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풍미산책

청담(靑潭) 2022. 5. 25. 05:55

산책

최승범(1931~ )

 

최승범 교수는 전북대 국문과 교수로 일찍이 내가 20대인 1970년대에도 전북지역에서는 유명하신 문인이셨는데 지금도 생존하고 계시며 집필을 계속하신다고 한다. 금년 92세이신데 여전히 책을 내시며 활동하신다니 대단한 분이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한옥마을에는 최승범 시인의 집필공간을 조성하였는데 <고하문학관>이라 한다. 선생이 집필한 책이 무려 50여권이라 하니 놀랍고 1969년에 선생이 발간한 <전북문학>이 50년이 넘어 지금도 발간되고 있다하니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디 읽을거리가 없나 하고 책장을 엿보다 발견한 책이다. 부제는 <한국 전통의 맛과 멋을 찾아서>이다. 1988년 8월에 발간된 책이니 무려 35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내용은 우리 전통의 먹거리에 대해 수필형식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담과 관련 저서들을 통해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전북출신이고 또 전주에서 살아왔기에 주로 전라도에서 경험한 것들이 대부분 인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하다.

요즈음 내가 텃밭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터라 관심 있게 읽었는데, 최승범 교수가 소개한 그 많은 채소와 음식들을 모두 그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하기란 매우 난감해서, 이 책에 소개된 먹거리들 중에서도 목차순으로 나의 식생활과 관련 있는 것만 취사선택하여 간단히 나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말미에는 차츰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별미 음식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1. 시금치

시금치나물이나 시금치국을 먹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시금치는 너무 맛이 없어 거의 먹지 않았다. 요즘은 금방 무친 시금치나물이나 쑥과 섞어 끊인 시금치국은 무난히 잘 먹게 되었다. 내가 이작도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 고로 적당한 면적에만 씨를 뿌렸는데 싹들이 잘 올라왔다.

 

※2022년도 텃밭에서 가꾸는 채소류

1.방풍 2.취나물 3.부추 4.쪽파 5.시금치 6.당귀 7.상추 8.쑥갓 9.감자 10.생강 11.오이 12.가지 13.토마토 14.참외 15.대파 16.옥수수 17.호박 18.고구마 19.고추 20.바질 21.고수 22.들깨 23.아욱 24.콜라비 25.당근 26.무 27.배추 28.도라지 29.미나리(집안 연못) 이하 과일밭 30.머위 31.쑥 32.냉이 33.돌나물 34.죽순

 

2. 미나리 ․ 불미나리회

미나리 무침이나 생선탕에 넣어 초장을 찍어 먹는다. 작년에는 지하수 샘 부근에 미나리를 많이 심어 실컷 먹었는데 풀약을 해서인지 금년에 거의 없어지고 연못주변에 겨우 몇 그루 보인다. 텃밭아래 돌미나리들도 자연수로를 시멘트 수로로 정리하여 모두 없어졌다. 별수 없이 시장에서 몇 그루 사다가 연못 주변에 심었다. 양이 적으니 생선탕 끓일 때 넣어 먹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3. 쑥 ․ 애탕

과일밭에 쑥들이 많았는데 풀약을 치게 된 뒤로는 많이 사라졌다. 머위 밭 주변 10여 평은 약을 치지 않으니 그곳에는 쑥이 잘 자라서 겨우 캐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봄철이면 그저 쑥국이 제일이다. 쑥국을 먹어야만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지난 초봄에도 여러 번 쑥국을 먹었다.

 

4. 죽순 ․ 죽순회

죽순은 집안 연못 위 대밭에서도 나고, 과일밭에도 대나무들이 일부를 둘러싸고 있어 죽순을 수확할 수 있다. 그저 재미로 두어 번 어린 죽순을 끊어다가 초장을 찍어 먹는다. 최근 너무 가물어서인지 죽순이 귀하다. 가원선생이 죽순으로 탕을 끓였는데 아주 맛이 좋아 세 번째 끓이려 준비하고 있다.

 

5. 고사리산적

엊그제 초등친구들(정기선, 강해정)이 고사리를 따러 가자는데 텃밭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저번에 친구인 정기선 친구가 자신이 뜯은 고사리 한줌을 주어서 가원이 일명 고사리돼지고기두루치기를 요리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작년까지는 여러 해 우덕희 진안문화원장이 자신이 가꾸는 고사리 밭에서 딴 수확물을 기린회원들에게 선물하여 잘 먹었는데 이제 그 밭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 뒤 강해정 친구가 자신이 애써 뜯은 고사리 상당한 양을 주어 맛난 요리를 해 먹었다.

 

6. 고수풀

나는 무주에 근무하면서야 처음으로 고수를 먹어보았다. 처음엔 향이 너무 진하여 약간 거부감이 있었으나 이젠 괜찮다. 우리 이쁜 딸 이 박사가 고수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금년에 처음으로 고수씨를 뿌렸는데 기대해 본다. 상추에 방풍, 더덕, 고수, 취, 바질 잎을 한 잎씩 얹어 먹으면 좋으리. ※깜박 잊었다. 고수싹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어찌된 일이지?

 

7. 아욱죽

나는 아욱죽을 엄청 좋아한다. 여러 끼니를 계속 먹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국이 바로 아욱국이다. 가을까지 오래오래 먹을 소중한 아욱을 가꾸기 위해 엊그제 아욱씨를 정성들여 뿌렸는데 잘 나올지 기대한다. 아욱죽은 어쩌다 한 번 끓여 먹는 정도이다. ※아욱 엄청 많이 나왔다. 오늘과 내일 흑산도 여행 다녀오면 즉시 아욱국 능히 끓여 먹을 수 있으리.

 

8. 돌나물회

과일밭에 엄청 벌어서 도대체 온 밭을 다 뒤덮을 요량으로 번졌다. 전라도에서는 돈나물이라고도 하는데 특별한 향이나 맛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가끔 초장에 무쳐 먹어보는데 앞으로는 맛있는 요리를 했을 때 그 요리 받침으로 돈나물을 깔아보면 멋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아니었다. 가원이 돈나물로 회를 해보니 아주 맛이 그만이다. 벌써 여러 차례 무쳐 먹고 있다. 돈 나물을 과일밭에 무궁무진하게 많다.

