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사천성 유람(2014)

청담(靑潭) 2014. 8. 10. 15:55

 

 

스촨성(四川省) 유람

 

2014.8.3 - 8.8(4박 6일)

 

 

여행을 떠나며

  해우회에서 작년에 연해주를 다녀왔는데 모아둔 자금을 절반만 사용했기에 1년 만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장소는 진즉 구채구로 정하여졌고 모자라는 경비는 갹출하기로 하였다. 1인당 경비는 134만원인데 개인별로 40만원을 거두었으나 우리는 양드리님이 불참하는 관계로 54만원을 오히려 돌려 받았다. 양드리님은 7월 31일 두 자매들, 그리고 민경이와 함께 10박 12일 여정으로 동유럽으로 떠났다. 여행사는 익산의 한미여행사가 맡았다.

  몸이 불편한 정귀우 선생 부부와 양드리와 최은희씨가 불참하게 되어 김호길 총무가 두 분을 충원하였는데 이혁 선생님과 이기동 선생님이시다. 이혁 선생님과는 10여년 전 해상왕 장보고 유적지 방문시 룸메이트였던 인연이 있고, 이기동선생은 고교 4년 후배이신 분이다.

  관광지인 구채구에 간다하지만 지역이 사천성이므로 생소하여 관련자료를 찾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우선 사천성의 省都는 청두(成都)인데 인구 1400만의 대도시이고, 이곳이 3세기 중국의 삼국시대에 蜀나라의 서울이라는 것이다. 삼국지라면 대한민국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사천성은 당시 촉나라의 영토에 속한 곳이다. 내가 일찍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삼국지를 읽고 정신이 온통 황홀경에 이른 적이 있고, 중학교 2학년 때 다른 삼국지를 한번 더 읽은 뒤 다시는 정독하지 않았는데 이는 어린 시절의 감동이 깨질까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영화 닥터 지바고도 그러했는데 지난겨울 TV로 다시 보았더니 역시 감동은 없고 오히려 감동이 스러져버린 느낌이다. 삼국지 내용을 거의 다 잊을 정도이니 이문열의 삼국지를 한번 읽기는 읽어야 할 모양이다. 다행이 이승원 대리님이 구해준 『삼국지 다음 이야기』1권을 읽고 떠나기에 삼국시대를 어렴풋이 다시 그려볼 수는 있었다. 이 책은 삼국시대를 통일한 서진이후의 위진남북조시대를 다룬 책이다.

  성도지역은 후한시대에 益州라 하였으니 우리 益山의 명칭과 아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 충혜왕(1344년)때 원나라 순제의 제2황후인 기황후의 외가가 금마군이었으므로 금마군을 익주라 하여 승격시켰는데 이는 분명 중국의 익주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 익주가 후일 조선 태종 13년(1313년)에는 익산군이 되고 오늘날 익산시의 명칭이 된 연유이다. 현지에 가서 생각해보니 사천성의 명칭이 생긴 연유는 야룽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등 4개의 하천이 만난다하여 생겼다하므로 조선시대에 만경강이 泗川이라 불렸음도 혹 중국의 익주지방이 원래 사천이라 부르는 곳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문도 일었다. ※ 물론 산둥반도에 한자마저 같은 泗川이 있기는 하다.

●중국

1. 면적 : 960만 제곱킬로미터(대한민국의 100배)

2. 인구 : 13억 5천만 명

3. 행정구역 : 23개 성, 5자치구, 4직할시, 2특별시 총 34개 지역

4. 민족 : 한족(91.5%)및 55개 소수민족

●스촨성

1. 면적 : 49만 제곱킬로미터(대한민국의 5배)

2. 인구 : 8천 만명

3. 행정구역 : 1 부성급시, 17개 지급시 및 3 자치주

4. 성도인 청두시 : 인구 1400만 명

 

 

제1일(8월 3일 일요일)

