색들이다.
여강(리장)으로 이동한다. 도착하자마자 전신마사지를 받는다. 남녀별로 방을 따로 하는데 요즈음은 남자 마사지사들이 귀해서 모두 여성들이 한다. 나를 담당한 마사지사는 반장급인 듯 어른스럽고 인물도 좋은 여성인데 20위안의 팁을 받고는 감사를 표하더니 복도에서 만나서는 허그도 해준다.
수허고진(동하고진)으로 가서 마차를 타고 구경한다. 보다 고즈넉한 옛 시장 모습이지만 꽤나 화려하면서도 분위가 아주 좋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고진인데 바로 구시가지를 말한다.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 마을로 유명하다고 한다. 가원이 너무 반겨하며 좋아한다. 마을에 있는 고즈넉한 커피숍에 들어가 보니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오래된 옛집이다. 기와지붕엔 풀이 운치있게 덮었다.
저녁은 야크생고기에 송이버섯이다. 야크고기도 생소한데 거기에 귀한 송이버섯까지 거의 무제한이다. 20여 년 전 압록강 변 국내성이 있던 퉁코우에서 소고기 쌓아놓고 먹던 생각이 난다. 아아! 지금도 중국의 남방은 먹을 것이 넘쳐나고 값도 싸구나 하는 생각이지만, 어디 일반인들이야 평소에 이런 귀한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라고? 하긴 부자나라라고 하는 한국에서 그래도 족히 중산층에 속하는 나 역시도 평소에는 그저 8천원~1만 2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사는 사람이며 어쩌다 일 년에 몇 번 정도 모임 회식 날 3~4만 원 짜리 식사를 하고 있지 않나? 시가지 식당에서 보이는 안내 팜프렛을 보니 조금 비싼 음식은 대개 우리 돈으로 1인당 1만 2천원내지 1만 5천 원 정도 하는 것 같으니 중국의 경제수준(1인당 GNP 1만 5천 달러, 한국 3만 6천 달러)으로 보면 매우 값비싼 음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적어도 3~4만 원짜리 식사라고 하겠다.
야경이 아름답다는 여강고성(여강고진)으로 가서 자유시간을 가지다. 중앙광장에서는 젊은이들의 음악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모이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어느 한 부부가 오지 않아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려 찾았는데 두 분이 얼큰하게 취하시고 나타났다. 전화를 받지 않아 그리된 것이라 하는데, 경찰에 신고한 뒤에야 겨우 전화를 받아서 찾았다고 한다. 여강 중합장성국제호텔에 투숙하는데 내일도 여기서 자게 되므로 짐 정리가 쉽고 편하다.

4일차 2025년 09월 20일 (토) 옥룡설산 인상여강쇼 흑룡담공원
가이드가 서두른다. 늦게 가면 정작 설산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동북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리니 도착한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춥기도 하여 비옷을 입다. 케이블카를 타고 옥룡설산 관망대에 오르니 사람들 정말 많다. 해발 4506M이다. 나누어준 산소통을 지니고 가끔씩 입에 불어 넣는다.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가는데 가원이 힘에 부친다며 포기하고 나도 구태여 오르기를 원치 않아 설산을 지켜보니 아아! 장엄한 설산이 잠간 나타난다. 30여분 지켜보는 동안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니 정말 우리가 운이 좋다. 아니 가이드가 현명했다고 해야 되나?
옥룡설산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설산에서 내려온 옥빛의 물 옥수채를 구경하다. 옥색 물빛이 구채구 마냥 아름답고 예비 신혼부부들이 수 없이 찾아와 기념촬영들을 한다. 다음 코스는 인상여강쇼이다. 공연장을 TV로 여러 번 보아서 낯이 익다. 3050M공연장에서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 인상여강쇼는 소수민족들의 삶을 장예모 감독이 2006년에 기획하고 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숙식을 제공해가며 준비한 공연은 연극인이 아닌 이 지역에서 농사짓던 농부 소수민족 500여명을 불러 모아 작접 가르치며 준비한 공연이다. 인상 여강쇼는 총 6부로 나누는데 1부는 마방으로 100여명의 남자들이 나와 차마고도를 출발하며 피혁이나 약초를 싣고 떠나가는 교역을 춤으로 표현한다. 2부는 마방들이 돌아와 술판이 벌이고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3부는 천상인간으로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죽음의 길을 떠나는 남녀를 가족들이 못 가게 말리는 장면이다. 4부는 타도조합으로 연주 없이 10개 소수민족들이 노래 부르며 민속춤을 춘다. 5부는 북춤으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낸다. 6부는 기도의식으로 관중과 함께 옥룡설산을 향해 소원을 빌면 응답한다는 내용이다. 소수민족의 역사와 삶을 표현한 연극이다.