 

9. 냉이국

과일밭 창고 앞에 무수하게 냉이가 나는데 시기상으로 쑥보다 앞선다. 나는 매년 봄 쑥을 먼저 생각하다가 미처 냉이 캐는 것을 늘 깜박하고 만다. 금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냉이를 제때 뜯지 못하고 쑥을 캘 시기가 다 되어 냉이를 찾으면 비슷한 다른 풀과 구별을 못하여 나는 손을 들고 만다. 작년에 초등친구인 강해정이가 자세히 알려주어 확실히 알았다가 금년에 또 까먹었다. 다행이 가원이 잘 구분하여 몇 차례 쑥과 함께 국을 끓였으나 자주 먹지 못하여 많이 아쉽다.

 

10. 두릅나물

과일밭에 아버지께서 일찍이 심어놓은 목두릅이 많이 벌었다. 해마다 실컷 따먹고 있는데 금년에 유난히 많이 따져서 시골 앞집과 아파트 한선생집에도 나누어 드렸다. 두릅회로 먹을 땐 응당 막걸리가 따르게 된다. 수확양이 많으니 전을 해 먹기도 한다. 우리 과일밭 두릅나무는 나의 보배다. ※이제 충분히 따먹고 어제 마지막으로 수확하였다.

 

11. 상치쌈

상치는 예전엔 봄부터 가을까지 먹을 있는 가장 소중한 채소였으니 이젠 상치는 연중 필요한 최고의 채소가 아닌가 한다. 그냥 밥을 싸먹어도 맛있고 고기를 싸먹어도 역시 맛있는 상추는 아마도 누구에게나 또 나에게도 영원히 가장 소중하고 귀한 채소임에 틀림없다. 천원어치만 사면 이틀을 먹을 만큼 값은 싸지만 그래도 나의 텃밭에서 자란 상치를 뜯어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열흘 전 심은 상치는 아직 제대로 크지 않아 오늘 저녁 조금 뜯어 와서 여러 나물과 섞어 비빔밥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상치는 계속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사다가 심어 실컷 쌈 싸 먹으리.

※이젠 제법 커서 잘 뜯어먹고 있다. 치마상추가 맛이 좋다. 일주일 전쯤 상추씨를 뿌려 놓았는데 잘 올라왔다.

 

12. 애호박

며칠 전 채수환교수와 영등동 전주콩나물집에서 애호박돼지국밥을 먹었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과일밭에 한구더기에 두 그루씩 여섯 구더기를 심었다. 상추와 함께 연중 가장 많이 먹는 채소가 호박 아닌가? 작년에도 끝도 없이 열리는 호박을 실컷 따다 먹었는데 가을에 남겨놓은 늙은 호박은 잘 활용을 하지 못했다. 호박전이 맛있는데 호박이 있는데도 게을러 자주 해먹지 못한 지난 겨울은 아쉽다. 금년에 과일밭에 호박 여섯구더기와 텃밭에 참외 네 구더기를 준비했는데(한구더기에 모종 2그루씩) 의도치 않게 참외 두구더기가 과일밭으로 가고 호박 두구더기가 텃밭에 심어져버렸다. 그나마 과일밭 참외 한구더기는 땅이 맞지 않아 말라버렸다. 텃밭에 심어져버린 호박 두구더기는 그 무성하게 번지는 가지를 어찌처리할꼬? 호박과 참외의 어린 잎이 잘 구분이 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다.

 

13. 아귀탕 ․ 아귀찜

몇 주 전에 동백꽃 보러 동백정에 다녀오다가, 잠간 홍원항에 들렀더니 생선들 값이 말도 아니게 쌌다. 아귀 네 마리를 만원에 사왔고 갈치도 사고 조기도 사고 작은 갑오징어도 사왔다. 크지는 않아도 먹을 만한 아귀 한 마리를 탕을 하면 두 끼니는 먹는다. 가원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맛있게 끓이는 아귀탕 맛 일품이다. 이제 네 마리를 다 먹었다는데 홍원항 다시 한 번 가야하는거 아닌가?

 

14. 자리물회

지난 주 제주도에서 첫날 저녁식사는 횟집에서 하기로 하여 호텔로 가는 길에 보아 둔 횟집을 찾았다. 오늘 메뉴는 흑돔, 황돔, 광어라고 하는데 1kg에 흑돔은 14만원, 황돔은 10만원, 광어는 8만원이라 한다. 황돔을 시켰는데 양도 많거니와 맛이 그만이다. 후일 인터넷을 찾아보니 껍질이 검은 건 황돔이고 오히려 붉은 건 흑돔이라니 이해는 어려우나 우리는 검은 것과 붉은 것을 함께 먹었으니 주인이 비싼 흑돔 자투리를 선물해준 것은 아니었나 싶다. 나는 평소 광어회를 즐겨 먹는데 과연 제주도는 역시 돔이다. 평소 돔은 도미의 준 말임을 잊곤 한다.

 

15. 홍합죽

요즘 대부분의 중국집 짬뽕에는 홍합이 많이 들어간다. 평소에 홍합을 사다 먹거나 홍합요리를 시켜 먹는 일은 없기에 오직 짬뽕 먹을 때 비로소 홍합을 먹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마을에 있는 <황제짬뽕>집 짬뽕이 비록 비싸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고급스럽고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짬뽕에는 홍합은 없고 낙지만 반 마리 있다. 홍합만 많이 넣은 짬뽕은 매력이 별로다.

