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결혼과 예단(한국의 병폐)

청담(靑潭) 2012. 7. 4. 11:43

 

 

조선일보에서 우리사회의 병폐인 호화결혼식에 대한 심층취재에 이어 요즘은 예단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무엇보다도 아주 크게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며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로 여기는 것이 바로 예단이다. 기사를 모아 정리한다.

 

 

예단 -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조선일보 TV조선 공동기획

 

1. 모두가 괴로운 한국病' 결혼예단 없애자

 

신혼부부 24% "예물·예단 때문에 심각한 위기 겪어"… 35% "결혼비용 중 가장 아깝다

 

회사원 박승준(가명·37)·이혜미(가명·35)씨는 작년 6월 예식장을 예약하고 청첩장까지 다 찍어놓은 상태에서 결혼식 한 달 전에 파혼했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친구 소개로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가 되자 사사건건 충돌했다. 당장 신혼집 문제에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 저축으론 모자라 예비 신랑 부모가 1억원을 줬다. 애써 마련한 돈이지만 예비 신부 부모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는 사람 딸은 집 사오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다음은 예단(禮緞) 차례였다. 예비 신부 부모가 비용을 대서 양가 어머니와 예비부부가 270만원어치 한복을 맞췄다. 190만원짜리 예비 신랑 양복도 샀다. 이와 별도로 현금 500만원에 이불·반상기·은수저를 곁들여 예비 신랑댁에 보냈다. 여기서 갈등이 커졌다.

예비 신랑 부모가 화를 냈다. 예비 시어머니가 예비 며느리를 불러 "현금의 절반을 (신부 옷·화장품 값으로) 되돌려 주는 게 관행이라던데, 너희 집에서 보낸 액수(500만원)가 워낙 적어 한 푼도 못 돌려 주겠다"고 했다. 양가는 예식장 대신 법정에서 만났다. 예비 신부가 "결혼이 깨져 상처받았으니 5000만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둘 다 잘못해서 깨진 결혼이니 그럴 필요 없다"고 기각했다.

예물과 예단은 서로 잘 살아보자고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걸 주고받다 오히려 결혼에 금이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3년 내에 결혼한 전국 신혼부부 300명을 조사한 결과 예비 사돈끼리 벌이는 '예단 전쟁'은 이미 위험수위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조사 결과 신혼부부들이 전체 결혼비용 중 가장 아깝다고 답한 항목 1위가 예물·예단이었다(35.3%).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물·예단 때문에 심각한 순간을 겪었다는 사람이 네 쌍 중 한 쌍(23.9%)에 달했다. 전체 열 쌍 중 한 쌍(9.9%)은 "예물·예단 갈등 때문에 이혼·파혼·결혼 연기 등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예물·예단을 둘러싼 갈등은 서민 가정(22.1%)보다 중산층 가정(24.8%)에서, 중산층 가정보다 유복한 가정(28.6%)에서 더욱 많았다. 정말 돈이 없어서 생기는 갈등이 아니라 잘못된 결혼문화 때문에 불거지는 '한국 병(病)'이라는 얘기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은 "요즘 결혼이 거의 '돈 놓고 돈 먹기' 수준으로 전락했다"면서 "잘못된 혼례문화를 고치려면 예단을 아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 피멍들게 하는 예단의 고통 생생하게 전합니다.

작년 초, 네 살 연상 사업가와 결혼한 김미영(가명·32)씨는, 시어머니가 "친구 결혼식에 간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시어머니는 남들 결혼식만 다녀오면 예단 얘기를 꺼내며 김씨가 가져온 예단과 시시콜콜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불은 어디서 얼마짜리를 해왔고, 한복은 얼마짜리고, 가방은 무슨 브랜드인데 지난번에 아들 결혼시킨 누구도 그걸 받았다더라…. 이런 식으로 계속 말씀하시는데, 결국 제가 그걸 사왔기를 원하시는 거죠. 억울하죠. 그렇다고 제가 예단을 적게 한 것도 아니거든요."

김씨는 결혼할 때 서울 청담동에서 실크 이불을 구입해 시부모에 선물했다. 인터넷이 훨씬 저렴했지만 시부모가 "인터넷은 못 믿겠다"고 해서 결국 발품 팔아 시부모와 자기 부부 은수저 세트를 샀다. 시어머니 쓰라고 300만원 짜리 침대, 200만원 짜리 화장대, 가전제품 1000만원어치를 샀다. 시어머니 요구로 가까운 시댁 친척들에게 빠짐없이 옷도 사줬다. 시어머니가 "안 하면 결국 네 얼굴에 먹칠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예단매장에 전시돼 있는 순도 99.9%의 최고급 은수저. 방짜유기와 100% 실크 이불까지 더하면 금액이 1000만원을 넘어선다.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이 총 6000만원이다. 김씨가 꼼짝 못하고 이 돈을 낸 이유가 뭘까? 김씨는 "시댁에서 '6억원짜리 집을 사주겠다'고 해서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시댁은 "집값 10%는 예단으로 받아야겠다"고 했지만, 김씨 부모는 "집값 보태겠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김씨는 "갈등을 꾹 누르고 결혼했지만, 시어머니가 예단 얘기 꺼낼 때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최근 아이가 들어선 뒤 "어떻게 해서든 참고 살아야겠다"며 마음을 다지면서도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3. 이혼 전문 판사·변호사 '예단전쟁' 난상토론

 

결혼한 지 5년 안에 이혼하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예단 때문입니다.

 

이혼 소송자들을 자주 만나본 판사와 변호사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한 법률사무소 회의실에 박종택(47)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와 김삼화(50)·김수진(45)·이인철(39) 변호사가 마주 앉았다. 대한민국 혼례문화에서 예단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짚어보는 난상토론이었다.

―"옛날에도 예단 때문에 갈라서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소위 '사'자 들어가는 신랑감이나 일부 부유층 얘기였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예단 갈등이 서민까지 번졌다. 요즘 중산층 가정도 명품 가방을 주고받는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남들도 다 하더라'며 밍크코트를 탐낸다."

―"이렇게 된 가장 큰 화근은 집값이다. 예전엔 10년 벌면 집 샀는데 요즘은 10년 벌어도 못 산다. 부모 도움 없이는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부모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

―"한 여자 의뢰인은 시어머니가 그냥 샤넬 가방 사오라는 것도 아니고 '샤넬 가방 중에 무슨 가방 사오라'고 콕 집어주더라고 했다. 세탁기도 '○○브랜드 ○○모델이 좋다'고 적어주더란다. 또 다른 여자 의뢰인은 결혼 직후 친정아버지가 입원했다. 시어머니가 병문안 와서도 계속 '결혼 전에 주시기로 한 돈이 아직 안 왔다'고 보챘다."

서민과 중산층이 많이 찾는 서울 강남의 한 예단 전문점에서 종업원이 170만~270만원짜리 예단용 이불 세트(사진 위)와 50만~100만원짜리 반상기 세트(아래)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가게 손님들은“이 정도면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이라며“인근 백화점에 가면 엇비슷해 보이는 물건도 이보다 몇 배씩 더 받아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한 남자 의뢰인이 이혼하면서 '시원하다'고 했다. 처가에서 예단을 10억원 가까이 보내 그동안 찌개가 짜도 짜다는 말을 못하고 살았다더라. 또 다른 남자 의뢰인은 여자가 집 사온다길래 대출까지 받아서 각종 명품을 3000만원어치 사줬다. 여자가 집을 사오긴 사왔는데 여자 명의로 사오는 바람에 '왜 네 명의로 해왔느냐'고 따지다 결국 이혼했다."

