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컬처투어 실크로드 여행

청담(靑潭) 2026. 5. 28. 22:22

컬쳐투어 실크로드 여행

 

본디 실크로드 여행은 가원이 다녀오기엔 왠지 힘들 것 같다는 막연한 선입견으로 인해 본디 내 해외여행 계획목록엔 없던 터입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성우회에서 해외여행 논의가 있어 문혜성 선생이 주도하는 컬처투어 여행사 실크로드 여행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당연히 참가하기로 하였고 내심 크게 기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답사 여정이 신장위구르족자치구의 우루무치까지 다녀오는 오리지날 실크로드가 아니고 칭하이성과 간쑤성을 답사하는 [실크로드 자연관광] 일정이어서 툰황석굴(막고굴)이 빠져 있었고, 나는 실크로드의 중국의 끝인 우루무치를 반드시 다녀오고 싶어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실크로드 정통코스]를 다녀오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가원은 15일에 출발하고 성우회원들은 28일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28일 여행에 참여하는 고교동창인 이경재 장군이 툰황석굴(막고굴) 빠진 여행은 안된다하며 일정 변경을 요청하여 툰황의 막고굴까지는 다녀오는 일정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마침 일본의 NHK에서 1980~1989년에 답사하고 발간한 <실크로드>책자가 있어 읽었고 당시 방영한 영상도 찾아보니, 공부는 많이 되었으나 시기가 50여 년 전이므로 막연히 매우 여행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다가 EBS에서 방영한 <세계테마기행 실크로드> 답사 영상과 최근 젊은이들이 올린 유투브 동영상들을 보면서 이젠 50여 년 전의 후진국 중국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변화된 중국의 서역지방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적이 안심이 되었으니 나는 역시 시대를 제대로 따라 잡지는 못하는 노인이구나라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실제 가보니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고속도로가 뻥뻥 뚫려 있고 고속열차가 싱싱 달립니다. 실로 어이없는 걱정을 한 셈이지요.

 

사전에 세계사에서 공부하는 비단길 루트인 텐산북로와 텐산남로, 그리고 서역남로를 확실하게 찾아보는 가운데 초원의 길, 텐산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고원, 고비사막, 타림분지, 쿤룬산맥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혔고 실제로 답사하면서 여정의 행정구역인 산시성(섬서성)과 시안, 간쑤성(감숙성)과 란저우, 신장(신강)위구르족 자치구와 우루무치, 칭하이성(성도는 시닝으로 열차가 통과했다)을 확인하였고 여정에는 없지만 덤으로 서역남로에 위치한 카스, 허텐의 위치도 파악되었고 내몽골 자치구(성도는 후허하오터), 닝샤후이족 자치구(성도는 인촨시로 서하제국의 수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었습니다. 답사여정에서 찾은 역사문화유적이나 자연유산들에 대한 설명은 자료가 천지인 마당에 아예 생략하고 여정과 간단한 느낌, 새롭게 얻은 지식들 정도만 기록합니다.

 

중국의 행정조직은 크게 33개 지역으로 나뉩니다.

22개성

5개 자치구(광시좡족, 내몽골, 닝샤후이족, 티베트, 신장위구르)

4직할시(베이징, 충칭, 상하이, 텐진)

2특별행정구(홍콩, 마카오)

이번 여정은 산시성(섬서성), 간쑤성(감숙성), 칭하이성(청해성),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이루어집니다.

 

2026515일 새벽 3시 버스이므로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다 터미널로 갑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표를 끊고 짐을 부치고 7시에 미팅합니다. 910분에 이륙하여 3시간 걸려 1130분에 시안에 도착합니다.(우리와의 시차는 1시간차인데 그 넓은 중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려 1시간으로 고정시켰습니다. 그러나 실제 가보니 우루무치는 3시간차가 적당합니다. 중앙아시아가 4시간차이거든요. 면적이 거의 비슷한 미국은 동서가 3시간차이지요.적어도 중국은 동서로 2시간차는 두는게 좋겠지요.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신장성내에서는 자신들끼리만 베이찡과 2시간차의 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1(15일 금) 서안(시안)

여행사에서 나온 인솔자는 박소랑씨로 사장님의 따님이라는데 국제관광학을 전공한 참하고 예쁜 여성이고, 현지 가이드는 박동광 부장으로 50대의 서역지방 실크로드 전문가이드이다. 서안은 두 번째 방문으로 섬서성(산시성)의 성도이며 인구 1300만 명의 대도시이다.

