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모자의 나라 조선

청담(靑潭) 2023. 7. 6. 23:57

모자의 나라 조선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2023)

 

지난 3월 사랑하는 딸과 믿음직한 사위가 생일선물로 준 책이다. 역시 시골 별서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몇 쪽씩 읽다보니 무려 네 달이나 걸렸다. 저자는 역사 전공자가 아님에도 퇴직 후 역사공부에 몰두하여 이처럼 값진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대단한 분이다.

 

-이 땅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모자를 만들어 냈을까?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이 땅에 정착했던 모자들이 왜 그토록 빨리 사라졌을까? 왜 우리 선조들은 모자를 사랑했을까? 선조들의 모자사랑과 현재의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라는 의문과 함께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모자 왕국인 조선과 조선인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점도 무척 궁금했다.-저자의 변

 

 

중고등학교 시절 6년 내내 학생 모자를 쓰고 다녔다. 내가 고창 대성고에 근무하던 1983년에야 복장자율화가 이루어져 일제 잔재인 늘 땀내나던 그 검은 모자는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모자를 쓴다. 무엇보다도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일할 때 쓰고 운동할 때 쓴다. 내게는 동문체육대회때 마다 한 개씩 받아온 체육모자가 열 댓 개 는 족히 되며, 여름에 쓰기 위해 쿠바에서 사온 에콰도르산 모자도 테가 넓은 것과 좁은 것 두 개 가 있고 해외여행시 쓰기 위해 최근에 구입한 멋진 K2모자도 있다. 학교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에는 모자를 그리 가까이 한 것 같지 않은데 은퇴하여서는 겨울에는 추워서 쓰고 여름이면 햇볕 때문에 쓰고 일하러 나갈 때 쓰고 하다 보니 어느 한 날 모자 쓰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잠시 후 운동 나가면서 역시 모자를 쓰게 될 터이다.

 

제1장 모자 왕국의 추억

제2장 파란 눈에 비친 조선의 모자

재3장 조선은 애 모자왕국이 되었을까?

제4장 조선의 모자와 신분제도 그리고 성리학의 허와 실

제5장 조선에는 어떤 모자가 있을까?

제6장 갓, 조선 선비의 멋

제7장 갓, 숨겨진 비밀

제8장 조선의 모자, 조선을 떠나다

□옷을 바꿔 입으라! 도포를 두루마기로!

○1884년 <갑신의제개혁>을 시행하여 도포(廣袖衣)를 금지하고 대신 소매가 짧고 간편한 두루마기(挾袖衣)착용을 권장하였다. ...내무대신 박영효는 이미 일본에서 간편한 서양복식을 경험했던 터라 ...이 개혁은 비록 미흡했지만, 신분에 따른 복식제도의철폐와 복식의 평등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영중추부사 홍순목, 영의정 김병국, 우의정 김병덕이 연명하여 의복제도 개혁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고종치세의 대신들 머릿속에는 이미 250여 년 전인 1644년에 망해 없어진 명나라의 제도를 따르겠다는 사대로 가득 차 있었으니, 어찌 보면 조선의 멸망은 이미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종은 신하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과 4개월 만에 기존의 풍속으로 되돌아가는 의제복구를 지시하여 의제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10여 년 동안 양반들은 예전의 도포를 애용했다.

○1894년 갑오년 의제개혁을 다시 시행하며 이를 따르도록 꾸준히 권고하였다. 정부의 노력으로 두루마기 착용이 점점 증가하였고, 이러한 변화가 조선 남성들의 복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다음 해인 1895년 3월에는 <을미의제개혁>을 실시하여 관복을 검은색인 서양식 복제로 채택하면서 관민이 모두 검은색 옷을 입도록 하였다. 광화문 사거리에 최초로 <윤태헌 양복점>이 문을 열게 된 때가 이 무렵이었다.

□악연, 단발령과 조선이 모자

○1895년 11월 15일 을미개혁을 고시하였다. 을미개혁 과제에 포함되었던 의제개혁의 핵심은 복식도 복식이지만 바로 단발령에 있었다. ...고종은 세자와 함께 단발령 공포 당일에 머리를 잘랐다.

○단발령을 감행했던 김홍집내각은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무너졌으며 동시에 단발령이 철회되었으나 상투를 잘랐던 사람들이 과거의 상투머리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막상 상투가 잘리다보니 허전하기는 했으나 그 편리함은 물론, 청량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 둘 스스로 상투를 자르게 됨에 따라 단발령의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 부 대신들을 포함한 정부의 관리들과 외교관, 도시민들을 중심으로 단발이 확산하였으며 근대교육과 개화바람으로 단발은 전차 보편화 되었다. ...초지일관 이에 저항하여 90% 이상 상투를 지킨 곳이 있었으니 전라도 남원과 경상도 안동지방이다.

□낯선 동거, 갓과 중절모, 따개비 모자와 두루마기

○단발이 확산함에 따라 양복과 서양의 모자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1920년대 무렵은 한복, 양복, 일본식 복식이 섞이고 모자를 비롯한 두식도 뒤죽박죽이 된 복식의 혼란기였다. ...흰색 일변도였던 저고리와 바지를 염색하여 입기 시작했으며 갓과 탕건, 두루마기를 버리고 중절모와 양복을 착용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한 것은 쉬이 버리고 남보다 먼저 편리함을 취하는데 익숙한 어답터(초기 수용자)들이다. 1800년대 후반에 성냥과 석유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수 세기 동안 사용해왔던 부싯돌과 호롱불이 단 1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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