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서 한라까지
푸른 5월
푸른 5월이다. 청소년의 달이다.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과 석가탄신일이 있어 이틀이나 쉬고 또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었다. 며칠건너 하루씩 쉬는 꿈 같은 5월의 두 주가 간다.지난 늦가을 이후 겨울내내 벌거벗었던 우리의 금수강산이 연초록색 옷으로 갈아 입고 있다. 벌써 아름다운 우리 산하가 다아 예쁘게 그려졌건마는 우리 학교현장은 하루하루가 바삐들 돌아가며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금년도 신학기는 정말 유난히도 바쁘기 그지 없다. 업무포털과 차세대 나이스 구축으로 교장과 교감은 하루종일 결재하는게 일이다. 담당선생님들과 구두로 협의하고 지시하고 회의하고 공문결재는 매일 수십 건 씩이다. 학교 잡무 경감은 커녕 교직원들 모두 정신없이 바빠서 어쩔줄을 모른다. 공부하는 곳인지 업무보는 곳인지 나 마저 헷갈린다. 교사들은 정규수업하랴 보충수업하랴 기숙사생 야간 수준별 수업하랴 대학입시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충실하기 위한 각종 행사하랴 참으로 너무나 바쁘고 힘들다.
교육부와 장관은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을 영원히 무한책임이라도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양 마치 교육 혁명가나 된양 다 확 바꾼답시고 난리 법석인데 하는 짓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졸속 9차 교육과정 도입, 졸속 한국사 교과서 개편, 졸속 교장초빙제 확대, 졸속 진로상담교사제도 시행, 의미 없는 교원평가 강행, 교사들의 마음만 아프게 하는 성과급 강행등은 학교를 너무 불편하게 한다.
사교육을 줄이는게 아니라 아예 확 없애는것에 정권의 사활이 걸린양 설치며 사교육 없앤답시고 아이들의 재능과 특기를 신장시키는 온갖 경시대회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무력화시킨다. 포퓰리즘에 진 것이다. 각종대회 출전과 입상은 평등에 위배되고 사교육을 조장한단다. 빈대 무서워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그러나 사교육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통계조사 보고가 있었다. 그저 사교육을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만 하면 못하는 짓이 없다. 오늘은 사교육 없앤다고 영어수학을 쉽게 가르치도록 교과서를 개편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일본에서 추진하였다가 실패한 정책이며 학생들의 학력만 떨어져서 다시 환원하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토록 중요한 논술교육을 사교육을 발생시킨다고 대입시에서 아예 없애도록 대학에 강요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대학지원금이 줄거나 못받을까 두려워 대학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줄 수 밖에 없다. 이미 대학은 교육부의 시녀가 되었다. 지원금으로 대학을 확 휘어잡고 있어 대학의 자율성은 소리도 없이 죽고 말았다. 교육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오로지 정권유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이라서 그런지 호응도 성과도 없다. 정권잡은 동안 아주 바꾸고 싶은 곳은 모두 다 찾아내어 바꿀 모양이다.
6개시도에서는 좌파성향의 진보교육감들이 당선되어 전교조의 후원을 받으며 교육부와 건건이 갈등이다. 교원평가와 성과급과 학생인권조례제정과 무상급식등 제 문제에서 갈등은 고조되고 해결이 안되며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그저 관망할 뿐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왜 진보 교육감들이 여섯명이나 당선되는지 왜 교육부의 개혁과 진보교육감들의 개혁은 저리들 충돌하기만 하는지 언제까지나 이런 교육행정의 파행이 계속될 것인지 생각하면 짜증이 나지만 학교의 일상은 그냥 잘 지나간다. 열심히 가르치며 일심히 일 할 뿐이다. 노무현 정권의 의미없는 개혁 못지 않은 불편한 엉터리 개혁과 진보교육감들과의 갈등속에서도 시간은 잘도 흐르고 세월은 잘도 간다. 저들이 싸우든 말든 여전히 5월은 푸르고 아름답다.