중식후 한양릉 탐방 서안북역으로 이동

한양릉은 전한의 6대 황제 한경제(기원전 157~141)와 황후의 합장릉이다. 시안에는 무수한 황제릉과 제후릉들이 많지만 발굴되어 직접 눈으로 찾아볼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2007년에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을 보았고 당의 황제릉으로는 건릉(당고종과 측천후 합장릉)과 한양릉 정도인데 한양릉은 지하박물관으로 발굴당시의 갱 안의 배장품들인 무사, 시녀, 환관, 갖가지 동물들의 토용을 볼 수 있는데, 실물크기가 아니라 토용을 제작하여 옷을 입혔다. 진시황의 병마용갱이나 이곳 한양릉갱도 릉이라고 보이는 야트막한 산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시안을 흐르는 강은 위수(渭水)이다. 웨이하(위하)라고도 하며 많은 시와 문학작품에 등장한다. 황하 최대 지류이며 중국문명 발상지에 흐르는 강으로 이곳은 결코 황하가 아니고 위수가 흐르는 것이다. 발원지는 간쑤성 일대이며 동으로 흘러 이곳을 지나 황하로 합류한다.

고속열차 16:27 출발 18:10 천수남역 도착

천수 빈하대주점(5성급)

2(16일 토) 천수(텐수이)

천수는 (텐수이) 인구3 00만 명으로 간쑤성(감숙성)에서 두 번째 큰 도시다.

맥적산(마이지산)석굴탐방 : 세계문화유산이며 중국 4대 석굴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석굴로 비가 약간 내리는 날 아침 들뜬 기분으로 내가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대 석굴인지라 크게 감탄하다. 높이 142m의 석회석 단애에 194개의 굴감이 14층 잔도로 조성되어 있다. 보릿단을 쌓아놓은 듯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후진(384년경)부터 북위, , , , 명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며 석불, 소조, 벽화들이 남았는데 진흙조각예술로 유명하다.

고속열차 14:27 출발 15:59 난주도착. 영정으로 이동(1시간 30)

중산교와 백탑산

영정으로 가기 전에 먼저 란저우를 찾았는데 간쑤성의 성도로 대도시이다. 중산교는 황하에 1909년에 세워진 철교로 중화민국시기에 쑨원의 호를 붙였다. 간 건너 백탑산을 케이불카로 바삐 다녀오는 분들도 있다. 강변길에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을 묘사한 황금조각상이 있고 많은 먹을 것 가게들이 있고 관광객들이 넘친다.

영정 황하명주호텔(5성급)

아주 작은 관광도시인 영정의 호텔인데 엄청 대규모이고 아름다운 호텔로 최근에 지었는지 시설이 최고급으로 내 기분도 최고다. 내일 황하석림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자게 되었다.



3(17일 일) 난주(란저우)

황하보트 탑승 황하석림과 병령사

영정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황하부두에서 큰 인공호수를 쾌속보트를 타고 황하석림을 감상하며 30여분 달려 병령사에 도착한다. 이곳 역시 석굴이며 실크로드 길이었으나 댐건설로 호수가 생겨 배를 타고 가게 된 것이다. 병령사는 420년 서진시대 건축되었고 27m 높이의 171호 불상 현암대불을 비롯한 183개의 석굴 불상과 불탑, 벽화 등이 있다.

고속열차 17:21 난주 출발 20:22 장액 도착

란저우에서 기차를 타니 직선으로 장액으로 가는 게 아니라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으로 거쳐 간다. 덕분에 칭하이성을 보게 되고 성도인 시닝(서녕)시까지 볼 수 있었다. 시닝을 떠나 대통역을 지나니 차츰 고도가 높아지고 기련산이 보이는데 설산이다. 이곳은 고도 3m 정도인데 시가지가 없는 산단마참과 밀락에서 기차가 멈추는데 이곳 밀락에서 장건이 흉노에게 잡혔다고 한다. 장액시는 마르코 폴로가 자세히 기록한 곳이라고 한다.

현 시닝시에서 백제 멸망 후 당에 귀순한 흑치상지(630-689)677-681년 토번군을 물리치고 하원군부사가 되어 7년간 다스렸다.

장액 천새실크로드호텔(5성급)

4(18일 월) 장액(장예)

대불사

중국 최대의 실내 와불이 있다. 대불사는 서하시대(1038~1227)1098년에 건축되었는데 와불상은 길이가 34.5m에 달하며 상당히 큰 절이다.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는 북송(960~1127), (거란916~1125))나라, (여진1115~1234))나라와 상존하던 나라로 실크로드와 하서주랑 일대를 지배하며 번영하다가 몽골에게 멸망당한다. 국사시간에 가르치던 서하제국이 이제야 손에 잡힌다. 수도 흥경부는 닝샤후이족 자치구인 은천(인촨시 : 성도)부근으로 서하문자를 가졌고 절에서 돌에 새겨있는 서하문자를 볼 수 있다.