―"지금 이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가 195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은 한마디로 돈의 위력을 아는 세대다. 단칸방에서 출발해 고도 성장기에 집 한 채씩 마련했고, 그걸 토대로 현재의 자산을 모았다. 이들은 대부분 아들·딸 구별 않고 둘만 낳아 열심히 키웠다. 자식이 대학에 가면 교수에게 전화해 '학점 잘 달라'고 했다. 자식이 취직하면 상사에게 전화해 '우리 애 잘 봐달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한 뒤엔 손을 떼야 하는데 관성이 있어 계속 관여한다. '너희들 일주일에 몇 번씩 잠자리하니?' '승진 시험이 있으니 이번 주는 각방 써라' 같은 참견까지 서슴지 않는다."

18일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 회의실에서 이혼 소송을 자주 접해온 전문가들이 예단의 폐해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반면 자녀는 으레 그렇게 간섭받고 사는 줄 안다. 자녀 세대는 1970년 후반~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 IMF 외환위기 직후 사교육을 많이 받고 자랐다. 스펙 경쟁하느라 취업하는 나이가 늦고, 취업 자체도 쉽지가 않다 보니 결혼할 때 은근히 '이참에 부모가 한몫 챙겨줬으면' 한다. 친구들 결혼도 부모의 지원을 잣대로 평가한다. '○○이 결혼 잘했다'고 하면 십중팔구 잘사는 집 자식과 결혼했단 얘기지 멋진 상대와 결혼했단 얘기가 아니다. 부모 지원으로 풍족하게 결혼하는 걸 두고 '혼(婚)테크'라는 말까지 부끄럼 없이 쓴다."

―"전 국민이 예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5년 미만 이혼은 절반 이상 예단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10년 넘어 이혼하는 사람도 예단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현재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한참 얘기하다가 '실은 10년 전 결혼할 때부터 시어머니가 예단 적게 해왔다고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하고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는 그게 다 헛돈이라는 점이다. 결혼해서 몇 년 된 집 가봐라. 웨딩사진은 벽장에 들어가고, 애 사진이 붙어 있다. 명품 받아봤자 살림하다 보면 차고 나갈 일도 별로 없다."

―"집값을 분담해 아들 가진 부모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예물·예단에 쓸 돈 있으면 차라리 자녀에게 그냥 주는 게 낫다. '얼마 줄 테니 너희가 알아서 마음대로 생활 기반을 마련하라'고 하면 자녀도 그 돈을 귀하게 쓴다. 부모가 아니라 당사자 두 명이 결혼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4. 신부들 "예단 부담되지만 집값 분담은 싫어"… 신랑들 "집값 내지만 예단으로 본전 뽑겠다"

예단전쟁 발단은 신혼집

 

대기업 사원 민희란(가명·30)씨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전세금 1억5000만원 중 1억원은 시댁과 남편 저축으로 충당하고, 5000만원은 남편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다. 분명히 남편 힘으로 얻은 신혼집이지만 민씨는 "나는 손해 보고 결혼한 사람"이라고 했다.

"시댁에선 당연히 자기네가 사준 거라고 하죠. 제가 보기엔 아니에요. 왜냐하면 남편 이름으로 빌린 대출금을 우리 부부가 함께 갚아나가고 있거든요. 집은 신랑 쪽이 해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친정 부모님은 오빠가 결혼할 때 집을 사주셨어요. 주위에서 '누구는 시댁에서 집 사줬다' 소리 들으면 속이 상해요."

꼭 이혼까지 가는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예단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그들의 속내를 잘 들어보면 신랑·신부·혼주 할 것 없이 저마다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신부가 갖고 있는 이중 잣대는 신혼부부에게 집값이 가장 큰 부담인데도 여전히 '집은 당연히 남자가 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시에 신랑 부모와 신랑도 "집값 대기가 버겁다"고 하면서도 능력이 허락하는 한 단독으로 집값을 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집 때문에 결혼 후에 기가 죽을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회사원 김연호(가명·30)씨는 "결혼 준비하면서 어머니가 '처가가 힘(돈)을 많이 쓰면 결혼해서 데릴사위가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면서 "부모님께 부담을 많이 드려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집이 좀 힘들더라도 결혼생활을 내가 끌고 가고, 그 대신 처가로부터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 게 낫다' 싶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집값은 양측이 분담하고, 허례허식에 드는 돈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조희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교수는 "전통 혼례문화에서 '예단을 과하게 하는 것은 오랑캐와 같은 짓'이라고 본다"면서 "요즘 '결혼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결혼하기 겁난다'는 젊은이가 많은데, 예단문화를 바로잡지 않으면 이런 풍조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5. 장인이 벤츠 안 사주고 국산 SUV 사줬다고… '경악'

예단 때문에 이혼한 사람들의 판례를 보면 '돈 문제'로 얽히고 설키다 결국 남들한테도 차마 못 할 언행을 하다가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도를 넘은 간섭, 도를 넘은 욕설이 다시는 봉합할 수 없는 파탄을 부른 것이다.

시어머니(70)가 며느리(35)와 휴대전화로 화상전화를 하면서 "네가 살림을 어떻게 하는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면서 "냉장고에 무슨 반찬이 있는지, 와이셔츠는 모두 다렸는지, 내 아들 도시락 반찬이 뭔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비춰보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결혼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예단 액수가 적어 앙심을 품고 있다가, 급기야 며느리 일거수일투족을 불만스럽게 여기게 된 사례였다.

부부끼리 주고받는 말도 시정잡배들이 다투는 것보다 더 살벌한 수준이었다. 예단 때문에 계속 싸우다 작년 8월 갈라선 김태근(가명·38·의사)·정은미(가명·33·회사원)씨 부부가 대표적이다.

이 커플은 신랑 부모가 집을 사주는 대신, 신부 부모가 차 뽑고 혼수 마련하고 병원 차리는 비용 절반을 보태주기로 합의했다. 각론으로 들어가니 복잡해졌다. 신랑이 빈정댔다. "내 친구가 왜 자기 부인에게 잘해주는지 알아? 의사 사위 얻었는데 집까지 해왔다고 장인어른이 벤츠 뽑아주고 병원 차려줬기 때문이야. 나는 왜 겨우 국산 SUV인지 억울해서 못 살겠어."

신부가 맞받아쳤다. "내 친구 신랑은 40평대 강남 아파트 사왔어. 당신은 30평대 강북 아파트 사왔잖아? 의사면 다야?" 격분해서 뱉은 말이 양가 부모 귀에 중계방송 됐다. 3년 만에 헤어지면서 양가 변호사가 법정에 써낸 글을 한 줄로 요약하면 결국 이런 뜻이다. "내 돈 돌려 달라."

멀쩡한 고학력 전문직 신랑이 술도 안 취한 상태에서 툭하면 신부에게 "○ 같은 ○아, 돈 벌어오라"고 욕해 소송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 신랑은 아내에게 "네가 해온 게 뭐가 있냐. 내가 벌어온 돈 쓰지 말고 몸만 나가라" "처가가 부잣집이면, 부실하던 성기능도 향상된다더라" 등등 입에 못 담을 욕설을 상습적으로 했다. 신부가 그 말을 녹음해 법정에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예단 때문에 다투고 헤어지는 이들을 보면 먼데 사는 별종의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직장 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예단에 목매는 잘못된 결혼 문화와 의식이 보통 사람들을 괴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6.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헤어진 남녀, 이유가…

공기업 과장 이철수(가명·40)씨와 중소기업 대리 강세미(가명·34)씨 커플은 2009년에 만나 2010년 결혼하고 2011년 이혼했다. 둘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다.

신랑 부모가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사주는 대신, 신부 부모가 현금 2억원을 예단으로 보냈다. 주위에선 "출발부터 강남에서 하니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안으로는 이미 상처가 곪고 있었다.

