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도봉산과 갈라파고스

청담(靑潭) 2014. 5. 7. 00:02

 

 

도봉산과 갈라파고스

 

 

 

프롤로그

  5월 5일 어린이날이 月曜日인데 陰曆 4월 초파일이 5월 6일이 되어 火曜日이 되니 黃金連休다. 敎師들은 放學이 있어 旅行 다닐 時間이 充分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많은 부러움을 사지만, 봄․가을 좋은 철에 이런 旅行機會는 그다지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 따님은 獨逸에 있는 親舊들과 만나 英國과 獨逸을 旅行하기 위해 會社에 休暇를 내고 이미 떠났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아들과 함께 보내며 도봉산 登山도 할 겸 가벼운 計劃을 세워 高速버스를 타고 아들 혼자 남은 서울집으로 떠난다.

 

 

■첫 날

  오전에 전주의 오교장 따님 결혼식에 참석하고, 김제로 가서 어머니를 뵙고 곧 집에 돌아와 여행준비를 간단히 하고는 고속버스로 서울로 떠났다. 황금연휴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내려온다.

 

 

■둘째 날

  오늘 계획은 원래 양드리, 이모, 이승수매니저와 함께 넷이서 서울 숲, 올림픽 공원, 그리고 석촌호수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차질이 빚어졌다.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청평호수까지 바이킹(자전거 여행)을 간다하고, 양드리는 오랜만에 엄마 노릇 하고 싶어 아파트 대 정리를 한다 하므로 할 수 없이 혼자 나섰다. 이승수매니저의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어(핸드폰의 네비게이션을 이용) 내가 운전에 자신이 없으므로 서울 숲은 다음기회에 서울어린이대공원과 묶어 가기로 하고, 오늘은 올림픽공원석촌호수만 답사하기로 하며 차편은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가끔 지하철을 타보면 타는 곳 찾기가 상당히 헷갈리기도 하고, 자동판매기에서 차표를 사는 일이며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는 나오면서 거스름돈까지 환전기에서 찾아야하므로 귀찮기도 하고, 또 목적지까지 다시 택시를 타기가 그리 쉽게 결정되어지는 일이 아니어서 그저 대략 10여분은 걸어야하므로 매우 불편타 생각하고 거의 이용하지 않고 주로 택시를 탔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게 되므로 이를 걱정(?)하여 아들과 이모가 편하게 다녀오라며 서로 카드를 빌려준다.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출발하여 올림픽공원역에서 내렸다.

 

 

