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가난하면 명문대
못가는 평준화)에 대한 반론
-동아일보 사설에 유감
가난하면 명문대 못 가는 평준화 [동아일보] 2004-01-27
올해로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된 지 30년을 맞는다. 1974년 평준화를 채택할 당시 가장 큰 명분은 과외를 몰아내는 것이었고, 둘째는 교육기회의 균등이었다. 그동안 이 두 가지가 얼마만큼 달성됐을까. 먼저 과외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새 ‘세계 제1의 사교육 국가’가 됐다. 과외 추방 목표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두 번째 명분인 교육기회의 균등은 어떤가. 지난 34년간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 전원의 신상정보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평준화체제에서 저소득층 자녀가 서울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날로 희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소득층의 입학률은 일반 가정보다 최고 17배나 높았다. 평준화 효과가 교육기회의 균등은커녕 오히려 악화시켜 온 것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결국 평준화의 두 목표는 모두 이뤄지지 못했다.
아직도 명문대 진학이 신분 상승과 사회적 계층이동의 주요 수단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험생 누구나 바라는 명문대의 문이 고소득층에는 활짝 열려 있는 반면 저소득층에는 굳게 닫힌 불평등한 현실 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머리 좋은 인재들이 가난 때문에 명문대 진학이 좌절되고 빈곤의 대물림이 계속된다면 꿈이 사라진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차별적 구조가 고착되는 것을 막는 한편 저소득층에도 기회를 확대해 줘야 한다.
일부에서는 또 한번 대입제도를 바꿔 보자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대입제도의 변경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고소득층이었음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근본대책은 저소득층의 우수학생들이 다른 우수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경쟁을 통해 명문대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판명 난 평준화의 덫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반론
오늘 일자 동아일보의 사설「가난하면 명문대 못 가는 평준화」라는 사설을 읽고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실업계고등학교 교사(연구부장)으로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과 금년에 입시중인 딸을 둔 학부모이기도 합니다. 일선의 교사로서 그리고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써 저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지나친 과외열풍이나 이로 인한 사교육비 지출은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의 역사적 특성에서 우러난(과거급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독특한 정서요 사회현상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민가서까지도 괴외니 치맛바람이니 하여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한 국민정서는 학원비다, 과외비다 하는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왔으나 단기간에 경제를 급성장시키는 최대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국제적으로 평가받은바 있습니다. 즉, 실보다는 득이 컸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으로 지나치게 양적인 발전에만 치우침에 따라 세계 최고수준에 달한 대학 진학률은 지금까지는 자랑이었지만 이제 고학력 20대의 세계 최고수준의 실업률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긴급하고도 반드시 풀어야할 청년실업문제, 대학 통폐합문제 등의 절실한 과제에 대한 걱정보다는 크게 문제되고 있지도 않은 고교 평준화문제를 자꾸 부각시키는 소위 일부 학부모 교육단체와 동아일보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 머리 좋고 성공한 일류대 출신의 아이들이 우리처럼 경기고다 경복고다 서울고다 용산고다 이화다 숙명이다 하면서 다닐 수 있는 것을 저 평준화 때문에 알아주지도 않는 고교에 다니고 있다”는 불평과 자기들이 지난날의 향수병이 겹쳐(50∼70년대 일류고 출신) 나타나는 일종의 병적 현상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시대에 맞지 않고 반드시 사라져야할 선민의식의 소산이라고 단언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변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가야만이 성공하고 사회를 위해 더 많은 봉사와 공헌을 할 수 있으며 참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은 아님을 이미 어린 학생들은 너무나 잘 알고들 있는데 저 소위 나잇살 먹은 선민주주의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방대를 나와서도 전문대를 나와서도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또 성공하고 있으며 이 시대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의 실력수준에 맞고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그리고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학과를 찾아 그 부문의 최고가 되려는 건전한 생각들을 이미 우리의 미래를 걸머진 대부분의 학생들은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저들만은 아직도 구시대의 잠에서 깨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소득층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실은 인생을 수능성적의 잣대로 재고 있습니다.
