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청담(靑潭) 2011. 9. 6. 22:01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아리스토텔레스

 

♣ JUSTICE

  비록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학생이지만 응원단원으로서 열정을 가진 캘리를 방출하려는 시도는 정의롭지 못하다. 응원의 본래의 목적인 애교심을 높이는 일과 관중석을 즐겁게 만들어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응원의 주목적을 능히 수행할 수 있다면 비록 캘리가 새로운 기술인 공중회전과 다리뻗기를 할 수 없다 하여도 응원단원에서 탈락시키려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 우월의식과 시기심과 질투심에서 빚어지는 행위이며 비인간적이며 장애인 차별행위인 것이다.

 

♣ 정의, 텔로스, 영광     ※텔로스 : 목적, 목표, 본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플루트를 누군가에게 주게 될 때 최고의 연주자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신분과 아름다움은 플루트 연주 능력보다 더 우월한 장점일 수 있다.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플루트 연주자가 연주로 그들을 능가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자질로 플루트 연주가를 능가할 수 있다. 그러나 플루트 연주자가 더 좋은 플루트를 가져야할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해당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 목적론적 사고 :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오늘날 테니스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어느 대학의 총장과 교수들을 위해 만든 테니스코트가 있다 치자. 이젠 면이 헤어져 좋지 않은 옆 코트에서 연습하던 그 대학의 테니스 선수들이 시합을 앞두고 교수용 코트에서 연습하겠다하면 이를 거절할 수 있는 대학이 있을까? 또 거절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시절 시에서 운영하는 어느 테니스 코트에서 일반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동호인들과  테니스를 치다가 사회 여론의 뭇매를 엄청 맞았던 기억이 난다. 이해가 가능한 듯 싶은데도 이 나라 풍토는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공직자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언론과 사회단체가 만드는 여론은 눈깜짝 할 사이에 당신들을 악의 화신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대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학업성취인가? 사회적 지도자 양성인가? 학력이 우수한 학생만 받아서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에 공헌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선발하여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대학의 설립목적과 대학의 운영자들에 의해 다양성 있는 방법으로 다양한 인재들을 선발하면 될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조직의 목적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직의 본질은 단번에 정해져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의견을 내놓는 문제도 아니다.  

 

 ♣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은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좋은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다. 즉,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다. 인구 20-30만명의 아테네라는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가능한 정치철학일 것이다. 그는 과두정치를 행하는 독재자들과 자유와 권리만 부르짖는 민주주의자들(다수결주의자들)은 편파적 요구만 한다고 말한다. 시민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정치적으로 인정받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리고 최고권력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대외관계를 결정한 자질과 판단력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한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정치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국가경제 발전과 번영? 튼튼한 국가안보 확립? 남북통일국가 수립? 삶의 질이 높고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 건설? 자유와 권리가 충만한 나라? 법과 질서가 통하는 편안한 나라?

  저런 주요 국가과제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기나 한가? 이념으로 지역으로 종교로 복지로 갈등하고 갈라지고 미워하고 다투는 자들 모두를 아우르며 이끌어갈 지도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갈 위대하고 진정한 지도자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 듯 싶다.

 

♣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있는가?

    정치의 목적은 좋은 삶의 구현이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백번 지당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미  수 많은 설문조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집단이 정치인 집단이고 가장 부정적인 단체가 정당이어서 이미 그 위상은 땅에 떨어져 일어설 기미조차 없다. 정치인들 개개인은 훌륭한 인물들이 많지만 그 사회 그 집단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들의 인격과 양심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뿔난 대한민국 젊은 유권자들이 여야를 막론한 기성정치체제에 환멸을 느끼면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의 정치입문 시도는 거센 파도를 몰고 왔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거센 요구가 실험에 그치고 말것인지, 아니면 쓰나미 같은 대 폭풍을 몰고 올 것인지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기성정치인들이 결코 국민들의 좋은 삶을 만들려는 진정한 정치철학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이 갈수록 확산되어가는 조짐이다. 결과가 어떠하든 바람직한 현상임은 부정할 수 없다.

 

 ♣ 행동으로 터득하기

    미덕이 깃든 행동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몸에 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미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늘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일년에 한 두번 명절때나 찾는다면 효도라 할 수 있는가?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자식이 몇년에 겨우 한번이나 부모에게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자식 낳아 기른 보람을 느낄 수 있는가? 큰 도움을 주었거나 덕을 베풀어 준 일이 있는 은인에게  말로만 고맙다고 하며 괜찮다는 겸양지덕을 믿고 식사대접 한번 안한다면 사람의 도리라고 할 수 있는가?

  실천적 지혜는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그는 실천적 지혜를 <선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의 이성적이고 진실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신뿐 만 아니라 같은 시민들에게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심사숙고할 줄 안다.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 추구하거나 미래의 후손들을 배려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로 당장의 이익과 유불리만 생각하는 편협되고 단견인 사람들에게 리더의 자리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선거는 정말 중요하다. 참여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선택하는 지혜와 심사숙고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 정치와 좋은 삶

 1.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란 좋은 삶의 필수요소>라고 말한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선거에 군불(?)을 지핀이후 열기가 후끈하다 못해 뜨겁다. 크게는 거대당과 시민단체가 싸우는 형국이요, 조금 작게 보면 한나라당과 이석연변호사가 맞붙고 민주당과 박원순 변호사가 맞붙는다. 최종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나경원과 이석연이 겨루어 그중 하나가 여권의 후보자가 될 터이요, 민주당의 박영선과 박원순이 다투어 하나가 야권의 후보가 되어 본선에서 4강중 한 사람이 시장으로 선출될 것이니 그 흥미진진함이 더 할 나위없다.

