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한시 미학 산책

청담(靑潭) 2016. 7. 25. 19:38

 

 

한시 미학 산책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한양대 국문과교수인 정민선생의 한시 전공서적이다. 분량이 방대하여 무려 700여 쪽인데 시의 이해를 위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한시를 망라하여 영역에 따라 적절하게 예시하고 있다. 내가 비록 요즈음 한시에 큰 매력을 느끼고는 있다하지만 한자에 어둡고 한시에 문외한으로 한시에 대한 전문적 연구내용을 힘들여 정리할 필요까지는 없을지니 좋은 한시가 보일라치면 본란에 옮겨두고 감상하련다.

 

 

 

1. 허공속으로 난 길 - 한시의 언어 미학

 

■이 달(1539-1612) : 대추 따는 노래 본관 신평

이웃집 꼬맹이가 대추 서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맹이를 쫒는구나.

꼬맹이는 되돌아서 노인에게 소리친다.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진 살지도 못할 걸요.?

 

2. 그림과 시 - 寫意 傳神論

 

■신강수(1712-1775) : 골짝 어귀에서 만난 광경

푸른 치마 아가씨 목화 따러 나왔다가

길손과 마주치자 길가로 돌아섰네.

흰둥이 누렁이의 뒤를 따라 달리더니

주인아씨 앞으로 짝지어 돌아오네.

 

3. 언어의 감옥 - 立像盡意論

 

■양사언(1517-1584)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정지용(1902-1950) : 호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밖에.

 

4. 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 당시와 송시

 

당시 : 가슴으로 쓴 시(唐音)

송시 : 생각에 잠기고 이치를 따지며 유현한 맛을 풍기는 시(宋調)

 

■이안눌(1571-1636) : 집에 편지를 부치며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흰머리에 어버이 근심할까 저어하여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 장인데

올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적었다네.

 

5. 버들을 꺾는 뜻은 - 한시와 情韻美味

 

■정지상(1084? -1135) : 송인(대동강)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고운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려나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

 

■정지상의 또 다른 송인(送人)

뜰 앞에 한 잎 떨어지고  庭前一葉落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  床下百蟲悲

홀홀이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 忽忽不可止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悠悠何所之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  片心山盡處

외로운 꿈, 달 밝을 때  孤夢月明時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  南浦春波綠

뒷기약 그대는 제발 잊지 마소. 君休負後期

 

 

6. 즐거운 오독 - 모호성에 대하여

 

■정몽주: 征婦怨

한 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울며 보내고 돌아올 제 뱃속에 아기 있었네.

 

※김달진 선생이 번역한 것이다. 정민 교수는 이 번역의 4구를 비판하며 솜옷을 보내고 오는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남편이 수자리로 나가서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어려운 서민 살림에 살다보면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더구나 고려시대의 성풍속도는 성리학이 자리한 조선시대와는 전혀 달랐다. 오늘날 버젓이 남편 있는 많은 유부녀들이 남성들과 애인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이니 홀로된 과부들이야 그런 행동을 한다한들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정교수는 고려시대의 성 풍속도는 조선시대와는 아주 크게 달랐음을 간과하거나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정교수는 또 사학자 M모 교수의 ?고려의 성문란 풍정을 투영하는 작품?이라 평한 것까지 비판하고 있다. 물론 성문란 풍정을 묘사했다는 M 사학자의 해석도 옳치 않다. 남편을 수자리로 보냈으나 소식도 없고 혼자거 힘든 삶을 살다보니 어쩌다 원치 않는 아이까지 가지게 된 슬픈 여인의 한을 포은 선생이 읊은 것이다. 

 

그러면서 정교수는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있던 아이에요.』

라고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편이 수자리 나간 지 수년이 되었으니 뱃속에 있던 아이에게 솜옷을 주어 보내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무리한 해석이다.

내가 고려 말 변방을 지키는 군사인 수자리의 복무형태까지 자세히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유복자가 장성하여 변방에 나가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려면 족히 열 살은 넘어야 하는데 10년 동안 남편이 휴가한 번 오지도 않고, 가족이 찾아가지도 않고, 옷 한 벌 보내지도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변방을 지키려고 수천리씩 멀리 가는 것은 아니어서 10년, 20년씩 고향에 돌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 여러 해라는 말은 3-4년, 길어야 5-6년을 말함이지 10년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민교수의 해석보다는 한시 해석에 조금 무리가 클지는 모르지만 3구와 4구를 구별하여 『여러 해』는  삼, 사년을 의미하고, 남편을 울며 보낸 당시 뱃속에 아기가 있었고 지금 그 유복자를 키우며 슬픈 삶을 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7. 사물과 자아의 접속 - 政經論

 

■이양연(1771-1853) : 아가야 울지마라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울지 말아라

울타리 바로 옆에 살구꽃 폈다.