 

16. 쭈꾸미숙회 ․ 쭈꾸미탕

언젠가부터 쭈꾸미를 자주 먹게 되었다. 아마도 군산월명여중 근무할 때부터인가 싶기도 하고, 부안여상에 근무할 때 학부형들이 보내주어 전 직원들이 포식한 있다. 생 쭈꾸미는 그런대로 맛은 있지만, 낙지 씹을 때 나는 그 단내는 없다. 또 삶아 먹으면 오징어의 그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쭈꾸미에 관심이 적다. 요즘 산 쭈꾸미 1kg 가격이 3만 8천 원 정도인 것을 보았는데 전혀 사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돈으로 광어 1kg을 사면 찌개거리까지 준다. 오징어는 비록 냉동된 것이기는 하지만 만원에 큰 것이 두 마리 작은 것은 서너마리를 준다. 오징어 두 마리 삶아놓으면 쭈쭈미보다도 더 맛있고 양도 적지 않으니 쭈꾸미는 가성비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단,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17. 딸기

그 옛 날 어린 시절에는 산딸기는 먹었으되 일반 딸기는 거의 먹어보는 일이 없었다. 당시에 우리 집에서 재배하지도 않았고 상품으로 판매된 것 같지도 않다. 요즘은 마트에 넘쳐난다. 그러나 늘 자주 구입하지는 않고, 가끔씩 구입하여 아침식사 때 몇 개씩 먹는다. 금년 들어 아침식사에는 올리브 기름과 발사믹 식초가 등장하였다. 몸에 좋다면서 가원이 인터넷 어디에선가 반 가격에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며 항상 구비한다. 빵도 찍어먹고 과일도 찍어 먹는다. 물론 딸기도 찍어 먹는다. 우리 집에 이제 잼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 동안은 아버지께서 텃밭에 딸기를 심어오셨는데 작년부터는 내가 중단하였다. 보기 흉한 벌레가 많이 모여들어 약을 치지 않으면 못 먹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살충제 뿌리느니 그냥 사먹기로 한 것이다.

 

18. 수박

수박은 여름철에만 먹는 과일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귀동골 밭에 수박을 심어서 크게 열려 한 개식 따가지고 집에 올 때면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 수박을 다섯 구더기에 심었는데 재배기술부족으로 너무 많이 열려 크기도 작고 왠 비가 어쩌면 그리도 자주 내리던지 많이 썩어서 버리는 게 많았다. 올해는 참외만 심었다. 수박은 연중 마트에 진열되지만 겨울철에 중간크기의 수박이 한 개에 2만원 정도여서 잘 사지지는 않는다. 요즘은 가격이 내린 것 같은데 여전히 사는 일은 없다. 먹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격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까지 거의 30여 년 동안 단란주점을 드나들면서 과일안주를 시키면 참외와 포도와 수박이 나오므로 수박은 늘 먹고 살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 때문인지 코로나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기나긴 음주생활도 끝나고 이젠 각종 모임의 회식자리, 몇몇이 모이는 막걸리 집, 특별히 모임이 생겨 가게 되는 횟집에서 종종 술잔을 기울이는 정도이다. 요즘은 2차 3차는 물론 단란주점과 노래방 출입까지 엄중한 마음으로 금하고 있다. 앞으로도 당근이다.

 

19. 당근

재작년에는 대성공을 거두어 엄청 많이 수확했는데 작년에는 약간 미흡했다. 그러나 씨앗판매점 주인이 권하는 대로 자색당근을 심었고, 그 맛이 아주 좋다고 가원과 이쁜 딸이 좋아한다. 레인지에 구워 아침식사에 잘 이용했다. 금년에는 흑 당근을 좀 더 많이 심고 잘 가꾸어 볼 생각이다.

 

20. 고추 ․ 고추잎

금년에는 풋고추로 따먹을 20포기만 심었다. 작년에는 30포기를 심어 10여kg의 붉은 고추를 갈아서 보관하고, 마을 사람들이 상품작물로 재배한 고추를 따서 판매한 뒤에 열리거나 익은 것들은 관심을 두지 않으므로 내가 두 포대를 따서 생으로 갈아 김장에 쓴 바 있다. 생으로 갈은 고추액과 구매한 고춧가루를 섞어 담그는 때문에 우리 집 김장김치가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판단한다. 20포기면 풋고추 실컷 따먹을 양은 된다. 고춧잎장아찌를 담그려면 작은 고추가 열리는 별도의 품종을 심어야 하는데 금년에 깜박 심지 않았다. 하긴 고춧잎장아찌는 그리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21. 오이소박이

오이는 여름철 우리 집에서 최고로 소중한 채소가 되었다. 금년에도 10구더기를 심었으니 아마도 실컷 따 먹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무 많이 심었다고 하시는데 여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드려서 좋다. 생으로도 먹고 오이소박이해서 먹고 오이맛사지에도 쓴다. 잘 길러서 엄청 많은 수확을 할 생각을 하면 그저 기분이 좋다.

※내가 그제 오이 집을 지었는데 어제 아버지께서 더 멋있게 오이나무가 자라면서 올라 탈 기둥을 멋지게 보완하여 세우셨다. 당신 손길로 무언가 하시고 싶어 하시는데 역시 나보다 한 수 위이시다. 부자합작으로 너무 멋진 오이집이 지어졌다.

 

22. 가지 ․ 가지나물

금년에 가지는 4그루만 심었다. 작년에 6그루인가를 심었는데 수확은 너무 많고 소비할 데가 없어 너무 익어버린 가지들을 따서 버리는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지는 생으로 먹거나 가지회를 해 먹으면 흔히 혓바늘이 돋는 등 부작용이 생기므로 가지나물을 무쳐 먹는 이외의 용도가 적다. 그나마 가지나물을 방금 무친 것이나 맛이 있지 한번 냉장고에 들어가면 차가워서 손이 잘 가질 않는다.

