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결혼문화 유감

청담(靑潭) 2012. 3. 26. 18:38

 

 

  요즈음 조선일보에서 우리나라의  생활개선운동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우리의 왜곡된 결혼문화, 즉 호화 결혼식, 호화 혼수, 지나친 예단과 예물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모두들 그 잘못됨을 깊이 인식하고 개혁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오래된 관행이기에, 나도 남에게 준 부조금이 있기에, 남들에게 체면을 차리기 위해, 사돈집과 맞추기 위해 등등 온갖 이유로 폐단을 개선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속알이를 하고 괴로워 한다. 내가 심히 걱정스럽고 못마땅한 우리의 잘못된 결혼문화라고 일찍부터 진단하고 있기에 이 캠페인에 크게 공감하면서 관련기사를 모두 모아 게재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결혼문화를 창조하여 가고 있다고 한다. 고지식한 부모를 설득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소신대로 미래를 위해 예단이니 예물이니 혼수니 하는 것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 버리면서 결혼자금을 절약하고 저축하여 알뜰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정말 의식있는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아직도 결혼에 대한 진지하고도 의미있는 개념이 없어 분수에 맞지 않게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자신도 준비하느라 힘들고, 사돈집과 다투면서까지 체면부터 생각하고 싸우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아직도 이 사회에 상당수 있다함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혼령기에 접어든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나 자신의 결혼식에 대한 가치관을 자식들의 결혼식에 그대로 옮겨 실천하기엔 심히 어려울 성 싶다. 내가 만일 다시 결혼식을 올린다면야 나의 결혼때 부끄러웠던 점을 반성하며 100% 내 소신대로 과감하게 개혁하겠지만 나의 주장이 먼저 내 자식들과 전적으로 공감하며 일치하기도 어렵거니와 상대인 사돈네 가치관과 전통이 있을테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기엔 더더욱 어렵다. 오죽하면 생활간소화 실천운동 본부의 회장인 김일수 교수가 세번째 자녀 혼인에서야 겨우 간소한 결혼식을 실천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혼인시키고 부끄럽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이 글을 삭제 하리라 마음에 새기며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준비한다. 어쩌면 이 글의 게재를 통해 나 자신의 개혁의지를 다짐하고 두터이 하며 실천을 강력히 스스로에게 요청하는 수단으로 삼고 싶은 마음에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식은 무조건 소박하고 간소하고 화려해서는 안되고 돈을 절약부터 해야한다는 주장은 결코 펴지 싶지 않다. 자본주의를 부정해서도 안되고 사유재산의 소비를 미워해서도 안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싫어해서도 안된다. 다만

 

1. 분수에 맞게 하자.

2.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진행하자.

3. 결혼식이나 혼수문제가 혼인을 깨는 원인이 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는 세가지 가정을 전제로 새로운 건전한 결혼패턴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물질이나 허례허식이 사랑을 우선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1. ‘피클값 24만원’ 억!소리나는 호텔 결혼

경향신문|이윤정 기자|입력2012.03.13

 

'피클값 24만원. 꽃장식 3000만원…' ㄱ씨(58)는 지난해 10월 딸 결혼식을 치르고 계산서를 받아본 순간 깜짝 놀랐다. 서울 특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진행한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원래 견적보다 추가된 항목이 많았다. 가장 황당한 것은 '피클값'이었다.

ㄱ씨가 원래 계약한 코스는 1인분에 6만9000원짜리 식사였다. 테이블당 5만5000원짜리 와인이 기본으로 들어가고 식음료는 실수량 만큼만 계산하도록 돼 있었다. 연회장 사용료와 웨딩 연출비 등을 합쳐 약 6000만원 정도의 견적을 예상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받은 계산서에는 9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명세서를 보던 ㄱ씨는 피클값 24만원 항목을 발견했다. 당시 호텔 측은 "하객들이 스테이크만 먹으니까 느끼하다며 김치, 피클 등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해당 호텔에 확인해보니 "원래 피클은 메뉴에 들어가 있지 않아 제공되지 않지만 하객들이 요구하면 서비스된다"며 "한 접시에 6000원씩 계산해 40접시를 제공했더니 24만원이 추가됐다"고 해명했다. ㄱ씨 딸의 결혼식에는 꽃장식만 3000만원이 들어가기도 했다. 예상보다 하객이 많이 온 것도 최종 금액이 올라간 이유였다.

유명연예인이나 재벌가 자제들이 결혼하는 특급 호텔의 결혼식 비용은 얼마일까. 보통 1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호텔 결혼식 상세 내역을 뽑아 봤다.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결혼식을 올린 서울 ㄴ호텔의 경우 식사는 1인당 12만원부터 시작한다. 기본으로 선택해야 하는 레드와인은 1병당 10만원이다. 꽃장식은 기본 2000만원에서 시작한다. 호텔 측은 "꽃장식은 기본에서 시작해 무한대까지 가격을 올려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필수항목인 웨딩 무대 비용은 400만원, 웨딩 케이크는 120만원 등이다. 필수사항만 선택해 500명 하객을 기준으로 1억1400원 가량 견적이 나왔다. 여기에 선택사항을 더하면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 결혼식 현장중계 카메라는 200만원, 프로젝터 사용료도 120만원이 들어간다. 식사시 떡을 추가하면 1접시당 5만원, 샹들리에 장식을 선택하면 300만원이 더해진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ㄷ호텔은 결혼식 1인분 식사비용이 6만9000원부터 시작한다. 1인분 15만원 짜리 식사를 택할 수도 있다. 기본으로 선택하는 케이크의 가격은 50만원, 와인은 1병당 5만원이다. 연회장 사용료 200만원, 웨딩 연출비 300만원, 꽃장식 500만원 등이 기본 사항이다. 하객 500명을 기준으로 기본사항만 선택해 계산하면 약 6000만원의 견적이 나온다. 이 호텔은 피클 한 접시를 추가할 경우 한 접시에 6000원을 추가한다. 웨딩떡은 한 접시당 2만원이다.

 

 

2. 대출받아 1억짜리 결혼식한 남성

-이자 때문에 매일 아내와 싸우다가 결국 이혼

조선일보|석남준 기자|2012.03.19

지방 도시 교사 부부 아들인 김민석(가명·33·공인회계사)씨는 작년 6월 서울 중구 특1급 호텔에서 1억원 짜리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비용에 전셋돈까지 부모님 이름으로 4000만원, 저희 이름으로 1억2000만원 대출받았어요. 이자 부담 때문에 계속 다투다 작년 12월 이혼했어요. 하지만 다시 해도 초혼이라면 호텔에서 할 것 같아요."

