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연구

만경강과 익산

청담(靑潭) 2009. 9. 1. 17:29

 

만경강과 익산

  

 

익산문화원 전문위원 이 석 한

 

Ⅰ. 인간과 강

Ⅱ. 만경강의 역사

Ⅲ. 만경강의 자태

1.고산천

2.소양천

3.전주천

4.삼천

5.익산천

6.탑천

7.부용천

Ⅳ. 만경강과 문화

1.호남평야의 젖줄

2.조운과 포구

3.교통

4.문화재와 관광

Ⅴ. 새만금 사업과 만경강

Ⅵ. 만경강 생태하천 가꾸기 사업

Ⅶ. 마치는 말

 

 

 

프롤로그

1. 萬頃江의 명칭

朝鮮王朝實錄을 찾아봐도 만경강이란 명칭을 찾을 수 가 없다. 東國與地勝覽 全州府편을 보면 ‘沃野 6面은 남쪽으로 泗水와 연하고, 서쪽으로는 김제와 접한다’ 고 하였고, 임피현 편을 보면 ‘신창진은 사수의 하류이며 김제 만경과 통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서 만경강은 예로부터 泗水로 불리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청천강의 옛 이름이 薩水요, 대동강의 옛 이름은 고조선 때 열수였고 그 이후엔 浿水로 불리었음을 보면 이해가 될 수 있겠다. 한은 漢水임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전북의 평야를 흐르고 있는 세 강 중 동진강은 동국여지승람에 그 이름이 보이며 금강도 19세기 지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만경강은 1929년에 발간된 조선환여승람에서 겨우 그 명칭을 찾을 수 있는 데서 만경강은 내내 泗水로 불리다가 1920년대 일제에 의한 개발이 시작되면서 萬頃江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만경강 유역의 行政區域의 變遷

만경강 유역의 행정구역은 오늘날에는 전주시, 완주군, 익산시, 김제시. 군산시로 되어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내내 만경강 주변지역은 全州府에 속해 있었음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1895년 갑오개혁시 새로운 행정제도의 개편으로 23부 331군으로 정비된 후 1906년 전주부에 속해 있던 沃野地域과 紆州지역의 王宮面 동부가 익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에는 익산군, 여산군, 용안군, 함열군이 통합되어 익산군이 되었던 것이다.

원래 高麗時代 初期만 하여도 만경강 주변에는 4개의 현이 존재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紆州縣(봉동, 왕궁 일부 지역)

○伊城縣(이서, 조촌 지역)

○沃野縣(구 이리시, 오산, 춘포 일부지역)

○利城縣(공덕, 청하 지역)

위의 네 개현은 高麗 初에 全州牧에 속한 뒤 조선초 태종(1409) 옥야현만 속현으로 남고 모두 廢縣되어 조선시대 내내 全州府에 속하였으니 당시의 전주부의 규모가 대단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거니와 만경강의 하류인 옥구군, 임피현. 만경현을 제외한 만경강 주변의 모든 지역이 전주부 지역에 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전주부 판도는 다음과 같다.

구이면, 상관면, 이서면, 조촌면, 봉동읍, 삼례읍, 백구면, 공덕면, 청하면, 구 이리시, 춘포면, 황등면, 오산면 지역 등이다.

 

 

 

Ⅰ. 인간과 강

우리 인간은 구석시대 이래 강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으며 강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특히 신석기인들은 해안이나 강가에서 주거하면서 고기를 잡고 나아가 농경을 시작하였다. 대저 세계 4대 문명은 모두 큰 강 유역에서 이루어졌으니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갠지스 강 유역의 인도문명, 황하강 유역의 중국문

명 등이 그것이다.

만경강은 가장 전북적인 강이다. 전북에서 시작되어 전북에서 끝이 나는 강이란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만경강이 범람하여 만들어 놓은 자연제방에 집을 짓고 배후습지에 논을 만들어 오랜 역사동안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만경강 물은 중심축인 완주-전주-익산-김제-군산을 휘돌아 서해바다에 몸을 푼다. 오늘날 전북인구의 약 51%인 103만 여 명이 이 강에 기대어 살고 있으니 이 만경강이야말로 전북의 젖줄이요 자양분이었던 것이다. 우리 익산지역의 북반부인 용안·함열·웅포·용동·성당·망성·낭산·여산면은 우리 익산의 또 하나의 젖줄인 금강유역에 속하지만 익산시민의 90%가까이는 오늘날 만경강 유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만경강은 각종 오물이며 공장이나 축산폐수 등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더니 이제 새만금 사업의 계속여부에 대한 분쟁문제로 말미암아 전국에서 가장 부끄러운 강으로 각인 되어 버리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정부는 지난 5월 새만금 사업의 순차적 개발안을 발표하였는데 제2의 시화호 사태를 막기 위해 만경강 수역은 만경강의 수질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한 뒤 개발에 착수하는 조건으로 새만금 사업을 계속한다고 발표하였다. 바로 만경강의 수질오염은 우리 익산의 축산 폐수가 주범이니 우리 역사상 최대의 간척사업의 중요한 걸림돌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2000년대를 맞아 만경강의 미래는 새롭게 변모될 전망이다. 우리들의 관심속에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 역할과 의미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본 글에서는 만경강의 역사와 모습 그 주변의 문화를 소개하고 우리 익산과의 발전적 관점에서의 관련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Ⅱ. 만경강의 역사

만경강은 일반적인 우리 강의 변천사를 따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국내 다른 강의 개발 역사와는 또 다른 개발사를 갖고 있는 것이 만경강이다. 주변 광활한 평야를 거느려온 만경강은 일찍부터 그 중요성이 인정돼 위정자마다 선진 수리 사업의 ‘시험’ 대상으로 삼았다.

