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핀란드(헬싱키) 여행(2012 교육체험 연수)

청담(靑潭) 2012. 6. 12. 21:17

 

 

핀란드(헬싱키) 여행(교육체험 연수)

 

들어가는 말

   2012 교장연수는 교원대에서 실시되고 기간은 4주(2012. 4.30∼5.25)이며 1주일의 선진국 교육체험연수(2012.5.29∼6.3)가 주어졌다. 다른 차수들과는 달리 우리 중등 2차만 연수가 끝나면서 곧 바로 해외연수를 가게 되어 번거로움을 덜었다. 선진국 교육체험연수는 핀란드, 노르웨이, 독일, 일본 중에서 신청한다. 나는 세계 최고의 교육경쟁력을 자랑하는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소개가 있었으므로 노르웨이를 신청하였으나 나라별 인원 조정으로 부득이 핀란드로 가게 되었다. 중등 2차는 모두 323명이고 그중 120명이 핀란드에 가게 되어서 나는 핀란드 제 3기 제 4단에 편성되었고 모두 41명의 연수생과 인솔자, 안내요원, 간호사, 현지 안내요원 2명 등 매일 45∼46명이 함께 움직였다. 나는 아직 서유럽을 가보지 못하고 남유럽에 속하는 그리스만 다녀온 바 있다. 이제 북유럽 중 오직 핀란드만 가게 되었으나 언제 다시 북유럽 여행을 다시 할 것 같지는 않다. 세계는 넓고 가야할 곳이 너무도 많은데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어찌 다시 갈 수 있으리오?

 

5월 29일(화요일)

  우리 전북 연수생들이 모두 8명인데 대부분 전주출발 리무진 버스로 인천공항으로 간다. 오전 8시까지 도착하면 되므로 전주 4시 출발 버스(익산 4시 30분)에 양재덕 교감과 함께 오르니 문윤홍 교장과 한석우 장학사가 타고 있다. 핸드폰을 로밍하고 보딩한 뒤 10시 20분에 AY042기가 움직이고 10시 40분에 이륙한다. 헬싱키까지 70,391km이며 대략 9시간 정도 비행한다. 기대하던 창가자리는 주어지지 않고 가운데 앉게 됨에 따라 푹 잠을 자게 되다. 기내 뒷쪽 스튜어디스들의 준비실과 객실 사이에 작은 룸이 있어 음료도 마음대로 마시고 창밖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낮은 산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2년 전 지중해 여행시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비행할 때는 북반구 전체가 온통 눈으로 덮혀 있었으나 오늘은 자연 그대로다. 창밖은 하루 내내 대낮이다. 우리나라와 핀란드는 6시간의 차가 있으므로 9시간을 날았어도 여전히 대낮 1시 40분이다. 두 번의 기내식이 있어 점심은 때운 터라 바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가이드는 <피오나 리>라는 40대여성인데 노르웨이에서 근무하는 우리나라 여성으로 하나여행사 노르웨이 책임자라고 한다. 열정적이고 확실한 가이드님이다. 유아교육과를 나왔으나 여행사에 취직하여 가이드가 되고 홍콩남성과 결혼하여 오슬로에 산다고 한다. 세계화시대를 실감나게 상징하는 분이다. 남편은 중국식당을 하고 본인은 가이드 활동을 한다. 큰 딸은 중학생인데 한국으로 유학한 뒤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사는 가이드 분 자랑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사우라세리 야외민속촌

   사우라세리 야외민속촌을 방문하다. 그저 헬싱키 교외에 그들 조상들의 집을 옮겨 놓은 공원이다. 남녀 대학생들이 놀러 와서 민속놀이 게임을 하느라고 매우 즐거워한다. 운동도 할 겸 민속공원을 돌고나서는 버스가 헬싱키 중앙역을 지나게 되니 대도시 모습이 보이는데 고층빌딩은 없다. 아파트라기보다는 빌라형태이며 대부분 10층 이하의 도시 모습이다.

  핀란드는 지금 봄철인데 6월이 봄이고 9월이면 가을이다. 10월부터 5월까지 춥고 7,8월이 여름인데 겨울도 그리 춥지 않고 여름도 그리 덥지 않다. 여름은 오후 10시까지 낮이고 겨울은 서너시가 되면 벌써 밤이 된다고 한다. 좋지 않은 나라다. 살고 싶지 않은 나라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4계절은 조상님이 준 엄청난 선물이다. 내가 웬만하면 추위를 타지 않으므로 고집을 부리며 오직 나만이 최근에 입는 초여름 옷만 가져 왔는데 영락없는 봄이 아직 오지 않은 우리나라 4월 날씨이고 밤에는 싸늘하다.

