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구경

여산장

청담(靑潭) 2015. 10. 7. 17:07

 

 

여산장

 

 

내 고향집이자 別墅인 JISAN PLACE(지산 플라스) ; 芝山莊 담장 펜스 기초공사를 해놓고 모처럼 여유가 주어졌다. 중단했던 장터순례를 오늘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한다. 오늘이 9월 6일이니 여산장날이다. 양드리와 함께 가기로 하고, 먼저 금마에 있는 서동공원에 들러 걷기운동을 하고,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를 찾은 뒤, 여산의 유명한 진흥루에서 짜장면을 먹고 여산장터를 구경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서동공원

오랜만에 서동공원에 가보고도 싶고 한편으로는 저수지 둘레길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기 위함이다. 금마저수지를 끼고 적당히 걸어보고 싶어졌다. 서동공원은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및 신용리 일원에 자리 잡고 있는 조각공원으로 2004년 준공되었다. 국내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68점 전시되어 있고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마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한관이 2008년 4월 건립되었다. 전망대 등 수면과 휴식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장소와 산책 코스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주차장에 파킹하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삼사년 전 찾았을 때보다 서동공원은 훨씬 잘 정비되어 있고 나무들도 많이 자라있다.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이 놀러 와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서동공원에서 용화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오면 폭포송어횟집으로 내려오기에 오늘은 역으로 송어횟집까지만 간단히 다녀오기로 했는데 전경은 아름답고 시원하지만 햇볕은 상당히 따갑다. 서동정과 선화정을 찾아보고 공원을 돌아본 뒤 이병기 선생 생가로 출발한다.

 

 

                                            서동정

 

 

                                                                                   선화

 

                                                                                    무왕상

 

                                                                                   마한관

 

▣가람 이병기(1891-1968)선생 생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선생님이신 김연태 선생님께서 시조《별》을 가르치시면서 가람 이병기 선생님에 대한 여러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뚜렷하다. 선생께서는 여산면에 현재 살고 계시며 당신도 고향이 여산이기에 가끔 찾아뵙는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아니 저 유명하신 가람 선생님께서 우리 고장 출신이고 지금 이 고장에 살고 계시다니....?경이로운 말씀이었으나 사실 김제군 출생인 나는 여산면이 어딘지도 잘 몰랐다.

주차장에 파킹하고 생가로 올라선다. 아마도 삼사년 만에 다시 찾은 듯하다. 이 집은 한국 현대 시조의 중흥을 이룩한 시조 시인이며 국문학자였던 이병기 선생이 태어난 집으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정자 등 여러 채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는 승운정(勝雲亭)이라는 한 칸 규모의 모정(茅亭)이 있고, 그 옆으로 사랑채를 길게 배치한 후 앞에 작은 연못을 파 놓았다. 오랜만에 연못을 보니 특별한 모양도 아니고 아름다운 자연석으로 치장한 것도 아닌데 맑은 물이 흐르는 모습이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과 어울려 대단히 아름답다. 내가 시골 별서인 『芝山莊』에 어차피 파놓은 지하수를 이용하여 작은 연못을 만들기로 하고 여러모로 구상하고 준비 중인데 오늘 이 연못이 많은 참고가 된다.

진수당(鎭壽堂)이란 편액이 붙은 끝 방은 가람이 책방으로 사용했으며, 평소 기거하던 곳은 한 칸 건너 수우재(守愚齋)라는 편액이 붙은 방이다. 고졸하고 소박한 草家로 담백한 선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곳에서 가람은 한국 문학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기고 말년을 보내셨다. 선생은 내가 고 1때 세상을 뜨시었다. 선생께서 남긴 시조로 지어진 노래『별』은 나의 생각으로는 어린이들의 합창곡으로 최고의 노래이다. 나는 가끔씩 혼자서 나도 모르게 별을 흥얼거린다. 선생이 쓴 아름다운 노랫말과, 이수인 선생이 작곡한 곡이 어쩌면 저리도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많은 아이들이 즐겨 부르고 나도 즐겨 부르게 되었으니 노래를 만들어주신 두 분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양드리는 ?적당히 먹고 살만한 시골 선비가 평생을 책을 보면서 살기에 딱 좋았던 집?이라며 아주 좋아한다. 이제 나의 지산 플라스(지산장)은 저처럼 선비가 거처하는 초가로 지은 것은 아닐지언정, 비록 조립식 목조주택일망정, 나의 꿈과 나의 지혜와 나의 땀과 나의 무딘 손길로나마 아주 아주 아름다운 집이 될 수 있으리.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여산장

礪山面은 익산시의 한 면이다. 마한시대에는 여래비리국으로, 백제시대에는 지량초현으로, 통일 신라부터 여량현, 조선시대에는 정종2년(1400)에 여량현(여산면)과 낭산현(낭산면)을 합쳐 두 현의 한 글자씩을 따서 여산현이라 하였다. 세종 18년(1436)에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하여 충청도에 편입하였다가 세종 26년(1444)에 다시 전라도에 속하게 하였다. 숙종 25년(1699)에는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관향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켰으며 고종 32년(1895)에 다시 군으로 고쳤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여산면이 되어 익산군에 속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는 때에 따라 현령 또는 군수 또는 부사를 두었다. 여산부(군)는 부내면, 천동면, 서이면, 서삼면, 서사면, 북일면, 북삼면, 합광면, 피제면, 공촌면 등 10개면이 있었다. 오늘날 여산면, 낭산면, 망성면, 옛 황화면 지역이다. 이 중 황화면은 1963년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점심때가 넘어 배가 고파서 유명 중국집 진흥루 앞에 차를 댔더니 진흥루는 문을 닫았다. 우리 아들 이승수가 논산훈련소에 입대하던 날 이곳 진흥루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 친구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고 연무대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2005년도이니 딱 10년 만인데 진흥루는 주인의 사업상 문제가 생겨 아예 문을 닫은 지 오래라고 한다. 이왕 장터를 찾은 김에 장터 자장면을 먹고 가기로 하고 찾았다. 가격은 2,500원인데 내 입맛에 안 맞는지 되게 맛이 없다. 장터는 무지 한가하다. 주인들은 의자에 앉아 잡담하고 마을에서 생산한 채소를 가지고 나온 아주머니들도 찾는 손님 없이 무료하게 앉아 있다. 하긴 이 더운 날 장터에 누가 무얼 그리 살게 있다고 나오리? 또 시내에서 이곳 먼 장터에 찾아오는 이 그 얼마나 되리?

이곳 여산면에는 고등학교 동창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이곳에서 개업하고 있는 유인수 중앙의원 원장이고, 하나는 부인의 요양차 부러 이곳 넓은 집을 구해 이사와 살고 있는 한명규 사장이다. 유원장은 낮에만 여산에서 근무하고, 한 사장은 공장이 김제 백구라서 통근하며 밤에만 여산에서 잔다. 그리고 이곳 여산에 어린 시절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는 6촌 형(할머니 큰 오빠의 손자로 유원장과 초등학교 동창)이 살고 있다고 하며, 어린 시절 나를 예뻐해 주던 6촌 누나(할머니 큰 언니의 손녀)인 원자누나가 살고 있다. 몇 년 전 누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반갑게 만났다.

시장을 돌아보고 중앙의원 쪽으로 올라가니 아니 이게 웬 일? 한명규 사장 사모님이 전자제품 가게 앞에 서 있다가 우릴 보고 깜짝 놀란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만남이 되었고 30여분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유원장은 장날이라 진료에 무지 바쁘니 만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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