벼와 보리를 경작하는 이모작이 조선시대에 도입되면서 이앙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많은 저수지와 보가 만경강 유역에 만들어졌다. 계속된 수리 사업으로 조선 후기 호남평야 주변 저수지와 보가 수백 개에 이르렀다 한다. 수리사업의 특성상 많은 비용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만큼 강 개발은 당시에도 관 주도로 이루어졌다. 영·정조 당시 중앙 조정에서 ‘천방수리방법’ ‘제언사목’ 등 공사 기술과 시방서를 출간해 지방 수령들에게 기술적· 재정적 문제를 조언하기도 했다. 만경강의 삼례천 제방은 이를 토대로 조선 중기 이후 축조됐다. 삼례천방을 축조하면서 내측 토지가 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까지 만경강에 대한 종합적인 개발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공사 기술과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만경강 유역 또한 천수답과 마찬가지로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록으로 전하는 수해만도 막대하다. 1589년 한 해에만 3만여 가옥이 침수돼 2백여 명이 사망했고, 1854년에는 9백여 명이 홍수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근래 가장 큰 피해는 1925년 때 홍수로, 2백51호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6명이 익사했다.

만경강이 오늘의 모습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다.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대대적인 쌀 증산활동을 벌였고, 그 일환으로 만경강에 대한 대규모 수리사업을 벌였다. 1924년 첫 삽을 떠 16년간 진행된 수리사업을 통해 만경강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만경강의 수리사업은 인공제방 축조와 곡류가 심한 부분을 직선으로 바꾸는 직강공사, 댐 건설 등으로 진행됐다. 자연 그대로의 강은 물 흐름의 특성상 곡류천을 이루게 마련이고, 만경강 역시 심한 곡류천이었다. 여기에 제방도 튼튼하지 못해 매년 여름이면 홍수 피해를 겪었다. 직강공사와 인공제방의 축조로 만경강 유로는 크게 변했고, 당시 쌓았던 제방이 대부분 오늘날까지 그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제방의 축조로 마을이 없어지거나 생활권의 변화 등의 만경강 유역 일대에 변화가 나타났다. 강 내측에 있던 행사리· 사천리·신천리 ·유천리·신월리·강리·내포리 등의 마을이 없어졌다. 인공제방으로 익산군 오산면 목천리의 구만창·동자포와 춘포면 석탄리 일부 지역이 강 남쪽으로 들어가게 됐고, 김제군 백구면 삼정리 등은 북쪽으로 가게 돼 행정구역상 많은 불편을 겪다 지난 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북 땅은 익산시에, 강 남쪽은 김제군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는 만경강 제방축조와 함께 댐 건설과 관개수로 개설 등의 사업도 병행했다. 그물망으로 되어있던 상류 하도를 관개수로로 개발하고, 유로를 정비했다.

만경강 수리사업의 또 다른 역사(役事)가 대아댐 건설 사업이었다. 유량이 적은 만경강 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1923년 전북농조 주도로 대아댐이 건설됐다. 당시 댐 건설에 전국 각지의 인력이 동원됐고, 차량이 없어 탄광용 수레에다 모래와 시멘트 등을 운반해 건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아댐(구댐)은 누수 등으로 붕괴 위험이 있어 67년 한 차례 보수공사를 거친 뒤 규모를 늘려 지난 87년 새 댐으로 만들어졌다.

만경강의 또 다른 주요 수원인 경천댐은 댐아댐 보다 12년 늦은 1935년 축조됐다. 만경강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공급 역할외에도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수로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이야 토사가 쌓이고 물이 얕지만 한 때는 강 상류까지 배가 통할 만큼 물이 깊었다. ‘전주시사’에 따르면 고려 멸망 직후 고려의 신하였던 최양이 전주시 대승동(완주군 소양면)에 은거하면서 뜻 맞는 친구들과 봉동읍 구만리 앞강에서 뱃놀이를 했다 하며, 영조때 전라도 관찰사였던 홍낙인도 전주의 승경(勝景)을

‘문루에서 바라보니 ... 배와 수레가 함께 닿는구나’라고 읊었다 한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나 있는 대규모 포구나 나루터만도 고사포·동자포·회포·목천포·춘포·사천진 등 12개나 있어 만경강 수로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세금으로 미곡의 운송로였을 뿐 아니라 소금·해물·잡화 등이 이곳을 통해 드나들었다.

이같이 중요한 수로로서의 생명을 다한 것이 만경대교의 개통과도 무관치 않을 것같다. 옥구군 대야면과 김제군 청하면을 잇는 만경대교가 1933년 완공되면서 부안·김제와 군산을 오가는 주요 통로가 됐다. 만경대교는 6.25 전쟁때 폭격을 받아 한 때 통행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54년 복구됐고, 87년 4차선 포장도로로 거듭 태어났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함께 만경강의 수질오염 문제가 오늘날 새로운 골치거리로 대두됐지만 반세기 전 만 해도 남의 일이었다. 일제의 치수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익산의 구릉지에서 만경강까지, 그리고 만경대교 부근 탑천 일대 거의 전부가 갈대밭으로 ‘노전백리’(蘆田百里)를 이루었고, 곳곳 배후 습지에 개연꽃이 만발해 ‘옥야홍련’(沃野紅連)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장관을 연출했다 한다.

여름이면 봉동 마그네 다리를 비롯, 만경강 유역 곳곳에서 물놀이를 즐겼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온갖 생활·산업 폐수로 시커멓게 물들여져 진한 악취를 내는 만경강은 전혀 다른 강으로 와닿을 것 같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만경강은 고우나 미우나 우리의 강이다. 오염된 물을 만든 것이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에 의해서였지 강은 어디까지 나 피해자일 뿐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만경강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기회다. 2천년 이상 우리와 애환을 함께 해온 만경강이 이제 새만금간척사업의 원만한 추진과 세계적인 생태공원 조성의 또 다른 열쇠로 21세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Ⅲ. 만경강의 자태

