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활동
부안 문화 탐구반 학습지도안 및 학습자료 |
지도교사 이 석 한
1. 부안 문화 탐구 학습의 필요성
우리 부안은 아름다운 변산반도와 서해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국립공원 변산반도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재와 관광자원을 가진 아름다운 고장이지요. 우리는 이곳 부안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부안사람들입니다. 우리 부안의 문화를 공부함으로써 우리 부안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자부심을 가지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야 되겠지요.
우리가 사회와 역사시간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다른 지방의 문화까지도 공부하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고장의 향토문화를 알고 자부심을 가지는 일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향토의 문화를 탐구함으로써 조상의 숨결을 이해하고 우리 부안에 대한 애향심과 자긍심을 높이며 문화재를 더욱 소중히 하고 아끼는 정신을 앙양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2. 부안 문화 탐구 학습의 목표
가. 문화재와 관광지의 위치를 확실히 알게 한다.
나. 문화재를 조사하고 또 답사를 통하여 그 가치를 바로 알게 한다.
다. 문화재 및 관광지를 잘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알게 한다.
라. 문화재 탐구 학습을 통해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기르도록 한다.
마. 향토를 사랑하고 문화재를 보호하는 마음을 가진다.
바. 우리 고장의 문화를 소개하고 관광지를 안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 다.
3. 부안 문화 탐구 학습의 방침
가. 우리 고장에 있는 문화재와 관광지를 영역별, 지역별로 조사한다.
나. 우리고장의 문화재와 관광지에 대한 자료를 모은다.
다. 모둠별 협동학습 방법으로 자기 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라. 조사 및 답사 결과를 기행문, 사진, 포트 폴리오 등으로 정리한다.
마.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항상 즐거운 수업 분위기를 조성한다.
4. 주제별 배당시간
(1) 부안의 역사 1시간
(2) 부안의 지리․산업 1시간
(3) 부안의 세시 풍속 1시간
(4) 부안의 전설 1시간
(5) 부안의 문화재 6시간
(6) 부안의 인물 1시간
(7) 부안의 관광 3시간
(8) 부안의 발전과 미래 1시간
(9) 부안의 문화․관광 안내 실습 2시간
(10) 평가 1시간
5. 부안 문화 탐구학습 차시별 계획표
영역 |
차시 |
주 제 |
학 습 내 용 |
코드 번호 |
쪽수 |
부 안 의
문 화
탐 구 학 습 |
1 |
부안의 역사 |
○부안문화탐구활동의 목적과 의의 ○부안의 역사 |
1 |
|
2 |
부안의 지리․행정․산업 |
○부안의 지리 ○부안의 행정구역 ○부안의 산업 |
2 |
| |
3 |
부안의 세시풍속 |
○명절과 절후의 풍속 |
3 |
| |
4 |
부안의 전설 |
○부안의 전설 |
4 |
| |
5 |
부안의 문화재Ⅰ |
○국가지정 문화재-보물(8) |
5 |
| |
6 |
부안의 문화재Ⅱ |
○국가지정 문화재-사적(4)천연 기념물(4) |
6 |
| |
7 |
부안의 문화재Ⅲ |
○국가지정 문화재-중요 민속자료(3) 중요 무형문화재(2) |
7 |
| |
8 |
부안의 문화재Ⅳ |
○전라북도지정문화재-지방유형문화재(8) 지방무형문화재(2) |
8 |
| |
9 |
부안의 문화재Ⅴ |
○전라북도 지정문화재-지방민속자료(6) 문화재 자료(2) |
9 |
| |
10 |
부안의 문화재Ⅵ |
○전라북도지정문화재-지방기념물(12) |
10 |
| |
11 |
부안의 인물 |
○매창 ○유형원 ○신석정 |
11 |
| |
12 |
부안의 관광Ⅰ |
○국립공원 변산반도 일원-부안댐․새만금 전시관․채석강․조각공원․직소폭포 |
12 |
| |
13 |
부안의 관광Ⅱ |
○항구․섬․사찰-격포항․곰소항․위도․ 계화도․개암사․내소사 |
13 |
| |
14 |
부안의 관광Ⅲ |
○문화행사․축제-부안 당산과 줄다리기 -위도 띠뱃놀이 -우동리 줄다리기 -매창 문화제 |
14 |
| |
15 |
부안의 미래 |
○새 만금 사업과 미래 전망 |
15 |
| |
16 |
부안의 문화 소개 실습 |
○부안의 문화 소개 하기 발표 |
16 |
| |
17 |
부안의 관광 안내 실습 |
○부안의 관광지 안내하기 |
17 |
| |
18 |
평가 |
○지필 및 수행평가 |
18 |
|
6. 부안 문화탐구 학습 지도안
코 드 번 호 |
1 |
주 제 |
부안의 역사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1.부안문화 탐구활동의 목적과 의의를 알 수 있다. 2.부안의 역사와 지명의 변천을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부안 문화 탐구활동의 목 적과 의의 설명 ○부안의 문화에 대한 일반 적인 지식의 이해에 대한 질문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부안의 변천과 지명 ○삼한시대의 부안 ○백제시대의 부안 ○통일신라 시대의 부안 ○고려시대의 부안 ○조선시대의 부안 ○대한민국 시대의 부안 ●지리지 속의 부안 ○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부안 ○택리지속의 나타난 부안 ○택리지에 나타난 부안의 모습에 대해 생각을 발표 시킨다.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2 |
주 제 |
부안의 지리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의 지리적 위치를 파악한다 ○부안의 행정구역을 알 수 있다. ○부안의 산업을 설명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지리적 상식정도 파악 ○상징물 인지정도 파악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부안의 상징 ○기 ○은행나무 ○철쭉 ○비들기 ●부안의 지리 ○수리적 위치 ○지리적 위치 ○관계적 위치 ●부안의 행정구역 ○1읍 12면의 위치 ●부안의 산업 ○농업 ○수산업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3 |
주 제 |
부안의 세시풍속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의 세시풍속을 알 수 있다. ○부안의 민간요법을 알 수 있다. ○부안의 속신에 대해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세시풍속의 의미 설명 ●정월○설날(元旦)○삼재(三災)○대보름(上元日)-부럼깨기, 더위팔기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2월○한식날(寒食) ●3월○3짓날○곡우 ●4월○봉선화 물들이기 ●5월○단오(端午) ●6월○유두일 ○복탕먹기 ●7월○칠석○백중놀이 ●8월○벌초 ○추석 ●9월○중양절 ●10월○모날 ○시향제 ●11월○동지 ○김장하기 ●12월○섣달 그믐 ●민간요법 ●속신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4 |
주 제 |
부안의 전설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의 여러 전설을 이야기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전설의 의미를 설명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부안의 전설 ○개양할미와 수성당
○원효방의 쌀구멍
○선계안과 쌍선봉
○월명암과 부설거사
○월명각씨와 의상대사
○채석강과 이완용
○장자못과 선돌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기타 자기가 알고 있는 조사된 전설이 있으면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5 |
주 제 |
부안의 문화재Ⅰ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향토에 지정된 보물에 대해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문화재의 지정과 보물의 의미 및 중요성을 설명한 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국가지정 보물(8점) ○내소사 고려동종
○법화경 절본사본
○내소사 대웅보전
○개암사 대웅전
○고희외 문중유물
○부안김씨 종중고문서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화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화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부안군 홈페이지 문화재 자 료 참조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6 |
주 제 |
부안의 문화재Ⅱ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향토에 지정된 사적과 천연기념물에 대해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사적과 천연기념물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하고 우리 주변에서 지정된 나무를 본 경우를 알아 본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사적(4점) ○부안 유천리 도요지 ○부안 진서리 도요지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부안 백산성
●천연기념물(4점)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군락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 ○중계리 꽝광나무 군락 ○중계리 미선나무 군락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부안군 홈페이지 문화재 자 료 참조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갑오농민혁명당시 백산은 고부군에 속하였으나 그후 부안군에 편입되었음과 첫 농민봉기지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깨닫도록 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7 |
주 제 |
부안의 문화재Ⅲ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향토에 지정된 중요 민속자료와 중요 무형문화재에 대하여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중요 민속자료와 중요 무형 문화재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중요 민속자료(3점) ○서문안 당산 ○동문안 당산 ※당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우리 부안에는 이외에도 돌모산 당산, 우동리 당산등 우리나라에서도 민속에 있어 그 중요한 문화재를 가진 고장임을 알게 한다. ○김상만 가옥
●중요 무형 문화재(2점) ○위도 띠뱃놀이 ○대목장 고택영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부안군 홈페이지 문화재 자 료 참조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8 |
주 제 |
부안의 문화재Ⅳ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향토에 지정된 지방 유형문화재와 지방 무형문화재 에 대하여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지방유형 문화재와 지방 무형 문화재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지방유형 문화재(8점) ○수성당 ○서외리 당간 ○위도 관아 ○청림리 석불좌상 ○내소사 삼층석탑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 ○개암사 동종 ○부설전
●지방무형 문화재(2점) ○부안농악 ○죽염제조장 허재근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부안군 홈페이지 문화재 자 료 참조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9 |
주 제 |
부안의 문화재Ⅴ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향토에 지정된 지방 민속자료와 지방 문화재자료 에 대하여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지방민속자료와 지방 문화재자료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지방민속자료(6점) ○보안입석 ○쌍조석간 당산 ○남문안 당산 ○돌모산 당산 ○죽림리 석장생 ○부안 월천리 석장생
●지방문화재자료(2점) ○부안 향교 ○고홍건 신도비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부안군 홈페이지 문화재 자 료 참조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0 |
주 제 |
부안의 문화재Ⅵ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향토에 지정된 지방 기념물에 대하여 알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지방기념물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지방기념물(12점) ○우금산성(주류성) ○반계선생 유적지 ○간재선생 유적지 ○채석강 ○적벽강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 ○사산리 와요지 ○대항리 패총 ○이매창 묘 ○부안 실상사지 ○내소사 일원 ○신석정 고택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부안군 홈페이지 문화재 자 료 참조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1 |
주 제 |
부안의 인물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하여 잘 알고 설명 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현존하는 부안의 유명인사에 대하여 발표하게 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 시기 매창 ○매창의 일생 ○매창묘와 매창공원 ○매창의 유명시 외우기 『이화우』 ●실학자 반계 유형원 ○유형원의 일생 ○유형원의 업적과 저서 ○반계 서당 ●유학자 간재 전우 ○전우의 애국정신 ●시인 신석정 ○신석정 생가 ○신석정 시비 ○신석정 시 알기:『그 먼나 라를 알으십니까?』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답사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발 표한다.
○『이화우』『그 먼나 라를 알으십니까?』를 함께 읽으며 외운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2 |
주 제 |
부안의 관광Ⅰ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을 소개하고 자랑할 만한 관광자원에 대해 알고 안내 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외부인에게 자랑할만한 관광자원을 경험을 통해 발표하게 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국립공원 변산반도
○부안댐
○새만금 전시관
○채석강
○조각공원
○직소폭포 ※기타 학생들이 추천하는 곳이 있으면 밮표하게 하고, 함께 인터넷을 통해 조사해 본다.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3 |
주 제 |
부안의 관광Ⅱ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을 소개하고 자랑할 만한 관광자원에 대해 알고 안내 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전시간에 공부한 관광자원외에 자랑할 만한 항구나 섬, 사찰등을 정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항구 및 해수용장 ○격포항-해수욕장 ○곰소항 ○계화도 ○변산해수욕장 ●섬 ○위도 ●사찰 ○개암사 ○내소사 ※기타 학생들이 추천하는 곳이 있으면 밮표하게 하고, 함께 인터넷을 통해 조사해 본다.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4 |
주 제 |
부안의 관광Ⅲ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을 소개하고 자랑할 만한 관광자원(문화행사․ 축제)에 대해 알고 안내 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부안의 전통 문화행사 및 축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부안당산과 줄다리기 -읍내거주 학생들은 이 행 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 어지고 있는지 발표하게 한다. ○위도 띠뱃놀이
○우동리 줄다리기 - 이 행사를 참관한적이 있는 학생들은 실제 경험을 발표하도록 한다.
○매창 문화제 -더욱 발전시켜 나갈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음자세를 강조한다.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5 |
주 제 |
부안의 미래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새만금 사업과 부안과의 관련성을 알고 이에 대처하며 부안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새만금사업의 개요와 부안의 갯벌살리기 운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관심도를 파악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새만금 사업의 개요
○추진경위
○사업개요
○진행상황
○토론 ※순차적 개발로 결정이 되었으나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자연생태를 파괴하면서 과연 농경지개발이 꼭 필요한것인지 의견을 나누게 한다. |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 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보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6 |
주 제 |
부안의 문화 소개 실습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의 문화를 소개하고 설명 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지금까지 공부하고, 답사 를 통해 경험한 바를 바탕 으로 그 목차와 내용을 정 리하도록 지도 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정리하는 분량은 A4용지 10매이상으로 한다. ○발표시간은 약 10분으로 한다. ○각자가 목차와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질문에 답하고 오류는 지 적하여 준다. ○정리된 내용은 제출하게 하여 수행평가에 반영한다. ○우수작은 발표하게 한다. ※이미 과제제시를 통하여 작성된 것을 제출케하여 함께 확인하며 장단점을 찾아본다. 칭찬을 많이 해준다. |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와 기타 학습자료를 보며 목차를 정하 고 내용을 간추린다..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그동안 모아온 자료와 인터넷 자료를 바탕으로 각자 목차를 정하고 내용을 정리한다. ○우수작으로 뽑히면 기꺼이 요 약서를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7 |
주 제 |
부안의 관광 안내 실습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부안의 관광지를 소개하고 설명 할 수 있다.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지금까지 공부하고, 답사 를 통해 경험한 바를 바탕 으로 그 목차와 내용을 정 리하도록 지도 한다.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정리하는 분량은 A4용지 10매이상으로 한다. ○발표시간은 약 10분으로 준비 한다. ○각자가 목차와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질문에 답하고 오류는 지 적하여 준다. ○정리된 내용은 제출하게 하여 수행평가에 반영한다. ○우수작은 발표하게 한다. ※이미 과제제시를 통하여 작성된 것을 제출케하여 함께 확인하며 장단점을 찾아본다. 칭찬을 많이 해준다. |
○궁금한 점은 질의한다.