임택으로 이동. 칠채산 단하지모(장액단하국가지질공원) 세계자연유산(2009)

일곱 가지 색깔을 보여준다는 붉은 색 사암이 풍화와 침식, 퇴적작용으로 단층화된 것으로 지층속의 광물들이 산화과정을 거쳐 다양한 색상을 띠게 된 것이다. 하얀색 지층은 소금 결정이 쌓인 곳으로 바다가 융기한 지형이라고 한다. 셔틀버스로 여기저기를 찾아보고 아름다운 칠채산을 사진에 담느라 야단법석들이다. 그러나 걸어서 들어간 어느 작은 협곡은 마치 어느 별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며 으스스 한데, 미국의 대협곡은 그 자체가 웅장하고 아름답던데 여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욕관으로 이동 가욕관 성루탐방 세계문화유산(1987)

본디 내일 탐방하기로 되어 있으나 내일 돈황(툰황)까지 4시간 30분 내지 5시간이 소요되므로 가이드는 시간상 오늘 찾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만리장성 서단의 제1관문으로 명나라(1372)때 처음 건축되었고 20여 차례 중건을 거쳤으며 천하제일웅관이라 불린다. 만리장성 성문 중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것으로 내성과 외성, 성호의 세 겹으로 구성되었고 외성인 바깥 성벽은 대부분 흙을 다져 만들었고 성치고는 매우 얇고 낮다. 사막지대니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내성은 벽돌을 사용하였고 높고 견고하다. 내성의 동문의 이름은 재미있게도 光化門이다. 임금의 큰 덕과 문명이 온 세상을 밝게 교화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정도전이 이를 차용한 것인가?

만리장성의 가장 서쪽 관문인 가욕관을 찾아왔는데 정작 우리와 가장 가까운 서쪽 관문인 산해관(허베이성 칭다오)을 아직 가지 않았음을 생각하니 언젠가 반드시 산해관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가욕관 주강빈관호텔(4성급)

5(19일 화) 가욕관(자위관)

돈황으로 이동 : 370km (4시간 30)

버스로 자위관(가욕관시)을 떠나 위먼관시(옥문관)를 지나고 4시간 30분을 달려 툰황에 도착한다. 툰황(沙州라고도 한다)18만 명 정도의 도시인데 사막지대에 조성된 도시가 무척 아름답다. 시닝시에서 장예를 거치며 이곳까지 줄곳 사막인데 투르판까지도 사막지대이고 우루무치에 가서야 텐산(천산)이 나타나며 아름다운 자연이 나타난다. 하서주랑지대(란저우~무위~장액~주천~돈황)는 고비사막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사막지대이고 시닝에서 장액을 거치며 툰황까지는 왼편으로 끝없이 기련산맥이 이어졌다.

조사해보니 감숙성(간쑤성)에는 지급시가 5개인데 란저우, 무위, 장예, 주천, 자위관이다. 주천시에 속한 현급시는 옥문관과 돈황이다. 주천시는 면적이 엄청 넓다. 19로 대한민국이 약 10이니 엄청난 면적이다.

낙타타기 체험과 월아천

바람이 불면 울리는 소리로 유명한 명사산에 간다. 먼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체험한다. 낙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타보았으니 20여년 만인가 보다. 낙타에서 내려 전동차로 이동하니 명사산이 있고 모래산을 오르는데 나는 3월에 일본에서 돗토리 사주에 오른 힘든 기억이 나서 나서지 않았더니만, 다녀온 분들 말로는 나무사다리가 있어 오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부근에 절이 있고 바로 옆에 월아천이 있는데 오아시스이다. 절과 월아천의 어우러짐이 일품이다. 절 안의 현판 글씨들이 훌륭한 게 많다.

사주 야시장

저녁식사 후 야시장에 가다. 윈난성에서 밤에 찾았던 여러 전통시장과 상당히 흡사하다.

돈황 태양대주점(4성급)

6(20일 수) 돈황

돈황석굴(막고굴) : 세계문화유산(1987)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막고굴이다. 우선 규모부터가 장대하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과 더불어 중국의 4대 석굴 중 하나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굴로 불교예술의 보고이다. 492개의 석굴 중 공개된 석굴은 22개인데 그중 제 16굴의 문간방이라 할 수 있는 제17(장경동)에서 1908년 프랑스 동양학자 펠리오가 수 만권의 책자를 얻어 프랑스로 가져갔고, 그 중 필사본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것이다. 전체 735개의 동굴 중 492개의 동굴에 벽화와 불상 등의 유적과 유물이 가득한데 한국과 관련된 굴로는 61호굴의 오대산도와 355호굴의 벽화에 신라사신단의 모습이 보인다. 생생히 남아있는 천불상을 비롯한 벽화들의 색채와 아름다움이 경이롭다.

