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수
漢詩
365일
이병한 엮음
궁 리
중문학 교수인 이병한 선생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시를 뽑아 계절에 맞추어 365수를 수록하였다. 매월마다 마음에 드는 시를 한 수씩만 골라 이곳에 기록한다.
3월
병중에 꽃을 꺾어 들고 술을 마시다
조선 이달(1539-1612)
꽃피는 시절에 병든 몸 문 굳게 닫아걸고
억지로 꽃가지 꺾어 술 마시며 시를 읊네.
서글퍼라 세월은 꿈속에서 지나가고
봄을 즐김에도 젊었을 적 마음 이제는 없네.
4월
임 기다리는 마음
조선 이옥봉(1544-1595)
오시겠다던 임 어찌 이리도 늦으시는고
Em락의 매화는 하마 꽃이 지는데
문득 가지 위에 까치 우는 소리 듣고
부질없이 거울 들여다보며 눈썹 그리네.
5월
산중문답
당 이백(701-762)
무엇 때문에 푸른 산에서 사느냐구요?
빙그레 웃고 답은 하지 않지만 마음 절로 한가하답니다.
복사꽃 두둥실 물에 떠 저만치 흘러가는데
여기가 바로 딴 세상 속세가 아니거든요.
6월
초여름
송 증공(1019-1083)
연못에 비 후드기더니 둑에 물 가득 차고
산 높고 낮은 데 길 동서로 비꼈네.
복숭아꽃 살구꽃 한바탕 피더니
어느덧 들녘이 온통 푸르네.
7월
전원으로 돌아가 살다
동진 도잠(365-427)
남산 아래 콩을 심었는데
풀이 무성하여 콩 싹이 드무네.
새벽에 일어나 검불 쳐내고
달 드잊고 괭이 메고 돌아오네.
길 좁은데 초목이 자라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적시네.
옷이 좀 젖기로서니 아까워할 게 못되지만
바라는 일이나 어긋남이 없으면 좋겠네.
8월
칠월칠석
조선 이옥봉(1544-1595)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걱정은 무슨 걱정
뜬구름 같은 우리 삶에 이별 있음과는 견 줄 것도 아니라네.
하늘 위에서는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고 호들갑을 떠네.
9월
국화 앞에서
조선 고의후(1569-?)
꽃 있고 술 없으면 한심스럽고
술 있고 친구 없으면 또한 딱한 일.
세상일 하염없으니 따질 것 무엇이랴?
꽃보고 술잔 들고 한바탕 노래나 부르세.
10월
부끄러운 반평생
고려 김부식(1075-1151)
속세 사람들은 오지도 않는 곳
오르고 보니 정신이 맑아지네.
산 모양은 가을 되니 더욱 좋고
강물 빛은 밤인데도 밝네.
흰 새는 높이 다 날아가고
외로이 돛단배 홀로 가벼이 떠가네.
부끄럽구나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반평생 공명 찾아 헤매었으니.
11월
1. 해질녘 강촌 풍경
송 대북고
강가의 지는 해 모래밭을 비추고
물 빠지나 고깃배 강 언덕에 걸쳐 있네.
흰 새 한 쌍 나란히 서 있다가
사람을 보고 놀라 푸드덕 갈대숲으로 드네.
2.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조선 김인후(1510-1560)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가고 옴에 정해진 곳이 없거늘
부질없이 일백 년 살 궁리는 왜 하는가?
12월
부질없는 욕망
당 석습득
사람이 뜬 구름 같은 세상에 태어나
저마다 부귀 누리며 살기를 바라네.
고대광실에 수레와 말도 많고
부르기만 하면 백 사람이 대답하고 달려오네.
남의 논밭이나 가옥 마구 집어 삼키고
후손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하네.
그러나 나이 일흔도 넘기지 못하고
얼음 녹듯 사라질 목숨인 것을.
1월
설날
송 왕안석(1021-1086)
폭죽 소리 요란한 가운데 새해가 오고
봄바람 따라 대지의 따스함이 술독에 스미네.
집집마다 눈부시게 햇살이 밝고
모두들 복숭아나무 부적을 새것으로 바꾸어 거네.
2월
입춘
당 나은(833-909)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만 가지 초목도 이날부터 싹이 튼다.
하늘 저 멀리 기러기 구름 제쳐 북으로 날고
물가에는 고기가 얼음위로 튀어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