  오후 1시에 익산을 떠나다. 5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8시 20분에 아시아나 OZ323기가 이륙한다. 중국과의 시차는 겨우 1시간이다. 3시간 20분쯤 걸려 중국에 10시 40분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26살의 최가서라는 청년인데 이곳에서 가이드를 시작한지 채 1년이 안 되는 새내기라서 전문성이 상당히 부족한 청년으로 세련미도 약간 아쉬운 모습이다. 12시가 되어서야 공항근처의 호텔에 도착했는데 원래 약속한 호텔은 아니나 최근에 지어서 방이 크고 화장실이 최고급이다. 호텔이름은 가파채주점이다. 와이파이가 설치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무슨 번호를 사용해야 한다는데 가이드 안내가 부족해서인지 누구도 관심이 없어서인지 카톡이 안되어 아이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유럽의 양드리와는 말할 것도 없다. 다음날부터 전화가 오기도 하고 메시지도 왔지만 어차피 로밍을 하지 않았으므로 아예 받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출발시 하루 9천 원짜리 로밍 반드시 할 테다.

 

제2일(8월 4일 월요일)

  먼 길을 떠나므로 5시에 모닝 콜, 6시에 출발한다. 식사는 도시락인데 어찌나 조잡한지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이다. 불평이 일었다. 빵 2개, 삶은 계란 1개, 우유 1개, 방울토마토 8개 정도가 들어있다.

  가이드가 구채구 지역을 소개하면서 마치 티벳인 양 설명하고, 아바장족자치주라고만 소개한다. 내가 이렇게 보충설명을 했다.

? 우리가 가는 곳은 사천성의 아바장족․창족자치주입니다. 진짜 티벳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시짱자치구 일명 티베트자치구가 따로 있습니다. 이곳은 티베트는 아니고 티베트족인 장족이 많이 사는 사천성 내의 자치주입니다. 이 사천성에는 또 다른 간쯔장족자치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티베트 자치구는 도이지만 이 아바자치주는 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티벳족이 많이 사는 곳이기는 하지만 티베트라고 하면 맞지 않습니다. ?

  자치구와 자치주가 헷갈리기도 하지만 최 가이드는 대학을 다니지 않은데다 아직 초보여서 중국역사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서지 않았다. 우리가 가는 지역의 정식명칭이 아바藏족․창족자치주인것도, 창족은 姜族을 말하는 것도, 사천성이 후한 때 익주라고 불렸던 것도, 양쯔강(양자강)이 옛날부터 주로 장강이라 불리던 것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나의 보충 설명과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가이드가 자신감이 없어져 설명을 제대로 못하게 되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으나 내가 역사선생이라는 말에 조금은 안도감이 생겼는지 말끝마다

? 제가 초보인데다 여러분들이 모두 선생님이시고, 전문가이신 역사 선생님까지 계시니 무슨 말을 하기가 두렵습니다. ?한다.

  다음날부터는 안정을 찾고 유머스런 멘트를 곧잘 날리면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장강은 예부터 쓰던 양자강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구글지도에도 청두시에서 지빈시까지만 민강이라 씌어 있고 나머지 90%의 양자강에 모두 장강이라 표시되어 있는데도 가이드는 잘 모르고 있다. 참고로 사전에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장강

(본래의 명칭은 창장[長江(장강)]으로, 전체 길이가 6,300km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길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중국 서부의 칭하이성[靑海省]에서 남동쪽의 상하이[上海]까지 11개의 성급(省級) 행정구역에 걸쳐 있으며, 유역 면적은 1,800,000 km²에 이른다. 일찍이 중국에서 하(河)라는 글자는 황허[黄河]를 가리키고, 강(江)이라는 글자는 창장[長江]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그래서 창장[長江]의 남쪽을 강남(江南)이라고 부르고, 남부의 동해안 지역을 강동(江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창장[長江]의 상류를 진사강[金沙江], 민장[岷江] 강 등이 합류하는 그 아래 지역을 ‘천강(川江)’, 옛 형주(荆州) 지역을 지나는 창장[長江]의 중류(中流) 지역을 ‘형강(荆江)’, 그리고 그 하구(河口) 지역을 양쯔강[揚子江]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이 양쯔강이란 명칭을 사용한 뒤, 오늘날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양쯔강이 창장[長江]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산이 없다. 성도시가 평야에 있는 줄 알겠다. 도로주변은 온통 약간 무질서한 울창한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30여분을 달리니 비로소 농촌풍경이 나타나고 1시간이 되니 산이 보인다. 고지대로 차가 오르며 길고도 많은 터널이 이어진다. 두 시간을 달리니 고속도로의 끝인 문천에 이르는데 이곳이 2008년에 지진이 나서 거의 30만 명이 숨진 곳이며 강족이 사는 곳이라 한다. 계속 이어지는 강은 민장강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국도를 1시간 더 달리니 무현시가 나오는데 꽤나 큰 도시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정비하기 전에는 (2008년 지진 발생 이전)무려 14시간이 걸려 구채구여행이 사실상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비행장도 있다. 길은 험하고 구불구불하여 차가 달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웬 관광객이 저리도 많은지 들어가는 버스, 나오는 차들이 2차선에서 조심하며 비끼고 느린 차를 추월하느라 끝없이 바쁘고 힘들어 그런 모습을 보는 사람조차 힘들다.

