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간송 전형필

청담(靑潭) 2010. 9. 6. 15:17

 

 

간송 전형필

 

 

이충렬   지음

김영사(2010)

 

 

 

 

 

 
1. 들어가며
 
 

  일요일 11시면 KBS TV에서 <진품 명품>을 방영한다. 이 프로그램이 15년간 계속되다 보니 자주 출연하는 연예인 출연자들중엔 우리의 문화재를 사랑하고 큰 관심을 가져 많은 고미술품들이나 유물들을 수집하고 이제는 상당한 전문지식을 가져 고미술에 대한 아마츄어 전문가 수준이 다 된 분들도 더러 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안목과 전문성을 누가 태어날 때 가지고 오는 것이랴? 누구든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하나 둘 모으다 보면 아마츄어 전문가는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비록 역사학도라고는 하지만 원래 고고학이나 고미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고로 그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수집한 일은 더더우기 없다. 하지만 풍월은 읇을 수 있는 것이러니 그래도 문화재에 대한 기본지식을 보통사람들보다는 조금은 갖춘데다가 매주 일요일 양드리와 함께 이 프로를 꼭 챙겨보니 이젠 나도 준 전문가로 도약해 볼 수 있을까나?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한 간송미술관과 전형필 선생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의 출간을 알게되어 곧 바로 학교도서관을 통하여 구입신청을 하게 되었다. 전형필 선생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찍부터 가졌던 간송선생에 대한 궁금사항들이다.

  -전형필 선생은 어떤 집안 출신인가?

  -어느정도의 재력가였으면 일제강점기에 그 많은 돈을 들여 국보급 문화재를 모을 수 있었을까?

  -문화재 수집이외에 하신 일은 무엇인가?

  -간송선생은 어떤 분인가?

  -간송미술관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등등의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군데서 많은 감동이 일었다. 근대화를 먼저 이루고 따라서 근대인문학이 크게 앞서 발달한 일제에 의한 문화재약탈에 의분하며 우리문화재 사랑에 애정을 기울이며 이를 지키고자 애쓰는 선각자들의 큰 뜻과, 나라마저 잃고 또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조차 미미하던 일제강점기 시기에 약탈당하는 우리 문화재를 반드시 지키며 되찾겠다고 애쓰는 대지주 젊은 인텔리의 집념과 숭고한 애국심이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해준다. 

 
 

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간송 전형필(1906-1962)

  
  본관은 정선(廷善). 자는 천뢰(天賚), 호는 간송(澗松)·지산(芝山)·취설재(翠雪齋).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학과를 졸업한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본에 의해 문화재가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오세창·고희동·김돈희·안종원·김용진·이도영·이상범·노수현 등과 함께 미술품과 문화재의 수집·보존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특히 오세창의 고서화에 대한 감식안에 힘입어 1932년경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인수하여 고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했다.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서화작품과 조선자기·고려청자 등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한편,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북단장 내에 개설하여 서화뿐만 아니라 석탑·석불·불도 등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는 데 힘썼다. 그의 수장품은 대부분 국보 및 보물급의 문화재로 김정희·정선·신윤복·심사정·김홍도·장승업 등의 회화작품과 서예 및 자기류·불상·석불·서적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40년대에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힘썼고, 8·15해방 후 문화재보존위원으로 고적 보존에 주력했으며 1960년 김상기·김원룡·최순우·진홍섭·황수영 등과 함께 고고미술동인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고고미술 考古美術〉발간에 참여했다.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었으며, 북단장에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되어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다.


 3. 출생과 재산및 수입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906년 아흔아홉칸 종로의 전창렬대감댁에서 전창렬의 형으로 배오개에서 큰 상권을 쥔 전창엽의 큰아들 전영기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929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물려받은 상속재산은 논 800만평으로 4만마지기이니 2만석꾼으로 보면 된다. 당시 쌀 1가마는 16원이며 1년 수입이 32만원이다. 이를 지금 쌀값인 1가마 15만원으로 쳐서 30억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어린시절 1960년대초에는 웬만한 서민가정은 쌀 한가마니로 한 달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가치는 300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시 만석꾼은 조선인은 43명, 천석꾼은 750명 정도였다고 하니 조선에서 20위권의 재산가라고 할 수 있겠다.

 

 4. 당시 화폐의 가치평가에 대한 고찰

 

   생각해보면 1960년대초 계란 한개로 점방에 가서 과자를 사먹었으니 요즘 가격으로 최하 500원에서 1천원정도인데 현재 달걀 하나의 가격은 수퍼에서 겨우 1백원이다. 무려 5~10배의 가치차가 발생하는것이다. 시대에 따라 물가는 물건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변하여 왔으므로 어느 특정한 물건하나로 가격을 단순비교하면 큰 오류가 발생한다.

  필자 이충렬선생은 돈의 가치변화를 기와집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당시 논 한마지기가 50원이니 재산이 200만원이요, 당시 기와집 1채가 1천원이니 기와집 2천채를 소유한 것과 같고, 현재 기와집 한채를 3억으로 계산하여 6천억 재산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당시 1원을 현재의 30만원으로 계산하였다. 그런데 현재 시골의 순수한 농사짓는 논은 평당 3만원 정도이니 1마지기가 60만원 정도 된다. 논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240억정도 된다.

