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박제가-궁핍한 날의 벗

청담(靑潭) 2013. 6. 20. 16:26

 

 

궁핍한 날의 벗

박제가(1750-1805)

  사랑하는 나의 딸이 생일 선물로 태학사에서 출간한 태학산문선 여섯권을 보내왔다. 진즉에 아빠가 관심이 큰 조선 산문집이 발행된 게 있다더니 바로 이 책들이다. 모두 19권이 있는데 제1권이 바로 박제가의 산문집이고 역자는 뛰어나게 글을 잘 쓰는 안대회 교수이다.

  내가 역사교사로서 으레 조선후기 실학을 가르치는 단원에서 박제가에 대해 가르칠 때에 기껏 교과서에 실려 있는 박제가의 저서인 북학의를 소개하거나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만다. 북학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박제가의 강렬한 개혁정신을 가르치지 못한다. 입시위주의 수업방식이라 시간이 허락하지도 않거니와(이수광 유형원 이익 박지원 홍대용 이덕무 정약용등 너무나 많은 실학자들이 소개되므로)사실 박제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니 그 정신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역사교사가 왜 모르냐고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북학의를 제대로 정독하지도, 박제가에 대한 책을 깊이 있게 읽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교사용 참고자료를 읽고 백과사전을 찾고 인터넷에서 찾아 학생들에게 안내하면 되는 입시위주의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수업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수업혁신은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죽은 수업이 아닌 산 수업으로, 형식적이 아닌 실용적인 수업으로의 대변화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오늘 박제가의 산문집을 읽고 박제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개혁책의 핵심은 무엇인지, 나라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특히 그가 쓴 산문집(수필집)이기에 박제가란 인간에 대해 매우 잘 알게 된 느낌이다. 역사교사로서 너무나 안일하고 나태하고 지식이 부족했었음을 부끄러워하면서 모름지기 역사교사는 선인들의 수많은 저서들의 국역화가 이미 진행되었으므로 우리 역사에 대한 많은 책들을 읽어 실력을 갖추며 당당하고 자신있게 가르쳐야 한다. 역사교사라면 시대를 넘나들고 공간을 뛰어넘어 참 진리를 추구하며 박제가처럼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참지성인이 되어야 함을 이제라도 자각하고 반성하는 바이다.

 

  오늘날 대다수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이 도도히 흐르는 21세기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역사창조의 의식은 나 몰라라 하면서, 20세기 낡은 양극화 대립과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갈등구조의 이념과 사상의 노예가 되어 그로부터 도무지 탈출하지 못한다.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선동되어진 역사적 진실들이 밝혀져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책임지려는 자세도 보이지 않고 오직 20대 대학시절 민주화투쟁을 겪으면서 지배하던 시기에 배운 이제는 낡아버린 이념과 논리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 한 채 친일파를 찾아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해야한다느니,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도 지배하는 미국이라며 광우병 투쟁과 유독 한미FTA에 반대하는 선동투쟁을 벌이고, 북한에 대한 인권보장요구는 내정간섭이니 말하지 말해야 하며 미국에는 독화살을 쏘면서도 북한에 대한 비난은 웬만하면 입을 꽉 다문다. 모두 시대를 거스르는 보수주의요, 비실용적인 정치행위들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통일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그들은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국민들을 선동한다. 교학사 교과서 내용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자신들의 역사관과 다르다하여 거짓 증거를 내세우며 공격을 시작하고 어느 또라이 민주당 의원은 권력을 악용하여 그 대표저자에 대해 뒷조사까지 근무기관에 요청하였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거친 표현이지만 아마 좀 덜 떨어졌거나 돌아버린 의원이 아닌가 싶고, 현명한 국민들은 역사관에 대한 역사가들의 견해와 사관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냉철하게 지켜보아야 하며 선동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교과서가 나오면 일선 학교의 교사들이 어련히 판단하여 가장 바람직한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겠는가? 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어떤 역사관을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교과서 몇 줄의 내용이 그리 크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사를 가르치면서 교과서의 내용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오류(예를 들어 6.25가 북한의 침략이니 아니니 하는 지난 쓰레기 같은 논쟁, 유엔의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정당성 논쟁)와 이승만 일파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립, 민족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스탈린의 역사적 과오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찬란한 미래의 비전과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 평화적 통일을 당당하게 역설하였다. 앞으로도 나는 언제 어디서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자유민주주의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당당하게 가르칠 것이다.