고속열차 16:35 유원 출발 19:24 선선 도착

유원역은 간이역인데 역은 신장성에 속하고 시내는 감숙성에 속한다고 한다. 아직도 어느 역보다 더욱 엄격하게 여권과 짐을 검사한다. 자치독립을 바라는 위구르족의 자치구인 신장성의 초입이라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 도착한 선선은 투르판에 속하고 매우 가까운 도시이다.

만주루란대주점(5성급)

7(21일 목) 선선 · 투루판

쿠무타크 사막 짚차

6시에 출발하여 쿠무타크 사막으로 간다. 단순히 사막 봉우리에 올라 일출감상이나 하는 줄 알았더니 짚차를 타고 신나는 사막 달리기를 한 후 모래산을 오른다. 80세 노인들과 가원은 포기하기를 잘했다. 밧줄을 타고 오르니 그리 힘든 건 아니고 사막 산봉우리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 올 때는 내달려서 내려왔다. 난 역시 아직 젊다.

조식 후 투루판으로 이동

화염산맥과 천불대협곡을 따라 베제클릭천불동으로 이동

버스를 타고 화염산맥을 따라 베제클릭천불동으로 간다. 손오공과 우마왕의 전설이 있는 화염산이다. 서유기는 명대에 완성된 고전 소설이다. 현장의 인도구법여행을 바탕으로 신화, 도교, 불교 요소를 결합한 환상 모험 이야기이며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온갖 요괴와 시련을 겪으며 천축으로 가서 불경을 얻어 돌아온다. 삼장법사 일행이 서역으로 가던 중 불길이 치솟는 화염산 때문에 길이 막히는데 손오공이 철선공주의 파초선을 빌려 불길을 끄려하는 이야기의 바로 이 화염산은 붉은 사암산지로 여름에는 온도가 매우 높아져 마치 불타는 산처럼 보인다고 한다.

협곡을 흐르는 계곡에 위치한 천불동은 6세기 고창국의 왕가사원이다. 13세기까지 82개의 석굴에 불교벽화들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20세기 초 서구열강들의 무자비한 약탈로 벽화들을 떼어갔다. 현재 독일, 인도, 러시아, 일본 등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일본의 승려인 오타니 탐험대가 1902~14년에 약탈해온 유물의 일부가 우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고창고성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고대도시이다. 한나라 시대의 이곳 궁성인데 온통 흙으로 성벽을 쌓고 건물들도 흙벽돌이나 흙으로 지어져 있다. 실크로드 텐산남로의 거점이라고 한다. 우루무치를 지나 텐산 북쪽으로 가는 길은 텐산북로이고 툰황이나 이곳 투루판에서 텐산의 남쪽으로 가는 길은 텐산남로인 것이다. 위구르칸국시기의 고창성은 현장이 가는 길에 머문 곳으로 유명하며 현장이 강론하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 직접 들어가 보니 감개무량하다. 고창국왕 국문태가 현장을 국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카얼정 : 관개시설

투르판 지역까지도 아름다운 산야는 잘 보이지 않으나 농업은 발전한 모습인데 대부분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이 카얼정은 우물과 지하수를 결합한 관개시설로 기원전 700년경 이란의 사막지역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카나트, 아프간지역에서는 카레즈, 이곳에서는 카얼정이라 불리며 투르판의 카레즈는 텐산에서 이어져오는 지하의 물을 이용하여 수직 우물인 수정, 우물 간을 잇는 암거, 하구의 땅위로 드러난 명거, 물을 저장하고 배수하는 노파의 4부분으로 구성된다. 천여갈래의 전체 연장길이는 5,000km에 달하고 대운하,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고대 3대공정으로 평가한다.

우루무치로 이동(3시간)

이동 중에 차창 밖으로 눈으로만 보기로 한 아시아 최대 풍력발전소와 염호는 가이드와 일행들이 모두들 조느라고 그냥 넘어간다. 호텔에 짐을 풀고 시장으로 가다.

바자르(위구르족 전통시장)

광장이 상당히 큰데 옆 극장의 단원들과 시민들이 어우러져 신나는 위구르 음악에 맞춰 춤들을 추는데 춤에는 젬병인 나도 저절로 손과 발이 움직여진다. 가원은 이번에도 광장으로 나가 춤을 추나 했더니 기념품 사는데 만 눈독을 들이더니 기어이 기념품을 골라 샀다.

Grand Mercure Urumqi Hualing(5성급)

인솔자인 박소량 가이드가 부부들 중 희망자에게는 딜럭스 룸을 제공한다기에 기꺼이 응했다. 아니 이게 웬 떡인가요? 5성급 호텔에 딜럭스 룸이라니? 과연 객실이 넓고 침실은 따로 있다. 나중에 들으니 박사연구원 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방을 혼자서만 쓰는 서울 여성분 이렇게 세 팀만 누린 행운이라고 한다.

