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아시아 BEST 170
지은이 이지상 외 4인
펴낸 곳 봄엔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한 여행
1. 믈라카(말레이시아-세상 모든 풍경 속을 거닐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버스로 세 시간 거리다. 네덜란드 광장이 있고 유럽식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말레이반도의 남서부, 말라카해협에 면한다. 말라카주(州)의 주도(州都)로 말라카강(江) 어귀에 있으며 강의 좌안에 세인트폴 언덕이 솟아 있다. 말라카해협 해상교통상 요충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원래는 한촌에 불과하였으나 14세기에 수마트라섬에서 온 파라메스바라가 이곳을 중심으로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지리적 조건 때문에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창하였다. 1511년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이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시아 최초의 유럽 식민지로 만들어 향료 무역의 독점과 그리스도교의 선교 기지로 삼았다. 그 후 1641년 네덜란드가 빼앗아 해협을 지배하였고, 1824년 영국의 소유가 되었다. 1941년에는 일본이 지배했다.
이러한 각국의 쟁탈사는 결과적으로 말라카에 많은 사적을 남겼는데, 세인트폴 언덕의 유적을 비롯하여 세인트존 언덕의 성채가 그것이며, 이밖에 박물관도 있다. 근세에 와서는 화교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싱가포르에 밀려 연안무역항에 지나지 않는다.
2. 후통(중국-삶의 향기가 전해오는)
베이징의 좁은 골목이다. 후통(胡同)의 역사는 베이징을 처음 도읍으로 정한 원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경에는 4,000 내지 6,000여개였으나 지금은 몇백 개로 줄었다. 난뤄구샹 후통이 볼만하다고 한다.
3. 갈레 올드타운(스리랑카-중세의 정취가 살아있는 골목을 거닐다)
스리랑카 남부에 위치한 갈레시는 16세기말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 이래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기 때문에 유럽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4. 시탕(중국-수향마을)
상하이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나온다. 물길이 흐르는 수향마을이다. 옛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어서 인기가 좋아 주말이면 골목길이 미어터진다고 한다.
5. 랑무쓰(중국-하늘로 가는 길)
간수성의 남부와 쓰촨성 북부에 걸쳐 있는 해발 3,000m의 산골마을이다. 3,000여명이 사는 곳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장족의 유목민과 승려가 인구의 90%를 차지한다. 민족과 문화적으로 동부티베트에 속한다.
6. 카오산 로드(태국-여행자의 해방구)
방콕 왕궁에서 약 1km 떨어진 방람푸 시장 근처에 형성된 여행자 거리. 1970년대 후반부터 서양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아시아 여행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언제나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카오산 로드는 방람푸 지역에서 가장 활기찬 분위기다.
카오산 로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데 모여 하루 종일 왁자지껄한 거리라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복잡한 거리에는 바나나 팬케이크, 팟타이, 생과일주스 등 길거리 간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노점상들도 줄지어 있다. 저렴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에 그만이다. 도로변에서 레게머리를 땋아 주는 간이 미용실에서 헤어스타일 변신과 함께 기분 전환을 해보아도 좋다. 화려한 의류와 가방, 액세서리, 공예품 등을 취급하는 상점도 많아 쇼핑을 하기에도 편리하다. 대부분 정가가 없기 때문에 흥정을 거쳐 구입한다.
나의 여행은 누군가의 일상
7. 레(말레이시아-세상 모든 풍경 속을 거닐다)
<샹그릴라>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티베트어로 1933년 영국의 제임스힐튼이 쓴 소설<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면서 이상향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중국정부는 1997년 샹그릴라가 윈난성에 있는 중띠엔이라고 발표했지만 저자는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라다크 지방의 레가 샹그릴라로 가깝게 다가온다고 한다. 이 곳에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몽골계의 라다키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작은 티베트라고 부를 정도인데 삭막한 풍경 속에서도 마을 한가운데는 돌집이 많고 냇물이 흘러 오아시스에 온 느낌이 든다고 한다.
8. 포카라(네팔-산과 호수의 시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북서쪽으로 약 200km, 해발고도 900m에 위치하고 있는 교육과 관광의 도시이다. 도시명은 '호수'라는 뜻의 네팔어(語) '포카리'에서 유래하였다. 과거에는 인도·티베트와의 무역 중개지역으로 번영하였으며, 현재는 인도와 네팔을 연결하는 동시에 평지와 산지를 이어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히말라야 등산과 트레킹을 시작하는 서쪽 출발점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50여 개의 코스를 시작할 수 있다.
아열대 기후로 겨울에도 따뜻하며,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이루어졌다는 거대한 페와(Fewa) 호수 외에 베너스호(湖), 루파호 등이 있어 뱃놀이, 낚시 등 다양한 수상놀이를 즐길 수 있다. 페와호 가운데 있는 성(城)에는 힌두교 사원인 바라히 사원이 있다. 주변에 데비폭포(Devi's Fall), 마헨드라구파(Mahendra Gupha) 동굴, 사랑코트(Sarangkot) 전망대 등 볼거리가 많다.
9. 시솽반나(중국-지친 발걸음을 쉬게 해주는 그늘)
윈난성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며 보이차의 원산지이자 티베트로 가는 차마고도의 시발점이다. 태국인과 밀접한 다이족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해서 <중국속의 작은 태국>이라 부른다. 주도는 징홍이다.
10. 빠이(태국-행복한 여행자 마을)
치앙마이에서 미니밴으로 세 시간이면 빠이에 간다. 작은 마을이지만 공항이 있어 비행기로도 간다. 인구 3,000명인 산골 마을이며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11. 우붓(인도네시아-발리의 예술 중심지)
발리는 신들이 선택한 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이다. 발리의 정중앙에 위치한 우붓은 해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마을이다. 우붓은 발리에서 가장 많은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12. 씨판돈(라오스-메콩강에 떠 있는 4,000여개의 섬)
라오스 최남단, 팍세 남쪽에 있으며 수도 비엔티안에서 침대버스로 열 시간, 팍세에서 네 시간이 걸린다.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캄보디아와 국경이 형성된다. 섬마다 분위기가 다르므로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해 어디서 묵을지 정하면 된다. 씨(4), 판(1,000), 돈(섬)의 뜻이다.