 

1.박제가론(안대회)

  박제가는 균역법이 실시된 1750(영조 26)에 태어나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된 1805(순조5)에 죽었다.북학의는 박제가의 저술이다. 조선의 학자로서는 드물게 상업과 유통을 중시하였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을 체계화하였으며. 현실의 개혁을 위해 중국에서 배우자는 주장을 펼친 사실은 상식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만 해도 조선 사상사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상체계를 구축한 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참신한 시를 쓴 뛰어난 시인이었고, 조선 후기 소품문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산문가였으며, 고고한 文氣가 넘치는 그림을 그린 화가에다 俗氣한 점 보이지 않는 절묘한 글씨를 쓴 서예가이기도 하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자고 부르짖었던 개혁사상가인 그였지만, 그는 사상을 현실정치에 반영할 수가 없었던 서얼신분의 하급관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꿈을 접은 비운의 학자로 남게 되었다.

 

2.박제가 小傳(177627세에 쓴 自傳이다)

  그의 사람됨을 보자. 물소 이마에 칼날 같은 눈썹을 하고, 눈동자는 검고 귀는 하얗다. 고독하고 고매한 사람만을 골라 남달리 친하게 사귀고, 권세 많고 부유한 사람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사이가 멀어진다. 그러니 뜻에 맞는 이가 없어 늘 가난하게 산다. 어려서는 문장가의 글을 배우더니 장성해서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였다. 수개월을 귀가하지 않고 노력하지만 지금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이제 한참 고명한 자와 마음을 나누고, 세상에서 힘써야 할 것은 버리고 하지 않는다. 命理를 따져서 종합하고, 심오한 것에 침잠하여 사유한다. 백 세대 이전 인물에게나 흉금을 터놓고 만리 밖 먼 땅에나 가서 활개치고 다닌다.......

  천애의 타지애서나 오랜 세월 흐른 뒤에 만나는 사람마다 분명히 그런 줄 알 것이다.

 

3. 조선인의 편견

  오늘 날 사람들은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속된 각막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떼어낼 도리가 없다. 학문에는 학문의 각막이, 문장에는 문장의 각막이 단단하게 붙여져 있다.

큰 문제는 제켜두고 수레부터 말을 꺼내 보자. 수레를 사용하자고 하면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산이 험하고 물이 가로막혀 수레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랑캐>라는 한 글자로 천하의 모든 것을 말살하고 있다. 그렇건만 나만은 중국의 풍속은 이렇기 때문에 너무나 좋다라고 말한다. 나의 말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과 비교해서 너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판단을 무엇으로 입증해보일까?

  시험 삼아 중국의 학자 중에도 퇴계와 같은 자가 있고, 명필 중에는 한석봉보다 뛰어난 자가 있다 라고 말해보라! 그들은 반드시 성을 내고 낯빛을 바꾸며 대뜸어찌 그럴 리가 있겠소? ”라고 말하리라.

 

4. 會友記

  소와 말도 분간 못하는 무리들은 은영중 이 조선만을 실재하는 세상으로 생각하며 수천 리 우리 안에서 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생애를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중원의 존재를 알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만약에 한 마디라도 중원에 말이 미치면 반드시 겸손한 말시로 사죄하듯조선 땅도 아직 다 보지 못했소이다. ”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는 여름날 하루살이와 우물 안 개구리의 부류이거나 학이 우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는 자들일 것입니다.

 

5. 궁핍한 날의 벗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작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6. 낙향하는 어른을 보며

  오늘날 사대부는 과거를 통하지 않으면 벼슬자리에 들어갈 수 없고, 문벌이 높지 않으면 청요직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나날이 번성하고 나날이 불어나는 벌열 집안과 과거 합격자가, 하나뿐인 청요직의 길과 늘지 않는 벼슬자리를 차지하려고 달려듭니다. 게다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란 모두가 들떠서 벼슬에 진출하려는 시정잡배에 속합니다.....

  이리하여 붕당이란 것이 생기고, 붕당이 나뉘어 둘이 되었다가 다시 쪼개져 넷이 되었습니다. 호기를 잡아 상대를 물리치면서 일진일퇴를 하다가 심지어는 서로 살률을 저지르는 데까지 이릅니다.....조정론이 대두한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당의 폐해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

  각기 사사로운 자기 사람을 거느리고 명분과 당색을 제한하여 상호간에 출입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조정에서 서로의 당색을 표방합니다....

  증조부 고조부가 남겨 놓은 부귀를 팔아 한 지방에서 호령하며 비옥한 땅을 차지하여 재산을 불리고 편안히 앉아서 놀고먹는 자가 또 몇 만 명입니까?...

  아아! 오늘날의 사대부는 과거가 아니고, 문벌이 아니고, 붕당이 아니면 위로는 벼슬자리도 오르지 못하고, 아래로는 상공업에도 종사하지 못한 채 마치 附庸의 나라처럼 사람 틈에 묻혀 살아갑니다. 굶주려 아사할 지경일지라도 더 사대부라는 이름을 포기하지 않고 농부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또 무엇을 하려는 사람들입니까?