언젠가 홍콩에서 4성급 호텔의 딜럭스 룸을 배정받은 기억, 그리고 오스트리아 산속에 있는 좀 오래된 호텔에서 스위트 룸을 배정받았는데 응접실과 침실이 따로 있는 귀족들에게나 어울리는 큰 객실이었다.

8(22일 금) 우루무치

천산(텐산)등정 텐즈호(천지) 유람선

우루무치는 서역 실크로드의 중국 측 마지막 도시이나 신장성의 성도라서 인구가 4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이며 한족과 위구르족이 거의 반반이라는데 구분도 잘 안 된다. 자연환경은 란저우를 떠나고부터 투루판까지 줄곳 이어진 사막지대와는 완연히 다른 나무가 그래도 어느 정도 무성히 자라는 텐산이 있고 평야는 밭으로 농사를 잘 짓고 있어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이제야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며 비로소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쪽에는 백두산(장백산)천지가 있는데 서쪽 이곳에는 텐산 천지(天山 天池)가 있다. 천지는 백두산처럼 웅장한 산과 웅대한 천지가 아니고 설산이 보이는 작은 천지인데 유람선으로 한 바퀴 돌면서 텐산과 천지를 감상한다. 해발 1,910m이며 호수 정면에 멀리 보이는 5,445m의 보그다드봉이 보이고 중국 서왕모 전설이 전해지는 도교사원이 호수 변에 있다.

공항 16:50 우루무치 출발 20:25 서안 도착

서안 햄튼바이힐튼호텔(5성급)

9(23일 토) 서안

12:40 KE142 서안출발

16:40 인천도착

오늘은 순전히 서안을 출발하여 집으로 가는 날이다. 서안을 하루 또는 이틀 관광하는 분들과는 호텔 앞에서 헤어진다. 교사출신 여성 네 분과 어느 교수부부, 박사연구원 부부, 두 남성 친구분들이다. 인천에 도착하여 일행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540분 버스를 타다. 익산에는 10시 넘어 도착하여 집에 오니 10시 반이다.

이번 여행에는 실크로드 전문가이드인 점잖고 넉넉한 박동광 부장, 컬처 투어에서 파견한 밝고 명랑하고 예쁜 박소랑 인솔자, 그리고 25명의 참여자들로 구성되었다. 서울 경기에서 오신 팔십 세 나이인 두 남성 친구 분들과 70세 전후의 다섯 여성분들은 내내 우리와 식사를 함께 하는 팀원이 되었다. 그리고 교수부부 두 팀, 기업 출신 부부 두 팀이 있는데 교수부부 한 팀과 대기업 출신 한 팀은 부부가 모두 전북출신이어서 반가웠다. 다섯 부부 팀 중 세 팀이 전북출신이다. 그리고 네 분의 60대 중반의 중등교사 출신 팀, 70대 중후반의 두 여성분, 의류 사업가이신 60대 중반의 두 남성분까지 모두 화기애애하게 서로 배려하면서 너무 멋진 팀이 되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일정을 잘 계획하고 최선의 안내와 봉사를 다 해준 컬쳐투어와 박동광 부장님 박소랑 인솔자님 그리고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정말 멋지고 값진 여행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서역과 실크로드 관련 역사인물

1. 장건 : (B·C ?~B·C114) : 전한 한무제 때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대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 서역최초의 탐험이며 흉노에게 잡혀 10여년 억류됨.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탐방. 1차는 탐험, 2차는 사절

2. 이광리(B·C ?~B·C88) : 한무제 때 페르시아 지역(대완국)에 명마를 획득할 목적으로 가서 군사적으로 정벌. 흉노와의 전쟁에 참여하였으나 흉노에 투항함.

3. 반초(A·D32~102) : 후한시대 서역을 경영한 군사책임자. 30여 년간 50여객 국가를 복속시킴. 실크로드를 안정시키고 서역도호부를 강화함.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한다.’는 말을 한 사람, 서역 총독역할을 함.

4. 감영(A·D?~A·D?) : 97년에 반초의 부하로 명령을 받아 서방으로 가장 멀리 진출. 타림분지-중앙아시아-서아시아-페르시아만까지 도달.

5. 고선지(618~756) : 고구려계로 당나라 때 파미르고원과 중앙아시아 원정. 탈라스 전투(751)에서 페배하고 책임문제와 정치적 모함으로 처형됨.

6. 마르코 폴로(1254~ 1324) :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상인으로 동방여행. 4년만에 원나라에 도착하여 약 17년간 중국에 체류.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방음. 1295년 귀국하고 동방견문록을 남김.