13. 치앙마이(태국-숨겨둔 여인이 있는 곳)
태국 제2의 도시로 인천에서 직항이 있다. 인구는 20만 명이다. 주변의 산악 민족마을을 방문할 수 있는 트레킹도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다. 장기체류하며 태국 마사지와 태국요리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많은 편이다. 치앙마이의 겨울은 긴소매 하나만 걸치면 딱이다 싶은 선선한 날씨다. 차오프라야강의 가장 큰 지류인 핑강 연안에 위치하며, 해발고도 335m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296년 란나타이 왕국의 멩라이 왕이 건설한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1345년 치앙라이에 이어 란나타이의 2번째 수도가 되었으며, 16세기까지 번창하였다. 그러나 치앙마이 분지의 풍부한 농업생산력은 17세기부터 타이와 미얀마의 분쟁의 불씨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타이 중앙정부의 관할에 들어간 것은 19세기(라마 5세 시대)에 미얀마가 영국군에 패배하고 만 이후다.
14. 훈자(파키스탄-여행자들의 블랙 홀)
만년설이 덮인 웅장한 산, 울긋불긋 계곡을 물들이는 벚꽃과 살구꽃, 포플러 나무, 수천 년 동안 쌓인 빙하가 드라마틱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별천지다. 세계적인 장수마을로도 유명한데 살구, 채소, 과일, 소식하는 습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2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니 나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낯선 곳에서 만난 익숙함
15. 판자위안(중국-최대의 골동품 시장)
베이징의 한복판에 있는 시장이다. 1992년 중국이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너도 나도 소장하던 물건을 팔려고 내놓고 예술품이나 골동품에 대한 인식과 수요가 늘면서 지금처럼 거대한 골동품 시장이 된 것이다. 약 3,000여개의 상점이 입주해 있다.
16. 인레 호수시장(미얀마-호수 5일장)
미얀마 여행의 다섯 번째 안에 드는 인기 있는 여행이다. 미얀마 북동부의 샨주에 있다. 인레 호수는 해발 875m, 호수 남북의 길이가 22km, 동서의 폭이 11km로 거의 바다 수준이다. 남판시장에는 검은 옷의 빠오족, 호수위의 인따족, 육지에 사는 샨족도 모두 한자리에서 만난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여러 개의 대나무를 평평하게 엮어 밭고랑처럼 만든 뒤 이를 물 위에 띄우고 그 위에 흙을 뿌려 토마토·고추 등 수경재배에 알맞은 각종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그 밖에 물레와 베틀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만든 무명·비단 직조물은 미얀마 각지에서 거래될 만큼 유명하다. 5일장이다.
17. 카스(카슈가르)일요시장(중국-위그르족의 고향)
위그르족의 자치구인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대도시다. 키르기스스탄이 아주 가깝다. 중앙아시아 타림 분지 서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동서 교통로의 요지로 파미르 고원을 넘기 전에 채비를 하고 거래하는 장소였다. 한(漢)이 서역에 관한 지식을 처음으로 접할 무렵인 기원전 120년경에 이곳에는 소륵국(疏勒國)이라는 왕국이 있었는데, 기원전 60년경 도시의 인구수는 약 1만 8,600명 정도였다가 후한(後漢) 시대에 와서는 2만 1,000명으로 늘어났고, 주둔병력은 3만여 명이었다. 주민은 위구르족·한족(漢族)을 비롯하여 총 17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웨이우얼족이 75.5%을 차지한다.
18. 암파와 수상시장(태국-방콕에서 두 시간 거리)
방콕에서는 수상시장의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방콕에서 남쪽으로 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태국인들에게 인기 높은 주말 여행지인 만큼, 현지인들의 전통적인 삶을 가까이서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음식 값은 현지 가격이라서 볶음국수, 숯불 돼지 꼬치구이, 아이스 커피, 신선한 해산물 바비큐까지 모두 우리 돈 3,500원이란다. 가보고 싶다.
19. 다리의 재래시장(중국-소박한 매력에 빠지다)
다리는 윈난성의 대도시다. 미얀마가 가깝다. 5일장이며 북쪽으로 30km 떨어진 사핑의 월요시장과 얼하이오 건너편에 있는 와써 마을 시장이 가장 유명하다.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는 대화
20. 바라나시(인도-힌두교도들의 성지)
바라나시는 인도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지중의 성지다. 약 3,500년 간 성지였다. 인도 북부에 있는 큰 도시이며 부다가야가 가깝다.
21. 루앙프라방(라오스-메콩강이 만들어낸 역사도시)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390km 떨어져 있어 버스로 10시시간이 걸린다. 수도 북쪽에서 가장 큰 도시며 비행기로는 50분 거리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란싼 왕조(1354-1707)의 수도였던 곳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22. 베이징(중국-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중국의 중심)
중국의 수도이며 원나라 이후 중국의 수도이다.
23. 시안(중국-중국의 과거를 알고 싶다면)
관중평야에 위치한 시안은 땅이 비옥해서 일찌감치 중국 문명의 발상지였다. 기원전 11세기 서주의 문왕이 도읍을 세운 이래 1180년 동안 열세 개 왕조의 도읍지로였다. 진나라와 한나라, 당나라까지 지금의 시안일대를 도읍으로 삼아서 도시 전체가 지하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 카이로, 아테네와 함께 세계4대 고도로 꼽힌다. 나는 네 도시를 모두 다녀왔다.
24. 교토(일본-천년고도)
1,000년 동안 수도였던 곳으로 의연한 품위도 깃들어 있다. 일본이 고대국가를 완성한 것은 710년 수도를 아스카에서 나라로 옮기면서부터였고, 794년 헤이안(현 교토)로 옮기면서 가장 일본다운 도시를 만들게 된다.
25. 호이안(베트남-동양의 낭만이 가득한 도시)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에서 35km 떨어진 곳이다. 호이안은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로 올드타운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26. 이스탄불(터키-동서양의 다리)
터키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나라이며,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에 의해 유럽과 아시아가 나뉜다. 동양과 서양이 합쳐진 것은 15세기 중반 오스만 트루크 제국에 의해서였다. 그 전까지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렸으며 1,000년간 기독교를 믿는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다.