공연장을 나와 뒤로 가니 금년 2월에 개통했다는 옥룡설산관광열차를 타는 옥룡설산역이 있다. 30여분 열차를 타고 옥룡설산 주변을 돌며 구경하고는 종착역인 遊客中心站(관광중심역)에서 내린다. 시골 관광열차역인데 역앞에 지어진 건물들의 위용이 대단하다. 중국은 어쩌면 이런 곳의 건물도 크게 잘 짓나? 버스를 타고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의 람월곡으로 가다. 비단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다. 가이드가 먹이까지 사주느라 바쁘다.
여강으로 돌아와 저녁시간에 맞춰 흑룡담 공원으로 갔다. 마치 창덕궁 비원 같은 느낌인데 연못을 한 바퀴 돌려면 30여분은 족히 걸리겠다. 전주 덕진공원에서처럼 중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돌아와 쉬다가 백운정 대형식당에서 삼겹살 파티가 벌어진다. 나는 본디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하기에 적당히 맥주 세잔을 하면서 먹고 가원은 아예 서 너 첨 먹고 마니(우리 두 사람이 합쳐야 200g 정도), 다른 분들은 엄청 드신다. 우리나라로 치면 4명이 6~7인분 정도 먹었으니 한 분 당 300g씩은 족히 드신 거 같다.

5일차 2025년 09월 21일 (일) 쌍랑고진 덴츠호
오늘은 사실상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8시에 출발한다고 버스에 가방을 실으니 바로 우리가 묵은 숙소인 호텔 1층에서 가게에 들린다하니 우습기도 하고 약간 가이드에게 속은 듯도 해서 어이가 없기도 하다. 호텔 로비는 2층에 있고 침향판매장은 1층 로비를 통째로 빌린 모양이다. 이어 시내에 있는 농산물 판매장을 찾다. 이곳은 선물용 농산물들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분들이 선물을 사고 우리도 야크치즈를 세 개 사다. 야크치즈 한 개와 기사가 판매하는 땅콩과자를 하나 사서 5일 동안 우리 시골집 개들을 보살핀 앞집 큰딸에게 선물을 하기로 하다. 2시간 30여분을 달려 대리시에 도착한다.
대리시에 도착하여 전동카트를 타다. 이해호수를 따라 조성된 멋진 풍경의 마을 쌍랑고진을 인파를 헤치며 전동카트가 달린다. 작은 광장에 도착하여 식당에서 백족음식을 먹다. 온도는 22도인가 하는데 햇볕이 따가워 그늘을 찾는다. 광장 옆 산길을 따라 오르니 버스주차장이 나오고 우리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제 쿤밍시를 향해 4시간을 달린다. 엄청난 크기의 곤명호에 가다. 쿤밍호 방파제를 아주 잘 조성하여 관광객들이 많다. 여행의 마지막 식사는 동북요리이다. 대형식당이다. 중국의 4대 요리로는 지역별로 베이징, 상하이, 쓰촨, 광둥요리가 꼽히기에 동북요리라는 이름이 생소한데 뭐 동북3성 요리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와 가까우니 입맛에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식탁위에 나오고 갖가지 음식이 나오는데 꿔바로우도 나온다. 공항으로 이동하여 11시 30분 발 대한항공, KE162편으로 귀국한다.

6일차 2025년 09월 22일 (월) 오는 날
우리시각 5시 30분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하여 6시에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아니 첫차가 6시 40분인 줄 알았더니만 6시 5분차가 생겼다. 익산 터미널 대합실 벽보 안내엔 분명 6시 5분차는 없었는데? 10시에 익산터미널에 도착하여 보니 버스 대기장 벽면에 플랜카드가 걸려있고 거기에 새로운 시간표가 안내되어 있음을 보았다. 대합실 시간표는 언제나 떼어 내는 건가?
