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申년 斷想
■ 서기 2016년, 단기 4349년, 퇴직 2년차인 丙申年이 가고 서기 2017년, 단기 4300년,丁酉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아직까지는 마음과 몸 모두 건강합니다.
1월
■ 익산문화원에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오랫동안 취미생활로 삼아 배우고 익히고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선택한 것입니다. 익산문화원은 20여 년 전부터 전문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바 있고 작년에 이미 회원으로 등록하였으므로 채부원장의 안내로 이곳에 등록하여 여산 김계천 선생으로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임이름은 연우회이고 회원은 내가 가입한 후 계속 늘어나서 24명입니다. 월요일에는 돌아가면서 점심을 삽니다. 양드리는 이당 송현숙 선생의 서예실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서예글씨를, 양드리는 문인화를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 욕심도 없습니다. 그저 글씨를 좀 쓸 수 있도록 배우면서 좋은 문장과 한시를 접할 수 있을 터이므로 큰 공부도 될 듯합니다. 행서를 잘 써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양드리에게는 욕심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이당으로부터 2년간 서예를 배운바 있고 여러 해 문인화를 습작한 경력이 있는데다 소질도 많으므로 자신의 특기로 잘 살려서 문인화가가 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본인도 그런 결심을 하였습니다. 여산선생은 서가협회를 이끄시고 이당선생은 서예협회를 이끄시는 전북서예계의 어른들 이십니다.
퇴직 첫해인 작년에는 테니스와 정원관리를 배웠습니다. 이제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일 시골농장에 다녀야하고, 주 2~3회 정도는 테니스장에 나가고, 또 주 2회 서예실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등산도 해야 하고 MTB 자전거도 타야 합니다. 바쁘게 살아야지요.
■조경관리사 3급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작년 한 해 익산대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한 후 시험을 보고 받은 것입니다. 그저 협회에서 조경공부를 한 징표로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자격증입니다. 그래도 조경공부를 하는 덕분에 시골집 건축에 대해 자신 있게 구상하고 그 구상대로 성공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 주소를 고향집으로 이전하였습니다. 농지원부를 발급받아 농업기술센터에 제출하고 공식적으로 농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산농협의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전직은 교원, 현직은 농민이 된 것입니다.
2월
■ 고등학교 동기동창회 회장을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총무인 최교장이 차기회장을 맡기로 하였으나 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이라 바쁘다는 이유로 연임을 요청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동안 총무가 바빠서 내가 총무일도 절반은 하는 모양샙니다. 임기는 2년입니다.
■ 도교육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원대학교 중등교장 연수 협력위원으로 추천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혁신학교를 운영하며 노력한 것을 보고 추천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부끄럽지만 기꺼이 승낙하였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활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간은 2년입니다.
■ 김병근 선생이 고등학교 동기로써 익산과 군산의 교원출신들이 함께하는 가벼운 등산모임을 조직하였습니다. 10여명이 한 달에 한 번씩 전주 익산 군산부근의 산을 오르고 식사를 하는 모임입니다.
■ 강덕신 선생이 국수를 좋아하는 고교동기 친구들이 약 2주일에 한번 씩 점심때 모여 국수를 먹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부담이 없어 좋은 모임입니다.
3월
■ 배산으로 운동을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 발이 저리더니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주저앉았습니다.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일입니다. 별 수 없이 되돌아오는데 몇 번을 쉬어가며 겨우 왔습니다. 척추관 협착증이라고 합니다. 조용원정형외과에서 2주간의 약물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는 나았습니다. 완치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계속 운동을 하면서 조심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운동은 좋지만 무리한 노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삽질을 하거나 리어카를 끌거나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 내 생애 처음으로 임플란트를 하나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믿고 다니는 하얀치과 원장님이 하라 시니 꼼짝없이 하게 된 것입니다. 감각이 없는 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내년에 한 개만 더하면 당분간 내 치아는 큰 걱정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 어머니께서 심신이 쇠약하셔서 김제우석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지병인 심부전증과는 관련이 없고 단순한 감기로 시작하는 노환으로 기운이 약해지면 겁이 나시는지 금년에도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무려 여섯 번이나 입원하셨고 그나마 전주에 두 번, 익산에 한번, 군산에 한 번, 김제에 두 번을 입원하시니 나도 일 년 내내 병원만 찾으면서 산 듯합니다. 몸과 마음이 편하게 되시면 퇴원하시는데 한 번 입원하시면 대략 10일~15일입니다.