신부 부모가 차일피일 입금을 미룬 게 화근이었다. 신랑 부모는 "주기로 해놓고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느냐"고 며느리에게 짜증을 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신부 부모가 "안 준다는 것도 아닌데 왜 성화를 부리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신부 부모가 2억원을 송금한 뒤, 신랑 부모는 며느리 통장에 그 돈을 넣어줬다. 하지만 이 돈의 성격을 놓고 양가의 생각이 달랐다. 신부 부모는 "내 딸 생활비 하라고 준 돈"이라고 여겼고, 신랑 부모는 "내 아들 집 사줬다고 보내온 돈"이라는 입장이었다. 신랑 부모가 백화점 다녀온 며느리에게 "시장에서 장 보라"고 하자, 며느리는 "우리 부모님이 준 돈인데 웬 참견이냐"고 했다. 부부끼리 밥상에서 얼굴에 물을 끼얹고, 양가 부모가 전화로 언성을 높이다 결국 결혼한 지 만 1년도 안 돼 남남이 됐다.

우리나라 결혼문화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예단 이혼'이다. 대법원이 공개한 이혼 판례 가운데, 2010년 이후 예단 갈등이 직접적인 불씨가 되어 이혼한 사례 30건을 찾아 분석해 보았다. 두 가지 공통점이 두드러졌다.

 

◇결혼이 아니라 거래다

다 큰 자녀가 부모의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당사자가 아니라 양가 부모가 결혼의 중심이 됐다. 양가 부모가 주도권을 잡으면 자연히 '준 만큼 받아야겠다'는 심리가 강해진다. 결혼이 '혼(婚) 테크'가 되는 순간, 상대방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거래 당사자'로 보게 된다.

동갑내기 김우석(가명·34)·박서영(가명·34)씨 부부는 2005년 결혼해 2010년 이혼했다. 전문직 사위를 보는 대신 결혼식 비용 8000만원은 몽땅 신부 부모가 대고, 신접살림도 신부 부모가 가진 수도권 아파트에 차려주기로 했다. 신랑 부모가 "이와 별도로 내 아들에겐 비밀로 하고 현금 1억원을 예단으로 보내라"고 요구해 그것도 들어줬다.

하지만 '공짜'가 결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싸울 때마다 신부는 자기 부모에게 부부싸움 때 오간 말을 고스란히 일러바쳤다. 신부가 첫 애 낳은 기념으로 3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자, 신랑은 장모에게 "따님이 이런 가방을 사달라고 하니 반씩 돈을 내자"고 했다. 발끈한 장모가 "자네 부모님이 나한테 얼마를 받아갔는지 아느냐"고 따졌다. 이미 결혼은 파탄에 접어든 상태였다.

 

◇2명이 아니라 6명이 결혼한다

작년 10월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혼인신고도 안 하고 헤어진 회사원 이영수(가명·36)·김혜인(가명·34)씨는 '양가 부모의 싸움' 때문에 깨진 사례다.

신랑 부모가 2억5000만원을 들여 서울 강북에 전셋집을 구해주기로 했다. 신부 부모는 "금쪽같은 내 딸이 집 사오는 남자에게 시집 못 가는 것도 억울한데, 그나마 강북에 얻어준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예비 사위를 꾸짖었다. 신랑 부모가 무리해서 4억900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줬다.

이번엔 예단이 오갈 차례였다. 신랑 부모가 예비 며느리를 불러 "원하는 대로 강남에 집 얻어줬으니 그 집 채우는 건 네가 다 알아서 하라"면서 "살림살이 마련하는 것과 별도로 현금도 1억 준비하라"고 했다. 신부 부모가 발끈했다. "상견례 땐 아무것도 해올 필요 없다더니… 집 좀 얻어줬다고 유세한다"고 불평했다.

두 사람은 결국 결혼식 끝나고 보름도 안 돼 "그동안 쓴 돈 토해내라"며 맞소송을 냈다. 이처럼 결혼이 거래가 되면, 부모가 지원하는 액수가 클수록 부모의 입김이 세진다.

베테랑 변호사들은 "예단 때문에 갈등이 생겨도, 아직 한쪽 집안 부모만 알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서 "양가 부모가 모두 알게 되는 순간 '판사 앞으로 직진!'이 된다"고 했다.

 

 

7. 돈거래 '예단의 공식' 맞춰도 못 맞춰도 고통

명품백·밍크코트… 모델 찍어주며 노골적 요구

'공식' 따르다보면 결혼비용 천정부지로 올라

시댁 비위 거스를까봐 돈 쓰면서도 안절부절

결혼 당사자와는 상관없는 지출, 아깝고 괴롭다

 

지난 2009년 결혼한 서혜윤(가명·32)씨는 시댁에 보낸 예단을 생각하면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서씨는 시댁에 현금 1000만원과 시어머니 명품 가방, 이불·반상기·은수저 세트를 보냈다. 서씨 어머니는 사돈집에 보낼 예단을 준비하면서 "나도 애써서 자식 키웠는데, 결혼시킬 때가 되니 아들 가진 사람만 받고 딸 키운 사람은 주기만 하는구나" 라고 말했다.

서씨는 "집이나 살림살이와 달리, 예물·예단은 우리 부부와 상관없이 시댁만을 위한 지출"이라면서 "남자가 집을 마련하긴 하지만, 살림살이는 전부 여자가 마련하고, 예단도 여자 쪽만 남자에게 보낸다는 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2년 전 결혼한 김희선(가명·28)씨도 예단 때문에 앙금이 남아있다. 김씨는 신혼집을 구하느라 적금으로 부었던 2000만원을 보탰다. 집값을 보탰으니 예단은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가 남편을 통해 "그래도 예법인데 간소하게라도 예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이불 한 채와 현금 200만원을 예단으로 보냈다. 예단을 받아든 시어머니는 다시 한번 아들을 통해 "아무리 그래도 200만원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뜻을 전했다. 김씨는 "집값도 보탰는데 예단을 더 보내라고 하시니 화가 절로 나더라"며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예단은 더 못 드리겠다'고 쏘아붙였다가 크게 다퉜다"고 했다.

 

본지 취재팀이 만난 신부 중 많은 사람이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가 신부들에게 '평생 제일 좋을 때'라고 하지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들을 힘들게 만드는 원흉은 '예단'이었다. 요즘은 취업하는 나이도 늦고 취업도 어렵다. 모아둔 돈도 별로 없어 부모에게 기대야 하는데, 시댁 요구에 맞춰 예물과 예단을 준비하자니 아깝고 괴롭다는 하소연이었다. 집값이 오를수록 집값의 10~30%에 준하는 현금 예단의 규모도 따라서 커지고, 이에 더해 일부 시댁의 '명품 사랑'도 신부와 신부 가족의 허리를 휘게 한다.

 

혼주들도 마음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난 4월 딸을 시집보낸 김상철(58·자영업)씨 부부는 결혼을 앞두고 사돈댁에 예단으로 현금 3000만원과 이불, 반상기, 은수저 세트를 챙겨 보냈다. 김씨는 "집사람이 예단 준비를 하면서 집값의 몇 퍼센트인지 따지고, '사돈댁 기분 안 상하게 보내야 한다'고 동분서주하는 게 영 만만치 않더라"고 말했다.

 

이혼소송을 맡아본 변호사들은 "집 안 사왔다고 이혼하는 사람은 없지만, 예단 적게 왔다고 이혼하는 사람은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예단 갈등의 앙금은 오래 남는다. 예단비를 많이 주고받는다고 꼭 이런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10억 예단비 소송'이 그런 사례다.

