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익산총쇄록(상)

청담(靑潭) 2022. 12. 17. 21:37

익산총쇄록 상

■叢瑣錄

총쇄록이란 <자질구레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라는 뜻이다. 우선 상권이 나왔다며 임홍락 익산향토문화연구소장이 증정한다. 임소장이 회장인 익산고문헌강독회에서 익산시의 도움을 받아 출간된 것이며 익산문헌자료총서 제 4권이다.

 

■지은이 오횡묵(吳宖黙 1834~1906)

저자 오횡묵은 1874년(41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1877년(44세) 수문장을 시작으로 부사과, 감무감, 공상소 감동낭관, 영남 별향시, 박문국 주사를 거쳐 1887년(54세) 정선군수에 임명된다. 그 뒤 자인현감, 함안군수, 고성부사를 거쳐 내금위장겸 공상소 인감, 징세서장을 지내다가 다시 지도군수, 여수군수, 진보군수를 지내고 1900년 67세의 나이에 익산군수로 와서 1902년에 평택군수가 되고 1905년에는 품계가 종2품이 되었다가 1906년 면직되었다. 이때가 73세인데 거의 20여 년 동안 무려 9개 지역의 지방관을 역임한 지방행정의 전문가였다 할 수 있다.

 

익산군수로 재직한 기간은 1년 7개월인데 이때 전라북도의 양무감리(토지측량사무의 총책임자)를 겸하여 힘든 시절을 보낸 모습이 이 기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록 무관출신이었지만 문장과 학식이 뛰어난데다 인품도 훌륭한 사람으로 하필 흉년을 고통에 빠진 익산의 백성들을 위하여 세심하고도 정성어린 방안들을 세우고 지시하는 수많은 기록들을 대하게 된다. 오늘날 선거로 선출한 시장 군수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는 하나, 선거 때의 부끄러운 일로 당선이 무효되기도 하고 부정한 사건이 드러나 그만두기는 일이 허다한 모습을 본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 서울집을 떠나 지방관으로 전전하면서도 절대 부정하지 않고 올바른 목민관의 자세를 견지하며 오로지 백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업무파악이 정확하고 계획과 추진함에 있어 치밀하기가 그지없는 행정전문가였다. 그의 치적과 인품을 보여주는 내용이나,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할 만한 것들을 찾아 적는다. 당시의 백성들의 삶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능력있는 수령들이 기록한 것 만한 게 없다.

 

□기억해 주시는 저는 정성스런 뜻이 옅고 부족해 기우제를 지냈지만, 효험이 없어 문을 닫아 걸고 허물을 반성하고 있는 상태이니, 말씀드릴 만한 정황이 없습니다. 백리 고을의 군수가 되는 일은 영예로운 길이라고 누가 말했는지요? ...하찮은 몇 말의 녹봉 때문에 이처럼 자유롭지 못한 속박을 받아야만 하니, 일찌감치 <歸去來辭>를 짓지 않았던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귀거래사 : 도연명이 405년에 지은 글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것이다. 그가 41세 때 평택현의 지사로 있었는데 감독관의 순시에 의관속대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五斗米(적은 봉급의 뜻)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면서 사직하고 지은 것이라 한다.

□오늘은 바로 농촌에서 이른바 양을 삶아 먹으며 즐겁게 노는 복날입니다만, 시절의 분위기가 비상하기 때문에 즐거운 정황이 전혀 없습니다. 산속 거처에서 마음이 통쾌할 수 있도록 해 드리기 위해 이런 변변치 못한 음식을 보내고 겸하여 거친 위로의 말을 올려 한 번 웃겨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산사의 주방에서 차려주는 하찮은 음식을 먹고, 무더운 지역에서 노고하며 신체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라 여겼습니다.

□우리 익산군의 경우는 본디 높고 건조한 지역이어서 재해를 더욱 심하게 입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세우는 일이 막연하여 계획을 세울 수 없어 걱정과 두려움을 진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

□백방으로 생각해도 <귀거래사>를 짓고 귀향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군요. ...감사하게도 담배를 부쳐주셨는데 담배가 지극히 희귀한 이와 같은 지역에서 서양으로부터 건너온 진품을 얻었으니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감사한 마음은 피울 때마다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긴한 용품도 아닌 것을 선물 받아 매우 불안할 뿐입니다.

□각 군마다 양전 경비에 대해 모두 저축된 공전이 없다는 갖가지 이유로 비용 지출을 변명하며 따르지 않아 매번 대부분 어렵고 불편합니다.

