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행

백록담과 천황봉(2009.6.9-12)

청담(靑潭) 2009. 9. 1. 15:57

백록담과 천왕봉(2009.6.9-12)

◈ 프롤로그

  우리학교가 1학년은 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다녀오고, 2학년은 현장체험학습(수련활동)으로 지리산 종주를 한다. 수학여행이야 대한민국 어느 학교나 다녀오는 일이지만 수련활동은 농산어촌 우수고 예산이 풍부한 우리학교만이 학교장의 뜻에 의해 일루어지는 행사이다. 본디 수련활동은 2학년 때 도교육청 학생수련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남원 운봉수련원이나 부안해양수련원에 입소하여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나 그 활동이 학교마다 2년에 한번만 배당되는 불합리 때문에 2년에 한번은 어쩔 수 없이 학교 자체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산을 지극히 좋아하는 이찬규 교장은 학교에 충분한 학습프로그램 예산이 있으므로 아예 학교특색활동의 하나로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여 3년째 시행하게 되었다.

  학교장이 학생들과 밥을 해먹으면서 3박4일을 지내는 지리산에 참가하기 어려운 때문인지 지난 2년 동안 학교장은 제주도에 참여해왔고, 교감은 건강이 나쁜 관계로 지리산에 참가치 않고 학생부장이 인솔하였다고 하는데 내가 학교 조직(업무분장)을 짜면서 금년도 인솔책임은 2학년 남자교사(손윤영)로 옮겼고 교감인 나도 어느 곳이든 한쪽의 인솔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교장이 은근히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하시기에 흔쾌히 동의하고 나는 지리산에 가게 되었다.

 학교장은 산을 잘 타지 못하는 내게 지리산을 가도록 한 것이 미안하신지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제주도 사전답사에 실장과 함께 다녀오라 권한다.?不敢請 이언정 固所願?이라 선뜻 응하여 실장과 함께 제주도에 가게 되고, 행사계획에 의해 지리산에도 가게 되었다. 


▣한라산과 백록담

  행정실장은 원래 1박2일로 다녀올 생각이었다는데 내가 가는 길에 한라산 등반을 꼭 해야겠으니 2박3일로 하자고 청하여 그리 하게 되었다. 이왕 마음 편하게 가는 김에 백록담을 찾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명산은 첫 째가 백두산이요, 둘째가 한라산이요, 셋째가 지리산인데 백두산은 두 번이나 가서 천지를 완벽하게 구경했으나 아직까지도 한라산의 백록담과 지리산의 천황봉에 오르지 못한 한(?)이 있는 고로 이참에 반드시 한라산에 다시 올라 백록담을  보기로 아주 작정을 한 것이다.

  제주도에 몇 번이나 갔다 왔는지 추적해 보니 채 몇 번이 안 된다. 제 1차는 1987년 여름방학 때 양선생과 함께 갔다. 가난하던 시절 돈이 아까워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지 못한 한(?)을 풀기위해 대한여행사를 통해 신혼여행식으로 당시 최고의 호텔인 칼호텔에 머물며 했던 여행이다. 광주에까지 가서 비행기를 처음 탔다. 호텔식사비가 너무 비싸 식사는 밖에 나가 식당에서 해결하였다. 여전히 우리는 가난을 면치 못했던가 보다.  제 2차는 1992년경에 군산월명여중에서 겨울 직원여행을 간일이다. 아마도 군산에서 제주행 비행기가 뜨기 시작하여 친목회 주선했던 것으로 여겨지며 이때 한라산을 등반하였는데 당시 어리목 코스로 올라 윗세오름까지 (4.7㎞ 2시간) 걸려 올라갔으나 백록담 정상은 등반이 허용되지 않는다하여 영실코스(6.1㎞ 2시간 30분)로 내려왔었다. 당시 백록담에 오르지 못한 것이 마음에 크게 걸려 있었는데 내가 주관자가 아니어서 지금은 누군지도  잊었지만 사전에 충분히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친목회간사의 잘못을 탓하기도 하였다. 눈길을 걸어서 시간은 꽤나 걸렸던 기억이다. 제3차는 2004년 전주제일고 2학년 5반 담임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일이다. 당시 우리 반에서 두 명의 학생이 돈 때문에 못 간다는 것을 ?내가 돈을 빌려 줄테니 언제든 벌어서 갚기로 하고 같이 가자?하여 전원이 갔는데 한명은 고맙게도 출발 직전에 돈을 마련하여 가져오고 한명은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데 언제쯤 돈 벌면 찾아올지(?) 모르겠다. 지금은 누군지조차 잊어버렸다. 네 번째는 2005년도 1월에 동창인 이완수의 초청으로 완수의 대형펜션에 동창 12가족이 모였던 일이다. 그때 조랑말 경마장에서 우리 팀 세 명이 경마에 당첨되어 100만원을 벌어 완수에게 주었더니 그 돈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사 주었었다. 이제 다섯번째로 전적으로 한라산의 백록담을 보기 위하여 제주도에 가게 된 것이다.