본지가 결혼 정보 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해보니 호텔 결혼식이 상류층 이외 계층까지도 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조사에선 전체 신혼부부 10쌍 중 1쌍만 호텔에서 결혼하고(13.8%) 대다수가 일반 예식장을 택했다(70.8%). 하지만 올해 조사에선 호텔에서 결혼한 사람(22.9%)이 처음 20%를 넘어섰다.

조사 대상 신혼부부 310쌍을 ①양가 부모 자산 30억원 이상 ②양가 부모 자산 10억원 이상~30억원 미만 ③양가 부모 자산 10억원 미만의 세 그룹으로 쪼개서 보니 양가 합쳐 30억원 이상인 그룹은 열 쌍 중 네 쌍이 호텔에서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42%). 10억원 이상~30억원 미만인 그룹과 양가 합쳐 10억원 미만인 그룹도 호텔에서 결혼한 사람이 다섯 쌍 중 한 쌍(각각 19%)이었다.

 

 

 

3.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 결혼식은 과시하는 자리라 생각

- 연봉 맞먹는 예식비 하루에 써

조선일보|김수혜 기자|2012.03.19

- 계속 오르는 예식 비용동네 예식장도 "호텔급으로

- "비싸야 더 많이 찾는다"호화스럽게 리모델링 한 뒤 예식비 1200만원 올린 곳도

- 3년새 가파르게 올라 - 전국 평균 결혼식 비용

- 2003년 1000만원대 첫 진입, 올해엔 1700만원 넘어서

 

"도저히 호텔에선 못하고 강남 예식장에서 했어요. '평소에 잘 꾸미고 다니더니 알고 보니 돈 없네!' 소리 듣기 싫었거든요. 3000만원 들었지만 와이프는 '머릿속에 그리던 꿈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다'며 울었어요. 결혼식 치르고 집(56㎡·17평·2억) 사느라 제 저축 다 털고도 아버지가 5000만원, 제가 5000만원 대출받았어요." (강영식·가명·32·백화점 직원)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치러진 결혼식 모습. 강남의 예식장은 이미 가을 예식까지 예약이 대부분 마감됐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양가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 비용은 정말 아끼고 싶었어요. 하지만 강북 예식장도 1000만원 부르지 않는 곳이 없었어요. 어지간한 곳은 다 하객 식대가 1인당 3만원이 넘고, 홀 대여료·꽃값·사진 값·봉사료까지 붙으니 1500만원이 우습게 나갔어요. '결혼식 안 올리고 살고 싶다'고 절박하게 생각했어요." (조미정·가명·29·중소기업 경리)

취재팀이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가장 가파르게 오른 게 결혼식 비용이었다. 2003년 1000만원대에 진입한 뒤 줄곧 1100만~1200만원대를 맴돌다 올해 조사에서 1722만원으로 껑충 뛴 것이다.

어디까지나 전국 평균인 만큼, 서울은 더 비쌌다. 취재팀이 서울 특1급 호텔 21곳을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하객 500명 기준으로 최소 6600만원이 들었다. 중산층이 선망하는 강남 주요 예식장 14곳을 돌아보니 최소 2500만원이었다. 비강남권 주요 예식장 16곳도 하객 500명 기준으로 1500만원이 넘게 들었다. 한 마디로 싼 데가 없었다.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결혼 적령기 인구가 줄고 만혼(晩婚)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전국 예식장 숫자는 2000년 1375개에서 2009년 1002개로 크게 줄었다. 10년 새 예식장 서너곳 중 한 곳이 문 닫은 셈이다(27% 감소·통계청). 이런 상황을 돌파하는 전략이 '고급화'였다. "호텔 뺨치게 잘해주겠다"면서 대폭 값을 올린 것이다. 게다가 인상폭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취재팀 르포 결과, 2009년 이후 서울 시내 예식장 31곳이 이름을 바꾸거나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 식대는 평균 23.3%, 꽃값은 평균 109.5%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의 경우 2008년 남서울예식장이 수아비스가 되면서 800만원 넘게 올렸다.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웨딩홀은 2009년 아베뉴웨딩홀이 되면서 600만원 이상 올렸다. 비강남도 마찬가지였다. 영등포구 중소기업회관웨딩홀은 2009년 샤이닝스톤 간판을 달며 1200만원 넘게 올렸다. 2010년에는 중랑웨딩문화원이 J웨딩으로 개명하며 300만원 올리고 동작구 대방웨딩홀이 씨어터웨딩라무르로 바꾸며 200만원 올렸다.

2009년 개명하며 두 배 이상 값을 올린 A 예식장 관계자는 "신부들이 예전 이름과 인테리어가 촌스럽다고 생각해 예식장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호텔급 서비스'를 내세우는B 예식장 관계자는 "결혼시장에선 손님들이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렴한 상품을 기피한다"면서 "정말 저렴하게 하고 싶은 분은 그런 곳으로 가시면 된다"고 했다.

서울대 인류학과 강정원 교수는 "예전과 달리 부(富)를 과시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류층 사이에서 과시를 삼가는 풍토가 사라졌다. 계층을 막론하고 '부자=유능, 빈자=무능'의 가치관이 널리 퍼졌다. 여기에 '결혼은 개인이 아닌 집안의 결합'이라는 결혼관까지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상류층은 스스럼없이 부를 자랑하고, 그 아래 계층은 무리해서 따라가고, 업체들은 앞 다퉈 값을 올리는 구도가 형성됐다.