 

고속도로변 마을 풍경

  밀, 보리, 귀리 농장이 있는데 재배가 잘 안되고 감자를 주로 생산한다. 과일도 별것이 없어 모두 수입한다. 당근, 오이, 토마토 정도를 하우스에서 재배한다. 농민들은 직접 농사를 직기 보다는 땅을 대여하고 세를 받는 것을 오히려 수입으로 한다. 이동식 농민들이 땅을 빌려 작물을 재배하다가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 나라의 면적은 우리 한반도의 1.5배이나 남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 땅이다. 1인당 GDP 4만 3천 달러 정도 되는 선진국이니 모두 수입하여 먹고 살지만 가난하던 시절의 이 나라 백성들의 먹거리는 가히 짐작이 간다. 현재 1인당 PPP지수(구매력 지수)는 우리가 3만 2천 달러, 핀란드가 3만 6천 달러 정도로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코트카시로 버스가 이동하는데 3일간의 숙소인 SOCOS호텔은 S그룹 소속의 체인호텔인데 인구 5만의 항구도시인 코트카시에 있는 호텔인지라 모두들 탐탁치는 않으나 큰 불평은 하지 못하다. 왜냐구요? 의젓하고 젊잖아야 할 교장연수단아닙니까?

  헬싱키에서 130KM 떨어진 코트카시는 작은 도시이며 조용하고 깨끗하다. 해안가엔 온통 요트가 즐비하다. 호텔에 들어 방 배정을 받으니 한석우장학사와 짝이 되다. 25년 전 쯤 젊은 시절 함께 대성고에서 3년여 근무한 사이인데 며칠이나마 다시 같이 지내게 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그런 듯 세월 많이 지난 것도 사람 많이 변한 것도 크게 느낌이 나질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변 한 건 없다. 물질이 변하나 마음은 그대로다. 마음은 아직도 결코 늙고 싶지 않음이요, 아직 늙음에 대해서는 두려울 뿐 가까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피곤하여 호텔에 마련된 작은 사우나에서 핀란드식 사우나를 간단히 하고 캔 맥주 하나를 마신 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3시에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훤하다. 밤이 아니다. 이게 바로 白夜현상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그 말로만 듣던 북극지방의 白夜인 것이다. 4시면 다시 해가 뜬다고 한다. 다시 잠이 들고는 5시에 일어나 함께 공원을 산책을 하다. 교원대에서의 4주간의 연수생활에서 아침 운동과저녁운동이 몸에 배었다. 수타리 봉에 다닌 때문이다. 우리 4단 41명중 7명씩 조가 짜여져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는데 나는 제 1조이다. 전남의 정문주 교장, 이성진 교장, 김건랑 교감, 전북의 조성운 장학사, 윤준호 장학사, 한석우 장학사와 같은 조이다. 보고서는 내가 작성하여 제출하기로 하다.

 

5월 30일(수)

  오전에 헬싱키로 이동하는 도중 반따지역에 있는 시푼 루키오 <교장 : 아르네 아라딸로>고등학교를 방문하다. 헬싱키에서 30분 거리라고 한다. 2007년에 개교한 학교로 재학생은 인문계 200명, 직업계 200명이며 시골 면단위에 위치한 학교인데 건물이 특이하고 잘 지어진 현대식 건축으로 시카고 건축대상을 수상한 건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새로 짓는 학교건물처럼 아름답지는 않은데 매우 실용적으로는 지어졌다. 운동장도 별도로 있다.

 

교실에서 학교장의 설명을 듣는 장면

  교장은 이 학교의 시설이 우수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선호한다고 하며 학교를 안내하고 1시간의 특강을 통해 핀란드 교육과정과 교육현황을 설명해 준다. 전문계실을 주로 들어가 보니 주로 컴퓨터 공학실 같은 느낌이다. 공업계 교감들 말씀으로는 전통적 전기·기계과라기보다는<컴퓨터응용>학과나 <유비쿼터스>학과 같다고 한다. 교무실은 그저 단순한 책상만 있고 각 교실에 교사들의 책상이 있어 마치 우리의 초등학교와 같다. 교장실은 작고 보잘 것 없다. 그냥 교장이 근무하는 방이다. 응접세트도 없고 작업실일 뿐이다. 행정실도 아주 작고 볼품이 없다. 행정을 줄이고 전적으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바로 진짜 배움터임을 보여준다.