■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작년에 정지작업을 하면서 미리 연못을 만들 자리에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놓았었습니다. 박영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여산으로 돌을 얻으러 갔더니 뜻밖에도 석공장에 6촌동생인 영채가 생산부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고맙게도 요긴하게 사용할만한 돌을 많이 줍니다. 덕분에 돈 들이지 않고 순전히 내손으로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배우면서 만들었는데 썩 괜찮습니다. 손재주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내손으로 연못을 만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비단잉어를 몇 마리 사서 길렀더니 새끼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어미는 세 마리지만 새끼들까지 합하면 무려 30여 마리나 됩니다.
4월
■ 지산 쁠라스 둘레에 잔디를 입혔습니다. 2월말에 김호길 선생의 도움을 받아 마사토를 한 트럭 구하여 놓고 3월에는 제초제로 풀을 죽였습니다. 잔디를 구입한 후 작은 돌맹이까지 치우고 마당을 고르게 만든 다음 김호길 선생, 김병근 선생, 강거희 선생의 도움으로 잔디를 입혔습니다. 세 분이 하루 종일 힘들게 도와주었습니다. 언덕과 집주변 모든 곳에 잔디를 입히니 비로소 예쁜 시골집의 모양새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여름 사이에 잔디가 엄청 자라서 집주변을 완전히 덮었습니다.
■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는 10박 12일짜리 여행이지만 떠날 때와 도착할 때 서울집에서 잤으므로 나로서는 무려 13박 14일이 되었습니다. 긴 여행이었지만 무척 행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5월
■ 교원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중등교장연수 협력위원으로 3개월간 월 4회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협력위원은 분임토의를 지도하고 평가하는 일을 합니다. 각 시․도별로 한 분씩 나오시는데 교육국장이나 교육장 출신이 많고 나머지는 고등학교 교장출신입니다. 중학교 교장은 나 하나입니다. 교육계에서 성공하신 유능한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나로서 큰 영광입니다. 모두 인격이 있으시고 품격을 갖추신 분들입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새로운 교장선생님들께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으로 연수를 받으시는 새 교장선생님들이 모두 미래지향적인 교육관, 소통과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 초등학교 동기동창회장을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졸업 50주년 행사를 개최하고 행사를 치르고도 약 900여만 원의 운영기금을 마련하였고, 연회비제를 새롭게 시행하여 63명의 회원이 참여하였습니다. 이제 기금은 1천 1백여만 원이 되었습니다. 5월에는 전주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10월에는 서울에서 등산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동창회가 정착될 때까지 다시 한 번 회장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임기는 3년입니다. 재무이사직을 신설하여 모든 재정을 이관하였습니다.
6월
■ 양드리가 제 27회 전북서예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특선을 차지했습니다. 소질이 많고 열심히 그린 결과라고는 하지만 본격 문인화 입문 6개월 만에 특선을 하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변인들에게 죄송하기도 합니다.
■작년에 시골집을 정리하면서 잘 못 건드려 훼손된 앞집 담을 다시 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토끼장을 설치하였습니다. 닭장의 반대편에 토끼장이 있고 중앙은 닭들과 토끼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토끼는 번식력이 강하여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날 텐데 이를 처리할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벌써 7마리의 새끼들을 낳아 예쁘기 짝이 없습니다. 토끼장을 들락거리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밭에 나가 마음대로 풀을 뜯고 다시 어미들이 있는 토끼장으로 들어옵니다. 아직은 해치는 짐승이 없어 안심이지만 언제 살쾡이나 고양이가 피해를 입힐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극복하면서 마냥 자유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염소 한 마리를 기르고 싶지만 관리가 어려워 포기하였습니다. 내년에는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 처음으로 육일회 여행을 추진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연 2회의 모임만 가져왔는데 모임결성 10주년 기념으로 강진을 다녀왔습니다. 전경욱 교장이 행사를 맡아주었습니다. 퇴직교장이 많아지므로 정례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금년에는 모든 경비를 기금에서 사용했지만 내년부터는 회장부터 일정액을 내면서 약간의 회비를 걷어야 할 것 같습니다.
