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도(揷矢島), 하루여행
요즈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느라 삼사월 두 달간은 서울집 방문도, 국내여행도 일체 중단하고 이틀에 한 번 시골집에 다니고, 거의 날마다 문화원에 나가 글씨만 쓰며 살았다. 이제 코로나19도 거의 끝나가고 5월 초순이면 학교와 공공기관도 문을 열게 되는 고로 지난 2월에 계획했던 삽시도 하루여행을 가기로 했다. 대천에서 가까운 섬이라서인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다고 하는데 나는 기회가 없었다. 금년 한 해는 여건상 해외여행은 중단하고 남해의 큰 섬들을 내차로 직접 여행해 볼 계획이므로 우선 가장 가깝고도 볼 만한 섬이라는 삽시도를 먼저 가보기로 한 것이다.
친구인 전 교장은 혼자서 익산에서 출발하는 완행열차로 다녀왔다고 하는데 나는 가원과 함께 가므로 내 차를 이용하여 대천항까지 이동하기로 한다. 바람은 약간 있으나 하늘은 청명하고 날씨가 꽤나 좋다. 10시에 출발하여 11시에 대천여객터미널 대형주차장에 주차한다. 항구의 주차장은 넓고 공짜라서 참 좋다. 한 시간 동안은 방파제에 다녀온다. 서해바다지만 방파제가 있는 곳은 갯벌이 아니므로 바다가 늘 푸르다. 하늘도 바다도 푸른 4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여객터미널 옆 공원의 휴게소에서 내가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을 먹다. 요즈음 지나치게 밥을 잘 먹어 배가 나오고 생선찌개도 자주 먹었는지라, 항구에서 점심을 사먹는 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내가 김밥용 단무지와 우엉을 준비하여 진간장을 넣어 싼 김밥이다.
《삽시도 (揷矢島)》는 하늘에서 바라보면 화살(矢)을 꽂아놓은(揷) 활처럼 생겼다고 한다. 충청도에서는 안면도, 원산도 다음으로 세 번째 큰 섬이다. 여객선은 대천항에서 하루에 세 번 운행되는데 45분 걸린다. 우리는 오후 1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가서 5시 3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나오기로 했다. 삽시도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이다.
대합실에서 보니 대천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세 갈래이다.
첫 번째는 원산도 , 효자도, 안면도선이다.
둘째는 삽시도, 장고도, 고대도선이다
셋째는 효도, 녹도, 외연도선이다. 육지에서 외연도보다도 더 섬인 어청도는 군산에서 배가 출발하며 수년전에 홀로 다녀온 바 있다.
45분 간 배를 타고가면서 주위 섬들을 관찰한다. 먼저 보이는 원산도는 이미 안면도와 연결되었다. 안면도에 가게 되어도 원산도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기에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삽시도에 가까워오니 원산도와 삽시도 뿐 만 아니라 가까운 장고도, 고대도, 효도와 저 멀리 효도와 녹도가 아름답게 보이고 있다. 신한해운소속의 <가자 섬으로>호는 삽시도 밤섬선착장에 닿았다. 연안여객선으로는 꽤나 큰 배여서 크게 안심이다.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 주민들이 들고 나는 듯한데 자가용 여러 대가 승선하고 있다. 왜 밤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선착장 부근은 과거에 밤섬이었는데 삽시도와 합쳐진 것으로 추측해본다.
삽시도 하루여행계획대로 해안을 걸으며 답사하기로 한다.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밤섬해변길을 따라 걷다. 마을에는 많은 펜션들이 있는데 정원을 잘 가꾼 집들이 있는데 코로나 불경기인지라 거의 휴업상태인 듯 하다. 숲길을 지나 다시 해안 길을 걸어가니 아주 큰 마을이 나타나는데 온 마을이 펜션들인 듯 보인다. 아마도 행정지원을 받아 펜션을 짓고 본인들이 살면서 영업도 하는 모양인데 저 많은 펜션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날이 있기나 하는 걸까? 아무튼 오늘 삽시도를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우리 둘을 빼면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없다. 천천히 걸었으므로 거의 시간 정도 만에 진너머 해수욕장에 닿았고 잠시 노닐다 다시 마을로 나와 오천초등학교 삽시도분교장을 찾는다. 누가 선생이 아니랄까봐서인지 어딜 가면 꼭 학교부터 찾는 게 버릇이 되었다. 작은 학교에 여러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느라 요란하다.