그러나 취재팀이 만난 젊은이들은 "비싸다"고 불평할 뿐 "나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작년 5월 강남 예식장에서 결혼한 서영미(가명·27·여행사 직원)씨는 신랑·신부 저축이 없어 양가 부모가 저축과 대출로 전셋집(56㎡·17평·1억8000만원)과 결혼식 비용(5000만원)을 해결했다. 신랑 연봉(3000만원)과 신부 연봉(2700만원) 합친 것과 비슷한 액수가 하루에 나갔다. 하지만 서씨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부모의 고통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부담스러워 해서 호텔에서 못한게 아쉬워요. 결혼식은 인생의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행산데, 그걸 사람들에게 제대로 못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4.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 부모도 자녀도 "이왕 할 거 비싼 데서

- 허영심이 결혼식 비용 3년새 60% 올렸다

 

올해 결혼비용 조사를 총괄한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유성렬 소장(백석대 교수)은 "전체 결혼비용 중 부모·자녀의 '허영심'이 가장 강하게 표출되는 항목이 결혼식 비용"이라고 했다. 취재팀이 만난 상류층 신랑·신부·혼주 10명과 중산층 10명이 그런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저희 시댁 정도 되면 (특급호텔 3~4곳 거명하며) '당연히 ○○에서 해야지' 하는 게 있어요. 오시는 분들이 다들 시부모님 손님이고 지위도 있으니까요. 결혼뿐 아니라 가족 회식도 호텔에서 주로 해요. 자녀들과 손주들이 호텔 소파에 죽 앉아있다가 시부모가 들어오면 기립하지요." (중견기업 오너 며느리 안희영·가명·36)

"특1급에서 하루에 1억 썼지만 만족해요. 식기, 테이블 세팅, 은은한 조명…. 식장이 미적(美的)으로 아름다운 게 저한텐 너무 중요했어요. 하객들이 서서 떠들지 않고 자리에 앉아 주목했어요. 그날 주인공은 저니까요. 비용은 부모님이 댔지만 결혼은 집안끼리 결합이고 양가가 여력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해요." (중소병원 이사장 딸 이영진·가명·33)

"친정은 경기도 소도시 중산층이지만 시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해요. 시댁이 대부분 부담해 특1급 호텔에서 결혼했어요. 1억4000만원 들었어요. 꽃값만 4000만~5000만원 정도. 영화판 스태프로 일하는 고교 동창이 '내가 6개월간 영화 찍고 받는 돈이 1000만원인데…' 해서 순간 어색했어요. 갈수록 사는 길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중견기업 오너 며느리 김보경·가명·30)

"○○예식장이 ○○웨딩홀로 리모델링 하고 이름 바꾸고 나서 1800만원 들여서 했어요. 리모델링 하기 전이면 절대로 거기서 안했을 거예요. 저렴한 맛에 하는 곳 같았으니까. 물론 비용 오른건 부담스럽죠. 하지만 신경 안쓰기로 했어요. 어차피 대출도 받는데 1000만원 빌리나 2000만원 빌리나…. 돈 1000만원 때문에 안 하느니 못한 결혼식은 안 하고 싶었어요." (종합병원 간호사 채지영·가명·31)

 

 

  

5. 신혼집·예단에 갈라선 사랑

- 파혼 58%가 결혼비용 때문에..

조선일보|김효정 기자|2012.03.23

취재팀이 최근 1년간 대표적인 결혼 정보 인터넷 카페 두 곳 게시판에 올라온 글 가운데 ①이미 파혼했거나 ②파혼 위기에 처했다고 구체적으로 경위를 밝힌 글 339건을 추려 분석해보니, 결혼비용에 얽힌 파혼(57.5%)이 반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반대나 종교 갈등 같은 집안 문제, 시댁과의 갈등, 당사자 성격차이 같은 전통적인 파혼 사유는 이제 오히려 소수가 되어 있었다(42.5%).

 

결혼비용 때문에 파혼한 사례 중 ①신혼집 때문에 파혼한 사례(23.0%)가 가장 많았다. ②예단 때문에 깨진 사례(22.1%), ③특정 항목이 아니라 결혼비용 전체를 놓고 고민하다 갈라선 사례(7.1%), ④신랑·신부·혼주의 대출 때문에 관둔 사례(5.3%)가 뒤를 이었다. 전통적인 파혼 사유의 경우, 집안 문제(6.2%)와 시댁과의 갈등(14.2%)을 합친 것보다 당사자 성격 차이로 깨진 사례(22.1%)가 더 많았다. 어른들 때문에 깨지는 경우보다 당사자 스스로 깨는 경우가 많단 얘기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사랑해서 결혼을 약속한 젊은 남녀가 결혼비용 때문에, 이어 성격 때문에 헤어진단 얘긴데, 이 두 가지 현상이 실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유교적인 가부장제가 빠른 속도로 무너지면서, 가족생활의 무게중심이 대가족 할아버지·할머니에서 핵가족 아버지·어머니로 이동했다. 다음 세대가 결혼할 때도 아버지·어머니보다 당사자인 자녀 의견이 중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경제적인 이슈고, 성격 차이는 그다음이다. 취재팀이 분석한 인터넷 카페는 회원 174만명이 가입한 '레몬테라스'와 22만명이 가입한 '웨딩공부'다. "나 말고 내가 아는 사람이 파혼했다더라"는 글, 막연하게 "파혼할까요?" 하는 식으로 쓴 글은 분석 대상에서 모두 뺐고, 6하 원칙에 맞춰 자기 사연을 구체적으로 쓴 글만 분석했다. 취재팀이 최근 1년간 대표적인 결혼 정보 인터넷 카페 두 곳 게시판에 올라온 글 가운데 ①이미 파혼했거나 ②파혼 위기에 처했다고 구체적으로 경위를 밝힌 글 339건을 추려 분석해보니, 결혼비용에 얽힌 파혼(57.5%)이 반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반대나 종교 갈등 같은 집안 문제, 시댁과의 갈등, 당사자 성격차이 같은 전통적인 파혼 사유는 이제 오히려 소수가 되어 있었다(42.5%).

