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기
3일 문화원 순천지역 답사
문화원에서 200여명이 참가하는 답사를 간다. 오늘은 1차로 버스 두 대로 90여명이 출발한다. 양드리와 함께다. 나를 제외한 우리 서예실(연우회)회원들은 2차에 단체로 신청하였으므로 오늘은 기타반(설레임)에서 참석한 두 분, 그리고 풍물반 전교장과 같이 가게 되었다.
낙안읍성 :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읍성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읍성으로 마을을 둘러보면 가슴이 뛰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낙안군의 읍성으로 낙안군은 1908년에 폐군되었다. 198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했는데 고창읍성(모양성), 해미읍성이 있으나 모양성은 산성이고 해미읍성은 마을이 없는데 이 읍성은 현재 100여 세대 220여명이 살고 있어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읍성이니 국가적으로 너무나 소중한 곳이다. 나는 대략 4번째 정도의 방문이 아닌가 싶고 오늘은 짧은 시간의 단체방문이라, 10여 년 전 양드리와 둘이 방문했을 당시 걸었던 곳과는 반대 지역의 성벽을 올라 마을 반 바퀴만 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순천만 습지 : 아직은 습지 식물들이 잎이 나오지 않아 겨울철 마냥 황량하다. 습지를 걸으면서 우연히 이정호 선생을 만나 인사를 하게 되고 익산의 문화발전에 대한 많은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주로 익산문화원의 역할과 익산문화재단의 활동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는데 이선생님은 대학에서 문화기획을 전공하셨다하고 현재 이리향제줄풍류본존회 대표이시다.
순천드라마촬영장 : 처음 와보는 드라마촬영장인데 규모도 크고 1950년대 내지 70년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세트들이 많아 재미있어서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보며 사진도 찍다.
7일 만경강 물길답사회 참석
후배인 이규호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신규백 선생이 이끄는 만경강 물길답사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이다. 10여년 전에 『익산 향토지』를 발간하면서 만경강과 대용수간선을 직접 탐사한 일은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내가 만경강에 대하여 특별히 잘 아는 것은 없는 터이라 신선생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한 일이 있는데 오늘은 모현동 물길을 답사하고 이규호 선생의 모현동에 대한 강의도 있다하여 부득이 거절치 못하고 참석했다.
참석한 회원들이 열 다섯 분 정도 되는데 그 중에는 전북농조에 근무하신 분으로 『만경강의 숨은 이야기』라는 책을 발간하신 바 있고 현재 한국농어촌공사 《내고향 물해설가》로 활동하시는 이종진 선생이 계셨다.
인사를 드린 후 만경강에 대해서보다는 오늘 모현동에서 만나고 답사를 하는 터이므로 ?익산시와 모현동의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약 10여분 남짓 설명하여 드렸다.
9일 연우회 오동도 여행
익산문화원 연우회 춘계여행이다. 먼저 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찾는다. 바닷가에 있는 암자로는 남해도의 보리암과 함께 가장 유명한 곳인데 과연 승경이 대단하다. 2002년경 한 번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오늘 와보니 주차장부터 암자까지 전혀 생소하고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라서 매우 어리벙벙하다. 오동도에 들러 가벼운 산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이재호원장이 저녁까지 사준다.
13일 종남회 산행
종남회는 김제종정초등학교와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중등에서 근무하고 교장으로 퇴직한 선후배모임인데 모두 다섯 명이다. 사실 평교사로 퇴직한 동문으로 살아계신 분은 한 사람도 없고, 교장출신으로는 종정초등학교 1년 후배인 유홍영 교장이 있으나 고등학교가 달라 이 모임에 해당되지 않아 매우 애석하다. 가장 선배인 강무길 교장께서는 아우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남다르시고 나이가 80이신데도 여전히 테니스를 즐겨하시며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즐겁게 살아가시는 존경하는 선배님이시다. 건지산을 두시간 걷는데 정상에서는 노인들 휴게소에 준비된 윷판을 빌려 윷놀이도 하였다.
14일 고조부 시제
고조부인 玉石 李玉淵 할아버지(1858-1930)의 시제날이다. 고조부는 3남 2녀를 두셨다. 우리 증조부가 장남인데 1927년에 44세로 사고로 돌아가셨으나 차남인 봉상할아버지와 삼남인 작은집 할아버지, 장녀이자 둘째인 명마동 할머니는 1960년대까지 생존하시었다. 존걸로 시집가신 차녀 할머니는 일찍 세상을 뜨셔서 본 적이 없다.
