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생(妓生)이다
『소수록』 읽기
정병설 지음
문학동네
※오래 전부터 서재에 꽂혀 있던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다. 기생의 일생에 대해 아니 그녀들의 슬픈 삶에 대해 정말 잘 알 수 있게, 아니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고맙다.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들어가기 전에
●기생은 존재 자체가 모순적이다. 천인이면서도 우아함을 뽐내고, 하층이지만 높은 교양 수준과 예술성을 자랑하였다.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꽃이지만,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기생을 보는 시각 역시 모순적이다. 한편에서는 저급한 창녀라고 무시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수준 높은 예술인으로 선망한다. 남자들은 기생을 멸시하면서도 가까이 하고자 했고, 여성들은 얕보면서도 질투하고 경계하였다. 기생 아닌 다른 여성들에게 기생은 가정의 적이자 사랑의 라이벌이었다.
●『소수록』은 본문 총 125면의 한 권짜리 한글 필사본으로, 소제목이 붙은 열네 편의 작품이 있다. 이는 모두 기생과 관련된 것들로 장편가사, 토론문, 시조, 편지글 등 다양한 양식의 작품이다. ...필사자는 ?동객?이며 시기는 1894년이 분명하다.
제1부 기생의 일생
●기생의 일생은 수학기, 현업기, 퇴임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기적에 이름을 올리면 童伎로 교방에서 기생수업을 받는다. 그러다 加冠, 곧 머리를 얹게 되면 정식 기생이 된다. 본격적으로 妓業에 뛰어드는 것이다. 잔치나 의례에 참가하고 늘 남자를 상대해야 하는 고달픈 일상이다. 그러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면 첩이 된다. 첩 노릇도 고달프기는 일반이다. 낯선 집안, 낯선 환경에다 집안은 물론 주위의 멸시, 천대, 외면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첩 못된 기생은 좋은가? 그 역시 고달프다. 가난과 사회적 냉대가 기다리고 있다.
●『기생 명선 자술가』는 해주기생 명선이 첩이되기까지의 인생 역정을 절절히 그러면서고 경쾌하게 그린 것이다. 군산월은 아예 첩도 못된 기생이다. 첩으로 데려가마고 약속한 남자한테 배신을 당한 것이다. 별실자탄가는 첩 된 이후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해주기생 명선의 인생》
●이 작품에는 ?해주 감영의 명기 명선이 지었노라?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명선은 작품 내에서 1845년에 열여섯 살이라고 말하고 있다. 1830년생이다. 일고여덟의 어린 나이에 기방에 나갔고 겨우 열두 살에 남자랑 처음 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열세 살 기생은 試花, 열네 살은 開花, 열다섯 살은 摘花라 부른다고 했다. 열세 살은 맛보기 꽃이고, 열네 살은 활짝 핀 꽃, 열다섯 살은 따낸 꽃이라는 말이다.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기에 열세 살은 아직 이르고, 열네 살이 적당하며, 열다섯 살은 여염집에서는 어린 나이지만 기생집에서는 오히려 때가 지났다고 본다는 것이다.
...명선이와 잠자리를 한 사람은 당시 황해도 관찰사일 것이다. 서염순(1800-1859)일 가능성이 높다. ...박지원은 안의현감을 지낸 때 벗 박제가가 자기 고을에 들르자, 열세 살 난 어린 기생을 데리고 자게 한 바 있다.
●기생들은 수준 높은 시조나 가사 외에 저급의 잡가나 판소리는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잡가는 저급 기생이라 할 수 있는 三牌의 전유물이었다.
●열다섯 살에 명선은 해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생이 된다. 남자들이 돈을 싸 들고 몰려들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기껏해야 몸만 탐내는 속물들이다.
●구관 사또 올라가고 새 사또 부임하니
칭하느니 사또 명령 조르는 곳 허다토다.
단련한 누른 칼이 집불을 두려하며
님 향한 일편담심 칼날 밑에 굽힐 손가.
좋은 집에 뜻 없으니 좋은 밥 생각할까
벼락 위엄 발치 마오 사생을 두리잖소
이리저리 막아내니 임신 남감 괴롭도다.
●1845년 방년 열여섯의 명선은 드디어 기다리던 남을 만났다. 그 님은 관찰사인 형을 따라온 이십대 중반의 미남 재사 김진사이다. 명선은 김진사에 푹 빠졌다. ...김진사는 김중집(1819-1856)으로 나중에 임실현감을 지냈다. ...부임하자 곧 죽고 말았는데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명선과는 길어야 10년을 함께 한 셈이다.
