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우선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제인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부터 짚고 넘어 가야 한다. 국어사전에 정의<正義>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바른 의의(意義)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정당하다 :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
이 책은 2010년 최대의 세계적 베스트 셀러인데 우리 아들이 구입하여 읽었다하므로 구태여 별도로 구입하지 않고 서울에 간 김에 가지고 내려와 읽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 양드리가 박사학위 논문준비에 필요(문학, 미학, 기타 예술관련)하여 구입하여 읽었으나 나는 아직 미처 읽지 않은 책들이 상당한데 우선 베스트 셀러인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왠지 부끄러울 것 같아 자식들의 은근한 반 협박 내지 싫은 소리(책을 빌려주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니 책은 빌려 주는 게 아니라는 둥)를 무시하며 무작정 가지고 내려왔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몇 장을 읽다보니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의에 관한 철학적 관점은 주로 네 번째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사회의 어젠다와 이미 논의의 쟁점이 되어 있거나 있었던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정리하여 보도록 자극하고 있으며 결코 철학이라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사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종합적,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위한 고민과 사고와 결정과정이 곧 철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읽어 가면서 소주제 마다 나의 생각을 덧붙여 나가려 한다. 정성을 기울이면 이 독서록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철학적 사고를 담은 또 하나의 책이 될 런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은 나와 같은 해인 1953년 미국태생이며 27세에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공동체주의의 이론가이며 정의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이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명 강의로 손꼽힌다고 한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 낸 것이 바로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이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고 같은 해에 교단에 선 이 세계적인 학자의 정의철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상당히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우선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다음 추후 정리하는 순서로 하고자 한다.
1강 옳은 일 하기
♣ JUSTICE
○재작년 피서철에 경포대에 갔더니 모텔비가 15만원인가 했다. 평소에 적정가격은 3-4만원이다. 그런데도 예약이 아니면 방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값이 비싸다고 불평하거나 싸우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양드리와 나는 경포대(진짜 경포대 정자)바로 곁에 있는 민박집에 5만원을 주고 방을 얻었다. 저녁에 경포대에 올라 아름답게 불빛이 어린 경포호를 관망하고 경포대 해수욕장 야경도 보고 잠간 걸어가서 터미널 선술집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오니 모텔보다 훨씬 나았다.
특정시기, 특정상황 아래서는 공정가격은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흥분하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반발하거나 하는 일이 많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이나 젊은 대학생들은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가격에 항의 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소비자는 그 상황에서 현명하게 적절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
○14세기 유럽은 흑사병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천 만 명이 죽어가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사람이 사람을 기피하고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아내는 남편을 버렸다. 인간의 이성과 정의는 사라지고 살고자 하는 동물적 본능만 남았다. 아아! 이성과 정의는 인간이라할지라도 먹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구제역으로 오늘 현재100만마리 이상의 가축이 매몰되었다. 구제역이라는 가축전염병으로 소와 돼지뫄 사슴들이 인간들에 의해 산채로 강제 죽임을 당하며 땅에 묻혀졌다. 아직 전염되지 않은 인근의 가축마저 억울하게 생매장당하고 있다. 더우기 조류 인플루엔자까지 확산되기 시작하여 닭과 오리들마저 생매장당하기 시작한다. 축산업을 하는 주인들은 동물들이 불쌍하다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인간을 위해 길러지던 가축들이니 건강하게 자라서 도축장에서 죽어 사람을 위해 쓰여져야함에도 허망하게 아무런 보람없이 땅에 산 채로 묻히는 것이 얼마나 마음아픈 일인지 이해가 아니 갈 수 없다. 살처분(생매장)하는 공무원들은 요즈음 환청과 스트레스와 악몽에 시달린다고한다. 어마어마하고도 처참한 갱동물 살륙이 인간들에 의해 별 죄의식 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동물원에서 관리인 실수로 곰 한마리가 탈출한 사고가 난 후 수백 수 천명이 동원되어 곰을 찾고 곰의 안위를 걱정하며 결국 찾아서 건강검진에 온갖 보호관리를 다하며 다시 동물원에 들어가고 사람들은 안심하고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아아! 동물원 곰 한 마리의 생명이 구제역으로 죽어가는 100만 마리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듯 언론들이 더 야단이었다. 동물보호단체나 어떤 종교단체도 죄없이 죽어가는 저 생명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살처분 하지 말고 안락사시키는 것이 좀 더 인간적이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러한 인간들의 행동은 이성적인가? 정의로운 행동인가? 이게 바로 인간의 사악한 이중성이며 참 모습이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허위의 탈을 쓰고 가장 위선적인 동물인 것이다.
♣ 행복 자유 미덕
○타인의 불행을 나의 이익의 도구로 삼는 상인은 악덕업자이다. 경포호 상인들은 여름 한 철 장사로 일년을 산다고 이미 예전부터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기에 악을 행한 것이 아니지만, 태풍피해지역에 가서 복구용 기계나 생필품을 몇 배씩 비싸게 파는 상인이 있다면 이미 그는 악덕상인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의 재난구조 활동 이전에 이미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수재민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젊은이 어른들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나서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살 만한 나라이다.
○박지원의 <허생전>의 허생은 매점매석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런데 당시의 양반을 풍자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허생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 돈으로 백성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그럼 부당하게 벌어서라도 그 돈을 좋은 일에만 사용하면 그 부당한 행위는 용서되어야 마땅한 것일까?
대한민국의 성공한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비리덩어리이다. 이번에 감사원장에 임명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관행에 의한 전관예우를 실컷 받았고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있는데 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감사원장에 임명해 놓고 청와대는 법적하자가 없다고 강변한다. 인사가 저러하니 이명박 대통령은 일은 잘하지만 인기는 없고, 존경은 더더구나 없는 게지.
○2010년도 유통 핫이슈는 단연 이마트피자와 통큰 치킨이다. 성인 3~4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이마트피자는 11,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보통 시장 피자에 비해 가격은 그대로이면서 크기는 두 배다. 이마트피자는 예약 후 3~4시간을 기다려야 상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롯데마트 통큰치킨도 시중치킨에 비해 30% 많은 치킨(900g)을 제공하면서, 가격 3분의 1에 해당하는 5천 원를 받고 판매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중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큰 기형적 구조를 가진 나라이다. 대기업 유통업자들이 서민자영업자 죽이기 작전이 아니라면 저리 할 수 없다. 대기업이 통닭과 피자를 팔아먹기까지 해서 이익을 창출한다? 자본주의니까 자유시장경제체제이니까 누구도 상관 말라? 아니면 손님을 유혹하기 위한 전략이니 눈감아 달라?
