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서울 유람 삼일

청담(靑潭) 2012. 1. 19. 13:06

 

서울 유람 3일  

 

  2012년 1월 겨울방학에 예정되었던 해우회 해외여행(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 발리)은 일부 사모님들의 불참의사로 간단히 좌초되었다. 5년 동안 모아놓은 적립금이 아깝다. 내년으로 미룬다지만 정황을 판단컨대 아마도 어차피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여행목적지를 모두가 만장일치로 정하는 공통분모를 찾기란 한번도 힘든데 실패후 또 다시 찾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돌려주면 좋겠다. 후일 다른 지역 여행 경비에 보태수 있게...

  설 쇠고 즉시 떠난다는 성우회 황산여행도 학교근무로 포기하다. 폐일언 하고 금년 겨울은 근무날이다, 여러 모임이다, 양드리의 서울일정이다 하여 바쁘다 보니 함께 해외는 커녕 국내여행도 떠나 볼 궁리도 제대로 못하고 4일간 서울에 머무르는 모처럼의 한가한 여유를 가지다. 내 본시 길이 있으면 가보고 볼데 있으면 꼭 찾아 보고자 함이라. 함께 병원을 찾은 하루를 빼고 3일간 부지런히 찾아본 곳에 대한 기록을 오늘 귀향하기 전에 간단히 기록하고 차츰 보완하고자 한다.

 

 

유람 제1일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중 가장 대표적인 삼각산과 남산은 올랐으나 서울장안을 둘러싸고 있는 세 봉우리, 즉 안산과 인왕산과 북악산을 여직 오르지 못했음이 큰 한이라... 모처럼 기회가 왔다. 우선 오늘 하루는 인왕산을 오르기로 한다. 오른 무릎이 좋지 않으니 북악산은 일단 후일로 미룬 것이다. 마치 가을날씨마냥 춥지도 않고 화창하다. 우선 택시로 독립문역으로 가다. 호랑이도 나왔다는 인왕산을 찾는다 하니 감개가 무량한데  택시 기사님은

 “별 볼 품도 없는 산을 뭐하러 가시나요? 지나며 보니 바위밖에 없던데...”

하며 김을 새게 한다. 김밥과 빵과 음료를 듬뿍 사고는 오르기 시작하여 인왕사를 지나 눈앞에 보이는 정상을 향해 힘차게 오르는데 일하시던 한 환경미화원이 거든다.

“ 성벽공사 때문에 진즉부터 이 길은 금지예요. 차길로 돌아가세요. 정상으로 가는 길은 모두 금지되었어요”

  별수 없이 오른 편 차길(차로)로 걸어 가다보니 정상으로 가는 길이 모두 금지된 것은 아니고 허용된 길이 있는데 아뿔싸! 오늘이 월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그저 마음만 급하다보니 사전 준비가 미약했던 탓이다. 별수 있으랴! 계획을 바꿔 처음 들어보고 처음 걸어보는 인왕스카이웨이를 걷다. 북악산 스카이웨이와 달리 이 길은 인왕산의 앞자락에 나 있기에 서울장안을 바라보며 호젓한 산길을 그것도 인왕산길을 걷는 기분은 아주 좋다. 같은 방향으로 또는 반대방향으로 간간이 운동하는 분들이 스친다. 인왕산 끝자락 즈음에 윤동주를 기념하는 작은 공원과 서시정이 나온다. 끝머리에 도달하니 인왕산과 북악산을 가르는 대로가 나오고 바로 그곳에 창의문이 당당하게 서 있다. 내심 상상히 험하다는 북악산에 오르고 싶으나 어차피 가능치 않은고로 도보운동을 계속하기로 정한다. 창의문을 지나 걷게 되면 일명 유명한 북악스카이 웨이다. 북악산의 앞은 청와대이니 길은 산이 뒷자락에 나 있다. 아마도 90년대 초반에 누군가의 자가용으로 달려보았던 길이다. 두시간 정도에 북악스카이웨이까지 두시간을 걸어 오후 1시가 되었으니 이젠 김밥시간이다. 두줄을 간단히 치우고는 하산을 시작한다. 내친김에 넉넉잡고 두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릉까지 갈까도 생각했지만 내 다리가 절대로 허용할 것 같지 않아 흔쾌히 포기하고 김신조 루트로 내려오다. 청와대 습격사건은 1968년 1월의 일이니 정확히 44년이다. 아! 거의 반세기의 세월이? 꽁꽁 얼어붙은 성북천 발원지를 거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요정(?) 삼청각앞으로 내려오니 1시간 반이 소요된다. 택시로 귀가하다.