  기록<나의 탈출기>을 찾아보니 1941년 군수의 월급이 200원이라고 한다. 당시 국민소득이 1천불이 못되는 때이지만 최고의 직위인 군수이니 현재의 200만원이라고 치자. 그러면 당시 1원은 지금의 1만원이다.

 나는 당시의 돈의 가치를 오늘날과 비교함에 있어 오직 기와집 하나를 기준으로 30만배로 정한 것은 지나치며 오히여 당시의 논값과 월급을 비교하여 약 1만배로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간송의 재산은 최저로 약 200억대이고 연수입은 최저로 약 32억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치로 정확하지 않으며 분명한 것은 실제 당시의 체감가치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민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은 수백억대로, 연수입은 수십억대로 어림잡으면 될 듯 싶다.

  1937년에 영국인 존 개스비로 부터 고려청자 20점을 인수받을 때 저자는 당시 40만원을 현재의 1200억원이라고 표현하였으나 나는 40억원 정도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보여져서 여러모로 생각해본 것이다

 

5. 인연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간송 선생이 역사에 남을 이대한 일을 하고 그 이름이 남게 해준 가장 큰 인연은 무엇인가? 외사촌 형인 월탄 박종화가 다섯살 위 외사촌형이다. 형으로부터 <민족>을 배운다. 휘문고보시절 미술교사인 고희동 선생은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고희동의 소개로 만난 오세창선생이 민족문화와 민족정신 그리고 서화와 전적에 대한 전문성에 눈을 뜨게 해준다.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많은 갑부들이 호의호식하거나 방탕하거나 친일하며 더 큰 부귀영화를 꾀하였으나 간송 전형필 선생이 그 큰 재산을 오직 민족문화유산 지키기에 심혈을 기울여 역사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저 기라성 같은 위대한 분들과의소중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을 보다 가치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인연은 누구들인가요?

 

6. 방응모 선생의 비밀

 

   1920년대 중반 금맥을 발견하여 한해 700만원어치의 금을 캐서 황금광시대를 연 것은 최창학이라는데 방응모가 그 황금광신화를 이었다. 그는 동아일보 정주지국장을 하다가 빛을 지고 최창학 소유의 폐광을 불하받아 곡괭이질을 계속하여 3년만인 1937년 7월 대규모 금맥을 발견하였고 그 뒤 몇개 더 발견하여 1933년 조선일보를 인수하였다고 한다. 비록 황금광시대에 금광으로 일확천금하였으나 신문사를 인수하여 언론사주가 되고 오늘날까지 한국최대의 영향력있는 언론사로 발전시켯으니 대단한 분이다.

 오늘날 복권에 당첨되면 보통 이삼십억원을 받는다는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각국의 복권당첨자들의 대다수인 70%정도는 돈이 많아졌으나 오히려 더 불행해진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부자되기 위해 열심하 사는것은 훌륭하지만 부자가 되면 돈을 바르게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는 바른 인성교육이 또 필요하다. 오늘날 이 정부가 미래시대의 국제 경쟁력만 강조하며 치열한 경쟁속으로 학생들을 몰아가고 학력신장만 강조하며 교육과정까지 개정하였다. 학교교육에서 이제 도덕이나 음악이나 미술은 소외되는 방향으로 개편된 것이다. 좀 더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이 곧 행복한 사회가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은 이미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행복지수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는데도 이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능률과 실질만 숭상한다며 경쟁사회만 추구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사는 것도 싫지만 잘살기 위해 지난친 경쟁과 다툼속에서 사는 것도 용납하기 싫다. 따뜻한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가 범죄천국인 나라가 되었다. 성범죄율과 학생들 자살률과 노인들 자살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이혼률이 역시 세계최고 수준이고 아이들은 마음 아프게 살아간다. 미혼모가 늘고 버린 아이들은 우리가 책임안지고 선진국에 떠민다. 아! 이러고도 <우리 대한민국>인가? 언제까지나 자신의 부끄러움은 모른체하며 경제수치만 가지고 희희락락하며 으시댈 것인가? 나 역시 그중 하나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이들 인성교육에 더욱 노력하고자 한다. 그 동안 매우 궁금하였던 방응모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적어 보았다.

 

7. 미술관  탐방계획

 

   금년 겨울방학에는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삼성미술관 리움(용산구 한남동, 1997년부터 상설개관, 이병철선생 수집유물 종합전시, 국보 및 보물 86점) 호암미술관(용인 에버랜드내-유물및 조선식정원인 희원)을 찾아보고 싶다. 간송미술관(성북구, 5월과 10월 각 2주만 개관, 간송선생 수집유물 국보12점, 보물 10점)은 10월 일정기간만 개방한다니 어려울듯 하지만 일요일을 택하여 찾아보자. 우리 양드리님 신나시겠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1935년 1만 5천원에 구입) 

 

 

 

'독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대표그림  (0) 2010.12.31
이재천 시집 - 눈 향  (0) 2010.10.25
풀어쓴 동양고전  (0) 2010.09.09
열하일기  (0) 2010.07.20
독서록 개설  (0) 201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