  각 교사들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실례로 이 학교 생물교사는 6주는 수업, 3주는 자기주도학습, 1주는 시험의 형태로 운영한다. 전문계 학생의 90%는 취업하게 된다. 대학을 가게 되더라도 전문대학에 간다.

  교사는 30명이고 보조교사가 5-6명이 있다. 우리나라 공업계에 비하면 시설이나 보조교사수가 빈약한 듯 보이나 교사들의 열정이나 노력은 대단하다고 한다. 월 1회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하는 회의가 열려 소통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소통방식이다. 우리는 학생부장 정도만 참석하는게 관행인데 이제 변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의 최고의 존재가치이니 그들을 위해 학교와 교장과 교사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핀란드는 유치원을 거쳐 9년제 초중학교를 마치면 인문계로 가는 학생이 60%, 전문계로 가는 학생이 40%이다. 중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인데 사실상 대학까지 등록금이 거의 없고 오히려 지원해 준다. 인문계는 99% 대학에 진학하지만 직업계 학생들은 1-2년을 더 다니며 인문계 학점을 이수해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데 겨우 1%정도만 진학한다. 다만 전문대학은 예외이다. 우리가 대학에 가던 시절의 대입 방식이다. 예비고사에서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의 2배수만 합격하게 되고 합격자만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방의 4년제는 미달이 많았고 재수를 택했다. 불학격자도 전문대는 진학이 가능했고 4년제를 졸업하면 거의 100% 취업이 되는 경제 발전 융성기에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는 행운을 누렸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공무원 희망자의 경우 거의 모두 7급시험을 통과하여 대부분 사무관 이상 승진하였으니 오늘날 젊은이들은 거의 이해가 불가능한 교육상황이었다.

  이 나라 교육위원들은 교육강국인 만큼이나 권위가 있다. 교육청은 지원하는 교장을 선택하고 학교는 교장이 자치적으로 운영한다. 교육과정도 융통성 있게 자율 운영되고 3-5개의 학교교육목표를 정하고 교육청으로부터 심사를 받아 목표 달성도가 낮으면 교장은 그만 두게 된다. 잘하면 계속 임용되며 임기는 따로 없다. 교사에 대한 평가는 없으며 교장이 평가할 뿐이다. 그 만큼 교사를 신뢰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학교장은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교사들의 수업방식에 대해 교장은 간섭하지 않는다.

  교사들은 대학원에 준하는 교육을 받고 석사학위를 취득한다.(이 나라에는 학사학위란 없음을 주지하라!) 교사사자격증의 취득은 경쟁률이 높으며 교사들에 대한 신뢰도는 높다. 월급도 많은 수준이다. 학교 간 경쟁은 거의 적고 약간의 비교를 하는 정도인데 우리는 경쟁을 부추기며 국가수준 성취도 검사 기초학생 미달비율을 발표하고 성과급에까지 반영하게 한다. 이제 교육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필요 없다. 그저 기초학력 미달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지원해 주면 되는 일인 것이다. 교사들은 65세가 정년인데 대부분 정년까지 하고 있다.

  교사들은 인성교육에 대한 연수를 통해 인간존중의식이 확실하다. 핀란드가 PISA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보이는 것은 공립이 대부분이고 학력수준이 같기 때문에 결과가 좋은 것이다. 현재는 뒤쳐지는 학생을 없이하는 교육을 하고 있으나 차후 높은 성적의 우수생을 만들어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학생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있어도 학교 밖에서 일어나며 25%가 남자 교사이고 교장의 절반은 여자교장이다.

원로원 광장을 들러 핀란드식으로 점심을 먹는데 송이버섯 수프에 빵 두조각, 송어구이, 커피가 전부다. 후식으로 사과를 준다.