 

■2009년 5월 29일(금)

  정우경실장과 나는 국제여행사에서 모텔을 제공하면 둘이서 시간 나는 대로 간단한 구경거리를 찾아 여유 있게 보내면서 둘째 날 한라산에 오를 일 만 중히 여겼더니 그게 아니다. 광주비행장에 내 차로 가서 10시 20분에 출발하여 40분 만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비행장에 모텔사장이 나와 대기하고 있어 가는 날까지 숙식을 제공하고 안내를 할양이다. 학생들이 점심을 먹을 식당들을 둘러보고 서귀포에 있는 모텔에 여장을 풀고 여미지 식물원을 찾아 구경하고 주상절리를 찾았다. 6월 1일부터 열리는 한․아시아 정상회담 준비로 제주컨벤션센터가 사복경찰들이 검은 옷들을 입고 좍 깔려있는데 우리가 유유히 센터를 지나가도 거침이 없다. 아직은 그리 심하게 통제를 하지는 않는 듯하였다. 예전에 관람하였던 오토바이쑈 등을 구경하고  제주시에 가서 다른학교 인솔차 제주에 온 국제사장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다. 38살이라는 마음 좋은 모텔 사장에게 안내를 해주어 고맙다하고 우리를 위해서 방을 제공하는 것과 안내를 해주는 것으로 충분히 고마우니 다른 어떤 데에도 일체의 돈을 쓰지는 말도록 요청하고 식사비는 우리가 계산하다. 입장료는 사전답사교사라고 하면 무료여서 사실 돈이 들어갈 일도 그리 없다.

 

 

 


 


■2009년 5월 30일(토)

  아침에 성판악으로 출발하다. 이번에 가기 전에 조사해보니 지금도 어리목이나 영실코스는 한라산 휴식년제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따라서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보려면 성판악코스나 관음사 코스를 택해야 되는데 성판악 코스가 완만하다하여 이곳으로 오르고 험하고 경사가 급하다는 관음사코스로 내려오기로 정하였다. 성판악코스(9.6㎞ 4시간 30분)으로 올라가고 관음사 코스(8.7㎞ 5시간)으로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정실장은 체구가 작고 비실비실해도 역시 젊어서인지(46세) 나보다 훨씬 잘 올라간다. 정상 마지막 구간은 매우아름답고 바람이 세다. 한라산의정상엣 백록담을 바라보니 분화구 크기는 제법이나 물이 거의 없어 사람들이 다들 웃는다. 백두산 천지와는 실로 천지차이다. 점심을 호텔에서 시켜준 도시락을 먹고 바람 없는 곳에서 잠깐 쉬다가 하산을 시작하였다. 내려오는 시간도 4시간이 걸렷으니 모두 8시간 30분을 걸었다. 하산하여 학교에서 전화가 와서 받으니 김병수 주사인데 실장아버님이 위독하시다면서 가족에게 전화를 해달라는 것이다. 실장 아버지는 일 년 전에 뇌출혈로 떨어져 그간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그저께도 실장이 다녀왔고 자주 위독하시므로 그리 크게 걱정치 않고 제주에 온 것인데 전화해 보니 방금전에 이미 운명하셨다고 한다. 저녁비행기를 알아보니 구할 수가 없어 예정대로 아침 9시 15분 비행기로 가기로 정하였다.