부당염매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경쟁사업자를 배제시키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계속 공급하는 행위를 뜻한다. 공정거래법은 이 경우 해당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매출액의 2%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물리도록 규정돼 있다. 자본주의의 이 잘못된 자유는 강제되어야 한다. 다수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판매를 중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소비자들이 선호하여 불평은 커녕 환호한다 하더라도 경제질서를 지키는 보루인 정부와 공정거래법은 이를 강력하게 시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가 조건 없는 자유를 무한하게 준다면 이 사회는 약육강식의 동물세계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며 인간사회가 정연한 질서속에서 움직여야하고 그런 사회에서만이 국민들은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롯데마트는 지난 해 12월 13일 여론악화와 공정위제소 등에 부담을 느껴 판매중단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마트피자는 이미 이전부터 테이크아웃피자가 더 싸게 판매되고 있어서인지 아직도 무난하게 한정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나도 한번 먹어 보았는데 엄청 크고 맛도 있어서 소비자는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지만 부당염매라면 절대 용서해서는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선행상을 주는데 있어 다른 반들이 모두 한 명씩 받으니 선행사실이 극히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반에 지지 않기 위해 우리 반도 무리하게 한 명을 추천하여 상을 준다면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도리짓고땡(일명 화투의 삼빡구)이나 고스톱을 쳐서 놀이치고는 친구의 돈을 지나치게 따고나서 돈을 많이 잃고 상심한 친구에게 한 푼도 돌려주지 않으면서 변명하기를, 여러 사람들의 합의하에 쳤고, 내가 잘 쳐서 내가 재수가 좋아서 딴 것이니 당당한 돈이라고 한다면 이미 그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거나 철학적으로 빈곤을 면치 못한 사람이다. 그런 현장을 많이 구경해온 나의 경험으로는 돈을 따고도 한 푼도 따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하거나 모르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는데 나의 견해로는 그는 이미 밤을 함께한 사람들과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그는 친구들을 이용해 돈놀이를 한 것이다.
○사업(그 중에서도 물건을 파는 장사)은 해 본 일이 없다. 정가제가 아닌 가게에서 흥정을 하여 물건을 팔 때에 제 값(원가가 8천원, 적정한 판매가는 1만원이라 치자)을 잘 아는 사람에게 만 오천 원을 불러 만원을 받고 파는 장사꾼이 어수룩한 시골 사람에게는 만 오천 원을 불러 기어이 만 3천원을 받았다면 이는 정의로운 행위인가? 부도덕한 행위인가? 장사꾼으로서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은 미덕이니 그냥 용서되는 것인가? 양심에 부끄럽지는 않은 것인가? 나는 그런 장사를 할 자신이 없다.
♣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경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고엽제 후유증이나 원폭피해자들이 후일 증상이 발생하면 당연히 피해보상이 따른다. 전쟁에 참가하여 따른 정신적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마땅히 정부가 치료해주고 생활비를 보상해야 한다. 그러나 훈장문제는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했거나 크게 부상했거나 큰 공을 세운 군인에게만 훈장을 주도록 규정이 되어 있다면 전쟁시에는 멀쩡하였다가 훗날 나타난 외상후 스트레스(트라우마)까지는 주지 않아도 그리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훈장을 타기위해 전쟁에 나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로 말하면 나라를 위해 전쟁에 자원입대한 사람들은 공이 있고 없고 간에 찾아내어 무조건 훈장을 주어야만 한다.
♣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1997년 한국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는 내게 두 가지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첫째, IMF사태는 당시에는 김영삼 정부의 미숙한 경제운영과 금융관리의 미숙이라고 판단되면서 김영삼정부의 인기는 추락하고 김영삼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군 권력 파괴,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 등)은 무시되고 그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날 당시의 금융위기는 우리가 미리 예측하거나 방어하기에는 불가능한 <금융 쓰나미>라고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김영삼정부의 업적과 대통령의 명예는 다시 원상복구되어야 한다.
둘째, 외환위기 사태로 기업들이 쓰러지고 이를 구하고자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구제금융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구제금융으로 다시 살아난 은행들이나 일부 기업들은 이익 창출이 없거나 적자인데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최고의 봉급을 지급하는 것을 보았다. 저러한 행위는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작년에 어떤 은행의 은행장은 자신의 투자 결정으로 인하여 천 수백 억 원의 손실을 냈음에도 자신이 취임할 때 걸었던 스톱옵션으로 수십 억 원의 연봉을 당당하게 받으며 퇴임하였다. 청와대가 어제 ꡐ감사원장 임명에 법무법인 7개월 7억원 수입문제 법적 하자 없다ꡑ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행위들은 단지 부도덕 할 뿐 법적 하자 없으니 정당한 행위인가? 이런 보도를 듣는 우리 보통사람들은 가슴이 아프다. 왜 인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리라. 은행장에게 지불한 돈은 은행이 우리 국민들을 이용하여 번 돈인데 은행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손해만 끼친 인간에게 수 십 억원을 지불하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차라리 그 돈을 우리 저축자들에게 돌려주면 좋지 않을까?
♣ 정의를 이해하는 세가지 방식
○노무현 대통령 등장시기부터 우리나라는 자유시장주의자들과 평등주의자들간의 치열한 이념싸움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당선된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후 이를 실시하고자함에 따라 지자체장들과 이론투쟁과 힘겨루기와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서울시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모든 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보조금지원을 거부하자 시의회가 전격 지원조례를 만들어 69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서울시뿐 만 아니라 진보교육감들이 당선된 지역들이 모두 이 문제로 티격 태격이다. 무상급식이란 간단히 말해서 <모든 초․중․고생들에게 점심을 돈 안받고 주는 것>이다. 우리 전북의 시골 군 지역은 이미 모두 예전부터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어려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생모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은 우리 전북보다 재산과 소득이 두 배이며 부자들은 다 모여 사는 곳이다. 그나마 가난하여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가정은 이미 모두 급식비가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이들 점심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가정이 거의 없음에도 이 문제로 서로 비난하고 싸우고 시끄러운 것일까?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거나 지지하거나 강행하려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점심 굶는 아이들이 많거나 점심급식비 못 내어 힘들어하는 학부형들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저러는 것인가? 내가 판단하기에 전혀 아니다. 그냥 싸움 거는 것이다. 힘겨루기 싸움이다. 진보가 보수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 낸 싸움거리(다툼거리, 논쟁거리)일 뿐이다. 권력싸움이요,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며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어 후진국을 원조하는 국가가 된 대한민국에서 아이들 점심을 국가가 먹여주니 마니 하는 웃기는 장난질을 저 소위 진보교육감이나 민주당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집권당과 정부와 다투고 싸워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내야하니 정부가 모든 학생들에게 공짜로 점심 먹인다는데 반대하는 학부모가 많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으로 싸움을 거는 것이다. 노무현시대에 지겹고도 나라망치는 저 포퓰리즘을 다시 재현하려는 짓거리다. 그러나 어쩐지 이 문제는 국민들의 큰 관심사는 아닌듯한 표정들이다. 다만 언론에서 다투어 보도해대니 자주 이 문제를 접할 뿐인 것으로 느껴진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가난하다. 지자체와 도교육청에서 협력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전 초․중․고생들이 무료로 점심을 먹는다. 이상할 거 하나도 없다. 기숙사 관리비와 인건비가 교육부와 도교육청에서 지원되므로 아침과 저녁식사비만 납부한다. 기숙사비가 14만원(시내 소재 고교의 기숙사비는 대략 30만원)인데 그나마 저소득층 자녀는 지자체에서 전액 지원하고 나머지 학생들도 학교에서 4만원씩 지원하여 금년부터는 10만 원 이하로 부담시킬 계획이다.