  무현에서 삼겹살로 점심을 먹다. 목이버섯을 많이 주어 실컷 먹다. 이곳은 해발 3,000M 지점이라 한다. 과자봉지와 1회용 커피봉지가 퉁퉁 불어 금방 터질 듯하다. 이런 고산은 나도 처음이다. 우회전하여 42km떨어진 황룡으로 향하는데 2시 30분에 이 산맥의 정상에 도착했다. 4,100M라고 한다.

♣황룡

  3시30분에 황룡에 도착하여 3시간동안 황룡을 오르고 머물다. 구채구와 더불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카르스트지형이기에 물이 흐르는 곳은 누런색이 되고 마치 작은 연못들이 계단을 이루며 조성되어 있다. 케이블카가 있어 타고 오를 수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두 시간 동안만 오르다 되돌아오기로 한다. 그런데 짝인 김병근 선생이 고산병인지 어지럽다며 도무지 걷지를 못하고 자꾸 주저앉는데다 나 역시 속이 약간 메스꺼워 함께 황룡 오르기를 포기하고 김병근과 함께 하기로 하고 10분만 오르다 휴게소에서 그냥 쉬고 말았다. 6시 30분에 황룡을 출발하여 무려 3시간을 달려서야 드디어 구채구에 도착하였다. 오는 길에 정상에 잠시 내려 사진촬영을 하는데 반바지에 T셔츠 차림으로 나갔다가 추워 죽는 줄 알았다. 아프면 큰일임에도 조심하지 않은 탓인데 다행히 감기는 들지 않았다. 호텔은 격상호텔이 아닌 구채도가촌(오히려 하나투어라는 간판이 잘 보임)이었다. 격은 약간 떨어지나 방은 매우 많은 호텔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인 듯 하며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제3일(8월 5일 화요일)

♣구채구

  아침은 뷔페식인데 먹을 것은 별로 없다. 하긴 아침엔 아무리 산해진미라 해도 나는 빵 두어 개에 시원한 음료수 한잔이면 끝이다. 하루에 5만여 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니 가히 인산인해다. 사람이 걸려 걷기가 불편할 지경이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수술한 뒤 아직 실밥을 빼지 않은 상태여서 조심하느라 장갑을 끼우며 다니는데 아침에 오른손으로 물병을 쥐고 있느라  오른손 장갑을 잠간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었다. 아깝다! 양드리가 사준 비싼 장갑으로 수년간 잘 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거의 없고 서양인도 거의 없고 온통 중국인이다. 중국의 관광지에 이처럼 외국인이 없는 곳은 처음이다. 중국에 웬 서양산 고급 승용차가 저리도 많으며 중국인들의 옷차림도 예전의 중국인들이 아니다. 대개 7월부터 시작하여 11월까지는 여행객이 몰려 온다고 한다. 중국은 5년 전과 다르고, 10년 전과 다르고, 15년 전과 다름을 확실히 느낀다. 무섭게 변하고 발전하는 중국이다. 20여 년 전 우리가 중국에 처음 갔을 때는 후진국이라 무시하고싶던 중국이 이제 1인당 GNP 8,000달러에 국가총생산액이 세계2위이며 달러보유액이 4조 달러로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1위이며 따라서 세계경제를 좌우지 하고 있다. 저 거대한 중국과 지금까지의 문화적 경제적 긴밀한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북한을 철저히 견제하면서 우리의 경제성장과 우리의 국력을 계속 신장시켜나가야만 한다. 강한 국력만이 우리 대한민국을 건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며, 한민족의 통일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며, 통일한국이 저 4대강국에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인 것이기 때문이다.