10시 반에 집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정리하니 후련하다. 즐겁고 행복하고 안전한 왼난성 여행을 잘 마쳤다. 다음 여행 목적지는 인도와 네팔이다.
▣참고자료
■쿤밍시 昆明(곤명) Kūnmíng
쿤밍(중국어: 昆明, 병음: Kūnmíng)은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의 성도이다. 2023년 인구는 868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도시는 거대한 호수 뎬츠호(곤명호)의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때때로 봄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쿤밍은 윈난 성 중동부에 위치한다. 뎬츠 호 북안의 비옥한 호수 분지에 위치하며 북쪽, 서쪽, 동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쿤밍은 항상 중국 남서부의 통신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뎬츠 호는 "고원의 진주"로 불리며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담수호이자 윈난 성에서 가장 큰 호수로 면적은 340km2에 달한다.
낮은 위도와 윈구이고원의 1890m의 높은 고도에 위치하여 연중 온화한 기후가 계속된다. 춥고 건조한 겨울은 짧고 따뜻하고 습한 여름은 길다. 여름은 결코 덥지 않아 기온이 30 °C 이상 한두 차례 오를 뿐이다. 그러나 겨울에는 때때로 변덕스럽게 눈이 오기도 한다.
온화한 고원 계절풍 기후로 겨울의 평균최고기온은 15 °C이고 여름의 평균최고기온은 24 °C이다. 항상 봄 같은 날씨는 식물과 꽃이 자라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쿤밍은 "영원한 봄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는 연중 꽃이 만개하고 푸르른 숲으로 덮여있다.
■다리시 大理市(대리시) 따리시
다리시(바이어:Darl•lit, 하니어:Dafli, 한국어: 대리시, 중국어: 大理市, 병음: Dàlǐ Shì)는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의 다리 바이족 자치주에 있는 현급시이다. 다리시는 윈구이고원 상류의 얼하이 평원과, 캉산의 기슭, 얼하이호에 접하고 있다. 예부터 남조와 대리국의 수도였다.
다리는 윈난 성 중서부, 얼하이 호의 서해안, 창산연봉 동쪽 기슭의 중간 평야에 위치하는 바이족(백족)의 마을이다. 쿤밍(昆明) 서쪽 약 260km의 얼하이호(洱海) 서안 해발고도 2,086m의 고지에 위치한다. 윈난과 티베트, 미얀마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상업도시이며, 이 지역의 경제의 중심지이다. 시는 성벽에 둘러싸여 남북으로 각각 성문이 있다.
매년 3월에, 부근의 주민이 모이는 교역장에서 만났으므로, 싼위에제(삼월가)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쪽의 띠엔창산(點蒼山)은 세계적인 대리석 산지로, 대리석이라는 이름은 이 곳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여름 기온은 20°C를 넘고 겨울도 온난하여 예로부터 벼농사가 활발하다.
■중전中甸시(상그릴라시)
샹그릴라시(중국어: 香格里拉市, 병음: Xiānggélǐlā Shì)은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에 위치하는 현급시이다. 티베트에서는 캄 지방 남부이다. 자치주의 주 정부의 소재지이며, 시 행정부는 건당진에 위치하고 있다.
티베트어로 걸탄이라고 칭해지며 티베트 문화권의 남동단에 있고, 북쪽은 더친(德钦), 남쪽은 려강과 연결되는 젠장공로(滇藏公路)에 있어서 요충지가 되었다. 송쳉링사가 유명하다. 또 사나운 성격으로 알려진 티베트견의 산지이기도 하다.
2001년, 이전 이름인 중뎬 현(中甸)에서 샹그릴라 현으로 변경하였고, 2014년 샹그릴라 시가 되었다. 티베트의 살바라를 모델로 도원향의 전설과 연결시킨 것이다.
한나라 대는 강(羌)의 거주지이며, 티베트 왕조에 의해 신주도독(神州都督)이 설치되었고, 그 후 남조에 의해 검천절도가 설치되었다. 1293년(지원 30년) 원나라가 중전을 정원할지토번등로선위사의(政院轄地吐蕃等路宣慰司)의 관할로 통치하였고, 그 행정구는 청나라 말기까지 이어졌다.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1913년에 중전 현이 설치되었고, 1957년에는 자치주 관할로 개편되었다. 2001년 12월 17일에 제임스 힐턴의 소설 「사라진 지평선」에서 그려져 있는 유토피아(이상향) 샹그릴라(Shangri-La)을 차용해 현재의 명칭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른다.
