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학년도 부안여상 3학년 역사문화체험학습 자료>
역사문화체험
일시 : 2004. 1. 7(수)
장소 : 충남 일원
지도교사 : 이석한․3학년 담임
코스 : 학교출발(8:30)
해미읍성 도착 및 관람(10:30~11:00)
서산마애삼존불 도착 및 관람(11:30~12:00)
해미에서 점심(12:30~13:30)
수덕사 도착 및 관람(14:00~15:00)
부안도착(17:00)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해미면 읍내리에 소재한 사적 제116호의 성으로 성곽 1,800m 높이5m , 면적60,000평으로 조선 성종 22년(1491)에 축성되었으며 조선시대 평지에 축성한 석성으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이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 하여 탱자성 이라고도 불렀으나 현재는 대부분 없어지고 진남문에서 관아문에 이르는 진입도로 주변에만 탱자나무가 있을 뿐이다. 당초 읍성 내에는 학교, 면사무소 등의 관공서와 민가가 많이 있었으나 정비 복원사업 추진을 위하여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관아문과 동헌 등이 있다. 이 읍성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고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정조대왕 당시 잠시 유배된 곳이기도 하며 천주교 박해 80년 간에 1천명의 순교자가 처형된 성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박해 흔적으로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의 각 고을에서 잡혀온 천주교도들을 읍성내 감옥에 수감하였다가 고문을 가했다는 6백여 년 된 회화나무가 옛 옥사터가 있던 곳에 상처 흔적을 남긴 채 홀로 서 있다. 또한 천주교도들을 처형하기 위하여 서문밖 돌다리에서 자리개질을 시켜서 처형하였는데 많은 천주교도들을 처형하기 힘들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 한다. 해미천 옆에는 천주교 박해당시 생매장 당한 무명 순교자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16M의 순교탐이 있으며 천주교도 생매장시 천주교도의 죽음에 앞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들은 주민들이 이를 여숫골이라고 불려 전해지는 천주교 박해 유적지로 해마다 수 만 명의 천주교 교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서산시의 문화유적을 대표하는 국보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운산면 용현리 상왕산 중턱의 큰 바위에 부각되어 잇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 걸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석불은 중앙에 석가여래입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 왼쪽에는 보살상이 조작되어 있으며 본존불인 여래입상의 높이는 본존상인 여래입상(높이 2.8m)과 보살입상(1.7m), 반가사유보살상(1.6m) 등 3개의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삼존불의 가장 큰 특징은 특유의 미소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입술을 드러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뺨을 한껏 부풀린 모습의 여래입상 은 백제인의 전형적인 미소를 보여준다. 그것은 신라의 속 깊은 미소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그 미소속에는 침묵이 있고 침묵속에 사랑과 자비가 깃들어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 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짓는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불자들 사이에선 자신과 똑같은 심정으로 얘기해주는 불상으로 통한다. 전체적으로 묵직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으로 신체의 굴곡을 부드럽게 처리한 솜씨도 일품이다. 부처의 옷이 무겁게 보이지만 활달하면서 유려한 주름이 새겨진 것도 독특하다. 반가사유보살상과 보살입상에도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을 턱에 대고 오른다리를 왼다리 무릎 위에 걸친 반가보살상은 청순한 웃음을 띄고 있어 인상적이다. 보살입상은 상반신을 벌거벗은 채 목걸이만 걸치고 있는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수덕사는 서해를 향한 덕숭산에 있으며 북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중심부에 우뚝 서있다. 이 덕숭산 자락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조계종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라고 중국사서인 '북사' , '수서' , '주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 왕흥사,칠악사, 수덕사, 사자사, 미륵사, 제석정사 등 12개가 전하지만 현재까지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수덕사뿐이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수덕사의 고려시대 유물로는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 49호)은 다행히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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