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장철입니다. 으레 11월 말경부터 12월 초면 모두들 서둘러 김장을 합니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것이지요. 갑자기 추위가 온 탓인지 올해는 김장철이 조금 빠르다고 하는데 사실 올 겨울은 오히려 따뜻하답니다. 오늘 김장을 마쳐서 마음은 후련한데 몸은 아주 무겁습니다. 한나절을 편히 쉬었더니 피로가 조금 풀렸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많이 먹지 않습니다. 먹는다 해도 학생들은 점심을 급식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점심과 저녁을 식당에서 주로 먹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들도 절인배추를 구입하여 대략 20포기 정도만 담는다고 합니다. 도시인이 92%인 세상이 되었고, 절반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김장하는 옛 정취는 고작 8%가 사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나의 시골집엔 채소밭이 50여 평이 있어 온갖 채소를 심고 있으니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는 건 당근입니다. 아! 물론 당근도 심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단무지용 무도 심었습니다. 제가 단무지를 무지 좋아하므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 심었습니다. 시골집 텃밭경영은 아직도 아버지 전담입니다. 나는 퇴직 3년째이지만 아직도 채소밭 경영은 어둡습니다. 저는 그저 보조수일 뿐입니다.
지난 일요일(11월 19일)엔 아버지와 단무지를 담갔습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아버지께서 단무지용 무를 손수 뽑으셔서 작은집 비닐하우스에서 말렸습니다. 아버지 친구분께서 정미소에서 구해주신 겨를 찾아다가 담그는 수고로움이 컸지만 실로 사오년 만에 아버지와 함께 담근 재래식 단무지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아버지께서 정성을 다하여 담아주신 35개의 단무지를 물에 말은 밥에 맛있게 먹고 싶습니다.
정식 김장은 금요일에 시작하여 일요일까지 하기로 정했는데 목요일(23일) 아침에 첫눈이 신나게 내리니 배추와 무가 얼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부리나케 오후에 시골에 가서 혼자서 배추와 무를 뽑아 리어카로 집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금요일(24일)엔 아버지와 배추와 무를 다듬어서 간을 들여 놓았습니다. 양드리는 시장을 보아 양념을 준비하였습니다. 토요일(25일)에 온종일 아버지, 나, 양드리 이렇게 셋이서 배추김치 50포기와 무김치 50개를 담갔습니다. 작년에는 어머니께서 김장하는 시골집에 관람차 오셨으나 올해는 건강상 포기하셨습니다. 크고 작은 김치통이 무려 16개가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 부부, 우리 아들과 딸이 내년 이맘때가지 먹을 김치입니다.
오늘(26일) 오전에는 동치미(싱건지)를 담갔습니다. 온갖 양념을 다 넣고 두 개의 작은 항아리에 배추 5개와 무 40개를 넣어 담갔습니다. 김장을 하는 일이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주도하셔서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김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양드리도 엄청 힘들어 하지만, 텃밭에 있어 배추와 무를 심어 키우고 아버지와 함께 김장을 해서 우리 가족이 맛있는 단무지와 배추김치와 무김치와 동치미를 먹는 행복감이 너무 크기에 아버지께서 건강하셔서 도와주시는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김장을 포기하시는 그때를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신 아버지이시길 바랄뿐입니다.
배추와 무를 심어 정성으로 키우시고, 고추를 구매하시는 일부터 생강과 마늘을 다듬어 준비하신 아버지의 노고와, 시장에서 온갖 양념을 구입하여 준비한 양드리의 합작품인 올 김장이 최고의 맛을 내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그저 도우미밖에 한 일이 없으나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내손으로 담은 김치를 맛있게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바램처럼 그런 일은 그리 오래가기가 쉽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버지께서 영원히 건강하실 수는 없을테니까요.
아들을 비롯한 우리 모든 가족들을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즐겁게 김장을 해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여기 저기 아프다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맛있는 김장을 하지 위해 애쓴 양드리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추기 : 단무지가 행여 너무 싱거울까봐 걱정이 되시는지 김장 책임자이신 아버지께서는 어제 소금물을 더하셨고, 양드리는 오늘 혼자 시골에 가서 동치미에 사과와 배를 더 넣고, 빠졌던 대추를 집어넣고 소금탄 물을 더 붓는 등 마무리를 하고 왔답니다. 이제 아들과 딸이 서울에서 먹을 김치를 조만간 내가 직접 차를 몰고 가져다 줄 생각입니다. 김장일 참 어렵고 힘들고 많습니다. 그러나 매우 즐겁습니다. 모두 끝나고 나니 왠지 허전한 마음마저 듭니다. 어디 일당 조금 받고 김장 허드렛일 보조수 할데 없을까요? 물론 농담입니다. 우리 부부가 삼일 김장에 녹초가 되었다가 오늘 조금 살아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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