○그동안 모아온 자료와 인터넷 자료를 바탕으로 각자 목차를 정하고 내용을 정리한다.
○우수작으로 뽑히면 기꺼이 요 약서를 발표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요약 정리 ○중요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 ○차시 예고 및 조사할 과 제제시 |
○교사의 질문에 답한다. ○과제 기록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형성 평가지 배부(대개 주․객관식 합쳐 5문제 정도) |
5 |
파일에 모은다 |
코 드 번 호 |
18 |
주 제 |
평 가 |
일 시 |
월 일 | ||||
학 습 목 표 |
○지필평가 및 수행평가 |
장 소 |
| ||||||
학습자료준비물 |
교 사 |
지도안․부안의 문화유산․부안향토교본․인터넷자료․부안군 지도 |
학 생 |
필기도구․파일․조사자료․부안군 지도 | |||||
과정 |
탐 구 학 습 활 동 |
시간 |
자료 및 유의점 | ||||||
교 사 활 동 |
학 생 활 동 | ||||||||
도입 |
○평가지 배부 및 소감록배 부 |
○교사와 대화하며 자유롭게 발 표 |
10 |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조성 | |||||
전개 |
●지필평가 ○주관식-20문항 ○객관식-5문항 ○시간 : 30분
●수행평가 ○학습준비 포트폴리오 ○부안의 문화 정리과제 ○부안의 관광지 정리과제 ○형성평가 자료 ○발표 기록 기타
●소감록 작성 ○재량활동시간을 통한 부 안의 문화학습 소감. ○건의사항 |
○지필평가에 성실한 자세로 임 한다.
○수행평가를 확인하여 착오가 없도록 한다.
○소감록을 진지하게 작성하여 교사가 내년도 수업에 잘 반영 할 수 있도록 한다. |
30 |
부안군 지도를 군청에서 협조받아 전학생이 가질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부안군 홈페이지를 찾아 함께 보며 학습한다.
모든 학습물은 파일에 모은다. | |||||
정리 |
○시험지 확인 ○소감록 확인 |
○시험지 제출 ○소감록 제출 ○수행평가 점수 확인 |
5 |
핵심내용을 꼭 알수 있도록 확인한다. | |||||
평가 |
교사의 소감 발표 |
5 |
파일에 모은다 |
부안문화 탐구자료
<제 1차시 학습자료>
1. 부안군 연혁
우리 고장 부안은 삼한(三韓) 시대부터 고을을 이루고 있었다. 백제 시대에는 동북부지역은 개화현(皆火顯)이라 하였고, 서남지역은 흔량매현(欣良買縣)이라 불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서기 757년(경덕왕16)에 개화현을 부령(扶寧)으로 고쳐 불렀고 계발(戒發)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흔량매현은 희안(喜安)이라 고쳐서 모두 고부의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때에 와서 희안은 보안(保安)현으로 되었고 부령현과 보안현에 각각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조 태종 14년과 16년 사이에 부령현과 보안현을 합병하였다 분리하였다 하기를 세 차례 한 뒤 결국 태종 16년(1416년) 12월에 부령과 보안에서 한 글자씩 따서 부안(扶安)이라 하였다. 그 이듬해에 흥덕진을 폐하여 부안에 귀속시켜 부안진이라 하였고, 병마사로써 판사를 겸하게 하였다. 1423년(세종5)에 첨절제사로 바꾸었다가 이후 현감으로 고쳤다.
부안현이 부안군으로 개편된 것은 1895년(고종 32)에 전국의 부.목.군.현(府.牧.郡.縣)의 이름을 군(郡)으로 통일하여 부르게 되면서 부안군으로 되었고, 1914년 일제치하에서 행정구역을 고치면서 위도(蝟島)는 전남 영광군으로 비안도는 옥구군으로 떼어주고, 대신 고부군에서 백산(白山), 거마(巨麻), 덕림(德林)의 3개면을 부안군에서 편입시켰다.
1943년에는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승격되어 1읍 9면으로 되었고, 1963년 행정구역 개편시 전남 영광군 위도면이 부안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78년 계화도 간척사업의 완공으로 3,986ha의 면적이 늘어났다. 1983년 2월15일자로 계화면(界火面)이 신설되었고, 또 산내면(山內面)진서출장소가 진서면(鎭西面)으로 승격되었다. 산내면은 변산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로써 부안군은 1읍 12개면으로 행정구역을 갖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안현 편을 통하여 500년전의 부안의 모습을 알아본다.
<제 2차시 학습자료>
2.부안의 지리․행정․산업
우리 고장 부안군은 동경 126도 40분, 북위 35도 40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북도의 서쪽에 있어 옥구군과는 바다로 접경하고, 북동으로 김제군, 남동으로는 정읍군, 남으로는 고창군과 접해 있다.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형태로 황해에 불쑥 나와 있는 반도로 되어 바다에 접하고 있으며, 남서부는 변산이란 산이 겹겹이 싸여 있고, 북동부는 넓고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해안선은 동진강 하구에서부터 줄포면 우포리까지 99km가 되며, 바닷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겨울철엔 눈이 많이 내리는 기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부안군은 전북 6시 8군의 하나. 서부해안지대에 위치. 동쪽에는 정읍시, 남쪽에는 고창군,
북쪽에는 김제시, 서쪽에는 황해바다. 인구는 약 8만여명. 행정구역은 1읍 12면, 부안읍과
주산면, 동진면, 행안면, 계화면, 백산면, 변산면,진서면, 상서면, 하서면, 줄포면, 위도면,
변산반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동서로는 길고 남북으로는 짧은 장방형.
●군기
변산을 감싸고 도는 맑고 깨끗한 서해바다와 99㎞의
해안선을 상징.
▣ 원호(흰색)
군민의 화합과 협동 그리고 순수함을 상징.
▣ 삼각(녹색) : 아름다운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상징.
▣ 마름모(황금색) : 드넓은 황금 벌판을 상징
●군목:은행나무
나무의 긴 생명력과 웅장한 자태는 부안군의 무한한 발전 잠재력 과 성장가능성을 상징
●군화:철쭉
적응력과 번식력이 강하여 군민의 진취적인 기상과 번영을 상징.
●군조 : 비들기
인정 많고 온후한 군민이 모여 사는 고장으로 평화와 화합을 상 징.
●기타 부안군 홈페이지-군 종합정보-부안군 소개-현황․종합정보를 찾아 공부하기
<제 3차시 학습자료>
3. 부안의 세시풍속
1. 세시풍속
歲時風俗이란 한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따른 생활습속이다. 계절의 기후풍토 또는 그 지방의 지형적 특성에 따라 생활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옛부터 백리부동풍이라 했다.부안은 삼면이 바다인 해안지역이면서도 변산이라는 큰 산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엇고 동남으로는 호남평야로 이어지는 동진깅유역의 큰 평야가 있어 해양, 산지, 평야의 자연적 조건이 다양하기 때문에 생활풍습의 문화도 세지역 특성이 혼성되어 있는 특이한 문화가 발달하여 왔다고 보아진다.
●정월○설날(元旦)○삼재(三災)○대보름(上元日)-부럼깨기, 더위팔기
●2월○한식날(寒食)
●3월○3짓날○곡우
●4월○봉선화 물들이기 ○
●5월○단오(端午)
●6월○유두일 ○복탕먹기
●7월○칠석(七夕) ○백중놀이
●8월○벌초 ○추석
●9월○중양절
●10월○모날 ○시향제
●11월○동지 ○김장하기
●12월○섣달 그믐
2. 민간요법
3. 속신
●길조신
●흉조신
●내세신
<제 4차시 학습자료>
4. 부안의 전설
●개양할미와 수성당
개양할미는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해신.
지금도 수성당에서 수성당제를 지냄.
●원효방의 쌀구멍
개암사 뒤 우금산성의 서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큰바위가 울금바위이다. 이바위의 남쪽면이 원효방이다.
●선계안과 쌍선봉
보안면 우반동 뒤 굴바위 옆 저수지의 안쪽이 선계안 또는 성계골이다. 이성계와 두 노인의 전설이다.
●월명암과 부설거사
부설거사는 신라 진덕여왕대의 고승이다. 김제 만경출신으로 월명암에서 수도하였다. 그와 구씨의 딸 묘화와의 사이에 얽힌 전설이다.
●월명각씨와 의상대사
월명암에서 수도하던 부설거사의 딸 월명각씨와 의상대사와의 사이에 얽힌 전설이다.
●채석강과 이완용
이완용과 채석강에 얽힌 전설이다.
●장자못과 선돌
보안면 상입석리 뒤의 선돌에 얽힌 전설이다.
<제 5차시 학습자료>
5. 부안의 문화재 Ⅰ
◎국가지정문화재:보물(8점)
●내소사 고려동종:(지정:보물 277호)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소유자 : 내소사
시 대 : 고려시대
재 료 : 동
수 량 : 1구
이 범종은 1222년(고려 고종 9)에 제작된 종으로, 원래는 내변산 청림사의 종으로 만들어졌으나 1850년 이래 내소사로 옮겨져 봉안되고 있다. 범종(梵鐘)은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맑은 소리로 부처의 말씀 곧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제작되었으며 절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반드시 비치하고 있다.
이 종의 형태는 단룡(單龍)의 용뉴(龍紐: 종을 매는 고리)와 음통(音筒: 종 내부의 잡음을 없애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효과를 얻음)이 부착되고 종신(鐘身)에 상․하대와 유곽(乳廓: 젖꼭지 모양의 장식), 당좌(撞座: 종을 쳐 울리는 부분)가 갖추어진 전형적인 한국종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천판(天板)과 상대 사이에는 고려 후기 종의 특징인 입상화문대를 갖추고 있다. 내소사 고려동종은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한국 종의 전형양식을 이어받은 종으로,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범종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법화경 절본 사본 (지정:보물 278호)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소유자 : 내소사
시 대 : 조선 태종15년(1415)
규 모 : 장 36.2cm
법화경절본사본은 1415년(태종 15) 이씨 부인이 남편 유근(柳謹)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제작한 묘법연화경의 묘법연화경의 필사본으로 모두 7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지는 감지(감색으로 물들인 종이)에 금니(금박의 가루로 그림이나 글씨를 쓰는데 쓰임)로 외곽을 두르고 내부의 4매의 연화문을 배치한후 그 안에 책이름을 쓰고 백지 위에 법화경의 본문을 써 내려갔으며, 글씨는 한면에 6행씩으로 한 행에 17~19자의 행당 자수는 일정치 않으나 제 1권에는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부처님과 권속들을 섬세하고 정교한 필선과과 능숙한 솜씨로 그려낸 변상도가 있다. 건실한 필치가 돋보이는 이 사경은 조선시대 초기의 사경으로서 완전하게 보존된 보기 드문 일품에 속한다 하겠다.
●내소사 대웅보전 (지정 : 보물 291호)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소유자 : 내소사
시 대 : 조선 인조11년, 고종2년 중건
재 료 : 목재
수 량 : 1동
규 모 : 정면3간, 측면3간, 단층 팔작지붕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 사찰의 중심에 위치하는 예불 공간이다. 1633년(조선 인조 11)에 건립된 것으로 전하는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건실한 구조와 화려한 장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특히 연꽃과 국화꽃 등 각기 다른 꽃살무늬를 조각한 전면의 창호는 정교한 공예품이며, 길게 뻗어 나온 쇠서(牛舌: 나무를 소의 혀 모양으로 다듬어 기둥 위를 장식함)들의 겹쳐진 모습과 추녀 밑을 장식하는 용머리는 겉모양의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화 경향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개암사 대웅전 (지정:보물 292호)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소유자 : 개암사
시 대 : 조선 인조14년 중건(1638)
재 료 : 목조
수 량 : 1동
재 료 : 정면 3간, 측면 3간, 단층 팔작지붕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절의 중심에 위치하는 예불 공간이다.
개암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이후인 1658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겉모습이 화려한 특징을 갖는 다포식(多包式: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리는 형식) 건물 중에서도 가장 장식성이 두드러진 건물 중의 하나이다. 지붕을 받치며 처마 밑을 장식하는 공포(?包: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짜 맞춘 나무)는 연꽃이 올라가면서 겹겹이 피어 있는 것과 같이 사실적으로 조각하였고, 법당 내외부를 화려하게 용과 봉황 등으로 가득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다.
●고희 외 문중유물(지 정 : 보물 739호)
소재지 :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473
소유자 : 고상호
시 대 : 조선중종17년(1522)~고종31년(1894)372년간
수 량 : 215점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일대에서 세거해온 제주 고씨 문중에서 보존되어진 이 문중유물은 고세호에서부터 그의 12세손인 고정상에 이르기까지 372년간(1522~1894)에 걸친 각종 문서와 유품들로써 고희의 영정을 비롯하여 교지, 교서, 공신녹권, 치제문 등 20종 215점이 일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희(1560~1615)는 부안에서 출생하여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에 피난 길에 오른 왕을 모신 공으로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3등에 임명되어 영성군에 봉해졌다.
1615년(광해군 7) 56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조정에서 예관을 보내 치제하고 부안의 석불산에 예장하였으며, 산 주위 사방 10리에 이르는 땅을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공이 있는 신하에게 하사한 땅)로 내려 주었다.
이 문중은 대대로 무관(武官)으로서 나라에 종사하였는데, 특히 영성군 고희의 부친 사렴과 아들 홍건, 그리고 손자 두황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공신에 임명된 내력을 갖고 있다.
●부안김씨 종중고문서 (지 정 : 보물 제900호)
소재지 :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462
소유자 : 김종덕,김종규,김형복,김을술
시 대 : 조선 연산8년(1520)~륭희5년(1911)
재 료 : 한지
수 량 : 609점
이 고문서는 부안에 세거하는 부안 김씨 종중에서 연산군(1495~1506)때부터 조선말기에 이르기까지 14대 400여 년간에 걸쳐 모아진 것이다. 총 500여 점의 문서 가운데 광해군(1609~1623) 이전에 작성된 6종 80점이 일괄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그것은 중종반정으로 정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김석필과 그의 증손인 김홍원과 관련된 문서들이다. 지정된 내용으로는 교지류와 유지, 공신녹권(功臣錄券), 분재기(分財記), 소지류, 명문 등이다.