이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우리들은 각자가 마음을 씻어 깨끗이 하고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위로 보답을 꾀하고자 생각하고 아래로 민생 보장을 유념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감리인 본인이 김제군에 도착하여 신분을 숨기고 각 면들을 순찰했는데 정탐하여 귀로 들은 내용이 해괴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이른바 위로비를 제공받는 것과 공갈하여 능멸하는 일은 오히려 사소한 일에 속하였고, 가장 개탄스러웠던 것은 척수 무리들이 몰래 뇌물을 받아먹는 일이 어느 마을이고 그렇지 아니함이 없었고 어는 사람이고 알지 못함이 없었다. 아!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 몸으로서 자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 저지르는 간악한 짓을 살피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라의 정사에 참여하여 의론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이에 미치면 나도 모르게 간담이 싸늘해진다.

□위원이 있는 각 군에서는 반드시 하인을 먼저 단단히 단속하여 권세를 믿고 남과 싸우기를 좋아하지 않도록 할 일, 위원과 학원 사이에도 늙고 젊음의 구분이 있는 것이니 예의를 잃지 않도록 할 일.

□도착한 지역에서는 식비를 학원과 척수에게 지체 없이 내주되, 술 값, 담배 값, 짚신 값 등은 또한 자비로 처리해야 마땅하니 절대로 민간에 폐를 끼치지 말 일.

□혹시라도 얼굴이나 사적인 관계에 구애받아 줄과 자를 늘리고 줄이며, 전결의 등급을 올리고 낮추며, 민호의 총수를 멋대로 숨기거나 누락하며, 규정을 고집스레 거절하고 준수하지 않으며, 한 병의 술과 한 줌의 담배라도 민간에게 폐를 끼치는 자가 있다면, 낱낱이 적발한 뒤, 본 아문의 규정에 의거하여 해당 위원에게는 사실을 갖추어 보고하여 조처할 것이고 학원에게는 엄하게 다스린 뒤 물리칠 터이니, 충분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요함.

□익산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가문이 거주하여 세상에서 사대부의 기북(인재들이 모여 있던 중국의 지역)이라 칭하였고, 마을마다 시경과 서경을 외우는 소리가 퍼져 학문하는 사람이 많은 직하(선비들을 초빙하여 강학하고 논설하던 중국의 지역)이었다.

우리 군에 서는 시장은 두 곳이다.

□관속들이 사채를 공전으로 둔갑시켜 가난한 백성들에게 억지로 징수하는 것, 혹은 계방(부역면제나 다른 도움을 얻으려고 관아의 하리에게 뇌물로 줄 돈이나 곡식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한 계)이라 핑계하고 연줄을 만들어 토색질을 하는 것, 백성에게 돈을 억지로 빌린 뒤 세력을 믿고 갚지 않는 것, 부조금을 핑계로 가난한 동리에 폐혜를 끼치는 것, 사간을 일으켜 마을로 나가서 공갈하고 협박하는 것, 평민을 사사로이 잡아다가 위협 공갈하고 매질하는 것, 평민을 유인해 서로 체결하여 관청에 내는 소장 내용을 변경시키고 핑계하여 재물을 빼앗는 것, 서원(세금 걷는 구실아치)들이 간평(농작물 수확 전에 미리 작황을 조사하여 소작료 비율을 결정하는 일)할 때마다 새로이 경작한 곳과 오랫동안 묵힌 논밭에서 법 이외에 세금을 거두는 것, 걸복(농지의 결부에 이동과 변경이 있을 때 실지로 조사하는 일)한다고 핑계하고 결복수를 지나치게 잡아 민생을 보장해 주기 어렵게 하는 것, 해장(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공전을 미납했다고 말하며 멋대로 발호(家戶에서 빼버리는 것)하거나 농토를 억지로 빼앗는 것 등등 일체를 발견하는 대로 보고해서 크게 징계하고 엄하게 처벌하도록 할 일.

어떤 관속이든 막론하고 만약 면이나 동리에 출장 나갈 때는 반드시 관아에 보고하고 날짜를 정하여 빙표(허가증)를 받은 뒤에 임의로 나갈 수 있다.

恒産을 없애고 직업을 잃는 것으로는 주색잡기보다 더 심한 게 없다. ...반드시 각 동리마다 규정을 세워 가정의 젊은이들이 만약 그 쪽으로 물들 조짐이 있으면 준엄하게 꾸짖어...