설악산 수학여행(5월 14일-15일)
5월 14일(토)
금년은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졸업 20주년(40세) 행사와 30주년(50세) 행사는 있지만 40주년(60세) 행사는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50주년(70세) 행사는 있다. 우리가 올해 60세이다. 내년이면 다들 환갑이다. 한 살 더 먹은 친구들은 이미 금년에 환갑인것은 당연하다. 작년 서울 체육대회에서 100쌍 정도의 친구들이 모이는 1박 2일의 졸업 40주년 행사를 추진하자는 의견을 모았으나 부부 30만원 내지 40만원이 드는 정도의 참가비에 대한 부담이 커서 성공율이 크지 않다는 서울 회장단의 의견이 있어 추진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돌연 서울지부 회장단(회장 최춘신 전 한국은행 국장, 총무 이완수 스틸하우스 사장)이 작게나마 졸업 40주년 수학여행을 추진하고 우리 지방은 희망자가 참가하는 형식으로 조촐한 행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 익산에서 권문봉 학장(회장)부부, 한명규 한성정공사장 부부, 유인수 중앙의원 원장 부부, 강덕신 선생 부부, 군산의 이윤수 선생 부부, 나 이렇게 모두 11명이 참가하게 되어 자가용 두 대로 출발했다. 양드리는 그 간의 운동회 준비와 심해진 감상샘암으로 인해 심신이 피곤하여 포기하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명규 친구와 권문봉 회장이 기꺼이 운전을 맡아 주었다. 중부고속도로에서 국도로 차선을 잡아 증평, 충주를 지나 중앙고속도로로 들어가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원주, 횡성, 홍천을 거쳐 인제 못미쳐서 우회전하여 한계령으로 들어간다. 무려 다섯시간을 달려 오색야드호텔에 도착하니 서울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 모인 친구들이 32명에 여왕님들이 12명으로 모두44명이다.
서울총무인 이완수 친구가 모든 행사를 추진하고 주관한다. 그리운 42년 전의 옛 설악산 수학여행길을 다시 찾아보기 위하여 기획한 거라는데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고 보니 고2때 나만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못간 것이 아니었다. 오늘 이 모임에 참가한 친구들은 그래도 살만 하다는 친구들인데 당시에는 돈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참가하지 못했던 것을 뜻 밖에 오늘에야 알았다. 나는 여지껏 수학여행 못 간것이 일면 부끄러워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건만 오늘 나를 비롯하여 여러 친구들이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돈이 없어 못갔음을 당당히 토로한다. 고등학교때 가난이 무에 그리 부끄럽노? 몇 몇 빼고는 다들 가난했제? 당시 부잣집 아이들중 오늘날 어렵게 된 친구들이 많고 당시 아주 아주 가난했던 친구들이 더 많이들 성공하지 않았나? 다음주에 이루어지는 우리학교 1학년 수학여행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여행비 납부가 힘든 4명은 여행사가 책임져 주어 함께 가게 되고 학생 1인당 6만 6천원씩 학교에서 지원하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로다.
오후에 등산을 한다. 흘림골에서 1시간 올라가면 등선대이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어 오색약수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거리는 6.6km정도이다. 약 2시간 반이 걸렸고 내려와서는 먼저 도착한 10여명의 친구들이 1시간 남짓 파전에 막걸리로 회포를 풀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데 음담 패설로 한참동안이나 웃음꽃이 피었다. 김한호 친구가 가장 웃기는데 명색이 인터넷 업체 사장이 친구들 만나니 못하는 소리가 없이 잘도 웃긴다.