  이석연 변호사가 나경원의원의 인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박영선 의원이 박원순 변호사의 거센 파도를 밀어낼 수 있을까? 서울시장 선거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므로 누가 당선되느냐의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과연 누가 서울시민의 좋은 삶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부디 진정으로 당리당략에 휘둘리거나 이념에 사로잡히거나 특정세력의 발판을 구축하거나 쿠데타적 발상으로 무엇이든 바꾸어버리거나 하지 않고, 진정으로 서울의 발전과 아름다운 환경조성과 보전, 서울시민의 복지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능력있고 참된(진실로 시민을 위하는) 일꾼이 선출되기를 기대한다. 나 자신은 투표권이 없으나 우리 가족이 셋이나 서울시민이므로 나도 준 서울시민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ꡐ정치는 여러 소명 중의 하나가 아니라 좋은 삶의 필수 요소이다ꡑ라고 했다. 이는 직접민주정치에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모레가(2011. 10. 26)서울시장 선거일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에 의해 기존 정치권은 거의 폐사직전이다. 순식간에 이 나라 정치권의 핵심에 두 사람이 우뚝 서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을 구주류라 하고, 안철수와 박원순을 필두로 민주노동당, 좌파형 시민단체들, 노무현 추종세력을 묶어 신주류라 치자. 흐름은 그렇게 가는데 민주당은 후보도 내지 못한 채 박원순을 밀고 있으면서 박원순 승리에 앞장서고 있다.

  손학규의 말을 듣노라면 박원순의 승리가 마치 자신들의 승리가 틀림없는 양 상당히 큰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과연 민주당과 시민세력간의 협조가 잘 될까? 그리고 만일 서울시장선거에 승리하고 안철수가 여세를 몰아 대통령이 된다면 안철수의 희망대로 이 나라 정치가 소통이 잘되고 화합이 잘되는 판이 만들어 질까? 국민들이 안심하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나경원이 승리하고 여세를 몰아 어느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가 잘 되어갈까? 홍준표 같은 가벼운 인간이 대표로 있어서야 어디 되는 일이 있을까? 강용석 같은 철면피가 박원순을 공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지리멸렬한 당이 과연 승리할 자격이나 되는 것인가?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며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자는 정당성을 확보한 만큼 지나치게 기존 정치권에 의존하지 말고 서울을 잘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은 차원이 다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하며 그 이전에 기존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선결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 지역의 순창군수 보궐선거의 어느 후보자(교육장출신)가 다른 후보자(감사원 출신)에게 후보 기권을 전제로 삼분의 일의 인사권과 그동안의 비용 일부인 2천만 원을 요구하여 구속되었다. 두 사람이 흔쾌히 합의하였다니 참으로 망령된 일이다. 구속되어 있는 곽노현 서울 교육감보다 한 술 더 떴다. 

 ※ 어제, 즉 2011년 11월 2일 홍준표는 대학생들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하고는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서 또 구설수에 올랐다.

- (나는) 이대 계집애들 싫어했다.

- (당 최고위원중에는) 꼴 같잖은게 대들고, 패버리고 싶다.

한나라당 잘 될까? 무지하고 개념없는 정당이다. 힘들 것이다.

 ※ FTA국회비준을 민주당이 결사 반대한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반대일까?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미국은 이미 국회비준이 끝난 시점인데 특정 항목을 이유로 다시 협상하자는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민주당이 야권대통합의 주역이 되고 그리고 집권을 하고 또 나라를 잘 이 끌어 갈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당파싸움의 재현이다. 오직 집권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세력일 뿐이다. 힘들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옹호

  그리스에서 여성이나 노예는 참정권을 갖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과 노예의 본성은 시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다고 보았다. 노예제가 필요하다면 노예가 꼭 필요해야 하고 누군가 노예로 태어나야 한다. 아니면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노예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누구도 이를 받아들 수 없는 고대적 사고에서 나온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모든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며, 이는 동서양에서 19C에 노예제(노비제)가 폐지되고, 20C들어서 여성의 참정권이 이루어진 뒤에야 할 수 있게 된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21C에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남녀가 평등하고 경제가 평등하고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평등하고 지식이 평등하고 미모까지도 평등한 사회가 되어 있는가? 아니 언젠가는 모두들 평등한 사회가 될 수는 있는 것 이기나 한 것인가? 아니다. 절대로 될 수 없다.

  경제적 평등은 공산주의 실패가 증명하고, 미모의 평등은 한국에서의 안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증명한다. 어느 사회에서도 모두가 경제적으로 절대 평등할 수 없으며 아무리 대한민국이 성형수술의 천국이라 해도 모두 다 똑 같이 예쁜 미인이 될 수는 없다.

  평등은 법제적, 규정적, 선언적 의미의 평등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한 폭력남편에게 맞고 사는 아내는 남편과 전혀 평등하지 않다. 남은 재산 없이 아들집과 딸집을 전전하며 며느리 사위 눈치 보며 사는 불쌍한 노인은 자식들과 전혀 평등하지 못하다. 몸이 성치 못하여 쪽방에서 기초생활 수급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은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고 호텔에서 사우나하고 신촌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과 아주 많이 평등하지 않다. 악덕 기업주에게서 월급을 받지 못하고서도 불법체류자로 추방당할까봐 고발조차 못하는 동남아 노동자들은 대기업에서 수천만 원 대의 연봉을 자랑스럽게 받으면서도 노조의 투쟁에 함께 나서주는 귀족노동자들과는 조금도 평등하지 못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옹호를 비판하려거든 오늘날 선진사회의 국민들은 모두 평등하고 전 세계인들까지도 모두들 평등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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