꽂 지고 살구가 곱게 익으면

너랑 나랑 둘이서 같이 따먹자.

 

■이필운 부인, 남취명(1661-1741)의 딸 남씨 : 悼孫女(손녀를 애도하다)

여덟 살에 일곱 해를 병 앓았으니

돌아가 누움이 오히려 편하겠구나.

희 눈이 펄펄 오는 오늘 이 밤에

어밀 떠나 추위 모름 가슴 아프다.

 

8. 일자사 이야기 - 詩眼論

 

■이 첨(1345-1405) 본관 신평

안개 끼자 두목지의 진희의 밤과 같고

달 밝으니 소동파의 적벽의 가을일세.

※두목(803-852) 소동파(1037-1101)

 

9. 작시, 즐거운 괴로움 - 苦吟論

 

■이삼만(1770-1847)은 일생에 먹을 갈아 구멍을 낸 벼루가 여러 개였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더니 벼루 여러 개가 밑창 나도록 그는 열심히 먹을 갈고 또 썼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원(允遠), 호는 창암(蒼巖). 전라북도 정읍 출생. 만년에는 전주에 살면서 완산(完山)이라고도 호를 썼다. 어린 시절에 당대의 명필이었던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는데, 글씨에 열중하여 포(布)를 누여가면서 연습하였다 한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글씨에만 몰두하여 가산을 탕진하였고, 병중에도 하루 천자씩 쓰면서 “벼루 세개를 먹으로 갈아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고 맹세하였다 한다. 글씨 배우기를 청하면 점 하나 획 하나를 한달씩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글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연히 전주에 온 부산상인의 장부를 쓰게 되었는데 그 상인이 귀향하여 감상가에게 보이게 된 것을 계기로 필명이 높아졌다고 한다. 하동 칠불암(七佛庵)의 편액과 전주판(全州板) 칠서(七書)도 그의 필적이라고 한다.

또, 전주 제남정(濟南亭)의 액(額)을 썼는데 갑오경장 때 제남정은 소실되었으나 액은 내정(內庭)에 날아 떨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오세창(吳世昌)은 “창암은 호남(湖南)에서 명필로 이름났으나 법이 모자랐다. 그러나 워낙 많이 썼으므로 필세는 건유(健愈)하다.”고 평하였다.

특히,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하였다. 전라도 도처의 사찰에 그가 쓴 편액을 볼 수 있다.

 

10. 미워할 수 없는 손님 - 詩魔論

 

■詩魔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다.

 

11. 시인과 궁핍 - 詩窮而後工論

 

■이색 (1328-1396) : 有感

시가 사람 궁하게 함이 아니라

궁한 이의 시라야 좋은 법일세.

내 길이 지금과는 맞지가 않아

괴로이 광막함을 찾 헤맨다.

얼음과 눈 살과 뼈를 에이듯 해도

기꺼이 마음만은 평화롭다네.

옛 사람 말 이제야 비로소 믿네

빼어난 시 떠돌이에 있다던 그 말.

 

12. 시는 그 사람이다 - 氣象論

 

氣象 : 바람, 구름, 비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

氣像 :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나 마음씨. 그런 性情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

※이 장에서 시에 나타나는 시인들의 氣像을 논하고 있는데 저자가 쓴 제목은 氣象論이니 이해하기 어렵다.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詩人은 모름지기 가슴속에 浩然氣像을 품을 일이다. 떳떳함을 길러야 한다.』그런데 왜 氣象論인가? 저자의 오류로 여긴다.

 

■최해(1287-1340) : 縣齋雪夜

세 해의 귀양살이 병마저 들고 보니

한 칸 집의 살림이 도리어 스님 같다.

눈 덮인 사방 산에 사람은 오지 낳고

파도소리 속에서 앉아 등불 돋운다.