  매표소에서부터 인파가 몰려 아수라장이다. 수 천인지, 수 만 명인지 끝없이 많은 줄을 서며 입장을 하는데 우리가 외국인이어서인지 관리인들이 약간 도움을 주는 데도 불구하고 고생이 말이 아니다. 입장표를 받고서 우리는 크게 놀랐는데 만 60세가 넘은 사람들은 (원래 입장권은 310위안인데 200위안짜리로) 우대권으로 받은 것이다. 입장권이 무려 우리 돈 5만원인 것도 놀랍지만 난생 처음 노인우대를 받아서 어리벙벙하면서도 한편 유쾌한 기분도 들었다. 진짜 노인인지 여권을 보면서 확인한다. 이석한 강거희 김종기 김재완 이협 박숙경 이렇게 여섯이 중국에서는 노인이 되었다.

  과연 구채구는 아름다운 곳이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 구채구는 2,000여명의 장족들이 거주하는 아홉마을을 일컫는다. 엄청난 면적이지만 우선 일부인 세 개 부락 지역만 개발하여 공개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호수들이 있는데 모두 다 볼 수는 없어 팬더해, 오화해, 진주탄폭포, 장해, 오채지등을 찾았다. 타이완이나 오끼나와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남아시아의 바다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에메랄드빛이다. 육지의 민물호수가 저리도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 저 호수들을 하나 하나 찾아 구경할 때 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는데 마지막 오채지에서는 아마 한 시간은 줄지어 다가가면서 고생해서야 겨우 호수를 볼 수 있었나 보다. 이구동성으로 너무 힘들다며, 다시는 못 올 곳이며, 어린이나 환갑 넘은 노인네는 절대로 와서는 안 될 곳이라 입을 모은다. 점심은 한국인 전용 고급식당에서 아주 잘 먹었지만 아침 여덟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완전 생고생을 실컷 했다. 김갑순 선생을 잠시 잃어 찾아다니는 소동도 있었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잠간 한눈 팔면 일행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해보는 전신 맛사지다. 우리가 원래 묵기로 했던 격상호텔에서 1시간 20분을 받았는데 한국인 전용 맛사지 숍인듯 했고, 아가씨들은 장족이다. 열 명의 여인들 중 두 명은 유부녀라는데 하필이면(?) 나를 담당한 여인이 유부녀람? 30대 초반 정도의 이 아줌마는 얼굴은 약간 촌스럽고 고생하는 탓인지 피부가 까무잡잡한데 아이가 둘이라고 손짓으로 말해준다. 한국말을 약간 할 줄 아는 명랑한 아가씨가 둘이나 있어 내내 모두들 유쾌하게 웃고 떠들었다.

  맛사지 가끝나고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 야크고기 식사를 했다. 야크고기는 처음인데 돼지고기나 쇠고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말고기를 먹어본 일은 있으나 야크고기는 오늘 처음이다. 실컷 먹어버렸다.

  야크고기 탓인지, 고산병 탓인지, 모진 고생 탓인지 유영상 교장, 박숙경 여사, 이협 선생, 강거희 교장등은 돌아오는 날까지 설사를 하며 큰 고생이다. 다른 몇 몇도 매우 힘들어 한다. 나는 손가락을 이유로 술을 전혀 하지 않아서인지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하다. 해외여행시 술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저녁식사때 맥주 한잔 하는 정도여야 한다. 아프거나 술로 인해 힘들면 여행은 망친다.

 

 

 

제4일(8월 6일 수요일)

  오늘은 성도로 돌아가는 날이다. 7시에 출발한다. 교통이 복잡하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골짜기에 유일하게 난 국도여서인지는 모르지만 지체가 심하다. 3시간이 지난 10시 30분이 되어서야 105km지점인 송판고성에 다다른다. 이 城은 진나라 때부터 중국의 역대 왕조가 감숙성, 청해성, 산서성 일대를 연결하며 통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이라는데 보이는 성벽은 명나라 홍무제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되었고 사진만 찍었다.