 

원로원 광장과 루터파 교회

  오후에는 역시 면단위 소도시<꾸바코스키 마을>에 있는 청소년 센터를 찾았다. 작은 규모이니 우리 무주 청소년 수련관에 비할 바 못되나 작은 마을의 학생들까지 센터에서 취미와 적성에 맞는 운동이나 기능을 습득시켜 주고 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운영된 전통이 있는 청소년 센터이다. 작고 오래된 시설이지만 담당관리인들이 잘 관리 하고 있다. 지도는 자원기부봉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9세∼17세 학생들이 이용한다는데 양교감이 부근에서 놀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여자아이들이 우리나라 K팝을 물으니 잘 안다며 <샤이니>의 노래와 춤을 추어주더라고 한다.

  헬싱키 시내의 암석교회를 찾다. 헬싱키 2단을 만나다. 우리 4단에는 20분임원이 나와 이상원 교감뿐인데 2단에는 여승기 교감, 공병효 교감, 최여영 분임장이 있고 공교감님은 금방 헤어짐을 못내 서운해 한다. 2단은 재수가 없어서인지 좋아서인지 비행기 티켓 구입 문제로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오게 되고 다시 네델란드를 거쳐 가게 된다. 나는 은근히 암스테르담에 내려 보길 원했으니 한 나라라도 더 눈으로 보고 한 나라라도 땅을 밟아보기 위한 욕심이며 다른 사람들과는 생각이 분명 다르다. 암석교회는 화강암 산에 1969년에 지어진 독특한 교회이니 우리나라의 석굴암이라고 보면 되겠다. 돌산의 정상에 구멍을 뚫고 지어진 교회인데 규모가 웅장하고 과학적인 건축술에 놀란다. 저녁은 헬싱키에 유일한 한국관에서 먹는데 첫날은 돼지김치찌게더니 오늘은 된장찌개이다. 이 나라는 온통 낮은 산이고 나무는 소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편백나무이다. 전나무도 있다.

 

 

5월 31일(목)

  우리나라와는 폭력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르다. 인식차이가 크다. 아이들은 타인을 극히 배려하여 크게 싸우거나 큰 소리를 치거나 때리거나 왕따를 거칠게 하는 일들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폭력행위가 일어나면 철저한 설문조사와 학부형 면담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따뜻한 가정을 중시하고 저녁식사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한다.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급식이 없으나 핀란드는 실시한다. 핀란드가 북구유럽 중 경제는 가장 뒤지지만 복지순위는 스웨덴 - 핀란드 - 덴마크 - 노르웨이 순이라고 한다. 대학까지 무료이다시피하며 학비는 없다. 심지어 대학생이 학교에서 지급하는 학습재료 이외에 다른 재료를 더 구입하게 되면 비용을 학교에 신청하고 학교는 심사하여 학생에게 지급되기도 한다.

  오전에 원로원 광장에 주차하고 수오 멘린나 섬으로 향한다. 원로원 광장은 옛 소련의 지배당시 의회가 있던 곳이며 그 건물은 지금도 관청 건물로 사용한다. 헬싱키 한 중심부에 위치하여 이곳과 중앙역이 모두 중심부 역할을 하는 듯하다. 광장주위는 관청 건물과 거대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핀란드 루터파 교회 본산인 교회건물이 에워싸고 있다.

  섬은 항구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아름다운 섬으로 나무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예부터 요새로 구축된 섬으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낙원 같은 섬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데 관광객도 많다. 헬싱키에 오는 관광객은 모두 들리는 곳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이고 역시 중국인들과 한국인들 그리고 일본인들을 만났다.

  여섯 개의 섬을 연결한 해상 요새 건설이라는 대공사가 시작된 것은 핀란드가 스웨덴의 통치하에 있던 1748년이다. 1747년 스웨덴의 왕 프레데릭 1세가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하여 대규모 요새를 건설하라고 명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철저한 대공사 끝에 1772년에 완성된 요새는 여섯 개의 섬을 연결한 총길이 7km에 도달하는 화강암 성벽으로 인해 당대의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스웨덴어로 요새를 뜻하는 스베아보리라고 불렸다.

 

수오 멘린나 섬에서

  훗날 요새에는 조선소까지 세워져서 스웨덴 함대의 출격과 연안 경비 기지 역할을 했지만,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임무는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1809년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로 1세의 공격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이후 요새는 '비아포리'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100년 넘게 러시아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1855년 크림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함대의 47시간에 걸친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대대적으로 복구되었다.