※시인이 長沙監務로 좌천되어 있을 때 지은 시라고 한다. 長沙는 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이며, 내가 1981년 10월부터 1984년 2월까지 객사 앞 수퍼 안집에서 신혼살림을 한 곳이다. 무장소재지에서 동호면 바다까지는 족히 삼 십리다. 고지도를 찾아볼 때 당시에도 무장현 가까이 바닷물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군현이므로 개경에서 멀리 떠나온 시인은 마치 파도소리를 듣는 듯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무장을 다스리는 지방관으로 좌천된 것이지 결코 귀양살이는 아니었다. 과장법을 쓴 것일 뿐이다.

 

■得意詩

긴 가뭄에 단비를 만날 때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나는 순간.

동방에 화촉을 밝힌 첫날 밤

과거 합격 이름이 내걸렸을 때.

 

■失意詩

과부가 아이를 데리고 올 때

적에게 사로잡힌 장군의 표정.

은애를 잃어버린 궁녀의 얼굴

과거에 낙방한 선비의 심정.

 

■과거에 낙방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보낸 아내의 시

낭군께선 우뚝한 재주를 지니시곤

무슨 일로 해마다 낙제하고 오십니까?

이제는 그대 낯을 뵙기 부끄러우니

그대여 오시려면 밤중에나 오소서.

 

13. 씨가 되는 말 - 詩讖論

 

■정태화(1602-1673)

관서 땅 늙은 수령 한가해 일 없는데

봄바람에 취해 눕자 분홍 꽃잎 점을 찍네.

※정태화는 평생 동안 온갖 고위관직을 역임하고 72세에 영의정 벼슬을 내놓고 물러 난후 5개월 만에 세상을 뜰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우리 역사에 그리 흔치 않은 인물이다. 이 시에서 본인을 늙은 수령이라고 표현했는데 기실 당시 그의 나이는 40을 막 넘은 정도였다. 한시에는 40을 넘으면 스스로 늙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흔한데 당시에는 그 나이면 이미 손주를 보아 할아버지가 되고 평균수명이 40세 남짓이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이였으리라. 오늘날 법적으로 만 65세면 노인이라지만 70세에도 결코 늙지 않은 젊은 형님들이 부지기수다. 우리 모두 좋은 세월에 살고 있어라.

 

●23세 : 진사시에 합격

●27세 :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 이후 홍문관에서는 수찬·교리·응교를, 사간원에서는 정언·헌납·사간을, 사헌부에서는 집의를, 세자시강원에서는 설서·사서·필선을, 성균관에서는 사예·사성을 각각 지냈다. 또, 행정부서에서는 예조의 좌랑, 이조의 좌랑·정랑, 의정부의 사인, 예빈시(禮賓寺)·제용감(濟用監)·장악원의정 등을 역임.

●36세 : 세자시강원의 보덕이 되어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심양(瀋陽)행, 심양으로부터 귀국하자 그 이듬해(37세) 충청도관찰사로 발탁되어 당상관에 올랐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승정원동부승지가 되어 조정에 돌아온 이후 육조의 참의·참판, 한성부우윤·대사간, 평안도·경상도의 관찰사, 도승지 등을 두루 지냄.

●43세 : 육조의 판서와 대사헌을 되풀이 역임

●48세 : 우의정에 오른 직후 효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 연경(燕京)에 갔고, 그 뒤 곧 좌의정에 승진되었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취임하지 못하고 향리에 머물렀다.

●50세 : 영의정, 72세에 죽을 때까지 영의정 5차례 역임

 

14. 놀이하는 인간 - 잡체시의 세계 1

 

■이규보(1168-1241) : 미인의 원망

꾀꼬리 우는 봄날

진 꽃은 온 땅을 붉게 덮었네.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해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네.

임의 약속 믿음 없기 뜬 구름인 듯

제 마음은 일렁이는 강물 같네요.

긴 말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근심 겨워 찡그린 상 물리쳐볼까.

 

■神智體

보통머리로는 알 수가 없는 장난기 있는 시를 말한다. 김정희의 글씨에는 부정확한 글자가 많음에도 대부분 학자들이 대충 해석해버렸고 이에 미술을 전공한 이성현 선생은 글자 뒤에 숨어 있는 추사의 속뜻을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 『추사코드』라는 책이다. 추사는 한시의 이 신지체를 활용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담아 글씨를 쓴 것임을 알 수 있겠다.