27. 이스파한(이란-찬란한 이슬람 문명의 중심)
이스파한은 테헤란 남쪽 400km에 위치한 대도시로 옛 페르시아의 흔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스파한의 영광은 사파비 왕조를 연 아바스 1세 가 이곳을 수도로 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8. 페사와르(파키스탄-동서양의 교차로)
페사와르는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부근에 있는 대도시이다. 중국에서부터 오는 카람코람 하이웨이, 동쪽의 인도에서 오는 길, 서쪽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는 길이 교차되는 지점으로 북방, 동방, 서방의 문물이 만나는 곳이다 .
29. 박타푸르(네팔-시간도 쉬어가는 히말라야의 고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8,000미터 이상의 고봉 열네 개중 여덟 개가 이 나라에 있다. 박타푸르는 지금은 수도인 카트만두의 위성도시로 여겨지지만, 고대에는 카츠만두, 파탄과 더불어 네팔 3대 왕국의 하나로 번성을 누렸던 곳이다.
30. 함피(인도-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는 풍경)
남인도에서 가장 보고 싶은 유적은 단연코 함피일 것이다. 거대한 돌무더기가 겹겹이 쌓여있는 기묘한 풍경과 아름다운 고대 유적이 즐비한 함피는 여기가 지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색적이다. 함피는 인도의 마지막 힌두교 왕조였던 옛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였다. 200여 년간 번영을 누리던 함피는 15세기 중반, 데칸 무슬림에게 정복되면서 철저히 파괴되었다.
31. 예루살렘(이스라엘-갈등과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이르(도시)와 샬롬(평화)이 합쳐진 말로 <평화의 도시>지만, 수많은 갈등과 증오가 얽힌 분쟁의 도시다. 예루살렘은 신도시와 구도시로 나뉘어져 있는데 유태인들이 새롭게 건설한 신도시는 깨끗하고 번화하지만 모든 종교와 역사는 거대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혼잡한 구도시에 있다. 원래의 예루살렘 성벽은 로마군에 의해서 모두 파괴되었고, 현대의 구시가지 성벽은 약 400년 전에 오스만투르크가 지배할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구시가지는 걸어서 동서로 15분, 남북으로15분 정도밖에 됮 않는 좁은 지역이지만 유태인 지역, 아르메니아 지역, 기독교 지역, 이슬람 지역 등 네 개로 나뉘어져 있다.
지루하지 않은 역사 수업
32. 팔미라(시리아-사막속에 꽃피운 오아시스 도시)
대부분의 시리아 사막이 척박하고 황량한 반면, 팔미라는 오아시스를 끼고 있어 대추야자와 종려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이색적인 장소다.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그 옛날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교역도시로 큰 번영을 누렸다. 캐러밴들은 팔미라에 들러 물건을 팔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도시로 떠났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부를 축적한 팔미라는 신전과 야외극장, 목욕탕, 아고라 등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었다. 모두 아름다운 그리스와 로마식 건물로 당시 팔미라의 문화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지금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3세기 후반 제노비아 여왕 때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팔미라가 번영을 누리다 여왕은 자신을 클레오파트라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로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결국 여왕의 판단착오로 팔미라는 로마의 공격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오랫동안 사막의 모래바람에 파묻혔다가 1930년대에 망각의 세월을 깨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2015. 8.30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폭탄 테러와 외국인 인질 참수에 이어 인류의 주요 유적들을 '우상'이라는 이유로 파괴하고 있다. 23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IS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의 바알샤민(Baalshamin) 신전을 폭파했다.
AFP통신은 마문 압둘카림 시리아 문화재청장의 말을 인용해 "IS가 지난달 팔미라의 바알샤민 신전에서 다량의 폭약을 터뜨렸다"며 "IS는 폭약을 이용해 신전 내부는 물론 주변 기둥까지 무너뜨리는 등 무자비하게 유적을 훼손했다"고 전했다.
바알샤민 신전은 2000년 전인 기원후 17년 폭풍과 강우를 지배하는 여신 바알샤민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 시절인 130년에 규모를 키웠으며 2세기와 3세기를 거치며 보수 작업을 한 유적지다. '대추야자의 마을'이란 뜻의 팔미라는 사막 중앙에 위치한 오아시스 지역으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동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곳에 있다.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역 도시로 다양한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귀중한 문화 유적들이 집중돼 '사막의 진주'라 불렸다.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올 5월 팔미라를 장악한 IS는 지난 6월 27일 이슬람교 이전에 숭배되던 아랍 여신 알랏의 이름을 딴 2000년 된 '알랏의 사자상'을 부쉈다. IS는 "팔미라의 유적 중 다신교와 관련된 조각상만 부수고 나머지는 훼손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무차별적으로 유적을 파괴했다.
IS는 최근 40년 이상 팔미라 연구에 바쳐온 고고학자 칼레드 알아사드(82)를 참수하며 공분을 샀다. 그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세력을 넓혀가던 IS가 팔미라 인근까지 진격했을 때도 유적지를 떠나지 않았다. IS가 박물관의 유물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당국을 도와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숨기기 위해서였다.
33. 페르세폴리스(이란-페르시아 제국의 영광과 전설)
2500년 전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지배했던 페르시아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는 지금은 무너진 주춧돌과 허물어진 건물만이 남아 있지만, 한때는 태양아래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영광을 상징하던 도시였다. 페르세폴리스는 일상적인 거주를 목적으로 한 왕궁이 아니라 신년 행사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의식용 수도였다.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의 침입을 받고 종말을 고했다. 점령한 알렉산더의 병사들은 2만 마리의 노새와 5천 마리의 낙타에 보물을 실은 뒤 궁전에 불을 질렀다. 이란 남부도시인 시라즈에 가서 찾아가야 한다.
34. 페트라(요르단-오기 전부터 좋아할 줄 알았다)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로 전성기에는 인구 3만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돌을 쌓아 만든 궁전과 바위산을 깎아 만든 500여개의 무덤이 남아있다.
35. 도우베야짓(터키-노아의 방주가 발견된)
아득한 태곳적, 하염없이 내린 비가 온 세상을 잠기게 한 대홍수가 실제 일어났을까? 구약성서에는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도 대홍수 이야기는 나온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타락에 분노한 여호와 신은 생명들을 다 멸종시키고자 대홍수의 재앙을 내리지만 안 한 명의 의인인 노아만을 살렸다. 노아는 거대한 방주에 동물들과 식물들을 쌍으로 실었고, 40일간의 대홍수가 끝난 후에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아라라트 산을 찾으려면 먼저 이란과의 국경도시인 도우베야짓으로 가야한다.