 

7. 이무관(덕무)를 배웅하며

  제가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인 자리에서 구경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온갖 관아의 관료가 모두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묻고 대답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누는 대화란 것이 매월 초하루에 받는 각 관아의 삭료가 얼마인가, 미곡과 금전의 총계는 어떠하고, 젓국, 해산물, 채소, 기름, 땔나무, 제수용품이 몇 말 몇 되 남았는지 아주 미세한 수량까지 따지는데 지나지 않았습니다. .....

  녹봉과 수입에 대하여 묻지 않는 마음으로 직무를 본다면 고을의 크고 작기가 자신에게 무슨 관계가 되겠습니까?

이덕무는 6년 봉직기간동안 10여 차례의 고과에서 모두 최고점수를 받았다. 박지원이 지은 <행장>에 이르기를 적성현감에 제수되자 고을이 형편없고 녹봉이 박하다 말하니 무관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 내 본래 서생으로 극히 두터운 성상의 은혜를 입어 고을을 맡아늙으신 부모를 봉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은총이 지극하니 어찌 감히 다른 것을 말하랴?’도임하자 바로 廩米(녹봉)을 털어 관아를 수리하였다.”

 

8. 북학의를 탈고하고(1778년 정조229)

나는 어릴 적에 고운 최치원과 중봉 조헌을 사람됨을 사모하여 비록 뒷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분들의 말을 끄는 마부가되어 모시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었다.

고운은 당에 유학하여 진사가 된 뒤 고국에 돌아와서는 신라의 풍속을 혁신하여 중국의 수준으로 진보시킬 방도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좋지 못한 시대를 만나나 까닭에 가야산에 은거 하였고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도 알 수가 없다.

중봉은 질정관의 신분으로 연경에 들어갔다가(1574)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임금께 <東還封事>를 올렸다. 적극서오가 간절한 정성이 ᅟᅵᆯ린 이 봉사에는 저들의 문물을 보고서 스스로의 처지를 깨닫고, 남의 훌륭한 점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남과 같이 되고자

노력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 글은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미개한 이조의 실정을 변화시키려는 고심 아닌 것이 없다.

압록강 동쪽의 우리나라가 천여 년을 지내오명서 보잘 것 없고 조그마한 이 외진 나라를 한 번 바꾸어 중국의 수준으로 올리고자 노력한 사람은 오로지 이 두 분밖에 없다.

현재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곤궁해지고 재정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대부가 팔짱을 낀 채 바라만 보고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또 과거의 습속에 안주하여 편안히 안락을 누리면서 실정을 모른 채만 할 것인가?

오늘날의 폐단이 발생한 근원에 대해서 특별히 정성을 기울였다. 비록 이 책에서 말한 것이 시행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 일에 쏟은 정성은 후세 사람들이인정해 줄 것이다. 고운과 중봉도 그러했으리라.

 

9. 北學議를 임금님께 올리며(1898)

신이 외람되게 수령의 직책(1895 영평현령)을 맡은 지가 어느새 3년이 되었습니다. 신이 맡은 지역에서조차 치적을 거두지 못한 처지이기는 하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만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늘 앞선다고 자부합니다.

신은 이 산골 고을의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해보았습니다. 백성들이 화전을 일구고 나무를 하느라고 손가락 모두 뭉툭하게 못이 박혀 있지만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해야 십년 묵은 해진 솜옷에 불과하고, 집이라고 해야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서야 들어가는 움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방안에는 연기가 가득하고 벽은 바르지도 않았습니다. 먹는 것을 보면 깨진 주발에 담긴 밥과 간도 하지 않은 나물뿐입니다. 부엌에는 나무젓가락만 달랑 놓여 있고 아궁이 앞에는 질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연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무쇠솥과 놋수저는 里正이 몇 차례 뺏어가서 벌써 꿔다먹은 곡식 값으로 납부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지는 무역에 대해서는 노비가 아니면 軍保의 신분이라 25,6십전을 관에 납부한다고 했습니다. 국가의경비가 나오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참담한 마음이 들어 베를 짤 마음도 나지 않는 홀어미라도 된 양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의 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의 풍속 하에서 하루아침도 살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제가 맡은 현 하나의 실정이 그러한데 그치지 앟고 모든 고을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나아가 온 나라가 그러한 실정입니다.

첫째 儒生을 도태시키는 일입니다.

식년시가 실시되는 해에 크고 작은 과거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장에 나오는 자가 거의 십만 명을 넘습니다. 그러나 십만 명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무리의 부자형제들은 비록 과거시험에 응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농업에 종사하지 않기는 일반입니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모두 농민들을 머슴으로 부리는 자들입니다......

이 무리들이 나라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한지가 백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날마다 불어나는 유생을 도태시키지 않고 도리어 날마다 힘을 잃어가는 농부만을 향해 어째서 너희들은 힘을 다 발휘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조정에서 날마다 천 가지 공문을 띄우고, 현의 관리들이 날마다 만 마디 말로 권유해도 한 바가지의 물로 수레 가득한 땔감의 불을 끄는 격입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보탬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수레를 통행시키는 일입니다.