 

23. 고구마 ․ 고무마순 김치

금년에 고구마는 잎을 따서 내가 극히 좋아하는 고구마순 김치를 담가먹고, 수확되는 고구마는 겨울철 아침식사에 이용하려고 작년보다는 적은 20포기만 심고자 했는데, 시장에서 모종 한 묶음으로만 팔기에 구매해서 심고 나니 30여 포기나 남는다. 나는 내버리려 했는데 아버지께서 아까우신지 꽃씨를 뿌린 곳에 기어이 심으셨다. 아마도 그것은 고구마 수확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아버지의 정성을 존중하여 그대로 둘 생각이나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바로 옆집 밭으로 무서운 기세로 뻗어가는 가지들을 자주 쳐내야 하니까. 나는 고구마순 김치를 엄청 좋아한다. 막 담은 김치도 좋고 푹 익은 김치를 넣고 밥을 비벼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다. 고구마순 김치를 담그려면 나의 노력이 꽤나 들어간다. 고구마순을 따서 잎을 따 낸 다음 일일이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러고 나면 손톱은 까맣게 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농투성이 손 같은 험악한 손이 더 흉하게 된다. 하긴 끝없이 생산되는 텃밭 채소를 가끔씩 남들에게 나눠주고, 온갖 요리하여 식탁에 제공하는 가원의 애씀과 노력에 비하면 그저 즐거운 비명일 뿐이지요.

 

24. 칼국수

어린 시절 여름철이면 엄마가 수제비 해주시고 칼국수를 자주 해주셨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밀농사를 지으므로 읍내에서 국수를 열 몇 뭉치씩 빼오고 밀가루도 빻아 온다. 국수는 마루 시렁 위에 얹어 놓고 자주 삶아 먹기도 하고 저녁식사로는 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를 해서 먹었다. 특히 팥 칼국수가 가장 맛있었고 가끔씩은 (정확치는 않지만)녹두와 호박을 넣고 끓이는 칼국수를 해주시는데 그게 일품이었다.

익산에는 수십 년 전부터 유명한 <태백칼국수>집이 있어 가끔 찾았었으나 요즘은 우리 마을 모현동에 있는 <솔뫼마을>에서 칼국수, 새알 팥죽이나 팥 칼국수를 먹는다. 우리 이쁜 딸은 그중 새알 팥죽이 그리도 맛있다고 엄청 좋아한다. 집에 내려올 때는 꼭 찾아가 먹고 시간이 없으면 사가지고 간다. 우리가 서울에 갈 때에도 종종 사다 줄 정도이다. 또 해물칼국수를 먹고 싶을 땐 금강하구둑에 있는 <금강해물칼국수집>을 종종 찾는다. 칼국수가 익기 전에 덤으로 맛있는 보리밥을 주고 칼국수에는 크나큰 만두를 넣어주는데 칼국수 맛도 좋고 양도 많으니 기름 값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25. 애저찜

근 20여 년 전 진안에서 두어 번 먹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다시 찾은 일이 없을뿐더러 요즈음도 인기가 있는지 관심조차 없게 되었다. 당시에는 여러 사람들이 맛이 좋다하여 호기심에서 따라가 먹어본 것인데, 아무리 우리 인간이 온갖 짐승의 고기를 먹고 산다지만 殺生有擇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기른 닭도 내가 직접 잡아먹기 싫어 금년부터 기르지 않을 정도이거늘 하물며 어린 새끼돼지를 삶아 놓은 애저를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26. 꽃게

많은 사람들은 꽃게탕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크게 맛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저 꽃게탕의 국물만을 그저 그 정도로 먹는 편이다. 그 대신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을 매우 좋아한다. 군산에는 유명한 <계곡가든>이 있고 익산은 <백인숙 꽃게장>이 있다. 계곡가든 꽃게장 식사는 1인분이 3만원대이고 판매하는 꽂게장 가격도 엄청 비싸서(여섯 마리에 15만원) 쉽게 사먹기가 힘들다. 명절 때 사돈네에 선물을 하는데 정작 우리는 제주도 황게를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사실 황게가 더 맛이 좋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며 가성비(작은 한 통에 택배비 포함 4만 원 정도)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오늘(26일) 흑산도에 다녀오는 길에 목포항에서 돌게장을 먹었는데 맛도 좋고 양도 많아 포식했다.

 

27. 장어구이

고창 선운사 입구에는 장어집이 줄지어 있다. 최승범 교수도 이 책에서 언급했지만 선운사 풍천장어는 옛 부터 유명하다. 나는 80년대 초에 선운사 너머 해리중학교에 근무하면서 <동백식당>에서 풍천장어에 복분자술을 먹어보았다. 우리는 가끔 해리쪽에서 선운사로 등산을 했는데 워낙 풍천장어값이 짱짱해서 교사 초임봉급으로는 갈때마다 번번히 사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가지고 가서 굽고 소주를 먹은 기억이 많다. 요즘 인천강에서 직접 잡는 진짜배기 풍천장어는 없고 거의 모두가 이웃 심원면의 많은 양식장에서 기른 장어들이다. 아무리 양식장어라도 그 값은 상당해서 1인당 3만원이 넘는다. 어쩌다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씩은 선운사를 찾아 장어구이를 먹곤 하는데 가원은 ?역시 장어는 선운사 장어야!?라며 감탄한다. 나는 크게 동의하지는 못한다. 어디서 먹어도 크고 통통한 장어가 씹는 맛이 나고, 그 맛이 제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는 美食家는 못된다.

 

28. 메기탕

한때 금마저수지에 있는 유명한 <물머리집>을 자주 찾아 메기매운탕을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너무 크고 통통한 메기가 징그러워 싫어지기 시작하여 요즈음은 거의 먹지 않고 주로 빠가탕을 먹는다. 최근엔 다른 이유로 물머리집은 발길을 끊었다. 그 이유는 뒤에 오리탕에서 언급된다.

 

29. 낙지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회가 바로 낙지회일 듯싶다. 횟집에서 정식을 먹을 때면 부수안주로 낙지도 한 접시 나오는데 아무리 좋아하지만 남의 손도 있어 내가 한 젓가락 집어먹으면 이미 접시는 바닥이 난다. 비싼 거라서 추가는 없고 별도로 한 마리 시키면 2만원이나 하니 그저 맛이나 보는 수밖에 없다. 20여 년 전 동산동 삼성아파트에서 살 때이다. 토요일인데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친구인 신홍규 교수가 부른다. 어제 무안에 놀러 갔다가 세발낙지가 어찌나 맛있던지 문리대 학장인 고교선배와 함께 어느 횟집에 있는 세발낙지를 모두 거두어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함께 자리한 교수선배와 셋이서 크고 작은 20여 마리의 세발낙지를 소주를 곁들여 실컷 먹었다. 비싼 세발낙지를 한 마리도 아니고 이처럼 많이 먹은 건 처음이기도 해서 큰 것을 나무젓가락에 둘둘 말아 삼키다가 하마터면 목이 막혀 죽을 뻔(?) 했다. 경험부족이라 입에 넣고 잘 씹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가원과 신안군에 놀러 갔다가 당시 생각하고는 세발낙지를 여러 마리를 사왔는데 집에 와서 먹으려니 전혀 싱싱하지 않아 맛있게 먹는데 실패한 일이 있다.