36. 보로부두르 사원(인도네시아-수수께끼에 싸인)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지도에는 욕야카르타)까지 기타를 타면 여덟시간, 비행기로는 약 한 시간이다. 욕야카르타는 메라피 화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기름진 평야에 위치하며, 해발고도는 115m이다. 마타람 왕국의 수도였으며 전통적 자바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무용과 가믈란 음악이 애호되고, 해마다 몇 차례 거행되는 왕궁의 축제에는 근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시는 자바인의 민족정신의 고향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반(反)네덜란드 독립전쟁 때 공화국의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이곳에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멕시코의 테오티우칸 피라미드유적에 못지않은 거대한 불교사원이다. 이 사원은 사이렌드라 왕국이 멸망하기 전에(780-830)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만들어지자마자 파묻혀졌다. 근교의 메라피화산의 폭발로 인해 매몰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확실치는 않다. 약 900년간 흙에 파묻혀 있던 이 사원은 1814년에야 발굴되었다.
37. 시기리아(스리랑카-밀림 속에 펼쳐진 난공불락의 바위요새)
스리랑카 중부의 밀림 한가운데 수직으로 솟은 바위산이 있다. 이 바위산에는 놀랍게도 고대 왕궁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에는 비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다. 5세기 말 평민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카사파 왕자는 정실 소생의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길까 불안했다. 결국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고 왕위를 찬탈했다. 왕이 된 그는 이복동생이 목갈라나마저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자 남인도로 망명한 동생의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난공불락의 바위산 정상에 요새화된 궁궐을 짓고 몸을 숨긴다. 그것도 모자라 사방에 악어를 풀어 놓은 해자로 둘러싸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인과응보라, 남인도로 가서 힘을 키운 후, 부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쳐들어온 동생과의 전투에서 패한 카사파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그가 이곳에 기거한 기간은 고작 반년뿐이었다고 한다. 시기리아에 오르려면 무려 1,200개의 돌과 철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38. 바강(미얀마-천년의 기도, 천년의 이야기)
미얀마의 바강,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3대 불교유적지로 꼽힌다. 바강은 1,000년이 넘도록 현지인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는 곳이다. 과거 바강왕국이 번성했을 때인 11-13세기에는 약 5,000개 이상의 파고다(불탑)이 있었으나 몰골의 침략과 자연재해로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미얀마의 북쪽에 위치하며 양곤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로 만달레이를 거쳐 두 어 시간 날아야 한다.
39. 만리장성(중국-세계에서 가장 긴 담장)
만리장성은 중국이 유목민족이 쳐들어오는 것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은 성벽이다. 기원전 3세기에 진나라가 체계적이고 통일된 형태로 쌓기 시작해서 14세기에 들어선 명나라가 가장 적극적으로 쌓았다. 17세기 만주족이 만리장성을 뚫고 내려와 청나라를 세우기 전까지 장장 2,000년에 걸쳐 쌓았다. 그 길이가 무려 6,300km, 인간의 힘으로 지구 둘레의 6분의 1에 달하는 성벽을 쌓아올렸다. 시발점은 허베이성(하북성) 산하이관(산해관) 라오룽터우이다. 부근의 도시는 친황다오(진황도)이다. 서쪽 끝은 간쑤성(감숙성) 자위관이다.
40. 카주라호 사원들(인도-섹스 박물관 같은)
인도 북부 잔시 부근에 있는 사원들이다. 우리의 종교와 예술에는 곳곳에 성의 흔적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데 그 중에서 인도의 카주라호의 사원만큼 적나라한 곳도 없을 것이다. 이곳의 힌두교 사원들 중, 특히 락쉬마나 사원과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은 남녀의 성행위를 표현한 미투나 조각들로 뒤덮혀 있다. 수많은 체위와 심지어 말과 성행위를 하는 남자들을 묘사한 부조와 조각들 앞에서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는데 마하트마 간디는 이곳을 ?다 때려 부수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탄트리즘의 어원은 탄트라는 정신적인 지식을 의미하는데 <스스로 넓히고 몸의 실천적인 수행을 통해 익히는 것>을 말한다. 이 탄트리즘 의식에 차크라 프자라는 것이 있는데 한밤중에 같은 수의 남녀가 모여서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고기, 생선, 곡물을 먹은 후 성교 의례를 행했다. 여기서는 그토록 엄격했던 카스트제도와 근친 관계도 무시되었다. 수많은 미투나는 차크라 프자의 수행방법으로 샥티, 즉 성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여 남녀가 결합하고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 의식이 하나가 되고 정대와 상대가 하나가 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41. 아잔타와 엘로라(인도-석굴 예술의 정수)
인도 남서부 데칸고원의 끝자락에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외진 곳의 바위산을 깎아 만든 두 개의 석굴은 회화와 건축, 조각 등, 인도 종교 예술의 정수가 응집된 문화유산이다. 엘로라 석굴은 아잔타가 모두 불교 석굴인 것과 달리, 불교와 자이나교, 힌두교 등 세 종교의 석굴이 각 종교가 흥하던 시기에 따라 차례로 조성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42. 앙코르 유적지(캄보디아-우주의 비밀이 깃든)
크메르인들은 우리 고려시대 무렵인 9세기에서 14세기에 위대한 앙코르 왕국을 건설했다. 그들은 베트남, 태국의 일부까지 지배했으며 왕국의 1,000㎢에서 약 1,500개의 사원이 발굴되었다. 수많은 사원들중 백미는 단연 앙코르 와트다. 도시사원을 뜻한다. 동서로 약 1,500m, 남북으로 약 1,300m인 이 사원은 12세기 전반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약 30년에 걸쳐서 만들었다.