  140km를 달려 1시 30분에 무현에 도착하여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주인은 중국인이지만 관리인은 조선족 동포이고 음식은 한식인데 주인이 한국인 상대의 사업을 하는 분으로 이곳과 구채구등 여러 곳에 판매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도 이 가게에서 기념으로 석이버섯을 구입했다. 목이버섯도 덤으로 받았다. 두시 반에 출발하여 30여분 달리니 강족민속마을이다. 국도변 상당히 큰 마을을 민속마을로 지정하여 관광객을 유치하여 공연도 하면서 물건도 판매한다. 시골마을이지만 하천을 끼고 평화롭게 사는 마을로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면소재지 정도라 할까? 4시에 출발하여 문천에서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92km를 달려 도강언시에 도착한다. 상당히 큰 도시인 시내를 30여분 이상 한참이나 터덕거려 발맛사지 업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7시가 되어 버렸다. 화려한 중국식 건물에 있는 고급 발맛사지 업소다. 한족 아가씨들이 강한 손가락 힘으로 맛사지를 해주는데 매우 힘들어 한다. 나를 담당한 아가씨는 얼굴은 곱상하고 순박하게 생겼으나 힘은 세게 생긴 통통한 아가씨인데도 꽤나 힘들어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졌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맛사지를 받으니 발도 시원하고 기분도 좋다. 여행코스도 좋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한 한미사장님이 고맙다. 여섯명의 사모님들 어제에 이은 청년들의 맛사지가 앞으로 매우 그립겠다.

  도강언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온갖 산해진미를 쌓아놓고 마음대로 먹는 샤부샤부다. 다들 무지하게 먹었다. 열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하다. 구채구에서 무려 435km이니 익산에서 서울 왕복하는 거리다. 4일 동안 호텔도착시간이 계속 9시가 넘으니 저녁에 거리구경을 한다거나 함께 모이는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침에도 7시면 출발하므로 구채구에서 첫날 자고나서 아침에 단 한 번 20여 분 산책을 해 본 것밖에 없다.

 

 

제5일(8월 7일 목요일)

  역시 7시 출발이다. 비가 내리므로 시내관광을 오후에 하기로 하고 먼저 낙산대불을 찾기로 한건 가이드가 참 잘한 일이다. 樂山市 까지 162km인데 평야를 달리는 고속도로이므로 9시 반에 도착한다. 비가 와서인지 물이 황하처럼 붉다. 평상시 같으면 이 같지 않을 텐데 가이드가 다른 때도 붉다고 대답하는 것도 매우 미심쩍다. 내게 ? 다른 가이드들한테 물어보아도 양자강이 장강이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데요??하며 구태여 확인한다. 나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는다. 진짜 유능한 전문가이드가 되려면 혼자서 책보고 인터넷 찾아가며 공부 많이 하게나. 본인 말로 ?우리 조선족들은 얼치기라요. 중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요.?라는데 공부를 제대로 하면 그렇지는 않은 건데 젊은 사람이 변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마이크에 대고 “역사선생님! 돌아가셔서 모르는 것 있으면 전화하세요. 제가 언제라도 알려 드릴께요”하면서 웃긴다.

  배를 타고 낙산대불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바로 저 앞에 있다.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표정이 자애스럽고 매우 휼륭하게 조각된 작품이다. 솔직히 낙산대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정작 와서 보니 세계적인 걸작품인줄 알겠다.

♣낙산대불

  낙산시는 민장(민강)과 다두강(대도하)이 만나는 지점에 있고 바로 릉운산 절벽에 낙산대불이 있다. 규모가 거대하며 높이 71m, 머리 높이 14,7m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석각불상으로 꼽힌다. 당나라 시기였던 713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조각을 시작한 해법통사가 죽고 난 뒤인 90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인 보물 1200호 고창 선운사 마애불의 높이가 13m이고 폭이 3m이니 그 크기가 엄청남을 알 수 있다. 물론 조각의 정교함과 예술성도 비교를 할 수 조차없다.11시에 출발하여 성도시로 오는 차속에서 떠오른 시상을 정리한 것을 발표하였다. 도대체 현대시라는 것을 지어서 가지고 있는 시 한수 없는 시 문외한인데다가, 한시형식으로는 더더욱 지어본 일이 없으니 자작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김갑순 선생과 이치수선생은 국어선생이니 더욱 부끄로울 수 있어 사전에 시 문외한임을 밝히고 그저 오언 율시 형식으로 정리해 본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씀드리면서 핸드폰 매모에 정리한것을 읽어내려갔다.

