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攝理)
화암 이재천(1947~ )
존경하는 이재천 선생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출간된 지 불과 일주일만인 지난 토요일(2022.9.24) 전주제일고 등산모임인 <기린회>의 정기 모악산 등산시 증정본을 주셨습니다. 평소 남성적인 운동을 좋아하시며 체격도 당당한 남자다운 형님인데 어쩌면 저리도 늘 고향과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시는 것이며, 흐르는 세월과 인생과 자연을 노래하시는 感性 짙은 고운시를 쓰시는지요. 간결한 언어로 시에 문외한인 우리도 쉽게 이해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며, 세월을 같이 해 온 터이라서인지 저절로 동화되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시는 화암 형님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섭리
은빛사랑 노인요양병원 건너 제방
하얀 억새
억척스레 나부끼고
살얼음 에두른 방죽
철새들 옹기종기 모여
시베리아 회귀를 모의한다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억새분 따라
추위를 물고 억새들 떠나고
노인들 말없이 저승길 가고
겨울을 밀어내며
새싹들 눈 틔워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부른다
만상의 질서를 한 치 오차 없이
순환시키는
자연 섭리의 오묘함
□세월
어제도 한 해가 갔습니다
내일, 또 한 해가 가겠지요
언제부턴가
하루가 한해 되어 흘러갑니다
봄이 기척하는 듯하면
꽃들이 피었다 지고
여름이기에
봄눈 매화는
뻐꾸기 우는 오월
아카시아 향기를 모릅니다
인생 향기 깊게 음미하며
살아 본 날도 별로 없는데
변죽만 울리고 가버린
덧없는 세월이 애달픕니다
□고향마루
시간 저편
고향집 너른 뒤란
한 여름 삼복더위에
등물 시린 정오
수런거리는 대숲
시원한 바람 불어와
차가운 기운 돌던 대청마루
칠 벗겨진 개다리소반에
된장시래기 보리밥
아스라이 떠오른다
어머니 손끝에서 우러나는
맛깔스런 내음이
입맛을 돋우던
옛 고향마루에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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