43. 타지마할(인도-사랑으로 빚어낸 무담. 아그라)
타지마할은 인두북부 아그라에 세워진 한 여인의 무덤이다. 무굴제국의 제 5대 황제인 샤 자한이 너무나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이 영묘는 숨이 멎어버릴 만큼이나 아름답다.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났던 장소는 바자르(시장)이었다. 샤 자한은 빼어난 미모와 지혜를 갖춘 여인에게 금방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1612년 두 사람은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왕비가 된 여인은 <궁전의 꽃>을 의미하는 뭄타즈 마할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두 사람은 천생 연분이었다. 황제와 왕비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들의 사랑은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행복은 영원할 수는 없었다. 1631년 샤 자한이 데칸고원으로 원정을 떠난 사이 왕비는 그들의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었다. 건축에 남다른 열정을 지니고 있던 황제는 페르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뛰어난 건축가와 석공을 끌어 모아 야무나 강변에 타지마할을 짓기 시작했다. 1632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무려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완성되었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 맞은 편 강가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무덤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국력을 낭비한 대가는 혹독했다.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샀고 말년엔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쫓겨나 타지마할 근처의 아그라성에 유폐되고 말았다.
아시아를 만든 길, 아시아를 흐르는 길
44. 메콩강(캄보디아:베트남)
티베트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중국, 미얀마, 라우스,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4,350km를 흐른다. 오늘날 메콩강을 운행하는 정기 여객선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많이 남아 있다.
45. 시베리아 횡단열차(러시아-세상에서 가장 긴)
태평양에서 부동항을 개척하고 모피 등을 조달하기 위해 러시아는 1916년에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횡단철도를 완성했다. 처음엔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낭만적인 길이 되었다. ...한 달이 걸리는 멀고 긴 횡단열차에서는 짧은 삶이 펼쳐진다. 아침이면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고, 때가 되면 식당이나 열차에서 끼니를 해결하느라 바빴다.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역사의 간이 장터에서 소시지, 빵 등의 식료품과 맥주, 보드카 등을 샀다. 한국의 도시락인 라면과 초코파이는 어느 도시 , 어느 역에서나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까지 맛만 보았다.
46. 구게 왕국 가는 길(티베트-전설의)
6세기 무렵 토번 왕국은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성했다. 그러나 9세기 후반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왕국은 세 나라로 쪼개지고 만다. 구게 왕국은 이때 갈라져 나온 세 나라중 하나로 해발 4,000m가 넘는 티베트 서북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구게 왕국으로 가는 길은 티베트 고원에서 가장 험하고 스펙터클하다. 라싸에서 티베트 고원을 가로질러 1,500km를 가야 한다. ...티베트 서부에서 600년간이나 번성하다 사라진 구게 왕국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곳에 위치해 있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에는 작은 궁전과 성채가 하나 남아 있다.
47. 카라코람 하이웨이(중국:파키스탄-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
카라코룸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장엄한 길이다. 중국 서역지방의 카슈가르(현 카스)에서 시작해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고원을 넘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지는 길로, 중국에서는 중파공로, 파키스탄에서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카슈가르에서 버스를 타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1박 2일이면 갈 수 있지만, 예전에 대상들, 혹은 불법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구도자들은 낙타나 야크를 타고 몇 달씩 가야만 했다. ...고선지 장군도 이곳을 거쳐 소발륙국(지금의 파키스탄의 길기트 지방)을 원정했다고 한다.
48. 동티베트(중국-미소로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지금의 쓰촨성 서부에 있는 간쯔장족자치주는 캄(티베트에서 변방의 땅이라는 의미)이라 하며 대문인 캉딩현은 청두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나는 구채구 여행시 청두의 북쪽인 아바티베트창족자치주만 다녀왔다. 장족은 티베트족이고 창족은 강족이다.
49. 칭짱철도(중국-세계에서 가장 높이 달리는 길)
티베트는 개별여행이 불가능하다.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가 동반한 여행을 신청해야만 허가증이 발급된다. 티베트 고원은 칭짱고원이라고도 부른다. 이 험준하고도 신성한 땅에 철로가 놓였다. 2006년 칭하이성의 거얼무에서 티베트의 라싸까지 1,142km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저자는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시안을 거쳐 거얼무를 거치며 라싸까지 갔다. 일전에 찾아보니 여행사 상품으로 인천에서 라싸로 가서 칭짱열차를 타고 시안까지 오는 코스가 있다. 시안을 관광하고 비행기로 인천으로 온다.
50. 치렌산 넘는 길(중국-색의 길)
칭하이성 시닝에서 치렌산을 넘어 간쑤성의 장예까지 가는 길로 버스로 6시간이면 된다. 가는 길에 염호인 칭하이호를 지나는데 제주도의 2.4배라 한다. 간쑤성의 장예, 우웨이, 닝사후이 자치구의 인촨을 잇는 전문여행사의 상품을 찾아본 적이 있다. 툰황이 멀지 않은데 툰황은 신장성의 우루무치, 투루판, 하미를 연결하는 별도의 상품이 있다.
51. 실크로드(중국-해를 따라 서쪽으로)
실크로드는 중국의 시안에서 시작해서 로마에 이르는 멀고 먼 길이다. 실크로드는 텐산남로와 텐산북로로 나눈다.
텐산남로는 현지어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란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한 다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인 파미르고원을 넘는 길이다.
텐산북로는 비교적 편안한 길로, 텐산산맥 북쪽에 드넓게 펼쳐진 초원의 길을 따라가면 중앙아시아를 거쳐 로마가 나왔다. 툰황, 투르판, 우루무치를 가게 되며 위구르족이 사는 신장자치구이다.
경이로운 자연 앞에 압도되는 순간
52. 주자이거우(중국-신비로운 호수를 가득 품은 숲길)
일명 구채구다. 중국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물빛 이라고 극찬하는 구채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40여 년 전이다. 해발 2000에서 3000m에 이르는 쓰촨성 민산산맥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탓에 교통의 오지다. 내가 갔을 때에는 엄청난 내국인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53. 카일리스 산(중국의 티베트)
카일리스 산은 티베트인들에게는 영혼과도 같은 산이다. 그들은 일생을 걸고 카일리스 산에 오른다. 어떤 이들은 오체투지를 하며 찾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가슴에 품은 체 평생을 살아간다.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에서 차를 이용해 꼬박 4일이 걸리는 1,300km의 고행길이다. 티베트인들은 카일리스 산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이라 여기며 <강 린포체 : 눈의 부처라는 뜻>라 부른다. 이 산은 높이가 6,714m이지만 히말라야의 그 어떤 고산 준봉보다 더 성스러운 산으로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등의 성지이자 갠지스 강과 인더스 강의 발원지이다.
