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9년 11월기

청담(靑潭) 2019. 12. 6. 20:31



2019년 11월기


■2일 성포농악 발표회 및 세곡선 출항 시연행사

그저께인 10월 31일에 성당포구에서 우리 익산문화원 주관으로 별신제 행사를 치렀는데 이틀 만에 다시 성당포구를 찾았습니다. 이인수 선생이 복원하고 임승용 보존회장이 이끄는 성포농악은 지난 6월에 전북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내가 찾은 이유는 성포농악발표회하는 모습과 처음으로 시도하는 세곡선 출항행사 시연장면을 보기 위함입니다.

우선 행사규모에 놀랐습니다. 별신제는 당산나무 아래서 기껏 우리 문화원 원장과 임원 몇 분, 운영위원회 임원 및 지역유지 몇 분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성포농악단원들 포함해서 모두 100여명 정도가 참여하고 점심을 같이 하였는데 오늘은 완전히 면민의 날 행사 규모 모습입니다. 행사장에는 어림잡아 거의 백 수십여대의 자가용이 주차되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거나 음료와 차를 서비스하고 있으며 구경꾼들이 상당히 모였습니다.

1부는 성당포구세곡선 출항식 시연행사입니다. 임승용 회장이 언젠가는 꼭 실현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처음으로 성사시킨 행사입니다. 일군들이 지게로 세곡을 지고 세곡선으로 나른 뒤 순조로운 항해를 기원하는 축문을 읽고 농악단의 가락속에 세곡선이 떠나가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2부는 성당포구농악발표회입니다.

3부는 여러 예술단을 초청하여 공연하는 행사입니다.

나는 1부만 관람하고 돌아왔습니다. 익산의 한 지역(성당면)의 문화행사일뿐 만아니라 그것도 별신제에서 기원하는 서당포구 농악발표회이자 처음으로 시도한 세곡선출항행사인데 문화원에서 공식적으로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 생각됩니다. 시정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마침 옆에서 어느 지역사람 한 분이 나를 의식하는 지

?문화원에서 별신제 행사를 틀어쥐고 우리에게 양도하지 않는데 아마 돈 때문이라는가벼?

라고 말합니다. 별신제 예산이 기껏 250여 만원이라 가당치도않고 전혀 사실무근인데 아마도 지역사람들은 상당히 큰 예산을 문화원에서 차지하려는 것으로 오해하는 듯 여겨집니다.

우리 익산문화원에서 발굴하여 시작한 별신제이니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것은 옳지만 이제 오늘의 행사와 묶어서 걸 판지는 성당포구의 행사로 개편해야 한다고 봅니다. 1부는 별신제와 세곡선출항식 2부는 성당포구농악 발표회 및 초청예술단 공연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후일 사무국장에게 의견을 말하니

?통합해보려 시도했는데 잘 안되었어요.?라고 합니다.


■9일 속리산 고교동창야유회

작년에는 우리 익산에서 주관하여 대둔산에서 치른 행사인데 금년에는 서울에서 주관하여 추진하도록 요청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의 추억이 어린 곳인데 서울과 지방에서 각각 버스로 모였습니다. 서울은 37명(사모님 16)이, 지방은 24명(사모임 8)명이 참가하여 모두 61명입니다. 남자친구들이 37명이고 동행한 사모님들이 24명입니다. 세조길을 함께 걸은 뒤 서울회장 총무가 사전답사를 통해 정한 아주 근사한 장안면 《농촌휴양마을》 가든에서 맛있는 점심과 주고받는 술잔으로 친구들과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15일-17일 서울여행

17일이 우리 승원이 결혼 1주년 기념일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 승원이와 믿음직한 준호의 결혼을 다시 축하하기 위해 2박3일 서울 여행계획을 세웁니다. 16일 저녁에 사돈 내외분과 함께 식사를 예약합니다. 자주 뵙지 못하니 이런 기회가 아주 좋습니다. 15일에 계획했던 업무는 수포로 돌아갔으므로 곧 바로 석파정을 찾았습니다. 귀옥처제가 마중을 나왔고 가을에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인왕산 기슭에 있는 석파정을 찾으니 우선 서울미술관으로 안내가 되어 들어가게 됩니다.『보통의 거짓말』,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두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관람객이 꽤 많습니다. 미술관을 찾은 고객이라기보다는 석파정을 찾으면 으레 미술관을 거쳐가야만 하기 때문이 아닌 듯싶습니다.

