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3박 4일
여느 때 같으면 자식들이 칠순기념 가족잔치를 한다거나 해외여행을 권했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세월이 하 수상(殊常)하여 가족잔치도 해외여행도 不可한지라, 부득불연(不得不然) 제주도 여행을 결정하였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행비를 받아내고(?)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3월을 피하여 확산이 주춤하며 잠잠하게 된다는 당국의 예측에 맞추어 4월 중순으로 정하고 항공편, 호텔, 렌터카를 인터파크 여행사를 통하여 예약하였다.
많은 은퇴자들이 《제주도 한 달 살기》, 심지어 몇 달 또는 일 년 살기까지 감행하였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직 해외여행에만 눈독을 들였었다. 코로나 유행이후에는 해외는커녕 국내여행도 다지니 못하는 세상이어서 감히 제주도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금년 들어 오미크론변이 바이러스가 대확산되면서 지난 3월에는 우리나라 환자발생수가 한참동안이나 세계최고를 기록하며 너도 나도 확진이 되었으나 의외로 병세가 약하여 독감수준의 기침감기 정도여서 모두들 코로나의 두려움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 우리 육남매 중 아무도 걸리지 않은 집은 우리 집이 유일한 정도이니 아마도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국민의 거의 절반이 걸린 것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확진판정을 받으면 일주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되므로 결코 여행을 떠날 수 없기에 10여 일 동안은 書室에도 나가지 않고 식당출입도 일체 중단하며 주의를 기울였다.
용케도 우리가 떠나는 날인 4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인원수 제한이 해제되고 모든 가게들도 시간제한이 해제되었다. 다음 주(25일)부터는 코로나가 감염병 1급에서 2급으로 격하되고 PCR검사비용을 비롯한 모든 경제적 지원도 중단되고 자택격리도 사라진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동안의 제주도 여행에 대해 찾아보니 나는 모두 일곱 번 다녀왔는데 가원(佳苑)은 세 번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그 중 네 번은 고등학교 재직 시 수학여행 지도 차 다녀온 것이고, 두 번은 부부가, 한 번은 직원여행이었다. 가원은 직원여행이 한 번 있었다.
각설하고 나는 11년 만에 찾는 제주도인데 가원은 무려 17년만이었다. 우리가 너무 오래 동안 전 세계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관광지 제주도에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가?
※1987 부부여행, 1997 월명여중 직원여행, 2004 전주제일고 수학여행, 2005 이완수 초청여행, 2009 무주고 사전답사, 2010 무주고 수학여행, 2011무주고 수학여행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은 피하고 우리가 찾고 싶은 곳을 여행하기 위해 자유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다녀온 일곱 번의 제주도여행을 통하여 유명관광지는 대부분 다녀온 바 있으므로, 佳苑의 뜻을 받아 마라도와 우도를, 예전에 내가 가보지 못하여 서운했던 항몽유적지와 김정희 유배지를 우선적으로 정하고 일정표를 짰다. 숙박은 편하게 제주시에서 하면서 렌터카로 탐방지를 찾아다니기로 했다.
■2022. 4. 18 월
9시에 집을 출발하여 9시 40분에 군산공항에 도착하여 주차하다. 군산공항은 무려 17년 만이다. 제주항공 비행기로 11시 20분에 이륙하여 12시 20분에 제주공항 대합실에 나온다. 공항 1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순두부백반 아주 맛있다. 가원은 전병을 곁들인 전복미역국인데 역시 만족한다. 이번 여행은 맛있는 거 잘 먹기로 했는데 첫 식사부터 만족이다.
인터파크 렌터카에 전화하고 셔틀버스로 회사에 도착하여 2시에 k3를 인수하였다. 내가 평소에 k3를 주로 이용하므로 택한 것인데 우리 차보다는 신형이어서 엔진상태가 훨씬 좋아 운전하기에 편안하다. 역시 선택을 잘했다. 인생은 선택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값비싸고 화려한 게 제일이 아니고, 그저 내가 편하면 제일인 것이다. 오늘 일정은 오후 한나절에 지나지 않으므로 제주목관아를 보고 한라수목원에서 산책을 한 뒤 어둡기 전에 일찍 호텔에 체크인하기로 했다.