다투고 싸우고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이다. 다른 교육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없애어서 교육을 파행시키면서까지 무료로 점심 준다고 설칠 일이 전혀 아니거니와, 예산이 허용되는 대로 증액시켜 가난한 학생들 지급을 더욱 늘려 나가고, 부자학부형들까지도 자식들 밥 좀 공짜로 먹이는 게 소원이라면, 그리고 시당국이 예산지원을 무리 없이 해준다면 모든 학생들 점심 무상으로 잘 먹이면 되는 일이다. 그냥 그런 일인데 저 평등주의자들이 마치 대단하고도 혁명적인 발상인양 무리를 강행하며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고 끝없이 논쟁을 끌고 나간다.
서울시 의원들(대부분 민주당)이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 공포한 조례가 내용이 잘못되어 법대로 집행하면 이번 1학기 동안 그나마 지급하던 무상급식이 중단될 수 있다는 보도를 보니 저 인간들 참으로 가소로운 평등주의자들이다.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곧 전 국민 건강을 위한 무료 급식이 실시되면 퇴직하는 우리 양드리와 나는 동사무소 급식소에서 세끼 식사 공짜로 할 터이니 살기편한 세상이 올 듯하다. 부엌 없어도 되겠다. 응접실 넓혀도 되겠다. 몸이 아프거나 날씨가 궂으면 노인들 식사 거르지 않도록 배달해줄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민주당 지지해도 괜찮은 일인가?
다아 나라가 잘살게 되니 하는 짓들이다. 그런데 나라를 잘살게 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 대다수가 존경하고 그 업적을 인정한다는데도 저 민주당인간들은 죽어도 미워만 하며 잘사는 나라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취급도 안하려 한다. 60년대 개발시대에 유행하던 무조건 반대풍토가 생겨 이명박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부터 한다. 정권을 잡으려면 별수 없다는 식이다. 옳다하여 지지하거나 타협해주면 절대로 정권 잡을 가능성이 단 1%도 없으니 하는 짓이라고 나는 확실히 판단한다. 나는 저들 야당과 평등주의를 무리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고집하는 일부사회 단체 사람들은 국가의 발전과 번영과 국민의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오직 정권잡기 위해 정치하는 가짜 정치인들이거나 정치와 정치권력의 권력주변에서 무어 어디 얻어먹을 것 좀 없나 어정대는 사이비 정치건달 주변인 집단이요 무리들이라고 단정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아! 지난해 1월 그리스를 방문하였을때 한국인 가이드가 그리스 정부의 지나친 복지로 인하여 국민들은 나태해지고 실컷 놀기만 하며 정부에만 의존하는 잘못된 국민정서가 이 나라를 망하게 할지 모른다고 하더니만 여행다녀온 뒤 불과 두어달 만에 그리스 정부가 두손을 번쩍 들고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수많은 회사가 무너지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700유로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도래한 1997년의 금융위기는 약간의 도에 넘치는 외화낭비(해외여행 자유화, 해외유학권장)요소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코 정부의 무능이나 지나친 복지나 국민들의 나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불가항력의 쓰나미같은 긍융사태이었던만큼 근면하고 성실하며 더 살아보려는 의지가 충만한 우리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과 전 국민들의 땀과 결속력으로 이를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민주당인사들이 무상급식에서 포퓰리즘의 솔솔한 재미를 보고 나더니 무상급식논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해 벽두부터 의료보험료 인하와 전국민의 무상의료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나온다. 내년 총선거와 내후년 대선에서 복지이슈로 무조건 이겨보자는 무지막지한 정치놀음이다. 조선시대에 성리한 이론에만 집착한 양반들이 300년간이나 동서남북 노론소론 대북소북 골북탁북 청남탁남 하며 다투고 나누고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은 저리두고 사직과 백성을 들먹이며 저희들끼리 싸우기만 하다가 나라 망한지가 얼마나 되었나?
이제 또 다시 저 사악한 무리들이 오로지 집권과 권력만을 탐내어 색깔고운 복지정책으로 냉정하지 못한 국민들의 상당한 지지로 정권을 잡고 선거공약이니 반드시 실천하겠노라고 여지것 힘들여 이루어 놓을 경제를 사정없이 막 나누어 주기 시작하면 참으로 큰 일이다. 끝없는 성장으로 달러를 벌고 일자리를 늘리면 그것이 바로 진정하고도 참된 북지인데 성장은 멈추고 또 다시 과거사니 인권이니 통일이니 분배니 좌파니 우파니 하다가 그리스나 아일랜드 같은 꼴이 되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통일이 더 멀어질 수도 있다. 아니 통일이 된다해도 통일 비용이 없고 확대된 복지를 2400만 북한 주민에게도 똑 같이 혜택을 줄 돈은 더더구나 없다. 그때는 우리 서민들은 희망이 없다. 무조건 정권부터 잡고 보자는 저 인간들은 가진 것도 많고 능력도 많고 권무술수에 능한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길만 잘 찾아갈 것이 뻔하지만 우리는 우리 보통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우리 국민들이 보다 냉정하고 현명하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선로를 이탈한 전차
기관사는 작업하고 있는 인부 다섯 명을 발견하고는 순간 크게 당황할 것이다.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는다. 오른쪽에 비상철로가 나타난다.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한사람이다. 기관사는 비상철로로 가야만 한다. 적어도 기관사가 될 정도의 인간이라면 그 정도의 순간상황 판단력을 가졌을 것이다. 사고를 당하는 비상철로의 인부의 죽음은 운명이다. 기관사는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자신의 순간 판단에 의해 죽음을 당한 비상철로에 있던 인부에 대한 죄책감으로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사회가 인정하여 주었으므로 다섯 인부를 죽게 한 것보다는 죄책감을 덜 받고 또 조금은 빨리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구경꾼은 그냥 구경꾼일 뿐이다. 덩치 큰 사람을 밀면 다섯 인부를 살릴 수 있다 해도 덩치 큰 사람을 미는 행위는 의도적 살인 행위다. 정당행위로 판결 받을 수 없다. 다섯 사람의 죽음은 직장에서의 불의의 사고이니만큼 구경하다 더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덩치 큰 사람의 죽음과 단순히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마커스 루트렐 하사의 잘못된 결정으로 미군 동료 19명이 죽게 된다. 농부 두 명은 이미 반군지역에 살고 있으며 죽음을 무릅쓰고 염소를 몰고 나왔다.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터에서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치우치면 저런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전쟁은 아예 지구상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동물과는 다른 이성적 존재요, 만물의 영장이라면서도 권력과 재물을 위한 인간들의 싸움은 동물들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 한국군은 미군과 달리 베트콩이 발견된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민간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인다하여 베트남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우리는 당시 그런 보도나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부끄러웠다. 6.25북한 침략전쟁시 거창이나 제주도등 여러 곳에서 우리 국군에 의한 민간인 몰살이 있었고 북한군 점령지에서는 무자비한 인민재판으로 억울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맞아 죽었다. 그리고 후퇴하는 북한군들은 감옥에 수감하던 우리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집단학살하였다.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도덕적 딜레마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종교가 끼어드는 것은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신앙심이 두터운 신자에게 미치는 종교의 영향은 실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개신교 신자로서 제사를 기피하신다. 아버지와 나는 우리의 전통방식인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한다. 