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4일
(2013.12.30-2014.1.2)
프롤로그
추석에 내려온 나의 사랑하는 아드님과 따님이 가족여행을 제안한다. 기꺼이 응하고 날자와 여행지 물색에 나섰다. 우리는 방학이라서 아무러나 무난하지만 아들과 딸의 연가를 최소화 하려다 보니 시기는 연말연시로 정해지고 장소는 오키나와로 정해졌다. 연말연시 여행은 처음이라 새롭고 오키나와는 진즉부터 가고 싶던 곳이다. 이제 나는 토쿄일대와 오사카 일대, 그리고 큐슈일대와 쓰시마 섬을 다녀온 바 있으므로 이참에 오키나와를 답사하면 홋카이도만 남는다. 승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큐슈를 다녀온 바 있고 승원이는 대학시절 쓰시마를 답사한 바 있다. 양드리는 나와 함께 토쿄일대와 오사카 일대 그리고 쓰시마를 다녀온 바 있으나 큐슈지방은 가지 못했다. 이승원 사원은 2005년에 우리와 같이 동북 3성 지역에 다녀온 바 있고 그 뒤 2007년에는 계림․시안지역에 함께 다녀온 바 있다. 그러나 이승수 팀장은 해외여행을 함께 할 기회를 같지 못해 서운하던 차 모처럼 네 가족이 해외여행을 함께 하는 기회를 갖게 되니 그 기쁨이 크다. 하나투어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저가항공과 리조트 아닌 일반 호텔)으로 가게 되었으나 경비는 더치페이! 그러나 공동경비(물, 생맥주, 사케, 과자등 간식비)는 딱 2만엔만 내가 제공한다. 일본의 엔저정책으로 환율이 100엔대 1058원이니 일본 여행하기 마음 한결 편하다.
♣돌아온 다음날 환율은 1000원 이하로 까지 떨어졌다. 1달러 1070원, 1위안 180원 등 원화강세로 우리 국민들의 해외여행하기에는 최고로 좋으나 장차 수출은 여전할 지 걱정이다. 작년 수출이 호조였고 달러 보유고가 사상 최고라 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그래도 걱정은 아니할 수 없다. 우리 국민들 경제 근심 덜어주는 정부의 노력과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의 노고에 감사할 뿐...오늘도 국가번영과 국민의 먹고사는 일과는 전혀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이념과 주의를 선동하고 자신들의 자리(지방선거)와 권력쟁투에 하루도 여념이 없는 저 웃기는 정치인들은 당연 제외죠. 실제로 일반 시민들 먹고사는 형편은 우리나 일본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하고 우리 한화 만원이나 일본엔화 천엔이나 거의 같은 가치로 쓰이니 일본에 대한 자격지심같은 건 우리 마음속에서 벌써부터 사라졌다. 아! 대한민국! 문제는 경제죠! 오늘 신문에 보니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82%가 경제를 꼽았다고 하는군요. 강한 선진국을 향한 경제 발전 노력과,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나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부의 균배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어느 한쪽에 쏠림이 없이 계속되어야 하지요.
오키나와(沖繩;충승)의 역사
하늘의 신들이 섬들을 만들고 부부신을 내려 보내 그 장남이 왕이 되었다. 그 후손이 12세기 말 안지(지방호족)들의 반란 와중에 살해된다. 日本에서 친제이 하치로가 건너와 <승천>이 되어 3대를 다스리고 영조에게 선양하여 5대를 다스렸다. 14세기 4대 타마구스쿠왕 때 왕권이 약해져 각지 호족들이 왕을 자처하는 미야마(三山) 시대가 전개된다. 나카야마(中山), 키타야마(北山), 미나미야마(南山)는 미나미야마의 쇼하시에 의해 통일되어 1406년에 류큐왕국(琉球王國)이 세워졌다.