○제주목관아
조선시대에 제주목(현 제주시)에는 정3품 목사가 파견되었다. 그리고 한라산 남쪽 지역을 동서로 양분하여 동쪽은 정의현, 서쪽은 대정현을 두고 현감(종6품)을 파견했다. 제주목과 두 현은 전라도에 속하여 전라도관찰사의 지시를 받아야 했으나 지리상의 문제로 제주목사가 사실상 두 현을 관리하였다고 한다. 작년에 전주에는 전라도 감영복원이 완성되는 쾌거가 있었다. 전라도에는 나주·광주·제주·능주에 목사를 두었고 부사(종3품)와 함께 군(종4품 군수)․현(종5품 현령 또는 종6품 현감)보다는 좀 더 중요하거나 큰 곳에 파견한 지방관에 지나지 않는데(요즘으로 치면 군수가 아닌 시장) 목사가 근무한 관아의 규모가 여느 군현의 관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상당히 크고 건물도 많고 아름다움에 조금 놀랍다. 마치 전라감영의 축소판이라고 할까?
○한라수목원
제주시내에서 가깝고 여러 번 가본 기억이 있다. 어차피 걷기 운동도 할 겸 수목원을 산책하는데 찾은 사람들이 꽤 있다. 4월 중순 막 새잎들이 연 푸른 빛깔로 나오고 있어 온 산과 들이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다. 대나무 죽순 크기에 많이 놀라다.
권영근 교수가 전화를 했다. 아마도 김병근 선생이나 강덕신 선생이 나의 제주행을 알려주었나 보다. 만일 모레 오전에 사려니 숲 산책을 가게 되면 내려오는 길에 제주대학교 근처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베스트웨스턴 호텔에 체크인하고 저녁식사다. 첫날 저녁식사는 횟집에서 먹기로 하고 가장 가까운 <문섬횟집>을 찾았다. 밖에서 보기엔 작은 횟집인데 예약손님으로 꽉찼다. 메인회인 홍돔이 맛있고 반찬도 깔끔하여 가원까지 모두 대만족!
■2022. 4. 19 화
아침식사는 모두 호텔 뷔페식으로 미리 예약하였다. 내가 해외여행 시 가장 좋아하는 식사이다. 결혼식장에서 제공하는 뷔페는 값이 4만 원 이상이고, 음식도 수 백 가지이지만 먹는데 한계가 있고 번잡하고 시끄러워 즐거운 식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 식사는 1만 5천원인데다 음식종류도 충분히 제공되었다. 우리는 7시에 식당으로 갔는데 예상외로 손님들이 많아 늦게 온 사람들은 줄을 서기도 했지만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어 해외여행 시 아침식사 때보다 더 조용하다. 내가 먹는 것이야 뻔하다. 알로에 음료수 한잔, 전복죽 반 그릇, 빵 두 개, 햄 두 조각, 치즈 두 조각, 베이컨 두 조각, 파인애플 4조각, 커피 한 잔이다. 가벼운 아침식사 너무 만족한다. 내일 모레도 이런 식사를 하게 되니 행복하다. 오늘은 주목적지는 마라도이고 가는 길에 세 군데를 찾아보기로 한다. 8시에 출발한다.
○항파도리 항몽유적지
예전에 여러 차례 지나치면서도 목적지가 아니어서 찾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곳이다. 하마터면 오늘도 시간관계상 그냥 지나칠 뻔도 했으나 다행히도 내비게이션 행로에서 바로 가까운 곳이라 재빨리 차를 돌렸다. 유적지는 잘 가꾸어져 있고 전경이 아름답다고 가원이 환호성을 지른다.
1270년 몽골에 항복하자 장군 배중손은 삼별초를 이끌고 항전을 일으켰다. 양반과 백성들을 강화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한편,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관부를 세웠다. 그러나 양반관리들과 군사들이 강화도를 빠져나와 육지로 도망함으로써 사태가 불리해지자, 선박을 모아 재물과 백성·노비 등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도를 근거지로 삼았다. 재작년 10월에 진도 용장성을 탐방한 바 있다.
