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기
■5일(목) 서가협회 익산지부총회
서가협회 익산지부 총회가 처음 개최되었다. 예전에는 체계가 잡히지 않아 이사회만 개최했는데 지난 번 이사회 때 우송 김봉진 선생님이 ?지부장을 이사회에서 선출하되 총회에서 추인하자?는 제안을 하셔서 그 제안이 통과됨으로써 총회를 조직하고 회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서가협회 익산지부는 청목회, 연우회, 먹물사랑회 등 3개 단체로 이루어지고 회원은 약 60여명이다. 고문은 지도선생님이신 여송 김계천 선생님, 신임지부장은 덕산 정명성 선생, 부지부장은 청목회 회장이신 정영운 선생님, 연우회장이신 인천 이기용 선생님, 먹물사랑방 회장이신 덕정 정영훈 선생이시다. 나는 연우회를 대표하여 총무이사를 맡았고 먹물사랑방을 대표하는 총무이사는 성제 한석봉 선생이다. 감사로는 우송 김봉진 선생님과 먹물사랑방의 한 분이 맡으셨다. 전임 이병석 지부장은 추후 <마한 서예문인화대전> 운영위원장을 맡게 될 예정이라 한다. 서가협회 익산지부는 여송 김계천 선생님의 제자들로만 조직된 것이 큰 특징이라 할 것이며, 현재 배우고 있는 제자가 50여명이 넘는다. 아마도 제자군의 규모가 저만한 서예가는 우리 전북에서는 거의 찾기 힘들다.
■7일(토) 아버지 생신
아버지의 86번째 생신날이다. 큰딸이 군산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하여 군산의 횟집에서 모였다.
?퇴직할 때는 장차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마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보다 10년이나 더 살고 있다. 자식들 모두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는 우리 부부가 그렇게 강조하고 다짐까지 받았던 연금을 포기하고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으셨다. 당신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빗나갔고, 연금 받으시는 분들만큼 마음 편하고 넉넉하게 지내시지는 못하시고 계신다.
아버지는 퇴임후 수명을 10년을 예측하셨으나 실제로는 25년 이상을 사시게 될 것이다. 누구나 대학을 졸업하는 나이인 20대 중반부터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결코 부모나 형제나 남의 탓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굳게 믿고 사는 신념이다.
■10일(화) 영균형과 석구형별세
어린 시절 함께 자라고 함께 어울리며 살던 영균형과 석구형이 사흘거리로 세상을 떠났다. 70을 채우지 못하고 예순 아홉에 함께 떠났다. 영균형은 대장암으로, 석구형은 뇌졸중과 합병증으로 몇 년을 투병하다 갔다.
우리 마을 돌제에는 나보다 1년 먼저 태어난 남자 51년생들(69세)이 여섯(석구, 석영, 영균, 전환, 병환, 재철)이고 52년생들(68세)이 여섯(현수, 기도, 삼렬, 기조, 광석, 나 석한)이었다. 석영형은 62세에, 전환형은 68세에 돌아가셨다. 우리 여섯은 모두 생존해 있으나 51년생들은 이제 병환형과 재철형 두 사람만 남았다. 서너 살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재호형을 포함하면 일곱 중 셋이 남은 것이다. 우리는 여섯 중 삼렬이만 사고로 투병중인데 아마도 완쾌하기는 매우 어려울 듯싶다. 나머지 다섯은 매우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영균형보다 10여일 전에 삼렬이의 동생인 금렬이가 예순 여섯의 나이에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석구형 별세 3일 뒤엔 몇 년 전에 이사해 와서 살던 최선생(동창인 김영애의 형부)이 78세로 별세 하셨다. 대장암 판정을 받은후 시내에서 우리 마을로 이사 와서는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시더니만 극복하지 못하고 역시 세상을 등진 것이다.
?人命은 在天이다.?라지만 너무 안쓰럽기 짝이 없다. 평균수명이 83세(여자 86세, 남자 80세)인 세계최고의 의료선진국인데 일시에 한 마을 사람 네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가다니 허망하다. 모두 문상하였고 영균형과 석구형은 장례일에 장지에까지 참석하였다. 네 분 모두 저세상에서는 행복하시길 빈다. 남은 사람들은 더욱 건강에 주의 하고 사고 없이 오래 오래 함께 살게 되기를 빈다.