 

30. 쏘가리 ․ 어죽

최승범 교수님도 어죽은 무주의 것을 손꼽는다고 들어왔다고 한다. 무주고에 발령받아 어죽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고 여러 차례 맛보았고, 특히 쏘가리탕은 특별한 맛이 있다. 무주읍 향로산 뒤편엔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마치 섬인 듯싶은 모양을 띤 마을이 있다. 이름도 내도리요, 동네는 앞섬과 뒷섬이다. 그 맑은 금강에서 잡은 쏘가리로 소가리탕이 나오고 빠가로 어죽을 만든다.

내도리의 쏘가리탕은 이미 비주얼로 일품이다. 쏘가리 크기도 상당해서 살코기가 먹음직하거니와 값은 보통가격이 아니다. 당시 들은 말로는 마을 사람들 중 어획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잡을 수 있고 아무나 투망질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그런 특혜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수입만큼 세금을 잘 내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진 바 있다. 무주고 근무당시 행정실에 근무하시는 분이 당신이 사는 마을 앞 천에서는 자신은 고기를 잡아도 괜찮다하여, 몇몇이서 함께 초대에 응하여 술을 마음껏 마시는 멋진 川獵을 한 적이 있다. 또 언젠가는 이치수 선생과 진안의 어느 천변 산장(식당) 앞 냇가에서 산장 주인의 힘(백)만을 믿고, 고기를 망에 가득 잡아 익산의 우리 집에서 여럿이 모여 최고의 산천어탕을 즐긴 기억도 있다.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난 추억들이다.

 

31. 망둥이 구이

망둥어는 서해바다 갯벌에서 무수히 볼 수 있다. 언젠가 TV에서 보니 망둥어를 낚시로 잘도 낚아채는 도사들을 본 적이 있는데, 군산시 대야면과 김제시 만경읍을 잇는 구 다리 일명 새챙이 다리에서는 망둥어 낚시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만경강하구이니만큼 망둥어가 많은 것이다. 망둥어는 잡자마자 초장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상당하지만, 말려 놓은 망둥어로 끊인 망둥어찌게는 도대체 그 맛을 잘 모르겠고 말린 고기라 그런지 매우 질기서 별로 매력 없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그것도 일미였겠지만.

 

32. 송어회 ․ 송어탕

대략 40여 년 전인 1970년대, 80년대만 해도 활어회는 정말 값비싼 음식이었다. 요즘은 양식으로 흔하디 흔한 광어, 우럭, 도다리, 농어 등을 당시에는 평범한 월급장이인 우리로서는 특별한 회식이나 손님 접대하는 때가 아니면 감히 맛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회가 먹고 싶으면 작은 간이횟집에서 값이 싼 바다장어인 아나고(붕장어)를 한 접시 시켜놓고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몇 년 전에 모임에서 여수로 갯장어(하모)를 먹으로 갔는데 크기도 어마무시하게 크거니와 그 값도 대단히 비싼 데에 크게 놀랐다. 아나고와 하모는 그 크기에서부터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각설하고 바다활어회가 비싼 시절에 대안은 향어나 송어회였다. 향어는 값이 싼데 비해 맛이 덜하고 송어는 1급수에서만 살기에 기르기 어렵고 그래서 값이 비싸지만 맛이 더 좋다. 향어는 파는 곳이 없어진지 오래인데 현재 우리 시골마을 양식장에서 향어를 기르고 있다. 너무도 의아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지금도 경상도에서는 잘 먹어 판매가 되기에 그곳으로 공급한다고 한다. 군산시 임피면 부근에도 송어집이 있고, 웅포 송광사 앞 산정호수가든은 사시장철 송어가 있다. 마치 연어처럼 색깔도 예쁘고 활어 맛 못지않다. 또 활어는 봄철이 지나면 무서워서 먹기를 꺼리는데 송어는 1급수에서만 자라기에 기생충이 없어 여름철에도 먹을 수 있는 횟감이므로 즐겨 찾게 된다. 하긴 요즘은 한 여름철에도 걱정 없이 활어를 먹는 시대이니 그것 역시 변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요즘 가격을 찾아보니 송어는 1kg에 45,000원이고 셋이서 매운탕까지 먹을 수 있다. 반면 가장 대중적인 광어는 횟집에서 <중>짜리(3인분)가 최하 80,000원이다.

 

33. 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 중 가장 중요한 채소는 뭐니 뭐니 해도 배추와 무이다. 나는 배추김치와 무김치 중 무김치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채소밭에 김장용으로 배추 100포기 정도와 무 150여개를 수확하여 모두 소비하고 있다. 우선 무김치를 7~8통 담가 배추김치와 함께 가족들에게 배분한다. 아버지, 아들, 딸, 막내처제, 사돈네 각 1통씩 주고나면 우리가 3통 정도 먹게 된다. 무김치는 3월이면 벌써 시어지므로 2월 이내에 먹는다. 또 배추와 함께 동치미를 담그고 남은 무는 채소밭에 묻었다가 봄철에 꺼내 먹는다. 무는 연중 내내 깍두기 담고 생채를 담고 생선탕에 소용되므로 봄철이 지나면서부터는 수퍼에서 구입해 먹게 되는데 값이 비싸지 않으므로 아무런 걱정 없이 우린 무를 좋아하면 실컷 먹고 살아가고 있다. 생선탕에 무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

 