만경강은 고산면 대아저수지 댐에서 진봉면 하구까지 유로연장98.50km 유역면적 1601,700km²이다. 만경강의 특징은 감조(感潮)하천 구간이 길며 전형적인 자유곡류하천이라는 점이다. 감조하천은 말 그대로 바닷물을 느끼는 하천으로 밀물 때면 하구에서 상류쪽으로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온다. 만경강 하구에서 삼례교까지와 그 사이의 지류 주변의 낮은 곳은 제수문(制水門)을 설치하지 않는 한 바닷물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만경강의 본류인 백구정과 탑천, 부용천에 제수문을 설치하기 전에는 하구에서 약 48㎞ 거리에 있는 삼례부근의 대천리(한내)까지 대조(大潮)시에 강수위가 주기적으로 상승했으며 춘포면 인수리앞 봉개 아래까지 만조의 영향으로 상선이 와서 정박하였다. 부용천은 와룡리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탑천에서도 요교(腰橋) 아래까지 영향이 미쳤으며 익산의 배산(盃山)뒤 다가포까지 젓거리 배들이 내왕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고사포, 동자포, 동지산포구, 회포, 목천포, 춘포, 율포, 양정포, 신창진, 사천진, 황천진, 부석산진등 12개의 대규모 포구나 나루터가 나타나 있다. 이들 뱃길은 오래 전부터 쌀과 소금, 해물, 잡화 등을 수송하는데 이용되었으나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구실을 끝내야 했다. 강 양쪽으로 둑이 쌓아지는 바람에 갈대밭 1백리 길로, 장관을 이뤘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게(蟹)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오히려 게의 피해를 염려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만경강(萬頃江)의 ‘경(頃)’자는 그 훈(訓·한자의 뜻)이‘백이랑’이다. 따라서 강의 이름을 풀어보면 백이랑이 만개이니 ‘백만이랑’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는 곧 이랑이 엄청나게 많은 넓은 들을 의미한다. 또 사람들은 이 평야를 ‘징게 맹경외야미들’이라고 불러왔다. 이를 표준어로 나타내면‘김제 만경 외배미들’이다. 외배미들은 층계 많은 산골 논과는 달리 논배미가 높고 낮은데가 없이 마치 한논배미와 같이 보인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로 호남평야의 노른자위인 금만평야를 이른다.

이 강은 노령산맥의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를 모아 상류에 4개의 거대한 저수지를 조성한 후 전북 평야지대의 중앙부를 서서히 서류(西流),넓은 나팔모양의 하구를 만들고 하천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조선지지자료’에는‘만경강은 완주군에서 발원, 전주·익산·김제·옥구 등지를 지나 김제 진봉면에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그 길이는 98.5㎞다’라고 기록돼 있으며 그 이후 발간된 많은 서적들이 이 자료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1938년에 만경강 하류지역의 구불구불한 곡강(曲江)을 바르게 펴는 직강(直江)공사를 준공, 길이 76㎞에 이르는 제방을 축조하여 강의 실제길이를 줄여 놓았다.

전라북도의 지형은 노령산맥을 경계로 서해안에서 노령산맥의 산록(山麓) 말단부까지의 서부평야지대와 그 동쪽의 산악지대로 크게 구분된다. 서부평야지대는 동진강이북의 침식야산과 충적평야지대로 그 중심은 만경강수계를 젖줄로 하는 호남평야다.

충적평야(沖積平野)는 하천이 운반한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퇴적평야의 한종류로 지표면은 평탄하고 산기슭의 곡구(谷口)에서 하구에 이르기까지 선상지와 자연제방· 삼각주 등이 전개된다. 전북지역의 생활과 영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경강수계는 고산천과 소양천, 전주천, 삼천, 익산천, 탑천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집수지역은 동으로는 노령산맥, 서북쪽은 함라산(咸羅山)이고 남쪽으로는 김제지역 해발고도 30 m이하의 야산지대다.

만경강 유역은 해발고도 30m이하의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고 평야지대를 제외한 지형은 구릉성 산지다. 이 강의 하구연안에는 하천을 통해 바다로 운반됐던 물질이 조수와 연안류에 의해서 해안으로 재운반, 퇴적되어 넓은 간석지(干潟地)가 조성돼 있다.

만경강의 특징은 감조(感潮)하천 구간이 길고 자유곡류하천이라는 점이다. 감조하천(Tidal River)이란 하류부에서 밀물과 썰물 등 조수현상의 영향을 받아 수위와 유속이 변동하는 범위를 가진 하천으로 밀물때에는 하구에서 상류쪽으로 조수가 거슬러 올라오게 된다. 만경강의 경우에는 현재 삼례교 주변의 하상표고가 4m여서 그 이하지역은 감조하천구간에 해당된다.

예전에는 배로 하구에서 익산시 춘포면 대장촌(大場村)까지 들어갔으며 그사이에 신환포(新煥浦·김제)와 목천포(木川浦·익산등의 선착장이 있어 출곡기(出穀期) 농산물 운송에 많이 이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만경강 하구에 있는 만경대교에서 삼례교간 25㎞와 그 사이에 있는 지류연안의 저지대는 인공제방이나 방조(防潮)수문을 설치하지 않는 한 만조시에 바닷물이 침수해 들어오게 된다. 이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는 이 하천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었고 집중호우가 겹치면 하류부에서의 유황이 불안정, 침수기간이 길어지면서 홍수피해가 극심했다.

유황이 불안정한 또 하나의 원인은 하천의 유역면적이 좁다는데 있다. 세계적인 대하천들이 집중호우에도 유황이 안정적인 것은 유역면적이 넓기 때문이다. 또 만경강은 동진강과 함께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자유곡류하천(Free meander)이다. 이는 완경사의 충적지를 흘러가는 하천이 침식곡을 만들지 않고 자유사행(自由蛇行)을 거듭, 하도(河道)의 좌우이동이 심한 하천을 말한

다. 옛 지형도에서 보면 이 강의 하역은 대부분 곡류대에 속해있고 구하도의 흔적인 하적호(河跡湖·곡류하던 강의 일부가 본디의 물줄기에서 떨어져 생긴 호수)가 갖가지 모양으로 평야지대에 수없이 산재해 있다. 호안공사와 경지정리 후에도 이러한 구하도의 유물은 인간생활에 큰 영향을 끼쳐 춘포면 일대 등 익산 남부지역 대부분의 취락은 곡류부의 자연제방위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만경강은 완경사의 충적지이기 때문에 비옥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감조구간이 길어 농업용수가 부족하고 홍수의 피해가 큰 하천이었다. 즉 이 강의 본류인 삼례하류부는 비옥한 충적평야임에도 불구, 저온지(低溫地)가 넓고 하천수에 염분이 함유돼 농업용수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으며 홍수피해도 거듭돼 왔다.