 

15.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집체시의 세계 2

 

■예언성 참요

천리초는 어찌 저리 푸른가 千里草何靑靑

열흘 동안 점을 치니 살지를 못한다네. 十日卜不得生

천리초는 묶으면 董이 되고, 십일복은 卓자가 된다.청청은 푸르게 우거져 왕성한 모양이고, 부득생은 죽는다는 뜻이다. 한나라 헌제때 불렸다는 동요인데 당시 전횡을 일삼던 간신 동탁이 지금은 저렇듯 날뛰지만 머지않아 망할 것이라는 예언성 참요다.

 

■十八字得國 : 이씨조선의 건국을 예언한 노래. 1126년 이자겸은 이 말을 시중에 퍼뜨리고 자기가 왕이 되고자 인종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자기 딸들의 반대로 인종을 죽이지는 못하였다.

 

■走肖爲王 : 1519년 훈구파는 홍경주의 딸이 중종의 후궁인 것을 이용하여, 궁중 동산의 나뭇잎에 꿀로 走肖爲王 4자를 쓴 뒤, 이것을 벌레가 갉아먹어 글자 모양이 나타나자, 그 잎을 왕에게 보여 왕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다. ‘走 ·肖’ 2자를 합치면 조(趙)자가 되기 때문에, 주초위왕은 곧 “조(趙)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었다. 기묘사화의 이야기다.

 

16. 말장난의 행간 - 한시의 雙關義

 

■신광수(1712-1775)

내 나이 벌써 열아홉인데 爾年十九齡(이년심구녕)

벌써 비파잡고 다룰 줄 아네. 乃操持琴琴(내조지금금)

빠를 젠 빠르고 높고도 낮게 速速許高低(속속허고저)

지음에게 알리기 어렵지 않네. 勿難報知音(물난보지음)

 

■명의 정민정 고사

재상 : 연꽃으로 인해 연뿌리를 얻게 되었네. 因荷而得藕

정민정 : 살구 있어 매실은 필요 없지요. 有杏不須梅

재상 : 어디에서 짝을 얻을 셈인가? 因何而得偶

정민정 : 다행히 중매쟁이가 필요 없겠습니다. 有幸不須媒

 

17. 해체의 시학 - 파격시의 세계

 

■김삿갓 : 고약한 시골 훈장을 기롱한 시

서당이야 진작에 알고 있지만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방엔 모두 존귀한 물건뿐일세.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생도는 모두 다 열 살도 안돼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선생 와도 인사할 줄은 모르네.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18. 바라봄의 시학 - 觀物論

 

■이익(1681-1763) : 관물론

어떤 이가 야생 거위를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많이 주자 거위가 뚱뚱해져서 못 날았다. 그 뒤 문득 음식을 먹지 않았다. 사람이 병이 났다고 생각하고 먹을 것을 더 많이 주었다. 그런데도 먹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몸이 가벼워지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옹이 이를 듣고말하였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거위에게는 거위의 생리가 있다. 이를 벗어나니 병통이 된다. 그러나 보라, 자연은 자신의 리듬을 잘 알아 억지로 거스르는 법이 없다. 열흘 넘게 굶은 거위는 탐욕을 버리는 대신 자신을 잘 지켰다.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많이 먹고 뚱뚱해져 날지도 못하는, 그러고도 그 맛에 길들어 살을 찌우다 마침내 제 몸을 망치는 인간 거위들은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은가?

※요즈음 사법 또는 행정고시에 패스하여 승승장구하던 몇 사람이 경제범죄를 저지르거나 법을 어기거나 미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구속되거나 파면되고 있습니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뇌물을 받아 부정축재한 진경준 검사장, 전관예우로 축재한 홍만표 전 검사장, 최유정 변호사, 처갓집 거물매각에 관여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나향욱 교과부 기획관 등이다. 저들도 젊은 시절에는 사회정의를 추구하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러나 1% 특권층 의식에 포로가 되고 살이 쪄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연시 하며 범죄를 저지르고 ?민중은 개나 돼지 같이 다루어야 한다.?는 등의 망발을 서슴치 않았다. 저들은 수십 년 쌓아온 명예를 하루아침에 민중들에게 빼앗겼다. 

 

■이덕홍(1541-1596) : 退溪(1501-1570)先生考終記

○12월 3일, 설사를 하셨다. 매화분이 그 곁에 있었는데 다른 데로 옮기라 하시며 말씀하셨다.