부안 김씨 종중 문서는 한 가문의 전후 내력을 밝혀 주는 것은 물론 당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더 없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화(지 정 : 보물 제1268호)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소유자 : 내소사
시 대 : 1700년
재 료 : 10.50m×8.17m
수 량 : 1점
이 불화는 야외에서 큰 법회나 제를 지낼 때 걸어놓고 예배하는 괘불(掛佛)로서, 1700년(숙종 26)에 제작된 영산회상 괘불이다. 영산회상이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그린 불화를 말하는데, 중앙에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두른 거대한 석가모니불이 붉은 법의를 걸치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배부근으로 올리고 서있다.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앞쪽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뒤쪽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및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등이 모두 석가모니를 향하여 시립하고 있다.
이 괘불은 각 존상의 광배 안에 존상의 명칭을 적어 놓아 이후 다른 괘불의 존상 명칭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화(지 정 : 보물 제1269호)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소유자 : 개암사
시 대 : 1749년
규 격 : 13.25m×9m
작 자 : 의견스님
이 불화는 야외에서 큰 법회나 제를 지낼 때 걸어놓고 예배하는 괘불(掛佛)로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그린 불화이다.
18세기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畵僧)이었던 의겸(義謙) 스님이 1749년에 제작한 것으로, 화면의 중앙에 큼직하게 석가모니불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및 2여래를 배치하였다.
인물들은 모두 둥근 얼굴에 다소 살찐 모습으로 밝은 표정을 취하고 있으며, 몸에 걸친 법의와 천의의 화려한 문양장식은 의겸화사의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석가삼존상을 전면에 크게 부각시키고 나머지 인물들은 뒷쪽에 작게 묘사하므로써 본존을 부각시키는 구도를 보여준다. 한편 이 괘불은 초본(初本: 밑그림)이 함께 남아있는데 필치가 세밀하다.
< 6차시 학습자료 >
6. 부안의 문화재 Ⅱ
◎국가지정문화재:사적(4점)
지정일 : 1963. 1. 21
소재지 :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0-1
소유자 : 사유
규 모 : 64,773평
옛 도자기는 우리 민족문화 유산의 하나로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아름다운 순청자와 상감청자를 제작하던 곳으로 전남 강진지방과 함께 우리 나라 대표적인 청자가마가 있던 곳이다.
부안 청자 도요지는 줄포만을 중심으로 처음에는 고창 아산면 용계리,반암리 일대에서 시작되었으며 12세기 전반경에는 부안 우동리와 진서리를 거쳐 12세기 후반경에는 부안 유천리 일대에서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를 활발하게 제작하였다.
이 곳에는 넓은 구릉 주위로 40여개소의 청자가마터가 있는데, 청자제작의 전성기인 12세기, 13세기의 각종 순청자, 상감청자, 철화청자, 동화청자, 백자, 상감백자 등의 뛰어난 작품들과 다양한 가마용구 등이 출토된 바 있으며, 특히 고려백자, 상감백자편이 출토되어 백자가 청자가마에서 제작되었음을 알려 준 곳이다.
현재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약 5000여점의 파편을 보유하고 있는데 일제시대에 정읍에 살던 일본인 신덴 아스토시가 유천리 12호를 중심으로 한 가마터에서 도굴하여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30여가마니중 20여가마니분을 1958년에 구입한 것이다.
이곳의 상감청자의 기형과 문양, 유색, 안료의 사용등이 정교하고 고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다양한 작품들이 강진의 청자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을 능가하는 뛰어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유물은 이화여대 소장 〔청자상감인물문매병-높이 38.5cm〕을 들수 있다.
지정일 : 1963. 1. 21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산 134-6
소유자 : 사유
규 모 : 57,721평
옛 도자기는 우리 민족문화 유산의 하나로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청자, 철화청자, 녹청자, 상감청자를 제작하던 곳으로 유천리와 함께 부안 지방의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였다.
청자가마터는 연동마을, 신작마을, 구작마을 주위의 구릉에 35개소의 가마터가 있으며, 해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1990년, 1992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된 이곳 진서리 가마터는 유천리 처럼 비색에 가까운 뛰어난 청자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대접, 술병, 매병, 주전자, 접시 등과 가마용구 그리고 각종 청자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생활용의 청자를 제작하였던 곳으로 주목된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지 정 : 사적 제103호)
소재지 :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7-1
시 대 : 청동기시대
형 태 : 남방식
규 모 : 13기
지석묘는 고인돌 또는 돌멘이라고 하며,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이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북쪽은 탁자형(北方式)이, 남쪽으로는 바둑판형(南方式)이 주류를 이루는 분포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안 지방에서는 여러 곳에 지석묘군이 있는데, 그 중 구암리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의 지석묘는 모두 13기로 바둑판형을 하고 있다. 굄돌(支石) 위에 놓인 상석(上石)은 0.5m 내외로 얇고,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큰 것은 6.4m가 되는 것도 있다. 바둑판형에서는 상석을 고이는 굄돌이 4개인 것이 통례인데, 이곳에 있는 지석묘 중에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인 8개의 굄돌로 괴고 있는 것도 있다.
●부안 백산성(지 정 : 사적 제409호)
소재지 :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산8의 1외
소유자 : 사유
규 모 : 24,720평
백산성은 동진강 하류의 서안에 위치한 높이 47m의 독립된 산봉우리를 감싸는 테머리식(山頂式)의 토성이다. 성안에서는 백제시대 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백제시대에 쌓았던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은 산봉우리로부터 남쪽의 구릉지대까지를 감싸고 있는데, 길이는 1,064m에 이른다. 이 외성(外城) 안쪽에도 성벽으로 보이는 3개의 단이 형성되어 있어 겹성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 곳은 1894년 음력 3월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의 기치를 들고 고부․흥덕․고창․부안․금구․태인 등 각처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집결하여 혁명의 기치를 들었던 이른바 백산기포(白山起包)의 유적으로 유명하다.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4점)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군락(지 정 : 천연기념물 제122호)
지정일 : 1962. 12. 3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산1
소유자 : 사유
규 모 : 2700평
호랑가시나무(Ilex cornuta)는 감탕나무과의 늘푸른 떨기나무이며, 키는 2m 정도 자란다.
짙푸른 윤기가 돌고 모서리에 가시가 달린 두꺼운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향기 나는 꽃은 4~5월에 피고, 둥글고 빨간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이곳은 난대 식물인 호랑 가시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맨 끝이라는 학술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지 정 : 천연기념물 제123호)
지정일 : 1962. 12. 3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산 35-14
소유자 : 사유
규 모 : 600평
후박나무(Machilus thunbergii)는 녹나무과의 늘푸른 큰키나무이며, 키는 20m, 줄기가 1m 정도 자란다.
짙푸른 윤기가 돌고 가장자리가 밋밋한 두꺼운 잎은 본디 마주나기로 달리지만 가지 끝에 모여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암수 한 그루인 이 나무의 꽃은 5~6월에 새 잎이 나면서 함께 피고, 이듬해 7월에 검게 익는 열매는 붉은 자루에 달린다. 모두 132그루가 약 200m 길이로 바닷가에 늘어 선 이 숲은 육지 쪽 밭을 향해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이른바 방풍림 구실을 한다. 이곳은 난대 식물인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맨 끝이라는 학술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중계리 꽝꽝나무 군락(지 정 : 천연기념물 제124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외 2필
소유자 : 국유 및 사유
규 모 : 1280평
꽝꽝나무(Ilex crenata)는 감탕나무과의 늘푸른 떨기나무이며, 키는 3m 정도 자란다.
짙푸른 윤기가 돌고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는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어린 가지에 잔털이 많다. 암수딴 그루인 이 나무는 5~6월에 흰 꽃이 피어, 10~11월에 검고 둥근 열매가 달린다. 특히 메마른 규암(硅巖) 위에서도 무리를 지어 잘 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곳은 난대 식물인 꽝꽝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맨 끝이라는 학술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중계리 미선나무 군락(지 정 : 천연기념물 제370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소유자 : 사유
규 모 : 705평
미선나무(Abeliophyllum distichum)는 물푸레나무과의 떨기나무이며, 줄기가 밑으로 처지고, 키는 1m 정도 자란다.
달걀꼴로 가장자리가 밋밋한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고. 흰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날개 달린 열매가 둥근 부채처럼 생겼기 때문에 미선나무라는 이름을 지닌 이 나무는 세계적으로 다른 곳에는 없는 이른바 고유종(endemic species)이다. 이 곳은 우리 나라에서 미선나무가 자라는 가장 남쪽 지역이고, 다른 곳과 견주어 무리를 지어 산다는 학술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 7차시 학습자료 >
7. 부안의 문화재 Ⅲ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3점)
●부안 서문안 당산(지 정 : 중요민속자료 제18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203외9필
소유자 : 국유
수 량 : 신간석 2기, 석장생 2기
재 료 : 화강석재
시 대 : 조선 숙종 15년(1689)
이 곳은 조선시대 부안읍성의 서문(西門)이 있던 곳으로써 서쪽 문안에 있던 당산(堂山)이라 하여 서문안 당산이라 이름하였다. 지금도 이 마을을 서외리(西外里)라 하는데, 서외리는 서쪽 성문 밖의 마을을 한자화(漢字化)한 것이다.
당산은 마을 사람 모두가 공동으로 받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써 마을의 평안과 여러 가지 질병으로 부터 마을을 지켜달라는 기원과 믿음을 가졌던 것이었기 때문에 신성한 것으로 받들어졌다.
이 곳 당산에는 1689년(숙종 15)에 건립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다. 본래 이 서문안 당산과 장승은 길 건너와 위쪽에 따로 세워졌던 것이나 지금의 도로가 정비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부안 동문안 당산(지 정 : 중요민속자료 제19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391 외11필
소유자 : 국유
수 량 : 신간석 1기, 석장생 2기
재 료 : 화강석재
시 대 : 1689년
이 곳은 옛 부안 읍성의 동문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동문안이라 부르고 있는데, 동문안의 당산과 장승은 성문과 성문 안에 있는 마을의 재앙과 재복이 들고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 당산과 장승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형태상으로 볼 때 서문안 당산과 비슷한 17세기 말경으로 보여지며,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2년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 풍물과 줄다리기, 당산 옷입히기, 그리고 당산제로 이어지는 마을의 축제가 열린다.
원래 이곳에는 커다란 당산나무와 마을사람들의 쉼터인 모정이 있었으나 지금의 도로가 뚫리면서 없어졌고, 문지기장군이라 불리는 한 쌍의 장승도 조금씩 뒤로 옮겨졌다.
●김상만 가옥(지 정 : 중요민속자료 제150호)
소재지 : 부안군 줄포면 445
소유자 : 사유
수 량 : 한옥 6동
시 대 : 1907년
이 집은 교육가이며 언론인이자 정치가인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이 소년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안사랑채, 바깥사랑채), 문간채와 곳간채 등 여러 채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상류주택과 같이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남녀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전면에 툇마루가 있는 남부 지방의 보편적인 일자(一字)집의 모습이다. 그러나 각 채 마다 방 옆에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도장방 또는 골방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며, 사용한 부재나 전체적 규모로 볼 때 충분히 기와집을 지을 수 있었지만 초가를 입힌 것도 이 집의 특징 중에 하나이다.
◎국가지정 문화재:중요 무형문화재(2점)
●풍어제:위도 띠뱃놀이(지 정 :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소재지 : 부안군 위도면 대리
보유종목 : 풍어제(위도띠뱃놀이)
위도 띠뱃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마을의 공동제의로써 원래의 명칭은 원당제(願堂祭)이나 용왕굿을 할 때 띠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워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고도 부른다.
정월 초사흗날 마을사람들은 먼저 원당에 모셔져 있는 열두 서낭 중에 한 분을 내림받아 일년 동안 자기 배의 뱃신으로 섬기기 위해 오색의 뱃기를 앞세우고 원당에 올라가 원당제를 지낸다. 원당에서의 당굿이 끝나면 마을로 내려와 용줄을 메고 마을의 여러 곳을 돌며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놀이로 이어지고, 이어서 바닷가로 내려와 풍어를 바라는 용왕제를 지내는데, 띠풀과 짚, 싸리 등을 엮어 만든 작은 띠배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기를 꽂아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으로 놀이는 막을 내린다.
이 위도 띠뱃놀이는 섬마을 사람들의 생업과 관련된 제의로써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으며,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 대목장:고택영(지 정 : 중요 무형문화재 제74호)
소재지 :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564
보유종목 : 고택영
목수 중에서도 장․농이나 반닫이 등 집안에서 쓰는 가구류를 짜는 사람을 소목장(小木匠)이라 하는 데 비해 커다란 건축물 등을 다루는 목수를 대목장(大木匠)이라 한다.
대목장 고택영옹은 1914년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에서 부친 고장진과 모친 하동 정씨 사이에 2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나 27세 때인 1941년부터 본격적인 목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때부터 심태점, 조원제, 배희안 세분의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목수생활을 하던 옹이 문화재의 보수와 복원작업을 시작한 것은 1954년부터이며, 해인사 홍제암과 경회루의 보수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110곳 이상의 문화재의 보수와 복원작업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옹의 업적과 기능이 인정을 받아 1997년 3월 중요무형문화재 제 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을 받게 되었다.
<제 8차시 학습자료>
8.부안의 문화재 Ⅳ
◎도지정 문화재:지방유형문화재(8점)
●수성당(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
소유자 : 부안군
규 모 : 당집1동(4평)
수성당은 칠산바다(변산반도 앞의 서해바다를 일컬음)를 수호한다는 '계양할미'를 모시는 해신당이다. 내륙지방에서 모시는 당산신이 주로 남성인데 비해 해안지방에 모셔진 신은 여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칠산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적벽강 여울골 위에 자리잡은 이 당집이 언제부터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804년(숭정 기원 후 사갑자)이라는 상량문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이 때부터는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풍랑을 다스리고 풍어를 바라는 해안마을 사람들의 소망과 관련시켜 볼 때 이 보다 훨씬 전부터 당집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계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나막신을 신고 칠산바다를 거닐면서 수심을 재어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도록 해 준다고 하며, 딸 여덟을 낳아 각 도에 시집 보내고 자신은 막내딸을 데리고 수성당에 살면서 칠산바다를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서외리 당간(지방유형문화재 제59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287-2
소유자 : 부안군
수 량 : 화강석 석당간 1기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석당간(石幢竿: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과 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가 모두 남아 있는 드문 예로서, 방형 기단 위에 지주를 세우고 여러 조각의 화강암 석재를 연결하여 당간을 조성하였다.