따라서 제방축조·방조수문 설치등 대규모 치수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1920년대까지는 삼례지역 상류인 고산천과 소양천·전주천·삼천주변의 평야지대가 논농사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이 하천 유역에서는 벼농사 실시이후 치수와 수리사업이 계속돼 왔다. 만경강에 대한 주요 치수사업은 하구 간척사업과 동상저수지·대아저수지 축조, 제방공사 및 간선수로 개설, 직강공사, 제수문(制水門)설치 등으로 192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특히 1930년대에는 하안에 인공제방을 쌓고 곡류가 심한 부분에 직강공사를 하여 곡류하천의 하도가 직선상 하도로 변했다. 만경강유역은 70여년에 걸친 하천개수와 개발로 황량한 갈대밭에서 옥토로 변화, 호남평야의 젖줄로서 이 지역의 생활과 문화·경제활동 및 농경 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고산천

전국 8대 오지로 불리던 동상면과 화산면일대의 계곡물이 모여 이루는 천이다. 한 갈래는 동상면 사봉리에서 출발한 사봉천과 위봉폭포에서 북상한 물줄기, 운장산 깊은 골짜기를 굽이쳐 내려온 맑은 물이 동상저수지와 대아저수지에 유입되어 흐른다.

또 한 갈래는 화산면을 가로지르는 화평천(花坪川)이 경천저수지로 들어간 후 남진하여 대아리 저수지를 지나온 물과 만나 고산천을 이룬다. 이 천은 봉동읍 근처에서 마그네천으로 불리며 조선 초기때까지만 해도 돛단배들이 들어와 동포(東浦)라는 지명과 함께 전주부성의 백마강으로 불렸다. 이제 대아리를 지나 동상면과 화심으로 이어지는 순환도로의 포장으로 전주와 익산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었거니와 나는 대아리 일대를 전북 최고의 산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아리 저수지·동상 저수지·경천 저수지· 화암사·화산 붕어찜·대아 휴양림·

도립 수목원·운장산·봉동 생강·고산 감·비봉 수박·경천 대추

 

 

2. 소양천

소양면 원등산과 모래재, 곰티재 등에서 발원하여 용진면을 거쳐 회포대교 부근에서 고산천과 만나 만경강을 이룬다. 만경강 지천 중 가장 하폭이 넓고 경사도 급하다.

193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정비가 이루어졌다 한다. 소양면의 발전으로 급속히 오염되었으나 요즘 아주 맑아져 새우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화심 두부·송광사·위봉사 및 위봉폭포와 위봉산성·한지·화심온천

 

 

3. 전주천

관촌과 상관면의 경계인 슬치에서 발원하여 전주시내를 관통한다. 한벽당을 지나 전주 시가지를 지나면서 다가산 아래서는 서천이란 이름을 얻고 고속 터미널 부근에서 건산천(모래내)와 합류하고 팔복동 추천대에서 삼천천과 모아진 후 추천(楸川-가리내)이라 불리며 삼례교 부근에서 만경강과 만난다. 반석천, 남고천, 건산천 등의 지류가 있다.

♠사선대·죽림온천·한벽당·남고산성

 

 

4. 삼천

구이면의 모악산 부근의 물이 1962년에 만든 구이 저수지에 모여 흐르는 천이다. 이 물길은 효자동과 대한방직 앞을 지나 추천대에서 전주천과 만난다.

♠구이 저수지·모악산·추천대

 

 

 

5. 익산천

완주군 산간 청정지역에서 발원한 만경강이 소양천·전주천과 합류, 강의 면모를 갖추고 평야지대로 흘러나와 곡류하는 지점에 익산천(益山川)이 유입된다. 익산시 왕궁(王宮)면의 왕궁·용화저수지와 금마(金馬)면 금마저수지 등에서 시작된 물길이 합쳐진 익산천은 춘포(春浦)면 용연(龍淵)리에서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약 10㎞의 작은 하천이다. 금마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옥룡천이 용화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길과 만난 뒤 왕궁 저수지에서 흘러 내려온 옥궁천과 만나 이루어지는 이 하천은 마한·백제의 문화가 숨쉬고 있는 유서 깊은 역사의 땅 고도(古都)익산의 동부지역을 휘감아 돌며 남하(南下)하고 있다. 하천 주변인 왕궁·금마면 일대에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289호)을 비롯, 고도리 석불입상(보물 46호), 모질메산성(지방기념물 1호), 익산쌍릉(사적 87호)등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선조들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익산천의 첫 물길이 시작되는 왕궁면 동용(東龍)리의 왕궁저수지는 호남고속도로 익산IC 인근에서 여산면으로 향하는 799번 지방도 바로 옆에 위치하며 면적 49.9㏊, 수심 7m로 익산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일제시대에 준공된 이 저수지의 제방옆에는 1920년 제방이 완성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함벽정(涵碧亭·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서 깊은 땅을 흘러나오는 익산천은 우리나라 하천중에서도 그 오염도가 가장 심한 곳의 하나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익산시가지로부터 적어도 5㎞이상 떨어져 주변에 작은 마을과 논·밭밖에 없는 농촌지역의 작은 하천이 전국 최고치의 오염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실상은 익산시 춘포면 인수리 인수교옆 쌍정천이 유입되는 지점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쌍정천의 최하류 지점에는 농업용수확보를 위한 수문이 설치돼 있고 그 수문을 해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시커먼 폐수가 악취를 풍기며 그대로 익산천으로 흘러든다. 왕궁면에 있는 나환자 정착촌에서 발생한 축산폐수가 바로 이 하천의 오염원이다. 왕궁면 온수리 주교저수지 인근 나환자촌 축산농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이 저수지를 거쳐 쌍정천·익산천·만경강으로 유입되어 연쇄적인 수질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온수리 나환자 정착촌은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곳으로 현재 8백 80여 가구 1천 9백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축산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는 익산·금오·신촌 등 3개 농장이 있고 돼지와 닭을 대규모로 사육하고 있으나 대부분 축산 폐수 정화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주거환경도 열악하다. 산간계곡 고산천에서 시작된 만경강이 전주천과 만나 그 빛을 잃고 평야지대인 익산천 합류지점서부터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주지방 환경관리청이 작년 2월 만경강 각 지점의 수질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고산천에서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1.0(mg/ℓ)이던 것이 삼례에서 6.6(mg/ℓ) 김제 채수지점에서 7.0(mg/ℓ)을 기록했다. 전주천이 합류한 삼례 인근에서 수질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익산천 유입지점에서 최악의 수질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강물에 의해 충분히 희석된 후 잰 수치가 이 정도이니 익산천의 수질상태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고농도 축산폐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초 건립된 왕궁축산폐수처리시설이 가동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배출되는 폐수에 대해서는 단속이나 점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뒤늦게 설립된 축산폐수처리장도 기술적 한계와 함께 처리시설에 과부하가 걸려 기대한 만큼의 수질개선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익산시는 익산천의 수질개선을 위해 하천부지정비와 인공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천 가운데에 나무말뚝으로 둘레를 쌓고 그 안에 흙을 넣어 섬을 만드는 사업으로 폐수가 유입되는 지점에서부터 하류지역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천의 자연정화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인공섬과 하천가에 수생식물인 갈대와 부들·줄 등 을 심었다. 부들과 벼과에 속하는 줄은 늪지나 연못가에 자생하는 다년초로 갈대와 함께 오염물질 정화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는 또 지난해 왕궁축산폐수처리사업소 인근 저수지에 수질정화 및 악취제거 효과가 뛰어난 수생식물 부레옥잠을 심었으며 이를 오염된 하천과 저수지에 겨 심을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친환경적 정화사업이 이미 생명력을 완전히 상실한 하천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도(古都) 익산의 유서 깊은 땅을 돌아 나오는 익산천은 이제 새만금 사