1. 평준화 정책의 긍적적인 측면과 개선상황
저 소위 많이 가지고 누리는 자들은 평준화를 폐지하고 고교들을 서열화시키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과 학생들은 동일한 지역에서 일정한 수준에만 도달하면(대개 중학교 성적이 학급에서 50∼70%이내 이면) 성적우수자나 중위권이나 부잣집 자식이나 가난한 집 아이나 모두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거니와 학교별로 등급이 매겨지지 않으니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모두 선의의 경쟁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선민주의자들의 눈엔 학원처럼 또는 과거의 일류고교처럼 논술지도도 잘해주고 심층면접지도도 알아서 잘 해주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어차피 그 부분에서 앞서나가는 학원에 의지하는 것은 현재로는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대학입시가 너무 바뀌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고 논술이나 심층면접이 필요한 세칭 일류대 진학자는 10%가 안되기 때문에 별도의 적절한 지도가 어려운 실정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평준화를 완전 해제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일류고들이 생겨나고 초등이나 중학교학생들, 그리고 부모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압박을 주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파출부나 택시운전아르바이트로 자녀 학원비를 댄다는 엄마들에게 너무 큰짐을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자녀교육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열성은 전혀 사그라질 같지 않고 오히려 청년실업의 대란속에 더욱 기승을 부릴 테니까요.
여러분! 누구나 노력만 하면 모두 공부를 잘하고 일류대학에 가서 공부할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보는가요? 제 자신도 제 자식들도 또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모두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공부 잘하고 능력 있는 아이들은 자립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과학고, 외국어고, 예고 등)에 보내면 되는 것을 왜 정부의 노력과 교육단체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당치도 않은 서울대 사회계열 신입생들의 환경조사보고서를 전 학생들의 모습인양 일반화시켜 교육정책에 혼란만을 주는 것인지 너무나 화가 납니다. 아니 저들은 왜 고등학교만 가지고 저 야단일까요? 아예 초등학교 중학교도 입시로 선발하여 일류초등학교, 일류중학교를 만들면 자기들의 자녀들은 충분히 입학할 것이고--- 그래야 만이 우리나라가 21세기 세계의 초일류 경쟁시대에서 능히 가장 앞서갈 수 있다는 논리 아니겠습니까? 부자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도 천당에 가기 힘들다는 말에서 부자는 부자의 논리로 가난한자를 얕보고 정치인은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도 당연한 정치개혁을 못하며 정치의 논리로 변명하는 것과 머리 좋고 일류대 나와 언론에 종사하는 저들은 저들의 논리로 보통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그 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가난한 수재들이 일류고(현재 자립형 사립고는 수업료가 비싸다지만 공립인 과학고는 그렇지도 않음)에 못 가고 평준화고교에 다닐 수밖에 없어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하지 못하니 그들을 위해 평준화를 해제시켜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게 해주어 서울대 사회대에 가게 해야 한다니 대처 대학 나와 신문사에 근무한다는 논설위원과 동아일보라는 대 신문이 저런 어설픈 논리로 국민을 기만할 수 있단 말입니까?
평준화에 대한 보완책(자립형 사립고, 외고, 과학고등의 증설)의 이 계속 나오고 있고 세칭 일류대학들이 학교 내신과 별도로 수시모집을 통해 인재들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 평준화 해제는 득보다는 실이 큼을 저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공교육과 입시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에 혼란만을 부추길 뿐입니다.
저는 지방의 이 지역에서는 소위 일류고를 나왔으나 명문고라 해서 특별히 공부를 더 잘하게 된 것도 없거니와 명문고 간판은 허울이요, 삼류고 출신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더욱 갚진 것을 보면서 실감나게 느끼며 그들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2. 가난하면 명문대 못 간다?