54. 비단지린(중국-황홀한 사막의 밤)
네이멍구자치구에 있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사막인 고비사막(비단지린 사막?)은 중국에서 타클라마칸사막 다음으로 크다.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고비사막과 비단지린 사막과의 관계는 잘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찾아보니 간쑤성의 우웨이, 장예 가까이에서 찾아가는 내몽골의 고비사막의 일부임이 분명하고 내몽골에 소재하는 고비사막 극히 일부를 비단지린(파단길림)사막이라 부르고 있다. 부근에 텅거리 사막도 있다 한다.
네이멍구자치구는 약칭하여 内蒙古라고도 부르며, 수도는 후허하오터이다. 북쪽 국경지대에 몽골·러시아와 인접하여 있다. 국경선이 4,220㎞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몽골과 접경선이 3,192㎞, 러시아와 접경선은 약 1,000㎞이다. 인구는 2,500만 명이다.
전국시대에는 조(赵) 나라와 연(燕) 나라 등에 속하였고, 한(漢) 나라 때는 흉노(匈奴)의 땅이었으며, 송(宋) 나라 때는 서하(西夏)·요(辽)·금(金)이 있었다. 청(清) 나라에 들어와 네이멍구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1928년 차하얼성]과 쑤이위안성 등의 성(省)을 두었다. 1947년 5월 1일 중국 최초의 성(省) 급 민족 자치구로서 네이멍구자치구가 설치되었다.
...검게 물든 모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새까만 하늘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촘촘히 박힌 별들, 새하얀 연기처럼 선명한 은하수, 노랗게 반작거리며 떨어지는 별동별...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우주가 경이로웠다. 그리고 광대한 우주에 나 홀로 있는듯한 느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가 어린 시절, 1960대까지는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서도 저런 광경을 볼 수 있었고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제 친구인 전경욱 교장은 비단지린에 다녀왔는데 제 기억에 기꺼이 동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단지린에 가지 않아도 어린 시절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고 그 느낌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우주의 신비함을 알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으면 이젠 비단지린에 가야 할 듯싶습니다.
55. 남쵸 호수(중국-분명 인간세상이 아닐 것이다)
티베트에 있는 호수이다. 라싸에서 112km로 4-5시간 걸리며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하루면 다녀올 수 있다. 지도에서 찾아보면 티베트에는 수 많은 호수가 보인다. 지도에는 나무호수라고 씌어 있으며 해발 4,718m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염호라고 한다. 길이가 70km, 폭이 30km인 거대한 호수이다.
56. 바이칼 호수(러시아-바다 같은 호수)
2010년 2월,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여행하고 오는 길에 모스크바에 중간 기착한 후 비행기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반부를 가로질러 바이칼호를 지나 울란바토르로 들어섰다. 나는 이 항로가 처음이라서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창밖을 내내 지켜보았기에 바이칼호를 바라보는 기쁨을 맛보았다. 시베리아 한 복판에 있는 바이칼 호수는 면적이 3만 1,500㎢이고 한반도의 약 7분의 1이다.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인데 타타르족은 원래 13세기 몽골을 따라 서진했던 투르크족과 불가리아인, 카자흐인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들이라고 한다. 바이칼 호수를 가려면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로 가야 한다. 1시간이 채 안 걸려 호수가 나타난다. 2013년 여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오는 길에 만난 어느 부부는 더운 여름을 바이칼호수에서 시원하게 보내다 오는 길이라 했다.
57. 야칭쓰(중국-이곳은 지상과 천상의 경계)
티베트와 접경이 맞닿은 야칭쓰(亞靑寺)는 쓰촨성 서북부 간쯔장족자치구의 끝자락 바이위현에 있다. 청두에서 출발하면 최소 이틀이 걸린다. 웅장한 티베트 사원이다. 1985년에 건립된 동티베트에서 가장 큰 불교학원 중 하나로 1만여 명의 승려가 수학중이다. 그 중 7,000여 명이 비구니이다.
58. 하롱베이(베트남-수묵화 같은 은둔지)
하노이 근교의 바다에 하롱베이가 있다. 서울의 2.5배인 1,500㎢의 넓이에 약 3,000여개의 바위섬들이 떠 있다. 베트남 여행에서 제일로 치는 관광지인데 나는 가보지 못했다. 내가 베트남에 갈 때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묶는 여행(앙코르 와트)가 주 목적지)이었기에 베트남 북부는 가보지 못했다.
59. 브로모 화산(인도네시아-세상의 아침을 맞이하다)
인도네시아는 화산의 나라다. 전역에 400여개의 화산이 있고 활화산만도 129개에 달한다. 자바섬 동쪽에 위치한 브로모 화산은 수많은 화산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브로모 화산은 2011년에 폭발해 인도네시아 열도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절경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화산으로 유명하다. 구름바다에 뒤덮인 채 쉴 새 없이 유황가스와 연기를 뿜어대는 브로모 화산은 외계의 행성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브로모 화산의 백미는 일출이다.
60. 카파도키아(터키-낯선 행성의 모습)
카파도키아의 중심도시 괴레메는 회색빛 산과 들판에 거대한 도토리처럼 솟구친 바위들이 끝없이 이어져서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 든다.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데린쿠유 지하도시다. 데린쿠유는 깊은 웅덩이란 뜻으로 1968년 어느 주민이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 안을 파서 들어가 보니 어마어마한 동굴 지하도시가 나타났다. 언제 누가 이 지하도시를 건설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기원전 20세기에서 12세기경에 이곳에 살았던 히타이트족들이 살았고, 로마시대인 7세기경 이슬람 세력의 침공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본격적으로 파고 숨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2010년 터키 여행시 이곳을 찾았었다.