7. 법현 (337~422) : 동진의 승려로 경전을 구하러 399년에 인도 순례. 툰황~타림분지~파미르~인도에 가서 귀국은 해로를 통해 스리랑카~동남아를 거쳐 귀국. 불국기를 남김.

8. 쿠마리지바(구마라십 344-413) 중앙아시아 쿠차국(구자국)출신으로 위대한 역경승. 아버지는 인도계승려이고 어머니는 구자국 왕족.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후진 황제 요흥이 장안으로 초빙하여 금강경, 법화경, 아미타경 등을 번역함.

9. 현장(602~664) : 629년 서역과 인도를 여행하여 불교경전을 가져옴. 삼장법사.

툰황~타클라마칸사막~텐산산맥~사마르칸드~간다라~인도를 17년간 여행하고 645년 귀환. 대당서역기편찬

10. 혜초(704~787) : 719년 경주를 출발하여 723년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수마트라, 인도북부, 이란북서부,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미르고원, 카슈가르(소륵국), 쿠차(구자국)을 거쳐 727년 장안으로 들어와 살았음. 1908년 프랑스 동양학자 펠리오가 툰황석굴 제17(16굴에 붙어 있는 작은 부속 방)인 장경동(長經洞)에서 가져온 수만 권의 책자에서 왕오천축국전필사본이 발견됨. 이번 여행에서 막고굴을 가게 되고 제17굴과 장경동을 보게 됨.

 

2. 하서주랑(회랑)

하서주랑(河西走廊)은 동쪽 오초령(烏鞘嶺)에서 시작해 서쪽 옥문관(玉門關)에 이르며, 남북은 남산(南山: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과 북산(北山: 마종산(馬鬃山), 합려산(合黎山) 및 용수산(龍首山)) 사이 길이 약 900km, 폭 수km에서 100km에 이르며, 서북-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이다. 복도 모양처럼 황하 서쪽에 있으므로 하서주랑이라 부른다.

지역은 간쑤성(甘肅省)란저우시(蘭州)하서사군(河西四郡): 우웨이시(武威, 무위), 장액(張掖), 주천(酒泉), 돈황(敦煌)을 포괄한다. 동아시아와 내륙의 신강(新疆)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통로이자 고대 실크로드이며, 고대 동아시아와 서방 세계의 정치·경제·문화적 교류에서 중요한 국제 통로였다.

 

3. 시안(서안)

시안시는 중국 산시성(섬서성)의 성도, 2023년 기준으로는 1,300만 명이다. 타이위안이 성도인 다른 산시성(산서성)과는 확실하게 구분하여야 한다.

시안'의 또 다른 명칭인 서경(西京)'서쪽의 수도' 인데,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수도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다른 도시들인 일본의 교토(京都, 경도), 대한민국의 서울(漢城, 한성)이 단순히 수도를 뜻하는 것처럼, 중국의 베이징(北京, 북경)은 북쪽의 수도를 의미하고, 일본의 도쿄(東京, 동경), 베트남의 통킹(東京: 오늘날 하노이)은 둘 모두 동쪽의 수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북경'(베이징)'남경'(난징), '장안-서경'(시안)은 중국 내륙에 있는 낙양(뤄양)을 중심으로 지은 이름이다. 시안(Xian)은 고대에 장안(長安)으로도 불렸고, 견융, 돌궐 등의 숱한 침략을 받았다.

()나라의 수도 서기(西岐)와 옛 ()나라의 수도 함양이 이 부근에 있었다. 기원전 202전한(前漢)의 수도가 되어 장안(長安)이라 하였으며 후한(後漢) 말기에 18제후 연합군에게 쫓긴 동탁이 헌제를 옹립하고 한때 이 곳에 들어왔다. 오랜 열국 시대가 끝나고 581년에 ()나라의 수도, 618년에 ()나라의 수도가 되어 300년간 국제도시로서 융성하였으나, 안사의 난, 황소의 난으로 일대 타격을 입고 침체되었다. 1936년 장쉐량이 일치 항일을 요구하며 장제스를 억류하는 시안사건이 일어나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되었다.

시안은 황하 유역의 관중평원(關中平原) 중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진령(秦岭)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위하(渭河)에 임한다. 지리좌표계 상 동경 107°40' ~ 109°49', 북위 33°39' ~ 34°45' 사이에 있다. 관중평원은 "팔백리진천"으로 유명한데, 넓고 평탄하며, 토지가 비옥하며, 자연조건이 매우 좋다. 시안이 바로 꽌중평원의 중부에 위치해 있다. 동서 최장 204km, 남북으로 약 116km에 달하며, 도시의 면적은 약 9,983km2에 이른다.