이 부부도 출발은 남 부럽지 않았다. 신랑 A(32)씨의 부모가 신혼부부에게 서울 강남 한복판에 아파트를 사줬다. 그 보답으로 신부 B(31)씨의 부모가 사돈 집에 현금 10억원을 예단으로 보내고, 아파트 인테리어비로 4000만원을 썼다. 신랑 부모는 그중 2억원을 사돈에게 돌려보냈다.

하지만 부부는 매일 싸웠다. 유복한 집안 자녀들이지만, 주로 돈 때문에 다퉜다. 신혼여행 갔을 때 신부가 "우리 할머니 드리겠다"며 25만원짜리 화장품을 고르자 신랑이 "15만원짜리로 사라"고 했다. 신랑은 신부에게 "예단 많이 해왔다는 이유로 과소비한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면서 툭하면 "성형수술 하라"고 했다. 신랑·신부는 결혼 5개월 만에 각자 본가로 돌아가 소송을 냈다. 법원은 "신랑은 신부에게 8억원을 돌려주라"고 했다.

조희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교수는 "전통 혼례문화에서 예단과 예물은 '혼인에 오고 가는 예(禮)를 담은 것'이라는 의미로 상대방 가족에 대한 정성과 공경을 나타내던 것"이라며 "오늘날 이런 정신이 사라지고 대신 물건의 내용과 액수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혼례 준비가 물건과 가격의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

 

8. 결혼직전까지 말없다가 예단 5000만원 요구… 시부모와

결혼한 지 2년이 된 최희진(가명·30)씨는 남편에게 비밀로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결혼식 올리기 직전, 결혼을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최씨는 중매로 치과의사인 남편을 만났다. 서로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정할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예단 이야기가 나오자 얘기가 달라졌다.

시댁은 5000만원을 요구했다. '도대체 그 돈을 왜 내야 하나, 치과 의사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요구를 하나'라는 생각이 최씨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변에선 "결혼한다고 소문 다 났는데 이제 깨지면 여자만 손해"라는 사람도 있고, "전문직에 시집가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최씨와 최씨의 부모는 그냥 세태를 따르기로 했다. 700만원짜리 샤넬 가방을 사서, 현금과 수표로 1억원을 채운 뒤 시댁에 전했다. 절반은 돌려주는 게 관행이라기에, 시댁에서 요구한 금액의 두 배를 넣은 것이다. 실제로 시댁에선 5000만원을 돌려줬다.

그런데 반전은 그 뒤에 일어났다. 결혼한 뒤 남편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 보니, 최씨가 가장 예단을 적게 해간 사람이었다. 다른 부인들 중에는 "시부모와 신랑에게 외제차를 각각 한 대씩 총 세 대 뽑아줬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은 아예 신혼집을 친정에서 사줬다고 했다.

 

멀쩡하던 한의사 남편 주위서 예단 얘기 듣고 변해… "병원 차릴 돈 갖고와" 폭력

"실력 있는 한의사와 결혼해 평생 호강하게 됐잖아? 한방 병원 차리게 친정에서 180억원 가져와."

 

기업체 영양사 김모(39)씨가 세 살 위 한의사 남편에게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들은 말이다. 김씨는 귀를 의심했다. 공무원 집안 맏딸인 자신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 없다는 걸 남편도 잘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 뒤로도 툭하면 "내 친구 A는 처가에서 병원을 지어줬다" "내 친구 B는 예단으로 처가에서 ○○억원을 받았다"고 했다. 급기야 "너는 도대체 해 온 게 뭐냐"고 따지며 임신 6개월인 김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베개로 얼굴을 눌렀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김씨는 "남편이 사귈 때는 멀쩡했는데, 결혼하면서 하도 주위에서 '예단 뭐 받았느냐' 물으니 점점 이상해졌다"면서 "나처럼 극단적인 일을 겪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예단의 '예'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했다.

 

4400만원짜리 반상기(왼쪽)와 3000만원 넘는 악어가죽 핸드백. 서울 강남 고급 백화점에서“고객들이 많이 찾는 제품”이라면서 보여준 혼인예물들이다. /TV조선 제공 김씨의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예단은 결혼하는 예비 부부는 물론 양가(兩家)에 부담을 주고, 갈등을 일으켜 결혼을 깨뜨리기까지 한다. 관행으로 굳어져 온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짚고 넘어갈 때가 됐다. '고발의 달인' 강용석(43) 전 의원이 30일 밤 11시 TV조선(채널 19) 시사고발프로그램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에서 대한민국 신혼부부와 혼주들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는 예단 문제를 발가벗긴다.

 

강용석 전 의원은 서울 강남의 고급 예식장과 명품 매장을 돌며 결혼하는 데 얼마나 돈이 드나 취재를 했다. 수많은 업자가 "예단 값만 5000만원에서 1억원 하는 게 요즘 평균"이라고 했다. A 백화점 명품매장 직원들은 4400만원짜리 반상기와 3160만원짜리 악어가죽 핸드백을 내밀며 "이 정도는 해야 기본이죠"라고 했다.

 

 

 

조심스런 의견 둘

 

1. 가장 쉽고도 정확한 해결방안의 열쇠는 신랑에게 있다.

진정으로 신부를 사랑한다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소중한 사람이라면, 신랑은 신부측 경제사정을 잘 파악하여 자신의 부모를 먼저 설득하여야 한다. 신부측에서 힘들어하는 예단문제를 부모와 상의하여 설득할 능력도 없는 청년이라면 남편으로도, 사윗감으로도 이미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요?

 

2. 예단은 허례허식이다. 호텔결혼식보다도 더 허례허식이다. 아예 없어지면 바람직한 것이다.

예단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사실상 예단은 허례허식입니다. 결혼 자체를 두 사람간의 신성한 결합이라는 전제 아래 합리적이고 실속 있게 치른다면 예단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간소한 결혼 준비와 알뜰한 살림장만을 하는 며느리에게 호화 예단을 요구하는 시부모님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신랑 자신이 무리한 예단을 요구하거나, 그런 부모님이라면, 그런 부모를 설득하지 못하는 신랑이라면 결혼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일부 졸부 부모들이나 명품만 찾는 일부 젊은이들이나, <사>자 직업 가졌다고 우쭐거리며 신부집을 돈줄로 여기는 일부 청년들이나, 부잣집에서 살아와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부 졸부 딸들은 문제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8. 호화결혼 조장 이바지·폐백

 

지방에 사는 주부 박정미(가명·53)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딸(31)을 시집보내며 서울 시댁에 400만원이 넘는 이바지 음식을 보냈다.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 업체는 서울 강남에 있는 A가게. 시부모가 "신부를 보려고 친척들도 오시니까, 이바지 음식을 제대로 해오면 좋겠다"며 직접 전화번호를 알려준 업체였다.

박씨는 이바지 음식 주문하려고 서울까지 가야 할지 고민했다. 전화로 상담하니, 업체 직원이 갈비찜·삼색단자·전복찜·대하찜·쇠고기안심편채·밑반찬 5종·인삼정과·과일 바구니로 이루어진 '기본 세트'를 추천했다. 전복찜(15미)은 55만원, 모둠전은 50만원이나 했다. 박씨는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사돈이 원하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화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고가(高價) 이바지는 일부 잘사는 계층의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바지 문화는 중산층과 일부 서민층에도 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층과 사회 지도층부터 거품이 잔뜩 낀 이바지 문화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게만 강남… 내용물은 다른 데서 만든다

본지 취재 결과 강남에서 유명한 집으로 소문난 곳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는 재래시장 음식을 사다가 포장만 바꿔 파는 경우가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직원들에게 사복(私服)을 입혀 서울 시내 이바지·폐백 음식점 90곳의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에 참여했던 서울시 직원(44)은 "가게에 가서 '예비 신부 이모'라고 고객 행세를 하자, 직원들이 '혼례는 일생에 한 번 하는 건데, 좋은 걸로 하라'며 '친정어머니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어 정직하게 판다'고 했다"면서 "나중에 보니 전부 사탕발림이었다"고 했다. 상당수 업체가 영세 업체에서 만든 음식을 가져와 포장만 으리으리하게 바꿔서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수입산 재료를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조사팀이 "왜 유통기한·원산지·가격 표시가 없느냐"고 묻자, 직원들은 "시댁에 보낼 음식에 그런 거 붙여서 보내는 사람도 있느냐. 국내산 재료로 만드니 안심하라"고 했다. 이후 조사팀이 창고를 급습해보니 마른오징어 등 음식 재료가 들어 있는 종이 상자에 '중국산'이 찍혀 있었다. 또한 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난 재료로 떡을 만들어 판 업체가 있는가 하면, 전화·인터넷상으로는 서로 다른 가게인데 알고 보면 한 업체인 경우도 있었다.