?매형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다.?

○12월 8일 아침,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날씨는 맑았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갑자기 흰 구름이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 가량 내렸다. 조금 뒤 선생께서 누울 자리를 정돈하라 하시므로 부척해 일으키자 앉은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걷혔다.

 

■정인홍(1535-1623) : 남명 조식(1501-1572) 임종기

○12월 15일 아침, 인홍과 우옹을 불러 말씀 하셨다.

?오늘은 정신이 전과 다르니 내가 죽을 모양이다. 다시는 약을 올리지 마라.?

손으로 두 눈을 비비고 눈을 떠 보시더니

?자세하고 밝은 것이 평시와 다름이 없구나.?

하셨다. 또 창을 열게 하시더니

?하늘 해가 참 맑다. ?

고 하셨다. 이날부터 선생은 약을 끊으시고 미음조차 입에 대지 않으셨다. 종일 가만히 누워 계셨으나 조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19. 깨달음의 바다 - 禪詩

 

■보우(1301-1382) : 辭世頌

인생의 목숨이란 물거품과 같거니

여든 몇 해 생애가 봄 꿈속과 한가질세.

지금에 죽음 임해 가죽자루 내던지니

한 덩이 붉은 해가 서산에 지는구나.

 

20. 산과 물의 깊은 뜻 - 山水詩

 

■서거정(1420-1488) : 秋日

띳집은 대숲 길로 이어져 있고

가을 날 햇살은 곱기도 하다.

열매 익어 들린 가지 축 쳐졌는데

날씨 차서 넝쿨에는 참외도 없다.

나는 벌 쉴 새 없이 잉잉거리고

오리는 한가로이 기대어 조네.

몸과 맘 무척이나 고요하구나

물러나 살자던 꿈 이루어졌네.

 

21. 실낙원의 悲歌 - 遊仙詩

 

■漢의 樂府詩 : 薤露

풀잎 위 이슬

너무 쉽게 마르네.

내일 아침 이슬은 다시 내리겠지만

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르누나.

 

22. 시와 역사 - 詩史와 史詩

 

■이 달 (1539-1612) : 祭塚謠

흰둥이 앞서가고 누렁이 따라가니

들밭 풀 주변에는 무덤들만 늘어섰네.

제사 마친 늙은이는 밭 사이로 난 길에서

손자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두보(712-770) : 石壕吏

저물어 석호촌에 묵어 자는데

밤중에 아전이 사람 붙잡네.

늙은이 담을 넘어 도망을 가고

늙은 아낙 문에 나와 내다보누나.

아전 호령 어찌나 성을 내는지

아낙 울음 너무나 괴로웁구나.

아낙이 나서며 아뢰는 말이

?세 아들놈 업성에 수자리 나가

한 아들이 편지를 부쳐왔는데

두아들 새(塞) 싸움서 죽었다네요.

산 놈은 그럭저럭 산다하지만

죽은 놈은 그걸로 그뿐입지요.

집안엔 사내라곤 아무도 없고

젖먹이 손자새끼 하나 있지요.

손자가 있으니 어민 못가고

가려해도 언전한 치마도 없죠.

늙은 몸 힘은 비록 쇠하였지만

나으리 따라서 밥에 떠나가

하양 땅 수자리에 급히 응하면

새벽밥은 지을 수 있겠습지요.?

밤 깊어 말소리도 끊기더니만

흐느껴 우는 소리 들은 듯 했네.

이튿날 앞길로 나서려는데

할아범 혼자서 작별하누나.

 

■정약용(1762-1836) : 애절(哀絶)양(陽)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 구슬프다

현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에 호소하네.

구실 면제 안 해줌은 있을 수 있다지만

남근을 잘랐단 말 듣도 보도 못하였소.

시아버진 세상 뜨고 아이는 갓난앤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나.

억울함 호소해도 문지기는 범과 같고

이(里)정(正)은 고래고래 소마저 끌고 갔네.

칼 갈아 뛰어들자 피가 온통 낭자터니

아들 낳아 곤경 당함 제 혼자 한탄한다.

잠실(蠶室)의 궁형이 어이 잘못 있었으랴

민 땅의 자식 거세 진실로 슬프고나.