  핀란드가 독립한 이듬해인 1918년 핀란드어로 '무장해제'를 뜻하는 수오멘린나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한 이곳은 헬싱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과거 유럽에서 가장 큰 보루가 있었으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수오멘린나는 핀란드 해군 사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장해제'라는 이름처럼 더 이상 군사적인 기능은 없어졌다. 지금은 6km에 이르는 성벽과 190개에 달하는 건물이 보존되어 있어서 관광명소이자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900여 명의 주민이 내부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으며, 많은 건물들이 예술가의 작업실이나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나와서 온갖 놀이와 춤이나 연극 등으로 신나게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학생들은 놀이공원에서 기구타는 것이나 원하지 지네들끼리 함께 즐기는 것은 졸업한 듯한 모습이라 생각하니 이 아이들 정말 순진하고 착하다.

  오후에는 헬싱키 중심부에 있는 글루호텔에서 특강이 있었다. 연사는 잘 생긴 야멤빠에 있는 14개학급의 초등학교 교장(페카 투크넨)으로 핀란드교육의 전반에 걸친 내용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져 보다 핀란드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가 되었다.

   핀란드는 문맹률이 0%이고 이미 1917년부터 국민들에게 동등한 교육을 시작하였다. 뛰어난 학생이 적은 단점이 있으나 평균적이고 모두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실상 대학까지 무료이거나 저렴하며 교육열이 높다. 98%가 중학교를 의무적으로 마치며 중도탈락자가 없다. 중도탈락자가 너무 많은 우리나라가 가장 본받아 노력해야할 점이 바로 이 문제이다. 중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1. 시골학교들이 정리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원거리 통학생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문제점이다.

2. 총 예산의 6%가 교육예산이다.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것은 아니지만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기에 결과가

  좋다. 예산을 아끼고 직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3. 계층완화 교육에 관심이 크다. 아직도 남아있는 피라미드식 구조를 수평구조로 바꾸는 개혁이 지속되고

   있으나 아직 결과는 미지수이다.

4. 정치와 관계없이  교육프르그램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5. 경쟁도 생겨나고 있는데 개인적인 성향이 있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 : 핀란드 교육이 최선이 아니지만 다른 나라가 나쁘기에 돋보이는 것일 뿐이다.

  작은 학교의 교장은 주 10시간 정도의 수업을 하나 큰 학교는 하지 않는다. 교사는 학교장이 인터뷰로 선발한다. 교사의 월급은 인센티브제이기에 많은 참여와 노력을 하는 교사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교장에게는 관리보다는 전 교직원과 전 학생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더 중시된다.

  학교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1. 리더십

2. 관리능력

3. 경영전략

  이며 수직체제를 최대한 피하고 수평적 운영능력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수직운영은 문제해결이 빠르지만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수평적 운영을 잘 하려면 교직원과 학생들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변화의 동기를 부여하는것이 핵심적 요소이다.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었다. KIVA KOULU project가 소개 되었다. 그리 크게 심각하지 않은 학생사건은 이 끼바 꼬울루 프로그램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심각한 사건은 경찰과 협력하여 해결하기도 한다. 끼바 꼬울루 프로그램은 따돌림 방지 적용 프로그램이며 현재 총 2,500개의 학교가 끼바 프로그램 사용에 등록되어 있다. 약 90%의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6월 1일(금)

  오전에 처음 방문한 곳은 우스 팬스키 사원이다. 동방정교회사원이니 곧 러시아 정교회를 말한다. 핀란드 동방정교회 본산으로 1862년에 건립된 내부가 매우 아름다운 사원이다. 항구부근에 대통령 궁이 있는데 병사 두 명이 현관입구에서 한가롭게 보초를 서고 있을 뿐이다. 물론 우리 청와대와 성격은 다르나 청와대도 언젠가 바뀌어야 한다. 지방의 지사관사는 이미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는데 청와대는 아직도 그대로다. 일제 강점기 시대 총독이 살던 관저 그 자리에 더 거창하게 지어놓고 대통령이 산다. 영국의 수상관저나 핀란드 대통령궁처럼 소박하지는 못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5년간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의 관저로는 분명 지나치다. 미국의 백악관보다도 국민과 거리가 더 먼 곳으로 생각된다.