현재 백성들의 상황을 보건대 경작지를 빼앗는 소송이 열에 일고여덟을 차지하고 있다. 소송에 판결을 내리느라 날마다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데 하루에 두 끼를 먹지 못한다면 어떻게 애오라지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곡물을 간직해 두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時價를 따라 내어 팔라는 뜻으로 이미 명령을 내려 타일러 경계하였다.

□자방포는 바로 무안을 끼고 형성되어 있는 포구이었다. 포구 안에 천여 섬지기의 농지를 개간할 수 있는 땅이 있지만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는 곳이기 때문에 자연히 버려둔 것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이 되었는데 망녕되이 공사를 일으켜 재력을 허비하는 일이 뒤를 이어 계속 발생하였다.

지난 1872년 가을에 상서였던 소하 조성하(1845-1881)가 종용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포구를 막는 공사를 시작하려고 생각하여 나에게 가서 맡아 줄 것을 부탁하며 10만 금을 내어주고, <공사가 준공되면 보상으로 30섬지기의 농지를 주겠다.>라고 하였다.

※1872년이면 오횡묵이 39세로 아직 무과에 급제하기 전이다. 그런데 척신 조성하가 제방공사를 막는 책임자로 오횡묵을 시킨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미 토목공사나 측량 등 기술부문에서 널리 알려진 전문가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당시에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공사를 하지 않았으며, 이후 여러 차례 공사가 있었고 1901년 당시까지 모두 실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 <1900년대 초 노루목과 범바위 사이를 500m 정도 제방을 쌓아 자방포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은 제방공사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각 촌리의 양상을 말씀드리면 큰 마을 작은 마을 할 것 없이 모두 민심이 흉흉하였는데 요즈음 사람이 떠나 빈집이 서너 가호를 밑돌지 않았으며, 굶주림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실정이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한겨울이 곧 이르러 배고픔과 추위가 뼈에 스며들면, 춥고 배고픈 힘없는 백성들이 비록 편안히 살고자 해도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날마다 가혹한 세금 징수를 일삼고 있는데 이일이 어떻게 할 만한 일이겠습니까? ...지금 각별한 청탁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건데 되지가 않아 마침내 들어주지 않기로 결단하였으니 바라건대 용서하고 양해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와 같은 경우는 이름은 비록 여러 차례 군수를 맡았다 하더라도 집에는 1頃(40마지기 정도의 넓이)의 척박한 농지도 없으며 몸은 샅처럼 무거운 빛만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운명인지요? 젊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아니한 것이 한스러운데 이제 후회한 들 다시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본분을 생각해보니, 비록 같은 일을 하는 데는 참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칠십 세가 되도록 공문서 더미 사이에서 매우 바쁘게 지내리라고는 진실로 애초에 생각지 못했는데, 하물며 지금은 공문서에 포위된 한가운데서 곤경에 처해있으니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억해 주시는 저는 날마다 세금 징수를 위해 백성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을 어찌 물어본 되에만 알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각 마을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면 크고 작은 마을을 막론하고 민심이 흉흉해지고 그 사이에 백성들이 떠돌고 흩어져 빈집이 마을마다 3-4호 이상입니다. 배고픔을 호소하는 그들의 모습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비단 논만 전재를 입은 것이 아니고 밭 역시 그러하니 온 고을을 통틀어 먹을 것이 겨우 1/5가량만 수확했습니다. 들판의 정경과 백성들의 실정이 모두 참혹하고 절박합니다. ...백성을 격려하는 글을 지어 너그럽게 위로하기도 하고, 사안에 따라 혜택을 베풀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사환미 납부는 내년 가을까지 미루어주셔서 부담만 가득한 백성들이 안도하며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혜택을 입도록 해 주시길 천만번 바랍니다.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며 백성의 먹거리는 농사로부터 비롯된다. ...백성의 일을 생각하면 잠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번에 피해를 파악하는 일은 일체 진실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또 세금을 조사할 때나 직접 살필 때에는 토지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살펴서 세세한 것까지 숨기지 말라.

대소 민인들이 설혹 가을에 수확이 없어서 살아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반드시 스스로 안심해서 머물러 살 것이며, 흩어져 헤어지지 말고 구제해 주기를 기다리라. 그러나 혹시 집을 비우게 되면 동중에서 특별히 살펴서 집을 훼철하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급 순행을 출발하면서 백성들의 사정을 생각하여 먹을 것을 스스로 챙겨가니, 이번 순행을 따르는 모든 상하의 사람들도 비록 담배 하나, 술 한 잔이라도 절대로 거론하지 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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