석당간의 아래쪽에는 1671년에 돌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기와편이라든지 석당간, 당간지주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명문은 1671년에 무너졌던 당간지주를 다시 세우며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도 관아 (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101호)
지정일 : 1982. 8. 30
소재지 : 부안군 위도면 진리 156-3
수 량 : 1동
재 료 : 목재
시 대 : 조선시대
이 건물은 조선 숙종 8년(1682)에 설치한 수군진영인 위도진의 관아 건물이다. 진(鎭)의 설치는 임진왜란 이후 군사제도의 개편에 따라 각 지방의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되었으며, 위도진은 서해안을 방어할 군사적 목적으로 우수영의 관할하에 설치되었다.
이곳 위도진에는 종 3품 무관직인 첨사(僉使)가 파견되었으며, 53명의 수군이 주둔하면서 고군산, 우포, 다경포, 법성포, 금모포 등 전라우수영의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이 건물은 위도진의 진영장인 첨사가 업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섬 지방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다.
●청림리 석불좌상(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123호)
지정일 : 1986. 9. 9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소유자 : 국유
수 량 : 1구
시 대 : 고려시대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석조 지장보살좌상으로 원래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서운마을의 청림사지 (靑林寺址)에 전해오던 것을 최근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
코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강하고 목 부분이 떨어져 새로 이은 것을 제외하고는 상태가 매우 좋은데, 지대석 위에 3단의 대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상을 모셨다.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으며, 두건이 양 어깨 아래에까지 길게 흘러내리고 있다. 대좌는 상, 중, 하단으로 이루어진 3단 대좌로서, 상, 하단의 연화대좌 가운데 아무런 문양도 넣지 않은 고복형(鼓腹形: 배를 두드리는 형태)의 중대석이 놓여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많이 조성되었던 두건지장(頭巾地藏: 지장보살의 머리에 두건을 두른 것을 일컬음)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중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등과 함께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지장보살상이라 할 수 있다.
●내소사 삼층석탑(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124호)
지정일 : 1986. 9. 9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소유자 : 내소사
수 량 : 1기
시 대 : 고려시대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3층석탑은 2중기단으로서 화강암질로 되어있다. 하층기단은 전고 3.46m, 폭 1.43m이며 1장의 석재에 지대석, 면석, 갑석을 각출하였고, 면석에 우주와 장주를 각하였다. 이갑석의 상면은 상대중석 받침쪽의 높은 경사를 이루고 중석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상대중석의 경우도 모두 1매의 석재로서 면석에 우주와 면석중앙에 장주가 하나씩 모각되었다. 2단의 탑신받침 각출과 하단받침을 말각하였다.
이 갑석의 아래에 갑석부연을 각출하였다. 탑신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의 탑신석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체감되었다. 옥개석은 각층이 1배의 석재로 되어 있고 4단의 받침이 있다. 3층 옥개석 상면의 노반이 있는데 이 노반의 윗부분은 상대갑석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크고 작은 구형의 석재 2개가 올려져 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지 정:지방유형문화재 제125호)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268
소유자 : 내소사
소 량 : 1동
규 모 : 설선당 정면6간, 측면3간 요사정면6간,
측면2간 맞배지붕
시 대 : 조선시대(1633년) 중건
내소사의 대중 요사로서 승려들의 수학 정진과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자형의 폐쇄적인 평면을 하고 있으며, 지면의 높이 차를 이용하여 건물의 일부를 2층으로 구성하였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넓은 대방과 승방, 부엌 등이 배치되고, 2층의 고루(高樓: 높은 다락집)는 각종 곡물 등을 저장할 수 있도록 벽면에 여러 개의 환기창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지붕선이 뒤쪽에 보이는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이 건물은 1640년(인조 18)에 내소사를 중건할 때 같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암사 동종(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126호)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소유자 : 개암사
수 량 : 1구
시 대 : 조선시대
이 종은 1689년(숙종 15)에 제작된 조선시대 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개암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범종(梵鐘)은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맑은 소리로 부처의 말씀 곧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제작되었으며, 절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반드시 비치하고 있다. 윗부분에는 단룡(單龍)의 용뉴(龍紐: 종을 매는 고리)와 음통(音筒: 종 내부의 잡음을 없애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효과를 얻음)이 조각되었으며, 상대는 사각형 안에 원형의 구획을 한 후 범자(梵字)를 새긴 범자문대를 돌려 장식하였다.
상대 아래에는 4개의 유곽(乳廓: 젖꼭지 모양의 장식)을 배치하고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배치하였는데, 유곽의 주위를 연당초문으로 돌리고 연꽃 모양의 유두(乳頭) 를 얕게 양각하였다.
이 범종은 한국종의 전통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당좌(撞座: 종을 쳐 울리는 부분)가 사라지고 상대에 범자문이 주조되는 등 중국종의 영향을 받은 조선후기 범종이라 하겠다.
지정일 : 1986. 6. 20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소유자 : 월명암
수 량 : 1권
이 책은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위치한 월명암(月明庵)을 창건했다고 전하는 부설선사(浮雪禪師)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한문 필사본(筆寫本)으로 서체는 행서체(行書體)이며, 책 중간에 관인(官印) 또는 사인(寺印)으로 추정되는 날인이 있다. 겉표지에는 부설전이라는 한문제목과 간지 등이 어지럽게 적혀있으며, 겉표지 안쪽면에는 월명암연혁표(月明庵沿革表)를 적었다. 본문은 모두 14면에 걸쳐 부설선사의 행적과 월명암에서 함께 수도생활을 했던 영희, 영조스님과의 일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부분에 부설선사가 지은 사부시(四賦詩)와 팔죽송(八竹頌) 등이 첨부되어 있다. 그런데 부설전의 본문과 사부시, 팔죽송의 글씨체가 서로 달라 여러 시기에 걸쳐 제작된 것을 모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지정 문화재:지방무형문화재(1점)
지정일 : 1987. 12. 31
보유종목 : 농악
보유자 : 라모녀
우도 가락인 부안지방의 유일한 농악보존회이며, 초창기 고 이동원씨가 50여년의 세월동안 익혀온 농악을 지역주민과 같이 단체를 만들어 1983년에 전국대회 우승과 1986년 제4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상쇠놀이의 특징은 부포놀이와 진법놀이, 덩더궁이, 노재굿으로 구분하며 장고가락은 굿거리, 덩더궁이, 구정놀이가 있다.
장단의 특징은 타지방에 비해 가락이 느리고 섬세하며, 맺고 푸는 가락을 써서 리듬의 변화가 다양하다
●죽염제조장허재근( 지 정: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23호)
지정일 : 1999. 10. 8
소재지 : 변산면 도청리 산 1-3
죽염은 대나무속에 천일염을 넣고 황토로 입구를 막은 뒤 높은 열에 아홉 번을 구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소금속에 들어 있는 독소 및 불용성분 등은 제거되고, 대나무와 황토의 유효성분이 조화되는 건강염이 된다. 이러한 죽염 제조기법은 주로 불가(佛家)에 이어져 내려왔는데 1940년 무렵에 그 맥이 끊겼다. 이를 허재근씨(전 개암사 주지) 가 되살린 것이다.
전라북도는 그의 이런 전통 죽염제조기법을 인정하여 1999년 10월 8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23호로 지정하였다.
<제 9차시 학습자료>
◎도지정 문화재:지방민속자료(6점)
●보안 입석(지 정 : 지방민속자료 제6호)
소재지 :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
소유자 : 부안군
수 량 : 1기
시 대 : 선사시대
이 마을의 이름을 입석리라 한 것은 마을에 세워져 있는
입석(立石: 선돌)에서 비롯되었고, 이 입석을 중심으로
하여 윗마을을 상입석리, 아랫마을을 하입석리라 한다. 장방형으로 다듬어진 이 선돌은 신체로써마을의 수호석이거나 경계석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보안입석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한다. 옛날 건너 마을에 인색하고 고약하기로 소문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부자에게는 시아버지와는 달리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와서 시주를 구하자 며느리는 시아버지 몰래 곡식을 내어 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이 곳이 곧 물에 잠길 것이니 자기를 따르라고 하면서 다만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십여 리를 따라 가던 여인이 남아 있는 가족들이 걱정이 되어 그만 뒤를 돌아보자 그대로 돌로 변해 버렸는데, 바로 이 선돌이 그 여인이 변한 것이라 한다.
●쌍조석간 당산( 지 정 : 지방민속자료 제17호)
소재지 : 부안군 계화면 궁안리 대벌 413-48
소유자 : 마을공동소유
수 량 : 화강석 당산신간 1기
시 대 : 조선 영조25년(1749)
이 마을은 계화도 간척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업을 주로 했던 어촌마을이었다. 어촌 마을에서 모시는 당산신이 대부분 여성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이 마을을 수호하는 주당산신도 할머니당산이다.
이 당산은 부안지역에 있는 다른 당산들과는 달리 당산의 위에 쌍조(雙鳥: 2마리의 오리)가 얹혀져 있는 것이 특징이고, 당산제의 놀이 또한 특이하다. 제사를 드린 후에 무명베 한 필을 마을의 동장과 시주자가 한 가닥씩을 잡고 잡아 당겨 동장이 잡은 손목 근처에서 베가 끊어지면 당산 할머니가 제사를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이며, 한 해 동안 마을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는 징조라 한다.
당산에는 1749년(영조 25)에 건립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있으며, 원래 할아버지 당산도 함께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서 지금은 당산제를 올릴 때 건너 마을의 구지산(九芝山)에서 소나무를 베어다 할머니당산의 옆에 세우고 할아버지당산을 대신한다고 전한다.
●남문안 당산(지 정 : 지방민속자료 제18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84-4
소유자 : 국유
수 량 : 화강석재 당산 1기
시 대 : 조선시대(1600년경)
남문안 당산은 부안 읍성의 남문인 취원문루 안에 세워진 당산으로 동문안이나 서문안 당산과 같이 성문을 지켜주고 성안 마을의 무사태평을 위한 수호신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형태면에 있어서는 다른 두 곳의 당산이 오리가 얹혀지고 보조신격인 장승을 동반하고 있는 데 비해 이 남문안 당산은 원추형에다 장승도 거느리지 않으며, 몸에는 4마리의 거북이가 양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마을의 지형이 행주형(行舟形: 배가 물에 떠있는 모양)이어서 약한 곳을 보충해 주는 비보적 기능을 강조한 짐대(돛대)로 세워진 것으로 보여진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 당산을 세울 당시의 시주자 2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돌모산 당산(지 정 : 지방민속자료 제19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 4구
소유자 : 국유
수 량 : 석조형 신간의 당산1기
시 대 : 조선시대(1600년경)
당산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그 수호신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당산신을 신성하게 여겨왔고, 해마다 당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불안을 없애주고 풍요롭고 편안한 삶에 대한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줄다리기나 풍물 등은 마을 구성원들의 소망에 대한 구체적 행위인데, 이 행위를 통해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돌모산당산제는 매년 정월 보름 줄다리기, 풍물, 당산제, 당산 옷입히기 순서로 진행되며, 줄다리기는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언제나 여자편이 이긴다.
이 당산의 건립과 관련해서는, 이 마을의 지형이 배가 물에 떠있는 행주형이어서 배가 가벼우면 쉽게 파선되기 때문에 배의 돛대용으로 큰 돌기둥을 세워 마을을 안정시키고자 했다는 풍수적 성격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죽림리 석장생(지 정 : 지방민속자료 제20호)
소재지 : 부안군 백산면 죽림리 공작마을
소유자 : 국유
규 모 : 석장생 2기
시 대 : 조선시대(1700년경)
장승은 마을이나 성문, 사찰 등의 입구에 세워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잡귀(雜鬼), 액(厄), 살(煞), 부정한 것을 막아 주는 수호신적인 역할과 함께 이정표(里程標)나 풍수지리상의 비보(裨補: 허술한 것을 보충함)적인 기능을 하는 신상(神像)을 말한다. 이것은 장승 단독으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당산과 함께 세워져 당산신을 돕는 하위신(下位神) 역할을 담당한다.
마을을 지켜주는 벽사(抗邪) 장생으로 세워진 죽림리 석장생의 건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한다. 이 마을의 지형이 공작혈로 되어 있어 누구든 이 공작혈에 묘를 쓰면 왕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나라에는 역적이 되는 것이므로 그 혈맥을 끊기 위해 공작의 밥통에 해당하는 곳에 장생을 세웠다고 한다. 이 장생은 원래 마을 안에 있었으나 199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부안 월천리 석장생(지 정 : 지방민속자료 제30호)
소재지 :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86
재 질 : 화강석
이 석장승 한 쌍은 원래 월천리의 서북쪽에 있는 거북뫼(龜山) 기슭의 개천가에 묻혀 있던 것인데, 어느 날 월천리에 사는 '허방환'이란 분의 꿈에 나타남으로 인해서 알게 되었고, 1920년경에 자기 집 뜰에 옮겨 수호신으로 모셔왔다고 한다.
이 장승은 장군석이라 불리지만 그 형태가 무인상(武人像)이 아니라 금관조복(金冠朝服)에 손에는 홀(笏)을 쥐고 있는 문인상(文人像)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 중 하나는 앞면에 환웅(桓雄), 뒷면에는 구룡연(九龍淵)이라 새겼고, 다른 하나에는 앞면에 왕검(王儉), 뒷면에 장백산(長白山)이라 새겨져 있다.
우리 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과 왕검으로 표현된 이 장승이 언제 무슨 용도로 만들어 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신선사상을 염원하는 법수계 장승, 또는 두창신을 물리치기 위한 두창법수로 보고 있다.