조사관들이 "동대문구에 있는 가게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왜 인터넷 사이트에는 강남 주소를 써놓았느냐"고 추궁하자, 업체 주인이 "공교롭게도 마침 주소를 이전하는 단계"라고 얼버무렸다. 당시 실태조사를 총괄했던 강석원 조사 담당관은 "'41년 경력의 요리사' 'TV 방송 출연' 등의 허위 문구로 소비자를 현혹하면서 실제로는 건강진단도 받지 않은 직원 2~4명이 가내 작업 수준으로 작업하는 곳까지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는 조리시설 안에 애완견이 뛰어다니는 곳을 포함해 90곳 중 10곳의 주인을 형사입건했다.

 

◇원가는 10만원도 안 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취재팀은 국내 최대 웨딩 서비스 네트워크(예물·예단 전문점들이 가입한 회사) '아이웨딩'의 추천으로 서울 강남에서 10년 이상 영업해온 베테랑 업주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바지·폐백 음식은 먹으려고 하는 음식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음식"이라며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안 하면 시어머니한테 욕먹는다'고 권하면 불안해서라도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업체 중에는 시장에서 10마리에 2만~3만원 하는 마른오징어로 '오징어 닭(마른오징어로 닭 모양을 만든 것)'을 만든 뒤 35만원을 받는 곳도 있었다. 곶감 7개로 '곶감 오림(곶감으로 꽃 모양을 만든 것)'을 만든 뒤 15만원 받기도 했다. 또 "시할머니가 계시면 구절판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꾸 메뉴를 추가하라고 부추겼다. 구절판 10인분 추가하는데 30만원을 받았다.

 

☞이바지

신부가 신랑 집에 예단으로 가져가는 음식이다. '잔치하다'라는 뜻의 '이받다'에서 유래했다. 신랑 집에서 결혼식 손님들을 대접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뜻에서 신부 어머니가 만들어 보냈다. 이바지에는 과거 얼굴도 안 보고 혼례를 하던 시절 '신부는 이런 음식들을 먹고 자랐습니다'라는 뜻도 담겼다.

 

 

 

9. 10인분 250만원" 이라는 결혼 이바지 음식

●현실과 맞지 않는 풍습·체면·상술이 거품 만들어

●문어찜 5㎏에 30만원, 전복찜 15미(尾·전복을 세는 단위)에 55만원, 한우 갈비찜 15근에 65만원, 모듬전 세트 50만원, 삼색단자 8㎏에 30만원….

 

본지 취재팀이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이바지 가게 3곳을 방문해 확인한 가격이다. 강남에 있는 한 이바지 가게 직원은 기자가 이바지 비용을 묻자 "시댁 손님은 몇 분 정도냐"고 물었다. "10명 정도"라고 했더니 250만원 정도의 이바지 음식 세트를 추천했다. 1인당 25만원에 달하는 가격, 서울 특급 호텔 코스 요리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시중 가격으로 문어는 5㎏에 8만원, 전복은 15미에 6만원 정도다.

강북에 있는 이바지 가게는 "기본적으로 8가지는 준비해 간다"며 떡·전유어·갈비찜·해물꽂이·냉채·과일·국수·밑반찬으로 구성된 세트를 추천해줬다. 가장 작은 단위(10인분)의 가격이 265만원이었다.

이바지는 신혼부부가 신혼여행 마치고 신랑 본가에 인사하러 갈 때 신부 집에서 보내는 음식이다. 조희선 성균관대 교수는 "이바지는 먼 고장 사람들끼리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던 시절의 풍습인 만큼 요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면서 "'값비싼 음식을 보내는 게 예의'라는 업체들 말은 근거도 없는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시장 전문가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바지 음식은 꼭 필요하고, 되도록 번듯하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면서 "결혼 비용을 평균 이상 쓴 사람들일수록 '이바지 음식=체면'이라고 생각해 도를 넘은 비용을 지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10. 예단·예물 하지말자 한마음… 식당서 결혼식 아낀 결혼비

     용 2000만원은 구호단체에 기부

●검소한 예식 치르고 선행한 9급 공무원

●청첩장 손으로 직접 쓰고 턱시도·드레스도 안 입어

●호텔보다 맛있는 식당 찾아 가까운 사이 190명만 초대

●"돈 없냐" 물었던 하객들도 식장서 사연 듣고 "장하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직원 게시판에 '우리 부(部)에 놀라운 신랑·신부가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검소한 결혼식을 올리고 차 한 대 뽑을 돈을 아껴서 봉사단체에 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고용노동부 인천북부지청에 근무하는 2년차 9급 공무원 이훈(33)씨. 그는 7년간 연애한 신부 이지은(32)씨와 지난달 결혼하면서 양가 부모를 설득해 예물·예단을 생략했다. 전셋집(109㎡) 구할 돈 1억6000만원과 결혼식 비용 1000만원은 양가가 공평하게 분담했다. 공무원 시험에 늦게 붙어 아직 500만원밖에 못 모은 신랑을 위해 신랑 부모가 8000만원을 지원했다. 신부는 직장 다니면서 모은 돈 8500만원을 보탰다. 신부 부모는 "무남독녀가 시집가는데 어떻게 한 푼도 안 내느냐"고 했지만 신부가 "키워준 것만도 고맙다"고 사양했다.

이훈·이지은씨는 맛집으로 소문난 인천의 한 해산물 뷔페로 결혼식 장소를 정했다. 가까운 친척과 정말 친한 사람 190명만 초대하기로 했다. 청첩장을 인쇄해서 돌리는 대신 신부가 손 글씨로 한 장 한 장 초대장을 썼다.

예물·예단을 생략하고 작은 결혼식을 올린 이훈·이지은씨 부부. 부부는 아낀 결혼비용 2000만원을 봉사단체에 기부해 이훈씨가 근무하는 고용노동부에서 화제가 됐다. /이훈씨 제공 결혼식 당일 부부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신랑은 할인 매장에서 산 17만원짜리 양복을 입고, 신부는 평소 입던 옷 중 제일 예쁜 정장을 꺼내 입었다. 대형 스크린에 부부 사진을 띄워놓은 뒤 신혼부부가 직접 하객들에게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이라고 양가 부모를 소개했다.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고,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줬다. 신랑이 감동에 겨워 펑펑 우는 바람에 신부 혼자 마이크를 쥐고 '마무리'했다.

"여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식당에서 결혼식 하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분들이 계실 텐데, 호텔보다 맛있는 곳을 찾아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결혼비용 아낀 돈 2000만원을 아프리카 어린이 돕는 단체에 기부했어요."