●올림픽공원

전체면적은 43만 8000평이다. 서울특별시가 1,82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1984년 4월에 착공해 1986년 4월에 완공하였다. 원래는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체육· 문화예술· 역사· 교육· 휴식 등 다양한 용도를 갖춘 종합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마다 남성고서울동문회에서 주최하는 체육대회가 주로 서울 잠실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나는 해마다 참석하지만 88서울올림픽 종목별 경기장들이 잠실운동장과 올림픽공원에 분산되어 있는 줄은 솔직히 잘 몰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때 주경기장에서 육상만 하루 관람했고 그동안에 잠실운동장만 찾았으므로 이곳 올림픽공원은 처음 찾게 된 것이다. 잠실운동장에는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실내체육관, 수영장, 야구장, 학생체육관등이 있고, 정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이 공원에는 수영경기장, 체조경기장, 핸드볼경기장, 역도경기장, 테니스경기장, 벨로드롬, 컨벤션센터 등이 있고 몽촌토성을 이용한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경기장들을 지나쳐서 한성백제박물관에 들어갔다. 가까이 있는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하남위례성의 주 궁궐터이며 이곳 몽촌토성은 별궁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백제의 서울이 공주와 부여만이 아니라 500여년(B.C 18~A.D475)의 수도가 이곳임을 확실하게 잘 설명해 놓고 있다. 우리 익산도 물론 무왕시기에는 자신의 출생지이기도 하지만 군사적으로 남방진출을 위한 전략기지로서 왕이 머무르던 왕궁이 있던 도읍지의 하나임이 분명하나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못한다. 내일이 어린이 날이라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눈앞에 몽촌토성이 나타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1980년대 중반 이 공원을 조성중일 때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고 그때 토성을 복원하며 연못을 만들던 황량한 광경이 떠올랐다. 30년 전 일이다. 토성위에 오르니 토성 둘레길을 많은 시민들이 걸으며 운동을 한다. 토성은 웅장하고 해자의 규모도 크거니와 물은 파랗게 맑고 크게 자란 나무로 덮인 숲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서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다. 갈 곳도, 볼거리도, 먹거리도 많고 많은 곳이 서울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서울이 복잡하고 살기 힘들다며 나이 먹으면 시골에 내려온다고 말한다.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만일 내가 그동안 서울에서 근무하고 살아왔다면 은퇴 후 서울의 구석구석을 찾으며 즐길 것이 틀림없다. 내가 비록 은퇴 후 시골에서 살게 될 터이나, 두고두고 서울의 명소를 두루두루 찾아 오늘처럼 기쁨을 맛보며 즐기리라. 안내판을 보니 토성둘레길이 2.5km나 되어 한바퀴 전부 돌기를 포기하고 곰말다리를 건너 평화의 광장으로 나왔다. 평화의 광장도 크고 세계평화의 문의 위용이 대단하다. 오늘 풍납토성까지 찾는 것은 택시를 타면 모를까 아무래도 지리에 어두워 무리일 듯싶어 밖으로 나와 석촌호수를 찾아 걸었다. 석촌호수는 롯데월드 뒤편에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다.

 

                                                                    몽촌토성위에서 바라본 해자

 

●석촌호수

  호수의 면적은 21만 7,850㎡이며 담수량은 636만t, 평균수심은 4.5m이다. 호수 조성 후 송파대로(서울 송파구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간선도로)가 호수를 가로질러 가게 되면서부터 동호(東湖, 10만 5,785㎡)와 서호(西湖, 11만 2,065㎡)로 구분됐다. 동호와 서호를 합친 호수 둘레는 2.5km에 달한다.

  석촌호수가 있는 곳은 본래 송파나루터가 있었던 한강의 본류였다. 송파나루터는 고려와 조선 왕조에 이르는 동안 한성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고 한다. 현재 석촌호수 동호에는 송파나루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과거에 잠실 쪽 한강에는 토사가 쌓여 형성된 부리도(浮里島)라는 섬이 있었는데, 부리도를 중심으로 남쪽 물길과 북쪽 물길 즉 송파강과 신천강을 이루는 샛강이 흘렀다. 1971년 4월 부리도의 북쪽 물길을 넓히고, 남쪽 물길을 폐쇄함으로써 섬을 육지화하는 대공사(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가 시작되었고, 그때 폐쇄한 남쪽 물길이 바로 현재의 석촌호수로 남게 된 것이다. 당시의 매립공사로 생겨난 땅이 현재의 잠실동과 신천동이다.