이제 4시가 되었으므로 다시 배를 타기 위해 밤섬선착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4시 40분부터 해변가 어느 펜션의 나무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저편의 매표소 문이 열리는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하선하고 지나치면서 매표소 앞에〈출발 한 시간 전부터 매표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있었는데 이상타? 하면서도 우리는 그저 느긋이 쉬다가 5시가 되어서야 매표소로 가니 여전히 사람이 없다. 어라 이상하네(?)하면서도 워낙이 출항객이 없으니 매표원이 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오나보다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퍼득들어 다시 매표소 앞으로 가서 안내문들을 살펴보니 아니 이럴 수가?
〈 본섬에는 선착장이 두 곳이니 어느 곳에서 출항하는지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은 벌써 5시 10분이다. 부리나케 달려 어느 집 현관을 두드려 사정을 말하고 다른 선착장 위치를 물으니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그리 멀지 않으니 뛰어가면 탈 수 있을 것이요.?
하시는데 나 혼자라면 모를까 가원은 두 시간을 걸어 이제 걸을 힘도 없다는데다 다른 선착장은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는 보질 못했으니 분명 상당한 거리일 것이 분명해서 오토바이를 탄 어느 젊은 부인에게 호소하니 오토바이로 자신이 없으니 차를 가지신 분에게 부탁해 보라 한다. 다시 내달려 봉고차와 자가용이 주치되어 있는 다른 펜션의 현관을 두드렸다. 이거 오늘 관광객이 아무도 없는 삽시도의 어느 펜션에서 하룻밤을 자는 허망한 일이 벌어지나하는 불안감과 낭패감이 엄습하면서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가뿐숨을 몰아쉬며 애걸(?)하니 다행히 사장님께서 태워다주신다며 급히 나오신다. 가원도 부지런히 달려왔다. 시간은 5시 15분이 되었는데 가원이 이미 매표소에서 회사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고
?손님들이 도착할 때까지 출항을 기다리겠으니 걱정 말고 그곳으로 오시라.?
고 했다 한다. 정말 가원의 재치가 대단하고 회사의 배려가 고맙다. 걱정해주시고 태워다 주신 고마운 사장님께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황급히 배로 다가갔다. 시계를 보니 5시 25분이다.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검표원을 통해 승선했는데 이곳은 술뚱선착장이라고 하며 바로 삽시도여객선터미널도 있는 삽시도항구였다. 검표원에게 우리가 급히 밤섬에서 온 것을 밝혔으므로 관계자들이 모두 알 것으로 여겼더니만 5시 30분이 넘으니 안내방송이 나온다.
?밤섬에서 오신 손님은 승선하셨는지 기관실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삽시도여행에 대한 사전준비가 충분치 못했나 보다. 삽시도에서의 출항은 두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대천항터미널에서의 안내도 없었고, 밤섬매표소 안내문도 자세히 읽어보지 않은 죄다. 더구나 다른 관광객들도 없어 얻어들을 정보도 없었다. 우리가 쉬고 있던 펜션의 사장님들이 살짝 귀띔이라도 주셨으면 저런 낭패는 없었을 것을...우리는 이제 확실히《노인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크게 웃었다. 마치 작년 멕시코시티공항에서의 해프닝을 다시 살짝 재현한 것 같다. 이제 정말 여행계획과 준비에 더 철저해야 하겠고 너무 매사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는 큰 충고로 받아들인다. 신한해운 사무실관계자의 친절과 배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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