신부는 대학 시절부터 쌈짓돈을 기부해왔다. '당신이 생일을 포기하면 어려운 아이들이 더 많은 생일을 가질 수 있다'는 봉사정신을 실천해온 것이다. 신부는 "결혼식 비용을 아낀 돈으로 좋은 일을 하면 평생 추억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신랑은 "남들과 다르게 결혼한다니까 주위 분들이 '식당에서 결혼한다고? 돈이 없니?' '웨딩드레스 안 입는다고? 혹시 배가 불렀니?' 하고 물으시더라"면서 "결혼식 날 '정말 장하다'고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했다.

 

양가 부모도 식이 끝난 뒤 눈물을 글썽거렸다. 신랑 부모는 "청첩장도 안 찍지, 물건도 안 사지, 예복도 안 맞추지…. 너희가 알아서 한다기에 맡기기는 했지만 '정말 잘하고 있나' 불안해서 사흘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 동료가 고용노동부 게시판에 글을 띄우면서 부부의 사연이 소문났다. 순식간에 댓글 200여개가 달렸다. '5년 전 결혼했는데, 이런 실천은 생각도 못했기에 부끄럽다'는 글도 있고,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내용도 올라왔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도 '가족이 나눠주는 행복 바이러스가 감동입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11. 나한테 안받은 사돈처럼, 나도 안받아… 예단 생략 릴레이

 

●악습 끊은 현정자·손추자씨… "남들 한다고 따라하면 잘못된 결혼문화 못 바꿉니다"

●예단 할 돈 아껴서 나중에 집 살 때 보태주자고 해 "좋은 사돈 만나 복받았다"

●며느리도 내 딸과 같은데 예단으로 고생시킬 일 있나

 

서울 광화문의 한식당에 신랑·신부·양가 혼주 등 여섯 명이 모였다. 상견례 자리였다. 신부 어머니는 내심 "저쪽은 막내아들이지만 우리 집은 맏딸이고 개혼(開婚)이니까, 사돈이 예단을 번듯하게 해오라고 하시면 최대한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신랑 어머니에게 "혼수나 예단은 어느 정도로 해 드리면 실례가 되지 않겠느냐"고 솔직하게 물어봤다. 신랑 어머니는 단호하게 "다 필요 없다"고 했다. "그냥 다 생략합시다. 한복도 각자 사 입고 결혼식장에서 봅시다."

이듬해(2006년) 1월, 신랑·신부는 정말로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고 결혼식을 올렸다. 젊은 부부는 두 사람 저축으로 8000만원짜리 전셋집을 마련하고, 친정어머니가 쓰던 그릇을 물려받았다.

빌트인 가구가 많은 집이라, 새로 산 물건이라곤 100만원 짜리 TV 한 대, 500만원 짜리 침대가 전부였다. 2006년 1월 결혼한 곽종호(42·회사원)·박주희(34·시민단체 근무)씨 부부 이야기다.

 

◇신랑 어머니의 실천에서 시작된 릴레이

신부 어머니 손추자(61)씨는 "솔직히 결혼 준비하면서 내내 '예의로 사양하시는 것 아닐까'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랑 어머니 현정자(72)씨는 진심이었다. 현씨에게는 남들 다 받는 예단을 '나만은 받지 말자'고 굳게 결심할 만한 사연이 있었다.

"20년 전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낼 때 예단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딸이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이불부터 가구, 반지, 음식까지 다 해줘야 했어요. 12평짜리 전셋집에 집어넣을 7자 장롱을 맞추면서 '이게 그 집에 왜 필요한가. 이런 풍습은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본전' 생각하면 영영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될 테니, 나부터 며느리 볼 때 악습을 끊자고 별렀지요."

아들 가진 어머니가 “예단 안 받겠다”고 했다. 딸 가진 어머니가 고맙게 여기다가, 나중에 자기 아들 장가보낼 때 자기도 예단을 사양했다.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신랑 어머니 현정자(왼쪽)씨와 신부 어머니 손추자씨가 손녀 민지양을 가운데 두고 활짝 웃고 있다. 신부 어머니 손씨는 "너무나 뜻밖이라 몇 번이나 '정말이시냐'고 뜻을 확인했다"면서 "사돈의 진심을 느낀 뒤, 마음속으로 '좋은 사돈 만나 복(福) 받았으니, 나도 이 복을 남에게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 결심을 실천할 기회가 1년 만에 찾아왔다. 곽씨 부부가 결혼한 지 1년 뒤에, 이번에는 신부의 오빠가 결혼할 여자를 데려온 것이다. 손씨는 예비 사돈을 향해 "딸 시집보낼 때 아무것도 안 보낸 사람이 아들 장가간다고 예단을 받으면 되겠느냐"면서 "예단 보내지 마시라"고 했다.

 

◇"무조건 남들 따라 하면 결혼문화 못 바꿔"

8일 서울에서 만난 두 어머니는 "모두가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결혼문화가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신랑 어머니 현씨는 "내가 일제 강점기, 6·25전쟁, IMF 외환위기까지 인생의 위기만 세 번을 겪었는데, 전쟁통에 세간이 불타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고 사는 법을 배웠다"면서 "막내아들 장가보내기에 앞서 큰아들 결혼시킬 때도(1996년) 며느리가 '밍크코트 해준다'고 하기에 '삼한사온 날씨에 밍크코트가 왜 필요하냐'고 말렸다"고 했다.

"그리고 저만 '안 하겠다'고 마음먹어서 된 일도 아닙니다. 며느리도 '보석은 별로 안 좋아한다'며 예물 욕심 안 냈고, 아들도 '집 한 채 해 달라'고 손 벌리지 않았습니다. 사돈도 검소한 걸 좋아하셔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없는 예단 없는 결혼식이 된 것이지요."

신부 어머니 손씨는 "남들은 사돈끼리 상견례 때 한 번, 결혼식 때 한 번, 애 낳을 때 한 번 만나고 평소엔 남남처럼 산다고 하지만, 나는 무공해 산나물 같은 귀한 음식이 생기면 맨 먼저 사돈이 생각나 얼른 선물로 보낸다"면서 "명절 때도 자식들 통하지 않고 우리끼리 안부 전화를 주고 받는다"고 했다.

두 어머니를 모시고 온 신랑·신부는 "주위 친구들 결혼하는 걸 보면서 양가 어머니가 새삼 훌륭하게 느껴져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신랑 곽씨는 "어머니가 예단만 안 받으신 게 아니라, 우리에겐 아무 말 없이 본인 돈으로 친척들에게 20만원씩 보내며 '며느리 잘 봐 달라'고 하셨다는 걸 뒤늦게 알고 감동했다"고 했다.

신부 박씨는 "나보다 늦게 결혼하는 친구들이 '예단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을 때 '아무것도 안 보내고 집값은 양가가 분담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며 부러워한다"고 했다.

 

12. 두 딸 결혼시키며 두 원칙 지켰다

 

NO 혼수, NO 하우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약속

 

●나도 큰아버지 주례로 작은 결혼 - 큰딸 보낼 땐 양가 부모만 참석

●교회 본당서 결혼한 누나 보고 아들은 소예배실서 한다더라

●부모가 집? 외국선 신문에 날 일 - 첫째 딸은 월세로 시작하고

●둘째 딸은 본인 힘으로 전세… 요란한 결혼, 벼락부자들 문화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캠페인에서 제시하는 검소하고 작은 결혼식으로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사회 지도층부터 이런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010년 5월 중순 하루 휴가를 내고 부인과 함께 미국에 갔다가 2박3일 만에 돌아왔다. 공단 측에는 "집안일이 있다"고만 했다.

 

주말 동안 전 이사장 부부는 첫째 딸 은경(31)씨 결혼식에 참석했다. 은경씨는 미국 시카고 교외 조그만 교회에서 양가 부모님만 참석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반주는 음악을 전공한 전 이사장 안사돈이 맡았다. 전 이사장은 "미국에 따라가겠다"던 한국에 있는 친척들조차 말렸다.