1609년 전국시대가 끝나고 사쯔마번이 침공하자 패배하여 아마미제도를 빼앗기고 일본의 조공국이 된다. 1872년 오키나와번이 설치되었고 메이지유신후인 1879년 일본은 류큐왕국을 멸망시키고 오키나와를 일본에 병합하였다. 1945년 태평양전쟁시 미국이 점령하고 미국령이 되었다가 27년만인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오키나와의 현황
일본은 1都(도쿄도) 1島(홋카이도) 2府(오사카부, 교토부), 43개縣이 있는데 오키나와는 縣이다. 면적은 2275㎢로 제주도(1826㎢)보다 크다. 인구는 140만 명이나 된다. 섬들은 대소 6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 주도(主島)인 오키나와섬이 총면적의 53%, 총인구의 85%를 차지한다. 현의 중심은 나하시(那覇市)이고 11市 11町 19村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미군이 약 20%를 군사지역으로 점하고 있다.
답사로
제1일(2013.12.30)
전날 서울에 올라와 자고 이승수 팀장의 k3로 영종도로 달린다. 나는 촌스럽게 마포대로로 나가 공항리무진버스를 타려 했으나 정작 승용차로 가보니 지하에 어마어마한 주차장이 있고 4일간의 주차비는 4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시간도 5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엄청 편하고도 2만원 절약했다.
10시 50분에 이륙하여 정확하게 2시간 만에 나하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하나투어의 김태년씨다. 81학번의 사범대학 출신이니 나하고 딱 10년차다. 점심은 기내에서 삼각김밥 한 개와 작은 빵 하나로 때웠는데 도착하자마자 곧 바로 견학이다. 기후는 예상보다도 더 따뜻하여 낮 기온이 섭씨 15°~20°여서 가을날씨라기 보다는 봄 날씨라는 표현이 맞다.
일행은 모두 16명인데 우리 가족이 4명, 4인 가족(부부, 대학생 아들과 딸), 50대 부부가 두 쌍, 30대 부부 한쌍, 할머니와 금년에 대학 합격한 손녀딸 팀이다.
유리공장
아름다운 색유리로 컵이나 접시 등 그릇을 만드는 곳인데 관광객들이 제작과정을 구경하고 직접 체험도 해보는 곳이다. 컵 하나에 만원이 넘고 기왕 사게 되면 서 너 개는 사야하므로 값도 만만치 않고, 귀국 때까지 관리도 힘들므로 사는 사람은 없다. 대롱에 입을 대고 불어 만드는 수공작업이므로 흥미 있는 구경거리지만 나는 이미 어린 시절 학교 앞에 전구공장이 있어 아침저녁 등굣길에서 실컷 보았기에 경이로움은 별로 크지 않다.
오키나와 평화공원 및 한국인 위령탑
오키나와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3월 말부터 6월 23일까지 일본 류큐제도의 오키나와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이다. 개전 후 처음으로 일본 영토 내에서 벌어진 전면전으로 4월 1일 오전, 미군은 주력 4개 사단 병력으로 가데나만에 상륙하여 순조롭게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5월 31일, 일본군은 이미 전력의 85%를 잃었고 사령부는 섬 남단 마부니고지의 동굴로 퇴각하여 옥쇄의 준비에 들어갔다. 6월 19일 사령부 참모가 전원 출격하여 전사하였고, 6월 23일 오후 4시 30분에 우시지마 사령관 및 죠 참모장이 할복 자결함으로써 전투가 종결되었다.