고교 평준화는 1974년에 채택된 이후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천하면서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주로 대도시지역에서 큰 불만 없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평준화가 과외를 몰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평준화를 해제하면 학원이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학교에서(공교육)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남보다 더 잘하려는 경쟁심은 변하지 않으므로 학원이나 과외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질 가능성이 적으며 사교육비를 걱정하나 공부에 투자하는 돈이요, 또 사교육으로 먹고사는 인구가 수 십만 내지 백 만 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요? 이미 우리사회에는 학원과 학원강사가 하나의 큰 직업군으로 자리잡은 터인데 일거에 없앨 수 있단 말인가요? 저들은 무조건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공격하면서 교육제도의 개편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오히려 역효과가 많은 선행학습 만능주의에 빠진 학부형들을 계도하는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무차별 공격만 일삼습니다. 물론 평준화만 고집하며 보완을 거부하는 유교육감도 지나친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저들은 가난하면 명문대에 못 간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서울대 사회대 보고서에 의하면 갈수록 저소득층의 자녀들의 사회대 입학률이 떨어지고 있으며 이의 원인은 평준화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평준화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문제입니다. 잘못된 분석이지요. 과거 60∼70년대에는 인구의 60∼70%가 시골에 살았으며 가난하고 못살았지요. 서울인구는 겨우 300∼400만이었고요. 대학진학률이 10%도 안되던 시절임에도 저 역시 서울의 대학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가난하다보니 공부 잘하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많을 수 밖에요. 가난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수재들은 장학금으로 중고교를 다니기도 했으니까요. 그들은 대부분 성공하여 이젠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경제도 성장하여 자녀를 대학에 돈 없어서 못 보내는 빈민층은 아주 극소수가 되었습니다.(실제로 최근 10여년 간 지켜본 저의 시골 고향의 마을에서는 돈이 없어 자녀를대학에 못 보낸 집은 거의 없습니다.) 단기간의 경제발전과정과 사회변화과정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굳히지 못하고 저소득층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적 능력이나 경제적 능력이 일반인보다 다소 떨어짐을 부인할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의 자녀들이 최고수준인 서울대 사회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데도 가난하면 사교육 가르칠 돈이 없어 서울대 사회대에 못 간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능 0.2%이내에 들어 서울대 사회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인문계 고교에서 전교 1등의 학생들이며 높은 지능과 본인과 부모들의 엄청난 노력과 관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거늘 오늘날 아직까지도 가난하고 저학력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러한 경쟁을 뚫고 전교1등에 수능 370점이 나오기가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이제 가난해도 서울대 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논리는 너무도 이 시대 계층구조의 변화를 읽지 못한 무식의 소치입니다. 일류고를 만들어 가난한 집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서울대에 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 대안이 특수목적고이며 서울대 사회대에 갈 정도의 수재(중학교에서 전교 1∼2등에 고입고사 200점 만점에 최하 190점이 되어야 함) 임에도 수업료 낼 돈이 없어 특수목적고에 못 다닌다는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혹 있다면 신문사에서도 돕기 켐페인이라도 벌인다면 저도 기꺼이 동참할 것입니다.
저들처럼 부모가 최고가 아니고 최고의 과외를 받지 않아도 보통의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갈 대학은 많습니다. 사관학교, 경찰대, 교육대학등이 있으며 작년부터는 사실 이과의 최고수준의 학생들은 모두 의약계열로 몰리고 있습니다. 서울대가 목적이 아니고 무조건 어디에 있든 의대, 한의대, 약대를 찾아가고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들에 대한 자료로 일반화시켜 말하기에는 한해가 다르게 입시경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서울대만 가려는 잘못된 입시경향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보다 취업이 확실한 의약계열이나 교육대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서울대의 사회대에 기꺼이 입학하겠지요.(이 말씀은 그저 이론으로 적은 말이 아니고 저의 시골 초등학교 친구들의 자녀들에게서 보는 팩트입니다. 저의 고급공무원인 친구의 아들은 서울대 사회대에 재학중이고, 서울에서 택시기사인 친구의 아들은 지방의 한의대에 재학중이며 시골에서 통닦집을 운영하는 친구의 딸은 서울대 사범대에 다니고 있고, 부부교사로 중간이상의 수준에서 살고 있는 본인의 딸은 이번 서울대와 다른 대학의 사범대에 응시하였음을 보면 저의 주장이 픽션이 아님을 인정하시리라 여겨집니다.) 사회대에 보내지 않은 세 사람과 자녀들 그 누구도 서울대 사회대에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가정환경과 본인의 뜻과 실력에 맞게 진학한 것이지요. 고급공무원인 친구 자신이 일류대 출신이며 고시 출신이고 부인도 일류대 출신이기에 그저 당연한 일로 우리는 여기고 있습니다. 주변의 부부교사의 딸이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번에 서울대 사회대에 지원했는데 부끄럽지만 통닭집하는 친구의 딸과 저의 딸과 이번에 사회대에 응시한 선생님의 딸은 모두 제각기 지방의 중소도시의 인문계고교에서 1∼2등 짜리들입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보수신문이라고 정부로부터 온갖 비난과 핍박을 받아오는 동아 등의 신문들에 대해 저는 항상 동정하고 있고 지지해 왔지만 이번 평준화 해제문제를 거론하는 보수언론의 시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되었습니다.
