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80

죽창한화(竹窓閑話)

죽창한화(竹窓閑話) □이덕형(李德泂 1566-1645) ※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 과는 다른 인물임. 1590년(선조 23) 진사가 되고, 1596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1597년에서 1608년까지 봉교(奉敎)·정언·지평·수찬·부교리·헌납·전적·문학·집의·교리·부응교·사간·사예·사섬시부정·응교·시강원보덕·사도시정 등을 거쳤다. 광해군 때에도 응교·동부승지·승지·대사간·좌부승지·부제학·이조참의·우승지·병조참판·도승지 등의 경관직(京官職)과 나주목사·전라감사·황해감사 등의 외관직을 지냈다. 특히, 광해군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해치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킬 때에 직접 반대의 입장에 서지 않고, 왕의 뜻에 따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광해군 말년에 ..

한국고전 2022.08.23

추강집 秋江集

추강집 秋江集 □남효온 (1454-1492) 남효온은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한 단종복위운동 실패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절개를 지킨 생육신 6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종직(1431-1492)과 김시습(1435-1493)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김굉필, 정여창 등과 사귀었다. 1478년(성종 9) 관리등용제도의 개선, 내수사의 혁파, 불교의 배척 등 국정 및 궁중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을 복위할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소릉 복위 주장은 세조 즉위와 정난공신의 명분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어서 훈구파의 심한 반발을 샀다. 그 이후 그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유랑생활로 나머지 삶을 마쳤다. 또한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여 을 저술했다. 스스..

한국고전 2022.08.21

청장관전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이덕무(李德懋 1741-1793) 규장각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교감했고,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본관은 전주. 자는 무관(懋官), 호는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형암(炯庵)·영처(嬰處)·동방일사(東方一士).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성호(聖浩)이다. 서자로 태어났다. 어려서 병약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총명하여 가학으로 문리(文理)를 터득했다. 약관의 나이에 박제가·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와 함께 〈건연집 巾衍集〉이라는 시집을 내어 문명을 중국에까지 떨쳤다. 이후 박지원(朴趾源)·박제가·홍대용(洪大容)·서이수(徐理修) 등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고염무(顧炎武)·주이존(朱彛尊)·서건..

한국고전 2021.09.29

청성잡기

청성잡기[靑城雜記] 성대중(成大中 1732-1812) 서얼가문 출신의 문인으로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남공철(南公轍) 등과 교유가 있던 인물이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이 되고, 1756년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순조로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할 처지였으나, 영조의 탕평책에 편승한 서얼들의 신분상승운동인 서얼통청운동(庶孼通淸運動)에 힘입어 1765년 청직(淸職)에 임명되어 서얼통청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1763년에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고, 1784년(정조 8)에 흥해군수(興海郡守)가 되어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정조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신분적인 한계에 묶여 부사(府使)의 벼슬에 그쳤다. 학맥은 노론 성리학파 ..

한국고전 2021.09.10

지정연기(芝汀燕記)

芝汀燕記 원재명(元在明 : 1763-1816)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孺良, 호는 芝汀이다. 목사 원명구(元命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원경하(元景夏)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원인손(元仁孫)이며, 어머니는 남유상(南有常)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한 뒤 관직에 나아가 활동하다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였다. 1801년(순조 1) 도기(到記)의 제술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전시에 직부되고, 이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에 제배된 뒤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 뒤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벼슬이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충청도관찰사,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공(公)은 계미년(1763, 영조39)에 태어났다. 갑자년(1804, 순조4) 서장관으로 연경..

한국고전 2021.08.05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김건서(金健瑞 1743- ?) ※조선 후기 일본ㆍ여진ㆍ대마도(對馬島)ㆍ유구(琉球) 등과의 외교 관계를 적은 책이다. 순조 2년(1802) 김건서(金健瑞)ㆍ이은효(李恩孝)ㆍ임서무(林瑞茂) 등이 엮어 펴냈다. ‘울릉도의죽도 변정전말’은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영토 분쟁을 정리해 두고 있어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계되는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 ▣서(序) 무릇 사례가 변하면 연혁으로 기록하며, 기재할 바가 증가하면 원집과 속집으로 편찬하는데, 이는 수시제의(隨時制宜)의 도리상 불가피한 일이다. 사역원(司譯院)에 《통문관지(通文館志)》가 있는바 바로 나의 증조부가 찬집한 것이다. 이 책은 널리 고찰하고 상세히 증명하며, 정밀하게 구비하고 두루 통달하여 사역원의 으뜸가는 대문헌이지만 그러나 오로..

한국고전 2020.09.11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서영보(徐榮輔:1759~ 1816) 본관은 달성. 자는 경재, 호는 죽석. 할아버지는 영의정 지수이며, 아버지는 대제학 유신이다. 1776년(영조 52) 18살의 나이에 초시에 합격하였지만 부친 서유신이 홍국영과 갈등을 겪게 되자 복시를 포기하고 출사를 뒤로 미루었다. 부평(富平)의 오곡(梧谷)에 기거하며 학문에 힘쓰다 1788년(정조 12) 전강(殿講)에 참여, 장원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장원한 뒤 이듬해 성절 겸 사은사(聖節兼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함경도암행어사로 나갔다. 이어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에 제수되었다가 1792년 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794년 호남위유사(湖南慰諭使)로 나갔으며, 그 ..

한국고전 2020.08.26

제호집(霽湖集)

양경우(梁慶遇:1568~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 점역재(點易齋)· 요정(寥汀)· 태암(泰巖). 아버지는 충장공 양대박(梁大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하자, 아우 양형우(梁亨遇)와 함께 아버지를 보필하였다. 양경우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경명(高敬命)에게 갔는데, 고경명은 양경우에게 기무를 맡겼다. 때마침 왜적이 금산(錦山)을 치려 하자 고경명은 양경우에게 진산(珍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금산에서 싸우다가 패하였다. 이에 고경명을 구하려고 가는 중에 아버지가 진산에서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아버지의 시신을 전주(全州)로 옮겨 청계동으로 돌아..

한국고전 2020.07.25

제월당집(霽月堂集)

제월당집(霽月堂集) 송규렴 :(宋奎濂 1630-1709)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도원(道源), 호는 제월당(霽月堂). 군수 송남수(宋枏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송희원(宋希遠)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송국전(宋國詮)이며, 어머니는 안경인(安敬仁)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으로 19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 지평· 정언· 사예(司藝)· 응교· 서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 때 수찬· 부교리· 정언· 헌납· 이조좌랑· 사간 등을 거쳐 1667년(현종 8)에 사헌부집의에 이르러 병으로 사직했다가 다시 홍문관교리를 거쳐 사간이 되었다. 1674년에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의 복상문제에 대해 남인의 주장..

한국고전 202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