  저녁에는 은행지점장으로 퇴직한 정영진과 고교 영어교사인 김태호를 신촌에서 만나 이런저런 학창시절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에 사간 가는줄 모르고 자정넘어까지 3차를 하며 흠뻑 취했다.   

 

 

 

창의문을 뒤로하여

 

 유람 제2일 서울 현충원(구 동작동 국립묘지)

   수유리 4.19 묘역 부근에 있는 애국지사릉들과 효창공원에 있는 애국지사릉들을 찾아 모두 참배하였으나 아직까지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묘소를 참배하지 못한것이 또한 큰 한이라. 그 옛날 이름인 동작동 국립묘지, 지금은 서울 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뀐  이곳을 반드시 찾아뵈리라 작심하였기에 예정대로 찾아뵌다. 우선 가장 방점을 둔 곳이 대통령묘소인고로 아름다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유산소운동을 하고 있다. 참배객들이나 찾는곳인 줄 알았더니 마치 공원처럼 찾아와 운동들을 하고 있는 모습이 예상과는 많이 다르나 매우 신선하다. 

  먼저 박정희(1917-1979)대통령과 육영수(1925-1974) 여사 묘역이다. 규모가 큰 만큼 위엄이 서려 있다. 참배하면서 생각한다.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당신은 온 국민이 노력하면 누구라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기틀을 닦아 주셨습니다. 오천년 가난의 역사를 이 민족 이 땅에서 물리쳤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신 겁니다. 새로운 역사를 쓰신겁니다. 당신의 의지로 당신의 집념으로 보통사람들 누구라도 당당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신 당신은 진정 이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인간입니다. 감사합니다. 따스한 눈빛으로 온화한 웃음으로 온 국민들의 존경을 받으신 육여사님! 두 분 모두 비명에 가셨으나 저 세상에서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십시오”

  좌편으로 길을 들어 조금 걸으니 김대중(1923-2009) 대통령 묘소가 나온다. 묘역은 그리 크지 않으나 아담하고 포근하여 인자하신 당신에게 더 어울리는것으로 해석한다. 엊그제 통합민주당 대표로 당선된 한명숙 전 총리가 어제 다녀갔다고 하며 조화가 서있다. 관리인이 향을 피워주면서 옆에서서 지켜보고 있다. 훌륭한 관리인이다. 참배하면서 생각한다.

“당신은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는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모진 고초를 겪으시면서도 굴하지 않고 끝내 이루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우리 전라도의 명예를 세워주시고 자존심을 지켜주신점에도 항상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민족통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 큰 스승이십니다. 우리 민족의 영광을 빌어주시고 지켜보아 주십시오.” 방명록에 요약하여 적고 사인하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승만(1872-1965) 대통령 묘소가 나온다. 박대통령 묘역보다는 작지만 규모는 역시 크다. 당연하다. 참배하면서 생각한다.

“ 당신은 선각자로 이 나라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외세를 막고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해 모진고난을 겪으시고 나라 잃은 뒤로는 민족의 최고 지도자로서 온 힘을 다해 민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시고 나라를 찾은 이후로는 오직 이 땅에 공산정권이 서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결단을 내리시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위대한 분이십니다. 비록 장기집권으로 인해 많은 명예가 훼손되었으나 대한민국이 영원한 한 당신의 위대한 업적은 언젠가는 정당하게 평가 될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 만큼 행복한 나라에서 살게 해주신 당신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지난 달 영면하신 박태준(1927-2011) 포스코 명예회장 묘역을 찾다. 독립된 묘역이겠거니 했는데 전혀 아니다. 애국지사 묘역의 한 귀퉁이에 다른 이름모를 분들과 나란히 모셔져 있다. 아직도 포스코에서 천막을 치우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며 빈소가 차려져 있다. 안내인과 인사하고 참배하다.

