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부의 참사랑

청담(靑潭) 2012. 5. 24. 23:16

 

 

 부부의 참사랑

 중앙일보 2012. 5. 24

 

 

 

 

  대전 안정 나씨의 묘에서 16세기 초반 한글편지가 발굴·복원된 것을 계기로, 조선시대 부부관계나 생활상을 보여주는 한글편지가 주목받고 있다. 한글창제(1443년) 이후 19세기까지 작성된 한글편지(諺簡·언간)는 현재 약 2500통이 남아있다. 이 중 부부간에 주고받은 것은 약 1000통. 이번에 공개된 나신걸의 편지 외에, 경북 안동 이응태씨 묘에서 출토된 ‘원이 엄마’ 편지, 홍의장군 곽재우의 조카인 곽주(1569~1617)가 수년 동안 아내에게 부친 편지 등에도 부부간의 애틋한 정(情)이 흐른다.

 

♥변방 군관으로 근무했던 나신걸은 부인에게 귀한 물품인 분과 바늘을 사 보내면서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일명 ‘원이 엄마’ 편지(1586)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이 절절히 흐른다.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아내는 서른 살에 급사한 남편을 애도하며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다”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나타나달라”고 애원한다.

 

 

♥곽주는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간 아내의 소식이 궁금해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냈다. “보낸 약은 내가 가서 직접 달여줄테니 기다리라”고 전했다. 다른 편지에서는 “또 딸을 낳아도 절대로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라며 아내의 걱정을 덜어줬다. 경북대 백두현(국문학) 교수는 “당시 사대부들이 아내에게 예의를 지키고 극진하게 대접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거나 동물이거나 남녀간의 참사랑이 다 그렇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여  부부간의 참사랑이야말로 나를 눈물이 나도록 감동하게 합니다. 원이 엄마의 편지를 통해 16세기 젊은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피눈물나는 그리움을 너무나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함께 누우면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 나는 아무래도 살 수 없어 리 당신에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 주세요.” 

 

  아! 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원이 엄마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젊은 부부의 뜨거운 참사랑이 눈에 잡힙니다. 이미 젊은 나이에 삶의 의미를 다 깨달은 듯한 숭고한 부부사랑입니다. 삶과 죽음이 갈라놓은 처절한 이별의 아픔이 단 몇 마디에 다 담겨 있습니다. 원이 아빠의 죽음은 원이 엄마의 심장을 갈갈이 찢어 놓았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비통한 심정으로 원이 엄마가 부르짖는 통한의 사부곡입니다.

 

  예전에 부부가 함께 출연한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음 세상에 환생하게 되면 현재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하고 사회자가 물으니 손을 드는 부부는 거의 없었습니다. 비록 예능프로그램이고 출연자들이 연예인들이라지만 순간 나는 많이 실망하였습니다. 원이 엄마와 아빠같은 부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거나 있어도 확신이 없으니 선뜻 손을 들 수 없었겠지요. 

 

  21C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이고 장차 결혼은 평생동안에 서너번씩 하는 방식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지만, 나는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원이 엄마같은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죽어서도 원이 엄마같은 여인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아마 그런 사랑은 받는다면 저승에서도 언젠가 만날 그녀를  뛰는 가슴으로 기다리며 누구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승에서 다시 만나 못다한 사랑을 아름답게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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