제발 우리나라의 복잡한 교육현실에 혼란을 부추기지 말고 누구나 자기의 미래를 위해 어느 대학에 가서든지 노력한다면 이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찾고 보람을 느끼며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아이들과 국민들에게 불어 넣어주는 신문이 되십시오.
3. 쉬운 출제경향 때문에 부유층 자녀들이 서울
대에 많이 진학한다?
26일자 사회면에서는 위와 같은 서울대의 이창용 교수의 해괴한 해석을 제목으로 달았습니다. 수능시험이 쉽다니 과연 서울대 교수가 바라보는 해괴망칙한 해석입니다. 여러분 어디 스능시험 문제 찾아 한번 풀어보시지요. 과거의 예비고사나 학력고사와는 달리 철저히 암기위주의 문제에서 벗어나 얼마만큼의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시험이기에 외우고 암기하여 푸는 문제는 찾기 어렵습니다. 지능이 따르지 못하면 엄청나게 어렵고 지능이 높으면 그만큼 풀기가 쉬워지는 시험이지요. 즉, 판단력, 비교력, 분석력, 추상력, 통합력, 종합능력 등의 고등정신 능력을 판별하는 시험이기에 대단히 어렵고 그래서 340점이상의 고득점자가 5%정도밖에 안나오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정의 아이들은 이미 지능이 높고 부모들의 희망과 본인의 목표 수준이 이미 높고, 좋은 환경과 진학안내로 공부도 잘하고 사회대에도 과감히 입학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임에도 저들은 이 시대의 많은 아이들 중 0.2%에 들어야만 입학이 가능한(370점이상)학생들을 잣대로 우리 교육을 망가뜨리려는 재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다는 재수생들의 고득점 문제가 더 걱정입니다. 재수가 필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지요.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언급하겠습니다.
4.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주장에 대해
공교육이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럼 왜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야단들일까요?
첫째, 지나친 교육열이 학교에서의 학습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남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하고 싶어 무조건 학원에 보내야 마음이 놓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서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유인종 교육감의 선행학습 규제는 방법상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 이론은 정말 확실합니다. 저는 철저히 저의 아이들이나 주변사람들, 학부형들에게 선행학습의 비효율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다만 지능이 높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최고 수준의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조하고 잇습니다
둘째, 수능시험에서 재수생들의 엄청난 강세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돈 들여서 정상적인 학교생활도 아니고 일년이나 오직 열심히 공부만 한 아이들이 1년 후 20점씩 더 성적이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나요? 또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면 경험의 축적과 종합사고능력이 향상되고, 일체의 공부이외의 생활은 제거하고 집중력 있게 공부하기 때문에 성적은 향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주변 동료 자녀 두 명이 320→343, 353→374로 실제 20점이상 올랐습니다. 여러분 돈 쓰지 않고 오직 일년동안 저축만 한다면 재산이 늘어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경험이 늘어 장사도 조금은 더 잘할 수도 있겠고요. 다만 너무 지나쳐서 재수가 필수가 되는 것은 막아야겠지요. 이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학교의 학사일정을 통해(방학을 줄이는 등)일찍 반복학습을 시작합니다.
○최소한 우수반 한 반 정도는 편성하여 방과후에 특기적성시간을 이용하여 통합형 수업시간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문제 풀이시간에 일사, 역사, 지리교사가 함께 참여합니다. 그리고 교사자신들이 통합형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춥니다. 일류대학에서는 논술과 심층면접을 요구하므로 학교에서 능히 이를 지도할 수 있는 유능한 교사를 양성합니다.
