採石江 閑談
明(명)나라 말기에 梅之渙(매지환)이라는 詩人(시인)이 있었다. 한번은 天下大詩人(천하대시인) 李白(이백)의 무덤을 지나게 되었는데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의 墓碑(묘비) 위에다 제 딴에는 文才(문재) 깨나 갖추었다고 自負(자부)하는 者(자)들이 함부로 詩句(시구)를 새겨 넣었던 것이다. 불쾌한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으로 자신도 한 首(수)를 적어 넣었다.
採石江邊一堆土(채석강변일퇴토:채석강변의 한 무더기 흙이여)
李白之名高千古(이백지명고천고:이백의 이름 천고에 드높도다)
來來往往一首詩(래래왕왕일수시:오가는 사람마다 한 수씩 남겼으니)
魯班門前弄大斧(노반문전농대부:노반의 문전에서 큰 도끼 자랑하네)
詩仙(시선) 李白(701-762)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 위에 떠 있는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곳이 採石江인데 그의 무덤도 採石江邊(변)에 있는 듯 하다. 우리 扶安(부안)의 採石江은 바로 李太白이 죽고 묻힌 중국의 採石江과 그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第 四句의 魯班門前弄大斧의 事緣(사연)은 이러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에 魯(노)나라에 公輸班(공수반)이라는 名(명) 匠人(장인)이 있었다. 어떤 나무토막이든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國寶(국보)로 변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 났다. 워낙이 技巧(기교)가 뛰어나 도끼놀림이 鬼神(귀신)같고 대패질은 아지랑이 춤추듯 했다. 그때 젊은 목수가 하나 있었다. 조금은 技藝(기예)를 익혔는데 도무지 眼下無人(안하무인)이었다. 하루는 사람들 앞에 自身(자신)의 作品(작품) 몇 점을 가지고 나타나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ꡒ이것 보시오, 神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입니다ꡓ하면서 도끼를 직접 꺼내 가지고는
現場(현장)에서 示範(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서 있던 곳은 公輸班의 大門(대문)앞이었다. 그러자 구경꾼중의 하나가 가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ꡒ이봐, 젊은이. 어디 등뒤를 한번 돌아보시지. 그게 누구의 집인 줄 아는가? 바로 天下의
名匠 公輸班의 집이라오ꡓ
집안을 둘러보고 난 젊은이는 茫然自失(망연자실)했다. 鬼神도 無顔(무안)해 할 정도의 재주, 精巧(정교)의 極致(극치)를 다한 彫刻(조각)들은 自己(자기)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技藝였다. 젊은이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머리를 떨군 채 자리를 뜨고 말았다. 孔子(공자) 앞에서 文字(문자)를 쓰면 부끄러운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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