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채식주의자

청담(靑潭) 2016. 6. 9. 23:09

 

채식주의자

한 강(1970~    )

지난 5월 16일, 소설《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수상했다는 보도가 언론에 대서특필 된 뒤 이는 우리 문화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저자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세 개의 중편소설을 쓴 뒤 2007년에 이를 합쳐 하나의 장편소설로 발표한 것인데 영국의 문학도인 이제 스물여덟 살의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함으로써 유럽에 알려지면서 이번에 공동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21세 때까지는 모국어인 영어만 읽고 쓸 줄 아는 이른바 ‘모노 링구얼’이었는데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번역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영국에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어를 선택했으며, 지난해 런던대학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고마운 문학도이다.

 

한국도 오래전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겠다며 문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한데다, 작년에 인기작가인 신경숙씨의 표절사건으로 크게 실망을 준 터에 전혀 뜻밖의 큰 상을 받게 되어 모두들 흥분하는 느낌이다. 본인이나 문학계의 그 어떤 의도 없이 주어진 수상이야말로 진정 값진 상이다. 

 

“이 소설은 간결하며 긴장감 넘치고 아름답다. 한 평범한 여성이, 자신을 가정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속박시키는 모든 관습과 선입견에 저항하는 과정이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신랄하게 그려진다. 이 압축적이고 매우 아름다우며 충격적인 책은 어쩌면 꿈에 나올 정도로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심사위원장 보이드 턴킨의 평가라고 한다.

나는 본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재를 바로 보려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역사학도인지라 소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은 거의 없으나 양드리가 즉각 구입하여 책상에 놓여 있는데다 유명한 소설이라서 꼭 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관객이 몰리는 인기영화는 그래도 보아놓아야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좀 이상한 믿음과 큰 다름 아니다.

 

 

Ⅰ. 채식주의자

너무나 평범한 여자인 『영혜』의 남편이 주인공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별 매력이 없는 그는 작은 회사의 직원으로 사랑을 느끼지도 못한 채 그냥 결혼한다. 아직 아기도 없는 결혼 5년차인 어느 해 2월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내는 이상한 행동을 시작한다. 『영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과 신념에 의해 실천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꿈을 꾸면서 시작된 이상행동일 뿐이다.

 

장인에 의한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아내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애정도 없으므로 아내에 대한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마치 타인인 듯 구경꾼들 중의 한사람인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는 주저 없이 아내를 버린다.

서로 사랑의 확인 없이 무작정 관습대로 결혼하고 행복한 미래의 삶을 만들어 나가려는 공동의 노력이 없는 부부에게서는 언제라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Ⅱ. 몽고반점

주인공은 영혜의 형부다. 비디오 작가인 그는 성실하고 현모양처형인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이 있다. 그는 화장품 가게를 하는 아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예술가이다.

처제인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있을 것이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엉덩이 가운데에서 푸른 꽃이 열리는 장면이 바로 그 순간 그를 충격한다.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벌거벗은 남녀가 온몸을 꽃으로 칠하고 교합하는 불가해할 만큼 정확하고 뚜렷한 인과관계로 묶여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는 작업에 착수하여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한 처제의 나신에 꽃을 그리고, 같은 작업을 하는 후배의 나신에도 꽃을 그려 실제로 성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나 거절당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고 처제와 성행위를 하면서 비디오를 찍는다.

〈그녀의 몽고반점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그의 성기는 거대한 꽃술처럼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었다....〉

아내에게 이 장면은 발각되고 영혜는 정신병원으로, 남편은 정상으로 판정되지만 유치장에서 풀려난 후 어디론가 멀리 떠난다.

 

내가 평소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이 소설이 유난히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과 처제와의 섹스설정과 성행위묘사는 가히 충격적이다. 독자인 내게는 영화《바람난 가족》에서 30대 초반의 며느리가 이웃집 고교생과 사랑에 빠지면서 체육관에서 호기심으로 자신의 음부를 보고 싶어 하는 고딩에게 팬티를 벗고 뒤로 몸을 기울이며 자신의 음부를 보여주면서 ?구멍이 어딛~게??하던 충격적인 장면과 별 다름없는 적나라한 성적묘사다.

첫 번째 소설에서는 영혜가 꾸는 꿈의 내용이 너무 무서운 장면들이고, 두 번째 소설에서는 형부와 처제간의 성행위가 너무 파격적이다. 물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처제와 비디오 예술가인 형부가 벌이는 행위는 비록 병원에서 정신적으로 정상으로 판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결코 정상적이지 않는 형부에 의해 저질러지는 비정상적인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의 판단으로는 형부는 정신병의 초기단계임이 거의 틀림없다. 누구라도 자신도 모르게 영혜의 형부처럼 멘탈이 혼란에 빠져 제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채 반쯤은 미친 행동을 할 가능성을 충분히 간직하고 있다고 수십 년의 인생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한다. 자신의 의지가 강한 자는 극복해내지만, 약한자는 반쯤 미친 생각을 실행에 옮겨버리는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Ⅲ. 나무 불꽃

주인공은 영혜의 언니다.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느라 힘들지만 정신병원에 있는 영혜를 정성스럽게 돌본다. 대부분의 부모도 하지 못하는 일을 언니가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훌륭한 일이다.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작고 파릇한 몽고반점이 남편에게 어떤 영감이라는 것을 주었는지 그녀는 알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남편의 행동이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두 자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그렇다 사랑의 확신 없이 두 남녀가 그저 나이가 차서, 주변의 눈치 때문에, 몸을 섞었으니까, 아니 임신을 해버렸으니 하는 등등의 별 것 아닌 이유로 결혼하는 것은 후일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언제라도 발생할 개연성이 아주 크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라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한다.〉 그렇다. 어떤 젊은이들은 취직이 안 된다고 자살하고 어떤 이들은 사업에 실패했다고 자살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내가 사고로 죽어도, 사랑하는 자식이 사고로 죽어도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잘들 살아간다. 어떤 이는 아내가 사고로 죽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후다닥 새 아내를 찾는다.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랑 없이 확신 없이 결혼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랑의 확신 없이 결혼했다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간의 사랑이 없으면 소통이 될 수 없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없고, 성적으로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니 두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리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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