 

뒤에 대통령 궁이 보인다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한다. HOAS라고하는 대학생 지원기관이 있어 학생들에게 원룸 같은 작은 아파트를 대여해주는 일을 한다. 대학생들은 대학을 거의 공짜로 다니고 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취업이 되는 나라니까 고졸이면 독립이 가능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언제까지 느끼느냐는 질문에 결혼 때까지(41.5%), 학업을 마칠 때까지(29.6%), 직장이 생길 때까지(23.9%), 심지어 손자녀 양육까지(1%), 주거를 마련할 때까지(0.8%)라고 답한다. 우리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으나 분명 가족 문화가 다르긴 너무 다르다.

  핀란드 인구가 530만이고 헬싱키 인구는 55만이다. 수도권에서110만 명 정도가 산다고 한다. 시내에 있는 박물관을 찾았다. 마치 교회건물처럼 생긴 국립박물관인데 구석기 유물에서 청동기 유물까지는 제법 도구들이 잘 만들어졌고 상당히 구비되어 있으나 그 이후는 유물이라는 것이 기껏 기독교 유물이나 그림들에 불과하다. 중세이후 핀란드인 그들만의 역사를 갖지 못하고 스웨덴의 한 속국이었거나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속국이었으므로 남겨진 유산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방에는 니콜라이 황제와 알렉산드로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황제의 의자가 놓여 있다. 아마도 이곳에 황제가 순시하게 되면 묵는 행궁이 있고 그 행궁에 걸린 초상화와 의자인 듯 싶다. 19세기 러시아의 차르인 니콜라이 1세, 알렉산드로 1세,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로 2세 등의 초상화이다.

  룩시오 국립공원으로 가다. 199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인데 특별한 구경거리는 없고 호수의 나라답게 산속에 호수들이 있고 나르는 모기만 많다. 가이드가 소세지를 사오고 나무를 칼로 깎아 꼬쟁이를 만들어 하나씩 나누어 주며 장작불에 구워 먹으라 한다.

  헬싱키 한 복판에 있는 CAMP HOTEL에 묵다. 전북인들이 수퍼에서 캔 맥주를 사고 보드카를 한 병사서 소맥처럼 타가면서 마시다. 조금 취했다. 물가 참 비싸다. 캔 맥주가 2700원 정도이고 우리가 먹는 5천원짜리도 안 되는 한식이 2만 3천원이라나? 소주 한병 먹으려니 2만 5천원이라고 하여 차마 마셔보지 못했다. 안마시면 되지 어떻게 천 원짜리 술을 그 돈 주고 마시나? 우리 전북 교감들이 술은 그런대로 하면서도 누구도 소주 한 병 준비하지 않아 캔 맥주 한 병으로 때웠으나 여행에는 오히려 다행한 일이 되었다.

 

헬싱키 번화가 시가지에서

 

 

6월 2일(토)

   이 나라 사람들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 입지 않는 옷이나 물건은 모두 교환시장에 내놓는다. 다만 얼마의 돈이라도 받고 판매한다. 또 술을 좋아하고 담배를 좋아하여 음주·흡연율이 세계에서 최고수준인데 길거리에서도 남녀노소가 피워대는 모습을 보면 선진국 같지가 않지만 우리처럼 폭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장시간 마셔댄다고 한다. 술집이란 게 있기나 한지, 도대체 눈에 띠지 않고 그저 레스토랑밖에는 안 보인다. 시벨리우스공원을 찾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왠지 다들 기분이 좋은지 시끌벅적 기념사진들을 찍는다. 고원은 매우 시골스럽게 자연친화적이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 새들이 청둥오리들이 아주 편안하게 놀고 있다. 시벨리우스를 상징하는 수많은 원통들을 주석으로 제작한 거대한 조각품이 있어  매우 아름답다. 영락없이 파이프 오르간을 상징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참 이상하게도 시벨리우스 작품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전혀 쓰인적이 없으므로 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제작자가 잘못한건지 아니면 컨테스트 심사가 잘못된 건지 아무튼 정상은 아니다.

 

시벨리우스 공원의 기념조각품 앞에서

  선물을 살 수 있는 대형 판매장에 가게 되어 나도 양드리가 좋아할 이딸라 대형접시 1개와 물컵 2개, 커피 잔 2개를 앵무새가 그려진 모두 같은 문양의 그릇을 13만원 정도를 주고 사다. 본래 해외여행시 아무런 선물도 사지 않는 것이 나의 소신인지라 유로화도 전혀 가져가지 않았지만 양드리 선물로는 최고일 것 같아 사지 않으면 후회 할까봐 기꺼이 카드로 구입했는데 양드리에게 아주 큰 칭찬을 받았다. 큰 접시를 부엌에 장식해놓으니 그 어떤 그릇들 보다 훨씬 예쁘다. 좀 더 많이 사올 껄 그랬나?