업의 성공여부와 직결되는 환경문제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전주천과 함께 만경강 수질개선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됐다.

♠함벽정·왕궁 저수지·왕궁탑·석불입상·쌍릉·왕궁 온천

 

 

 

6. 탑천

익산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26번국도를 달려 대야(大野)면에 들어서면 탑교(塔橋)를 지나게 되는데 이 교량의 명칭은 바로 하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탑천(塔川)은 금마면 미륵산과 함라면, 삼기면 주변의 구릉에서 발원하여 팔봉·삼성동·황등면과 군산시 서수·임피면을 거쳐 대야면 광교리에서 만경강 하류로 유입되는 전형적인 평야부 하천이다.

길이 15㎞, 유역면적 1만7천8백68㏊로 그 폭은 30∼90m에 이르며 유역의 범람원은 지형학상 배후습지에 해당된다. 그리 규모가 큰 하천은 아니지만 하류지역 지명(大野)에서도 알 수 있듯 드넓은 평야지대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해 내왔다. 이 하천의 유역은 대부분 경작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지정리 및 배수개선 사업으로 유역상황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특히 탑천은 만경강 유입지점에서 자연제방의 발달로 지면의 해발고도가 5m내외이지만 상류로 올라감에 따라 4m정도로 낮아지고 개수공사 이전의 옛 물길도 나타난다.

익산과 군산지역의 평야부를 굽이치고 있는 탑천의 물길은 두 갈래의 큰 줄기에서 비롯된다. 백제문화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는 미륵사지 석탑(미륵산) 인근 금마면 기양리에서 발원하여 황등면 황등리에서 탑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이 두 물길이 합류하는 곳은 익산시 신용동과 황등면의 경계선인 요교(腰橋)부근일명 허리다리 부근으로 익산시 통합이전 익산군과 이리시의 경계지점이기도 했다. 이곳은 또 벽골제와 함께 우리나라 농경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황등제(黃登堤)’의 자취가 남아있는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기름진 평야지대를 흠뻑 적시며 하천의 폭을 넓혀가던 탑천이 만경강을 향해 속도를 더해가는 곳인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에 탑동마을이 있다. 시원하게 뚫린 전군(全群)도로 인근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고려 때 건립된 3층석탑이 있어서 예로부터 탑골로 불리웠으며 하천이름도 이 석탑과 연관된 것이라 한다. 탑천주변의 취락은 탑교를 기점으로 상류와 하류지역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로 익산지역에 속해있는 상류와 중류주변은 드넓은 경작지로 마을이 멀리 떨어져 있는 반면 군산시대야면 관내인 하류에는 하천을 끼고 작은 마을이 연이어 형성돼 있다. 이곳 주민들은 제방도로를 이용하여 인근익산과 군산 등으로 생활권을 넓히고 있지만 교통에는 불편한 점이 아직 많다.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는 강 하류에 유입되는 지류에서 만조(滿潮)때 바닷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방조수문(防潮水門) 설치가 필수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탑천은 일제강점기때인 1935년에 준공된 입석(立石)배수문을 통해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을 마치고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미륵사지 및 석탑·황등제·죽산리 탑동 3층석탑

 

 

 

7. 부용천

김제시 와룡역 뒤편 용지면 구릉지대에서 발원하여 부용역과 공덕면 황산사이의 백구평야를 거슬러 공덕면 농장촌 부근에서 만경강으로 유입되는 아주 작은 하천이다.

♠사창산·구암서원

 

 

 

 

Ⅳ. 만경강과 문화

1. 호남평야의 젖줄

우리 전북에는 4개의 큰강이 있으니 금강, 섬진강, 만경강, 동진강이 그것이다. 그 중 섬진강은 호남평야와 직접관련이 없으며 금강의 영향력도 미미하다. 동진강은 정읍김제 부안의 호남평야의 남부지역의 젖줄이나 유로의 길이나 유역인구(27만 4천명)에 있어 만경강의 절반수준이니 명실공히 호남평야를 이룬 근간은 만경강이요, 전주시민과 익산 시민이 마시고 버리는 모든 물들이 만경강과 함께 한다.

 

2. 조운과 포구

지금의 만경강은 수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러나 예전에는 상류까지 배가 드나들었던 기록들이 많다. 고려의 신하였던 최양은 전주 대승동(소양면)에 은거하면서 친구들과 구만리(봉동)에서 뱃놀이를 했다 한다. 영조때 관찰사 홍낙인은 패서문(전주 서문)누기에서 「문루에서 바라보니 산은 높고 물은 깊다.---배와 수레가 함께 닿는구나」라고 하여 추천에 배가 닿았음

을 알려준다.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의 전라도조에도 「전주 서쪽 사탄(조촌면)에는 소금을 실은 배가 통한다.---전주부는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쌓여 서울과 다름없는 큰 도회이다」라 하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만경강 일대에 10여개의 포구와 나루터가 나타난다. 고사포, 동자포, 신창진, 회포, 춘포, 율포, 사천진, 양정포등이 그것이며, 창(倉) 으로는 신창, 이성창, 옥야창, 우주창, 양창(고산), 동지창(이서)등이 있다.