어머니의 뜻도 받아들이면서 제사도 지내기 위해 2008년부터 우리 익산집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다. 추석이나 구정 때는 차례상을 차리지 않고 산소에 적당하게 음식을 가지고 가서 직접 절하며 치른다. 사고의 융통성만 발휘하면 사상과 신앙의 차는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물론 후일 나는 어머니 사후 어머니에 대한 전통적 제사(음식을 차리고 절하는 방식)를 지내지 않을 것이며 시대에 맞게 모든 조상님들 제사는 시제 모시듯 직접 산소에서 모시기로 결심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의 신앙이나 자신의 처지나 자신의 이익여부를 무시하고 임하는 경우는 없다. 그때 자신의 신앙이나 자신의 입장, 자신의 처지, 자신의 이익 여부를 떠나 전체와 남을 먼저 배려하는 판단을 내리기는 매우 어려움을 경험을 통해 능히 잘 알고 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일반시민을 동굴에 갇힌 포로에 비유한 것은 아주 적절하다. 오직 철학자만이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편견에서 빠져나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에 국민총생산 세게 13위, 수출 세게 7위로 선진국이 되고 국가지위가 놀랍게 향상되고 있으나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기에 부끄러운 것은 우리 국민들이 철학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이다. 오직 입시위주의 교육만 받으면서 시험문제만 풀어대며 토론과 토의를 거의 해 보지 않고 경쟁에서 이겨야하는 것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경쟁과 목표달성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땀 흘리고 뛰는 것만 듣고 보고 배워 왔기 때문에 나 자신을 버리고 전체와 남을 배려하는 일에 너무나 미숙하다. 양보와 배려와 타협과 겸손의 미덕을 찾기 힘들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어제는 사교육 없앤다고 그마나 학교에서 이제 막 기초가 다져지고 있는 논술(일종의 철학교육)비중을 줄여달라고 소위 교육부장관이란 작자가 대학 총장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꼴을 보면서 경제를 전공한 이주호가 한 나라의 교육을 회사 경영하듯 하고 있는 모습이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교육 없애기는 이명박 정부의 선거공약이라며 공약 달성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짓이 없다. 실컷 정착화 되기 시작한 특성화고교들을 사교육 범죄자들로 몰아 언론 플레이로 실신시키고 실컷 오랫동안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자 입시방법의 하나로 막 정착되기 시작한 논술마저 사교육이 존재하고 있다는 핑계로 죽이려 한다. 사교육에 방해되는 것은 모두 다 죽이자는 발상이다. 우리 국민들 정신수준의 향상과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논술은 더 강조하고 더 강화시켜야 마땅함에도 말이다. 이주호 하는 짓이 저러하니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어 정부의 개혁에 대항하여 새로운 발상으로 교육을 바꾸어보려는 노력들이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적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이 한 나라의 교육을 파쇼적으로 몰고 나간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은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기독교 편향이 참아내기에는 너무나 지나치기에 불교계가 저 토록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체의 대화와 협조를 거부하며 투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명박 정부에서 일하는 보좌진과 관료들 중에는 동굴 속에 갇힌 포로들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많음이 틀림없다.
2강 최대 행복 원칙/공리주의
♣ JUSTICE
난파선을 탈출하여 구명정이나 보트를 타고 몇 십일씩 견디고 드디어 구조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19세기 초에는 이양선 출몰이 잦았다. 목민심서를 보면 당시 난파선(이양선)의 외국인들을 구조하지는 않고 오히려 다들 죽기를 기다리거나 상륙하면 도끼로 몰아낸 모양이다. 서양인들이 표류하여 섬에 들어오면 중앙관리들이 래도하여 조사하고 이를 접대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세도정치의 부패와 나라의 가난속에서 비인도적 처사를 당연한듯 저지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끄러운 역사의 뒤안길의 모습이다.
많은 난파사례들은 빗물을 받아먹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잡아 먹거나 심지어 새들이 내밷는 찌꺼기를 받아 먹으면서 수십 일씩 견디었다는데 겨우 19일 만에 어린 동료 선원을 잡아먹었다니 무서운 일이다. 파커를 죽여 이익을 얻고 못얻고를 따지기 전에 인간의 도덕으로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선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면 그냥 모두 함께 굶어 죽어야 인간이다.
지난해 8월, 33명의 페루 광부매몰사건이 해결된 후 갱속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광부들이 일체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은 갱속에서 벌어졌던 말 못할 스스로 부끄러운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고자 함으로 보인다. 참으로 인간은 약한 존재다. <배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도덕을 찾는다>는 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리다.
♣ 제러미 벤담(1748-1832)의 공리주의
나는 지금까지 공리주의의 한자어가 公利主義인줄 알았더니만 功利主義라 한다. 이 때 공리는 유용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서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가리킨다. 그 근본원리에 따르면, 어떤 행위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이다. 여기서 공리의 극대화는 개인뿐 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 행복의 극대화이다.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벤담의 공리주의 의의는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이라고 배워왔다. 그러고 보니 어떤 한자를 사용해도 의미는 같은 것이 되고 있다. 모든 도덕적 주장은 반드시 행복 극대화를 전제로 한다고 벤담은 주장한다. 공리주의의 의미가 그리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모든 사람의 행복의 극대화를 꾀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 거지를 한 곳에 몰아넣기
내가 어렸을 적,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엔 참 거지도 많았다. 우리가 중학교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당당하게 학교에 가는 아침 등굣길에서, 깡통을 들고 밥을 얻어먹으며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청소년 거지들을 볼 때면 혐오감보다는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1970년대 들어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 한 나라가 되면서 거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엔 절대거지는 없다. 대신 1997년 이후 산업형 노숙자들이 생겨났다. 일자리를 잃어서 가장 노릇을 못하게 되었거나 사업이 망하여 빛에 몰린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어 서울로 모여들고 지하도에서 잠을 자게 되니 이것이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금은 지자체나 사회단체들이 이들을 수용하여 숙식을 제공하고 있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있다. 잘 하는 일이다. 절대적 거지가 아닌데 단지 일자리나 가정이 없다하여 선진국이 다 된 나라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도 한 켠에서 잠을 자고 대합실 화장실을 드나들고 하는 일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는 일이다. 끼리끼리 모여 잠을 자니 그 옆을 지나가기 무섭고 더러운 모습을 마주쳐야 하니 불결하여 고통이다. 안쓰러우나 항상 그들을 도울 수만도 없으니 마음도 편치 않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고 능력에 맞는 일자리라도 주어서 스스로 다만 얼마라도 벌수 있게 해주면 얼마나 다행인가? 일반시민이나 노숙자 자신이나 모두에게 功利가 되는 일이다.