저녁엔 호텔나이트에서 부페로 식사를 하며 즐거운 대화와 술잔을 나누고 노래자랑까지 곁들여졌다. 나는 저녁식사전에 막걸리를 나수(이는 전라도 사투리이며 표준말로는 상당히) 해서 그런지 맥주를 마시는데도 꽤나 취한다. 10시가 되어 객실로 가니 고광윤 교수와 룸 메이트다. 고교때 같은 반을 한 적이 없고 졸업 이후 처음 만나는 친구지만 워낙 공부 잘하고 모범생인 그는 현재 아주대 교수다. 정기영 친구와 정수영 친구는 어느 방에서 노는지 술을 마시는지 알 수 없어 문을 걸어 잠그고 얘기 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고교수를 깨워 산책하다. 우리가 정말 나이 60인가? 아직 40대 정도 된건 아닌가? 착하고 피부 곱던 고교수의 마음은 아직도 순진하던 옛 시절 그대로이나 얼굴 모습은 주름 꽤나 생겨난 어른이군요? 우리가 대학시절이던 70년대 같으면 고교수가 아니라 노교수지요.
5월 15일(일)
오전은 낙산사 답사이다. 재작년에 이미 양드리와 찾아와서 사원 소실이후 재정비한 모습을 본 바 있어 최근에 낙산사를 그동안 찾지 못한 친구들을 안내하다. 낙산사 해수욕장 부근 간이 횟집에서 신이나서 자연산 멍게로 시끌 벅적 한잔씩들이다. 총무가 어찌나 짠돌이(?)인지 다들 두첨밖에 못먹었다고 아우성! 자연산이라 시뻘겋다는데 좀 더 사줄 일이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점심을 이곳 횟집에서 먹으면 횡성 이완수 팬션에 준비한 횡성한우를 먹지 못하고 우리 익산 고향팀의 귀향이 늦어지는고로 아예 횡성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주문진으로 출발하다. 주문진항에서 회를 뜨는 사이 횟집에서 쐬주로 한잔씩 하고는, 마른생선가게에서 제공하는 공짜 막걸리로 두 어잔씩 더하며 한참이나 흥청대다가 횡성으로 출발하다.
횡성에 있는 이완수 총무의 팬션이다. 이 사장은이미 10여년 전에 제주도 한림읍 근처에 대규모 팬션단지를 조성하였다. 5년전쯤 12명의 친구 부부들이 제주도 팬션에 초대받아 2박 3일간 제주도를 여행한 적이 있고 그때 우리팀 중 무려 세명이 조랑말 경마장에서 단 두번째 배팅에 33만 3천원의 상금을 각각 받았다. 우리 양드리도 그중 하나이고 내가 나서서 당첨금을 모아 100만원을 이사장에게 주었고 그는 다시 우리들에게 선물을 사 주었다. 첫번째 배팅에서 당첨 번호는 3번과 7번이었고 당첨자는 겨우 3명으로 각각 4천 3백만원씩인가를 탔다. 아! 아! 남들 하는 것처럼 우승 경력 많은 말만을 골라 잡을 일이 아니었다. 우리 21회 모임의 숫자 21의 약수는 3과 7뿐이니 기발한 착상으로 3과 7을 찍었더라면 3천만원의 거금을(?) 타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을 ...에구 에구 아쉬웠었다.
지금은 제주도 팬선은 세를 내주고 이곳 횡성에 팬션단지를 꾸미는 모양인데 아직은 한 채만 완성한 상황이란다. 다들 주문진에서 주문한 회는 관심 없고 횡성 한우에만 젓가락이 간다. 나는 쇠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마는 오늘 횡성 한우는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듯 부드럽고 달콤하여 나도 많이 먹었고 횡성 한우 맛은 천하 일품임을 확인하었고 쇠고기 좋아 하지 않는다는 말도 함부로 못하겠다. 횡성 최고급 한우만큼은 좋아해야 할 것 같다. 이완수 총무가 횡성에서도 최고로 맛 좋은 고기를 구했다더니 대처 그런거 같고 한 근에 4만 5천원이라나요?