개경 정부는 삼별초가 진도로 들어가자 김방경을 역적추토사로 삼아 몽골군과 함께 이를 쫓게 했으나 힘이 미치지 못했다. 고려와 몽골 연합군은 1271년 5월에 진도에 대한 총공세를 폈고, 진도는 이들에게 함락당해 승화후 온과 배중손이 여기에서 죽었다. 이에 삼별초는 다시 김통정을 중심으로 그 근거지를 탐라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항거했다. 개경 정부는 몇 차례 회유했으나 실패하자 김방경을 중심으로 다시 고려와 몽골 연합군을 편성, 탐라를 공격하여 1273년에 삼별초의 항쟁을 진압했다. 전쟁의 비극이다. 나라를 지키려 일으킨 항쟁을 정복자인 몽골과 정부군이 연합하여 진압하는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지난 2월 24일부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두 달 동안 수 천 명의 민간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기고, 수 백 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대학살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나토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고는 있으나 큰 효과가 없고 푸틴을 제거할 방법도 없다. 국제사법재판소나 전범재판소도 무력하다고 한다. 저런 비극의 원인과 책임을 오로지 러시아와 푸틴에게만 지울 수 있을까? 설령 유엔과 국제사회가 푸틴을 체포하여 처형한다고 하자.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희생과 파괴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것인가? 국민들은 죽고 다치고 가족은 헤어지고 해외로 망명하고 저런 고통을 당하는데 전쟁이 끝나면 젤렌스키만 영웅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침략에 대항하는 전쟁일지라도 사전에 전쟁을 막거나 피하는 것만은 못하다.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의 종주국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너무 힘들다. 우크라이나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제국주의적이고 호전적인 러시아와 푸틴에 대해 균형감을 가진 외교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전쟁은 피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평화외교에는 전적으로 지지를 한다. 젤렌스키가 그랬다면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고 국토가 폐허로 변하는 참상은 피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함부로 침공할 수 없는 정도의 군사력을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외교에서 나토와 서방에만 일방적으로 치우친 외교는 결코 현명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는 전쟁이다. 힘을 기르되 무조건 전쟁을 없도록 하는 지도자의 현명한 외교정책은 절대적으로 선이자 정의로운 것이다.
○한림공원
여느 수목원들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아주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공원이다. 시간이 충분치 못하므로 한 시간 정도 산책하다. 분재원이 기억에 크게 남아 있었는데 다시 보아도 역시 대단하다. 장쩌민 방문기념비가 있는데 장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이 여러 분 찾았고 중국인들은 특히 분재원을 좋아하여 많이 찾는다고 한다.
○추사유배지와 추사관
내가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해서인지 어느 곳보다 더욱 가보고 싶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는 그 창의성이 신비스럽다. 추사는 1819년(순조 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순조의 특별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로 복직되고, 그도 1836년에 병조참판·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 그는 다시 10년 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헌종 말년에 귀양이 풀려 돌아왔다. 그러나 1851년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풀려 돌아왔다. 이 시기는 안동 김씨가 득세하던 때라서 정계에는 복귀하지 못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당시 대정현 유배지에서 추사가 머물던 집은 이곳의 부호의 집이라서인지 매우 아담하고 주인이 살던 안집, 추사가 거처하던 집, 제자들을 가르치던 집 모두 세 채가 있다. 물질적으로는 큰 고생은 면하듯 여겨진다. 유배처 앞에 추사관이 있다. 진품은 별로 볼 수 없고 복사한 글씨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마라도
가원이 마라도에 다녀온 적이 없어 필수코스이다. 한림공원에서 미리 송악항 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12시 40분 출발 승선을 예약하였으므로 안심을 하였다. 송악항으로 차를 몰아 무료주차장에 주차하고 빵과 음로수로 허기를 때우고 배를 탄다. 마라도에서 그 유명하다는 짜장을 먹기 위해서다.
마라도에 도착하여 마을을 지나보니 1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식당들이 훨씬 많아진듯 하고 모두가 짜장과 짬뽕 파는 곳뿐이다. 짜장은 맛있게 먹었으나 가원이 짬뽕은 별로라고 한다. 7천원 짜장은 가성비가 높으나 12,000원 짬뽕은 가성비가 형편없는 거 맞다. 한 바퀴 도는 것은 포기하고 2시 50분배로 나오다. 시간이 허락되었으므로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으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이중섭미술관
가원이 필수코스로 목적한 곳이다. 이중섭(1916~1956)이 이곳에서 1년여 살았는데 서귀포에서 살던 집을 관리하며 미술관을 건립한 것이다. 김정희가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금석학자라면 이중섭은 한국최고의 현대화가로 공인되고 있다. 그는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전시회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 태양상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생활고로 인해 다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으나 며칠 만에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부인은 100세가 넘어 지금도 일본에 살아 있다고 한다. 그가 가난하게 머물던 집과 미술관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미술관이 자리를 잘 잡았다. 전시실에는 그의 소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가난한 삶을 살다가 서귀포를 떠났다 한다.
1131도로(일명 516도로, 제1횡단도로)를 거치며 제주시로 귀환하다. 본래 이 도로는 제주시 관덕정에서 구 남제주군 청사를 잇는 도로였으며, 1932년에 임도로 개설되어 사람들이 왕래하기 시작했고 1943년에 지방도로 지정되었다. 1956년에 이 도로에 대한 정비가 시작되다가 1961년에 발생한 5·16 군사 정변 이후 본격적으로 확장 및 정비가 이루어졌다. 당시 군정 제주도지사였던 김영관 해군 소장은 정부의 재정 여건과 도로 이용 전망으로 따져봤을 때 국가사업으로 시행할 도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추진해 정부 당국과 절충이 이루어져 국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의 기억으로는 당시 군대를 회피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군복무대신 이 길을 닦는데 이용하였다고 기억된다.