17세기에 제작된 여지도서에는 만경강에 삼례천방이 축조된 모습을 볼 수있어 그 이전에는 뱃길이 더 위까지 닿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제가 1925년부터 1940년까지 삼례이하 하류에 인공제방을 축조하는 직강공사를 하고 백구정과 탑천 부용천에 제수문을 설차하기 전만 해도 바닷물이 삼례부근가지 밀고 들어왔다(해전리 어전리). 춘포면 까지도 만조의 영향으로 상선이 와서 정박했으며(춘포 삼포) 부용천은 와룡리까지 바닷물이 왕래하였다. 탑천에서도 요교아래까지 바닷물의 영향이 미쳤고(도선) 배산 뒤 다가포가지 소형어선들이 다녔고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경지정리가 이루어지기전까지는 오산천을 거슬러서 원오산가지 젖거리 배가 드나들었다. 당시 목천동과 탑천 일대는 전부가 갈대밭으로 노전백리(蘆田百里)의 황야였으며 배후습지에는 개연꽃이 만발해 옥야홍련(沃野紅蓮)의 장관을 이루었던 것이다.

 

3. 교통

현재 만경강 본류를 가로 지르는 교량은 모두 12개이다. 그중 2개의 철교와 구 인도교 2개를 제외하면 8개의 다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가장 긴다리는 회포대교로 707m이다. 호남고속도로인 만경강교와 목천포의 만경교, 삼례교가 교통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특이한 다리는 우리 익산과 백구면을 잇는 만경강 제수문교와 대장 잠수교이다.

현재 3개의 다리공사가 진행중인데 23번 4차선 국도를 잇는 목천대교가 금년말 완공되는데 길이가 1140m로 목천포 만경교의 두 배이며 만경강의 다리중 가장 길다. 또 하나는 제2의 전군도로를 잇는 공덕대교인데 길이는 800m이며 내년에 완공예정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만경강교는 880m로 금년말에 곧 완공된다. 고산천에서부터 목천포까지의 제방은 대부분 포장이 되어있고 유강리에서 청하까지는 2차선 포장이 아주 잘된 반면에 목천에서 대야방면 제방은 아직 비포장이며 차량통행도 거의 없다. 익산의 남부지역의 대부분의 마을들은 구하도 양안의 자연제방위에 위치하며 춘포면 신복마을이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4. 문화재와 관광

지금까지의 만경강 일대의 고고학적 자료는 공덕면, 백구면, 송천동을 중심으로 한 구릉지역에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비교적 많이 분포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런데 작년 봄 국토연구원 조사팀이 강유역 매장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토기와 기와, 화살촉, 옹기, 석기류 등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의 흔적들을 거의 전 지역에서 발견하였다. 특히 송천동 와룡리의 전주천변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몸돌과 돌날이 발견되어 전북지역 최초의 구석기 세대의 유물을 획인하는 성과가 있었다. 만경강 유역에서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는 삼례교 일대와 청하면 만경대교 일대로 청동기 유물, 척산토성, 고분, 창고터, 나루터 등이 분포되어 보존가치가 높다.

사찰로는 망해사의 경치가 으뜸이요, 심포항의 횟집이 유명하고 강 하류의 망둥어잡이가 그만이다. 정자로는 전주시 팔복동 의 추천대(楸川臺)와 삼례의 비비정(飛飛亭) 공덕의 영사정(永思亭)이 있다. 추천대는 삼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지점에 조그맣고 아담한 모습으로 서있고 전주 8경의 하나인 비비정은 1998년 복원되어 만경강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꾸며주고 있다. 공덕면 당제산의 영사정은 작년에 완공되었다. 서원으로는 삼례의 호산서원(湖山書院)과 공덕의 저산서원(楮山書院)이 있다.

 

 

Ⅴ.새만금 사업과 만경강

1. 새만금 개요

새만금사업은 부안의 변산면 대항리―고군산 신시도―군산 비응도를 잇는 방조제 33km를 축조하여 내해지역 40,100ha(여의도 면적의 140배)를 육지로 만드는 사업이다.

 

2. 추진경위

1987. 12. 17 새만금지구 간척사업 타당성조사 완료

1991. 8. 19 시행계획 확정 고시(고시 제91-23호)

1991. 10. 22 공유수면 매립면허 고시(고시 제91-32호)

1991. 11. 16 사업시행 인가 고시(고시 제 91-36호)

1991. 11. 28 새만금간척사업 기공

1992. 6. 10 제2,3,4호 방조제(2,3,4공구) 공사 착공

1994. 7. 25 제1, 3호 방조제 사석제 끝막이 완공

1996.∼ 시화호 오염문제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문제제기 본격화

1998. 12. 농림부, 새만금간척농지의 산업농지로 용도변경 불가 발표

1998. 12. 30 제1호 방조제(1공구) 공사 준공

1999. 1. 11 유종근전북도지사 "새만금간척사업 재검토" 관련 기자간담회

1999. 총리실 산하 수질개선기획단에 "새만금사업 민관공동조사 반"구성

2000. 4. 조사결과 발표예정

2000. 6. 조사결과 연기발표

 

 

3. 시행체계

총괄 : 농림부

용지매수·보상 : 전라북도

조사설계·공사 : 농업기반공사

 

4. 사업개요

가) 사업구역

1도, 2시1군, 18읍면동 40,100ha

1도 : 전라북도(40,100ha)

2시 : 군산시(28,525ha) (비응도, 내초, 옥구, 옥서, 회현, 대야, 옥도-7읍면동)

김제시(5,290ha) (광활, 죽산, 만경, 청하, 성덕, 부양, 진봉-7읍면동)

1군 : 부안군(6,285ha) (계화, 동진, 하서, 변산-4면)

나) 개발면적 : 40,100ha

토지조성 : 28,300ha

담 수 호 : 11,800ha

다) 토지이용계획 : 28,300ha

식량단지 : 17,950ha

근교원예단지 : 2,500ha

수산개발단지 : 2,000ha

농촌도시 : 800ha

기타 : 5,025ha

라) 사업비 : 22,137억원 (외곽시설 17,337 억원, 내부개발 4,800억원)

마) 사업기간 : 1991∼2011년

바) 주요시설 : 방조제 :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고군산 신시도- 군산 비응도 33km

배수갑문 : 가력배수갑문, 신시배수갑문

 

5. 새만금 순차적 개발 발표(2001년 5월)

현재 방조제의 58%가 완성된 상태이며, 지난해까지 1조 1349억원이 투입되었다. 방조제 및 내부 개발사업비는 총 3조 1737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별도로 담수호 수질개선 및 해양환경 보존을 위해 1조 4568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2004년까지 방조제 및 배수갑문 건설을, 2008년경에는 동진수역의 내부개발을 완료하고, 만경수역은 2010년경에야 개발 완료될 전망이다. 즉 우선 동진수역만 담수화가 추진되며 만경수역은 수질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바닷물이 유입된다.

