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호기 교수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한국일보 연재 에필로그 중
◇대한민국 100년의 기억
우리 역사에서 지난 100년은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표방된 것은 정확하게 100년 전인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였다. ‘대한(大韓)’이 뜻하는 바는 ‘우리나라’이고, ‘민국(民國)’이 의미하는 바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대한민국’이란 ‘국민이 주인인 우리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대한민국을 앞세운 임시정부가 3ㆍ1운동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3ㆍ1운동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일제 식민지배에 맞서서 민족 해방과 민족 자결을 요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대,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우리 역사에서 근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출발점을 이뤘다.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해선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충고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그 역사에서 행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동시에 이룩한 성취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둘째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주장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관점에서 늘 새롭게 해석되며, 이 해석을 기반으로 해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미래란 허공 속에 놓인 게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 대한 현재적 독해의 연장선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서는 안된다. 김일성과 그 집단이 민족통일을 이유로 일으킨 6.25침략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도 미화시키거나 용서되어서는 안된다. 과거의 잘못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유학의 독점적 배타성과 양반중심의 사농공상의 계급주의, 지나친 의례사상은 현재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질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래에 더욱 합리적으로 변화되고 정리되어 갈 것이다.
◇독립운동가와 정치가에 대한 기억
이 기획에서 다룬 60명의 인물들은 바로 그 기억의 지식인들이다. 몇몇 사람들은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승만, 안창호, 김구, 이은숙, 여운형,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은 독립운동가 또는 정치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들이 지식사회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이들 독립운동가와 정치가를 주목한 까닭은 ‘시대정신’에 있었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은 세 가지였다. 독립된 국가와 사회를 이루려는 민족해방,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산업화, 자유·인권·민주주의를 누리려는 민주화가 그것이었다. 이 민족해방과 산업화와 민주화는 독립운동가, 정치가, 그리고 지식인들의 삶을 끌고 또 밀어온 시대정신이었다.
이 기획에서 다룬 이승만, 안창호, 김구, 이은숙, 여운형 등은 모두 민족해방에 대한 순정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1945년 광복을 이룬 다음에 우리 정치가들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추구했다. 박정희가 산업화를 상징하는 정치가였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화를 상징하는 정치가였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사람 사는 세상’을 일궈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정신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후 김구가 남긴 간절한 바람이다. 김구는 우리와 다른 나라에게 모두 행복을 안겨주는 문화국가를 꿈꿨다.
■시대에 따라 당시의 민족과 국민의 염원을 달랐다. 박정희는 우리 역사를 <가난에서 부자로>만드는 엄청난 기초작업을 장기집권을 통하여 마침내 이루어 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요란스럽지만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박정희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해 냈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수주의 역사가들이 국가안보를 방패로 민주화운동을 함부로 폄훼하거나 반북으로 일관하여서는 안될 일이요, 소위진보주의 역사가들이 민주화만을 숭배하여 산업화를 함부로 폄훼하거나 친일청산이라는 미명으로 박정희를 매도하고 국민을 오도하여서도 안된다. 그들의 편협된 역사관은 모두가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이 아니며 그저 자신들의 권력다툼에 지나지 않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사이비 지식인들의 소행 이상의 그 어떤 가치도 찾을 수 없다.
■ 김호기 교수의 <100년에서 100년으로>오랜 기획연재는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통하여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가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준 가치있고 의미있는 글이다. 김호기교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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