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피터 콘래드(미 브랜다이스대 교수) 지음

정준호(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기생충학석사) 옮김

▣한국어판 서문

나는 1975년부터 의료화와 관련된 주제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해왔다. ...의료화란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증상들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는 과정을 말한다. 알코올의존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출산, 완경, 월경전증후군, 수면장애, 노화, 비만, 불임, 학습장애, 발기부전, 성형수술 등...

▣개념

1. 의료화의 배경, 특성, 변화

...1970년대에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관점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관점과 상당히 달랐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식욕부진, 만성피로증후군, 와상후스트레스장애, 공황장애, 태아알코올증후군, 월경전증후군, 영아돌연사증후군처럼 지금은 잘 알려져 있는 병명들이 당시 내 수업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30여년간 의학계는 훗날 흔한 질환이나 장애로 널리 알려지게 될 여러 문제들을 발견해 냈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 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대상이 되는 행동, 정신상태 혹은 신체조건과 관련이 있는 질환이나 증후군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사회학자들이 의료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의료화의 핵심은 定義다. 즉, 의료화는 어떤 문제가 의학적 용어로 정의되고 의학적 용어를 사용해 서술되며 의학적 틀을 적용해 이해되거나 의학의 개입을 통해 치료되는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보건의료 체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다. ...구매자, 공급자, 지불자 사이의 길항력(拮抗力)이 전문가들및 여타 사회제도들 사이에 존재하던 영향력의 균형에 변화를 초래했다. 비용절감에 나선 관리 의료기구들, 그리고 기업화된 의료는 의료의 구조를 변화시켰다. 물론 의사는 자신들의 지배력과 독립성을 일부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주체들도 점차 중요해졌다. 보험회사들을 선택하거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 수많은 환자가 점차 소비자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관리의료기구, 제약산업, 그리고 일부 의사집단은 점차 환자를 소비자, 혹은 잠재적 시장으로 보기 시작했다. 마케팅 기법의 활용, 특정 의료시장의 발달, 표준화된 서비스들은 의약품과 의료서비스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보건의료광고는 점차 흔한 일이 되었다.

▣사례들

2. 대머리는 어떻게 남자의 병이 되었나(남성 갱년기, 탈모, 발기부전)

3. 성격에서 질병으로(과잉행동 아동, 성인 ADHD)

4. 더 크게, 더 젊게, 더 빠르게(저신장증, 항노화, 성형수술, 경기력 향상)

5. 질병에서 지향으로(성정체성장애, HIV/AIDS, 유전자, 성적지향)

▣한계와 결과

6. 의료화의 특정과 분류

7.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

...혈압문제 역시 20세기에 의료화되었다. 처음에 높은 혈압은 개념적 수준에서 다뤄지기 시작하다가 의료기관 차원에서 혈압에 대한 선별검사가 이뤄지게 되고, 마침내 의사들이 이를 질병위험인자로 진단하고 약품으로 처방하면서 고혈압으로 의료화되었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고혈압의 정의를 둘러싼 논의들(예를 들어 어느 정도의 혈압이 병으로 규정되어야 하는가)과 약물치료가 병증의 기준을 변화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이다. 일부 논쟁은 있었으나 과거 『경미한 고혈압』으로 정의된 영역은 약물치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제약회사의 지원을 받아 미국고혈압협회가 벌이고 있는 캠페인은 고혈압을 더욱 광범위한 증상으로 재정의 한다. 이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인자인 고혈압은 보통 약물로 치료되며 이는 연간 170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혈압 140/90수은주밀리미터 이상을 고혈압으로 보는 정의에는 약 6천 5백만 명의 미국인이 포함된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은 120/80을 고혈압 전단계군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규정함으로써 다른 심혈관계 질환 위험인자를 포함해 3천만 명이라는 고혈압약 시장을 개척하게 되었다.

8. 의료화의 사회적 결과들

▣옮긴이 후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과학자였다.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혼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대화에 서툴며,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동식물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골방학자의 모습,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이런 모습이 과학자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과학기술계 학자들이 이런 특성이 아스퍼거증후군의 증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스퍼거증후군은 가벼운 자폐증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고, 행동, 관심, 활동분야가 한정되어 있으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증세를 보이는 질환이다. ...해당분야 전공자들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자신이 가벼운 자폐증상을 가지고 있음을 약간 자랑스럽게(?)내 보이곤 했다. ...물론 아직 이런 성향을 치료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적 특성과 성향을 의학적 진단의 범주에 포함하고, 그 대상자가 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현상의 병리화에 참여하는 최근의 모습들은 분명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의료화의 한 갈래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의료분야에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현대 한국은 이제 의료화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를 틀면 예능 프로그램에도 의사들이 나와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먹고 마시고 잠들고 활동하는 모든 것을 건강과 관련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으로는 이 같이 빠르게 확대되는 의료화의 과정 때문에 이를 부정저긍로 보는 시선도 많다. 특히 21세기 들어 진행되고 있는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 영리병원같은 논란들은 의료화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