■2009년 5월 31일(일)

  9시 15분 비행기로 광주에 도착하여 금산사 가든 《우마실》에 도착하다. 오늘 어머니의 생신을 기념하여 가족이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난희네를 제외하고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다.


  

▣지리산과 천왕봉

 지리산은 장엄하다. 뱀사골이나 노고단에 간 횟수는 이미 셀 수조차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까지 지리산 종주도 못해보고, 따라서 천왕봉도 찾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곳이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내 반드시 천왕봉에 오르리라?고 자주 떠벌였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올라주겠다고 하였으나 우리 양선생과 함께 가려니만 하다가 여태껏 실행에 옮기기 못한 것이다. 이제 드디어 열흘전의 백록담 탐방에 이어 천왕봉이다.


■2009년 6월 9일(화)

  2학년 학생74명(남 42명, 여 32명)과 지도교직원 10명(남4명, 여6명)으로 총 84명이 출발하다. 제주도팀은 5시30분에 목포로 출발하고 우리는 8시에 출발하다.

  성삼재에서 10시 50분에 출발하였으므로 예정보다 50분이 늦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12시 20분에 출발하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임걸령~화개재~연하천대피소를 거쳐 벽소령대피소까지 총 16.6㎞를 걸었는데 무려 8시간 10분이 걸렸다. 총 12개조 중에 나는 9조 지도교사이다 보니 늦게 따라가는데 노고단 대피소부터는 원래 빨리 걷지 못하므로 힘들어하는 일부 여학생과 남학생들과 함께 정말이지 제대로 한번 쉬어보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걷고 또 걸어 7시 10분에 간신히 도착하다. 그러나 선발대는 6시쯤 도착하였다 하며 손윤영선생은 가장 힘들어하는 학생들과 7시 35분에야 도착하였는데 이때 정확히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어두워진 산길이라 걱정이 매우컸다. 손선생이 수없이 혼을 내며 다그치고 독려한 덕에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성삼재에서 반드시 10시에 출발하고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1시간을 더 걸은 뒤 임걸령 정도에서 점심을 먹는 계획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니 비바람은 몰아치는데 먼저 도착한 전북대생들의 식사가 끝나지 않아 기다리다가 7시 30분이 넘어서야 저녁준비를 시작하는데 날은 궂고 아이들은 소란하여 마치 아수라장에 온 듯하다. 9시면 소등하므로 모두들 잠이 들었다.

 


■2009년 6월 10일(수)

  오늘은 날이 들었다. 해가 약하므로 뜨겁지 않고 어제 비가 와서 시원하여 등산에 안성맞춤인 듯하다. 벽소령에서 8시에 출발하여 세석대피소에서 주먹밥을 먹고 여유 있게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총 9.7㎞에 5시간 30분이 걸렸다. 너무 일찍 도착(3시 10분)하였으므로 쉬다가 5시부터 밥을 지어 6시에 먹다. 이제 저녁식사시간에도 아이들이 종용히 질서를 지키며 차분하게 행동해 주어 사고걱정도 덜고 다행이다.

 

 

■2009년 6월 11일(목)

 