5시에 횡성을 출발하다. 갈 때는 권교수의 불량한 운전으로 험난하게 갔으나 올 때는 부인인 진선생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모셔주었다. 9시에 도착하여 금마 물머리집에서 토끼탕으로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다.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였더라면 더욱 즐거웠을 터이지만 이미 지난일 일 뿐 만 아니라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체념하며 아쉬우면서도 즐거운 1박 2일의 짧은 추억의 수학여행을 마친다.
제주도 수학여행(5월 17일-20일)
크기 : 동서 73km 남북 41km
면적 : 1,845 제곱킬로미터(대한민국의 1.8퍼센트)
인구 : 53만 여명
행정 : 제주특별자치도
기후 : 여름(해양성 기후) 겨울(대륙성 기후) 연평균 기온(섭씨 약 16도)
5월 17일(화)
나로서는 무주고 부임이래 두 번째 제주도 수학여행이다. 그것도 설악산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겨우 이틀 쉬고 출발하게 된다. 등선대에 오르느라 아직도 종아리가 약간 땡기므로 한라산 종주가 조금 걱정도 된다. 금년부터는 총비용 2천만원 이상의 수학여행은 입찰을 하게 되어 1학년 학년부 담당인 김아영 선생이 준비하느라 어느 때보다 매우 매우 힘들어 했다. 아무튼 학생 110명에 교직원 8명(교감 허대웅 김아영 신정선 이연호 권미진 김경님 이영재) 모두 118명이 아침 7시에 목포를 향해 출발한다. 내 일생에 일곱번 째 제주도 여행이 시작된다.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88고속도로 진입한다. 광주를 거쳐 목포를 향하다 휴게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다. 쾌속정 출발시간이 12시이므로 11시반 까지 터미널에 도착해야하므로 11시에 점심을 먹게 된 것이다. 김밥을 준비한 아이들도 몇 있으나 대부분은 매식한다.
작년에는 큰 배의 선두 중앙에 위치한 방을 배정받아 편안한 여행을 하는 호강을 누렸으나 이번은 작은 쾌속정이다. 씨월드 고속훼리 쾌속선인데 추자도를 거치지만 큰 여객선보다 1시간을 단축하여 3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제주항에 도착하여 우리는 큰 흥미 없으나 학생들은 상당히 관심을 갖는 프시케 월드(유리 궁전, 퀸즈 하우스), 인형사파리인 테지움을 관람하고 애월읍 부근에 있는 숙소인 아마스 빌로 가다. 원래는 제주시 숙박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우리 전북은 입찰방식으로 여행사를 정하므로 결정기간이 걸려 부득이 시골(?)로 밀려 난 듯하여 걱정도 되더니만 막상 가보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다. 우선 학생들 생활지도 걱정이 전무요, 방이 크고 깨끗하다. 수학여행단을 받는 시내 낡은 호텔(실은 모텔수준) 은 잠자는 일이 매우 힘들다. 오래된 구닥다리 침대가 놓인 작은 방은 어둡고 침침하고 깨끗치 못하여 매우 불쾌하다. 이 아마스 빌은 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팬션이므로 아파트 형이어서 아이들이 집단으로 함께 자는 즐거움도 크고 행동반경이 커 매우 자유로운 듯 하다. 식사도 5찬 이며 맛이 있어 아주 괜찮다. 저녁에는 50대 부인팀이 마당에서 신바람이 나서 강강술래를 하고 우리 아이들도 어우러져 함께 즐기는 모습이 흐뭇하다.
5월 18일(수)
오늘은 한라산 종주 등반을 하는 날이다. 원래 전임교장이신 이찬규 교장께서 워낙이 산을 좋아하시므로 학생들도 고교시절에 한라산과 지리산을 종주하도록 우리학교 특색사업으로 추진해온 터이다. 재작년에 비가 와서 큰 고생들을 하고 백록담 구경도 못하고 내려온 이유로 작년에는 지도교사 학생들 모두 한라산 종주를 꺼려하여 시행치 못했으나 금년에는 이원택 교장의 강력한 지시로 다시 시행하게 된 것이다.