 

Ⅵ. 만경강 생태하천 가꾸기 사업

숱한 과거사를 안고 오늘에 이른 만경강이 제2의 변신을 강요(?)받고 있다. 만경강 변신을 강요하는 선봉에 새만금 간척사업이 자리하고 있다. 새만금사업의 계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만경강이 그 한복판에 있다. 환경운동단체 등이 만경강 수질 문제를 들어 새로 만들어질 새만금호의 제2 시화호 가능성을 제기한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새만금호 조성으로 만경강은 바다에 직접 닿을 수 없게 된다. 바다로 그냥 흘러내렸던 물들이 호수(새만금호)에 담겨져 새로 조성될 간척지에 농업·생활용수 등을 공급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여의도 면적의 1백 40배에 이르는 국토대확장 사업에 중요한 열쇠를 쥔 만경강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만경강의 변신을 예고하는 것이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 사업이다. 새만금간척사업이 만경강에 기능상의 변신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 사업은 질적인 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만경강 자연생태공원조성 사업’으로 처음 발표된 이 사업은 수변 생태계 복원등을 통해 만경강 유역 60㎞ 수변을 세계적인 자연생태학습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전북도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공원’이라는 어감에서 개발 측면의 부정적 이미지가 부각돼 지난해 3월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 사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 사업배경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사업은 전북도청 산림과에서 주관하고 있다. 별도 사업기획단 발족이 검토되다가 본격적인 사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일단 보류키로 하고 당초 사업을 기획한 산림과에 ‘자연생태공원팀’에서 맡게 됐다. 수질 관련 부서가 아닌 산림과에서 사업을 주관하게 된 이유는 당초 이 사업이 ‘꽃가꾸기’ 정도의 산림녹화 측면에서 검토됐기 때문이다. 만경강 유역에 꽃과 나무를 심어 강 유역 주변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려던 소박한 아이디어가 세계적인 자연생태공원으로 ‘엄청나게’ 커지게 됐다.

99년 9월 9일 유종근 도지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발표하기까지 사업 내용이 비밀에 부쳐졌다. 전북도는 연초부터 계획을 입안하고도 미리 알려질 경우 타 시·도의 모방과 투기 등이 우려된다며 주무과에서 야간작업만 진행할 정도로 보안유지에 각 별히 신경을 썼다. 당초 만경강 자연생태공원조성사업은 전북도만의 특징적인 관광자원이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여러 빼어난

자연경관과 문화·역사의 고장이지만 외국 관광객은 물론, 국내 관광객들에게 조차 정작 전북을 각인시킬 만한 뚜렷한 명소가 없는 것이 전북의 현실이다. 만경강 자연생태공원을 전북 관광자원의 중심부에 세울 경우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할 경우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데 착안했다.

5개 시·군에 걸쳐 도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만경강을 끼고 있어(군산 포함) 전 도민이 쉴 수 있는 공원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 있다. 여기에 현재 도내에서 가장 악화된 수질인 만경강의 수질을 친환경적인 개발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점도 사업 배경이 됐다.

 

2. 사업 내용

이 사업은 용역비만 15억원에 이르며, 12개 기관에서 1백여 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단일 사업으로 15억 원에 이르는 용역비와 1백여 명이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사업 규모는 역대 도내 사업을 통틀어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대규모다.

완주군 용암교에서 청하면 만경대교간 총 52㎞ 수변과 강안 7백60여 만 평의 하천주변 생태계를 복원해수질을 개선하고 관광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국·도비 7백23원을 투입하여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중간 용역보고서에서 5개 기능과 1백여 종류의 시설 유형을 제시했다. 정화 및 생태기능 시설로 만경강 유역에 갈대밭 등 초본류를 널리 식재하는 것을 비롯, 늪지대, 동물 서식 및 이동수목대, 수중보 정비, 수생식재, 어도, 어소, 여울, 연못, 징검다리, 목책다리, 콘크리트 하안 철거, 풍차 설치 등의 시설을 갖춘다는 것. 맨발길, 산책로, 수목대, 야외 음악감상장, 완충숲, 자전거도로, 포켓공원, 픽크니장 등을 설치해 휴식 및 운동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체험 및 교양기능 시설로는 탐조대, 관찰테크, 관찰오두막, 바이오파크, 신토불이 식생단지, 야외영화장, 자연관찰로, 정자 복원, 화훼단지, 작물권장 구간 등이 제시됐다.

조경 및 편의 기능으로 거울풍경대, 산책로 연결로, 소규모 판매시설, 음수대, 자전거 대여소, 주자창 등을 갖춘다는 것, 민자와 외자로 추진될 2단계 사업(2006년∼2009 년)에는 자연생태공원 주변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으로, 생태학습장·테마크장·청소년수련장·자연사박물관·리조트· 컨벤션센터·관광농원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3. 기대 효과

당초 사업의 출발점은 만경강의 관광자원화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업 목표가 다소 바뀌었다. 만경강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사업의 중심을 두고 있으며, 명칭 변경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실제 국토연구원 용역팀도 만경강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 생태하천가꾸기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이를 위해 강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목표 수립의 전제를 달았다. 생태계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를 위해 하천환경에 적합한 기능을 도입시킨다는 것. 이 같은 전제 아래 전북도가 지닌 광활한 평야, 깨끗한 해안 푸른 산림 등 기존 자연환경요소와 만경강을 생태네트워크로 연결하며, 회복된 만경강의 환경과 전북의 역사문화를 접목시킬 경우 전북의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하천 환경의 개선을 통해 만경강 곳곳에 추억거리를 되살리는 시설들을 설치할 경우 현재 주민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만경강을 주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만경강의 하천환경이 개선되고 수변휴식공간이 조성돼 지역주민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이용될 경우 만경강이 전북의 주요관광자원으로 전국에 알려질 것이며, 이로 인한 주민소득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란 게 도의 기대다.

