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서예입문기

청담(靑潭) 2017. 7. 9. 19:37

 

書藝入門記

 

은퇴생활을 위해 가장 먼저 10여 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미리 준비해온 것은 시골 농장입니다. 2015년 첫 해에 조경을 배우면서 시골집을 헐고 작은 목조집을 짓고 창고를 마련하고 닭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없던 골프를 포기하고 테니스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금년 2017년에는 통기타 모임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기본적으로 산에 오르거나 여행을 가거나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거나 모임에 나가거나 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의도적으로 배우고 즐기는 일이 네 가지가 되었습니다.

 

서예는 초등학교 오륙학년 시절 수업시간에 한글을 썼습니다. 그리 잘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반에서 송하진 지사 다음에는 잘 썼습니다. 송지사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아들이니 잘 쓰는 건 당연했지요. 너무나 못 쓰는 친구에게는 제출할 글씨를 써주고 습자지 한 장씩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송지사는 너무나 잘 쓰니 선생님께 바로 들통이 나기도 하겠지만 성격적으로도 그런 부끄러운 짓은 안하기 때문이지요.

퇴직한지 일 년 반이 지날 때까지 양드리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있어 나는 서예를, 양드리에게는 문인화를 강력 권하여 1월부터 나는 익산문화원에서, 양드리는 이당 송현숙 선생 서실에서 배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서예에 처음 입문하는 것입니다. 2016년 1월, 처음 찾아간 문화원 서예반에는 회원이 10여명 남짓인데 여송 김계천 선생이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김계천 선생은 여산 권갑석 선생의 수제자로 한국 4대 서예단체의 하나인 서가협회의 중진 서예가십니다. 나는 비록 서예를 처음 시작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전혀 문외한은 아니기에 열심히 하면 그래도 부끄럽지는 않은 글씨를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무모한 자신감을 은근히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필체 좋은 절친인 김호길 선생도 우리 서예실로 유혹하였는데 차츰 회원이 급증하더니 가을에는 금새 25명이 되었습니다. 여송선생님으로부터 靑潭이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나의 서예실 호칭은 청담선생이 되었습니다.

 

양드리는 이당 송현숙 선생 서실에 입문하였습니다. 20여 년 전 이당선생에게서 2년간 서예를 배웠다는데 나는 깜박 그 사실을 잊었습니다. 이당 송현숙 선생은 강암 송성용 선생의 따님이시니 친구인 송지사의 누님이고 고교시절 은사인 정봉화 교장선생님의 부인입니다. 한국 4대 서예단체중 하나인 서예협회의 중진서예가이시고 문인화에도 일가견이 있는 전북을 대표하는 여류서예가이시기도 합니다. 양드리는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어 대학 때에는 미술반이었고, 현직에 근무할 때에는 4-5년간 미술강사를 학교로 초빙하여 배우면서 미술관련 여러 기능장을 취득하였습니다. 나와는 기본실력으로나 배우는 자세와 방식으로나 시작할 때부터 차원이 조금 다르게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양드리가 문인화에 정진하여 작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드리는 佳苑이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우리 익산문화원 서예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오전 두 시간씩 25명의 회원들이 모여 한자를 씁니다. 대부분은 60대와 70대의 은퇴자들이시며 80대에 두 분, 50대는 세분의 여성을 포함하여 다섯 분입니다. 서예에 큰 관심을 가지고 배우지만 결코 직업적이지 않기에 큰 부담 없이 매주 두 번 모여서 즐기시는 분들입니다. 월요일에는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일 년에 두 번씩은 여행도 갑니다. 연우회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인천 이기용 회장이 아주 잘 이끌고 계십니다. 서가협회에도 가입하였으니 명실상부한 서예인(부끄)이 되었습니다. 2016년 첫해에 대한민국마한서예문인화대전에 출품하였으나 당연히(?) 낙방하였고, 10월에 개최된 연우회원전에는 부끄러운 글씨를 전시해 주었습니다. 11월에는 제19회전라북도서예전람회에서 첫 입선하였습니다. 금년 4월에는 제24회신춘휘호대전에서 또 입선하였습니다. 요즈음 또 작품을 준비중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글씨를 쓰면서 작품을 만드는 일이 꽤나 재미있습니다. 행복합니다. 금년까지는 해서를 쓰고 내년에는 행서를 배워볼까 합니다. 아직까지는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예서나 초서를 배우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해서와 행서를 쓰는 수준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명언이나 한시 또는 사자성어를 마음대로 써보고 싶습니다.

양드리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또 그립니다. 작년에 마한서예문인화대전에서 문인화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고 전북서예대전에서 특선을, 금년에는 전북서예대전에서 또 특선하였고,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입선하였습니다. 타고난 소질을 잘 계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예를 시작하고 보니 소학, 명심보감, 논어, 한시 등에 관심이 커져서 마음수련공부가 많이 됩니다. 이러다 글씨 쓰는 어른을 넘어 君子까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서예입문 잘한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서예실에 갈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2017.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