34. 밤

어린 시절에 밤은 상당히 소중한 과일로 여겨졌었다. 마을에 밤나무가 없었기에 명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오른 예쁘게 깍은 하얀 밤을 아무 맛있게 먹었다. 그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할머니께서 벽장에 아껴 넣어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주시는 것을 겨우 받아먹을 수 있었다. 이젠 그리 소중한 과일이 아니다. 소비가 크게 줄다보니 가을에 밤이 익으면 노인들이 단체로 밤나무 산에 가서 밤을 주워 반은 주인에게 주고 반은 챙겨오는 행사가 생겼다. 나도 두어 번 따라가 본 적이 있는데 벌레가 들어가 쪼아 먹어서 온전한 밤을 줍기가 어렵고 그나마 집에서 삶거나 구워서 먹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아서 매력이 없다. 그러나 이제 밤이 그리 중시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맛있는 호박고구마가 오히려 밤보다 더 맛이 있거니와 먹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전혀 귀찮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젠 관광지에서 재미로 사먹는 일 외에는 거의 밤을 챙겨 먹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35. 도토리

우리 마을은 야산지대라서 도토리나무는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상수리나무는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도토리나무가 많지도 않아 도토리묵을 해먹는 일조차 기억이 없다. 그저 절이 있는 관광지에 가게 될라치면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실 때 도토리 묵 맛을 보곤 했다. 언젠가 부터는 보통 점심 백반상에도 도토리묵이 올라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러나 도토리가 원체 적게 들어가서인지 특별한 맛이 없어 젓가락이 잘 가지는 않는다. 어쩌다 잔칫상에 진짜 도토리묵이 오를라 치면 그때는 묵이 부드럽기 그지없고, 도토리 내음새가 물씬 풍겨서 막 집어먹고 싶어진다.

 

36. 감

우리 집에 감나무가 몇 그루인가? 집에 한그루, 과일밭에는 단감 한그루를 포함하여 네 그루가 있다. 해갈이를 한다지만 여러 그루가 있어 해마다 많이 수확한다. 단감도 백여 개 이상 따서 실컷 먹고, 일반 감은 200여개 이상 따는가 보다. 따놓으면 저절로 홍시가 되어 맛있게 하루에 몇 개씩 먹는데 그러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작년에 곶감을 만들어 보았으나 초파리떼 극성에 져서 대실패하고는 아까워서 식초를 담아 놓았는데 과연 성공할른지 모르겠다.

 

37. 들깨

참기름과 참깨는 마트에서 구입해 먹는다. 들깨는 몸에 좋다는데 우리 집은 거의 소비하는 일이 없고 들깻잎은 활어횟감 쌈 싸먹을 때 꼭 필요하다. 작년엔 정기선 친구에게 몇 그루 얻어다 심어 잘 따 먹었는데 금년에 씨를 사다 심어 보았다. 아직 싹이 나지 않고 있다. 또 들깻잎 장아찌는 얼마나 맛이 있는 것인가? 작년에 이당 선생님(서예가 송현숙)이 주신 들깻잎 나물을 지금도 간간이 꺼내 먹고 있다.

 

38. 더덕 무침

20년도 더 지난 언젠가 수덕사에서 1박을 하는 여행을 했을 적에 민박집에서 더덕구이를 맛있게 먹을 것을 가원은 자주 꺼내 얘기 한다. 이젠 산 더덕을 구태여 찾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고 재배한 더덕을 먹는 일이 보편적이 되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텃밭에 도라지를 심어 오셨기에 늘 도라지로 더덕을 대체한다. 더덕은 몇 그루 심어 보았으나 수확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탓이다. 도라지를 닭백숙에도 넣고, 도라지무침도 하고 도라지 구이도 해서 먹는다. 도라지 구이는 더덕구이나 별 반 다름없다.

 

39. 청국장

콩으로 만든 된장은 온갖 음식에 넣어먹거나 쌈을 싸먹을 때도 필수불가결한 장이지만, 청국장은 오직 청국장만 끊여서 먹는 것이다. 온 나라가 모두 가난하던 어린 시절, 겨울철이면 끼니때마다 으레 밥상에 청국장이 오르는데 김치가 흔한지라 김치와 청국장이 어우러져 나오는 그 냄새가 갈수록 어찌나 싫었던지 훗날 사십대까지 청국장을 잘 먹지 아니하였다. 재수를 하던 시절에 지금은 세상을 뜬 친구인 한동희네 집에서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동희네집 청국장은 시레기에 비게가 있는 돼지고기로 끊인 것이었고 그 맛은 실로 처음 맛보는 맛있는 청국장으로 너무나 오래 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아! 잘 사는 도시 사람들은 저런 청국장을 먹고 사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김치 넣은 시골 청국장을 다시는 먹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50대가 되어 내 주문에 의해 우리 집도 마트에서 구입한 청국장에 비게가 있는 돼지고기를 넣고 청국장을 끓여 먹으면서 다시 먹게 되었다. 한 때는 맛있는 청국장 집을 찾아다닌 시절이 있었으나 요즘은 마트에서 정말 맛있는 청국장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거의 집에서 먹게 되었다. 다만 겨울철에 집에서 끓이면 냄새가 장난이 아니므로 큰마음을 먹어야 시도하고, 아무리 맛있는 청국장일지라도 먹은 뒤엔 반드시 창문을 열어 냄새를 완전 제거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도립미술관 앞 <옛촌보리밥> 과 대둔산 <대전집> 청국장이 맛이 있다.

 

40. 콩나물 국밥․콩나물 비빔밥

아침 해장국하면 역시 콩나물 국밥이 최고다. 그리고 콩나물 국밥하면 전주가 최고다. 그런데 나는 익산의 <별미집> 콩나물국밥을 최고로 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일요일 오전에 익산온천을 다녀오면서 별미집에 들러 콩나물 국밥으로 아점을 하며 살아왔다. (최근 2년간은 코로나로 인하여 온천을 중단하여 익산온천-별미집 코스가 중단되고 있다. 현재는 나 혼자서만 이발을 할 겸 한 달에 한 번 정도 온천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전주에는 유명하다는 콩나물 국밥집이 많고 체인점도 많으나 <별미집> 콩나물 국밥은 7가지 재료를 넣고 삶은 국물 맛이 정말 끝내준다. 여기에 청양고추를 넣고 약간 삶은 계란을 풀어서 먹으면 그 맛이란 그 어느 콩나물 국밥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코로나 기간에는 가원이 별미집에서 국물 맛을 낼 때 넣는 재료들을 그대로 넣어서 끓여서 먹는데 거의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어 종종 끓여 먹었다. 이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으므로 익산온천-별미집 코스를 재개할 듯싶다.