“ 가난한 이 나라 산업발전을 위해 먼 미래를 내다보시고 철강산업을 일으켜 당시에는 상상도 되지 않는 세계3대 철강국으로 만드어 내신 당신은 진정 이 나라 경제발전의 영웅입니다. 군인으로 국가산업의 리더로 정치인으로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시고도 부귀와 영화와 권력과 명예까지도 구차하게 탐하지 않으시고 남긴 것 없이 단 한평의 땅에 누우신 당신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업적에 비해 너무 홀대해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내 말에 안내인은

 “규정이 그렇다하니 어떻게 합니까?” 하며 겸손하게 답한다.

 “다른 총리들과는 너무나 다른 분이시지만 규정이 그렇다면 별수 없는 일이기는 한데 너무 의외라서 서운합니다. 하지만 아마 총리님은 애국지사묘역 한 평이 오히려 편한하실 분이시기도 하지요.” 라고 위로했다.

  애국지사 묘역을 둘러보면서 전명운 의사, 장인환 의사, 서재필 박사. 이회영 선생의 묘소에서는 각각 별도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머리 숙이고 참배드리다. 저녁에는 직장 퇴직후 뉴질랜드에서 10년을 살다가 영구 귀국한 이정용, 팬선사업에 주력하는 사업가 이완수, 교사인 김용문등 고교시절 친구들을 잠실에서 만나 식사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다. 서울에는 사업하는 친구인 김기호가 하나 더 있고 지방에는 대학 총장인 성시종, 목사인 임세훈, 교사인 이윤수, 이종철 그리고 나 모두 9명이 고교 친구모임이나 매우 오랫동안 함께 만나지 못하고 있다. 모임을 되살리고 자주 만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역

 

 

 

 

 김대중 대통령 묘역

 

 

 

 이승만 대통령 묘역

 

 

유람 제3일 손기정 체육공원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울역 뒷편에 손기정 체육공원이 있으니 내 아니 가 볼 손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세계적인 마라톤 영웅 손기정(1912-2002) 선생을 기리는 체육공원인데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다. 식민지 조선땅의 청년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하고 그로 인해 일장기 말소사건이 일어났다. 손기정 선생의 마라톤 우승이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끼친 민족적 자부심은 대단히 컸으며 따라서 독립정신 고취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시절부터 1976년 양정모 선수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때까지 아니 이후 우리나라가 비로소 잘 살게 된 1980년대까지도 선생은 우리의 위대한 영웅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56년만에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또 하나의 금메달을 따고와 관계없이 선생은  이 나라 이 민족의 위대하고도 영원한 역사적 영웅이시다.

  공원의 넓이는 약 1만평이다. 모교인 양정고교에서 1987년 9월에 학교를 옮기면서 학교 건물을 기념관으로 하고 교정을 체육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손기정 기념비와 손기정 흉상과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당시 수여된 월계관은 본래 월계수가 아니고 미국산 참나무였다고 하며 선물로 받은 참나무 묘묙을 가져와 모교인 양정고교에 심었다고 한다. 이 참나무 묘목이 큰 나무가 되어 지금도 당당하게 서 있고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생의 흉상 앞에서 참배하면서 당신이 세상뜨시기전 직접 한번 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생전에 브라운관을 통해 뵙는 그 분은 키는 작으시지만 진정한 애국자이시고 거인이셨다. 10년 전에 세상을 뜨셨지만 선생님 다시 브라운관에서 그 모습 뵙고 싶습니다. 

 

 

 

손기정 선생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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