 

 

6. 예단비도 껑충(3년새 34%)

- 신랑 부담 집값 오르자 "신부, 너도 더 내놔라"

- '예단전쟁'에 멍드는 사랑

 

한동안 합리화되는 듯하다. 최근 다시 치솟은 게 예단·예물·혼수 비용이었다. 본지가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①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가는 예단(평균 1249만원) ②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오는 예물(1171만원) ③신혼집 채우고 꾸미는 혼수(1618만원)가 4000만원이 넘었다. 특히 예단과 예물은 2003년 사상 처음으로 각각 1000만원을 넘긴 뒤 줄어들거나 최소한 늘지는 않는 양상을 보이다 올해 다시 'V자 그래프'를 그리며 고개를 치켜든 것으로 나타났다. 3년 만에 예단은 34%, 예물은 40% 오른 것이다. 전체 결혼비용 가운데 신혼집·살림살이·예식비용은 많든 적든 '어차피 지출해야 할 항목'이다. 때문에 갈등도 적다. 선우 조사 결과, 최근 5년간 집값이 크게 올랐는데도 신혼집 마련을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21.1→13.9%). 혼수 갈등도 큰 변동이 없었다(8.9→8.7%). 예단과 예물은 좀 다른 문제다. 우선 집이나 살림살이처럼 꼭 필요한 항목이 아니다. 또 집값처럼 개인이 어쩔 도리가 없는 항목과 달리, 예단과 예물은 당사자끼리 뜻만 맞으면 얼마든지 조촐하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예단·예물은 돈은 돈대로 쓰면서 갈등도 따라서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예단 15.8→18.7%, 예물 13.2→16.8%).

왜 예단과 예물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걸까?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조희선 교수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는데, 집값이 하도 오르다 보니 남자 쪽 가족이 '여자가 그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집값이 오른 만큼 양가가 분담하고 예단과 예물을 없애는 게 합리적인 해결책이건만, 적지 않은 가정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처럼 예단·예물 부담이 커지는 것이 개인의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사회 전반에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하다"면서 "젊은이들이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7. 성실했던 39세 공무원

- 전셋값 때문에 결혼 직후 자살-마지막 문자는?

온국민 결혼비용 스트레스 비즈니스로 전락한 결혼이 저출산 등 사회문제 초래

정신과 전문의들은 "한국 사회가 결혼비용 때문에 집단적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결혼의 본질을 잊고 있다. 사랑해서 결혼해야 하는데, 지금 결혼 과정은 사랑을 놓치고 비즈니스가 됐다. 여기서 각종 사회문제가 다 발생한다. 저출산, 섹스리스 부부, 황혼이혼…."(윤대현 서울대 의대 교수) "요컨대 한국 사회의 병증이 집약되어 있다. 자기 인생인데 포인트가 남한테 있다."(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결국 상대적 빈곤감이 사회적 분노가 된다."(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정미영(가명·29·미용사)씨는 갓난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생모는 미혼모라고 들었다. 기댈 데 없는 처지지만 다부지게 헤쳐왔다. 전액 장학금 받아 대학을 졸업했고, 악착같이 일해 4000만원을 모았다. 사업하는 남자친구가 그런 정씨에게 홀딱 반했다. 예비 시부모도 정씨를 귀여워하며 "애기야, 몸만 오너라" 했다. 오는 10월로 날을 잡았다. 신랑 쪽에서 2억짜리 전셋집도 마련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씨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길 가다 갑자기 혼절하기도 했다. 평소엔 '명랑하고 꿋꿋한 성격'이라고 자부했다. "물론 고맙죠. 하지만 마음 편하진 않아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파요. 결혼 과정이 돈으로 시작하고 돈으로 끝나요. 다들 미친 것 같아요." 갓난아기 때 보육원에 맡겨진 정미영(가명·29)씨가 서울 청담동의 한 웨딩드레스숍을 바라보고 있다. 정씨는 올 10월 결혼할 예정이다. /김효정 기자

서울 강북에서 구멍가게 하는 박정자(가명·60)씨는 "딸이 시집 잘 가면 마냥 흐뭇할 줄 알았다"고 했다. 오히려 위장병이 생겼다. 박씨는 지난해 검사 사위를 봤다. 딸은 교사다. 사돈집에서 2억짜리 전세 아파트를 얻어줬다. 박씨가 혼수·예단·신혼여행 비용(5000만원)을 댔다. 남들이 "사위가 검사인데 그 정도면 거저"라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박씨는 "매일 눈치를 보느라 그때 생각은 하기도 싫다"고 했다. 딸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위에 구멍이 뚫려 1주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사돈이 '루이비통 가방이랑 현금 1000만원만 해오라'고 했어요. 저는 루이비통이 뭔지 몰라요. '한 100만원 하려나?' 했어요. 남들한텐 어떨지 몰라도 저한텐 5000만원이 평생 모은 돈이에요. 그 돈 다 털고도 제가 죄인 같았어요. 사위에게 따로 중형차를 사줬어요. 애도 제가 봐주려고요." 결혼비용 스트레스가 멀쩡한 젊은이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지 한 달 된 새신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억짜리 전셋집 잔금 9000만원을 치르기로 한 날이었다. 고(故) 정영준(가명·당시 39세·공무원)씨의 직장 동료들은 "꾀부릴 줄 모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담당경찰 A씨는 "그런 사람이 마흔이 가깝도록 전세값을 못 모았다는 게 처음엔 의외였다"고 했다. "알고 보니 누나들 많은 집에서 막내이자 장남으로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습디다. 아버지는 10여년 전 퇴직해 수입이 없었고요. 전세값 대출받아도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공무원 월급이라는 게 수당까지 탈탈 털어도 200만원 남짓한데, 1억을 대출받아 이자 내고 원금 갚고 부모님 드리면 남는 게 없잖아요. 누나가 조사받다가 목놓아 웁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이 많다고 결혼하라고 잔소리하지 말 걸 그랬다'고요." "사실대로 말했으면 신부 집에서 충분히 도와줬을 텐데…. '남자라면 당연히 집을 책임져야 한다'고 끝까지 혼자 고민하다 결국…."(친구 B씨) 정씨의 부인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2년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에게 정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는 "미안해. 정말 미안해. 행복하게 살아줘" 였다.