■ 해외여행은 앞으로 꼭 가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동유럽, 러시아․북유럽, 미국동부, 미국서부, 호주․뉴질랜드, 인도 등입니다. 경비가 많이 드는 장거리 여행이므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젊을 때 가야만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조언들을 합니다. 건강이 허락되어 매년 갈 수 있다면 60대 내에 모두 가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여행도 가 볼 만 한 곳이 무수히 많습니다. 경상도나 강원도 등 먼 타시도 여행은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하여 가려면 힘든 일이므로 되도록 단체버스여행에 참여하려 합니다. 문화원 답사 연 2회, 원불교 익산교당 문화답사 연 4회에는 꼭 참여하고 기차여행도 가끔 해보고 싶습니다.
7월
■ 6월부터 이미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고, 정말 무지하게 더운 여름이 계속되었습니다. 택시와 KTX를 이용하지만 복장에 신경을 쓰면서 주1회 교원대에 다녀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8월
■ 무더위와 가뭄이 연일 계속되었습니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이 길고, 도대체 몇 달째 비가 오지 않는 해는 기억에 거의 없습니다. 특히 가뭄은 우리 지방이 유난해서 사람들이 모두 지쳤습니다. 교원대 출장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9월
■양드리가 제10회 마한문인화대전에서 문인화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너무 빠른 수상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괜한 걱정도 생깁니다. 상금까지 받으니 민망합니다.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큰 상을 받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눈에도 작품은 좋습니다. 나는 예상대로 첫 출품에서 보기 좋게 낙선하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시상식은 10월 1일에 익산예술의 전당에서 있었고 그곳에 전시되었습니다.
10월
■ 해리중학교 30회 홍보이사인 김진득군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30회는 내가 담임을 한 적도 없고, 2학년 때 남학생 네 반중 세반을 가르친 것이 전부인데 내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 김호길 선생은 3학년 담임을 하다가 10월에 갑자기 중간 발령을 받아서 김종기 선생이 담임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초청을 받아 김종기, 김병근, 이치수, 강거희 선생과 함께 모악산 등산에 참여했습니다. 김호길 선생은 해외여행중이라 참석치 못하였고 담임이었던 조희태 선생도 오셨는데 실명을 하셔서 전혀 앞은 보지 못하시지만 마음은 여전히 건강했습니다. 나이가 벌써 일흔 하나이신데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도 철철 넘칩니다. 휼륭한 선배입니다.
졸업생들은 무려 63명이나 모였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49세인데 내 눈에는 아직도 학생들로 보여서 반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우리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한 그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선물도 주고 스승의 노래도 불러주고 업어도 주었습니다. 너무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 내가 연우회전에 출품을 했습니다. 6월에 쓴 것인데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나의 호도 정해 졌는데 여산선생께서 나의 뜻을 반영해서 靑潭이라고 지으셨습니다. 『깊고 푸른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회원전이니 망정이지 어디 다른 데에다는 절대 내놓을 수 없는 졸작입니다. 작품들은 솜리예술회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 대성고 7회인 김임순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해리중 제자인 이병석군과 부부가 되어 인연이 깊은 똑똑한 제자로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전주에서 친구들 모임이 있으니 뵙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준호 선생과 나 그리고 제자들인 황선미, 정화자, 이미경, 박현숙, 이인숙, 김정화 등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쉰 한 살, 쉰 두 살이라는데 내 눈에는 모두 아이들만 같습니다. 역시 반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김임순과 이병석은 기대했던 만큼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열심히 잘 살고 있고, 간호사인 황선미는 교사인 남편과 창원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박현숙이는 제자인 정진호와 결혼하여 광주에서 살고 있답니다. 이미경이는 당당한 여성 사업가이고 김정화는 곧 사위를 본다고 합니다.
■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JTBC에서 손석희 사장이 용감하게 터트렸습니다. 온 나라가 쓰나미를 맞은 듯 혼란에 빠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독선적이고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고 폐쇄적이며 전혀 지적이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꼭 바보 같은 여자로 보입니다. 시작은 최순실의 연설문 교정과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설립과 비리,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승마 국가대표선수양성 비리였지만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드러났지만 터지지 못한 온갖 문제들이 끝도 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1월
■ 10월 19일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김제 우석병원에 입원하시고 쉽게 퇴원을 못하시는 바람에 동유럽 여행을 취소하였습니다. 양드리는 자매끼리 이미 다녀온 것이라서 나 혼자 갈 계획이었고, 단풍이 든 계절이면서도 가장 값이 저렴한 시기를 택하였는데 불가피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시지 않는 한 앞으로 장기해외여행은 대체로 불가할 것 같습니다.