성판악에서 8시 40분에 출발, 11시 30분에 진달래밭 대피소(해발 1,500m)도착하여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2.3km인데 2시간 30분이 걸리며 정말 힘드는 코스다. 대피소에서 방송으로 <힘든 사람들은 위험하므로 되돌아 하산하세요>라는 멘트가 나오므로 우리 학생들도 허용하였더니만 4시간만에 올라오지 못하고 신정선 선생과 함께 오고 있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거의 30여명이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이 아이들은 <한라산 정상 정복 인증서>를 받지 못하니 애석한 일이다. 아무개는 날샌돌이여서 혼자 앞서 정상에 오른 뒤 아무도 오는 사람들이 없자 다시 내려온다기에 < 이왕 정상에 올랐으니 이젠 성판악으로 내려가거라>하고 지도했음에도 또 다시 올라와서는 관음사길로 들어서서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교감선생님 저 또 욌어요>하고 인사하며 자랑한다. <산악구조대원하면 딱 좋겠다>고 함께 동행하는 이영재 선생에게 웃으며 얘기했더니만 웬걸 저녁에 코피를 쏟았다고 한다. 비록 날쌘돌이며 인사성도 무척 밝아 모두들 예뻐하는 아이지만 왜 개별학습반에 속했는지 이해가 조금은 가는 일이다. 정상(1950m)에서 출발한지 겨우 30여분 못미쳐 삼각봉 대피소도 못내려온 지점에서 넘어지면서 무릎이 약간 삐어서 아픈 여학생을 만나 함께 데리고 오느라 가장 뒤처지게 되었다. 우선 구조대에 요청하였더니만 모노레일이 있는 곳까지 1시간은 더 걸어 내려오라 한다. 허대웅 학생부장과 이연호 선생이 마지막으로 오기에 아이를 인계하고 우리는 부지런히 내려 왔으나 가도 가도 끝은 없고 다리는 아프며 꼴찌를 면치 못하다. 성판악에서 관음사까지 9.6km를 9시간 30분이 걸렸는데 부상학생 부축만 아니었다면 9시간 이내에 무난히 종주를 끝냈을 성 싶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면 8시간을 걸은 것이다. 비만인 나는 결코 장거리 등산을 즐기지 않는데 설악산 등반에 이어 한라산을 종주하니 오른쪽 무릎에 상당한 무리가 왔다. 조심할 일이다. 좌우간 내가 오늘 한라산 백록담에 두 번 오르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우리는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어제밤에 실컷 놀고도 부족했던지 다시 부인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노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온 팬션을 들썩거린다.
5월 19일(목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영재 선생과 함께 바닷가에 산책을 다녀오다. 이 마을 해변가는 많은 팬션이 있고 대부분은 가족을 받는 작은 규모이며 오직 우리가 숙박하는 아마스 빌만 단체손님을 받는 상당한 규모의 팬션이다. 먼저 서귀포시의 천지연 폭포를 찾았다. 천지연은 폭포도 아름답지만 폭포로 가는 진입로 주변의 풍광이 나를 매우기분 좋게 한다. 주상절리(화산활동으로 인한 액체상태의 용암이 냉각과정에서 압축력을 받아 수축장용에 의해 생겨난 틈이 절리이며 형성형태가 기둥모양이어서 주상이라하니 주상절리가 된 것이다)로 이동하여 관람하니 천지연이나 주상절리나 연 3년 연속으로 찾게 되어서인지 이젠 전혀 낯설지 않다. 청산식당의 점심은 작년에도 맛이 잇어 기억에 남더니만 오늘 식사도 대 만족!
마라도에 도착했다. 나는 이영재 선생과 섬을 한 바퀴 돌고자 부지런히 걷다. 지난해에는 김병수 선생과 열심히 걸으며 사진을 찍어 댔는데 오늘은 카메라도 없고 아이들도 관광용 전동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 몇몇만 눈에 띈다. 중간에 위치한 섬의 끝자락에는 포장마차가 있는데 이영재 선생이 굳이 생선회에 한잔씩 하자고 조른다. 시간도 없고 하여 회 반사라만 시킨뒤 막걸리 한병씩 시원하게 들이키다.
