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야승

광해초상록(작자 미상)

청담(靑潭) 2016. 1. 4. 18:03

 

■광해초상록(光海初喪錄) : 1641, 인조 18

작자 미상

●7월 10일

제주 목사 이시방(李時昉)의 서목에,

“본월 초하루 해시쯤 광해의 숨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이므로 위리 안의 여인이 사사로이 염습을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전교하기를,

“예관 및 중관(中官)을 보내 호상함이 마땅할 것같으니 해조에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 판서 이현영(李顯英), 예조 참판 심액(沈詻), 예조 참의 조위한(趙緯韓)이 아뢰기를,

“전교에 예관을 보내 호상하라 하시니, 마땅히 성교에 의하여 거행하겠습니다. 예전에 폐비의 상에는 본조의 당상과 낭청을 보내서 상사를 치뤘습니다. 이번에도 이 예(例)에 의하여 시행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오늘 안에 출발하되 밤낮을 가리지 말고 내려가라.”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광해가 인심을 많이 잃어 천명이 전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광해를 도타이 생각하셔서 은혜와 예의를 모두 지극히 하여 주시어, 왕위에서 물러난 지 20년이나 살다가 천수를 마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전하의 성덕은 옛날 성군에 비해 부끄러움이 없으시며, 그 성덕은 천하 후세에 전하여질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생각건대 의리로 보아서는 종사가 중하기에 신민의 청에 못 이기시어 광해를 쫓아내고 폐위하셨지마는, 상례에 있어서는 다른 종친과 비교하여 보건대 간격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에서는 대내(大內)에 왕림하셔서 한 차례 곡을 하시고 백관들은 각 아문에서 변복하고 모여서 곡을 한 차례 하는 것으로 그치면 정의와 예의에 유감됨이 없을 것 같사오니, 대신들과 의논하시어 재결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승정원 도승지 한형길(韓亨吉), 좌승지 김상□(金尙□), 우승지 이후원(李厚源), 좌부승지 이성신(李省身), 우부승지 최유해(崔有海), 동부승지 홍무적(洪茂績)이 아뢰기를,

“광해는 윤기(倫紀)에 죄를 얻어 스스로 하늘과 사람에게 단절되고 신민의 버리는 바가 되었습니다. 이번 상사에 성상께서는 골육의 정을 생각하시어 의금(衣衾)과 관곽(棺槨) 등 필요한 것을 이미 후하게 하셨으니, 덕이 이보다 더하실 것이 없습니다. 백관이 모여서 곡하고 변복한다는 한 사항에 이르러서는 대의가 있는 바니, 어찌 가벼이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연산(燕山)의 상 때에 공조 참의 유숭조(柳崇祖)가 옛 임금의 복(服)과 같이 하자고 망령된 의논을 내었다가 당시 사간원이 죄를 청할 정도로까지 극론하였으니, 이것이 지난 일의 밝은 거울이 아니겠습니까? 예조의 계사를 받들어 올림에 부당한 것같으나 대신과 의논하여 재결하라는 말이 있기에 신등의 구구한 의견을 이와 같이 아룁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노라.” 하였다.

 

●9월 13일

연양군(延陽君) 이시백(李時白)(1581-1660 반정공신 이귀의 아들)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폐출된 사람은 하늘에 통하고 땅에 극하는 악한 짓을 하였으니 진실로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관직은 다시 줄 수도 없고 관대(官帶)도 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상례를 후하게 함은 이미 성상의 성덕에서 나온 것이나 어찌 관(棺)을 바꾸고 관대(冠帶)를 쓰자는 청을 감히 이런 때에 내는 것입니까? 폐출된 사람의 죄악은 스스로가 윤기에 단절되고 종사에 죄를 얻었으므로 비록 전하라도 그것을 사사로운 정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여 폐출하였을 때는 이미 그 직(職)은 없는 것이며 지금 그가 죽자 복직의 명이 내린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명정(銘旌)에 광해군이라 쓰자고 한 것이 어떤 사람의 의논에서 나왔는지 신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광해군이라 쓴다면 그 관직을 복직시키는 것이요 복직을 시키면 무죄라는 것이고, 그가 무죄라면 반정의 의거는 무엇이 됩니까? 손위(遜位)라는 두 글자에 이르러서는 더욱 해괴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10월 4일

예조 참의 목성선(睦性善), 좌랑 신휘(申徽), 경기 감사 이필영(李必榮)이 광해를 장사지내고 난 후 입경하였다.

정언 박장원(朴長遠)이 아뢰기를,

“신은 연양군 이시백이 올린 차자의 대략을 보았습니다. 오늘 삼사가 한가지로 지적되었으니, 신이 어찌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편안히 많은 관리를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또 신이 생각하기에 성상이 반정의 거사를 하심은 마치 청천백일같은 것으로 비록 시골의 아녀자나 어린아이들이라도 역시 그 광명정대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20년이나 전하의 조정에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대의에 어두운 자가 있겠습니까?

전날 예관이 아뢴 것이 말이 잘못되어서 지나치게 후(厚)하게 하자하였으나, 어찌 이것으로 후일에 변명 못할 모함을 끼치게 되겠습니까? 그 차사에 이르기를, ‘그 죄를 바르게 한 뒤에야 국시가 정해진다.’ 하였는데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너무 지나친 것같습니다. 그런데도 중신이 다시 차자를 올려 극론하니, 이것이 비록 후세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하나 인정을 살피지 않고 속히 대죄를 가하라 함은 어찌 성조의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습니까? 이렇든 저렇든 언관의 직위에 일각이나마 더 무릅쓰고 있기 어렵사오니, 신을 파직시켜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사양하지 말고 물러가서 기다리라.”

하였다.

 

광해군(1575-1641 : 재위 1608-1623)이 폐위된 후 강화도를 거쳐 제주도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거처하다가 66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 글은 7월 초 광해군 사후 예조에서 장례를 치르는 격식을 왕에게 올린 이후 장례를 치르는 10월 초까지 무려 3개월간 삼사와 승정원 그리고 공신인 이시백간에 치열한 의례공방전이 전개되고 있다. 관혼상제에 대한 지나친 격식논쟁을 벌이는 사림파, 그중에서도 서인들의 참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사상과 관행은 후일 서인과 남인의 예송논쟁으로 이어지고 국가발전과 민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저들만의 이론논쟁으로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고 굶주리고 죽어가도 저들은 끝내 변하지 못했다. 오늘날 자칭 서민을 위하며 정권을 다시 잡겠다는 자칭 진보적 정당이라는 새정치연합은 국가현안은 제쳐둔 채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사분오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들은 국가경제와 서민들의 삶과 청년들의 일자리와 베이비 붐 세대의 노후불안과 노인들의 찌든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내년 총선을 대비하는 금뱃지 쟁취에만 혈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 연말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센터(이하 CEBR)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15년 뒤에는 ‘경제 대국'(big boys)’ 클럽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15년 1조4천100억 달러에서 2030년 3조5천320억 달러로 증가해 세계 경제규모 순위가 11위에서 7위로 올라설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CEBR는 “이런 성장세는 주요 8개국(G8) 가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어 “한국의 성공은 제조업 강점에 기반하지만 점점 기술에 의존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또한 한국에는 친기업 인식을 지닌 유권자와 공공부문, 정부 등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코 정치인들이 나라를 잘 이끌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한편 CEBR은 2030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 대국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독일, 영국 다음에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실로 꿈만 같은 전망이다. 정치가 저러해도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각자의 주어진 직책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니 잘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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