83일에 걸친 전투에서 미·일 양쪽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측 추산으로 일본군 전사자는 10만 2000명, 미군 전사자는 4만 7000명이며, 미군 추산으로 일본군 전사는 6만 5000명, 미군 전사자는 1만 1933명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오키나와 본섬의 주민들로, 사망자가 1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오키나와 평화공원은 오키나와 남쪽 아름다운 바닷가에 조성되었는데 거대한 추도탑이 있고 바다는 끝없이 짙푸르게 펼쳐져 있다. 한국인 위령탑은 오키나와전투에서 희생된 한국의 젊은 영혼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키나와 평화공원 내에 건립하였다. 우리의 위령탑과 추도비는 공원내에 1975년 8월 광복 30주년을 맞이하여 세웠는데, 위령탑을 쌓은 돌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수집되어 오키나와로 옮겨진 것이다. 당시 1만여 명의 한국 청년들이 오키나와전투에 투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총 313명만이 확인되었다. 위령탑 앞에 있는 태극기에는 일본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추모하는 우리 국민들의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은상 시인의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가 새겨진 비문 옆에는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위령비 앞에 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다.
옥천동굴
약 20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동굴이다.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의 환선동굴이나 고수동굴 등에 결코 비할 수는 없으나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 할까?
오키나와 월드
옥천동굴을 나오면 바로 부근에 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최대의 테마파크라고 한다. 민속관련 갖가지 볼거리가 있다는데 민속공연장에 시간을 맞추느라 설렁설렁 지나쳤다. 주로 북으로 장단을 치며 이루어지는 격렬한 민속춤과 노래를 들으니 엄청난 힘과 열정이 느껴진다. 공연하는 사람들의 자신들의 민속예술에 대한 자부심어린 자세가 돋보이다.
6시에 일식부페로 식사하다. 고급은 아니지만 먹을 만해서인지 아니면 점심을 굶어서인지 다들 과식하는 듯 잘 먹는다.
우리 일행이 3일간 묵을 호텔은 항구변에 있는데 르와지르 호텔이다. 원래는 치산호텔이 있어 그 옆에 새로운 호텔을 짓고 3층에서 서로 연결된다. 우리가 잠을 잔 곳은 치산호텔 건물로 10여층 중 3개층만 아주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 작은 방에 들었다. 작지만 아주 깨끗해서 전혀 불편이 없고 식사나 사우나, 기타 행사는 신 건물에서 이루어진다. 치산호텔임을 시민들이 알지만 이제 그 명칭은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고 그냥 르와지르 호텔로 불린다.
첫날이라 피곤하여 온천가기가 귀찮아서 샤워만 하고 가족이 모여 수퍼에서 사온 캔 맥주를 즐겁게 마시고 (그 니들은 자기방으로들 가시고) 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보니 밤늦게 팔씨름대회를 한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K1 선수들이 출전하여 흥미로웠는데 밥샵이 강호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하는 기염을 토하여 우리는 크게 놀랐다. (깅상도 말로)
?밥샵 아직 안죽고 살아있네!?
제2일(2013.12.31)
癸巳年의 마지막 날이다. 계사생인 내가 이제 다시는 계사년을 맞이할 수는 없다. 선조들은 六十甲子를 다시 맞는 것을 환갑(회갑)이라 하여 기념하고 60년을 살게 된 것을 축하하였다. 아무리 수명이 길어져서 회갑잔치는커녕 70순 잔치도 없어지고 큰 병이 들지 않는 한 남자는 80세를 무난히 넘기고 여자는 90세를 넘기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120세는 언감생심이다. 30-40대 젊은이들은 100세 시대를 맞이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다한들 정녕 120세를 넘을 순 없으리라. 90까지 건강하게!
아침식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뷔페식. 그러나 내가 집어오는 건 그저 빵 두세 개와 음료 한 잔과 우유 한잔이 전부다. 생선회를 좋아하고 밥을 좋아하는 내가 호텔에서의 아침 부페식엔 으레 빵과 음료수와 우유와 커피다. 빵이 부드럽고 레몬쥬스가 맛이 있다.