61. 하푸탈레(스리랑카-천상의 풍경을 간직한 실론티의 고장)
스리랑카에서 경치로 하푸탈레를 능가할 만한 곳은 없다. 스리랑카 중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하푸탈레는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CNN이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가장 간과되고 있는 여행지 25곳에 선정한 곳이다. 하푸탈레의 매력은 차밭을 걸을 때 극대화된다. 차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호젓하게 걸으면 녹색 카펫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62. 장자제(중국-자연이 그려낸 동양의 산수화)
후남성 장가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좋아하는 중국의 자연이다. 장가계는 오랜 과거에 바닷속 사암지대가 지각변동으로 육지가 되었다. 지상으로 돌출된 부분이 다시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깍이고 떨어져 나가면서 수직절리 형태의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도깨비방망이와 야구방망이 같은 기이하게 솟은 봉우리가 자그마치 3,100여개이다.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의 숲이다. 하이라이트는 천자산 자연보호구와 장가계 국가삼림공원에 속하는 원가계이다. 천자산은 최고봉이 1,262m로 전망대까지 3,500개의 계단이 이어지는데 케이블카를 타면 10분 만에 도착한다. 원가계는 천자산보다 300m 낮지만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압권이다. 그중에서도 천하제일교가 걸작이다. 나는 2007년 우리는 모처럼 따라나서는 우리 딸 승원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더없이 아름다운 동양의 산수요, 절경이다.
63. 고비사막(몽골-길 없는 길을 달리다)
고비사막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잘 맞는 동료들과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을 수 있는 숙련된 기사가 필요하다. 고비사막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래사막이 아니다. 고비사막에 들어선지 3일 만에 사람이 사는 도시를 만날 수 있었다. 인구1만 7천명이 사는 만달고브이다.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인 몽골고원 내부의 고비사막의 범위는 확실치 않으나, 대체로 알타이산맥 동단에서 싱안링[興安嶺]산맥 서쪽 기슭에 걸친 동서 1,600km, 남북 500∼1,000km의 범위로 알려져 있다.
걷기 전엔 알 수 없고,
뛰어들기 전엔 느낄 수 없었던 것
64. 호튼 플레인 국립공원(스리랑카-세상의 끝을 걷다)
스리랑카에서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가려면 스리랑카 고원지대에 위치한 누와라 엘리야라는 곳으로 가야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초원지대를 가로질러 세상의 끝으로 다가갈수록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그 평원지대를 통과하면 갑자기 울창한 숲길이 나타나면서 동식물의 낙원이 펼쳐진다.
65. 자이살메르 낙타 사파리(인도-고독한 사막의 황토빛 유혹)
인도 북서부, 파키스탄과의 국경이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가 있다. 광활한 타르사막 한가운데 꿈처럼 솟아 있는 이 성채도시는 모험과 낭만의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다. 자이살메르 여행의 백미는 낙타 사파리이다. 사막의 밤은 아름답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빛을 발하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66. 깔로 트레킹(미얀마-누구나 걷는 마법에 걸리는 곳)
미얀마 북부의 산마을 깔로는 샨주에 있는 작은 산마을이다. 해발 1,320m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활용한 트레킹으로 유명하다. 산속에서 묶는 하룻밤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산속 소수부족의 방갈로나 사원에서 묵는다.
67. 세필록과 거북이 섬(말레이시아-오랑우탄과 거북이)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 거북이 섬 모두일단 보르네오 섬의 동쪽 끝에 있는 산다칸이라는 도시로 가야한다.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외에도 셀링간 섬이 있는데 거북이들이 알을 낳는 곳으로 직접 그 광경을 볼 수 있다.
68. 키나발루 산(말레이시아-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
보르네오 섬의 동쪽 끝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 키나발루 산(4,101m)이 있다. 코타키나발루는 매력적이다. 모스크와 박물관은 이국적이었고 주변의 섬과 낙조에 물든 바다는 아름다웠다. 키나발루산은 코타키나발루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나온다.
69. 람마 섬 트레킹(홍콩-바다와 산을 즐길 수 있는 곳)
홍콩에는 쇼핑과 딤섬과 야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과 바다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트레킹은 람마 섬 트레킹이다. 홍콩 섬의 페리 터미널에서 배로 30분 만에 도착하는 람마 섬은 인구가 약 6,000명 정도 되는 조그만 섬으로 도심지의 무서운 집값을 견디지 못하는 서양인들의 주거지로도 인기가 높다.
70. 후타오샤(중국-만년 설산이 품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한 장강은 유유히 흘러오다 윈난성 북부에서 위릉쉐산(5,596m)과 하바쉐산(5,396m)을 만나면서 물살이 급속도로 빨라진다. 두 산의 갈라진 틈새로 장강이 흘러들어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세차게 변신한다. 호랑이가 뛰어넘는 협곡이란 뜻에서 호도협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최고 낙차가 3,900m에 달하는 후타오샤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협곡 초입에서 만난 진사강은 장강을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누구에게나 영화 같은 순간
71. 져우펀(타이완-비정하거나 혹은 비장하거나)
<비정성시>의 촬영지였던 져우펀은 타이베이에서 가깝다. 현지인 말로는 타이완에서 가장 비가 많은 곳으로 과장하면 1년에 300일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과거 아홉 가구가 살고 있어 주후(9戶)라 불렸다. 그 후 도시엣 무언가를 공수해오면 늘 사이좋게 9등분 했다하여 져우펀(9分)이라 불리게 되었다. <비정성시>는 1945년 일본 패망후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겪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비극을 겪게 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72. 산바 호텔(마카오-이사벨라, 2046, 도둑들의 촬영지)
마카오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몇 군데 있는데 산바 호텔도 그중 하나다. 중국어 이름은 신화대여점으로 말이 호텔이지 140년 된, 숙박비가 대략 2만 원대인 허름한 목조 여인숙이다. 영화에서 산바 호텔은 쾌락과 혼란이 혼재하는 곳이다. 현실속의 산바 호텔은 영화와 전혀 달랐다. 불편한 곳이었고 특히 거기서 일하는 할머니는 청나라 시대 혼령처럼 결코 웃지 않았으며 여행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73. 캘커타(인도-시티 오브 조이의 무대)
?잔돈이 없는뎁쇼. ?