  이 나라는 우리와는 거리로나 문화적으로나 교류면에서나 아주 먼 나라인데 우리가 알 수 있을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다음과 같다.

 

●호수와 별장

●자일리톨 껌과 치약

●이딸라 그릇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핀란디아

●핀란드식 사우나

●IT 산업체인 노키아     

                         

  이제 만 4박 5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다. 반타 국제공항에서 AY042기로 5시 30분발이고 5시 50분에 이륙한다. 이번엔 큰 행운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다시 내 눈으로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다. 오른 편 창가에 자리가 배정되었다. 2년 전엔 왼쪽 창가에 앉았었다. 하얀 눈에 온통 덮혀 버린 유라시아 대륙 북반부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실시간으로 밖을 본다.

○헬싱키 저녁 8시 - 보름이 엊그제 쯤이었던 것 같은 약간 오른쪽이 이즈러진 큰 달이 비행기 오른 날개위에 떠 있다. 오늘이 한국의 음력 14일 새벽 2시이니 그렇다면 보름달은 내일이고 왼편이 조금 이즈러진 상태이어야 하는데 이상타? 초등학교 천문과학 다시 공부? 아니 북극에 가깝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당연히 환한 대낮이다. 3,000km를 지나니 산간지역 기슭엔 눈이 남았다. 아마 우랄 산맥인 듯 하며 아시아로 들어선 것이다.

○현 위치 11시 18분 - 달이 가까이 다가와 보름달 모양으로 날개 오른편 끝에 왔고 날개 끝에 햇빛이 비친다. 달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어두워진다. 밤이 시작되고 있다.

○현 위치 11시 25분 - 비행기 방향이 내륙으로 틀어진다. 47분이 되니 완벽하게 밤이 되고 도시가 보인다. surgut 이다. 이곳이 바로 수르구트 다. 달은 보름달, 휘엉청 밝은 달이다. 헬싱키는 8시 47분이다. 헬싱키와 3시간 차. 3시간 날았다.

○현 위치 12시 - 헬싱키는 9시 , 서울은 새벽 3시다. 12시 10분인데 창밖 저 멀리 신기한 현상이 지상에 펼쳐진다. 달빛을 받은 비행기에서 반사되는 빛인지 저 멀리 수 km 떨어져 비행기와 같은 속도로 비행기를 따라 붉은 불빛이 이동하고 있다. 10여분쯤 지속되다가 이후로는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더니 25분에 없어진다. 신기하다. 어두운 밤인데 불빛에 산기슭이 환하게 보인다.

○현 위치 12시 30분 : 서울 3시 30분 - 3시간 40분 날았다. 안내판에 노보시비르스크 가 보인다.

○현 위치 3시 40분 : 서울 4시 40분 - 시간이 확 바뀌었다. 헬싱키 10시 40분인데 비행기가 이르쿠츠크 를 지나며 서울과 겨우 1시간 차이다. 낮은 산간지대가 보이며 높은 곳은 눈으로 덮혀 있다. 바이칼 호는 볼 수 없다. 달은 빛을 잃었다. 잠시 후 비행기 안내판에는 서울과 시각이 5시가 되어 같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현 위치 4시 40분 : 서울 5시 40분 - 몽골 땅이다. 달이 없어졌다. 도착예정 시간 8시 10분으로 2시간 30분 남았고 눈이 약간씩 남아있는 것이 보이고 햇빛이 비행기 왼쪽 창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현 위치 5시 22분 : 서울 6시 22분 - 베이징을 향해 몽골에서 중국으로 넘어서고 있다. 몽골과 중국의 시간은 같다. 고도는 12,000m, 기온은 영하 59도, 속도는 8,800km이다. 울란바토르 윗쪽을 지나 사인샨드  부근을 날았다.

○아침 8시 20분 아름다운 산하. 내 나라 내 땅 한반도에 도착하다.  

 

 

6월 3일(일)

  9시 반 리무진으로 귀향하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반이 되다. 내일 당장 출근이다. 아침 5시 기상, 6시 출발인 일상으로 돌아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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