5. 마치는 말
너무 긴 글이 되어버렸음에도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저의 글이 교사의 입장에서보다는 어쩌면 먹고는 사는 가정환경에 교사인 부모이기에 남보다는 좋은 여건에서 웬만큼은 공부를 해준 두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 치우쳐서 쓰여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문제가 제도가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지나친 교육열에서 그 근본원인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은 크게 보면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더 크다고 할 때 저는 우리 교육의 질을 그다지 크게 우려하지 않으며 동아일보에서 주장하는 터무니없는 논리와는 달리 우리 사회의 모든 보통사람들과 또는 가난한 사람들도 아이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잘하면 무슨 방법으로든지 다들 대학에 보내고 있으며, 그만큼도 안되면 일단 취업해서 돈은 번 다음 다시 대학에 진학하는 아름다운 자세들을 우리 아이들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다시 말하면 대학진학은 본인의 지능과 노력과 미래에 대한 의지, 그리고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뒷받침들이 모두 어우러져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며, 누구나 모든 면에서 똑 같을 수도, 똑 같아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결코 부모의 학력이나 경제적 능력이나를 이분법적으로 따져서도 안 되는 것이며 더구나 아무런 논리적으로 관련없는 평준화문제를 끌어들여 평준화 해제에 이용하려는 저들의 작태는 가소로운 일입니다. 가난한 집 수재 걱정일랑 마시고 당신네들의 아이들이나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의 가치관으로 저 잘못된 정치인, 경제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갖지 않도록 올바른 인성교육에나 힘을 기울이십시오. 당신들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여 이사회를 이끌어 가는 훌륭한 엘리트 지도자들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며, 장차 지나친 대학의 양적 팽창과 입학대상자들의 급감으로 대학의 통폐합 문제가 가장 큰 숙제임을 아시고 이의 조속한 추진과 출세와 돈만이 제일이 아닌 남을 배려하는 인간을 육성하는데에 교육의 초점을 두고 모두가 마음 아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언론으로서의 노력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동아일보는 1월 29일자 사회면에서 또다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동 신문 취재팀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서울대 입학생들의 아버지의 학력수준이 대졸 이상인 사람의 비율이 1980년에 46%에서 1993년에 55.8%로 2003년엔 70.8%로 높아졌다면서 학력세습을 강조하고, 특히 법대와 의대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하단에는 서울대 심포지엄에서의 평준화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미 필자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동아일보의 진단은 사회변화의 흐름을 도외시 한 즉, 사회학의 기초도 모르는 기자들의 의도적인 왜곡이다.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보자.
1980년에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1960년 생이라 치자. 그 아버지는 1935년 생쯤이 된다. 1935년 생이면 올해 70세이다. 그들이 대학에 다닌 시기는 1950년대 후반이다. 그 당시 대학에 다닌 사람들은 같은 나이 전체의 5%미만이다.
2003년에 대학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아버지의 나이는 대략 45세 이상 50세 정도이다. 이미 이때는 남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15%이상으로 알고 있다. 본인의 아버지와 제가 그 시기에 해당되기에 정확하지는 않으나 거의 맞다고 확신한다.
자! 그렇다면 동아일보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23년 동안 대학진학률이 3배 이상 증가했으니 자녀의 서울대 진학률이 46%에서 70.8%로 증가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 결코 학력세습이 아니요, 더욱이 의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보통사람들은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어 있으나 제 주변에서 자녀를 서울 의대에 보낸 사람을 전혀 본적이 없으며 이곳 중소도시(인구 30만)에서 서울의대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울의대에 들어갈 정도의 수재의 부모의 학력이 어느 대학이나 타 단과대 보다 높을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왜 평준화는 대입하여 모두가 평준화 탓 인양 독자와 국민들은 오도하는 지 그 의도가 심히 불쾌하다. 28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에서는 서울대 서이종 교수가 “평준화의 논의도 존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교육욕구에 상응한 다양한 특성화 학교나 저소득층도 들어갈 수 있는 값싼 우수학교를 어떻게 많이 만들어갈 것인가로 모아져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하고 있으며,
한국개발 연구원(KDI)의 이주호 교수가 “가난한 수재가 성공하는 코리안 드림이 붕괴되었고 평준화가 학력은 높이지 못하고 불평등만 확대시키고 있다”는 시대착오적이고 전혀 비논리적인 주장을 펴는데 대해서 전교조 정재욱 정책실장이 “소득격차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며 그 원인을 평준화의 실패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과, 서울대 교육학과의 윤정일 교수의 “부모의 머리가 좋으면 자녀의 머리도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며, 좋은 교육이 자녀에게 전해지는 세대간 효과도 매우 중요한데 이를 문제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은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보고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시민들은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의 의도적인 왜곡과 이주호 교수 같은 사회현상의 변화도 읽을 줄 모르는 풋내기 학자들의 주장에 행여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거대한 그리고 막중한 교육문제는 일거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차근차근 풀어내며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이슈로 삼아야 한다. 대학간 통폐합 및 학과개편 문제, 청년 실업 문제, 이공계 기피 현상문제, 실업계고교 정체성 문제, 전인교육과 인성교육 상실문제, 이 사회의 도덕성 불감증문제 등 풀어야할 숙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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