■석파정(石坡亭)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선대원군(1820-1898) 별서(別墅)에 딸린 정자이다.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 별서는 원래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세도가인 김흥근(1796-1870)의 별서였다. 별서는 별장의 일종인데 잠깐 쉬었다 가는 별장과 달리 비교적 오랫동안 집 대신 거주하는 공간을 뜻한다.

※별서는 꼭 그런 의미의 집만은 아니다. 농장이나 들에 한적하게 지은 집을 일컫는 것이 보편적인 별서의 개념이다. 가끔 찾아 쉬어가는 개념인 별장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어쩌면 석파정은 별장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사실은 내 별서마저도 별장인지 별서인지 혼란스럽다. 나의 별서는 <고향집터에 지었고, 살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텃밭 일하러 자주 다니며 드나드는 집>이다.

김흥근이 별서를 만들기 전부터 이 일대는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인근에 안평대군 이용 집터인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있고, 윤치호의 별장인 부암정도 멀지 않다. 개울 옆 바위에 소수운련암(巢水雲簾岩 - 물 속에 깃들어 구름으로 발을 건 바위)이라는 글씨를 권상하가 새겼다. 김홍근은 여기에 별서를 세우고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집 옆 바위에 삼계동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 집을 오랫동안 탐내어 김흥근에게 팔라고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가 임금이자 자신의 아들인 고종과 함께 방문하여 하룻밤을 묶었다. 성리학 예법에 임금이 묵은 곳을 신하가 계속하여 살 수는 없었기에 결국 김흥근이 이하응에게 집을 넘겼다고 한다. 이하응은 이 별서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였다. 주변 풍경이 온통 바위산이라 자신의 호 마저 석파(石坡-돌고개)로 바꾸었고 집 앞 개울의 정자를 석파정이라고 하였다.

석파정은 중국식 정자입니다. 금년 단풍이 예년에 비해 늦은 탓인지 오늘 인왕산 자락 석파정 단풍이 극치에 달해 있습니다. 양드리와 귀옥처제는 이구동성으로

?서울 속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하며 가을비속에 펼쳐지는 단풍에 완죤 매료되었습니다. 

16일 오전에는 서울숲에 갔습니다. 한강변에 있는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부근의 아파트는 서울숲이 정원입니다. 높은 아파트들이 있고 또 건설중인 아파트도 있는데 나중에 들으니 가격이 강남수준이랍니다. 이해가 갑니다. 주변 거리에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고 부근에는 식당들이 많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도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예술의 전을 찾았습니다. 서예박물관과 미술전시장을 찾아 관람합니다. 서예박물관에서는 〈서예, 그 새로운 탄생〉전을 하고 있습니다. 첫 전시주제는 법고창신전시로 뛰어난 신진 서예 작가들이 중국의 유명한 글씨들을 임서하기도 하고 또 같은 글씨체로 작품을 쓰기도 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전시주제는 빛과 여백이고 세번째 전시주제는 책상에서 걸어나온 무법의 서예입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저녁에 따 부부와 사돈 내외분까지 여섯이 마포 작은 횟집에서 행복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 승원이와 준호가 제 부모들에게 한 턱 크게 쏘았습니다. 좋아하는 방어회등 여러 종류의 생선회들을 실컷 먹었습니다. 사돈과 함께 마시는 쇠주 맛 참 좋습니다. 

17일 아침 일찍 귀향했습니다. 익산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장한나와 트론헤임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봅니다. 장한나의 지휘가 대단합니다. 클래식을 감상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19일 KDB생명보험 유감


