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이야기
시인 이택회
고교 후배인 이택회 선생은 박학다식하시고 지극히 활동적인 분이어서 수십 년 동안 다름없이 다양한 활동을 계속하고 계시는 분이다. 모교인 남성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퇴임하였으며, 나와는 40여 년 대학원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마한향토사연구회에서 다시 만난이후 교분을 이어왔는데, 그동안 시조로 등단하고 여러 권의 시조집과 수필집을 낸 바 있다. 예전에 익산문인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까지도 가람기념사업회 수석부회장, 익산불교신도협회장, 익산교원향토문화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불과 두 달 전에 간행된 시조집을 증정 받아 읽어보니 선생이 오랫동안 불교에 천착하여온 이유에서인지 시나 시조에 문외한인 나인지라,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찬찬히 읽어보고 두 편의 시를 소개한다.
숲속 이야기
한 마리 새가 되어 숲에서 날아다닐 때
둥지 튼 큰 나무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무는 나였습니다, 내 둥지를 품어 안은.
강산이 바뀌고서 옆 나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어린 나무가 나였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이름만 잡시 다른.
신호질(新虎叱)
과수원 앞에다가 사과를 쌓아 두었다.
멍 지고 뒤틀리고 병들고 상처 입은.
만원에 한 아름이지만 거들떠도 안 본다.
못난이 무녀리로 푸대접 우리뿐이랴,
쌓여있는 사과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소수자, 88만원 세대 인간에도 넘치잖니.
불이(不二)
땅 닮고 하늘 닮은 모나고 둥근 엽전
이곳저곳 잘 굴러서 피가 되고 살 되어서
갑순이 갑돌이들이 아비 되고 어미 됐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난지라
둥근 건 남정네가 모난 건 아낙네가
물 긷고 쌀 씻으면서 아들딸을 길렀다.
개똥과 굼벵이도 손잡고 뒹굴어야
세모와 마름모도 서로 안고 다독여야,
땅에서 꽃이 피고 하늘에는 새가 난다.
백담계곡
몇 안거를 지내야 백담과 인연 맺고
얼마를 참고 버려야 저 돌을 닮을까?
산비탈 뭇 나무들도 계곡으로 발 뻗는다.
돌들도 나무들도 너나없이 정진하는데
백담에 흐르는 물 아라한과 이루고서
콧노래 흥얼거리며 만행 길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