《군산월의 애원》
●군산월은 함경도 명천의 기생이다. 열아홉에 서울에서 유배 온 쉰셋의 홍문관 교리 김진형(1801-1865)을 만났다. 김진형은 유배지에서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군산월로 달랬다. 그리고 군산월은 김진형의 인품을 믿고 장래를 의탁했다. ...김진형은 세 달만에 방면되어 명천을 떠난다. 귀로에 고을 원의 배려로 군산월을 대동하는데 유배객이 기생까지 끼고 간다는 말을 들을까봐 군산월은 男裝을 시킨다. 그런데 스무날 이상의 여행 끝에 안변에 이른 김진형은 군산월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김진형은 유배객의 신분이지만 명천에서 일류명사로 대접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경우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유배객이 지역민으로부터 학자로서 좋은 대접을 받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특히 함경도처럼 일류학자가 드문 변방에서는 중앙에서 온 학자가 더욱 우대 받았다. 김진형이 그렇고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 간 김려(1766-1821)도 그랬다. 이들은 유배지에서 기생을 첩으로 두고 지냈는데, 김려는 유배객의 시중을 드는 이런 여인들을 配修妾이라 부른다고 했다.
《가련하다 첩의 신세》
●서경덕, 이언적, 주세붕, 이황, 이이와 같은 조선의 대표젹인 유학자들 역시 첩을 얻었다.
●『예기』에 폐백을 갖추고 결혼한 자는 처가 되고 정식 절차 없이 그냥 급히 집에 들어와 사는 자는 첩이 된다?고 했다.
●첩은 작은 집, 작은 마누라, 작은 계집, 시앗, 첩실, 측실, 부실, 소실, 추실, 소가, 별가, 별방, 家直, 여부인, 잉첩, 敵國 등으로 불렸다. ...양가 출신이면 양첩, 노비나 기생 창녀출신이면 천첩인데 첩 가운데 십중 팔구는 기생첩 즉 기첩이었다.
●근대 이후 생긴 학생첩이 있다. 본처들은 기생첩보다 학생첩을 더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기생첩은 첩으로서 자기 분수를 잘 알 뿐만 아니라 돈이 떨어지면 물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학생첩은 아예 본처를 몰아내고 정처로 들어앉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처는 <수원댁>처럼 출신지+댁으로 불리지만, 첩은 <대구집>처럼 출신지+집으로 불린다.
《늙은 기생의 노래》
1.
늘 봄날로 알았더니 이십 삼십 잠간이라
東園桃李片時春이 나를 두고 이름이라
색태 믿고 거만타가 인심조차 잃었구나
紛紛胡蝶 날아가니 어느 친구 날 찾으리
구시월 寂寞草屋에 소슬바람 차도 차다
세간 즙물 찾아 파니 의복인들 오죽하랴...
2.
반 너머 늙었으니 다시 젊든 못하리라
이후랑은 늙지 말고 매양 이만 하여고저
백발아 네 짐작하여 더디 늙게 하여세라
제2부 기생놀음의 현장
●?콩볶은이하고 기생첩은 옆에 두고는 못 견딘다?는 속담이 있다.
《기생집에서 노는 법》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
●서울기생은 그 뒷바라지를 해주는 놈이 있으니 이름하여 기생서방이라 한다. 무릇 기생의 의식주는 모두 기생서방이 해댄다. 그리고 고객이 있으면 그 밤을 손님에게 양보하고, 없으면 잠자리를 같이 한다. 당초에는 관청에 기생을 두고 그 기생이 서방 가지는 것을 금했는데 뒤로 내려오면서 점점 기강이 해이해져서 기생이 서방을 가지게 되었다. 기생이 서방을 가진 것은 조선조 중엽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대원군 집권 이후에는 제도적으로 아예 사처소 오입장이들은 기생서방이 되게 하고, 승정원과 의금부의 노복들은 삼패기생인 더벅머리의 서방만 되게 했다.
※일패는 관기요, 이패는 은근짜라 하여 밀매음녀를 말하며, 삼패는 창녀를 부르는 말이다.
●만약 기생이 외입장이에게 예의를 잃는 일이 있으면, 치마와 버선을 벗겨서 맨발로 종로거리를 다니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생집의 세간을 모두 때려 부수고 기생의 사과를 기다려 새집을 사주었다.
《기생잔치의 현장》
●서울의 기생집에서 주로 한량과 왈짜들이 논다면, 지방 기생놀음의 주축은 아전, 서리, 장교 등의 하급관리들이다.
《기생의 출석부》
●『춘향전』에 나오는 남원기생은 서른 명이 넘는다. 『해주기생점고 호명기』에는 사십 명의 기생이 등재되어 있다.