  원래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거쳐 로타리 대피소를 경유하여 중산리로 하산하게 되어 있는데 손윤영이 착각(?)하였는지 내일아침에 천왕봉은 희망자만 다녀오고 로타리 대피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하산한다고 공지하였다. 이미 여교사 6명이 다리를 다치거나 기진맥진하고 있고 일부 여학생들이 포기상태이므로 차라리 잘 되었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실행하자고 하다. 학교장이 전화로 왜냐고 물어 왔지만 이유를 잘 말씀드렸다. 총 29명(남학생 19명, 여학생 8명, 나와 손윤영)이 비바람 정말 거창하게 몰아치는 새벽 5시에 천왕봉을 향해 출발! 너무 춥기에 모두들 우비를 입도록 하고 1.7㎞를 오르는데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바람에 떠날릴 듯 바람이 거세고 요란하다. 아! 지리산 천왕봉! 대한민국의 사나이라면 이미 20대에 한번쯤은 다녀온 천왕봉을 내나이 쉰일곱이 되어서야 오르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다. 천왕봉에 오르니 구름이 가득하여 우리들밖에 보이지 않고 춥기도 하고 바람이 거세여 지리산의 거대하고 장엄함은 제쳐두고 빨리 사진 찍고 내려가고픈 생각밖에 없다.

 

 

 

 6시 40분에 대피소에 도착하여 아침을 준비하고 9시에 중산리로 하산을 시작하다.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한데다 나는 아침에 천왕봉을 올라갓다 와서인지 정말 힘들다. 5.3㎞를 3시간 40분이나 걸렸고 오늘 총8.7㎞에 5시간 20분을 걸었다. 3일간 총 35㎞를 19시간 걸어 중산리 경성대 산청수련원에 도착하다.

  2시부터 점심을 먹고 학생들은 축구와 족구시합을 하고 나는 관사에 있는 별장같은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 2신간을 넘게 잤다. 저녁에 아이들은 강당에 마련된 대형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다. 11시에 취침시켰다.



■2009년 6월 12일(금)

 경성대 산청수련원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인수하여 민간인이 운영하고 있어 이름과는 전혀 달리 소박하다. 그러나 관리가 깨끗하고 바로 학교 뒤가 산청휴게소여서 지내기가 아주 편리한 연수원이다. 8시에 래프팅 장소로 이동하여 9개조로 나누어져 경호강에서 래프팅을 시작하다. 내가 마지막조인 9조에서 하게 되었는데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다리아래 보를 지나다가 가이드(강사)의 지나친 의욕으로 말미암아 보트가 뒤집혀 학생 8명과 내가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보 인데다 물이 적으므로 보트 앞부터 진행하여야 하는데 보트를 옆으로 대고 내려가는 묘기를 보이려다가 뒤집혀진 것이다. 마지막까지 내가 보트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물살에 떠밀리며 바닥자갈에 부딪히는 바람에 다리 여러 상처가 나고 한곳은 살이 파였다. 나보다도 학생들이 그것도 여학생들이 크게 걱정되었는데 현대, 상진이, 훈호(?) 용욱이등 남학생은 괜찮은데 반해 나와 홍연주, 서솔솔, 백수연, 이서림 등이 상당히 상처들이 난 것이다. 고의 사고가 아니므로 젊은 가이드를 혼내지 못하고 사장에게 약을 준비시키고 치료한 후 50대 초반의 사장과 손윤영선생을 불러 한자리에 오게 한뒤 사고 원인을 설명한후 사장의 시인을 받고 후에 학생들의 부모에 의한 항의와 치료요구가 있게 되면 책임을 질 것을 구두로나마 확인하였다. 나야 영광의 상처로 여기면 되지만 여학생들이 혹시 상처자국이 남을까봐 매우 걱정된다. 지금 이글을 치면서 내 왼쪽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의 사용이 불편할 정도로 아프다. 

 

 

  2시 30분에 출발하여 3시 30분에 도착하였고 제주도 팀이 4시 반에 도착하여 함께 간단한 식사로 마무리 하고 헤어지다. 원래 교장은 저녁 회식과 술자리를 바랬지만 워낙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당신도 포기하고 일찍 헤어져 쉬기로 결정한 것인데 모두들 좋아하는 것을 보면 학교장의 마음은 아프면서도 아주 현명한 결정이었다.

'즐거운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야의 향기 창녕을 찾아  (0) 2009.09.01
관동유람기(2009년 8월)  (0) 2009.09.01
어청도 답사기(2009)  (0) 2009.09.01
신일본 핵심일주(2007)  (0) 2009.09.01
중국 고대문화의 중심지 시안 답사기(2007)  (0) 200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