◎도지정 문화재:문화재 자료(2점)
●부안 향교 (지 정 : 문화재자료 제93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소유자 : 향교재단
향교는 선현(先賢)을 봉사(奉祀)하고 교육을 위하여 국가에서 세운 학교이다. 이 향교는 1414년(태종 14)에 세워졌다고 하나 확실치 않으며,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그 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및 재사(齋舍), 제향(祭享)을 준비하던 전사청, 문루인 만화루, 관리인이 사용한 고직사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향교와는 다르게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던 동․서무가 없으며, 명륜당 좌우에 대칭적으로 배치되던 동․서재의 모습도 여기서는 다른 배치 형태를 하고 있다.
●고홍건 신도비(지 정 : 지방문화재자료 제111호)
소재지 :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132-2
소유자 : 제주고씨 종중
수 량 : 신도비 1기
시 대 : 조선현종9년(1668)
고홍건(1580~1655)은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공주로 모시고 간 공을 인정받아 영원군에 봉작되었다. 그 뒤 1636년(인조 14)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에도 어가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으며, 그 뒤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중앙군의 최고 기관인 오위도총부의 도총관, 지중추부사 등 무반의 최고위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 비는 고홍건이 죽은 3년 뒤인 1668년(현종 9)에 세워졌는데, 신도비란 왕이나 2품 이상의 고관의 무덤 앞 동남쪽에 세운 비를 말한다. 이것은 처음 중국에서 천자나 제후들의 묘 앞에 신도비를 세우던 것에서 유래하였고, 그 세워진 방향이 동남쪽인 것은 동남쪽을 신도(神道)라 하였기 때문이다.
<제 10차시 학습자료>
◎도지정 문화재:지방기념물(12점)
●우금산성(지 정 : 지방기념물 제20호)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시 대 : 삼국시대
우금산성은 주류(周留)․위금암(位金岩)산성 혹은 울금바위산성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성곽 안에서 백제시대의 유물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유물들까지 발견되고 있어 오랫동안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성곽은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주변 산봉우리와 함께 아래의 산골짜기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3,960m에 달하며 높이는 3m내외로써 인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성곽이다. 성곽의 북쪽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북장대(北將臺)가 있고, 남쪽에는 남장대(南將臺)가 있다. 성의 내부에는 묘암사(妙岩寺) 터와 함께 많은 건물지들이 남아 있다.
이 성은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에 가 있던 부여풍(扶余豊)을 받들어 백제 부흥군이 663년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주류성(周留城)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주류성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있는 건지산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 정설임.
●반계선생 유적지(지 정 : 지방기념물 제22호)
소재지 :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775-39, 산 128-5
소유자 : 국유
규 모 : 서당집1동
시 대 : 조선효종
이 일대는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반계 유형원(1622~1673)이 20여 년간을 보내면서 《반계수록》 26권을 저술했던 장소로, 우리 나라 실학의 태동지라는 커다란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곳이다.
1622년(광해군 14)에 서울에서 출생한 선생은 병자호란 이 후 여러 곳에 옮겨 살다가 32세 되던 1653년(효종 4)에 그의 9대조인 유관(柳寬)의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공이 있는 신하에게 하사한 땅)가 있던 이 곳 우반동에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이 후 20여 년간 이 곳에서 농촌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반계수록》26권을 저술하였는데, 이 저서에는 그의 사상과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개혁하고 부국(富國)․부민(富民)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국가 건설 방안이 주된 내용으로 담겨 있다. 반계선생의 개혁사상은 성호(星湖) 이익(李瀷), 다산(茶山) 정약용(鄭若鏞), 이재(滯齋) 황윤석(黃胤錫) 등에게 이어짐으로써 이후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간재선생 유적지(지 정 : 지방기념물 제23호)
소재지 :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8
소유지 : 사유
규 모 : 사당1동, 강당1동, 유물관1동
시 대 : 1920
이 곳은 한말의 대학자였던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말년에 정착하여 살던 곳이다.
1841년(헌종 7)에 전주에서 태어난 선생의 본관은 담양이고 간재는 그의 호이다. 선생은 72세 되던 해 당시에는 섬이었던 이 곳 계화도(界火島)에 들어와 중화(中華)를 잇는다는 뜻으로 계화도(繼華島)라 부르면서 1922년 82세의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제자의 양성과 저술에 힘을 기울였다.
임헌회 문하에서 수학한 선생은 모든 벼슬을 물리치고 평생을 오직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한국 유학사상에 있어서 그의 학문적 업적과 조선 최후의 정통 성리학자로서의 성리학적 공헌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재의 사당은 1932년 제자들에 의해서 건립되었고, 묘소는 익산 삼기(미륵산 옆)에 있다.
●채석강(지 정 : 지방기념물 제28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소유지 : 국유
규 모 : 127,372㎡
이 곳은 변산 반도의 최서단으로서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 때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이 곳은 바닷물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의 백사장과 맑은 물이 함께 어울려 빼어난 풍치를 자랑하고 있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唐)나라의 이태백(李太白: 당나라 때의 시인)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採石江 閑談◇ 이 석 한
明나라 말기에 梅之渙이라는 詩人이 있었다. 한번은 天下 大 詩人 李白의 무덤을 지나게 되었는데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의 墓碑 위에다 제 딴에는 文才 깨나 갖추었다고 自負하는 者들이 함부로 詩句를 새겨 넣었던 것이다. 불쾌한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으로 자신도 한 首를 적어 넣었다.
採石江邊一堆土(채석강변의 한 무더기 흙이여)
李白之名高千古(이백의 이름 천고에 드높도다)
來來往往一首詩(오가는 사람마다 한 수씩 남겼으니)
魯班門前弄大斧(노반의 문전에서 큰 도끼 자랑하네)
詩仙 李白(701-762)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 위에 떠 있는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곳이 採石江인데 그의 무덤도 採石江邊에 있는 듯 하다. 우리 扶安의 採石江은 바로 李太白이 죽고 묻힌 중국의 採石江과 그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第 四句의 魯班門前弄大斧의 事緣은 이러하다.
春秋時代에 魯나라에 公輸班이라는 名 匠人이 있었다. 어떤 나무토막이든 그의 손에 들어 가기만 하면 國寶로 변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 났다. 워낙이 技巧가 뛰어나 도끼놀림이 鬼神같고 대패질은 아지랑이 춤추듯 했다. 그때 젊은 목수가 하나 있었다. 조금은 技藝를 익혔는데 도무지 眼下無人이었다. 하루는 사람들 앞에 自身의 作品 몇 점을 가지고 나타나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ꡒ이것 보시오, 神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입니다ꡓ하면서 도끼를 직접 꺼내 가지고는 現場에서 示範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서 있던 곳은 公輸班의 大門앞이었다. 그러자 구경꾼중의 하나가 가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ꡒ이봐, 젊은이. 어디 등뒤를 한번 돌아보시지. 그게 누구의 집인 줄 아는가? 바로 天下의 名匠 公輸班의 집이라오ꡓ
집안을 둘러보고 난 젊은이는 茫然自失했다. 鬼神도 無顔해 할 정도의 재주, 精巧의 極致를 다한 彫刻들은 自己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技藝였다. 젊은이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머리를 떨군 채 자리를 뜨고 말았다. 孔子 앞에서 文字를 쓰면 부끄러운 법이지요.
●적벽강(지 정 : 지방기념물 제29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소유지 : 국유
규 모 : 291,042㎡
채석강에서 북쪽으로 약 1㎞의 백사장을 따라 가면 적벽강에 이르게 되며 백사장 뒤편의 죽막마을을 경계로 채석강과 나뉘어진다.
죽막마을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 약 2㎞를 적벽강이라 한다.
이름의 유래는 송(宋)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던 적벽강(중국 황강현(黃岡縣)의 성(城)밖에 있으며, 소동파가 이곳을 찾아가 전후적벽부(前後赤壁賦)를 지었음)과 자연경관의 빼어난 풍치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지 정 : 지방기념물 제30호)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소유자 : 국유
규 모 : 호벌치 일원
시 대 : 조선 선조30년(1597)
호벌치 전적지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이 지방의 의병들이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항전지이다.
1592년 임진왜란을 통해 호남지역을 손에 넣지 않고서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 왜군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주력부대를 전라도에 투입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도내 각처에서는 의병들의 항전이 이어졌다. 이미 임진왜란 때에도 흥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야수(野未) 채홍국(蔡弘國)이 중심이 되어 동지들을 규합하고 흥덕 남당의 회맹단(會盟壇)에서 삽혈동맹(?血同盟)을 맺은 뒤 흥덕과 부안에 진출한 왜군을 이 곳 호벌치에서 맞아 4월 중순부터 1주일간에 걸쳐 처절한 전투를 벌였으나 채홍국 3부자는 물론 이 전투에 참여한 의병 모두가 전사하였다.
이 전투는 선비․농민․천민․승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하나로 뭉쳐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정신이 잘 나타난 의병항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이다.
●사산리 와요지(지방기념물 제40호)
소재지 :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 122
규 모 : 300평
시 대 : 고려중기
와요지(瓦窯址)는 기와를 굽던 가마가 있던 곳으로 사산리 와요지는 낮은 구릉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마를 설치할만한 구릉의 경사면과 양질의 점토, 그리고 주변의 산에서 풍부한 땔감을 구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기와가마를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와요지에서 수습되는 기와의 등면에는 문양이 없으며, 두께가 비교적 얇다. 흙은 가는 모래가 섞인 점토를 사용하였으며, 안쪽 면에는 제작시 굵은 마포를 대고 성형했던 흔적이 있다. 이러한 기와의 형태로 보아 이 와요지는 고려 중기의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대항리 패총(지 정 : 지방기념물 제50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389-1, 390
규 모 : 3,484㎡
시 대 : 신석기 시대
패총은 수렵․어로․채집에 의하여 생계를 유지해온 선사시대의 인류가 식료로서 채집한 조개를 먹은 뒤 버린 껍데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무지라고도 한다.
이 안에는 조개껍질 외에도 동물이나 물고기 뼈, 토기․석기․골각기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대항리 패총에서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출토되고 있어 신석기시대의 패총임을 알 수 있다. 1967년에 발견되었으며, 패총의 범위는 남북 약 14m, 동서 약 10m의 넓이에 달한다. 당시 여기에서는 돌을 두드려 쳐서 만든 석기(打製石器) 5점과 빗살무늬토기편이 채집되었는데, 석기는 반암(斑岩)으로 만들어졌고, 토기는 운모(雲母: 화강암에 많은 광물질로 유리나 자기를 만드는데 쓰임)가 비교적 많이 섞인 고운 사질토로 만들어졌다.
●이매창 묘(지 정 : 지방기념물 제65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 567번지
소유자 : 부안군
수 량 : 1기
매창(1573~1610)은 조선시대 중기를 살다 간 기생이자 여류시인으로 매창은 그녀의 호이고, 본명은 향금(香今)이라 하였는데, 계유년에 태어났다고 하여 계생(癸生), 또는 계량(癸良)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부안현의 아전이었던 이탕종의 서녀로 태어난 매창은 개성의 황진이에 버금가는 명기로 이름이 높았고, 당대의 뛰어난 문사인 유희경, 허균, 이귀 등과 교류가 깊었다고 전한다.
현재 그녀가 지은 시로는 《가곡원류》에 실려 있는 「이화우(梨花雨)」외에도 「추사(秋思)」․「춘원(春怨)」․「부안회고(扶安懷古)」․「자한(自恨)」등 60여 수가 남아 있다.
이 곳은 최근까지 공동묘지였으나 매창묘역의 정화사업으로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되었고, 묘비는 1655년(효종 6)에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세운 것이다. 그 옆에는 명창 이화중선의 묘가 있다.
◇[화첩기행]역사에 두남자를 보냈던 비련의 여류시인-이매창◇
들으시라. 이 땅의 풍광과 예술을 사랑하는 알 수 없는 그대여. 부안에 가거든, 격포의 일몰과 내소사 월명암의 달빛만 보고 오지 말기를. 부탁하노니, 찾는 이 하나 없고 울어줄 이 하나 없는 두 여인의 무덤에 꽃 한 송이씩 바쳐 주기를.
피붙이 하나 없던 매창은 평생 거문고를 자식 삼아 살았다 한다. 매창뜸 묘소에는 그녀의 거문고가 함께 묻혀 있고 서림공원의 시비 역시 거문고 형태이다.
나당연합군에 몰린 백제군 최후의 격전지였던 우금산성(일명 주류성) 가까운 우금바위 아래에 한 폭 수묵화처럼 적막하게 앉아 있는 '고찰' 개암사. 매창 사후 이 절에서는 그녀의 시집을 목판본으로 묶어 내놓았다.
푸르른 나이에 외롭게 떠난 시인 이매창과 명창 이중선(1901?~1932)의 묘소는 서로 지척 이니 한번 들러 혼백이나마 위로해 주기를.세월은 험해도 소쩍새는 울더라고, 이승의 시절 안부나마 전해 주기를….
백산. 초록 풀과 뒤섞여 갈아놓은 일망무제의 붉은 황토밭.차마 가슴 두근댐 없이 이 벌판을 건널 수 있다더냐. 지금도 들 리는 듯하다. 흰 옷 입고 저 긴 '징게맹게 외애미뜰(김제만경 외애 미들)'가로질러 북상해 갔을 동학혁명군의 함성이.
흔히들 '남도한'으로 전라남도 정서를 들지만, 부안 가는 길의 '고부', '이평', '백산'벌을 물들인 동학의 피와 한은 동진강 푸른 물로도 씻길 수 없는 것이었다. 한때 매창의 연인이었던 허균이 부 안의 우동리에 은거하며 체제에 항거하는 '홍길동'을 쓴 것도 우연 은 아니었을 터.유난히 경승지 많아 '생거부안'이라 했지만 이 미완의 혁명지에 는 역사의 서린 한 또한 많았다.
이매창.
조선조 최고의 여성 시문학을 일궈냈던 천재적 예술가였건만,궁 벽한 변산반도에서 서른일곱 나이로 죽어갔던 그녀도 가슴에 한을 품고 갔을 터이다. 여자에 관한 한 칠흑같이 어둡던 봉건의 시대에, 더구나 그녀는 사내들이 지분냄새 더듬으려 들었던 기생의 몸.