 

 

8.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 "샤넬 백은 꼭 받아야죠

- '나 이정도야' 라는 사인이니까"

- '명품백 콤플렉스' 시어머니·신부들의 말·말·말

취재팀을 몹시 놀라게 한 것 중 하나가 예비 신부와 시어머니들이 선망하는 예단·예물이 몇몇 특정 브랜드에 몰려있다는 점이었다. 그 물건이 정말 좋아서라기보다 '상류층이 좋아한다더라. 그러니 나도 갖고 싶다'는 심리가 두드러졌다. "시집에서 서울 강남에 전세 아파트(106㎡·32평)를 얻어줬어요. 친정에서 시어머니 밍크 코트, 샤넬 가방, 현금 5000만원을 보냈어요. 시어머니들 취향은 매장 직원들이 더 잘 알아요. '이건 반품 들어온 적 없는 가방이에요' '저거 하신 분들은 반품 들어와요. 교환권 넣어 드릴게요' 이래요."(중견 기업 CEO 며느리 김은진·가명·35) "전 아직 싱글이지만 결혼할 때 꼭 샤넬 백 받고 싶어요. 왜 꼭 그 가방이냐고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메고 들어갈 때 달라요. '나, 삶의 질이 이 정도인 사람이야' 하는 사인(sign)이라는 느낌."(회사원 강영희·가명·34) "왜 '샤넬, 샤넬'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남들 말을 하도 듣다 보니 결혼 날짜 다가올수록 시댁에서 샤넬 못 받으면 결혼 잘못하는 거 같았어요. 결국 남편 졸라서 시댁에서 받았어요."(대학원생 김미주·가명·26) "형편이 안 돼서 샤넬인지 루이비통인지 저 자신은 한 번도 못 메봤어요. 시어머니가 하도 해달라고 해서 백화점에 갔다가 매장을 불태우고 싶었어요."(중견 기업 대리 김지수·가명·28) "샤넬 백요? 그건 요즘 다 받으니까 됐고, 요즘은 (시댁에서) '모피 받았나, 못 받았나'로 예물 잘 받았나, 못 받았나 봐요. 예물 잘 받으면 시댁에서 귀하게 여긴다는 증거죠. 그걸 남들에게 '쇼업(show up·과시)'하고 싶은 거고."(중견 기업 전무 부인 박정현·가명·34) "우리나라에 가장 부유한 사람부터 가장 가난한 사람까지 100명이 있다고 쳐요. 친정은 앞에서 서른 번째, 시댁은 맨 앞 다섯 번째쯤 돼요. 시댁 식구들은 '샤넬 백 정말 갖고 싶다'는 식으로 절대 말하지 않아요. 가질 수 있으니까. 가지고 있으니까. 특정 브랜드를 내놓고 갈망하는 사람은 진짜 부자가 아니라 거기 끼고 싶은 그다음 집단인 거죠."(중견 기업 오너 며느리 안희영·가명·36)

 

 

9. "○○는 △△받았다더라"는 말은 파혼의 전주곡

 

파혼에 이르는 3가지 패턴① 말이 바뀐다 - 처음엔 "간소하게" 말했다가 나중엔 상대방에 “섭섭하다"② 비교하기 시작한다 - 다른 부모처럼 받아야겠다며 백화점 직 원 명함 주기도③ 결혼 후가 암담해진다 - 결혼 비용 때문에 잠 설치다 엄마 붙 잡고 펑펑 운 뒤 포기

 

취재팀이 최근 1년간 대형 결혼 정보 카페 두 곳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파혼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은 글 339건을 추려 분석해보니, 파혼하는 패턴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됐다.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글 쓴 사람 아이디는 공개하지 않는다.

◇말이 바뀐다 양쪽 모두 처음엔 간소하게 결혼식 치르자고 약속했다가 일이 진행되면서 욕심을 부린 사람들이다. "상견례 자리에서 암묵적으로 예단·예물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상견례 한 달 뒤 남친이 저에게 500만원이라도 해오라는 거예요. 어머니가 '섭섭하다'고 화내셨대요. 제가 너무 예뻐서 반지랑 옷이랑 다 사주고 싶으시대요. 물론 '받고 싶다'는 말의 다른 말이었겠죠." "예단 안 하고 대신 집값을 분담했어요. 그런데 집값 잔금 내던 날, 시이모가 시어머니에게 '예단 안 받는 게 말이 되냐'고 하셨어요. '아들 파는 값'이라는 표현도 썼어요. 이제 와서는 남친도 부모님 체면 상하지 않게 500만원은 만들어야 한대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엄마 친구'가 무섭다 신랑 어머니 입에서 나왔건 신부 어머니 입에서 나왔건, 젊은이들이 가장 진저리치는 말이 "○○엄마는 ○○ 받았다는데…" 였다. '그러니 나도 받아야겠다'고 예비 사위·예비 며느리를 압박하는 말이다.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내려갈 때 현금 1000만원만 들고 갔어요. 반상기 같은 것은 나중에 취향을 여쭤보려고 했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화를 버럭 내시더라고요. '아들 장가보내는데 이불 직접 사서 덮으라는 거냐. 남들이 며느리가 뭐 해왔느냐고 물으면 받은 게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헤어지면서 터미널에서 백화점 직원 명함을 주셨어요. '루이비통! 신상 넘버 ○○○. 010-○○○○-○○○○.'"

◇이 상태라면 결혼해도 그 뒤가 암담하다 이런 세태에 가장 많이 상처받는 사람이 서민들이다. 결혼비용 때문에 밤잠 못 자고 고민하다 혼약을 깼다는 사연이 많았다. 밀고 나가자니 돈이 없고, 대출받자니 뒷감당이 겁났다. "집 보러 다니다 정말 작은 집이지만 저희가 시작하기엔 적당한 곳을 발견했어요. 당장 계약금이 필요해 시댁에 말씀드렸더니 몇백도 없다고, 힘들다고만 하시네요. 어렵게 친정 엄마한테 말을 꺼냈어요. 그러면서 저희 엄마, 저 키우느라 진짜 돈 한 푼 못 모으고 이제야 통장 잔고에 1000만원 있는 거 봤습니다. 저 시집갈 때 혼수 해주겠다고 안 쓰고 모은 돈이래요. 엄마를 붙잡고 펑펑 울고 나서 (모두가) 너무 상처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 부모님 울리는 결혼 비용, 원인은?

수원에 사는 정기완(가명·56)씨는 군대 갔다 오자마자 결혼해 아들 셋을 내리 낳았다. 직원 10명 짜리 폐기물 처리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 해 6000만원씩 벌어 4억짜리 아파트(152㎡·46평)를 샀다. 어려움 없이 아들 셋을 모두 서울 명문 사립대에 보내 주위에서 "다복하다" 소리를 들었다. 그런 정씨도 아들 셋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자 허덕이기 시작했다. 정씨 자신은 서울 장교동 단독주택 문간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땐 다들 그랬고, 내가 특별히 힘들게 출발한다는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아들 셋이 대기업에 취직했으니 결혼시킬 일만 남았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닥쳐보니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2009년 큰아들(당시 29세)이 결혼했다. 큰아들은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3000만원을 모았지만 아파트 전세금은 1억8000만원이었다(80㎡·24평·서울 마포구). 정씨는 '그래도 개혼(開婚)인데…' 싶어 노후 자금으로 부은 적금 2억원을 헐었다. 작년에 셋째 아들(당시 27세)이 올해 5월로 날을 잡았다. 그새 전셋값이 더 올라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가 2억원 했다(63㎡·19평·서울 송파구). 정씨는 큰아들 보내고 남은 돈에 은행에서 8000만원을 대출받아 셋째 아들에게 건넸다. 최근 둘째 아들(28)도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했다. 정씨는 "솔직히 겁이 덜컥 났다"고 했다.

