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둠

비가 와야 할 텐데

청담(靑潭) 2015. 6. 27. 09:25

 

 

비가 와야 할 텐데

 

 

서거정(徐居正, 1420~1488)

 

 

봄부터 시작된 가뭄 여름까지 이어지니     自春無雨夏相仍

기승부리는 가뭄 귀신 네가 참 밉구나.     女魃憑凌爾可憎

천지는 화로가 되어 불처럼 이글거리고     天地爲爐烘似火

들판엔 초목이 말라 중머리처럼 민둥하네.  田原無髮禿如僧

메뚜기 떼가 극성이라 걱정스러운데        螽蝗得勢能爲患

도마뱀도 신통치 않아 의지할 수가 없네.   蜥蜴疎才不足憑

어찌하면 두 손으로 은하수를 끌어다가     安得銀潢雙手挽

세상천지 찌는 더위 시원하게 씻어 줄까.   人間萬里洗炎蒸

 

징그럽게도 내리지 않던 비가 지난 주말에는 20mm가 내리더니, 그저께 저녁에는 매우 흡족하게 내렸습니다. 우리 전북지방에 50mm 내지 70mm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동안 가장 가물던 영동지방에도 어제 비가 내렸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후련합니다. 휴일인 오늘과 내일까지도 흐리고 비가 내리나 싶어 고향마을 임시거처인 과일밭에 키우는 해피에게 밥을 실컷 주고 왔더니만, 오늘은 아주 맑게 개었습니다. 비가 올 때도 기분이 상쾌하더니만 비가 개이고서도 기분이 아주 상쾌합니다. 잠시 후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남원의 지리산속으로 차를 몰아 다정한 사람들과 하루를 지내게 됩니다. 즐거운 시간을 가질 생각에 또 행복합니다.

지금은 저수지가 많아 거의 모든 논은 수리안전답이 되어서 곡창지역인 우리 호남평야 들판의 모내기는 잘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두어 달 동안 숫제 비가 내리지 않는 탓에 지하수를 준비하지 않은 밭의 곡식들은 타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지하수를 준비한 밭에서는 밤낮으로 스프링쿨러로 작물에 물을 뿌려대야만 했습니다. 60년대 말 고등학교시절, 가뭄으로 모내기를 하지 못해, 겨우 둠벙(논 가장자리에 파놓은 작은 개인 저수지)의 물을 퍼서 모내기를 하는데 물이 충분치 못한 논바닥이 어찌나 단단한지 손으로 힘을 주어 꼭꼭 심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먹을 것이 풍부한 세상에 살고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매일 텃밭에서 아욱과 상치와 쑥갓과 취나물과 메밀과 오이와 호박과 토마토를 가져옵니다. 복분자도 따옵니다. 잘 익은 보리밥은 매일 따먹습니다. 작년에 심은 두 그루의 사과나무에 달린 다섯개의 사과가 잘도 커갑니다. 역시 작년에 심은 두 그루의 포도나무엔 수십 개의 포도송이가 달렸습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먹을 것을 내손으로 생산하는 기쁨이 참 큽니다. 곧 목적지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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