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7

한상설 (1955-1983)

후배 한상설(1955-1983)선생 1975년, 내가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은 나지 아니하고 일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남들은 공무원도 되고 막노동도 하더라만 나는 그 어떤 목표도 없이, 강한 용기도 없이, 굳은 의지도 없이 무의미한 세월만 보냈으니 지금도 이 시절을 반추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행히 어머니의 각고의 노력과 강한 의지로 그 어려움속에서(우리 둘째 동생인 은희가 고3이 되고, 셋째인 숙희도 곧 중학생이 되는 시기)대학 편입을 허락하시어 원광대 사대 국사교육학과에 편입하게 된다. 내 나이 스물 넷에 다시 대학 2학년이 되니 남들에게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는 내가 부족하여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그 누굴 원망할 수 있으리오? 늦게 대학 2학년에 다시 다니기에 느끼는 부끄러움..

할아버지 이문환(1903-1973)

할아버지 芝山 이문환(1903-1973)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자랑스런 손자가 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오직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나뿐인 손자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음에도 나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중학교와 고교시절을 그저 시골동네 형들과 놀기에 바빴고, 집안일을 돕는것은 매우 싫어해서 할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해 드렸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겨울저녁이면 큰방 등잔불아래서 돋보기를 쓰신 할아버지는 앉으신 채 소리내어 책을 읽으시고 나는 엎드리어 책을 읽었습니다. 한학을 하시고 한약방을 경영하신 할아버지는 내게 중국고전을 인용하시며 많은 교훈을 주셨지만 나는 깨달음이 없이 그저 대중가요부르기와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만 지나치게 컸습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자니 자꾸만 눈..

장정배(1960-2009)

장정배 우리학교 운영위원장인 장정배위원장이 7월 20일 아침에 세상을 떴다. 만난지 채 일년이 안된 짧은 인연이었지만 나에겐 한상설 교수(1983)와 장관익(1989)선생 죽음 이후 가장 큰 충격적인 지인의 죽음이다. 7월 8일 저녁에 둘이 만나 맥주를 나누면서 학교발전을 위한 많은 대화가 있었다. 비록 나이는 연하(年下)지만 평소에 존경하는 장위원장이고 그 또한 학교를 발전시켜보고자 노력하는 나를 매우 신임하는 터이라 우리는 마음이 잘 통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기숙형공립고 운영을 위한 기초작업(지자체의 지원)이 전혀 마련되지 않아 함께 걱정하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하였더니만 이게 웬 靑天霹靂같은 소식이란 말인가? 이제 50밖에 안된 장정배가 졸지에 죽게 되다니... 참으로 허망하다. 무주교..

조부 이문환 묘비명

조부 이문환 묘비명 아버님은 신평 이씨의 시조인 덕명의 26세손으로 김제군 백산면에서 출생하시었다. 일직이 학문에 뜻을 두시어 향촌의 유학들과 교유하시었으며 조상을 섬기는 마음과 형제간의 우애를 중히 여기시고 종사에 열의가 각별하시었다. 삼십 칠세에 한방의약학 강습과정을 수료하시어 지역보건위생에 헌신하시고 근검절약정신과 높은 교육열은 모범이 되시니 그 덕이 우리 후손에 나타났다. 어머님은 김제군 월촌면에서 나시었고 대가족의 의식을 맡아하시며 어른을 충심으로 섬기고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몸소 실천하시었다. 불초 판기가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으로 이 비를 세운다. 2005년 9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