시안의 지세는 동남쪽이 높고 북서쪽이 낮다. 평균 해발 고도는 약 410m이다. 시안은 자고로 "중국어: 八水绕长安 팔수요장안[*]"(여덟 개의 물줄기가 감싼다는 뜻)이라고 불리었다. 시내 지역 주위로 파하, 로하, 풍하, 산하, 경하, 위하 등의 강이 흐른다. 그 중 다수가 황하 유역인 위하 수계에 속한다.

 

4. 감숙성(간쑤성)

1. 개요

간쑤성은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성이다. 한국 한자음으론 감숙성이다. 약칭으로는 간()이나 서량의 량에서 딴 량(), (: Lǒng)이 쓰인다. ()은 이 지역에 있는 유명한 산인 룽산(陇山)에서 따왔다. 성 정부 청사소재지는 란저우이다. 인구는 25,575,254, 면적은 425,800km2이다. 성 이름의 의미는 이 지역 서쪽 끄트머리의 간저우와 쑤저우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2. 지리

성 모습이 이상하게 길쭉해 보이는데 동북쪽으론 몽골고원이 있고 서남쪽으론 티베트고원이 있어 지리적 경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통로로 오아시스 도시가 여기저기 있는 사막지역과, 아직 사막이 덜 된 황량한 지역이 공존한다. 북동쪽에는 고비 사막, 남서쪽에는 해발고도 5,000m대의 치롄산맥(祁連山)이 지나가며, 그 사이로 중앙아시아 지역과 중국 문화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루트인 하서회랑(河西回廊), 혹은 하서주랑(河西走廊)이 이 간쑤성을 통과한다.

해발고도가 높고 내륙에 위치해 기후는 춥고 건조한 편이다. 성도 란저우는 해발 1,600m에 위치해 있고, 1월 평균기온은 -8.5, 7월 평균기온은 20.5, 연강수량은 245.9mm로 스텝기후에 속한다. 하서회랑 지역으로 가면 지역에 따라 강수량이 100mm 미만으로도 떨어져 완전한 사막기후가 나타난다.

인구 중 91.3%는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소수민족으로는 후이족, 둥샹족, 티베트족이 있다. 소수민족들 중 상당수는 성 남서쪽에 위치한 린샤·간난의 두 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축에 들어가는 편으로, 중국의 모든 성을 통틀어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곳이다. 20191인당 GDP5,083$로 중국 평균(10,276$)의 절반 정도였다.

3. 역사

고대에는 북부는 토하라계 월지인, 남부는 티베트계 강족이 주로 거주했다. 강족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되 인도유럽어족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민족으로 고대에는 중동의 밀, 양 및 고대 전차를 비롯한 청동기 문물들을 토하라인을 통해 한족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흉노 연맹이 이 지역의 월지를 축출한 이후 한나라는 흉노 연맹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이 지역의 강족들을 정복하고 한족 농민들을 정착시켰다. 다만 토하라인의 영향력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노수호도 많았고 둔황의 경우에는 명칭 자체부터 토하라에서 기원하였다.

한무제의 서역 원정 이후 실크로드길에서 장안을 출발해 중국 쪽 시작점 부분으로 번영했다. 몽골고원과 티베트고원에 끼인 좁고 긴 지역이라 하서주랑, 하서회랑이라고 불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서량(西涼), 후한 13주 기준으로는 양주(凉州)라고 불리는 땅이 바로 이곳이다. 삼국지로 유명한 이 지역 군벌로 마등과 마초, 한수, 동탁 등이 있었고 강족 등 서융 기마민족의 근거지기도 했다. 여기에 서안 주변 지금의 섬서성 지역인 옛날 관중 땅과 배후지인 서촉(西蜀), 즉 지금의 쓰촨성, 충칭시, 윈난성 등을 합치면 옛 진나라의 강역과 한고조 유방이 초한전쟁 시기에 일어났던 지역이 된다.

역사적으로는 중국의 왕조들이 차지했으나 송나라 등 국가는 일부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의 한족들은 종종 티베트계 부족과 동화되어 반란에 합류하는 일도 많았다.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위구르족이 세운 하서회골 등이 유명하다.

중앙아시아와 중국과의 통로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티베트(칭하이성과 쓰촨성 서부 포함)와 동투르키스탄(알티샤르)과 몽골(내몽골, 외몽골과 중가리아, 부랴티야)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영토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쓰촨성 서부의 티베트-버마계 부족들은 무역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기보다는, 간쑤성 북부의 내몽골, 서남부의 티베트 고원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거대한 자연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했다에 가깝고 그에 따라 그 사이의 통로를 지나는 간쑤성의 중요도는 실크로드 무역에 있어서는 필수였다. 하서회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 게다가 버마를 통하는 남쪽은 차마고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무역을 하긴 했지만 여기도 히말라야 못지않은 자연 장벽이라는게 함정. 쓰촨성과 인도를 잇는 육로 무역은 원나라 때 무슬림들이 이 지역에 대거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유기에서 파초선으로 부친 화염산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 무역이 번영하던 당시에는 비교적 부유하고 화려한 역사를 지닌 장소였다. 지역 소재 문화재 중에서 세계 문화유산인 막고굴이 가장 유명하다.