■16일(월) 연우회 송년회
금년 연우회 송년회는 이색적으로 우리 마을 모현동에 있는 <서해 막걸리>집에서 개최되었다. 평소에는 문을 열지 않는 점심때에 평소의 이집에서 제공하는 많은 안주거리와 횟감으로 파티를 하게 된 것이다.
나와 예정 김경숙, 지연 손희숙이 목로주점, 초연, 짝사랑 등 세곡을 기타 반주로 노래하면서 시작되었고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점심이 공식적으로 끝난 후에도 여송 김계천 선생님을 포함한 8명은 기타반주로 노래하며 한 시간이나 더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20일(금) 21일(토) 남성21익산지부및 종정21 전북지역송년회
본디 두 모임 모두 21일이나 남성 21회는 금요일로 앞당겨 개최되었다. 남성21회는 이런 저런 이유로 8명이 불참하여 21명만 모여서 서운한 감이 있다. 건강이나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동창회에 발길을 끊은 친구들은 당연 안타깝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오해나, 나이 들면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변화함에 대해 감수하지 못하고 친구들 만나기를 꺼려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또 안타깝다.
종정 21회는 지사도 참석하고 정일섭 신임회장도 서울에서 내려와 참석하여 19명이나 모였다. 기반을 충실히 닦아 놓고 유능한 새 회장을 추천하여 맡겼으므로 되도록 깊이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23(월) 설레임 송년회
설레임이 생겨난 지 4년인데( 나는 가입한지 3년)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인 발표를 한 적이 없다. 대부분 기타를 배운지 5년 이상이고 가장 늦게 시작한 사람이 문왕주 선생(2년)이다.
처음으로 개인 발표회를 개최하니 너무 재미 있다. 나는 서유석의 <아름다운 나의 사람>과 바블 검의 <짝사랑> 을 불렀는데, 제일 잘한다하여 첫 출연자여서 그런지 약간은 떨려서 기타 반주가 조금 정확치 못했다.
송연화, 정진순, 이진순 세 분은 함께 두 곡을 불렀는데 아주 잘 해주셨다. 권상렬 선생도 무난하게 잘 해주시고 문왕주 선생도 열심히 연습했는지 그런대로 발표하였다. 박재심선생과 김순화 선생은 노래를 아주 잘하는 분들인데도 너무 떨려서 힘들어 하였고 권오영 선생도 의욕은 큰데 떠시느라 힘들어했다.
내년부터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발표회를 가지자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했는데 나야 별 문제가 없지만 대다수 회원들이 대중 앞에서 너무 떨려서 혼자서는 노래 한 곡도 제대로 못해서는 안 된다. 여러 번 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겨 누구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1(화) 서울 가족송년회
내일 모레 서울에 가서 우리 아들 딸, 사위, 처제들과 송년모임을 가질 생각이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잘 한 결정 같다. 모두들 함께 내려오기 힘들고 우리역시 접대하기 힘드니 이젠 우리가 KTX로 편하게 올라가서 아예 음식은 사먹고 신년 첫날엔 경복궁에도 가 볼 생각이다. 만일 날이 좋으면 인왕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기해년을 보내면서
한 해가 참 빨리도 갔다. 이틀 남은 서기 2019년을 보내면 2020년 경자년이 시작되는데 뉴 밀레니엄 새 천년(21세기)을 맞느라 무척이나 떠들썩한 때가 벌써 20년이 지났다. 앞으로 20년 뒤엔 내가 88세(친구들이 88세-90세)가 되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남는 친구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금년 한 해 나에게는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이 많지는 않다. 그저 건강하게 살아온 것뿐이라 할까?
가족 모두에게서 기억할 만한 일을 추려본다.
1. 우리 부부가 중남미 여행을 다녀 온 일
2. 이쁜 딸 승원이가 서울대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서강대 국제교육원 전임대우가 된 일
3. 어머니가 88세 미수를 맞은 일
4. 사위 정준호가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일
5. 가원이 마한서예문인회대전 초대작가 자격 점수를 취득 한 일
6. 내가 문화원 이사로 선임된 일
7. 내가 서가협회 익산지부 총무이사로 선임된 일
8. 내가 종정 21회 동창회 3연임(6년간)의 회장직을 마친 일
9. 내가 내년도 설레임 회장을 맡은 일
10.가원은 라세티를 폐차, 이대표의 K3를 타게 되고, 이대표는 중고 볼보 D4를 구입한 일
적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였다. 감사한 일이며 희망찬 경자년을 열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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