 

전 이사장은 공직(금융위원회 위원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던 2009년 둘째 딸 희경(30)씨의 결혼식도 서울의 한 교회에서 가족·친척·교회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렀다.

 

"아무 데도 안 알렸더니 나중에 서운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래도 서운하다는 얘기 듣는 것이 불편한 부담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알리면 우리나라 제일 '큰손'들이 연결될 때가 너무 많으니까요."

 

자산 38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공단을 이끌고 있는 전 이사장은 과거 세계은행 등에 근무하며 23년간 해외 생활을 했다. 그는 "20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본 것 중에 결혼 문화가 가장 많이 변했고 외국과 차이 나더라"고 했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 근무 때 세계 각국을 방문했다. 요란스러운 결혼은 후진국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였다고 그는 말했다. "인도의 철강 부호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빌려 딸 결혼 리셉션(축하연)을 하고, 이집트 상류층이 호화롭게 결혼하는 걸 봤지요.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그런 요란스러운 결혼을 본 적이 없어요. 한국 와서 우리 결혼 문화를 보고 '아 나라는 발전했는데, 이 문화는 오히려 퇴보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전 이사장은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가치보다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쪽으로만 관심이 너무 많이 간 것 같다"고 했다. 뿌리 깊은 가문과 벼락부자 된 가정의 문화 차이를 이에 비유했다. 그는 "현재 결혼 문화는 우리가 품격 있는 사회, 선진 문화로 가는 과정에서 꼭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전 이사장은 "결혼식에 많이 가지만 끝까지 지켜보거나 밥을 먹고 온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사회 양극화가 심한 때일수록 사회 지도층, 여유가 있는 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전광우 이사장 부부가 2010년 5월 미국 시카고 교외의 조그만 교회에서 열린 첫째 딸 은경씨의 결혼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양가 부모만 참석한 ‘작은 결혼식’이었다. /전광우 이사장 제공 전 이사장은 두 딸을 결혼시킬 때 '두 가지 노(No)' 원칙을 지켰다. 하나는 "혼수는 없다"였고, 또 하나는 "부모가 집값 대주는 일 없다" 였다. '노 혼수, 노 하우스' 원칙이었다.

 

해외에서 오래 자란 자녀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돈들도 동감했다. 현재 전 이사장 첫째 딸 부부는 미국에서 렌트(월세)로 살고 있고 둘째 딸 부부는 자기 힘으로 마련한 서울 강북 전셋집에 산다. 그는 "외국에서는 대게 본인이 벌어서 다달이 집세 내고 조금씩 저축해 종잣돈이 모이면 집을 사고, 여유가 있는 집 자식들도 스스로 자립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며 "부모가 집 사주고 이런 건 어디 신문에나 날 일"이라고 했다.

 

그는 "27세 막내아들도 당연히 첫째·둘째 딸처럼 가족들끼리만 모여 축하하는 작은 결혼식을 시키겠다"고 했다. 아들 스스로도 "누나(전 이사장의 둘째 딸)는 교회 본당에서 했지만 나에겐 본당도 크다. 교회 소예배실에서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 전 이사장은 미국 유학 시절 만난 부인(하정화씨)과 1980년 결혼할 때 가족·친지 중심으로 작은 결혼식을 했고, 큰아버님이 주례를 섰다. 전 이사장도 만 30개월 된 외손주의 주례를 서는 것이 꿈이다.

 

 

 

나의 실천기 소개(이쁜 딸 결혼)

 

상견례

한 달 후 상견례를 하게 되어 준호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경기도 출신이신 두 분은 대학을 나오시고 현재 서울에서 사시면서 두 분이 각기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저보다는 오년 연하이신 준호 부모님께 나는 과감하게 제안을 드렸습니다.

“저는 실용주의자입니다. 그래서 허례허식을 아주 싫어합니다.

첫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예단과 예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정한 돈을 드리고 그 중 다시 절반을 돌려받는 어이없는 마치 매매혼 같은 행위(예단)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귀금속 예물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우리 승원이에게 예물이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예단의 병폐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지는 못하지만, 저 자신만큼은 반드시 실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물은 준호와 승원이가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징표를 삼고 싶어 마련하는 정도로 따르기만 하고 싶습니다.

둘째는 결혼식준비와 결혼 후 두 사람이 살게 될 살림도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두 사람이 결정하며 양가 부모는 비용만 제공하는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셋째, 두 아이가 공부하는 과정이니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여 뜻하는 바를 이루어 당당한 직업(교수)가 되면 세상을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경제력은 당연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 양가에서는 큰돈을 들여 치르는 화려하고 빛나는 결혼식보다는, 추후 두 아이가 계속 공부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일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의 제안을 두 분은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결혼준비

신부집에서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조심스레 신랑집에 예단으로 돈을 보내면 절반을 도로 신부집에 보낸다는 참으로 터무니없고 어이도 없는 예단은 나를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신랑집에서 아들 장가간다고 친척들에게 선물을 돌리며 무슨 자랑할 일 있나요? 신랑집에서 신부에게 수백만원내지 수 천만원을 들여 다이아 반지를 하느니, 신랑에게 수 백만 원짜리 시계를 사준다느니 하는 예물도 나에게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요즈음 차지도 않는 비싼 시계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살아가면서 예쁜 귀금속 악세사리를 하나씩 구입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모르는 때문이지요. 경제가 넉넉해서 마음껏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야 호텔에서 결혼식하고 비싼 선물하며 실컷 자랑하고 비싼 가구 마음껏 구입해도 되겠지만 우리네 서민들은 그러면 안되는 거지요. 부모님들을 너무 힘들게 해서도 안 되지만 설령 신랑신부 본인들이 벌어놓은 돈이라 해도 허례허식하면 안 되지 않나요?

◯예단 : 일체 거론하지 않게 되어 저의 역사에 하나의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습니다.

◯예물 : 두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가벼운 기념반지 정도는 할 줄 았았더니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하고 싶지 않고 또 사용하지도 않을 시계 같은 건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폐백 : 이미 우리 승원이는 시댁의 어른들과 사촌들까지도 함께 식사도하고 인사를 마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폐백은 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신혼집 : 요즈음 풍속은 대체적으로 신랑집에서 아파트를 장만하면 신부집에서 그 평수에 맞게 일체의 살림가구를 장만하여 간다고 합니다.

신혼집은 신랑과 신부가 그동안 저축한 돈과, 양가의 경제력이 허용하는 선에서 보조해 주는 돈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신랑과 신부가 각자 마련한 살림도구들을 모으고 부족한 것만 구입하여 신혼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왔습니다.

전격 발표된 결혼인지라 준호집에서 미처 집 마련 준비가 되지 않았으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퇴직하면서 마련한 작은 오피스 텔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꼼꼼한 우리 승원이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시며 건축업을 하시는 준호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리모델링을 책임지고 해주셨습니다. 정사장님과 채여사님의 며느리 사랑이 대단하십니다.