■ 내가 제19회 전북서예전람회에 입선하였습니다. 9월에 열심히 준비하여 제출하였지만 사실 작품이라 할 수도 없는 졸렬한 솜씨입니다. 오직 선생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입니다. 대상은 송무 이병석 선생이 받았습니다. 작품들은 전주예술회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 황선미로부터 연락이 와서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김성옥 선생을 거의 33년 만에 만나고 무주에 사는 오경백도 다시 만나고 우리 반이었던 이창원이도 만났습니다. 전주예술회관에서 열린 서예전람회 시상식에도 참석하고 오거리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대규모 집회에도 참가하였습니다. 19일 토요일은 바쁜 하루가 되었습니다.
■ 사흘간 김장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아버지께서 텃밭에 배추와 무를 기르시고 손수 뽑아다가 씻어주시고 소금간까지 해주셔서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김장만 했었는데, 이번에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바람에 처음으로 모두 내가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배추와 무를 뽑아 리어카로 나르고 씻은 뒤에 소금간만큼은 자신이 없으므로 아버지께서 오셔서 해주셨습니다. 먼저 동치미를 담고 배추김치와 배추김치, 깍두기를 담았습니다. 주말에는 내차를 몰고 서울 아이들에게 김치를 가져다주고 왔습니다. 뿌듯합니다. 성공적인 김장이 된 듯합니다. 모두 맛있습니다.
12월
■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습니다. 내년 3월쯤 헌법재판소에서 가결되면 당연히 물러나게 되고, 설령 부결된다 해도 이미 리더십이 완전 쇠진한 박근혜는 물러날 수밖에 없어 내년 5월에 대선이 치러지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서 비박파들이 탈당을 발표했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추잡한 악마들로 보이는 친박파들이 웅크리고 있는 새누리당은 해체되어야 마땅합니다. 세 달간 지속되는 탄핵정국이라 날이면 날마다 빅 뉴스가 터지고 있어 이 곳에 나의 생각을 모두 정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는 몇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1. 나는 대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습니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마치 패거리집단처럼, 싸움꾼들처럼 거칠고 막말을 해대는 민주당원들이 집권하는 것이 싫어서였습니다. 결코 인품이 돋보이는 문재인 후보가 싫어서는 아니었습니다. 말을 조심하고 의젓하며 무게있게 처신하고 품위가 있는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보다 안정된 사회가 되리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오판이었습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권력을 누리려는 자들에게 철저히 속았습니다. 그리고 박근혜에게 철저히 배반당했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현재 새누리당이 존폐위기에 몰리고 지지도가 최고인 민주당인데 추미애 대표나 운동권출신 의원들이 문재인 대권후보를 보호한답시고 아직 귀국하지도 않은 국민들의 자존심이자 자랑인 반기문 총장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저 인간들은 도대체가 깡패 똘마니 습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합니다.
※어제(26일) 대통령 탄핵소추에 동참했던 비박파 29명이 드디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나오니 천인공노할 친박파 새누리를 해체하는데 우선 공조부터 하는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고 비박파들에 대해 맹비난부터 시작 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참 한심한 투쟁파들입니다. 영원히 구제하기 힘든 보기 딱한 인간집단입니다.
2. 국정교과서를 편찬하는 의도와 방법이 극히 비민주적이고 파쇼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 민주대한민국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정책인데도 무조건 밀어붙였습니다. 70%의 국민들과 90%의 역사교사들이 반대하므로 곧 중단할 줄로 기대했으나 계속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을 보고 대통령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이성이 마비된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습니다.
또 느닷없는 『통일대박론』을 터트리는가하면,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함으로서 남북대화를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단절시키는 어리석은 대북강경책을 추진했습니다. 외교부나 통일부의 전문가들의 종합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아니고, 전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에 의해 저질러지는 정책으로 보여 걱정과 놀라움이 컸습니다.