서하 때는 실크로드로 흥했으며, 송나라(특히 남송) 시기 이후에도 강남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서하 멸망 후 간쑤성은 실크로드 육로 무역이 쇠퇴하고 가뭄이 지속되면서 명나라 시기엔 극빈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화제국으로서는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간쑤성에는 후이족 인구 외에도 명나라로 귀순한 무슬림 민족인 살라르족, 둥샹족이 둔전을 하며 이 지역을 몽골족으로부터 방어했으며, 유고족, 보안족 및 하미에서 피난 온 불교도 위구르인 난민 여러 민족들도 같이 살았다.

청말에는 마화룡이 지휘하는 후이족들이 봉기했다가 좌종당에게 진압되고 이후 이 지역에 대기근까지 발생하면서, 상당수의 후이족들과 살라르족이 티베트 암도 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중국은 암도 지역을 간쑤성에서 분리하여 칭하이성을 신설한다. 유고족은 암도 지방 티베트인들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었으나 몽골계 보안족은 19세기 혼란기 와중에 주변 소수민족들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5. 신장위구르족자치구

1. 18세기 이전의 역사

신장(新疆 신강)은 비단길이 이 지역을 지나갔으며,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돌궐족, 몽골족 등의 지배를 받았다. 이 지역은 위구르 제국의 영역이 되었고 위구르 제국은 안사의 난 등 내부 혼란으로 약화된 당나라를 종종 약탈한다. 위구르인들은 많은 당나라인 노예들을 신장 지역으로 끌고가 소작을 시켰다고 한다. 위구르인들은 10세기에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이후, 차가타이칸국의 지배 하에서 급속히 이슬람화되었다. 이곳에서 모굴리스탄이 나타났고, 여기서 독립한 위구르인들은 야르칸드 칸국이라는 위구르인들의 마지막 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이 국가는 중가르 칸국에게 멸망당했다.

1755년 명나라를 완전히 정복한 청나라가 지역을 침략하였다. 준가르 칸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신강은 청의 지배를 받았고, 그곳에 있었던 위구르인들 혹은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이주한 위구르인들은 이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19세기 중반 청나라가 혼란에 빠지면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자 1864년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청의 군대는 이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반란세력들 간의 내전 결과, 야쿱 벡이라는 인물이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근대식 소총과 화포를 구입하여 무력을 증강하였고, 영국과 러시아의 승인을 받기도 하였으나 1876년 청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직후 급사하였다. 이후 청나라는 1884년 이 지역에 신강성을 설치하여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였다.

2. 동튀르키스탄

193311월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이 처음으로 건국되었으나 3개월 만에 소멸되었고, 1944년에 다시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공화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되었고, 1955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되었다. 오늘날 위구르족으로 중심으로 분리주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3. 타림 분지

신장은 크고 인구가 희박한 지역으로 면적은 160km2가 넘고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남쪽은 티베트 자치구(시짱 자치구), 남동쪽은 칭하이성과 간쑤성, 동쪽은 몽골, 북쪽과 서쪽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에 접해 있다. 예전에는 인도 카슈미르의 라다크 지방에 속했던 악사이친의 거의 대부분을 관할하고 있으며 인도는 1962년 이래 이곳의 지배권을 주장하고 있다.

동서로 뻗어있는 톈산산맥이 북쪽의 준가얼 분지와 남쪽의 타림 분지를 분리한다. 중가르는 건조한 스텝 지대이다. 타림 분지는 오아시스 도시로 둘러싸여있고 타클라마칸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쪽에는 신장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낮은 투르판 분지가 있고 서쪽은 톈산산맥이 쪼개져 이리강 계곡을 형성한다. 신장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곳은 8611mK2로 파키스탄과의 경계이다. 다른 산맥들로 남서쪽의 카라코람산맥, 서쪽의 파미르고원, 북쪽의 알타이산맥이 있다.

신장의 대부분은 지질학적으로 어린 곳으로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여 톈산산맥, 쿤룬산맥, 파미르고원을 형성하였다. 결과적으로 신장은 주요 지진 발생 지대이다. 신장은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준가르 분지의 거얼반퉁구터 사막(古尔班通古特沙漠)은 유라시아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히며 가장 가까운 해안선에서 2648km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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