제3부 기생이 보는 눈, 기생을 보는 눈
《기생이 본 다섯 유형의 남자》
●옹색한 남자의 삶
임자 일 내 다 아오 기껏해야 무명이불
어린것의 오줌똥은 무늬를 그려내고
春興이 方濃하여 夜事나 좀 하려하면
자는 아이 요강 찾고 어린 것은 젖 달라니
편하고 호화롭기 화류장에 비겨보오
황금옥의 호사생활 재물을 아낄쏜가
●애부는 마음이 통하는 남자다. 조용히 만나 정을 나누며 굳이 육체적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다. 육체적 사랑의 뜨거움은 없지만 깊은 정이 있어서 돌아서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정부는 풍채가 좋고 돈이 많으며 수단이 좋은 남자다. 기생이면 누구나 따르고 싶어 하는 남자다.
●미망은 기생을 사랑하면서도 표현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남자다. 기생 역시 사랑하면서도 고백을 못한다.
●화간은 무조건적 사랑을 바치는 남자다.
●차애는 한마디로 바보다. 기생에게 푹 빠져 생사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은 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마치 애부나 된 양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돈 많은 남자가 최고
하지만 어쩌면 애부라 정부라 미망이라
이런 말이 다 우스운 말이로다
천만금도 아끼잖던 일 등 才子 이갑이도
객지에서 곤궁하니 두십낭을 팔려했고
거문고 소리 듣고 밤중에 님 찾아간 탁문군의 천생연분
사마상여 배신으로 신세 처량하게 되니
하물며 부엌에 땔감 없다 곳간에 쌀이 없다
관청에 세금 물라 가게 주인 외상 물라
강에서 인심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
제 것 있고야 할 말이니
돈 많은 남자가 무엇보다 으뜸이라
※사마상여(B.C 179-B.C 117)
고향에서 곤궁에 처해 있을 무렵 쓰촨성 임공현의 부호 탁왕손(卓王孫)에게 초대된 자리에서, 그 딸인 탁문군을 보자 연정을 품게 되었다. 탁문군은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있었던 터에 사마상여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청두로 사랑의 야반도주를 하였다. 두 사람의 생활은 극도로 가난하고 궁하여 수레와 말을 팔아 선술집을 차렸다. 문군이 술을 팔고, 상여는 시중에 나가 접시닦이 일을 하였다고 한다. 탁왕손은 진노하였다가 결국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고 훗날 많은 재산을 남겨주었다. 상속으로 부유해진 사마상여는 7대 황제 무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궁정문인으로 많은 명작을 남겼다. 탁문순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한나라 최고의 문인으로 등극한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하다.
※두십낭
유명한 명기인 두십낭이 기생생활을 정리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고위관리의 아들 이갑에게 시집을 갔으나 이갑이 돈 때문에 부호인 송부에게 팔아넘기려고 하자, 그들이 보는 앞에서 기생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수천 금에 해당하는 금은보화를 강물속에 던지고 자신도 뛰어들어 죽는다는 명말의 소설〈杜十娘怒沈百寶箱〉의 주인공이다.
《기생, 요물인가 보배인가》
●조선 사람들은 기생을 요물, 구체적으로는 여우로 보고 있다.
《기생이 몸》
●기생에게 몸은 곧 자산이다.
●늙는 것의 슬픔이여
우리 인생 헤아리니 이팔 청춘 삼십 전이 불과 십년 내외사라.
제4부 기생과 편지
《그리워하다 죽어버려라》
●원앙새는 물에 노니는 법, 벌 나비 꽃 찾는 걸 어지 마다하리까?
●기생이 남자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기생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은 기생방의 오랜 철칙이다.
《날 데려가주오》
●기생의 가장 큰 소원은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스무 살의 청주기생이 스물아홉 살의 선달님한테 자신을 받아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선달님 권력으로 내 한 몸 못 건질까. 천금이 꿈속이라, 이것저것 생각할까? 높고 큰 집 뜻이 없고 비단 쌀밥 생각잖소. 가시비녀 베치마로 한 몸을 가리우고, 나물국죽 토장으로 하루 한때 연명하나 우리 님 뵈옵고서 백년해로 지낼진대, 시아버지 인정받은 당나라 기생 이와 내 아니 원하련만, 장부의 굳은 마음 첩의 정을 아시는지...생각잖고 잊으실 줄 내 정녕이 알건마는, 그 모습 나 버린 거동 눈에 암암뿐이로다. 여자가 한 품으면 한여름에 서리 내린 단 말, 님도 더러 생각하오.?잊지 않고 생각노라?듣기 좋게 하려니와, 잊잖은 것 무엇이오 생각는것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