 

   

11. 변호사 아들과 며느리 의사의 결혼, 시아버지가…

조선일보|석남준 기자|입력2012.03.26

- 내 힘으로 작은 결혼식- 어느 시아버지의 소신

- 신랑은 변호사, 신부는 의사

- 양가 가족 25명씩만 초대해 호텔 회의실 빌려 식사대접- 시어머니·신부가 달라져야

- 식장·예단은 신랑쪽 부모, 결혼당일 비용은 신부입김 세… "서로 지출 줄여 집값 분담을"

 

"3남매 중 위로 둘은 딸이라 사돈이 하자는 대로 결혼식 치렀습니다. 막내인 아들만은 제가 오래 꿈꿔온 대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일수(66) 원장은 작년 9월 아들 주은(35)씨를 결혼시켰다. 식장은 서울 시내 특1급 호텔 중 하나인 리츠칼튼호텔로 잡았지만, 하객 숫자는 혼주까지 양가 합쳐 딱 50명이었다. 호텔 연회장 대신 회의실을 빌려, 주인공인 신랑·신부까지 52명이 1인당 10만원 짜리 양식 코스를 먹고 헤어졌다. 꽃 장식 비용 60만원까지 총 600만원 들었다.

제 누이 다섯 명과 아내의 형제자매 네 명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신혼부부가 개별적으로 인사를 돌았지요. 사돈댁도 마찬가지로 하셨습니다." 김 원장 아들 주은씨는 대형 로펌 변호사다. 며느리(31· 서울대병원 전문의)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딸이다. 신랑 아버지인 김 원장은 고려대 법대 학장을 지내고 한국형사법학회장·법무부 정책위원장 등을 두루 거쳤다. 강릉 출신으로 인품이 소탈하고 발이 넓다. 사회적 지위로 보나 인맥으로 보나 얼마든지 수백명 불러 호사스럽게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아들이 과시 없이 겸손하게 인생을 시작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작은 결혼식'을 밀어붙였다. 신랑 어머니 이신희(64)씨는 "며느리가 화려하게 꾸미려는 욕심이 없어 기특했다"고 했다.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신산철 사무총장은 "한국 결혼식이 달라지려면 김 원장 가족처럼 신랑 부모와 신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본지가 여론조사 회사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혼주 210명과 신혼부부 200명을 조사해보니, 혼주들은 결혼 과정과 비용을 결정하는 데 가장 입김이 센 사람으로 ①신랑 어머니(23.3%)와 ②신랑 아버지(12.4%)가 꼽혔다. 신랑이 신혼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식장과 예단 규모를 정할 때 신랑 쪽 부모의 발언권이 세다는 얘기다. 한편 신혼부부들은 ①신부(31.0%)와 ②신랑 어머니(19.0%) 발언권이 세다고 했다. '이날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신부의 허영심이 웨딩사진·드레스·메이크업·꽃 장식 등 결혼식 당일 비용을 좌우한다. 신부가 욕심을 부리는데, 평생 모은 돈을 털어 신혼집 마련해주는 신랑 어머니만 예단 욕심을 억누르긴 힘들다. 한국웨딩학회 김인옥 회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은 "양가가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함께 집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신랑 부모는 하객 욕심, 신부도 드레스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 부부는 결혼식을 5개월 앞두고 상견례할 때 사돈에게 '50명만 모이자'는 얘기를 꺼냈다. 사돈집도 흔쾌히 동의했다. 예물·예단·폐백도 양가가 합의해 생략했다. 신랑 어머니는 평소처럼 집에서 직접 화장하고 딸 결혼식 때 입은 한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김 원장도 평소 입던 양복을 입고, 부인이 모는 차로 식장에 갔다. 워낙 소규모라 사회자도 따로 세우지 않았다. 원탁이 여러 개 놓인 회의실에 신랑·신부가 도우미 없이 입장했다. 양가 50명이 양식 코스를 먹으며 신랑·신부 어릴 때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앞으로 행복하라고 덕담을 했다. 끝으로 신랑·신부가 하객들 앞에서 자기 힘으로 마련한 결혼반지를 나눠 끼었다. 김 원장은 결혼식이 끝난 뒤에야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만 "실은 아들을 장가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수십년 알고 지낸 동료 교수도 취재팀 문의 전화를 받고 "그 양반이 아들 결혼시킨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김 원장은 "내가 무슨 큰 희생을 한 게 아니라, 선배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걸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고(故) 김인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손봉호(74) 전 동덕여대 총장이 같은 방식으로 자녀를 결혼시켰다. "아들 결혼식을 크게 치렀다면 아는 분들이 의무감으로 많이 오셨겠지요. 저도 빚진 기분이 들었을테고요. 앞으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결혼만 찾아가면 되니 홀가분해요. 지금껏 낸 축의금이 아깝지 않냐고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니 안 바뀌지요."