오늘날 성 폭행범은 출감하면 전자발찌를 채우는 벌칙을 주는데 어떤 범죄자는 이 발찌를 부수고 또 범죄를 저질렀다.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인간이 형을 살고 나와 버젓이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 곳이 바로 인권국가인 대한민국이다. 특히 어린이를 성폭행하여 평생 정신치료를 받으면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든 무서운 범죄자가 출소 후 또 언제 범행을 저지를지 모르는 무서운 세상이다. 성 폭행범은 평생을 외딴 섬이나 북한의 특별대상구역처럼 격리지역을 만들어 수용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 성 폭행범은 사형내지 감형 없는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 벤담의 구상처럼 격리시키고 일을 시켜 생활비를 충당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모든 시민들은 안심하고 살수 있고 범죄자들은 다시는 범죄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모두 功利를 얻는 것이다. 맹목적 인권주의자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功利는 없고 오직 인권운동으로 얻어지는 자신들만의 이익만 있을 뿐이다.
♣ 반박1 : 개인의 권리
개인의 권리만 지나치게 존중하는 풍토가 지배하게 되니 어느 한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므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몇 년 전에 어느 아파트 앞의 단독주택에서 어느 중년남자가 보신용 개를 키우고 있어 개 짖는 소리에 온 아파트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나 그 집은 이미 아파트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던 터라 법으로 조치하기 어렵다는 방송보도가 있었다. 아파트 앞에서 보신용 개를 키우는 것이 개인의 권리존중 면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어린 아이들이 자라는 곳에서 보신용 개를 버젓이 키우고 밤낮으로 짖어대는 참을 수 없는 소음을 수 많은 다수가 참고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이야말로 개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법의 맹점이 아닐 수 없다. 한 개인의 권리보다 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
♣ 그리스도인을 사자 우리에 던지기
로마가 그리스도인을 사자우리에 넣고 즐기는 행위는 공리를 따지기 이전에 비인간적 행위이므로 무조건 잘못된 행위일 뿐이다. 북한 인민군이 마을 지주들을 마을 한 복판에 앉혀놓고 인민재판을 해서 머슴들을 시켜 패 죽이는 행위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일제가 독립군을 잡아 칼로 목을 쳐 죽인 행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남편폭력을 견디지 못해 도주한 18세 여성을 탈레반들이 붙잡아 남편에게 두 귀와 코를 자르게 했다. 언제나 아랍세계의 무서운 여성차별과 비인간적 형벌에서 여성들을 구하게 될까? 남의 나라 주권이 있고 남의 나라 관행이고 남의 나라 종교니 상관 말라구요? 대한민국 좌파들이 북한 3대 세습이나, 200만 명의 아사나, 수 만 명의 탈북자나 핵개발이나 북한의 일이니 상관 말라는 것과 같은 거라구요? 그런데 왜 동포니 통일이니 하면서 기를 쓰고 도와는 주자는 건데요? 자기들 권력 유지하는 데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 이해해 달라구요?
♣ 고문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고문>하면 박종철군 치사사건과 고문기술자라는 이근안 경감이 생각난다. 과거에 비민주주의 시절에 경찰과 검찰은 사건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 범행용의가 거의 확실한 혐의자들을 흔히 고문하였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나 또는 범죄자에게 형벌을 주기 위해서 범행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자를 검거하면 빨리 자백시켜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고문을 실시한 것이다.
재판을 거듭하여 형이 확정된 사람들도 훗날 무죄가 드러나는데 하물며 검경의 확신만으로 고문을 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고문으로 고통을 받았겠는가? 근대 법이 마련되기 전에는 형틀에 혐의자를 묶어놓고 ꡒ네 죄를 네가 알렸다.ꡓ며 범행을 추궁하며 온갖 고문을 다했으니 80년대 민주항쟁으로 비로소 고문이 없어진 우리나라는 형법후진국가다.
1958년도에 도둑질을 하다 잡혀 지서에 구치되어 있던 할아버지의 이종사촌이 도망쳐 시골 우리 집으로 찾아왔는데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하여 우리 할아버지가 지서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 아침밥을 얻어먹고는 제 발로 다시 도망쳤는데도 숨겨놓지 않았느냐며 고문을 가했고 할아버지의 갈비가 부러지시자 자기들이 돈을 대주며 수술을 시켜주었다. 그 당시의 일을 나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으며 그러한 말이 안 되는 일제식 저질 경찰들의 고문은 오늘 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민주적 행태가 되었다.
김현희는 KAL기를 폭파하여 115명의 사망자를 장본인이다. 조작설이 돌았으나 나는 그런 유언비어는 믿지 않지만 그처럼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북한정권의 하수인이 붙잡혀 우리 정부의 보호아래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은 왠지 기분이 나쁘다.
황장엽은 북한의 최고위층(김일성대 총장,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등)을 역임한 북한공산정권의 핵심인물이며 김일성 주체사상의 창시자라는데 어인일로 탈북하여 북한정권 타도에 앞장서는 제 1인자가 되었으며 작년에 죽어서는 사회장이니 국립묘지니 하는 이상한 여론까지 돌았던 것일까? 평생에 엄청난 죄를 짓고도 회개하고 하나님 믿으면 천당에 갈 수 있다더니만 그런 차원인가? 정말 용서되고 존경받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러하지 못한다.
♣ 행복한 도시
장애자(우)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인식이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장애자(우)들은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일반 사람들로부터도 따뜻한 배려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첫째 국가가 부유하게 되었음이고 둘째는 인권의식이 앙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학교에는 장애학생들을 위한 개별학습반이 한 학급 설치되어 있고, 특수교육을 전공하신 교사 한분과 보조교사 한분이 근무한다. 대개 한 학급은 5-8명 정도의 학생으로 구성되며 수업의 반은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해 온 탓인지 보통아이들은 전혀 편견 없이 따뜻하게 이들을 대한다.