故 相臣 김육은 평생의 고심이 오직 수레와 화폐의 사용 두 가지 시책에 있었습니다....이제 만약 수레를 통행시킨다면 10년 안에 백성들이 수레를 좋아하는 정도가 화폐의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수례는 비유하자면 血脈입니다. 혈맥이통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지고 윤기가 흐를 이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무 쓸모없는 유생은 옛날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만연하고, 유용한 수레는 옛날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습니다.

 

10. 기술자의 대우

오늘날에는 기술을 멸시하는 풍토가 한층 심합니다. 천시하는 신분을 간직하고 멸시하는 풍토가 특히 심한 때에 살고 있으므로 기술자는 그럭저럭 살아갈 뿐 세상으로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1. 개혁의 방안(178637)

현재 국가의 큰 폐단은 한마디로 가난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난을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천하의 도서를 국내로 들여오게 할 수 있으므로 조선의 풍속에 얽매인 선비들의 편벽되고 꽉 막히고 고루하며 좁디좁은 견해가 굳이 깨트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파괴될 것입니다.

중국의 흠천감에서 역서를 만드는 서양 사람들은 모두 기하학에 밝고 이용후생의학문과 기술에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관상감 한 부서의 비용으로 그사람들을 초빙하여 관상감에 근무하게 하고 나랑 우수한 인재를 그들에게 보내 천문과 그 운행, 鐘律儀器度數를 비롯하여 농잠, 이약, 자연재해, 기후의 이치를 공부하게 하고, 나아가 벽돌의 제조, 가옥과 성곽·교량의 건축, 구리와 옥의 채광, 유리를 굽는 방법, 수비용 화포를 설치하는 법, 관개하는 법, 수레를 통행시키고 배를 건조하는 방법, 벌목하고 바위를 운반하는 법, 무거운 것을 운반하는 방법을 학습하도록 조치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알맞게 쓸 인재가 배출될 것입니다.

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놀고먹는 자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이유는 士族이 날로 번성하는데 있습니다. 이 무리들이 나라에 온통 깔려 있어서 한 가닥 벼슬로는 모두 옭아맬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을 처리할 방법이 반드시 따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근거 없는 소문을 날조하는 무리가 사라지고 국가의 통치가 제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신은 수륙의 교통요지에서 장사하고 무역하는 일을 사족에게 허락하여 입적할 것을 요청합니다. 밑천을 마련하여 빌려주기도 하고, 점포를 설치하여 장사하게 하며, 그 중에서 인재를 발탁함으로서 그들을 권장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날마다 이익을 추구하게 하여 점차로 놀고먹는 추세를 줄입니다. 생업을 즐기는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며, 그들이 가진 지나치게 강력한 권한을 축소시킵니다. 이것이 현재의 사태를 바꾸는데 일조할 것입니다.

인재가 아주 드문데도 인재를 양성할 방도를 강구하지 않고, 財用이 날로 고갈되어 가는데도 소통시킬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며세상이 말세로 가니 백성이 가난하다 라는 핑계를 대니 이것은 국가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처리할 사무가 간소해집니다. 좌우에서 자기를 옹위하게 하면서 체모를 허술하게 할 수 없다 고 하니 이것은 사대부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또 사촌간의 친지를 종으로 부리는 자가 있고, 머리가 허옇고 검버섯이 돋은 노인이 머리 땋은 아이들의 아랫자리에 끼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항렬의 어른에게 절을 하기는커녕 손자뻘 조카뻘 되는 자가 어른을 꾸짖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쭐대며 천하를 야마ᅟᅥᆫ족이라 부시하며 자기야말로 예의를 지켜 중화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은 우리 풍속이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사대부는 국가에서 만든 신분입니다. 그러나 국법이 사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과거란 인재를 취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재의 선택이 과거로 인하여 망가지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서원을 설립하여 선현의 제사를 받드는 제도는 선비를 숭상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부역에서 도망하는 장정과 금주를 빚는 자들이 숨어 지내는 소굴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자기를 기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나라는 사치로 인하여 망한다고 해야겠지만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베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여인의 기능이 피페해 졌습니다.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는 것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에 오음과 육률이 화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서져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목욕을 시키지 않은 말을 타며, 이지러진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진흙을 바른 방에그대로 살기 때문에 공장과 목축과 도공의 기술이 단절되었습니다.

현재 대궐의 큰 뜰에서 국가의 의식을 거행할 때에 거적대기를 깔고 있습니다. 동서의 대궐에서 궁문을 지키고 잇는 수비병은 무명옷을 입고, 새끼줄로 띠를 만들어 띠고 서 있습니다. 신은 이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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