콩나물 비빔밥은 어린 시절 너무 많이 먹었다. 별미로 만들어먹은 것이 아니고 쌀을 아끼기 위해 보리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콩나물 밥, 무밥, 시래기 밥, 고구마 밥, 국수, 수제비, 호박죽 등 갖가지 밥들을 먹으며 살았다. 콩나물밥은 약간 콩나물 비린내가 나기는 했으나 양념간장에 비벼 먹으면 맛있기는 했다. 그러나 자주 먹으면 약간 질리곤 했다. 그래도 고구마 밥만큼 질린 것은 아니었다. 비린내가 단것보다는 견디기가 나은 건가?

 

41. 토란탕 ․ 죽순탕

어린 시절엔 텃밭에 토란을 심어 수확했기에 토란탕을 자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 이후로는 명절에나 맛보는 음식이 되었는데 금년에 재미로 토란 세 그루를 사서 우물 옆에 심었다. 수확과는 관계없이 그저 관상용으로 심은 것이다. 비가 오는 날, 넓은 토란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방울방울 동그랗게 맺히면서 통통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은 참으로 예쁘다. 옛 추억을 소환하고픈 마음으로 심은 것인데 아마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듯싶다.

죽순탕은 최승범 선생은 언급하지 않은 건데 내가 붙였다. 지난 주(5월 둘째주)에 시골집의 죽순과 과일밭의 죽순을 거두려니 도통 솟아난 게 별로 없는데 그동안 너무나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상당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비가 내리면 죽순은 땅을 뚫고 쑥쑥 올라오며 자라는 것이라서 雨後竹筍이란 말이 있는 것인데 도대체 비가 오지 않으니 죽순도 별로 나오지 않고 설령 나온 거라 해도 죽순나물 해먹기에는 이미 쇠어버린 상태라 그 양이 아주 적다. 내가 겹겹의 껍질을 벗겨 얻은 소중한 죽순으로 가원이 탕을 해놓았다. 처음 먹어보는 죽순탕인데 나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엊그제 두 번째로 탕을 해서 아버지께 한 그릇 드렸더니 아까 전에 매우 맛있었다는 전화를 며느리에게 주셨다.

 

42. 생강정과 ․ 생강차

생강정과는 이제 시장에서 얼마든지 사서 먹는 시대이다. 맥주안주인데 값도 싸다. 생강차 역시 시장에서 구입하여 겨울철에 마시는 대표적인 차이다. 작년에 생강이 잘되어서 꽤 많이 수확하였는데 김장에 쓰고도 너무 많이 남아서 생강차를 많이 만들었다. 목이 약한 사람에게 매우 좋은 차라서 만들었으나(내가 목이 약하다) 워낙 커피에 밀리는 탓에 겨울철에도 많이 마시지 않아 아직도 남은 양이 꽤 된다고 한다. 금년에도 생강을 상당히 심었는데 소출이 많으면 또 어떡하나?

 

43. 추어탕 추어숙회

어린 시절 선배 및 친구들과 두어 시간 고생하면서 마을 방죽을 품어내면 거의 바께쓰(수대)에 절반이나 찰 정도로 미꾸라지를 잡았다. 일가견이 있는 선배들이 솥에 넣고 소금을 뿌려서 삶아낸다. 어른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미꾸라지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언젠가부터(성인이 된 1970년대)남원에 가게 되면 추어탕과 추어숙회를 먹곤 했는데 값이 상당히 비쌌고 그에 비해 가성비는 많이 낮았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두툼한 미꾸라지를 맛있게 먹었던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은 추어탕집이 곳곳에 널려 있다. 나는 김제의 <남원 추어탕>집을 최고로 친다. 어머니께서 추어탕을 좋아하셨으므로 돌아가시기 전, 일이년 동안에 거의 매주(간간이 너무 질려서 잠시 그만 드시겠다는 때도 있었다) 3-4그릇을 포장해서 갖다 드렸다. 내가 들어서면 종업원들이 담박에 알아보고 몇 개냐고 물어보곤 했다. 요즈음도 가끔씩 남원추어탕집에 가는데 여전히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먹어보면 그 어느 집 추어탕보다 맛있는데다 반찬도 깔끔하며 맛이 있다. 미꾸라지를 튀겨 몇 마리 내놓는데 이 또한 별미다. 9천 원짜리 추어탕 가성비가 최고다. 나는 김제의 남원추어탕집이 아니고는 추어탕을 거의 찾지도 않고, 먹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44. 동치미

어릴 때부터 집에서 동치미는 늘 담았고 그래서 겨울 내내 동치미를 먹으며 살았다. 땅에 묻은 김장독에서 얼음이 살짝 얼은 동치미를 꺼내면 그 동치미국물은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늘 김장김치와 함께 겨울 내내 밥상에 단골메뉴로 나왔다. 나는 무동치미를 잘게 썰어 된장에 비벼 먹기를 즐겨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자주 먹는다.