불과 수년 전 만 해도 서울의 어느 지역에 국가가 장애자(우)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려하자 부근 주민들이 연일 집값 떨어진다고 항의 데모를 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더니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겨우 주민들이 반성하고 가까스로 학교가 들어섰던 기억이 있다. 주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답시고 불우한 장애학생들의 배움터 설립을 반대 투쟁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도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이며 부동산가격이 치솟는 시기에 집값 상승으로 한 몫 보려던 차에 장애자(우) 학교가 들어선다하니 크게 낙담하고 분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러나 꼭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해야만 했을까? 그들은 도덕과 철학이 성숙되지 못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우리들 누구라도 내가 교통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나의 아이들이 장애우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생각보다는 우선 혐오시설인 장애자(우) 학교를 못 들어오도록 하여 집값상승으로 재산을 늘리는 일이 우선의 이익이고 급한 일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또 학교설립 반대투쟁을 지켜보는 장애우를 가진 부모의 심장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열린 마음을 가져보지 못하는 것일까? 하긴 수 년 전에는 인문계 아닌 공고가 마을에 들어온다고 데모하는 주민들이 있었다니 정말 대한민국 아름다운 나라인가?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다들 돈의 노예들이 된 것은 아닌가?
♣ 반박2 :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다수결은 특정한 문제에 다른 의견들이 발생할 때 가장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의사결정방식이다. 물론 인간사를 모두 계량화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그러나 각자의 주장과 토론과 양보와 타협의 과정을 거쳐도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다수결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곳이다. 다수당은 모든 것을 다수결로 밀어 붙인다. 소수당은 다수결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다수당이 정작 소수가 되면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며 다시 소수당 논리로 외치고, 소수당이 다수당이 되면 우리가 언제 그런 소리 했느냐며 다수의 논리를 주장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표적인 정치하는 작자가 유시민이다. 언젠가 시사토론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보니 제 주장과 다른 패널에게는 낯을 붉히고 저와 같은 주장을 가진 패널에게는 발언기회를 자주 더 많이 준다. 저런 토론사회자의 기본도 모르면서 사회를 보는 인간이나, 시키는 방송국이나 똑 같은 부류가 아니겠는가?
저 작자는 자기가 참여정부 핵심일 때는 정부를 비판하는 조․중․동을 잘못된 언론이라며 죽이기로 작정한 듯 온갖 죽이기(말도 안 되는 발행부수 비율 운운, 기관 기자실 없애기, 공무원 취재 응하지 않기, 유신 때 하던 광고탄압, 무슨 보급기구설치 등)에 앞장서더니 이제 정권을 내놓은 야당이 되더니만 언론의 사명은 <비판기능>이라며 이 정부의 방송 길들이기를 힐난한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사 흔들기나 장악을 잘하는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관, 의원경력에다 ꡐ감히ꡑ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치기어린 추종자들을 이끌며 소위 대통령감 운운되는 인간이라면 저처럼 겉과 속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말이 다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저런 잔꾀만 많고 인품은 조금도 찾기 어려운 인간이 무어 차기 대통령 후보 인기순위 2~3위라고요? 아직 어린 추종자들이나 이 사회에 그저 무조건 반사적으로 불만인 고정 세력들의 지지 때문이지 아닐까요? 참 웃기는 우리나라 정치 풍토입니다. 하긴 이명박 정부 온갖 산하기관 낙하산 인사도 웃기는 일이고,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리면서 그 누림은 당연하다고 일관하는 철면피한 청와대 참모를 감사원장에 굳이 앉히려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시도도 정치무식의 소산이네요. 이 통이나 저 통이나 청와대 들어가기만 하면 세상만사 청와대가 모두 장악하려는 건 변함없습니다. 정당성이고 삼권분립이고 형식이고 절차고 남의 권위고 배려고 일체 없고, 일개 행정관들까지도 오직 막강한 권력 휘두르는 재미에 함몰되고 맙니다. 그러지 못하면 대통령의 권력누수라고 걱정하고 야단법석입니다. 여당을 소위 하수인들로 조직한 인력회사 정도로 여기며 하수인들은 재수좋게 장관하나라도 얻거나, 다음 총선에서 쫒겨나지 않으려면 당연하답니다. 정치수준이 조선시대만 못합니다. 대사헌에 정동기 같은 사람이 추천될 수 없고, 영의정 발언은 엄청난 권위가 있었습니다. 전라도 깡패수준인 민주당 원내총무란 인간은 국회의장을 동네 꾀복장이 친구와 쌈질하듯 고양이가 쥐새끼 잡드리듯 막말하며 몰아 붙이고 일국의 여당 대표란 사람은 말도 안되는 허튼소리나 해대는 수준낮은 변호사 그 이상의 모습을 찾기 힘듭니다. 참 웃기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입니다.
♣폐암의 이익
우리가 어린시절 1960년대 및 70년대까지만해도 전매청은 엄청난 국영기업이었다. 내가 1967년 중학교 2학년 때 속리산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신탄진 연초제조창을 방문한 기억이 있다. 이때 회사측 설명을 듣고 담배제조는 국가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고마운 국영기업으로 생각되었다. 당시 전주의 담배공장에 다니면 최고의 직업이라 여겼다.나도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 1970년 고3때부터 피우기 시작하여 2010년 6월 15일에 마지막으로 피웠다. 무려 40년을 피웠다. 처음 20년은 완전한 흡연자였다. 가래로 인해 1990년부터는 술을 마실때만 피우기를 20년이나 했다. 요즘 우리 세대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친구들이 모이면 흡연자는 열에 한 둘이다. 그러나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은 흡연자가 증가하여 전체 담배 판매율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보고이다. 남녀중고생들은 호기심으로, 대학생 이상 청년들은 치열한 취업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담배 안피우기 힘들다.
내가 다행히 완전 금연에 성공하였으므로 앞으로 담배로 인한 어떤 고통도 고민도 없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담배는 흡연자들 이외에는 모두들 기피하므로 담배피울 장소가 거의 없게 되어 흡연자들은 고난의 시대다. 우리 학교에서도 흡연교사들은 쉬는시간이면 관사 한편으로 조용히 몰려가 겨우 피운다.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도 허용이 되지 않으며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조금은 비정상인으로 비쳐지기까지 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마약과 달리 담배만큼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법적으로 용인되었으나 이제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흡연에 대해 제한을 받게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제 경제대국이 되어 국가에서 담배 팔아 이익을 얻어 국가를 경영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민영화다. KT&G외에도 민영회사가 더 있다는데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잘 모른다. 담배의 해악은 비단 폐암뿐 만이 아니었다. 나의 영원한 친구 김호길 선생은 작년에 담배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여 하마트면 큰 일이 날 뻔 하였다. 김선생은 곧장 대학병원으로 가서 30분 이내에 처치되었으니 다행이었지만 만약에 혼자자는 내게 밤에 무주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다.