 

 

Ⅶ. 마치는 말

강의 역사는 곧 우리의 삶의 역사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땅에서 만경강에 의지하며 농사를 지으며 삶을 영위하여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 전주와 익산의 100 만이 넘는 인간들의 오염으로 인해 만경강은 신음하고 있다.

지난 5월 새만금 사업은 다시 추진하기로 정부가 결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익산천을 비롯한 만경강의 오염방지를 위한 노력과 생태가꾸기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새만금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대감을 가져보고자 한다.

첫째, 맑은 만경강으로 다시 태어남과 동시에 생태가꾸기 사업이 차질없이 이루어져 아름다운 만경강이 조성되어 우리 시민들과 더욱 가깝고 친숙한 강이 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이 부족한 우리 익산의 시민공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방조제 33km는 우리 익산시민의 자동차를 이용한 바다여행코스가 되어 우리의 여가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만경강 생태공원과 연결되면 더욱 의미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해안고속도로 및 새로운 전군도로, 23번 국도의 4차선화 등으로 만경강을 넘나드는 도로교통이 한결 수월해지고, 지난 2일 정부가 공시한 김제공항이 완공되면 익산에서 약 10분 거리로 이제 철도교통의 요지일 뿐 만 아니라 도로교통, 항공교통도 아주 편리한 고장으로 변모될 것이다.                        2002

 

 

 

※이 글은 지방 신문사에서 기획한 기사를 기본으로 하여, 제가 직접 답사를 통해 우리 익산중심으로 재구성 한 것입니다. 2015년경부터는 국유지인 만경강 제방안의 농지에 대한 경작료를 정부가 배상하고 익산시에서 군산시에 이르는  구간은 경작을 아예 중단시키면서 대규모의 개발사업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4대강 사업 못지않은 예산을 들여 친환경적인 만경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진행되고 있는 만경강의 환경개발사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사한 바 없는데 마침 이에 대한 보도가 있어 옮겨 봅니다. 하루빨리 만경강에 맑은 물이 흐르고 우리 익산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익산시에서도 만경강 주변에 남아있는 구강을  살려 더욱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들어 나가면 관강자원화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에 대한 계획은 없는 듯 합니다.

 

새만금 수질개선의 원동력, 만경강 물길 복원(2016.6.1 전북도민일보)

우리 전북지역에는 섬진강, 만경강, 동진강과 같이 세 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이 중 총 길이 81㎞인 만경강은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있는 운장산에서 발원하여 동에서 서로 전주, 익산 등 전북의 주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다가 새만금 하구에까지 이른다. ‘백만이랑’ 이라는 넓은 들을 의미하는 ‘만경(萬頃)’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만경현에서 유래하였고, 만경강 하류의 평야는 ‘김제’와 ‘만경’의 합성 지명으로 ‘금만평야’라 불렸으며, 이는 오늘날 ‘새만금방조제’에 까지 명칭이 이어진다.

 과거의 만경강은 평야지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주로 담당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만경강은 생활과 공업용수, 친수 및 생태보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됨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예로, 인구기준 전북 제2위 도시인 익산시는 생활과 공업용수 사용량의 절반을 만경강에서 취수(取水)하여 사용하고 있고, 강 주변은 인근 주민과 관광객들이 주말에 자전거를 타며 여가를 보내는 친수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소중한 만경강의 생태환경을 잘 보전하여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등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작년 12월 환경부는 새만금호 수질대책 중간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2020년 새만금호 목표수질 달성을 위한 계획들이 담겨 있다. 만경강 유입 오염원 방지 목적으로 당초 계획된 총인처리, 가축분뇨공공처리 등 각종 수질오염 예방시설과 추가로 전주시 하수처리장 증설 등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여 새만금 상류인 만경강의 수질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기후로 인한 가뭄이다.

 가뭄이 닥치면 하천의 절대 수량이 부족함에 따라, 기존의 오염부하량을 줄이는 수질개선 대책과 함께 안정적인 물길을 유지하기 위한 수량 확보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작년에는 예년대비 적은 강우로 전국적인 가뭄이었다. 만경강도 상류 수원인 대아, 경천 등의 농업용 저수지가 가물어 하천수가 부족해지자 익산시의 생활과 공업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생겼다. 다행히 용담댐을 수원으로 하는 전주권 광역상수도의 대체 증량·공급으로 가뭄을 이겨낸 바 있다. 하지만, 상시 안정적인 만경강 수질개선과 생태환경 보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수질오염 방지대책과 함께 수량 확보 대책도 시행되어야 한다.

 작년 10월 6일 국토교통부 영산강홍수통제소에서는 하천의 건천화(乾天化)를 방지하고, 연중 최소한의 유량이 하천에 일정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 주요 하천 15개 지점의 ‘하천유지유량’을 고시하였다. 만경강의 경우에도 상류지역인 전주천과 소양천의 물이 합쳐지는 ‘대천 수위관측소’지점은 수질개선의 목적으로 장래 초당 4.01톤의 수량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 수자원시설의 운영관리 개선이 시급하다. 생활, 농업 등의 용도에 따라 만경강 내 하천수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유관기관간 협의하여 미흡한 부분은 개선하여야 한다. 특히, 현재 계획된 새만금 수질개선 대책 중 ‘어우보 운영개선(관개기간에 농업용수만 취수하여 연간 약 3천만톤 하천유지유량 확보)’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중기적으로 중·소규모댐과 같은 신규 수자원 확충 검토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중앙정부 주도 하에 댐 건설지를 정하여 발표했다면, 최근에는 지역 여건과 필요에 의해 댐 희망지를 지자체가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으로 변경되고 있다.

 런던의 템스강, 서울의 한강처럼 세계 유수 도시들은 강을 모태로 발전해 왔다. 만경강도 하루빨리 수질개선과 안정적인 수량을 확보하여 새만금 수질개선을 통해 전북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특히, 만경강의 끝인 새만금 개발지역이 쾌적한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명품 수변도시가 탄생하여 성공적인 새만금 개발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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