요즈음 파생결합펀드(DLF) 문제로 분쟁이 일고 있습니다. 여러 은행들이 권유한 저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이 거의 모두 큰 손해를 입어 분쟁이 일어났고, 금융감독원이 중재에 나서 배상하기로 했으나 배상비율에 가입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6년 전, 당시 인기 높은 저축성예금으로 비과세, 복리계산, 연이자율 최저보장이라는 홍보에 덜컥 믿고 가입했더랬습니다. 이자율이 낮아지는 시기에 기왕 가입한 저축상품인지라 찰떡같이 믿고 꿈과 희망을 가지면서 불입하다가 절반이 지나가는 즈음에 다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실제로 적용되는 이자율이 형편없어, 회사에 재차 문의한 결과 <사업비 >라는 명목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을 들은 뒤, 땅을 치고 싶을 만큼 후회했습니다. 가입자들에게 홍보한 그 방식으로 계산되는 이자에서 우리를 가입시킨 연계회사에 <사업비> 라는 명목으로 활동비를 지급하므로써 정작 실제로 우리에게 지급되어야할 이자의 3/4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도, 누군가 암시한 일도 없었습니다. 가입하는 시기에 사업비라는 말은 들은 적도 없거니와 이자율이 낮아지는 시기에 최고의 저축상품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무심코 가입한 내가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무지 아팠으나 모두 내가 무지하고 신중치 못한 탓이라 자책하며 그 아픈 마음은 하루 이틀 만에 싹 잊기로 하고 즉각 해약하였습니다. 그동안 저축을 하면서 KDB생명을 내 노후를 크게 돕는 회사로 여기며 애정을 가졌던 것을 생각하니 우습기 그지없고 저런 사기성 운영으로 회사가 잘 될 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KDB생명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식에 안위를 걱정했었지만 이젠 나와 상관없고 전혀 관심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늦은 것을 안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합니다 큰 손해를 입은 아픔을 딛고 즉시 해약처리하였기에 후련하기 그지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세상사 희노애락 모든게 다 내마음 먹기 나름입니다.


■23일 전북서예전람회

우리 서가협회 전북지회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입니다. 나는 해서와 행서 각 1점을 출품하였는데 행서는 특선, 해서는 입선이 되었습니다.찬조출품된 전북지역 작가들의 글씨가 어찌나 훌륭한지 놀랍고, 우리도 과연 언제쯤 저런 글씨를 쓸 수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매우 자신이 없어지는 듯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서예에 어느덧 내가 욕심이 생긴 현상인까요?



■29일-1일 김장

올해에도 아버지와 함께 배추와 무를 재배하였습니다. 이미 고추를 사서 가루로 만들어 보관하였고 마늘은 까서 방앗간에서 갈아다 놓았습니다.

김장 첫날은 나 혼자서 무를 100개를 뽑아서 리어카로 집으로 운반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억센 잎을 딴 뒤 칼로 다듬었습니다.

둘째날, 아버지와 함께 배추를 뽑아 나르고 무와 배추를 씻어 간을 하였습니다. 양드리는 시장을 보고 집에서 양념준비를 합니다.

셋째날, 아무래도 금년 배추가 속이 차지 않아 양이 적어 걱정이 되므로 앞집에서 스무 포기를 샀습니다. 덤으로 다섯 포기를 주니 대략 정상적인 배추 60포기가 되었습니다. 무는 더 뽑아서 120개가 됩니다. 배추 50포기와 무 75개는 김치를 담았습니다. 배추 5포기와 무 35개는 동치미를 담갔습니다. 아침에 간한 배추와 무를 씻어 물을 빼야 하는 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비옷을 입고 작업을 마친 뒤 오후에는 양드리와 셋이서 따뜻한 방에서 담그기 시작하여 어두운 오후 6시에야 겨우 끝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이틀 동안 휴일이라 돌봄이도 오지 않는데 혼자서 김제집에 계시니 심심하실 듯합니다. 김제집에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익산집에 오니 7시인데 두 사람 모두 녹초가 되었습니다.

김장을 마쳤다 해서 일이 다 끝난 게 아닙니다. 김장할 때 쓰던 도구들 뒷정리 하는데 한 나절, 주서 모은 은행을 손질하고, 남은 무를 땅을 파서 묻고, 수도를 잠그고 정리하고 닭장 바람막이 해주는데 또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이제 동절기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남겨둔 무 시레기는 다음 주 따뜻한 날에 솥에 삶아서 냉장고에 저장하기로 합니다. 김장 힘듭니다.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하는 김장 참 재미있습니다. 행복합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면서 도와주시는 그날까지는 꼭 하고 싶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겁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1월의 단상  (0) 2020.02.01
2019년 12월기  (0) 2019.12.29
2019년 10월기  (0) 2019.11.06
2019년 9월기  (0) 2019.10.04
2019년 8월기  (0) 2019.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