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1971)
노래 : 나나에 로스포(두꺼비와 개구리)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멀리 떠나버린 못잊을 임이여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밤마다 그리는 보고싶은 내사랑아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꽃반지 끼고(1971)
은 희
생각 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생각 난다 그 바닷가
그대와 둘이서 쌓던 모래성
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정녕 떠나버린 당신이지만
그래도 잊을수 없어요
여기 당신이 준 꽃반지를 끼고
당신을 생각하며 오솔길을 걷습니다.)
그대가 만들어준 이 꽃반지
외로운 밤이면 품에 안고서
그대를 그리네 옛일이 생각나
그대는 머나먼 밤하늘에 저별
한민과 은희가 결성한 나나에 로스포가 1971년에 부른 노래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원에 다닐 돈이 없으므로 봄부터 여름에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새마을 사업에 앞장서고(?) 가을엔 독서실에서 거주하면서 공부하던 시절이다. 생각해보니 아스라이 먼 시절같기도 하다.
집에서 공부하고 있던 터이므로 꼼짝없이 마을 공동작업에 열심히 참여하여야만 하였다. 전국의 시,군마다 한 마을씩 지정하여 새마을 사업을 시범운영하였고 우리 돌제 마을은 김제군의 새마을 시범부락이었다. 그 해 우리마을은 전국 최우수 새마을로 선정되어 전국의 새마을 지도자들이 관광버스로 마을을 찾아오고 새마을 지도자인 석현 형님(후일 김제시 의회 부의장 역임)은 새마을 지도자로 명성을 떨치고, 돌제마을과 형님은 대통령 상을 수상하였다. 덕분에 나도 TV에 지게지고 가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새마을 문고를 운영하여 잡지에 소개되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만드신 우리 집 꽃밭이 시골 꽃밭의 모범이라하여 군 화보에 실리는가 하면 아버지께서 창안하여 지은 돈사가 잘 개량된 돼지축사라하여 잡지에도 소개되었다. 극장의 대한늬우스에 소개되고 초등학교 4학년 사회과 교과서에 마을사진이 실리기도 했으니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새마을 역군이 되고 우리마을은 조선시대 초가집에서 기와집과 슬레이트집으로 바뀌고 벽돌담장과 공동목욕탕도 지어 이용하게 되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골엔 70대이상 노인들 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 분들 세상 뜨시면 시골마을은 온통 빈집 투성이가 된다. 또 다시 제 2의 새마을 운동이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제2의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주창하며 이젠 우리 농촌을 서구의 아름다운 전원마을처럼 탈바꿈 시키는 운동에 앞장서 볼 생각이 크다.
<사랑해>는 한민과 은희가 불렀다지만 한민의 목소리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거니와 가창력도 별로여서 겨우 하모니만 넣어주는듯, 노래는 은희 혼자 솔로로 부르는 느낌이었다. 당시에 뚜아에 무아(너와 나-이필원, 박인희)가 있어 이 두 혼성보컬 그룹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 남진, 나훈아, 박일남, 정훈희, 문주란등의 노래만 듣다가 이런 포크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은 실로 큰 문화 충격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사랑해>란 노래와 은희는 좋아하나 한민이나 나나에 로스포는 별 의미를 갖지 않았다. 은희가 곧 탈퇴하여 그룹이 무너져서 다른 노래들이 없고 은희의 솔로 노래들이 계속 히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72년엔가 익산 시공관에서 쑈가 공연되었는데 나는 기꺼이 표를 사서 가고야 말았다. 다른 가수들은 대개 트롯트 가수이기에 관심이 없고 오직 은희를 보러 간 것이었다. 은희의 <꽃반지 끼고>가 아름답고 청아한 맑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가삿말로 내게 엄청난 충격을 가한 뒤였다. 얼굴이 미인은 아니지만 노란 염색 머리 스타일로 기타를 치며 꽃반지 끼고를 부르는 스물 둘의 은희는 참 신선하고도 상큼한 모습으로 내 가슴을 가볍게 뛰게 하였다. 그런데 포크송과는 거리가 먼 깡패들이 집단으로 몰려와서 은희에게 반말로 야유를 하고 놀리며 분위기를 흐트리는 모습을 보면서 꼭 뽕짝파인 똘마니들이 새로운 장르인 포크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여졌다.
1972년 8월 평양 남북 적십자회담장에서 남과 북의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념과 사상의 색깔이 없이 화합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사랑해'는 자연스럽게 남북회담장에서 합창되었다.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전주교육대학에 다니던 73년과 74년 이태동안 성화 써클과 기타와 함께 살다시피 하였는데 <사랑해>를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느 모임이든 모였다하면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 때가 없었으니 말이다. <꽃반지 끼고>는 은희의 천사같은 목소리를 듣고 싶어 매우 좋아하였다.
그녀는 1974년 결혼 후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는 평범한 주부의 길 보다는 뉴욕 주립대에서 패션 공부와 더불어 문신 제거 등 특수 미용술을 배우며 자기 개발을 꾀했고 1985년, 10년 만에 돌아와
전남 함평읍에서 20㎞가량 떨어진 손불면 산남리 교촌마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민예학당'이란 조그만 팻말을 세웠다고한다. 데뷔곡인 '사랑해'를 비롯해 '연가''등대지기' 등 주옥 같은 노래로 궁핍했던 시절,삶에 지친 이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그녀가 이곳에서 기타 대신 잡은 것은 '감물염색 옷'이라고 한다. 그는 요즘 천연염색에 묻혀 산다고 한다. 그곳 폐교부지 7,000평에서 염색과 디자인을 연구하면서 그의 브랜드 제품인 '봅데강'을 생산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요즈음 어느 분이 운영하는<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블로그를 들어가니 정말 많은 노래를 모아 놓으셨다. 고마운 분이다. 지금 은희의 노래모음을 듣고 있는데 그녀의 노래를 듣노라면 내 영혼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20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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