■리짱(여강)시
리장(여강, 중국어: 丽江, 병음: Lìjiāng)은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의 다리 나시족의 왕도이며, 현재에도 나시족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나시족 이외에도 라후족, 푸미족, 바이족, 이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족보다 소수민족의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1996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듬해 고성구의 리장 고성이 있는 구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이를 계기로 빠르게 부흥이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거의 회복되었다.
구석기 시대 이후, 신석기 시대나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의 유적이 남아있어 오래전부터 인류가 살아온 것을 보여준다. 전국시대에는 진나라의 세력 하에 있었으며, 촉군이 설치되었다. 한나라 때에는 수구현이 설치되어 중원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당대 이후는 티베트, 남조, 대리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1271년 명나라군이 원나라 왕조에 예속되어 있던 대리국을 정복하면서, 이 땅의 영주를 ‘리장 선위사’에 임명하였고, 이것이 ‘리장’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선위사는 중국주변의 여러 민족이 통일국가를 수립하지 않고, 그 민족 내의 유력자들이 개별적으로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치면 그들에게 중국 왕조가 수여하는 토사로 분류되는 관직명이다. 리장에서는 나시족의 목씨가 선위사를 세습하게 되었다. 그 후 리장군 민부라고 개칭되어 청나라 때는 류관(중앙관리)이 지배하는 리장부가 되었고,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리장현이 설치되었다.
1949년 7월, 인민해방군의 진출로 리장현 인민정부가 구성되었으며, 1961년 4월에는 리장 나시족 자치현이 되었다.
2003년 6월 8일, 주변지구를 통합해 지급시로 승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윈난 성 북서부의 횡단산맥 남쪽, 장강 상류 진사강의 굴곡부 부근의 골짜기에 위치한다. 거리의 주위는 언덕에 둘러싸인다. 구시가지는 평균 해발 약 2,400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시의 북쪽에는 해발 5,596m의 옥룡설산이 있다.
중국 도시 중에는 따리와 같이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구시가의 주위에는 성벽이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리장을 다스리는 왕조가 당시의 황제의 이름 ‘주’로부터 두를 취한 목(木이)라는 이름을 받아 당시의 수령 아갑아득은 목씨 성을 가지고 이곳을 다스렸다고 한다. 리장도 이민족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목씨가 통치하는 지역을 성벽에서 둘러싸면 목(木이) 곤(困이) 되는 것을 싫어해 성벽을 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는 수로가 뒤얽힌 도시구조이며 성벽의 건설이 곤란한 위치에 있다. 방어효과가 적고, 치수에서도 성벽이 불리하게 작용되는 것을 고려해 축조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낡은 목조 건물이 밀집되어 언덕에서 보면 기와지붕이 마치 호수를 보는 듯한 경치가 펼쳐진다.
■차마고도(茶馬古道)
차마고도(茶馬古道, Ancient Tea Route/Southern Silk Road)는 중국과 티베트, 인도를 잇는 전근대의 무역로이다. 중국의 윈난성, 쓰촨성에서 시작되어 티베트를 거쳐 인도의 벵골과 네팔 등으로 이어진다.
'마방(馬幇)'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서로 사고팔기 위해 지나다녔다. 이곳을 통해서 문화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험준하고 가파른 길이지만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다. 2007년 KBS에서 6편으로 구성된 차마고도에 관한 다큐멘터리, 《인사이트 아시아 - 차마고도》를 제작하면서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진사강 : 진사강은 중국 창장강의 상류를 가리키는 강으로, 칭하이성에서 발원하여 윈난성, 쓰촨성을 거쳐 이빈시에서 민강과 합류하여 창장강을 이룬다. 고대에는 흑수, 성수, 뤄수 등으로 불렸으며, 금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금모래 강'이라는 의미의 진사강으로 명명되었다. 현재 수력 발전을 위한 대규모 댐 건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백화탄 댐을 포함한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 발전소들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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