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연구

국창 정정렬 추모기

청담(靑潭) 2009. 3. 20. 14:02

 

  

국창 정정렬 추모기

 

  정정렬 선생은 1876년 5월 21일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내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정명섭이며 국창의 칭호를 받았고, 훗날 근대 5명창(김창환 ․ 송만갑 ․ 이동백 ․ 김창룡 ․ 정정렬)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등 최고의 소리꾼으로 칭송되었다.

   선생은 일찍이 7세에 서편제의 대가 정창업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4세에는 스승 정창업이 세상을 떠나자 명창 이날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하였다. 16세에 이날치 역시 세상을 떠나자 이로부터 25년 동안은 스승을 모시지 않고 익산 미륵산의 심곡사, 부여 만수산의 무량사, 공주 계룡산의 갑사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용맹전진하여 독공하니, 4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정렬제 판소리를 완성하였다. 이를 두고 동시대 명창들은 신식 판소리라 평하였다. 특히 정정렬제 소리 중 춘향가는 그 해석이 매우 독보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창의적인 소리세계를 구축하였다.

   선생은 소리명창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요인인 소리 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장단과 조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독특한 음악 해석과 끊임없는 소리공부를 통하여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창극의 편극화와 레코드취입, 고전의 판소리화를 이룩한 미래지향적인 소리꾼으로 시대적 감성에 맞는 판소리의 현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판소리를 창극식으로 구성하여 녹음한 춘향전 전집, 화용도 전집, 심청전 전집 등의 창극음반은 현대 판소리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작품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선생의 활동 구심점은 1930년에 설립된 조선음률협회와 1934년에 설립된 조선성악연구회였다.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공연과 방송출연, 음반취입 등을 병행하였으며, 이 때 판소리 공연 형태를 점차 창극 형식으로 변모시키면서 판소리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창극 형식의 판소리 정착 등 많은 일을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추진하던 중 1938년 3월 21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평생 동안 김여란을 비롯하여 김소향,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등 20세기 판소리계에서 이름을 날린 수많은 여류명창과 이기권, 백점봉, 김연수, 조상선, 박동진 등의 명창들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선생의 문하에서 소리를 배운 여러 제자 중에서 정정렬제 소리의 계승자로 이름이 높은 이는 중요무형문화재 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김여란이 다. 그 뒤를 이어 김여란 문하에서 소리를 배웠던 최승희가 정정렬제 판소리를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정렬 선생은 전통판소리의 전승과 발전, 새로운 시대에의 적응을 위한 창극과 신작 소리의 개척, 새로운 창법의 개발 등 판소리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이에 문화관광부에서는 근대 5명창의 한 사람으로 오늘날의 판소리와 창극발전에 기여한 큰 공을 인정하여 2005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익산국악원에서는 이 고장을 빛낸 국창 정정렬 선생을 추모하며 이 비를 건립하는 바이다. 


                     2005년 9월 7일

 


익산 솜리예술문화회관 앞뜰에 세워지는 추모비 건립시 비문을 공동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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