이 도로 개설에 대한 기공식은 1962년 3월 24일에 당시 제주도청 앞 공설운동장(지금의 제주시청 앞)에서 이루어졌는데 기공식에 해군군악대와 의장대, 해병고적대 등이 동원되고 당시 대한민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가수인 박재란, 송민도 등이 축하 공연을 왔으며 이를 또 KBS에서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중계를 했다고 한다. 당시 중계에는 故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했다고 한다. 1969년 10월 1일이 되어서야 이 도로에 대한 개통식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공정률이 70%였음에도 불구하고 5일 후 대통령 선거가 있어 미리 개통식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제주에서 서귀포로 갈 때 무려 5시간이 걸리던 시간이 약 1시간 30분으로 줄어드는 획기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며, 한라산 남부 지역에서 제주시로 갈 때 교통이 편리해졌다. 버스를 타고 수차례 다닌 길이지만 직접 운전하면서 횡단해보니 대단히 아름다운 숲길이다. 그 유명한 사려니 숲길도 이 도로변이다.
어제 저녁 황돔회 식사가 너무 맛있고 쐬주도 한 병이나 마셨으므로 오늘 저녁은 가볍게 먹기로 하고 호텔 가까운 <명태어가>에서 갈비탕을 먹다. 식당도 고급이고 맛도 굳!
■2022. 4. 20 수
○우도
역시 8시에 출발하여 50여km를 달리는데 도대체 어느 길을 달리는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달릴 뿐... 다녀온 뒤 지도를 찾아보니 1131도로를 타고 올라와 1112번 도로를 타고 사려니 숲길을 지나 제주관광승마장, 산굼부리를 지나 스누피가든을 거쳐 한 시간 반이나 달려 성산포항에 도착한다. 출입구가 불분명한 주차장 입구를 찾는데 애를 먹고 10시 배를 타다. 우도는 단지 들어가 보았다는 기억밖에는 거의 없다. 그래도 가원이 안 가본 곳이라서 필수코스다. 특별히 찾을 만한 곳이 없으므로 전기자동차를 빌려 적당히 돌아보기로 한다. 처음 운전하는 차라서 생소한데 가이드가 운전법을 빨리 숙지하지 못한다고 약간 짜증이다. 이 사람 내가 그리 젊은 줄 아나? 천천히 운전하면서 하우목동항에서 주흥포구, 우도면 사무소를 거쳐 우도지석묘 옆 주차장에서 쉬고 천진항을 거쳐 다시 하우목동항으로 돌아왔다. 12시에 다시 나왔다.
○성산일출봉
점심을 먹고 오르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나와 식당을 선택했다. <성산일출봉 손>에서 나는 문어 칼국수, 가원은 보말전복칼국수를 시켰는데 모두 대 만족이다. 일출봉 오르는 길이 아주 잘 정리 되어 있다. 돌계단으로 편하게 오를 수 있는데다 찾은 사람들도 적어 그 옛 시절 수많은 인파에 섞여서 땀 뻘뻘 흘리며 오르던 시절이 그리움이다. 세계자연유산인 분화구는 여러 차례 보아서인지 장엄한 느낌은 예전처럼 받지는 못하다. 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전경은 정말 아름답다. 그림이다. 일출봉 하산하는 길도 따로 만들어져 아주 편안하다.
○섭지코지
섭지코지와 유민미술관을 모두 찾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에 우선 섭지코지 주차장부터 입력하니 주차장이 나오지 않고 혼선이 빚어진다. 섭지코지 가는 길 안내판이 있어 달리다가 주차장이 안보이기에 잠시 쉬다가 다시 돌아 나와 휘닉스제주섭지코지해안관광단지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유민미술관을 찾았다. 섭치코지보다는 유민미술관이 가원이 찾는 목적지이기에.
○유민미술관
주차장에서 1km정도 채 안 되는 억새풀 길을 걸으니 유민미술관이 나온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섭지코지다. 우리가 가다가 만 섭지코지 주차장에서는 이곳이 더 가까운지 많은 사람들이 해안을 따라 걸어오고 있다. 안도 타다오(1941~ )가 건축한 미술관이다. 정말 처음 보는 신비한 구조로 지하에 지어졌다. 하긴 익산국립박물관도 지하에 지어졌는데 이 미술관은 미로를 헤메야 한다.