담배의 해악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면서도 구태여 스스로 피우고자 하는 성인들에게 담배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말할수 없다. 하지만 미성년자들에게 담배를 판매하는 담배가게 주인의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다. 청소년들은 아직 이성적 판단이 감성을 제압하지 못하고 더욱이 여자 아이들은 후일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참으로 성스러운 일을 해야하므로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교육을 통하여 흡연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폭발하는 가스탱크
우리나라도 자동차 천국이 되었다. 세계 제4위의자동차 생산국이며 세계적인 수출국이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1대 이상이다. 우리집만 해도 내 소유의 자가용이 3대였다가 작년에 레조를 조카에게 주어 현재 2대이다. 현대 문명의 최고의 이기 중 하나인 자동차로 인하여 우리는 더 멀리 더 빠르게 더바쁘게 살게 되었다. 어느 하루 차를 타지 않는 날이 없다. 나는 매주 한 두 번씩 무주를 오가므로 매월 2천km 이상을 운행한다. 양드리도 차를 소유하여 운행한다. 장차 우리 승수와 승원이도 차를 가지고 살게 될 텐데 자동차 사고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 행복하게 살자고 자가용 타고 일하며 자가용 타고 여행다니는데 단 한번의 무서운 자동차 사고는 우리의 생사를 가르기도 하고 우리의 행복을 일순간에 앗아가기도 한다. 결코 우리의 목숨의 소중함은 사망사고에 따라 보상되는 사망보상비로 보상될 수도 없거니와 그 돈의 가치로 우리의 목숨을 계산하거나 치부하는 일은 천만부당한 일인 것이다.
♣노인할인
조조할인이 있다. 한가한 시간에 일찍 입장하면 입장료를 할인해 주는 것이다. 노인의 목숨 값어치는 젊은 사람값에서 할인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과연 평등한 것이며 평등해야만 하며 실제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자칭 진보파라 하는 인사들은 최저수준의 초중고학생들이 국가로부터 무료로 점심을 먹음으로 해서 받는 위화감과 부끄러움 해소를 위해 나머지 모든 학생들에게도 무료급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난 반년동안 사회갈등을 부추기며 논쟁과 추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자체로부터 기어이 예산을 뜯어내어(?)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할 것 없이 무료로 점심을 준다면 부자라도 반대하고 나설 것까지야 없어 크게 또는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인데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하는 포퓰리즘 정책의 실현이 마치 인간평등주의 사회 실현의 기본적 관건인양 외쳐대고 있는것은 아닌가? 이는 과연 정의로운 정책인가? 무료급식 무료의료 무료교육 무료주택 무료해외여행.....그 끝은 과연 언제인가? 국가 경제가 거덜나는 날?
교통사고를 당하면 호프만식 계산법으로 보험금이 지급되는데 그 사람의 연령과 직업과 수입에 따라 보험금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인간은 평등하며 그 소중함은 다를 바 없는데 목숨 값은 저리도 다르단 말인가?
모두 점심을 무료로 함께 먹는 것이 마치 이 사회를 진보적으로 발전시키는 대단한 정책인양 떠들어대는 사이비정치인과 교육자들 그리고 민주당은 진정성이 전혀 없는 사기꾼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권력을 잡을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나 정권을 잡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들 성실하게 일하며 가난한 자들은 잘살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배려하며 베풀고 국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국가경제가 허락되고 뒷감당이 가능한 선에서 미래지향적인 복지정책을 최선을 다해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정부패한 인간들은 가차 없이 처벌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존경하는 지도자를 선택하여야만 한다. 우리 유권자들은 부자들의 논리밖에 모르는 철학이 부족한 공부안한 무식한 사람들도, 마치 인간평등의 완전한 사회실현이 이 땅에서 가능한양 선동하는 지도자들도 경계할 수 있는 지혜를 모두 갖추어야만 한다.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인간의 모든 행위를 하나의 저울로 재어서 계량화하고 비교하는 일이 가능한 일이며 또 꼭 필요한 일이며 더욱이 바람직한 일인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치르게 한다 해도 저마다의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고통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고통을 계량화하여 일정한 숫자로 획정할 수 없고 또 계량화 하는 일 자체가 그리 가치도 있는 일이라고 하기 힘들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양드리와 아파트 경비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은퇴한 은행 지점장이 사업하다 퇴직금을 몽땅 잃고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아파트 경비로 취직하여 아침마다 쓰레기를 치우며 분리수거하는 일은 힘든 고통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조건이라도 긍정적 자세를 가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만족도가 다르고 건강하냐 아니냐에 따라 만족도가 다르고 개방적 사고를 가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만족도가 다르다. 비록 받는 월급은 같을지라도 느끼는 고통은 아주 크게 다르다. 경비원 월급으로 얼마를 받는 것이 적당하느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서울에서 자라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강제로 무주구천동 옆 무풍면소재지에서 10km떨어진 경상도와의 경계마을에 가서 살도록 강제 이주시키면 그 사람의 고통은 아주 크겠지만 시골에서 자라나 평생을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저 새로운 마을만 옮겼을 뿐 사는 방식에 변화가 없으니 오히려 더 살만 하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최대의 행복을 누리며 최대의 행복지수를 가지고 살려하면 욕심을 많이 부리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잘 찾는 일이 중요하다. 고통을 줄이고 만족을 늘리면 된다. 나도 4년 후면 퇴직하게 될 터인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건강해야 한다. 가족 모두 아프면 안 된다. 첫 번째 필수조건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도 더 윤택해져야 한다. 연금이 해결의 열쇠다. 저축이 또 다른 열쇠다.
♥사회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여러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사회와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 돈을 벌기 보다는 돈을 써야 한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농장경영과 서예가 바람직하다. 땅과 생명과 가까이하며 20동안 쓰다보면 지인들에게 작품하나 선물할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생각하고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세인트 앤스 여학생들
이미 1970년대 미국 여자대학 기숙사에는 남학생들이 자유롭게 방문하고 심지어 자고 갈 수도 있었다. 당시 우리는 그런 얘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질서의 무너짐이요,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남용으로 비추어 졌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성 풍속도는 놀랍게 변하여 대학가 부근에 동거하는 학생들이 늘어났으며 그 지역의 전기공사를 하면서 이를 확인한 내 친구는 혀를 찼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심정적으로 동거를 지지하고 필요에 의해 실천하고 있으나 철저히 부모들에게는 이를 숨겼다. 만일 여학생이 부모에게 들키는 날엔 당장 휴학조치 되기 십상이며 남학생들도 부모에게 크게 혼이 날것이 뻔하다.
2011년대의 대한민국의 남자대학이건 여자대학이건 기숙사에 이성이 찾아와 자고 가는 일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허용을 주장하는 일도 없었고 이를 용납하는 부모도 학교도 없다. 취업전쟁의 이 시점에서 기숙사에서의 이성간의 방문의 자유니 숙박의 허용이니 하는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거나 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건 오늘날 대학생들에겐 사치다. 이미 충분히 남녀간의 이성교제는 자유스러워졌고 성도덕은 충분히 무너졌으며 결혼관도 엄청난 변화가 왔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라는 개념이 보편적 사고로 자리 잡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단하고도 훌륭한 나라이다. 적어도 우리사회가 안전하고도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기 위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규제를 우리 스스로 잘 지켜나가려는 의지와 사회적 합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또 이를 잘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필요한 것만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오늘날 정치한다는 사기꾼들은 무조건 바꾸는 것이 개혁이라며 국민들을 선동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주어진 권력으로 닥치는 대로 바꾸어 자꾸만 우리를 혼란하고 불안하게 한다. 바꾸지 않겠다고 하면 보수니 꼴통이니 극우니 하며 서로 비난하면서 바꾸기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무조건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랍니다. 마누라도 싫어지면 바꾸고 남편도 싫어지면 바꾸고 부모도 능력 없다고 바꾸면 어쩝니까? 여건 야건 정치한다는 족속들의 저런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걱정이 큽니다.