마라도는 숲이 없이 들판으로만 이루어진 탁 트인 섬이라서인지 가슴도 후련할 정도로 탁 트인다. 다른 학교학생들이 질서를 잘 지키며 선착장으로 내려가므로 우리도 아예 휴게소에서부터 열을 지어 내려가니 모두들 질서를 잘 지킨다. 고등학생들이니 자유스럽게 행동하면 좋겠지만 단체행동이란 그러다 보면 통제가 안되고 사고 위험이 도사린다. 비록 조금 부자유스럽지만 질서를 지켜 움직이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우리 어른들도 단체여행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퍼시픽랜드로 이동하였는데 도착 시간이 일러 30여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기회다 싶어 바닷가 간이 횟집으로 모두 오시라 하여 소라. 낙지, 해삼등을 시켜 소주 한잔 씩 하다. 내가 워낙 완고(?)한 사람이라 지도교사들이 저녁에 술을 하지 않도록 방침을 정하였기에 대단히 미안한 마음도 크서 주선한 일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난뒤 여러 남학생들이 팬션에 설치되어 있는 야외무대에서 모두 모여 장기자랑을 하자고 요청한다. 기꺼이 수락하고 주인에게 허락을 얻어 8시부터 9시 반까지 신나는 노래대회를 열어 시상까지 하였다. 나는 명색이 심사위원장이라 하여 무대에 올랐더니 한곡 하시라기에 조영남의 『모란 동백』을 불러 앵콜까지 받다. 지난 설악산 수학여행때 주문진으로 가는 버스속에서 모란동백을 불러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야! 가수다!’라는 찬사를 보내주고 그중 가장 미인이신 최용진 안사람은 싸인까지 요청하는 칭찬을 받았으므로 이제하 시인이 짓고 조영남이 부른 이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이다. 이 노래는 5년여 전에 절친인 김호길 선생이 구어 준 CD를 통해 알았고 노랫말이 아름다운데다 멜로디도 마치 우리 가곡처럼 아름답고 품위가 있어 요즈음 18번으로 즐겨 부른다. 19번은 송창식의 『우리는』이며 가을이면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과 고은시인이 짓고 최양숙이 부른 『가을편지』를 즐겨 부른다.
5월 20일(금요일)
마지막 날이 되다. 오늘은 제주시 주변의 탐방인데 일정이 간단하다. 미니미니랜드 관람후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다. 다음으로 한라 수목원에 도착하여 숲속에서 쉬었다. 네번째 답사지인 용두암 근처의 신화성 식당에서 식사한 뒤 용두암이다.
제주공항이 엄청나게 북작거린다. 내일이 토요일이라서인지 수학여행단이 몽땅 오늘 다 떠나는 모양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대열 맨 마지막에 서서 기다리다가 하마트면 비행기 연착시킬 번 할 정도로 진행속도가 엄청 느리고 덥기까지 하여 매우 힘들었다. 이스타나항공 소속의 소형여객기인데 스튜어디스에게 물어보니 탑승인원이 149명이라 우리가 거의 다인 셈이다. 청주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내 생전 청주공항은 처음이라서 이것도 역시 하나의 답사코스인 셈이 되었다. 버스로 1시간 반이면 학교에 도착하니 광주나 군산비행장보다 가까운 곳이다. 확실히 무주는 경남 경북과 충남 충북으로 둘러싸인 전북의 최 동북방에 위치한 지역임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지리산 팀의 환영을 받으며 해산하다. 준비부터 힘들었던 여행을 큰 사고 없이 무사하게 마침에 감사하다. 열심히 지도해준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학생들은 모두가 즐거운 여행이 되었고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거리가 많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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