1960년대에 할아버지께서 생존하셨을 때 시제를 시작했는데 불과 최근 10여 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니 내가 제안하여 금년부터 시제 운영방식에 변화를 시도했다. 작은집 동생인 석상이와 정옥이가 먼저 세상을 뜨더니 내가 의지하던 석영형 마저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 몇 년 전에 반월리의 향기당숙이 돌아가시고 이어 작년에는 남기당숙이 떠나셨고 우리는 연락도 받지 못한 채 서울에 사시는 태환 할아버지도 떠나셨다. 이제 어른은 80대 후반인 판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으셨으니 시제에 참석하는 사람들마저 현격하게 축소되었다. 봉상할아버지 자손은 완전히 왕래가 끊기게 되고, 정읍 형네가족은 사실상 시제 참석은 어렵게 되었다. 이번에 참석자는 우리가족 3명, 판환 할아버지 가족 4명, 순환 할아버지 가족 4명으로 모두 11명이다.
우선 제관은 내가 맡았고 축관은 태균이 아저씨가 맡으며 재무를 겸하기로 했다. 운영자금은 400여만 원이 있고 연 경비는 대략 50만 원 정도(음식구입25, 식사15, 벌초식사10) 소요되는데 퇴직 후부터 내가 연 20만원을 내고 있었으나 금년부터는 30만원을 책임질 것을 약속했고 정읍에서 벌초할 때 10만원을 보내고 있어 큰 문제는 없으나 다른 분들도 적절히 예전방식으로 보태주기를 요청했다.
21일 종정21회 정기총회
금년에도 전주 아중저수지 부근으로 모임장소를 정하고 호수가든에서 모였다. 총무와 내가 일일이 전화를 하여 목표치인 30명이 정확히 참석하였다.
송지사가 참석하여 함께 식사하며 두 시간을 보내다 가고, 우리는 송광사, 위봉사를 산책하고 위봉폭포를 바라보며 포장마차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시내로 들어와 저녁식사 후 해산했다.
1. 정기모임도 당일로 치르므로 회비를 걷지 않기로 했다.
2. 가을 서울모임은 여자 친구들이 꼭 실시하기를 원하므로 금년에도 모임을 갖는 것으로 하고 남한산성을 모임장소로 운을 떼어 보았다.
3. 내년에는 꼭 회장을 선출해야 하므로 지금부터 논의하여 후보를 정한 뒤 당일에 추대하기로 하였다.
23일 남성21일 월례회의
모처럼 20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지난 총동창회 이사회에 참석하여 회의에서 논의한 것을 보고하고 다음 달 모임은 서울지역과 함께 하기로 하였음을 밝혔다. 어차피 작년부터 시작한 봄 여행을 이왕이면 서울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전주와 군산친구들까지 모두 모이는 모임을 추진하는 것이다. 자연히 7월 전북지역 모임과 익산만의 봄 여행은 자동 취소된다. 서울지역에서 30~40명, 전북지역에서 30명이 모이면 60명 이상이 모이게 된다. 10년 만에 우리 21회끼리만 함께하는 큰 모임이 있게 되는 것이며 이것은 3년 후 개최될 졸업50주년 행사에 대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대둔산에서 모이기로 합의하고 지금 서울과 지방의 총무단에서 구체적으로 기획중이다.
26일 문화원 서예실 휴강
서예실을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해야 하는 공사인데 늦추어진 것이다. 마땅히 대체할 작업실이 확보되지 않아 별 수 없이 한 달 간 서예반은 쉬게 되었다. 회원들이 쓰던 책상은 모두 버리게 되었는데 고기구이 먹을 때 8명은 넉넉히 서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하나를 찜하여 마침 대종중 장보기를 하기 위해 시내에 오는 재철이형(대종중 총무) 트럭을 이용하여 시골집에 옮겨놓았다. 서예도구를 시골로 가져가서 처음으로 방안 응접용 책상에 앉아 써보는데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27일,28일 해우회 1박 2일
해우회는 연 2회 만나는데 이치수 총무님 부부가 충남 보령시 독산해수욕장에 있는 펜션을 잡았다. 무창포 해산물판매장에서 횟감을 사고 기타 총무님 내외가 너무 많은 먹거리를 준비해 와서 실컷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밤에는 해수욕장에 나가 유정효선생이 준비한 연등날리기를 했는데 집집마다 소원을 빌면서 연등을 날리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매우 즐거운 놀이었다. 오는 길에 유영상 교장 내외와 함께 김병근 선생이 최근에 마련한 시골집에 들린 뒤, 이어 우리 시골집까지 찾았다. 유교장 내외에게 채소들을 뜯어 드리고 백산소재지 맛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헤어졌다.