  1970년대에는 볼품없던 호수였으나 1981년 호수 주변에 녹지를 조성하고 산책로와 쉼터 등을 설치하여 공원(송파나루공원)으로 만들면서부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다. 한동안 수질악화와 악취로 외면 받기도 했으나 2001년부터 송파구가 석촌호수를 명소화 사업대상지로 선정하여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벌인 후부터 수질이 많이 개선되었다. 2.5km의 호안 중 1.88km의 콘크리트 호안시설을 철거하고 대신 수생식물을 심어 생태호안으로 바꾸었고, 한강물 순환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생태가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대처 내가 석촌호수를 잘 알지도 못할 뿐 만 아니라 더더욱 가본 일은 전혀 없어 많이 궁금하고 와보고 싶은 호수였다. 오호라! 1970년대에 생겨나고 1980년대에 공원이 되었다니 대처 그럴 만하다. 서호는 롯데월드에서 매직아일랜드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하는데 나는 동호로 내려갔다. 물이 아주 깨끗하다. 서울 강남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것도 놀랍고 물이 너무 맑은 것도 놀랍고 내가 처음 와본 것도 놀랍다. 지도에는 서호의 입구에 삼전도비가 있다하여 그 쪽으로 이동하려하다가 확인차 핸드폰으로 지도를 다시 찾아보니 그게 아니다. 석촌역을 지나 내려가 석촌초등학교 부근 공원에 삼전도비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맞는가보다 여기고 걸어 내려가다 김치찌개로 점심도 해결했다. 핸드폰의 지도를 보아가며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니 작은 공원이 나오는데 정작 삼전도비가 없다. 아니 이렇게 황당한 일이? 공원에서 나오시는 할머니께 물으니 옮겨갔다는 말씀이시다. 아! 석촌호수 서호 곁으로 옮겨진 것임에도 아직까지 인터넷 지도에는 여전히 남아있어 나를 이토록 허망케 하는구나.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찌되었든 잘 왔다는 생각이다. 1976년경 답사차 찾았을 때의 이곳 모습이 확연히 기억된다. 우리 국사교육과 2.3학년은 합동으로 경기도․ 서울일원으로 답사를 왔고 남한산성을 거쳐 서울로 가는 비포장 2차선 국도를 달리다 이곳에서 멈추었다. 버스길 옆 논바닥에 비석은 뽀얀 먼지를 온통 뒤집어 쓴 채 쓸쓸하게 아주 외롭게 서 있었다. 그 시골 논바닥이 지금은 석촌동이며 삼전도비가 서 있는 곳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았던 것인데 무슨 이유로인지 석촌호수 부근으로 옮긴 것이다. 왜, 언제 옮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무리 부끄러운 역사유물이라 할지라도 그처럼 소리 없이 제 위치에서 옮겨버려도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많은 의문도 생긴다. 다시 석촌호수로 갈 생각은 나지 않아 옛 삼전도비가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의 장소에 와본 것만으로 만족하며 돌아왔다. 이전한 이유를 찾아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전도비

  2010년 4월 25일 우리민족 수난의 상징인 '삼전도비'가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고증을 거쳐 처음 세워졌던 잠실동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이전되었다.

삼전도비의 정식명칭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로 1639년 병자호란에 패한 조선이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어 세운 비석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기록한 비로,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비신의 앞뒷면에 몽골, 만주, 한자 이렇게 3개국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1895년 고종의 명으로 강에 수장했다가 1913년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워졌다. 1955년 문교부에 의해 치욕의 역사물이란 이유로 다시 땅속에 묻혔다가 1963년 홍수로 모습이 드러나자 이후 2~3차례 자리를 옮겼다가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역사적 연고가 전혀 없는 지금의 석촌공원(석촌동 289-3)으로 옮겨 세웠다. 특히 2007년에는 붉은 페인트로 훼손되는 수모를 겪는 등 역사만큼이나 고난이 끊이지 않았다.

  송파구는 2003년부터 삼전도비 이전에 대해 문화재청 심의를 요청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원 위치에 대한 정밀한 고증이 없는 한 이전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송파구는 서울학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3월 원위치 고증을 제출했다. 문화재청이 최초 위치에서 가장 근접한 지역으로 조건부 승인을 통보해왔다.

  삼전도는 한강가의 나루터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삼전도비의 위치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187로 인조가 항복의 예를 올렸던 수항단이 세워졌던 자리로 그 위치는 현 롯데월드 바로 밑 석촌호수 서호의 북동쪽 부분 수중으로 고증됐다. 즉 삼전도는 서호안에 위치하였다는 것이다.

 

공원에 자리한 삼전도비

  삼전도비를 수중에 설치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가장 근접한 곳으로 옮긴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내가 1976년에 답사했던 장소는 결코 오늘 내가 찾은 공원자리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조사하고 나니 의문이 풀렸다. 속이 시원하다.