말을 마치자마자 인력거를 끌고 냅다 도망치는 인력거꾼, 온 시내가 물바다가 될 정도로 내리쏟는 폭우속이라 잘 차려 입은 손님은 발만 동동 구를 뿐 쫓아갈 업두도 못 낸다. 결혼 할 딸의 혼수와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인력거꾼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돈을 번다. 인도 캘커타 인력거꾼의 삶을 다룬 <시티 오브 조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74. 와디럼(요르단-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무대)
와디럼으로 가려면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이나 남쪽 항구도시인 아카바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1962년에 개봉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역사에 길이 남는 걸작이자 당대 최고의 블로버스터로 손색이 없는 영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의 독립을 위해 터키인과 맞서 싸웠던 영국군 장교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에 나는 한동안 폭 빠졌다. 주연 배우인 피터 오톨과 오마 샤리프의 명연기도 좋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아라비아의 그 붉은 사막이 나를 사로잡았다.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정도 떨어진 와디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중 하나이다.
75. 조드프르(인도-아득한 첫사랑이 시작되는 도시)
영화<김종욱 찾기>는 누구나 한 번 쯤 경험했을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을 떠올리게 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아련한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낭만적인 소재로 시작해 정말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현실적이 주제의 영화다. 도시 전체가 온통 푸른빛을 띠고 있어 <블루 시티>란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조드푸르는 극중 여주인공인 서지우의 첫 여행지이자 그 첫사랑 김종욱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파키스탄 가까이 인도 라자스탄주에 위치한 조드푸르는 절벽 위의 견고한 성채와 사막의 허무함 그리고 감각적인 색채가 혼합된 도시로 그 독특한 풍경 때문에 많은 영화의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76. 홍콩(중경삼림과 화양연화의 무대)
1990년대 중반, 홍콩영화에 심취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기억하리라. 그 시절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하고 암울한 홍콩인들의 정체성을 그리다 보니 그의 영화들이 우울하고 비극적이며 방황하는 존재로 끝난다. 그러나 <중경삼림>은 그런 현실을 다루면서도 젊은 남녀의 로멘스와 얽혀 어딘지 밝고 희망차게 끝난다.
77. 타이베이(타이완-사랑은 식탁에 있다. 음식남녀)
영화<음식남녀>는 노년의 홀아비 요리사와 장성한 세 딸의 이야기가 고소한 기름 냄새처럼 번지는 맛있는 영화다.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관, 세대 차에서 비롯된 가족 간의 갈등을 음식을 매개체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고급 호텔의 수석 요리사인 주사부는 16년 전 아내가 죽자 홀로 세 딸을 키우느라 농담 할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 나이가 들어 입맛을 잃어버린 주사부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세 딸과 함께 식사하는 일요일 저녁이다. 저녁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주사부가 펼치는 화려한 요리의 향연이 볼 만 하다.
당신의 아시아는 어디인가요?
78. 키질(러시아 투바공화국-아시아의 중심)
다양한 측정방법이 있겠지만 <아시아의 중심 기념비>는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수도인 키질에 있다. 몽골과의 경계지역이며 바이칼 호에서 멀지 않다.
...검문하는 군인이 한국인과 얼굴이 너무도 비슷해서 기가 막힐 정도였다. ..투바 지역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 흉노족이 지배했고 6세기 때에는 돌궐족, 8세기에는 위구르족, 13세기부터 몽골족이 지배했으며, 18세기부터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지금은 러시아 연방에 속해 있다. 투바인들은 스탈린 시대에도 라마교를 국교로 채택할 정도로 러시아인들과는 인종도 문화도 다르다. 아마 몽골 계통의 사람들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얼굴이 그리도 닮았을 것이다. 투바 공화국은 면적은 17만㎢인데 인구는 약 30만 명이고 수도인 키질은 인구가 9만 5천 명이다. 아시아 중심 기념비는 마을 주변의 예니세이 강변에 우뚝 서 있다. 이곳에는 우리 민족과 관련된 흔적도 있었다. 우연히 예니세이 강변을 거닐다 서낭당처럼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알록달록한 천을 걸어놓은 곳을 발견했는데 그 옆집이 무당집이었다. 무작정 들어가보니 무당들이 향을 피워놓고 여자 손님들에게 점을 보아주고 있었다.
79. 고쿄(네팔-내 마음속 샹그릴라)
나는 해발 4,750m에 위치한 이 호수 마을 고쿄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기억할 것 같다. 고쿄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걸었던 보름 남짓의 풍경을 완전히 잊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고쿄마을 초입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담수호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눈이 시리게 흰 설산이 찬란하게 빛나는 호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80. 뉴베이산(중국-중국 최고의 전망대)
2009년에 중국의 한 사진작가가 뉴베이산에서 찍은 사진이 단숨에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인 오지 여행 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속도로로 가면 청두에서 세 시간이면 가는 곳인데 여섯 시간이 걸렸다. ...쓰촨의 내로라 하는 고봉들이 길게 이어지고 해질 무렵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높이 솟은 주봉을 중심으로 구름층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나서 다시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전경이 탁 트인 산마루 앞으로 만년 설산이 웅장한 파노라마로 이어졌다. 검푸른 하늘아래 달빛이 물들어 하얗게 빛나는 설산은 인간이 관여할 수없는 성스럽고 숭고한 존재였다.
81. 코모도 섬(인도네시아-공룡의 후예가 서식하는 곳)
코모도 섬으로 가려면 발리에서 국내선을 타고 코모도 국립공원으로 가는 관문인 바조까지 가야한다. 라부안 바조에서 배를 빌리거나 투어를 이용해서 국립공원으로 갈 수 있다. 발리에서 동쪽으로 480km 떨어진 플로레스 섬과 숨바와 섬 사이에 있는 코모도 섬은 공룡의 후예로 불리는 코모도 왕도마뱀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코모도 왕도마뱀의 최대 천적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사슴과 맷돼지를 포획하면서 먹잇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은 정부에서 주민들의 사냥을 금지하고 먹이를 풀어놓아주면서 그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82. 치앙칸(태국-시간이 멈춘 도시)
치앙칸은 방콕에서 597km 떨어진 인구 6만 명이 사는 도시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가깝다. 특이하게도 프랑스가 라오스를 지배하는 동안 치앙칸에 건물들이 건설되었는데 동양적인 분위기를 띠면서도 유럽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다. ..치앙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목조건물이다. 100년 이상 된 목조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건물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갤러리로 꾸몄거나 카페로 변모했다. ..외국인들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치앙칸이 주목을 받게 된 <변하지 않는 시간>때문이다.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생활공간을 고스란히 보존했기 때문에 방콕사람들은 마치 엄청난 것을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