수리성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먼저 나하시(那覇市)에 있는 首里城에 간다. 쇼하시에 의해 1406년 류큐왕국이 세어진 이후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패망할 때까지 470여 년 동안 왕국의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나지막한 산을 이용하여 뒤로는 해자를 두르고 앞으로는 겹겹이 성벽을 쌓은 견고한 궁성이다. 1945년 미군의 공격시 일본군이 지하에 벙커를 만들었으므로 맹폭격을 당해 파괴되었으나 일본 반환 2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왕궁을 직접 들어가 돌아 볼 수 있는데 언제나 일본 건물에서 보고 느끼며 감탄하는 것은 저 놀라운 실용성, 효율성, 합리성, 과학성이다.
아메리칸 빌리지
미국이 27년 동안 지배하였고 아직도 미군이 많은 곳이기에 생겨난 지역이다. 특별히 미국인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이젠 그냥 관광객을 유치하는 상업지역이 아닌가 여겨진다. 시간이 많이 주어져 가랑비를 맞으며 양드리와 함께 운동 겸 산책을 하다.
민속촌
스테이크로 점심을 먹다. 가이드님이 스테이크라 별 재미없을 것이라 하더니, 웬 걸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에 요리사들의 그릇돌리기 묘기도 일품이다. 즐겁고 행복한 점심을 먹고 30여분 북으로 달리니 작은 민속촌이다. 숲을 배경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는데 마치 작은 민속공원이라 할까? 중앙마당에서 민속공연이 있어 관람하였으나 그 외는 볼거리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다. 두어 시간 조용히 쉰 느낌?
만좌모
민속촌에서 또 다시 북쪽으로 달려 도착한 곳이 만좌모이다. 만 명이 앉을 수 있는 잔디밭이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절벽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름답게 어울리는 곳이다. 저 멀리 건너편에 아름다운 호텔이 보이는데 2000년 8개국 정상회의 때 클린턴 대통령이 묵은 호텔이라고 한다. 오늘은 만좌모까지 오키나와 본섬의 중부지역까지 여행을 한 것이다. 내일은 중북부까지 가게 된다.
나하국제거리
오키나와 현청 앞에 버스를 대고 내린다. 현청 옆에는 의회가 보인다. 이곳에서 약 15분 정도 걸어서 번화가를 구경하고 금돈(金豚)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재래시장이 있어 둘러보았으나 별로 흥미롭지 않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배불리 먹고 호텔로 돌아오니 우리 아드님과 따님은 못내 서운한 듯 기어이 시내에 다시 나가신다. 우리는 일본 챔피언과 과테말라 도전자가 벌이는 WBA 플라이급 세계챔피언전을 구경하고 나니 11시다. 곧 아들과 딸이 돌아와 모두 함께 호텔 3층 뒤 대형 야외 라운지에서 벌어지는 송년공연장에 가보니 수 백 명의 투숙객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호텔 바로 뒤편의 항구에서 불꽃놀이 축포가 하늘높이 솟아오르고 여행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공연단과 춤과 노래를 함께 하는데 베란다가 보이는 항구 쪽 객실에 든 여행객들이 자기방의 베란다에 나와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은 여간 재미있는 장면이 아니다.
우리는 방에 돌아와 미리 준비한 캔 맥주와 샤케로 갑오년 신년맞이 축하를 하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각각의 바램과 덕담을 나누었다.
제3일(2014.01.01)
아침에 일어나 30여분 호텔주변을 걸으며 운동을 했으나 정작 갑오년 새해 첫 날 해 뜨는 구경은 전혀 생각지 못하다. 어쨌든 갑오년 새해 첫 날이다. 양드리 해다. 새해 1월 1일 첫날을 외국에서 맞이하는 것은 또 첫 경험이다. 9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한다.
코우리지마
고속도로를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코우리지마 다리와 코우리 섬이다. 이 다리는 1960m의 다리인데 무료통행이 가능한 다리로서는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다리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오키나와 최고의 바다경치라고 하며 작은 무인도들이 점점이 늘어져 있는 모습도 일품이다. 둥그런 코우리지섬의 모래밭에서 40여 분 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아드님과 따님은 신발을 벗어놓고 즐거워한다. 우리 따님은 기념으로 가져간다며 갖가지 모양의 산호들을 많이 줍고는 또 즐거워한다.