 

참고자료

삼전도(三田渡)- 석촌호수의 서호에 위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던 한강 상류의 나루. 1439(세종 21)에 신설된 나루로, 도성(都城)의 중심지로부터 30리 지점, 상류의 광나루[廣津]와 하류의 중랑포(中浪浦) 사이에 있었다. 당시 서울과 광주의 남한산성을 이어주는 나루로서, 9품의 도승(渡丞)을 두어 이를 관리하였다. 서울에서 지금의 성동구 왕십리와 뚝섬 사이 살곶이다리[箭串橋]를 지나, 신천동(新川洞)과 잠실동이 있는 하중도(河中島)를 건너 송파에 이르도록 뱃길이 마련되었다. 병자호란 때 수항단(受降壇)을 쌓고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한 곳이며, 청나라의 전승비(戰勝碑)이기도 한 삼전도비(三田渡碑)로 더 알려져 있다.

 

송파나루-석촌호수의 동호에 위치

석촌호수가 있는 곳은 본래 송파나루터가 있었던 한강의 본류였다. 송파나루터는 고려와 조선 왕조에 이르는 동안 한성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고 한다. 서울과 광주(廣州)를 잇는 중요한 나루로, 잠실(蠶室)과의 사이를 왕복하고 땔나무와 담배 등을 서울에 공급하였다. 이곳에는 송파진(松坡鎭)의 군영이 있었으며, 송파진의 별장(別將)이 송파나루와 삼전도(三田渡동잠실·광진(廣津독음(禿音) 등의 나루터를 함께 관할하였다. 현재 석촌호수 동호에는 송파나루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셋째 날

  오늘은 오랫동안 별렀던 도봉산행이다. 서울 중심부에 있는 주요 작은 산으로는 남산, 인왕산, 북악산, 안산 등이 있는데 인왕산과 북악산을 지나는 등반을 한 바 있고 안산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서울을 둘러싼 많은 산들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대표적인 4대산은 북한산(삼각산 : 836m), 관악산(629m), 도봉산(740m), 수락산(640m)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제까지 북한산만 다녀온 셈이다. 기필코 다른 세 산들을 모두 정복하고 싶어 오늘 정복할 하나를 선택하는데 의견을 모아 우선 도봉산을 택한 것이다. 이모랑 함께 이승수매니저의 차로 내부순환로를 타고 도봉산 분소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다.

 

●도봉산

  도봉산은 서울 북쪽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739.5m이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자운봉(紫雲峰)이다. 북한산(北漢山)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우이령(牛耳嶺:일명 바위고개)을 경계로 북한산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북으로 사패산이 연이어 있다. 면적이 24㎢로 북한산의 55㎢에 비해 등산로가 더 조밀하며, 산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주봉· 우이암과 서쪽으로 5개의 암봉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오봉 등 각 봉우리는 기복과 굴곡이 다양하여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 도봉산의 능선을 이루는 칼바위, 기차바위, 해골바위, 피바위 등 재미있는 이름의 바위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중 선인봉은 암벽 등반코스로 유명하다.

  와! 사람 참 많다. 휴일 도봉산을 찾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산을 오른다. 산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길이 좁은데 등산객은 넘쳐서 사람들이 걸려 오르기 힘들다. 우리는 모두 등산을 잘하는 팀이 아니므로 중간에 김밥으로 점심도 먹으면서 쉬엄쉬엄 2시간 반이나 걸려 장엄한 만장암, 성인봉아래 도착했다. 조금 더 가게 되면 바로 보이는 최고봉인 자운봉이지만 양드리씨가 힘들어 하므로 하산 시작! 내려올 때는 1시간 20분 만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리 꽤나 아프다. 동부간선도로와 강변북로를 타고 오니 30분 만에 집에 도착한다. 이만하면 저 유명한 도봉산 정복 끝!

 

                                                                              처음 찾은 도봉산

 

■넷째 날

  연휴 마지막 날이다. 내려오는 길에 이승수매니저네 회사를 구경하다. Galapagos! 아기자기하게 잘 꾸민 사무실이 예쁘다. 날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회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이승수매니저의 미래가 한없이 아름답고 가는 길이 창대하기를 아버지가 기원합니다.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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