 

사천성 유람

 

성도라 일만리 길

오늘에야 찾았구나.

 

촉한땅엔 유관장의

거친기개 남아있고

 

익주라 그 이름은

익산 땅에 살아있네.

 

대도하 유람선은

무심코 흐르지만

 

환갑진갑 지난 몸

노인대접 받는구려.

 

세월이 하 좋아져

남은 인생 길다지만

 

촉한 땅 다시 밟는단 말

어이 장담 하리오?

 

그저,

구채구 황룡 장강

길이 기억하려오.

 

부끄럽게도 박수를 크게 받았다. 난생 처음 발표해 본 자작시 낭송은 성공리에 끝났다. 성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는 시내관광에 나선다. 먼저 무후사와 유비묘를 찾았다.

 

 

 

♣무후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들을 한 곳에서 느껴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의 3세기 삼국시대에 촉나라를 세운 유비와 관우, 장비, 제갈공명을 기리기 위해 서진 영안 원년(304년)에 만들어진 사당이다. 무후사라는 이름은 제갈량이 죽은 후 시호인 충무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비묘

  둘레 183m, 높이 12m의 아담한 능원 벽돌담으로 둘러 싸여 있다. 진수의 삼국지에 ?223년 8월에 유비를 이곳에 매장하였고 앞뒤로 감부인과 오부인도 합장하였다.?전한다. 유비묘 앞에 있는 묘비에 씌여진 비문의 한 글자(릉)가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언젠가 누군가가 유비는 황제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지웠다고 하는데 그 만큼 중국에서는 유비가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이 삼국지연의를 통하여 생각하는 충성과 현자의 상징이 결코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뛰어난 지도력과 웅지와 담력을 가진 조조를 영웅으로 친다.

♣금리거리

  무후사 바로 옆에 있는데 사람도 많다. 젊은 관광객이 가득찼다. 우리나라의 명동거리나 인사동 같은 곳이다. 다만 물건 판매가 목적인듯 가게가 무지 많고 카페에선 가수들이 기타를 치면서 발라드 풍의 노래를 생음악으로 연주하고 있다. 피곤하여 모두들 관착항자거리는 취소하자고 한다. 그곳은 전주 한옥마을 같은 곳이라고 하는데 나도 피곤하여 구태여 가보자 하지는 않았다.

  6시에 저녁을 먹는데 진짜 사천성 정통황제요리를 간략하게 제공하는 곳이다. 원래 정통으로는 100여가지가 넘는데 이 곳에서 겨우 10여 가지로 축소하여 제공하지만 정말 맛있고 제공되는 술의 향기가 마치 고급 양주같아서 두 잔을 거푸 마셔버렸다.

♣천부촉운쇼

  8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전문공연장에서 공연하는 환타지쇼이다. 입장료가 무려 380위안이니 6만 5천원이다. 비싸서인지 관람객은 우리 한국인 두 팀과 중국인 두어 개 팀으로 겨우 7-80명 정도인데 출연하는 연기자는 거의 100여명이다. 성도시 문화사업으로 하나로 제작된 최고의 창작예술쇼이다. 10여개의 사천성과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차례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무대에 이동식 무대가 수없이 움직이고 초첨단 컴퓨터 기술을 동원한 다공간 화면과 자막, 아름다운 복장을 입은 무희들의 춤과 경쾌한 음악등이 웅장하게 어우러지는 공연인데, 이는 장예모 감독이 제작한 베이징 올림픽 개막공연으로 오늘까지도 공연되고 있다는 뮤지컬 <금면왕조> 같은 류의 공연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 거창한 중국의 문화예술이다.

 

 

 

 

제6일(8월 8일 금요일)

성도국제공항에서 0시20분에 출발한다. 4시 50분에 도착하여 한미여행사가 보내준 고급 관광버스를 타고 드디어 귀향한다. 장안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9시에는 익산에 도착하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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