그 나이 스물에 매창은 한 남자를 사랑했다. 촌은 유희경(1545~ 1637). 도골선풍의 그와 시로 화답하던 밤, 그녀는 머리 풀고 큰절 을 올린다.
"명마는 '백락' 만나기 전에는 굴복할 줄 모른다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임진란의 전쟁터로 떠나 버 린다. 그를 보내던 날 배꽃이 눈처럼 비처럼 흩날렸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 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도다/.
허망한 기다림 속으로 다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시대의 반항아 교산 허균(1569~1618). 매창이 그리울 때면 천리길 멀다 않고 말 달려왔던 그는 시대와 불화했던 개혁주의자. 훗날을 기약하고 부안 땅을 떠났던 그 비운의 천재는 역모의 상소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 끝에 참형되고 만다. 매창이 사랑했던 남자들은…, 그렇게들 갔다.
비련의 시인 매창은 거의 사백여 년 동안이나 공동묘지였다는 부안읍 남쪽 외곽 '봉두메'의 '매창뜸'에 잠들어 있었다. 근래 천 여 기의 무주묘들을 이장하느라고 갈아 엎어놓은 흙무덤마다 번호 적어 꽂아둔 팻말들은 인생의 덧없음을 절절히 말해준다. 357, 358, 359….
부안 사당패와 아전들이 외롭게 죽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이 곳에 묻어주고 해마다 풀 뽑고 제사 지내오기 아득한 세월이었다 한다.
생전에 그녀가 자주 놀러갔다는 개암사에서 아전들은 그녀 사후 58년 만에 바람에 날아다니며 구전되던 시들을 모아 목판본의 책으 로 묶어내었다. 그 시집이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은 불 과 수십년 전이었다 한다(김지용, 매창문학연구, 1974).
'계화' 지나 '곰소나루'쪽 해안도로 따라 개암사로 간다. 전신 주는 몇번씩이나 소실점으로 좁혀지고, 울부짖음처럼 천공을 울리 는 해풍에 흙먼지는 회오리를 친다. '들물' 때면 한 차례씩 불어와 갓 피어난 꽃과 나무마저 무참히 꺾어버린다는 그 사나운 소금바람 이다. 폐를 앓던 명창 이중선을 갓서른 지난 나이에 데려가버린 것 도, 매창의 명을 꺾어버린 것도 저 들물의 소금바람이었을 것이다. 갯벌의 폐선이며 갈대밭, 소금창고와 염전들이 끝나면서 수묵화처 럼 호젓한 산길과 저수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억센 우금바위 아래 시간이 퇴적한 듯, 거기 단아하게 개암사는 있었다. 허다한 '거찰', '명찰'들의 울긋불긋 느끼한 느낌 아닌 무채색으로 서 있는 담박한 '고찰'의 분위기는 매창의 시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싸리비 자국 선명한 저 마당으로 매창은 들어서곤 했을까.
'응진당' 툇마루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신다. 섬돌 위 가지런한 고무신과 햇볕에 바싹 마른 흰 운동화. 이곳에서, 속도는 … 악이 다.
저녁공양 알리는 동종 소리에 섞이는 청아한 예불.
소리는 적막한 뜨락으로 고인다.
●부안 실상사지(지 정 : 지방기념물 제77호)
소재지 :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164
소유자 : 선운사제24교구
규 모 : 사지와 그 일원 16,725㎡
실상사지는 천왕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데 내변산에 소재한 4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사적기에는 신라 신문왕 9년(689)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효령대군이 중창하였다고 전하는데, 6.25동란으로 전부 소실되어 폐찰되었다.
이 곳은 1997년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어느 정도 사찰의 규모가 드러났다. 석축의 상면에는 전면 5칸, 측면 3칸의 불전(佛殿)이 있었으며, 석축 아래에도 불전과 직교하는 전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들 외에도 요사채 등으로 판단되는 몇 개의 건물지가 더 밝혀졌다. 출토유물은 조선시대 기와와 자기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외에 실상사지에는 3기의 석조 부도가 남아 있다. 최근 다시 중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소사 일원(지 정 : 지방기념물 제78호)
소재지 :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소유자 : 내소사
규 모 : 16,725㎡
변산반도 능가산(楞伽山) 남쪽 기슭의 주봉인 관음봉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를 병풍처럼 두른 선경(仙境)속에 자리잡은 내소사는 633년(백제 무왕 34)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이후인 1633년 청민(靑旼)선사의 세 번째 중창 이후 근래에까지 불사를 계속하여 지금과 같은 가람을 형성하게 되었다.
내소사의 가람배치는 석축에 의해 상․중․하 3단으로 나뉘어진다. 하단은 천왕문과 봉래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종각을 두었다. 중단은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설선당과 무설당을 두어 참선수도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단은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관심당을 두어 예배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하단 한쪽에는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사찰의 전통적인 화장실을 보존하고 있어 주목된다.
●신석정 고택(지 정 : 지방기념물 제84호)
소재지 :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560
소유자 : 부안군
수 량 : 1동(304㎡)
이 집은 우리 나라 서정시의 큰 맥을 이룬 신석정(1907~1974) 선생이 그의 첫 시집인 『촛불』과 『슬픈목가』등을 쓴 문학의 산실이다. 그는 향리에서 문학의 꿈을 키우다 상경하여 석전(石顚) 박한영 스님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시문학 동인이 되어 본격적인 시작(詩作)활동을 하였다. 어머니 부음을 받고 귀향한 후 이 집을 마련하였으며, 스스로 이곳에 은행나무, 벽오동, 목련, 산수유, 시누대 등을 심고 청구원(靑丘園)이라고 이름하였다.
석정은 전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 집에 살면서 목가(牧歌)적인 시를 발표하여 전원시인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하였다. 최근에 다시 복원하여 단장하였다.
◇ 신석정 (辛夕汀.1907. 7. 7~1974. 7. 6)◇
시인. 전북 부안(扶安) 생. 본명 석정(錫正). 1930년 불교전문강원에서 박한영(朴漢永) 문하에서 1년간 불전(佛典)을 공부. 1931년 [시문학]지 3호부터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 그 해에 <선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했고, 계속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봄의 유혹> <어느 작은 풍경>, [문학]지에 <너는 비둘기를 부러워하더구나> 등을 발표하여 목가적(牧歌的)촵서정적 시를 발표하기 시작, 한국 최초의 전원 시인(田園詩人)이 되었다. 전주고등학교,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 전북대학교 및 영생(永生)대학 교수, 전북 문총위원장(文總委員長), 예총위원장(禮總委員長) 등 역임. 향리(鄕里)에서 교원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떴다.노장 철학(老莊哲學), 도연명, 타고르와 한용운에 심취해 자연에 귀의하려는 시를 추구했다.
5권의 시집, 한시 번역집이 있다. 전주시 문화상(1965), <산의 서곡>으로 한국문학상 (1968), 문화포장(1972), 한국예술문학상(1973) 수상
▶특징 : 서정적, 명상적, 전원적, 목가적, 동양 산수화의 시풍
▶시 : <선물31>([시문학]3호)
▶시집 : <촛불39>(첫 시집), <슬픈 목가47>(제2시집), <빙하56>, <산의 서곡(序曲)67>, <대바람소리70>,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74>
▶역서(譯書) : <중국 시선(中國詩集)54>, <매창 시집(梅窓詩集)58>
▶저서 : <고금 명시 감상(古今名詩鑑賞)58>(이병기-李秉岐-와 공저)
●<시풍>
석정은 젊었을 때 미국의 삼림 철인(森林哲人) 도로우(Th0reau)의 영향을 받았다 한다. 그러한 그는 시의 소재를 거의 농촌과 자연에서 끌어와 목가적 전원시로 승화하여 명상의 경지를 개척했다. 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특색이 있고, 그 맑은 시정(詩情)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 시풍은 어디까지나 전원시답게 소박하고 간소하다. 그러나 대화의 호흡과 상통하는 운율이라든지 대화와 같은 조사법(措辭法)은 그의 독자적인 기교에 속한다.
<슬픈 목가>에서는 생활 현실로 눈을 돌려 일제말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비분과 항거의 자세를 보여 주었고, <빙하>에선 사회적 격동과 시련을, <산의 서곡>에선 위의 모든 경향을 용해시켜 심도(深度)와 진폭(振幅)을 가진 작품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비판적 안목으로 지구적(地球的) 현실을 응시, 고발하고 있다.
●<연보>
▲1907 : 7월 7일 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307번지에서 한학자 신기온(辛基溫)과 전주 이씨와의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 본명 석정(錫正).
▲1917 : 부안읍내 보통학교 입학.
▲1923 : 3월 졸업. 6월 만경의 규수 밀양 박씨 소정(小汀)과 결혼.
▲1924 : 4월 19일자 [조선 일보]에 첫 시 작품 <기우는 해> 발표, 이 해부터 3년간 만경 처가 (妻家)에서 지냄.
▲1927 : 3월 1일 장남 효영(孝永) 출생, 이후 45년까지 일림(一林)촵란(蘭)촵광연(光淵)촵소연(小淵)촵엽(葉)촵광만(光漫) 등 3남 4녀를 둠.
▲1930 : 3월 박한영(朴漢永)의 조선불교중앙강원에 들어가 불전(佛典) 공부. 회람지 [원선(圓線)] 편집.
▲1931 : [시문학] 3호에 동인이 되어 시 <선물> 발표. 낙향.
▲1933 : 부안읍 변두리의 선은동으로 이사, 이 집을「청구원(靑丘園)」이라 명명함.
▲1939 : 첫시집 <촛불>(인문평론사) 간행.
▲1947 : 시집 <슬픈 목가>(낭주문화사) 간행.
▲1951 : 이후 3년간「전주태백신문사」 편집 고문.
▲1954 : 이후 7년간 전주고등학교 교사. 대역(對譯) <중국시선> 간행.
▲1955 : 전북대 문리대에서 시론 강의.
▲1956 : 시집 <빙하>(정음사) 간행.
▲1958 : 이병기 공저 <고금 명시 감상>(박영사), 대역(對譯) <매창시집(梅窓詩集)> 간행.
▲1961 : 이후 3년간 김제고등학교 교사.
▲1963 : 72년 정년까지 전주상고 교사.
▲1965 : 전주시 문화상 수상.
▲1967 : 시집 <산의 서곡>(가림출판사) 간행. 이후 2년간 예총 전북 지부장
▲1968 : 시집 <산의 서곡>으로 한국문학상 수상
▲1970 : 시집 <대바람 소리>(한국시인협회) 간행.
▲1972 : 문화포장 수상.
▲1973 : 한국예술문학상 수상.
▲1974 : 7월 6일 고혈압 증세로 사망. 7월 유고 수필집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지식산업사) 간행.
● 현대시
< 그 먼나라를 아십니까 >
< 꽃덤불 >
< 들길에 서서 >
< 슬픈구도>
<어느 지류에 서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작은 짐승>
◇작은 짐승 ◇
난이(蘭)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 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 다니는 청자기 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즈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서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제 11차시 학습자료>
◎ 부안의 인물
●매창 [梅窓, 1573~1610]
호 : 매창(梅窓) ․계생(桂生) ․계랑(桂娘)
본명 : 향금(香今)
별칭 : 자 천향(天香)
주요저서 : 《매창집(梅窓集)》
성(姓) 이(李), 본명 향금(香今). 자 천향(天香), 호 매창(梅 窓) ․계생(桂生) ․계랑(桂娘). 부안(扶安)의 명기로서 가사 (歌詞) ․한시(漢詩) ․시조(時調) ․가무(歌舞) ․현금(玄琴) 에 이르기까지 다재 다능한 여류 예술인이었다. 작품으로는 가사와 한시 등 70여 수 외에도 금석문(金石文)까지 전해지고 있으나, 작품집인 《매창집(梅窓集)》은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1668년(현종 9)에 구전(口傳)하여 오던 작자의 시 58수를 모아 판각(板刻)한 것이 있다.
명성이 전국에 퍼저서 많은 사대부들이 찾았으며, 현감을 지낸 이귀,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있다. 허균과는 10여년간 친구로 사귀었는데 허균은 매창을 이렇게 그렸다.〈비록 얼굴은 뛰어나지 못했지만 재주와 정취가 있어 함께 애기를 나눌만 했다.하루종일 술을 마시고 서로 시를 주고 받았는데 저녁이 되자 조카딸을 침실로 보내 주었다 〉이에서 보듯 그녀는 절개를 지켰으며 오직 스므살에 만난 마흔 여덟의 촌은 유희경을 그리며 살았다. 유희경은 천민으로 상장례에 밝아 이미 유명하였고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였다. 유희경은 매창을 처음 보고 나서 이런 시를 남겼다
남꾹의 계량 이름 일찍 알려져서
글재주 노래솜씨 서울까지 울렸어라
오늘에사 참모습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 하여라
그러나 유희경은 임진란에 의병으로 출전하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매창은 그를 잊지 못하고 그리움속에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도다
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의 옷자락을 잡으니
그 손길 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내며 찢어 졌군요
저고리 하나 쯤이야 아까울게 없지만
임이주신 온정까지도 찢어졌을까 그것이 두려워요
유희경은 난이 끝난 뒤 천민신분을 벗어났고 종2품 가의대부 벼슬을 받는다. 그러나 가정을 가진 양반이 된 그는 쉬이 매창을 찾지 못한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 뿌릴젠 애가 끊겨라
두사람은 헤어진지 15년만에야 다시 만났다.
버들꽃 붉은 몸매도 잠시동안만 봄이라서
고운 얼굴에 주름이 지면 고치기 어렵다오
선녀인들 독수 공방 어이 참겠소
무산에 운우의 정 자주 내리세
외로운 산비둘기 물가로 돌아오고
날저문 모래밭엔 안개까지 내리는데
술잔을 맞들고서 마음을 주고 받지만
날이 밝으면 이몸이야 하늘 끝에 가 있으리
둘은 다시 헤어지고 님은 서울로 돌아갔다.매창은 님과 함께 다닌 곳들을 찾아 그리움을 달랬다.그리고 3년만에 숨을 거두었다.