◯결혼식장 : 나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대형예식장 결혼식을 아주 싫어합니다. 우선 차를 주차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또 대부분의 하객들이 결혼식을 보면서 축하하지 않고 혼주에게 인사하고 축의금만 내고 가버리거나 아니면 식사만 하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하는 결혼식이 가장 부러웠고 교회나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식 결혼식도 매우 좋게 보아왔습니다. 성스러운 결혼식을 하면서 장난치는 모습들은 보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정중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결혼식이 좋습니다. 우리는 양가 모두 특정 종교가 없으므로 당연 대학에서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재작년에 친구인 현수의 딸과 조카인 수빈이가 서울대에서 결혼식을 치른 바 있습니다. 나는 참석지 못했으나 친구인 송지사 큰 아들도 역시 서울대에서 치렀습니다. 서울대에 있는 네 군데의 결혼식장중 가장 멋진 예식장인 엔지니어하우스 라쿠치나로 결정되었습니다. 시간은 지방에서 축하객들이 비교적 여유롭게 다녀가시는데 가장 편안한 방법이 오후 예식이므로 자연스럽게 오후 5시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객 초대

나로서는 처음 치르는 大事입니다. 지금까지 40여년 간 우리 두 사람이 정말 많은 애경사에 다녀오고 축의금과 부의금을 내며 살아왔지만, 우리가 치르는 대사는 은퇴한 오늘의 시점에 맞추어 보다 신중하게 하객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그동안 상대의 애경사에 적어도 1회 이상 참석하였거나 축의금, 부의금을 보내드린 사람

둘째, 친인척(본가와 처가의 형제자매 및 조카 그리고 사촌이내, 시제를 함께 하는 8촌 이내 집안)

셋째, 현재 각종 모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동안 함께 근무했으나 잘 만나지 못하는 교사 및 관리직 동료들은 거의 제외했습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동창회장을 맡고 있으나 애경사를 주고받은 친구들로 한정하였습니다. 앞으로 애경사 주고받는 사람들을 축소시키고 싶어서입니다. 그래도 예상외로 많은 지인들에게 모바일 초대장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초대장의 사진은 다른 사람들처럼 예복을 입고 웨딩촬영을 하지 않고 서울의 우리 작은 아파트 주변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복을 입고 찍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이하며 멋있다는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혼사가 이루어지므로 식장에 참석하는 친척 및 지인들을 모시는 버스를 대절하고 가시는 분들을 정해야 합니다. 일체 누구에게도 함께 가주시라는 부탁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무려 70분이 두 대의 버스로 상경하여 주셨습니다. 친척은 14명이어서 56명은 우리 두 사람의 지인들입니다. 특히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해우회원들은 전 회원과 여러 사모님들까지 참석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하루를 소비하며 서울까지 상경해주시는 일은 대단히 지난한 일입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을 위한 최고의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는 전날 상경하므로 1호차(가족 친척 동창회 기타 나의 지인들)는 유지득 교육장이 반장을 맡고, 2호차(모임회원들 및 양선생 지인들)는 김호길 교감이 반장이 되어 애써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은정표 교장선생님과 내가 좋아하는 후배인 조병호 전북학생해양수련원장님, 이재호 익산문화원장님. 이당 송현숙 선생님께서도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이당선생님은 서울 결혼식장에 가면서 그처럼 질서 있고 조용한 버스분위기는 처음이라며

??역시 교육자들이구나?라고 생각되었어요.?라 하시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결혼식

결혼식장에 신부 측 축하화환이 두 개가 섰습니다. 하나는 조병호 원장이 보낸것이고 또 하나는 고등학교 서울동창회장인 최인호 회장이 보낸 것입니다. 나는 화환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인데(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결혼식장 화환문화가 거의 없다.) 체면을 세워준(?) 두 사람이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측 손님이 무려 180명이 오셨습니다. 상견례 때만 해도 나는 60여명으로 말씀드렸고 이후 80여명까지 예상했습니다만, 점점 버스 상경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최대 130여명까지 늘려 잡았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제가 세상을 꽤나 잘 산 듯싶습니다.

대략 친척들 50여명, 나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창들 40여명, 나의 지인들 40여명, 양드리 지인과 친구들 20여명 승원이 친구들 25명. 제 오빠 친구들 5명입니다. 정권영 교장님, 신기섭 선생님, 최병은 선생님 부부, 김예원 교장선생님 부부는 예고 없이 축하객으로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의 고등학교친구들은 내가 평소에 애경사를 잘 챙기지도 못하는데 명색이 회장이라고 많이들 와주어서 고맙기가 짝이 없습니다.

미리 결정된대로 나와 정사장님이 촛불을 밝혔습니다. 아빠들이 촛불 밝히는 것은 나도 처음입니다. 사회는 준호군의 지인인 여성 아나운서가 봅니다. 여성사회자는 또 처음입니다. 그리고 준호와 승원이가 손을 잡고 입장했습니다. 나는 결혼하여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도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내 딸이므로 아빠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사위에게 넘겨주는 형식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요즈음 가끔씩 보이는 장면입니다. 주례는 정준호를 지도하시는 서울의대 김옥주 교수께서 해주셨습니다. 준호를 아들처럼 사랑하시고 우리 승원이까지 딸처럼 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여성주례는 거의 보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들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엄마들이 연출하였습니다. 양드리가 시적 형태로 먼저 쓰고, 채여사님의 의견을 보충하여 완성된 글을 두 사람이 교차하며 읽었습니다. 후일 대단한 찬사를 많이도 받았습니다. 축가는 서울음대 졸업생들로 보이는 남성4중창단이 해 주었습니다. 결혼식 내내 두 사람은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과 행동으로 마냥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승원이의 예쁘고 의젓하고 지성적인 모습과 미소에 아빠인 나도 반했습니다. 상식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결혼식에 참석자들이 놀라움을 표시하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한 결혼식이었습니다.

 

 

이러니 다들 결혼을 안 하지···진짜 ''소리 나는 준비 비용 무려

 

서울경제 남윤정 기자 2024. 2. 2

 

 

우리나라 결혼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결혼을 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부담을 꼽는데 결혼에 필요한 비용은 얼마일까?

2일 가연결혼정보는 기혼자 1000(결혼 1~5년차)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해 '2024 결혼비용 리포트'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본격적인 결혼 준비 시작인 상견례부터 신혼집, 혼수, 예단, 예물, 스드메, 예식장, 이바지, 답례품, 신혼여행까지 총 10개 항목으로 구분해 소요 비용을 조사했다.

총 결혼 비용 평균은 약 3474만원으로 응답자 중 남성은 32736만원, 여성은 28643만원으로 집계됐다.

먼저 상견례에 드는 비용은 식사, 선물 등으로 평균 87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결혼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혼집은 24176만원으로 전체 약 79%에 달했다. 응답자들 중 부모와 함께 거주하거나, 사택·관사 등을 제공받은 경우는 0원으로 표기했다.

혼수용품 지출은 평균 2615만원으로, 응답은 각자 사용하던 것을 합해 비용이 들지 않은 0원부터 최대 5억원까지 확인됐다.

예단은 566만원, 예물은 530만원이었고 일명 '스드메'로 불리는 스튜디오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는 평균 479만원이었다. 예식장 비용은 평균 990만원으로 회사 또는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예식장부터 호텔 예식장까지, 0원부터 1억원 이상의 폭 넓은 답변이 나왔다.

예단과 예물은 40대 그룹의 예산이 가장 높았고 스드메 패키지는 20(538만원), 30(453만원), 40(398만원) , 예식장은 20(1077만원), 30(976만원), 40(688만원) 순으로 모두 20대 그룹의 평균 예산이 가장 높았다.

연령이 낮을수록 결혼식에서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이바지 음식은 평균 170만원, 답례품은 평균 117만원으로 집계됐다. 예식장에 포함된 것으로 진행하거나 별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답변들도 있었다. 신혼여행은 평균 744만원이었다. 국내외 여행 장소에 따라 편차를 보였으며, 코로나 시기에 맞물려 아직 가지 못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강은선 가연 커플매니저는 "예전에는 몇 가지만 준비돼도 결혼을 했다면, 요즘은 많은 것을 갖춘 후에 결혼하려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 때문에 결혼 의향이 있어도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비용은 어디까지나 평균치일 뿐, 실제로 신혼집과 혼수, 예식장 등에서 큰 지출 없이 진행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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