후르츠랜드
과일농장이다.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여러 열대 과일농장을 경영하면서 농장에 연결하여 새와 나비도 기르며 여러 볼거리를 제공하고, 가게에서는 물건을 판매하고 겸하여 식당도 경영하는 곳이다. 점심은 도시락인데도 먹을 것이 많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츄라우미 수족관
오후는 일본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보낸다. 이 수족관은 1975년 오키나와에서 개최된 EXPO를 기념하여 만든 국영공원인 해양박람회 기념공원 안에 있다. 규모가 어마어마한데다 찾은 관광객이 만만치 않다. 이번 연말연시에 오키나와를 찾은 한국인들은 별로 만나지 못했고 중국인들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연초에 가족끼리 공원을 찾은 현지인들이 대부분인듯 하다. 지난 번 타이완 여행에서 느낀 바 있지만, 이곳 오키나와인들도 키가 상당히 작다. 내 짐작으로는 성인 남자들이 160cm 정도인 사람들이 많고 여성들은 150cm정도인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10cm 정도의 차이는 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60대 평균정도인 나와 양드리가 큰 편에 속하고, 20대 여성평균키인 이승원 사원은 제법 큰 키에 속하며, 20대 평균키보다는 적당히 큰 이승수팀장만한 청년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관람객 인파에 휩쓸리다시피 하면서 수족관을 구경하는데 거대한 고래상어, 쥐가오리 등 여러 물고기들의 노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특히 고래상어의 먹이 먹는 모습에 관중들이 열광한다. 바닷가에서는 돌고래쇼가 펼쳐져 관람하였는데 우리나라 쇼와 크게 다름은 없다. 앞에 보이는 큰 섬은 이에섬인데 경관이 아름다운 듯하여 물어보니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섬이라 한다. 나하시로 돌아오는 중에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오키나와식 식사로 역시 먹을 만하고 처음 보는 바다에서 자연 채취한 식물(털 달린 이쑤시게 모양?)이 있어 사장의 설명을 들으며 맛을 보았는데 상큼하다.
아들과 딸은 시내에 함께 나가자 조르는데 모두 피곤하므로 포기하기로 하고 나는 온천장에 갔다. 옷을 벗고 있는데 아니 탈의실에 웬 여자가? 말로만 듣던 남탕에서 써빙하는 여성이다. 60세 정도의 여성인데 이탕 저 탕을 돌아다니며 온도계로 물의 온도를 재고 다니며 수건을 치우고 청소를 한다.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소년 하나가 하늘로 치솟은 잠지를 수건으로 가리지도 않은 채 당당하게 아줌마에게 수건을 달라고 하는데 그 아주머니 수건을 갖다 주면서 아이의 치솟은 잠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얼굴은 야릇한 무표정이다. 그 광경을 구경하는 내가 여전히 놀랍기도 하고 한편 우습기도하여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였다.
제4일(2014.01.02)
후쿠슈엔
오늘은 마지막 날인데 일정이 느긋하여 10시에 출발하다. 오키나와 나하시 와 중국 푸젠성 푸젠시는 1982년에 국제 우호도시 관계를 체결하였는데 1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에 완성된 푸젠성(복건성)과 저장성(절강성)식 정원이다. 규모는 작으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중국식 정원이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리 가족들이 신이 나서 카메라 셔터를 막 눌러대다.
마지막으로 JTC 오키나와점에서 관광객들이 선물을 준비한다. 양드리가 아드님에게는 시계를 사준다. 이미 딸에게는 인천공항에서 등가방을 사준 바 있으니 아들도 사주어야지.
2시에 이륙하여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집에 오니 5시 반이다. 짧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운 옛 유구국 여행을 무사히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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