자식 낳고 사는 이치 하늘이 준 바여서

건도(乾道)는 아들 되고 곤도(坤道)는 딸이 되네.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말하는데

하물며 백성이 뒤 이을 일 생각함이랴

부잣집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울리면서

쌀 한 톨 베 한 치도 바치지 않는구나.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객창에 자꾸만 시구(鳲鳩)편(篇)을 읊는다네.

 

23. 사랑이 어떻드냐? - 정(情)시(詩)

 

■ 신위(1769-1845)

흰 모시 적삼에 눈썹 곱게 그리고서

마음속 정 둔 얘기 재잘재잘 얘기하네.

임이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말아주오

오십 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이규보(1168-1241)

모란꽃 진주 같은 이슬을 머금으니

미인이 그 꽃 꺾어 창가를 지나간다.

방긋이 웃으면서 임께 하는 말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신랑은 일부러 장난치느라

?당신보다 꽃이 훨씬 어여쁘구려.?

그 말에 미인은 뾰로통해서

꽃가지 내던져 짓뭉개더니

?꽃이 진정 저보다 좋으시거든

오늘 밤은 꽃과 함께 주무시구려.?

 

■심의당 김씨(1769- ? ) : 깊은 밤의 노래

밤빛은 아득하여 오경에 가까운데

뜰 가득 가을달이 참으로 또렷하다.

이불 쓰고 억지로 임 그려 잠 청해도

임의 곁에 이르면 절로 놀라 깨었네.

 

■이옥봉(1544-1595) : 규(閨)정(情)

약속은 하시고선 왜 늦으시나

정원의 매화도 시드는 이때.

나무 위 가치가 울기만 해도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김정희(1786-1856) :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처지 바꿔 달라 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 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마음의 슬픔 알게 하리라.

 

※고려 문인

●정지상( ? - 1135)

한시 송인(送人)의 작자. 이규보의 《백운소설》은 후일담으로서 귀신이 된 정지상이 어느 날 김부식이 "버들은 천 가닥으로 푸르고 복사꽃은 만 점(點)으로 붉다"는 시구를 짓자 김부식 앞에 나타나, "버드나무가 천 갈래인지 복사꽃이 만 점인지 그걸 네가 세어봤느냐? 어떻게 '버들은 가닥마다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 라고 지을 줄 모르느냐?" 라며 김부식을 욕했고, 결국 뒷간에 간 김부식의 불알을 잡아 비틀어 죽였다는, 김부식에 대한 악감정이 다분히 배어난 일화를 남기고 있다

 

변산소래사[ ]

古徑寂寞縈松根(고경적막영송근) 오래된 길 적막한 채 솔뿌리가 얼기설기
天近斗牛聊可捫(천근두우료가문) 하늘이 가까워 두우성은 손에 잡힐 듯하네
浮雲流水客到寺(부운류수객도사) 뜬구름 흐르는 물인 양 나그네 절에 이르렀고
紅葉蒼苔僧閉門(홍엽창태승폐문) 단풍잎 푸른 이끼에 스님은 문을 닫는구나
秋風微涼吹落日(추풍미량취락일) 가을바람 선선하여 지는 해에 불고
山月漸白啼淸猿(산월점백제청원) 산 달이 차츰 훤해지자 원숭이 슬피 우네
奇哉厖眉一老衲(기재방미일로납) 기이하구나, 긴 눈썹 저 늙은 중은
長年不夢人間喧(장년불몽인간훤) 한평생 인간의 시끄러움 꿈도 꾸지 않고 있네

 

이 시는 정지상이 왕명에 의해 충청도와 경상도 등지를 다닌 적이 있는데, 귀로에 변산반도에 있는 부안 소래사(오늘날 내소사)를 찾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솔뿌리가 얽혀 있을 정도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하늘이 가까워 두숙(斗宿)과 우숙(牛宿)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나그네가 절에 이렀는데, 붉은 단풍과 푸른 이끼로 뒤덮인 산에 문을 닫은 채로 스님이 살아가고 있다. 절에서 쉬자니, 해는 지고 어디선가 원숭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기이하게도 그곳에 사는 늙은 스님은 인간세상의 고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듯하다. 이 시는 이렇게 절의 승경(勝景)과 거기에 거주하는 늙은 스님의 삶을 기리고 있다.

※당시에 부안에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는 것인가? 내소사와는 변산반도의 반대편인 상서면에 원숭이학교가 세워져 있으니 원숭이의 역사가 있는 고장인가? 고증을 요하는 사항이다.