맑은 눈 하얀이에 푸른 눈썹 계랑아
홀연히 뜬구름 따라 너의 간 곳 아득하다
꽃다운 넋 죽어서 저승으로 갔는가
그누가 너의 옥골 고향땅에 묻어주리
정미년에 다행히도 다시만나 즐겼는데
이제는 슬픈 눈물 옷을 함빡 적시누나
●유형원 [柳馨遠, 1622 ~ 1673]
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 : 문화(文化)
호 : 반계(磻溪)
별칭 : 자 덕부(德夫)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서울
주요저서 : 《반계수록》,《군현제(郡縣制)》
본관 문화(文化). 자 덕부(德夫). 호 반계(磻溪). 서울 출생. 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5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7세에 《서경(書經)》 〈우공기주편(禹貢冀州編)〉을 읽고 매우 감탄하였다고 한다. 외숙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에게 사사하였고, 문장에 뛰어나서 21세에 《백경사잠(百警四箴)》을 지었다. 23세 때 할머니 상(喪)을 당하고, 27세에 어머니 상, 30세 때 할아버지 상을 당하여 전후 9년간 상복을 입었으며, 지평(砥平) ․여주(驪州) 등지로 옮겨 살았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사상과 생활 태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653년(효종 4) 부안현 우반동(愚磻洞)에 정착하였다. 이듬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저술에 전심하면서 수차 전국을 유람하였다. 1665 ․1666년 두 차례에 걸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농촌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구휼(救恤)을 위하여 양곡을 비치하게 하고, 큰 배 4,5척과 마필(馬匹) 등을 비치하여 구급(救急)에 대비하게 하였다. 학문은 성리학 ․역사 ․지리 ․병법 ․음운(音韻) ․선술(仙術) ․문학 등에 두루 미쳤다. 당시 조선왕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피폐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처방이 필요하였다.
이에 저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통하여 전반적인 제도개편을 구상하였다. 중농사상에 입각하여 토지 겸병(兼倂)을 억제하고 토지를 균등하게 배분할 수 있도록 전제(田制)를 개편, 세제 ․녹봉제(祿俸制)의 확립, 과거제의 폐지와 천거제의 실시, 신분 ․직업의 세습제 탈피와 기회균등의 구현, 관제 ․학제의 전면 개편 등을 주장하였다. 뒷날 이익(李瀷) ․홍대용(洪大容) ․정약용(丁若鏞) 등에게 이어져 실학(實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하였으나, 정책으로는 채택되지 못하였다. 다만 학문적 가치가 인정되어, 1770년(영조 46) 영조의 명으로 《반계수록》 26권이 간행되었다.
실학을 최초로 체계화하였으며, 이 밖에 20여 종의 저서와 문집을 남겼으나 남아 있지 않고, 위의 《반계수록》과 《군현제(郡縣制)》 1권이 전할 뿐이다.호조참의(戶曹參議) ․찬선(贊善)에 추증되었고, 부안 동림서원(東林書院)에 제향되었다.
※유형원선생묘 [柳馨遠先生墓]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실학자 유형원(1622~1673)의 묘.
지정번호 : 경기기념물 제31호
지정연도 : 1976년 8월 27일
소재지 : 경기 용인시 백암면 석천리 산28-1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묘
1976년 8월 27일 경기도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석촌리 황석마을 정배산 남쪽 야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30여 평 정도의 규모이다. 유형원의 묘 윗편에는 아버지 유흠(柳欽)과 모부인 이씨를 합장한 묘소가 있다.
묘역에는 1971년 묘역 정화시에 새로 설치한 41m 길이의 반원형 담장이 둘러져 있다. 봉분의 왼쪽에는 묘비와 중수한 표석이 세워져 있고 봉분 중앙에는 상석, 향로석, 묘비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심하게 마모된 문인석이 서 있다. 묘비의 비문은 1768년(영조 44) 유언지(柳彦摯)가 지었고 홍계희가 글씨를 썼다.
유형원은 5세 무렵부터 글을 배워 문장이 뛰어났으나 조부의 뜻을 따라 한 번의 과거를 치러 진사가 되었을 뿐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653년(효종 4) 이후에는 전라도 부안의 농촌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길러내면서 저술에 전념하였다. 천성이 청렴결백하였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부역의 균형, 균등한 세제, 상공업의 장려 등 정치․경제․문화에 걸친 여러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신석정 [辛夕汀, 1907.7.7 ~ 1974.7.6]
시인.
본명 : 석정(錫正)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전북 부안(扶安)
주요저서 : 《촛불》(1939), 《슬픈 목가(牧歌)》(1947)
본명 석정(錫正). 전라북도 부안(扶安)군 출생.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약 1년간 불전(佛典)을 연구하였다. 1931년 《시문학》 3호부터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화, 그해에 《선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했고, 계속 《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봄의 유혹》 《어느 작은 풍경》 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8 ․15광복 후에는 시작(詩作)과 후진양성에 전념했고, 저서로는 초기의 주옥 같은 전원시가 주류를 이룬 제1시집 《촛불》(1939)과, 역시 8 ․15광복 전의 작품을 묶은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1947), 그 뒤 계속 《빙하(氷河)》 《산의 서곡(序曲)》 《대바람 소리》 등의 시집을 간행했다. 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특색이 있고, 그 맑은 시정(詩情)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신석정고택 [辛錫正故宅]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있는 시인 신석정의 옛집.
지정번호 : 전북기념물 제84호
지정연도 : 1993년 8월 31일
소장 : 송덕녀
소재지 :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560
시대 : 미상
면적 : 304㎡
분류 : 생가(지)
1993년 8월 31일 전라북도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신석정은 부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조선일보》에 시 〈기우는 해〉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1907년 부안읍 동중리(東中里) 출생으로, 1930년대 서구의 낭만시와 한국의 시를 가미한 목가적 서정시인이다.
목가적 민족시인으로 선은리의 청구원(靑丘園)에 있는 이 고택에서 1952년까지 살았다. 은행나무․벽오동나무․자귀나무․측백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이곳에서 시상(詩想)을 다듬으며 창작활동을 하였다. 원래는 초가 3칸이었으나 4칸의 목조기와집으로 개수하였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뚝 따지 않으렵니까?
●간재 전우 [田愚, 1841 ~ 192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 : 담양(潭陽)
호 : 간재(艮齋)
별칭 : 자 자명(子明)
활동분야 : 철학
주요저서 : 《간재집》
본관 담양(潭陽). 호 간재(艮齋). 자 자명(子明).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하고 임헌회(任憲晦)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닦아 윤치중(尹致中) ․서정순(徐廷淳)과 함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노론파(老論派) 학자들의 학통(學統)을 이어, 이이(李珥)와 송시열(宋時烈)의 사상을 신봉하고 특히 이이의 학설을 옹호하였으나 주리(主理) ․주기(主氣)의 양설을 모두 배척, 절충적 이론을 세웠다. 1882년(고종19)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선공감감역이 되고 그 후 강원도 도사(都事) ․장령 ․순흥(順興)부사 ․중추원참의 등에 보직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만년에는 전라도의 계화도(界火島)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저서에 《간재집》이 있다.
●진념(1940~) 현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
4차례나 장관직에 올라 '직업이 장관'이란 말을듣는 정통 경제관료다. 지난 62년 고등고시 행정과(14회)에 합격,당시 경제기획원에 발을 들여놓은 뒤해운항만청장과 경제기획원 차관,동력자원부 장관,노동부장관,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기획예산처 장관,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쳤고 40년만에 부총리에 올랐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의 개혁을 이끄는 기획예산위원장을 맡아 두차례의 정부조직 개편과 공기업 민영화를 주도했고 지난해 8월 이헌재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아 재경부장관에 취임했다.
평소 사람을 중시하는 철학을 갖고 있어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화합형 관료로 평가받는다. 97년 '난파선'인 기아그룹에 법정관리인으로 들어갔을 때 이같은 화합력으로 빠른 시간내에 조직을 장악,법정관리인이 아닌 '회장'으로 예우받았다.
재경부 장관 취임 이후 현대그룹 유동성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제 2의 환란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한 때 위기를 맞았으나 연초 기업 자금난 완화와 증시 상승세덕분에 긍정적인 평가도 많이 받고 있다.
직원들과 자주 소주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으로 새벽마다 부인과 함께 자택 인근의 우면산을 등산하면서 기른 체력 덕분에 '두주불사형'이다. 성신여대 교수로 있는 서인정(徐仁貞)씨와 2남을 두고 있다.
▲전북 부안(61) ▲서울대 경제학과 ▲경제기획원 사무관 ▲駐영국대사관 참사▲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공정거래실장,기획차관보 ▲해운항만청장 ▲재무부차관▲경제기획원 차관 ▲동력자원부 장관 ▲미국 스탠퍼드대 초빙교수 ▲노동부 장관▲기아그룹 회장 ▲기획예산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재경부 장관
<제 12차시 학습자료>
◎부안의 관광:국립공원 변산반도 일원
●국립공원 변산반도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공원으로,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조금 늦은 1988년에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 및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관광지의 요건과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면적은 157㎢이다.
서해안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변산반도는 어느 한 곳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그 느끼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경관도 변화하게 된다. 즉, 해안선을 따라 볼 수 있는 외변산도 절경이지만 내륙의 내변산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진면목을 가슴깊이 새겨준다.
또한, 해변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장관이어서 1999년 12월 31일에는 새천년준비위원회 주관으로 격포 채석강에서 묵은해를 보내는 해넘이 행사가 약 3만명의 탐방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어 이 곳 변산반도국립공원을 대내외에 알린 바 있다. 변산반도의 관광지를 열거하자면 유형, 무형을 막론하고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격포 채석강, 천년고찰 내소사, 직소폭포, 변산, 격포, 고사포 해수욕장, 월명암의 낙조 등 많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변산속의 삼변(三邊)
1. 변 재 (邊 材)
품종: 소나무, 곧고 긴 것이 특징
품질: 겉으로는 연하지만 속은 강함
용도: 조선재(造船材), 궁재(宮材), 문목(門木), 고급건축자재
고려때 이규보는 벌목사로 왔었고, 원나라의 일본정벌을 위한 선박도 변산에서 건조했음.
2. 변 란 (邊 蘭)
변산에는 야생 난초가 많이 자생하여 변산의 명물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일컬어 일명 변란 이라한다. 주로 변산면, 진서면, 상서면, 보안면 등 변산의 상록수림 속에 자생하고 있는 난초이다. 변란은 일종의 춘란(春蘭)으로서, 일엽일화(一葉一花)의 진란이다. 저온에서 잘 견디고 병충해가 없으며 자생란으로서 그 뿌리며 잎이며 또는 꽃이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체로 잎이 가늘고 긴 것, 큰 것 두가지가 있는데 세엽(細葉)은 수컷이고 대엽(大葉)은 암컷이다.
3. 변 청 (邊 淸)
변산에서 나오는 자연꿀을 말한다. 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으며 향기가 그윽하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변산면 격포리 적벽강 부근과 변산면 중계리 월명암 골짜기, 상서면 통정리 골짜기등에서 많이 생산된다.
●부안댐
변산온천을 지나 중계계곡의 잊혀진 오지의 산골짜기에 대단위 댐이 건설되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이 부안댐입니다. 부안댐은 높이가 47m, 연장이 330m, 유역면적이 58㎢이며 저수량이 4,600만㎥이고, 용수 공급량이 4,300㎥로 총 사업비 260억원을 투자해 96년 11월 6일 완공된 댐으로 주로 부안군민 및 고창군민의 생명수인 상수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변산온천등 주변 명소와 연계되어 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고, 분수대도 있고 여기저기에 앉아서 쉴만한곳이 많아서 주말 저녁이나 여름철 밤에 가족단위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늘고 있습니다. 분위기 좋습니다.
●새만금 전시관
부안에서 30번국도를 타고 15분정도 변산 반도로 오시다보면 우측으로 새만금간척 사업소
농업기반공사가 운영하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새 만금 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한 만경,김제평야와 같은 농토를 새로이 일구어 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에 길이 33km의 방조제를 쌓아 조수(潮水)의 범람에 따른 피해와 염해를 없애고, 하구간석지의 일부를 육지화하여 전라북도의 발전은 물론 국민 경제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1991년 시작된 국가정책사업 입니다.
새 만금 간척지는 28,300ha의 새로운 토지를 조성하여 9만 4천톤의 곡물을 생산하고, 토지의 절대면적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원활한 토지수급에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자연경관을 갖춘 고군산군도가 연육되고 주변의 국립공원 및 해수욕장 등과 연계되어 있어서 쾌적한 관광자원으로 국민에게 편안한 휴양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채석강
이 곳은 변산 반도의 최서단으로서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 때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이 곳은 바닷물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의 백사장과 맑은 물이 함께 어울려 빼어난 풍치를 자랑하고 있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唐)나라의 이태백(李太白: 당나라 때의 시인)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조각공원은 부안읍에서 격포항을 향하여 변산 해수욕장을 지나고 거의 격포에 이를 즈음 마포마을을 지나 왼쪽 도로로 약 2.5km 지점인 변산면 도청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조각공원은 1965년 김오성에 의해 세워져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공원이다. 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작품은 40여종으로, 알몸인 여체가 20여종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작품이 주는 이미지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마치 3막5장의 연극을 보는 것같다.
작품 중에「농부의 손」「유한과 무한에 대한 사유」또는「서쪽하늘」「밤하늘의 별자리」
「강언덕」「분수령」등의 우수작품들도 있어 예술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 조각품들은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큰 것은 2m50cm나 된다. 또 이곳에는 별자리를 연구하는 천문대가 있어 체험관광을 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주변에 있는 격포항, 채석강, 수성당, 적벽강의 명소와 연계관광이 가능한 곳이다.
●직소폭포
일대 변산의 명산중 명산인 옥녀봉, 선인봉, 쌍선봉 등에 둘러쌓인 일대 분지를 이루고 있는 이 일대는 층암절벽 기기묘묘한 봉우리와 계곡에 흐르는 백옥같은 맑은 물, 산곡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와 철쭉, 온산을 붉게 태우는 가을단풍과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설경(雪景)등 사계절의 절묘한 풍치를 한 곳에 응집시켜 놓은 듯 하다.