 

 

 

12. 수백명 몰리는 대형 결혼식, 하객은 괴로워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입력 : 2012.03.26 03:11

 

 

신랑·신부·혼주야 자기 일이니 고생해도 할 수 없다고 치자. 하객은 무슨 죄인가 싶다. 황금 같은 주말에 교통지옥을 뚫고 가서 축의금 내고 방명록에 이름 쓰고 주차권과 식권을 챙긴다. 이어 신랑·신부·혼주와 눈도장을 찍는다. 자리 잡고 앉으나 복도를 서성이나 다음에 기다리는 건 예식 그 자체가 아니라 '증명사진' 찍는 차례다. 그 뒤 우르르 피로연장으로 이동해 밥을 먹는다. 갈비찜에 김치 곁들여 잔치국수를 후루룩거릴 때, 신랑·신부가 번개같이 폐백을 마친 뒤 할리우드 영화 파티 장면에 나옴직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타나 테이블 사이를 돈다. 하객들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신부 정말 예쁘다" "행복하게 살라"고 한마디씩 한다. 덕담을 길게 할 수도 없다. 이미 다음 하객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이 싫어 호텔에서 결혼해도 고급스러워지는 건 식장 인테리어뿐, '콘텐츠'는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하객 입장에선 더 괴로운 경우도 있다. 빨리 보고 자리를 뜰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봐서 '그러려니' 한다. 외국인 눈엔 진풍경이다. 한국에 10년 넘게 산 앤드루 새먼(Salmon·46) 더 타임스지 서울 특파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랑·신부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왁자지껄 유쾌한 것도 아니고, 영적(靈的)인 느낌도 없고…. 진정으로 축하하는 자리라기 어려울 때가 많죠. '매스 프로덕션'(massproduction·대량생산)이랄까요?" 그 '매스 프로덕션'을 보느라 하객 수 백명이 주말마다 적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씩 시간을 낸다. 축의금 그 자체는 젊은이들 새살림 꾸리라고 십시일반 보태주는 의미니까 꼭 나쁠 것 없을지 모른다. 자식 결혼시킬 때 대비해 평생 곗돈 묻듯 내온 것도 아까울 수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많은 사람을 다 부르고, 눈도장 찍으러 꾸역꾸역 가야 하는 것일까. 다르게 결혼하고, 다르게 축하할 때가 됐다.

 

 

13. 결혼식 하루에 1억 쓴 여성

"하객들이… " 한숨

입력 : 2012.03.26

신부들의 뒤늦은 후회

회사원 김혜미(가명·31)씨는 '왜 엄마들은 자기 결혼식을 어떻게 올렸는지 딸들에게 추억담을 얘기하지 않을까' 언제나 궁금해 했다. 자기가 결혼해 보고 이유를 알았다. "결혼식이라는 게 자식들에게 두고두고 들려주는 얘깃거리가 돼야 하는데, 다들 돈은 돈대로 쓰면서 '어디서 식 올렸다'는 사실만 남고 추억은 없어요. 기계로 찍어내듯 똑같은 식을 올리는데 몇 천만원씩 쓴 게 너무 아깝고 아쉬워요." 김씨는 작년 3월 8년 사귄 남자 친구와 서울 강남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웨딩사진·드레스·메이크업부터 예단 보내고 하객 300명 잔치 음식 대접하고 신혼여행 다녀오기까지 총 3500만원을 썼다. 관악구에 방 두개짜리 다세대주택 전세를 얻는 데 9000만원이 별도로 나갔다. 김씨 쪽이 2000만원, 신랑 쪽에서 나머지를 부담했다. "차라리 식당을 빌려서 정말 친한 사람들과 한우 파티를 했으면 돈도 훨씬 덜 들고 즐거웠을 것 같아요. 아낀 돈을 집값에 보태면 시댁 부담도 덜 수 있었을 텐데…."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웨딩 100쌍 캠페인'을 시작한다. 젊은이들이 자기 힘으로 작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면, 번듯한 장소를 연결해 주는 프로젝트다. 집값은 개인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결혼식은 다르게 치를 수 있다. 그러려면 가장 큰 숙제가 공간이다. 강희정(가명·32)씨는 "영화처럼 작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호텔에서 1100명이 북적대는 가운데 식을 치렀다. "양가 종교가 달라 교회나 성당은 불가능했어요. 호텔 아니면 예식장인데, 사업하는 시아버지가 '개혼(開婚)이니 호텔에서 하자'고 주장해 친정에서 할 수 없이 따라갔어요.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아무래도 남자 쪽을 따르자'면서요. 애 낳고 살림해 보니 하루에 1억 쓴 게 너무 아까워요. 축의금 부담 때문에 하객을 많이 청하다 보니, 저희 부부가 아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됐어요."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작은 결혼식을 자기 힘으로 치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지금까지 총 16개 기관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현재 협의 중인 기관도 많다. 지역별로 최소한 한 곳 이상 동참하는 기관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더 많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참여를 기다린다.

 

 

14. '스스로 결혼식' 100쌍 지원

입력 : 2012.03.26

작은 결혼식

모두가 피곤한 고비용 결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연말까지 예비 신혼부부 100쌍을 선정해 호텔·야외공원·공연장·공공기관 등 누가 봐도 번듯한 장소에서 식을 올릴 수 있게 연결해준다. 조건은 두 가지다.①최소한 결혼식 비용만큼은 부모 도움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마련할 것 ②하객 150명 안팎을 초청해 1000만원 안팎으로 친밀한 축제 같은 '스마트 결혼식'을 치를 것. 이 두 조건을 만족하면 예식장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최소한의 실비 수준으로 대폭 할인해주는 캠페인이다. 올해 안에 결혼하는 예비 부부가 5월 20일(일요일)까지 이메일과 전화로 사연을 신청하면 심사를 통해 100쌍을 추려 6월 4일(월요일) 발표한다. 직업·계층·학벌은 안 본다. 발랄한 연애담, 순수한 이상(理想), 지금껏 키워준 부모에게 "여기서부터 저희 힘으로 가겠다"고 말할 줄 아는 기백, 세 가지를 본다. 원하는 경우 여성가족부김금래 장관과 김태석 차관을 포함해 저명인사 100명이 주례도 서 준다.

사연 보낼 곳:생활개혁실천 협의회 이메일: life21@life21.or.kr 문의: (02)793-7816

 

 

  15. 국민권익위원회 발표자료(2012.4.6)

※ ’12년 우리나라 평균 결혼 비용은 2억 808만 원으로, ’99년 대비 전체 결혼 비용은 2.7배

    증가 (출처: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신혼집 마련 비용 3.3배 증가: 4,262만 원(’99) → 1억 4천 2백 1십 9만원(’12)


 결혼식 비용 3.7배 증가: 457만 원(’99) → 1천 7백 2십 2만원(’12)


 혼수․예물․신혼여행 등 1.7배 증가: 2,911만 원(’99) → 4천 8백 6십 7만원(’12)

 

 

16.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조선일보 2012.9.12

아들이 데려온 여자 보고 심장이 철렁한 아버지… 왜?