3.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지키지 않고 바른 말하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기를 쓰고 끌어내리는 모습에서, 총선에서 김무성 대표를 무시하고 엉터리 공천을 자행하는 모습에서 이미 박근혜는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집권여당의 공천과정은 마치 조폭깡패들의 행태 다름 아니었습니다. 김무성과 유승민계를 몰아내고 완전한 친박당을 만들려는 박근혜에게서 참다운 정치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아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은 더러운 똥개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4. 최순실 사건 발생 이후의 벌어진 내용들을 모두 적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저 여인은 지지율이 4%이고, 탄핵이 결정되어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도 전혀 반성할 줄을 모르고 변명만 일삼으며 친박파들을 이용하여 헌재심판에 대응하면서 다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마치 머저리 바보 같은 여자로만 보입니다. 뻔뻔한 저 모습에 기가 막힙니다. 아버지의 명예와 업적을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고 일말의 애국심이 남아 있다면 당장 물러나야 할 터인데도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조롱꺼리가 되었으면서도 요지부동입니다.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더 명예로울지도 모릅니다. 그저께는 최순실 일당이 유럽에 은닉한 재산이 8,000억이라고 하더니 어제는 수조원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독일 주 정부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5. 비박파 의원들 38명이 탈당하여 김무성과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개혁보수신당을 만든다고 합니다. 박근혜당에서 권력을 누리며 큰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양심은 가진 인간들이므로 참회하면서 건전한 보수당을 새롭게 재건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범 보수권을 아울러 반기문 총장을 대권후보로 내세우고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대 격돌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6. 새누리당의 친박파, 그 중에서도 십상시들 만큼은 우리 국민과 지역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이들의 행태를 추궁하면서 총선에서 응징하여 우리 정치계에서 완전 소탕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들을 잘 지켜보려 합니다.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조원진 이장우 김진태 이정현 유기준 정갑윤 정우택 원유철 김태흠 .....심상시가 아니라 십삼상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에 부역한 후안무치한 인간들이 새누리당을 혁신한다고 떠들면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술수를 쓰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란 대체로 그런 부류들이지만 우리 국민들이 저들의 죄를 응징하여 반드시 해체되기를 바랍니다.
■ 23일 어머니께서 드디어 두 달 만에 퇴원하셨습니다. 10월 19일에 김제 우석병원에 입원하신 뒤 잠간 괜찮아지셔서 며칠 퇴원하신 적이 있지만 곧 바로 다시 입원하셨으니 꼬박 두 달간 병원에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하마 당신이 돌아가실까봐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고생이 심하셨고, 아버지께서도 날마다 병원에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큰 병은 아니지만 감기가 드시거나, 가슴이 뛴다거나, 답답하다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하는 이유로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니 지레 겁을 먹고 병원에 의지하는 마음이 크신 때문에 입원하시는지라 간병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날마다 병원을 찾아 어머니 식사를 챙기시느라 아버지의 고생이 여간 아니셨습니다. 아버지가 아니시면 나는 어머니 병간호에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건강이 가장 우선입니다. 건강은 우선 내가 챙기고 배우자가 서로 챙겨야 합니다. 배우자가 없이 혼자서 크게 아프면 그때는 삶이 고달파집니다. 아니 행복한 삶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노인요양병원으로 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내가 가진 氣가 다하여 考終命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일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별 의미 없이 보이던 말이 이젠 실감이 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 여러 친목모임의 책임자로서의 일을 모두 마무리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동기동창 송년회, 고등학교 동기동창 송년회, 거북회 송년회까지 잘 치렀습니다. 거북회 총무는 4년 임기를 마치고 박종구 교장이 맡기로 하였습니다. 후련합니다.
■ 퇴직후 스포츠로는 테니스를 선택하였고, 미술에서는 서예를 선택하여 적당히 즐기고 있는데 음악은 처음에 은퇴자 합창단 가입을 생각하였다가 포기하였습니다. 합창단원이 된다 해도 수십 명의 단원들과 어울려 함께하는 일이 너무나 벅찰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은퇴교직자들이 색소폰을 하는데 나는 기타를 배우기로 합니다. 기타 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포크 송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새해부터 문화원 기타반에 들어가기로 하고 기타를 구입하였습니다. 두 달간 배우시다가 사정상 중단하신 분의 기타인데 세고비아입니다. 초보들이 사용하는 값이 싼 기타이지만 소리는 썩 괜찮습니다.
2016년 12월 24일
※ 크리스마스 이브인 어제 밤에 창인성당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나는 비록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경건한 미사에 참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박종탁 주임신부님은 고교동기입니다. 양드리는 40여 년 전에 창인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만 나는 전혀 신자는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공자님의 어진 마음과 부처님의 자비심을 스스로 실천하여 전쟁이 없는 세상, 다툼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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