30일 대종중 시제
은퇴하면서 종중운영진에는 절대로 참여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참여를 요청하는 집행부에 확실하게 말씀을 드린바 있다. 80대 노인들이 중심이 되는 종중은 극보수집단이라서 나와는 생리에 맞지 않기에 괜히 참여해서 마음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시제 참석자에게 여비를 지급하도록 하거나, 종사일에 열정적인 이기권 교장을 대종중부회장에 추천하는 등 변화를 꾀하는 노력을 하여 실현되었다. 현재는 대종중회장에 이기홍 회장(74세), 사종중회장에는 이석구회장(73세)이신데 수년 전보다는 10년이나 지도부가 젊어진데다 두 분이 개방적 사고를 가지시고 인품이 좋으셔서 앞으로 상당한 변화를 꾀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나는 지금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 동창회장을 연임하면서 맡고 있으므로 임기동안은 그 일에 충실하고자 하며 임기가 끝나면 새로운 회장을 도와 종중일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고향마을에 주소를 옮겨 놓고 채소밭과 과일밭을 가꾸고 있으니 적어도 그동안 시제만큼은 되도록 참석하기로 하고 실제로 참석해왔다.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께서도 오랫동안 대종중 간부와 사종중 회장을 맡으셨고 아버지는 지금도 후임회장인 이석구 형님과 일을 함께 하시고 있으시다. 이날 시제에 19분이 참석하였는데 父子가 참석한 것은 아버지와 나 뿐이었다.
참석하는 시제와 모임으로는
1. 대종중 옥구시제 : 9월중
2. 대종중 매골과 재실 시제 : 음력 3월 15일
3. 갈산할아버지 시제(학교 옆) : 음력 3월 20일
4. 관상리 할아버지 시제(청하면 관상리) : 음력 3월 26일
5. 옥석할아버지 시제(고조부 시제로 내가 장손으로 집행) : 4월 둘째 토요일
6. 신평이씨 문정공파 화수회(충남에서 모임) : 음력 3월 18일
가 있다.
■채소밭 가꾸기
퇴직하고 4년째이나 아직도 텃밭 가꾸는 일은 아버지 전담이다. 금년 봄에 잘 지켜보니 딸기, 쪽파, 도라지, 마늘, 시금치, 부추는 겨울을 나는데 시금치와 쪽파와 도라지는 3월부터 먹기 시작했고 작년 가을에 심은 상추도 역시 겨울 내내 내가 비닐을 덮어 3월부터 따 먹기 시작했다. 4월이 되니 작년 가을에 뿌린 달래가 나와 자라고 4월초에는 아욱을 심어 월말부터 먹을 수 있게 되었다.
4월 20일경부터 고추, 호박, 오이, 참외, 토마토, 가지, 토란을 심었고, 4월 말에는 작년에 강교장이 뿌려 나온 더덕을 얻어다 심었고, 대파와 옥수수를 심었다.
■암탉입양
유강영 친구가 암탉 5마리를 준다. 친구네는 그간 수 십 마리의 닭을 키워왔는데 돌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시내에서 가게를 하는 친구가 돌보기 힘들어서 친구들에게 몇 마리씩 나누어 준 것이다.
집단사육을 당한 닭들이어서인지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우리 닭들은 마치 귀족들 마냥 깃의 색깔이 번쩍 번쩍한데 분양받은 닭들은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처음에는 주인들에게 텃세를 받으며 혼이 나면서 겨우 밥을 얻어 먹더니만 며칠 지나지 않아 금새 수탉을 따라다니기도 하는데 이미 수탉이 교미를 한 터이다. 몰골이 흉측한 저 놈들도 머지않아 예쁜 모습을 하게 될른 지나 모르겠다. 수탉황제, 대왕대비(알 품고 있는 중), 공주, 입양옹주에다 분양받은 무수리 다섯 마리 합해서 모두 아홉 식구가 되었고 하루에 대략 4-5개의 알을 낳게 되었다. 2주후면 예쁜 병아리 다섯 마리가 태어날 터이니 그러면 대식구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