'남자가 집, 여자가 혼수' 통념에 喜悲 엇갈리는 부모들

"전세금 절반만 도와달라는데 대출 받고 은퇴자금도 깨야죠"

"우리 부부도 살기 힘든데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여자 친구를 데려왔을 땐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경기도 광명에 살고 있는 김미정(가명·62)씨는 3년 전 큰아들이 결혼하겠다며 '전세금 절반만 도와달라'고 말한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형편이 안 좋아 모아놓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대출을 받기 위해 남편과 은행 6군데를 돌아다녔다. 제2금융권을 찾기도 했다. 김씨는 고생 끝에 마련한 대출금 3000만원에 시누이로부터 빌린 돈 2000만원을 보태 아들에게 주었다.

 

고등학교 교사 이성준(가명·61)씨는 변리사가 된 아들을 생각하면 항상 뿌듯했다. 아들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여자와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 이씨는 '노후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들 내외는 "서울의 강북에 20평형 아파트에 전셋집을 마련하는 데도 2억5000만원이 든다"며 자신들이 1억을 마련할 테니 1억5000만원을 지원해달라 했다. "아들과 예비 며느리의 이야기를 듣고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는 이씨는 "나중에 아들이 '신부 앞에서 창피했다'고 하더라"며 허탈해했다. 이씨는 그동안 모은 1억원에 은행에서 대출받은 5000만원을 아들 전셋집에 보탰다. 이씨는 "우리도 못사는 집이 아닌데 더 힘든 사람은 오죽하겠냐"고 말했다.

 

본지 취재팀이 혼주 36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아들을 결혼시킨 부모 중 상당수가 '아들 가진 고통'을 겪고 있었다. "아들 가진 게 죄(罪)"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지방의 한 국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이민성(가명·63)씨는 3년 전 첫째 아들에게 서울 마포구에 전셋집(60㎡·18평)을 얻어주며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 회사에 다니는 아들은 "내 월급으론 직장이 있는 서울에 집 구할 수 없다"고 했다. 교수 월급이지만 월 300만원씩 갚다 보니 생활은 팍팍해졌다. 그는 은퇴 후를 위해 붓던 적금도 깼다.

 

 

 

안정복의 ·喪禮에 대한 생각과 이색의 시 <有感>

 

혼례(婚禮)와 상례(喪禮)는 사람의 도리 중에서도 큰 것으로, ()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고 법()에는 금지하는 바가 있다. 가난한 자야 사실 논할 것이 없지만, 부유한 자는 항상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예를 범하고 법을 넘어서서 참람하고 사치스러운 풍조가 이루어졌다.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혼인이란 두 성()을 결합시키고 만 가지 복()의 근원을 맺는 일이니, ()에 정한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재물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참으로 오랑캐의 도이다.
  고구려의 풍속에는 혼인 예물이 너무 많을 경우에 매비(賣婢)’라고 하였다. 이때는 오랑캐의 풍속이 미처 바뀌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이를 수치로 여겼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예교(禮敎)가 밝고 아름다운 시대임에랴.
  부모의 상()은 실로 자신의 힘을 다해야 할 바이다. 성인도 말하기를, “예로써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지낸다.”라고 하였으니, 군자가 일을 행함에 있어 예를 버리고 무엇으로 하겠는가.
  지금 세속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혼인 예물이 풍성하지 못하면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며, 혹 이로 인해 두 집안이 불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버이의 장례를 예에 따라 지내면 박장(薄葬)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마구 일어나 떠들어 대기도 한다.
  이 때문에 풍습이 겉치레를 숭상하여 보기 좋게 하는 데만 치중하다 보니, 실질적인 일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장사치들이나 하는 행위이지, 사군자(士君子)가 본받을 일은 아니다.
 
이 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순암(順菴) 안정복(1712-1791)이 광주(廣州) 경안면(慶安面) 덕곡리(德谷里) 텃골에 살면서 같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향약(鄕約)을 만들어 시행할 적에 만든 향약규례 가운데, 혼례에 관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안정복은 본관이 광주, 자가 백순(百順), 호가 순암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하면서 과거를 외면한 채 여러 학문을 섭렵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 뛰어나, 하학지남(下學指南)잡동산이(雜同散異), 동사강목(東史綱目)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안정복은 이 글에서, 혼인을 하면서 재물을 따지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며, 그러한 짓은 시정잡배나 하는 짓이지 법도가 있는 사대부의 집안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혼인의 풍습이 남들의 눈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일은 모두 없어지고, 허례허식만 남았다고 개탄하였다.
  혼인을 하면서 서로 간에 예물을 주고받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예를 표하기 위하여 주고받는 것이다. 이런 예물에 대해서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다. 더구나 이 때문에 분쟁이 생겨 끝내는 혼인을 파하기까지 하는 것은, 오랑캐들도 하지 않는 짓이다.
  혼인의 예식은 일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생에 단 한 번 치르게 된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누구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남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혼례식을 치르고 싶어 한다. 이것은 인지상정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이라는 핑계로, 집안 사정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예물과 혼수를 마련하거나, 호화스러운 식장에서 연예인이나 부유층이 치르는 것처럼 화려하게 치를 경우, 주위 사람들에게 빈축을 살 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첫출발부터 불행의 구덩이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자신의 부모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줄 수도 있다.

 

내 분수에 만족하며 삶을 살지만,       謀生本知足
일 만나선 가난함이 늘 부끄럽네.       遇事每羞貧
예로부터 혼례 중히 여기었던 건,       婚禮由來重
인륜 본디 예서 시작 되어서라네.       人倫自此新
사치함은 내가 본디 좋아 안하니,       奢非吾所尙
검소함을 내 마땅히 따라야 하리.       儉豈我當遵
내 뜻대로 할까 남들 따라서할까?       違衆與從俗
신경 온통 쓰자 머리 지끈거리네.       徒然勞我神

 

  이 시는 고려 말기의 삼은(三隱)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학자이며 문장가였던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것으로,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쓴 유감(有感)이란 제목의 시이다.
  목은과 같이 뛰어난 인물조차도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는 자기 뜻에 따라 검소하게 치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화려하게 치를 것인가를 두고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고민하였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네 같은 일반 사람들이겠는가. 누구를 막론하고 화려하게 치르고 싶을 것이다.

 

고전번역원 글에서 발췌  2013.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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