♣존 스튜어트 밀(1773-1836)
<자유론>의 저자이며 벤담의 공리주의를 따른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동시대 사람이다.
♣자유 옹호
○많은 생각을 주는 글이다. 자유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말이며 천만 지당한 이론이다. 다수가 믿는 종교라 하여 소수의 종교를 무시하거나 조롱하거나 탄압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도들은 같은 기독교임에도 여호와 증인이나 통일교회를 이단이라 하면서 비난하고 탄압하는가하면 심지어는 다른 종교와의 화해와 협력을 싫어하고 비난하며 오직 자신들의 신앙만 유일하고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니 실로 가소롭고 우습기 그지없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의 개신교보다 더 추악한 요소, 즉 강제 헌금, 물질주의, 사제들의 비행과 호의호식, 떼거리주의, 배타주의, 상업주의 등의 요소들을 버리지 못하고 급기야는 몇 년 사이에 신자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소위 사이비종교나 여호와 증인, 통일교 등은 정의로운가? 사이비 종교들은 신자들을 꼬여서 재산을 강제 헌납 받고 그 돈으로 교주들이 호의호식하였으니 이는 종교가 아니라 사기집단이다. 만일 여호와 증인이나 대순진리회나 통일교가 신자들을 시켜 껌팔이 시키고 그 돈으로 지휘부들이 배부르게 살았다면 종교적 이론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이미 사이비 종교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제도권의 보호와 옹호 속에서 살아가는 기성종교들은 모두 정의로우며 저러한 비판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는가? 저 당당한 대규모 개신교 교회의 당회장들이나 대 사찰의 주지들이 개인통장에 수만금을 가지고 고급주택과 고급차를 타면서 호의호식하고 있다면 그 교회나 그 사찰 역시 결국은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용납하는 신자들이 맹목적 신앙에 함몰되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개인숭배를 느끼지 못하거나 느껴도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개신교나 불교계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점술장이나 무당들의 행위를 미신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면 안 된다. 신과 교류하며 영혼의존재를 인정하며 사후의 세계를 제시하며 착하고 바르게살기를 권유하며 이사회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아니하고 위안과 기대와 삶의 의욕을 불어 넣어 준다면 그것을 기꺼이 종교라 할 만 하다. 제도권의 보호막 속에서 기고만장한 기성종교들의 사제들이여! 참으로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고 계신가?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문해 보기 바란다.
○소수의 반대의견이 경우에 따라 사회에 많은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천성산 터널공사 반대투쟁이나 4대강 사업 반대투쟁의 이유를 들어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다. 되먹지 못한 주장으로 시민들을 선동하며 국가의 이익이나 미래를 위한 발전을 방해하는 형상이다. 그러나 밀의 주장대로라면 이러한 반대투쟁이야말로 다수의 독단이나 편견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인간이 영원히 살아가야할 이 소중한 지구를 나부터 우리부터 잘 보존해 나가자는 외로운 몸부림으로 해석하면 참으로 아름다운 소수의 주장이며 의로운 투쟁임을 알 수 있다.
○밀은 개성을 강조하면서 <순응은 삶의 적이다>라고 무섭게 갈파한다. 과연 자유론자의 주장이다. 내가 이를 내 식으로 바로 잡아 보자면 <순응은 창조와 발전을 저해한다. 그러나 사회와 개인에게 질서와 안정을 준다. 그래서 다수는 순응을 택하며 살고 소수는 선각자가 되어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간다. 맹목적 순응보다는 선택적 순응과 개성을 버리지 않는 자세를 가지면 사회나 개인이나 안정과 발전의 조화속에서 아름다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고급 쾌락
쾌락은 사회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즐기거나 얻는다면 그 가치는 동일한 것이다. 그 쾌락은 오락이나 운동이나 취미 활동에서 얻어지게 되는데 과연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예를 들어 보자. 슈베르트와 모짜르트를 들으면 동물과 심지어는 식물까지도 잘 자라며 건강하다고 하며 실제로 동식물 생육에 클래식 음악을 활용한다. 소울을 크게 틀어주면 물고기도 죽는다. 트로트 음악을 신나게 듣거나 부르며 취향에 따라 현숙 노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우리 가곡이나 포크송을 들기를 즐겨하며 박인희를 좋아할 수 도 있다. 수준별 구분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가?
미술의 예를 들어보자, 뛰어난 르느와르나 김환기 같은 화가들의 그림과 옛 시골 이발소 그림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저 보고 좋으면 그만이라면 왜 엄청난 가격차가 발생해야 하나?
무용의 예를 들어 보자. 러시아 발레 무용단의 공연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황홀감을 맛본 적이 있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를 보면 즐겁기는 하지만 그리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한다. 아름다운 음악감상이나 시집을 읽는 취미와 고스톱을 밤새 즐기거나 포카놀이로 시간가는줄 모르는 취미를 같은 레벨로 보아야만 하는가?
크로미아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돌본 나이팅게일이 얻었던 기쁨과 노예들의 검투를 보며 피를 즐기던 사람들의 쾌락을 구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동물을 보호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얻는 즐거움과 자연을 훼손하며 총으로 새나 짐승을 쏘아 잡아먹는 사냥을 구분하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주고 영혼을 아름답게 해주는 쾌락이 고급쾌락이요,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불안을 주는 쾌락은 저급한 쾌락이다. 음주가무를 지나치게 즐겨 얻어지는 쾌락이나 불륜을 통해 얻어지는 성적 쾌락은 영혼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마음에 평화와 주지 않는 저급 쾌락이다. 사냥을 취미로 삼아 평화롭게 사는 새나 산짐승을 총으로 쏘고 살아 있는 곰 쓸개즙을 빨아 먹으며 얻는 쾌락은 저급쾌락이니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셰익스피어대 심슨가족
우리는 좀 더 가치 있고 인간적인 쾌락을 추구하면 바람직하겠다. 인터넷에서 지겹도록 쏟아지는 연예인들에 대한 뉴스를 클릭하며 탐닉하기보다는 고전이나 역사서등 양서를 읽으면 바람직하겠다. 당구나 고스톱을 치는 대신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를 치면 바람직하겠다. 사냥이나 낚시보다는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뽕짝이나 댄스뮤직보다는 클래식이나 우리 가곡이나 포크송을 즐겨 듣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이후부터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계속합니다.
'독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인물 (0) | 2011.03.07 |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1000가지 사건 (1) | 2011.03.04 |
파라다이스 (0) | 2011.01.05 |
우리나라 대표그림 (0) | 2010.12.31 |
이재천 시집 - 눈 향 (0) | 201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