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머리에 이고
시인 전근표
■프롤로그
이사회 회의장에 들어서니 웬 책이 테이블에 한 권씩 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비를 맞았는지 아니면 좀이 슬었는지 지저분하게 보이며 볼품이 없어 보였는데
?웬 책입니까??하고 물으니, 사무국장님이
?전근표 이사님의 시집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전이사님은 평소에 인품이 돋보이시며 매우 점잖으신 분으로, 회의 때면 신중하시면서 논리적으로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시다. 전직 기업 간부이셨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책 모습은 볼품이 없고 미처 한 장 넘겨보기도 전에 전이사님이 들어오시기에 다들 인사치레로
?감사합니다.?라고 건네고 곧 회의가 시작되었고, 전이사님의 시집이라니 한번은 읽어 드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으로 챙겨 왔다.
2019년에 출판된 이 책에는 80여 편의 시와 여행기가 실려 있는데 첫 시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취미로 서예를 하는 것처럼, 전이사님도 은퇴 후 취미로 시를 배우면서 창작품을 모아 출판하신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시에 문외한인 내가 느끼기에도 시의 수준이 높고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큰 공감을 준다. 당신의 삶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시와 여행기에 녹여진듯하다. 대충 한 번 흩어보고 버릴 생각이었다가 마저 다 넘겨 읽어보고는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다.
시와 여행기를 통해 전이사님의 지나온 삶의 모습과 당신의 가치관과 많은 역사적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잘 알 수 있었고,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린다. 전 이사님은 이미 이전에 세권의 시집을 내신 바 있다고 한다. 두 편의 시를 옮겨 본다.
※ 사무실에 여쭈어보니 보관중이던 시집을 이사님께서 박스를 통채로 가져오셔서 주셨다고 합니다. 뒤에 이사님께 그 말씀을 드리니 훼손된 책이 있는 줄은 미처 모르셨다고 한다. 깨끗한 책을 한 권 더 가져욌다. 덕분에 전이사님이 시인이신 줄도 알게 되고 좋은 시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백두산아! 천지에 새 꿈 넘치게 하라
이제야 동방의 정산 백두에 섰다
과연 하늘이 빚은 백의민족의 성지
좌는 압록이요 우는 두만이라
늦은 만남에 별빛하늘마조도 내 눈에
초롱초롱한 감격의 이슬이 맺힌다
발아래 솟구치는 강풍이 거세다
그름 속 간간이 천 길 아래 펼쳐진 천지수
사계절 흘러 수십 길 장백 물길 열고
발해, 연해, 만주 벌판을 유유히 품고 있다
압록강아! 백두산아! 두만강아!
광활한 벌판을 달리던 말발굽 소리
장수왕, 문자왕, 광개토왕의 함성이
드링어온다 귓전을 때리는구나
연길 연변 이도백하 고려인 조선족
우리 노래하고 춤추는 아리랑이 슬프다
압록강아! 백도산아! 두만강아!
세월의 북풍한설에 잠을 떨치고...
청일, 노일의 뒤안길에
나라 잃어 설움 꿈이 개졌던 우리 이제라도
임시정부 백두 속에 활화산으로 불을 사르자
독립 선혈 자주의 붉은 피 천지에 가득 채워
?본토 찾겠노라?다짐을 하자
동북공정 붉은 색 덧칠은 어불성설이다.
아! 분하고 분하도다! 남북한 위정자들이여!
원통하지 않은가? 그대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후손에게
남에 의해 잘려진 남북 분단의 슬픔이
오가지도 못하는 휴전선 앞에 두고...
백도야! 정쟁은 뿌리째 뽑자 통일의 먼 길 아닌가?
우리 두 눈 부릅뜨고 제 갈 길 찾자
고려인 조선족 두 번 죽이지 말다
민족 성지 백두산아! 새 꿈을 천지호수에 담자
천지여! 장백 넘쳐 압록과 두만도 넘치게 하자
백두산아! 천지에 새 꿈 넘치게 하라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세상이 어두우면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을
가득히 이끌고 오지
더 어두워 봐
별들은 더욱 초롱초롱 빛나지
하늘이 제대로 머리 위로 뜨면
지상은 비로소 길이 열리고
숲들은 일렁이기 시작하며
호수들도 수면 위를
아름다운 음표로 반짝거리지
사람 산다는 게 별거야
시시때때로 번져오는
하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지상에 사무치며 흐르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거야
세상이 어두울수록 우리들 눈빛을
더욱 반짝거리는 거야
하늘을 머리에 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