 

●이규보(1168-1241)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무인집권기 대표적 문인. 1199년 6월에 전주목 사록 겸 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로 부임하여 근무한 적이 있다. 이규보는 당시 무단정권의 실력자인 최충헌의 시회(詩會)에 불려나가 그를 칭송하는 시를 써서 벼슬을 얻었고, 이후 전주목에 부임하였다. 이때 전주의 속현들을 둘러보며 역사적인 〈남행월일기〉라는 기행적 수필을 남겼다. 9월 23일 처음 전주로 들어오면서 말 위에서 ‘북당에서 눈물 흘리며 어버이를 작별하니/ 어머니를 모시고 관직나간 고인처럼 부끄러운데/ 문득 완산의 푸른 빛 한 점을 보니/ 비로소 타향객인 줄 알겠네(北堂揮涕忍辭親 輦母之官愧古人 忽見完山靑一點 始知眞箇異鄕身)’라 읊은 7언절구가 전해온다. 그리고 지금의 전주 효자동을 지나다가 그 곳에 있는 무명의 효자비로 인해 효자리가 되었다는 5언고율시 ‘비석 세워 효자라 표했는데/ 일찍이 이름을 새기지도 않았네/ 어느 때 누구인지 알 수도 없으니/ 어떠한 효행인지 모르겠네(立石標孝子 不曾鐫姓氏 不知何代人 孝行復何似)’라 읊기도 했다. ...12월 기사(己巳)에 비로소 속군들을 두루 다녀 보았다. 마령(馬靈), 진안(鎭安)은 산골에 있는 옛 고을인데 그 백성들이 질야(質野)하다. 얼굴이 잔나비 같고 배반(杯盤)과 음식이 만맥(蠻貊)의 풍모가 있는데, 꾸짖거나 나무라면 마치 놀란 사슴처럼 금방 달아날 듯하다. 산을 따라 감돌아가서 운제(雲梯)에 이르렀다. 운제로부터 고산(高山)에 이르기까지 위태로운 봉우리와 드높은 고개가 만인이나 높게 솟아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말을 타고 갈 수가 없었다. ...

이규보는 부안 객사, 마령객사, 전주객사, 낭산(현 익산시 낭산면)고을, 오수역(현 임실군 오수면), 인월역(현 남원시 인월면), 남원 원수사, 임실군수에게, 순창 적성현(현 순창군), 보안현(현 부안군 보안면), 옥야현(구 이리시), 갈담역(현 임실군 강진면), 고부(현 정읍시 고부면)태수 오천유에게, 보안현 진사 이한재에게 등 60 여수가 넘는 많은 작품을 동국이상국집과 백운소섷에 담아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전주목에 부임한 지 1년 4개월 만에 면직을 당하기도 했는데, 고종 17년(1230년)에 또 한 사건에 연루되어 부안 위도에 유배를 당하였다.
그러나 8개월 만에 풀려나와 이듬해 고종 18년(1231년) 12월, 63세 때 재목창의 나무베기 감독직인 작목사(斫木使)로 다시 부안으로 오게 되었다. 그가 우리나라 재목창인 부안 변산에 있으면서 한낱 벌목의 감독직인 작목사로 일하는 자신을 한심스러워 하면서 7언시를 남겼다.

호위하는 수레 속에 권세부리니 그 영화 천박하고
벼슬이름 작목사라니 부끄럽기 그지없네
변산은 자고로 하늘이 내린 천부라 했는데
좋은 재목 골라서 동량으로 쓰리라


 

 

24.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 尙同求異論

 

■상동구이론 :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한다.

-옛것은 그대로 따라 해서도 안 되고, 옛 것과 완전히 달라서도 안 된다.

 

■조지훈(1920-1968) : 또 하나의 시론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배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

 

■김상용(1902-1951) :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창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윤석중(1911-2003) : 낮에 나온 반달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딸랑딸랑 채워 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짝 발에 딸깍딸깍 신겨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빗다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앗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곱게 빗겨 줬으면.

 

에필로그 : 그때의 지금인 옛 날 - 通辯論

 

 

■박지원(1737-1805) : 영(嬰)처(處)고(稿)서(序)

옛것을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낫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지금 것으로 보았을 뿐이리라. 세우러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에 그 망막을 떠나간다. 춘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문학은 발전해 왔는가? 아니다. 다만 변화해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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