〔안내 글: <유민 아르누보 컬렉션>은 중앙일보 선대회장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1917~1986) 선생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수집한 낭시파 (Ecole de Nancy) 유리공예 작품들입니다. 홍진기 선생은 삼성가의 홍라희 관장(이건희 부인, 이재용의 모친)과 홍석형 중앙 홀딩스 회장의 부친입니다. 1890~1910년대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짧지만 강렬한 흐름을 가졌던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은 삶과 일상 속 예술을 강조합니다. 자연스럽게 공예와 건축에 반영 되었으며 그림은 물론 가구, 유리공예, 보석, 스테인글라스, 포스터 등 장식 미술을 통해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르누보의 표현법은 덩굴식물이나 담쟁이 등 식물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유연하고 유려한 곡선 무늬를 특징으로 합니다. <유민 아르누보 컬렉션>은 공예 기술적 측면 뿐 만 아니라 아르누보 특유의 미학적 가치까지 더해진 낭시파 유리공예의 대표작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섭지코지 언덕에 있는 글라스하우스의 민트카페 앤 스튜디오에서 마시는 냉커피로 피곤을 풀고 5시에 제주시로 향한다. 아무래도 1시간 반은 달려야 할 것 같아서 일찍 출발하는 것이다. 나는 웬만하면 저녁운전은 피하고 본다. 내비가 시키는 대로 갔던 길을 힘들게 달려 6시 반에 호텔에 도착했다.
■2022. 4. 21 목
이미 일기예보가 오전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를 맞으며 숲길을 걸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권교수에게 전화하여 일정이 변경되어 불가피 점심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됨을 양해를 구했다.
○본태박물관
사려니 숲길 산책이 취소되니 가원이 반드시 가보고 싶다 한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어 1139번 도로를 달려가면 된다. 그러잖아도 벽암 김호길 선생이 전화까지 하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길이니 반드시 달려보라고 권장했던 터이다. 이슬비 내리는 1139번 도로는 이제 막 피어나는 연두 빛 나뭇잎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상당히 큰 도로인줄 알았더니만 역시 1131도로처럼 2차선이다.
본태박물관 역시 일본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으로 모두 5개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는데 역시 건물구조가 신비스럽고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이 너무나 훌륭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물어보니 현대가에서 모은 민속품들이라고 한다. 목가구와 복식도 대단하지만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새긴 현판들이다. 추사의 글씨들이 너무도 창의적임에 다시 한 번 감동하며 모두 사진을 찍어 왔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본태박물관에 10시에 입장하여 11시 반에 관람을 마쳤으므로 마지막 탐방지인 민속자연박물관과 바로 이웃에 있는 삼성혈에서 제주여행의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본태박물관에서 1135번 도로를 타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하다. 여러 번 찾은 박물관이므로 간단히 관람하고는 걸어서 삼성혈로 간다.
○삼성혈
화산지형이자 탐라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문화재로서 1964년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지반이 꺼졌고 그 안쪽에 구멍 세 개가 움푹 파였는데, 이 구멍에서 제주의 시조이자 수호신인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 삼신인(三神人)이 솟아났다고 전한다. 이들이 제주도를 다스리면서 양씨, 고씨, 부씨 국성의 탐라국을 건국했다고 한다. 가원이 南原梁氏이므로 제주를 본향으로 여긴다. 입구에 서있는 비석들을 살피며 양씨들의 비가 많다고 우쭐대신다. 수차례 와본 곳인데 오늘 찬찬히 숲을 한 바퀴 돌며 살펴보니 나무숲이 웅장하다. 숲의 크기도 넓어 새롭고 나무들의 키가 장난 아니다. 수학여행 인솔할 때에는 아이들 안전에 신경 쓰느라 너무 대충보고 마는 때문에 마치 처음 보는 숲처럼 느껴지는 것이리라. 삼성혈은 외국인들도 찾을 만한 신화가 깃들어 있는 웅장한 숲임을 새롭게 인식하다.
2시에 인터파크렌트카회사에 가서 차를 반납하고 셔틀버스로 공항에 도착하여 4층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나는 좋아하는 순두부 백반을 먹다. 여행 전 기획한바 대로 항공, 호텔, 렌트카, 식사, 목적지 탐방 등 모두가 차질 없이 이루어졌다. 처음으로 내가 직접 운전하며 목적지를 찾아 다녔기에 제주도지리에도 어느 정도는 익숙하게 되었고 알차고 보람 있는 3박 4일의 만족스런 여덟 번째 제주도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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