직소폭포의 높이는 30m 이며 예리한 칼날로 잘라낸 듯 육중한 암벽단애를 흰포말을 일으키며 뇌성같은 소리를 내면서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깊고 소(沼)를 만들면서 떨어지는 장관은 보는이로 하여금 대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제 13차시 학습자료>
◎부안의 관광:항구(해수욕장)․섬․사찰
●격포항
이 곳은 옛날 수군의 근거지로 수군별장, 첨사 등을 두어 왔고,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관할의 격포진이 있었던 곳이다. 1986년 3월 1일에 1종항으로 승격된 격포항은 위도, 고군산군도, 홍도 등 서해안도서와 연계된 해상교통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특히 주변의 채석강, 수성당, 적벽강, 격포해수욕장 등이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격포리 봉수대 : 격포리봉수대는 문헌기록상의 월고리봉수대를 가리키며, 실제로는 격포리봉수 혹은 호리산 봉수라고 불리우는데, 격포항 남쪽 봉화산(174.2m) 정상에 있다. 남쪽으로는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와 해리면의 면계에 있는 봉백산의 소응포산봉수대와 응신하고, 북쪽으로는 변산면대항리에 있는 점방산봉수대와 응신한다.
부안. 변산면 격포리 일대
채석강에서 돌아나가면 절벽의 경치가 거의 끝날 무렵 흰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곳이 격포 해수욕장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의 명승지를 끼고 있는 좋은 입지조건과 관광객의 땀을 식히는 해수욕장이 되면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후박나무군락, 수성당, 적벽강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
●곰소항
곰소항은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자 그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여 만들었다. 목적은 이 지역에서 수탈한 각종 농산물과군수물자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곰소에는 항구 북쪽에 8ha에 달하는 드넓은 염전이 있어 소금생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근해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단지가 조성돼 있어 주말이면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변산해수욕장
1933년 개장된 변산해수욕장은 매년 평균 피서객이 50만명을 넘을 정도로 각광받는 해수욕장으로 1964년에는 전국 관광지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 이유는 변산해수욕장의 수온이 체온에 알맞고 수심의 차가 심하지 않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으며 파도가 거세지 않아 위험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확트인 부드러운 모래밭과 깨끗한 바닷물을 자랑으로 삼고 있으며 변산해수욕장 주변에 인접한 명승지가 많아 해마다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위도
위도는 격포에서 여객선으로 40분 거리의 서해에 외로이 떠있는 섬이다. 본래는 부안군 소속의 도서였는데 1896년(고종33)전라남도 영광군에 소속되었다가 1963년 다시 부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 3대 어장 중의 하나인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영광굴비의 산지가 바로 이곳 위도이다. 위도는 진리, 대리, 식도, 치도, 거륜도, 왕등도 등 8개 리로 이루어진 도서면이다.
●계화도
면적 49.04km2. 인구 7,452(1999). 5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동진면(東津面), 남쪽은 행안면(幸安面) ․하서면(下西面)과 접하고, 북쪽과 서쪽은 황해에 면한다.
1976년 9월 계화도(界火島)가 계화리가 되고, 행안면에 계화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계화출장소가 계화면으로 승격하였다. 원래 면적 2.5km2, 해안선길이 약 7,000m의 작은 섬이었으나, 1963년 시작된 동진강(東津江) 하구의 대규모 간척공사로 육지와 이어졌으며, 이 공사로 조성된 경지는 약 46km2에 이른다. 봉수대가 있어 30분이면 산책하듯 오를 수 있으며 간재 사당이 이곳에 있다. 갯벌에서 갓 캐온 싱싱한 생합을 조합에서 싸게 살 수 있다.
◎부안의 관광-사찰
●내소사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 아래에 위치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가 이곳에 절을 세워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 남았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이 절의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때 청민선사가 중건하였는데 빼어난 단청솜씨와 보살화를 연꽃문양으로 조각한 문격자의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또 경내에는 고려동종, 법화경절본사본, 설선당과 요사, 3층석탑, 괘불 탱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입구의 전나무숲이 한껏 풍치를 더하는 유서깊은 절이다.
●개암사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조선 인조 14년(1636)에 중건된 후 여러차례의 중․재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뒤의 바위산을 배경으로 한 팔작지붕의 대웅전은 규모에 비해 민흘림으로 된 굵은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그 중 우주는 더욱 굵어 안정감을 주며 공포의 일부 조각이 힘있게 처리되어 장중한 외관을 구성한다. 건물 내․외부의 용두 및 봉황 등의 조각과 불단 위의 화려한 닷집수법은 세련미를 더해주고 있다. 백제의 안정감, 조선중기의 다포의 장중함, 조선후기의 장식적인 경향을 모두 볼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 14차시 학습자료>
◎부안의 관광-문화행사․축제
●부안 당산과 줄다리기
서해안을 낀 부안은 민속자료인 돌장승 6기와 돌솟대 2기가 남아 있고 줄다리기가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속의 고장이다.
동문안 당산(중요민속자료 제19호)
전주 쪽에서 부안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동중리에는 동문안 돌장승으로 된 당산이 있 다. 부안읍 입구 양쪽 노변에 각각 1기씩 세워져 있는 이 당산은 왼쪽 담벽 안에 사람보다 약간 큰할머니 장승이 서 있고, 건너편 오른쪽에 그 정도의 할아버지 장승이 서 있다. 여기서 40m 여 읍쪽으로, 골목 담벽 옆에 2m 여의 돌기둥으로 된 솟대는 줄이 층층으로 감 겨 있다. 이 줄은 정월 보름날 줄다리기를 끝낸 다음, 그 줄을 이 장승에 감아둔 것이다.
서문안 당산(중요민속자료 제18호)
부안군에서 100m 정도 서쪽으로 가면, 좌측 노변에 할머니 당산인 돌솟대와 할아버지 장승2개와 그 옆에 2대가 2m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는데, 본래는 길 건너에 할아버지 당산이 할머니 당산과 서로 마주보고 있었던 것을 도로 확포장공사시 관리하기 쉽게 남쪽으로 옮겨 놓았다. 보름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마을 앞 당산에 모여 줄다리기를 끝내고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오리형의 돌솟대에 줄을 감아둔다.
●위도 띠뱃놀이(중요 무형문화재 제82호)
위도는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14km 떨어진 서해안에서 큰 섬으로 섬 생활은 고기잡이가 주업이다. 따라서 풍량을 달래고 풍어를 비는 토속신앙으로 옛부터 독특한 띠뱃놀이를 해온 민속이 있었다.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민속을 보존해 온 위도 띠뱃놀이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1978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띠뱃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곳은 파장금에서 8km쯤 덜어진 대리마을로 위도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띠뱃놀이는 제사를 지내는무당과 화주와 기타임원을 마을원로회의에서 선출하고 제물 등 필요한 준비를 마련한다. 제삿날은 5색으로 된 사방깃발을 중앙에 대장군 깃발을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마을 뒷산에 있는 원당으로 올라가 7신의 화상을 모신 당집에서 무당굿을 순서대로 지내고 내려온다.
한편, 산에서 띠를 베어다 부둣가에서 일일이 엮어 길이 4m 정도의 배를 만든 다음, 그 앞에 제상을 차리고 용왕제를 올린다. 제물은 용왕에 바치고 액운을 담은 인형을 짚으로 만들어 띠배에 태운다.
풍물을 흥겹게 치면서 모선이 5색기를 나부끼며 띠배를 바다로 인도하면 다른 배들이 호위하며 따르고 섬사람들은 떠나는 디배를 아쉬워 한다. 2km 쯤 가다가 띠배를 띄워 보내고 모선과 호위선들이 돌아온다. 망망대해에 띄워진 띠배는 파도따라 어딘가로 사라지고 섬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뒷풀이 놀이로 밤을 새운다.
문화관광부가 특색있는 지역 세시풍속과 민속축제를 육성하기 위하여 선정한 2002년 전국 18개 지역 민속행사에 남원 삼동굿놀이와 함께 지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우동리 줄다리기
우동리는 부안읍에서 줄포 쪽으로 가다가 영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3km정도 가면 실음거리가 나오고, 이 마을 중간에서 변산 기슭으로 1km 정도 들어가면 마을 입구에 지름 2m 높이 15m 정도의 당산이 서 있고 그 아래 줄이 감겨진 입석이 눈에 보인다. 4개 부락이 참여하는 우동리 줄다리기는 줄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다. 미리 마을 전체가 공동추렴으로 제물을 준비하고 짚다발을 거두어 정월 보름날 아침 일찍부터 부인들은 제물을 장만하고 남자들은 마을 앞길에서 줄을 꼬아 만든다.
줄은 위에 달아 매어놓고 아래서 꼬아 올리지 않고 길을 따라 양쪽에서 짚을 넣어 돌리면서 이를 하나로 합쳐 꼬아 가는 방법이 특별하다. 이렇게 수백m의 긴 줄을 만든 다음 이를 다시 합치고 합쳐 지름이 40cm 길이가 1백여m정도의 암줄과 숫줄을 각각 만든다. 한편에서는 아침부터 풍물굿이 어울려지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마을 노인들은 풍물을 앞세우고 100m 떨어진 당산으로 나가 금줄을 치고 제물을 차리고 앞세우고간 솟대를 당산에 세우고 제사를 지낸 다음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줄다리기는 남녀가 나누어 암줄과 숫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와 숫줄은 신랑을 , 암불은 신부를 태우고 양쪽이 마주쳐 격돌을 하여 승부를 낸다.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언제나 여자편이 이기기 마련이다. 이처럼 우동리에서는 하루를 즐기면서 풍년을 빌고 나아가 한마을이 화합하는 공동체의식을 두터이 하는 민속이 이어오고 있다.
●매창문화제
▷시기 : 매년 4월말 경
▷주최 : 부안군
▷주요내용 매창 세미나- 매창 추모제례- 매창 시화 미술작품 전시- 장기 및 노래자랑- 청소년 예술제- 농악경연- 국악 한마당- 매창 백일장 및 사 생대회
이매창은 1573년 부안에서 현리인 이탕종의 딸로 태어나 1610년에 3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조선시대 4대 여류시인중 한사람이다. 매창의 신분은 기생으로 시를 잘 짓고 거문고 연주에 뛰어났을 뿐 만이 아니라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품위와 절개를 지키며 당대의 문장가 및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이들 중 매창이 평생 그리하며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은 천민 출신으로 예론의 대가이며 유성룡을 따라 의병으로 활동한 유희경이었으며 또한 양반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호방한 성격의 허균(홍길동의 저자)은 10여년 동안 시문과 인생을 논하며 우정을 나누었다.
매창은 38년이라는 길지않은 인생을 통해 지은 수백편의 시문 가운데, 한시 58수가 <매창집>(1668년 개암사 간행)에 시조 '이화우' 1수가 <가곡원류>에 전하고 있는데, 매창집은 미국 하버드대학과 간송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별한 임을 그리워 하며 지은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이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는 시조는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다.
매창 사후 주옥같은 시어로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크게 공헌한 매창의 삶과 시문학 정신을 기리는 매창창추모제를 부안지망의 시인묵객들로 구성된 부풍율사에서 수백년동안 지내왔으나, 2001년부터 전국적인 규모의 매창문하제로 확대 다양한 장르의 행사를 개최하여 그 의미를 더욱 새롭게 하고 있다.
<제 15차시 학습자료>
◎부안의 미래-새만금 사업과 부안의 미래
새만금사업은 부안의 변산면 대항리―고군산 신시도―군산 비응도를 잇는 방조제
33km를 축조하여 내해지역 40,100ha(여의도 면적의 140배)를 육지로 만드는 사업이
다.
2. 추진경위
1987. 12. 17 새만금지구 간척사업 타당성조사 완료
1991. 8. 19 시행계획 확정 고시(고시 제91-23호)
1991. 10. 22 공유수면 매립면허 고시(고시 제91-32호)
1991. 11. 16 사업시행 인가 고시(고시 제 91-36호)
1991. 11. 28 새만금간척사업 기공
1992. 6. 10 제2,3,4호 방조제(2,3,4공구) 공사 착공
1994. 7. 25 제1, 3호 방조제 사석제 끝막이 완공
1996.~ 시화호 오염문제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문제제기 본격화
1998. 12. 농림부, 새만금간척농지의 산업농지로 용도변경 불가 발표 1998.
12. 30 제1호 방조제(1공구) 공사 준공
1999. 1. 11 유종근전북도지사 "새만금간척사업 재검토" 관련 기자간담 회
1999. 총리실 산하 수질개선기획단에 "새만금사업 민관공동조사 반"구성
2000. 4. 조사결과 발표예정
2000. 6. 조사결과 연기발표
3. 시행체계
총괄 : 농림부
용지매수․보상 : 전라북도
조사설계․공사 : 농업기반공사
4. 사업개요
가) 사업구역
1도, 2시1군, 18읍면동 40,100ha
1도 : 전라북도(40,100ha)
2시 : 군산시(28,525ha) (비응도, 내초, 옥구, 옥서, 회현, 대야, 옥도-7읍면동)
김제시(5,290ha) (광활, 죽산, 만경, 청하, 성덕, 부양, 진봉-7읍면동)
1군 : 부안군(6,285ha) (계화, 동진, 하서, 변산-4면)
나) 개발면적 : 40,100ha
토지조성 : 28,300ha
담 수 호 : 11,800ha
다) 토지이용계획 : 28,300ha
식량단지 : 17,950ha
근교원예단지 : 2,500ha
수산개발단지 : 2,000ha
농촌도시 : 800ha
기타 : 5,025ha
라) 사업비 : 22,137억원 (외곽시설 17,337억원, 내부개발 4,800억원)
마) 사업기간 : 1991~2011년
바) 주요시설 : 방조제 :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고군산 신시도- 군산 비응도 33km
배수갑문 : 가력배수갑문, 신시배수갑문
5. 새만금 순차적 개발 발표(2001년 5월)
현재 방조제의 58%가 완성된 상태이며, 지난해까지 1조 1349억원이 투입되었다. 방
조제 및 내부 개발사업비는 총 3조 1737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별도로 담수호 수
질개선 및 해양환경 보존을 위해 1조 4568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2004년까지 방조
제 및 배수갑문 건설을, 2008년경에는 동진수역의 내부개발을 완료하고, 만경수역은
2010년경에야 개발 완료될 전망이다. 즉 우선 동진수역만 담수화가 추진되며 만경수
역은 수질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바닷물이 유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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