해마다 김장을 할 때면 동치미를 담는다. 항아리 하나에 배추 2-3개, 무 10~20여개를 넣는데 두 개의 항아리에 담가서 아버지, 서울식구들과 나누어 먹는다. 해마다 동치미가 잘 담가져서 맛있게 먹는데 아마도 동치미 맛이 일품이라는 칭찬(처제들, 딸과 사위)을 듣지 못하는 날까지 가원은 동치미를 담을 것이다. 기실은 재작년 동치미는 너무 짜서 중간에 물을 더 부어 간신히 적정한 맛을 냈는데도 가원은 자신이 담은 동치미 맛이 최고라고 自畵自讚이 그치질 않았다. 작년에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45. 식혜

겨울철이면 할머니께서 자주 식혜를 담그셨다. 겨울철에 마시는 식혜는 당시에는 최고의 음료수였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나 명절에 꼭 식혜를 담아 내놓으셨다. 벼라 별 음료수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도 부모님이 담아 내놓으시는 식혜만큼 맛이 있는 음료는 없다. 할머니 어머니 모두 세상을 뜨시고 아버지만 남으셨는데 이제 그런 일은 다시는 없으리라.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 담아보는 것도 좋으리.

나는 여전히 식혜를 좋아하므로 캔 식혜를 자주 사서 집이나 시골 별서 냉장고에 놓아두고 먹곤 한다. 대단히 시원하고 맛이 있다지만 그래도 할머니나 어머니가 담가주신 그 식혜만큼은 어림도 없다.

 

46. 무 시루떡

전통적으로 콩 시루떡, 팥떡, 콩떡, 호박떡, 흰떡, 쑥떡 등을 주로 해먹는데 가난하던 시절인지라 보리개떡도 있었고 무시루떡도 해먹었다. 무시루떡은 시원했던 기억은 있는데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맛은 조금 적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먹어본 무시루떡 맛은 썩 괜찮았다.

 

47. 떡국

예전 가난하던 시절에 고기를 넣은 떡국은 그저 일 년에 한 두어 번 먹어보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엔 흰떡을 잘 썰어 포장해서 떡국용으로 판매하게 되니 겨울 내내 하시라도 떡국이 먹고 싶으면 끊여 먹는다.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니 쇠고기 넣은 떡국 먹고 싶으면 언제라도 오케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자알 살고 볼 일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임이 고맙고 행복하다. 쌀밥에 고깃국 실컷 먹게 된 대한민국 만세다!

 

48. 약밥

약밥은 잔치 때나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20대 때 초등학교 동창계를 우리 집에서 하게 되었을 때(20대 후반임에도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 어려운 살림에도 어머니는 성대한 잔치상을 차려 주셨고 그때 안동식 찜닭과 약밥도 해주신 기억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는 늘 최선을 다해 주셨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에게 마음속 깊이 그리고 행동으로도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 늘 부끄러운 일이었고 이는 나의 인격부족에서 기인한다.

오늘날엔 곳곳의 떡 가게에서 약밥도 만들어 판매한다. 평소에 약밥은 잘 사먹는 일은 없으나 뷔페식사를 하게 되면 종종 먹어보게 된다.

 

49. 팥죽 ․ 팥 시루떡

팥 시루떡은 떡 중의 떡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평호동 재당숙댁에서 학교를 다닐 때이다. 저녁밥을 먹고 더위를 식히려고 역전에 가면 송학동으로 통하는 굴다리 입구에는 늘 팥떡을 파는 아주머니 있어 막 만들어 가지고 나온 듯, 김이 나는 따뜻한 팥떡을 팔았다. 어른 주먹만 한 팥떡 한 개 값이 요즘으로 치면 2천 원 정도 되었던 것 같고 용돈을 아껴야하는 나는 큰 맘을 먹은 다음에야 겨우 한 개를 사먹었는데 그 맛은 꿀맛이었다.

팥죽은 이미 앞에서 칼국수에 대해 적을 때 언급한 바 있다. 우리 마을 모현동에 있는 <솔뫼마을>에서 새알 팥죽이나 팥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를 먹는다. 우리 이쁜 딸은 새알 팥죽이 그리도 맛있다고 엄청 좋아한다. 집에 내려올 때는 꼭 찾아가 먹고, 시간이 없으면 사가지고 간다. 우리가 서울에 갈 때에도 종종 사다 주곤 한다.

 

50. 김

김 하면 광천김이다. 예전엔 마트에서 되는대로 김을 사다 먹었는데 광천김을 먹게 된 이후로는 다른 김은 거의 먹어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 김은 평소에는 거의 맛보지 못하는 귀하고 비싼 식품인데 작은집 당숙은 끼니때마다 김을 드시는 것을 보았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인 당숙은 경제도 윤택했고 당신이 김을 유난히 매우 좋아하셨던 것 같다. 당숙이 끼니때마다 김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나는 매우 부러워했다. 나도 크면 저처럼 고급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며.

 

51. 육포 ․ 육회 ․ 육사시미

육포는 쇠고기 말린 것이요, 육회는 쇠고기의 부드러운 부위로 만든다. 육사시미도 있는데 육회나 육사시미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전문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다. 1990년대에 충남 금산군 복수면에서는 가게마다 하루 한 마리씩 소를 잡으므로 언제든지 맛있는 육사시미와 육회를 먹을 있어 가끔씩 찾아갔고, 그 뒤 완주군 고산면에도 그런 가게가 생겨났다. 쇠고기 육포는 맥주안주로 사먹게 되는데 예전에 수퍼맥주를 먹을 때에 쇠고기로 만든 비싼 육포는 감히 집지를 못했다. 요즘에 개들도 육포를 먹는다. 사람이 먹지 않는 부위로 만든 것이기는 하겠지만, 우리 시골집 해피와 쪼코도 늘 육포를 간식으로 먹는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길래 저리도 날뛰는 것이며 나를 반기는지 육포를 반기는지 아리송하다. 요즈음 시골에서 동물용 육포가 많이 소비되는데 하루 내내 아무도 예뻐하지 않는 이웃집 동기네 삽살개 한 마리, 양씨네 개 다섯 마리까지 조금씩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그 애들도 내가 나타나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짓고 난리다. 특히 동기네 삽살개는 우리 차가 가면 벌떡 일어서며 나오고, 양씨네 똥개 한 마리는 내가 두려운지 집으로 숨으며 짖어대면서도 꼬리는 흔들면서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저 육포만은 좋다는 것이겠지. 겨우 손가락 한마디만큼의 크기씩 던져주는 작은 육포에 저들은 모두 내 팬이 되어버렸다. 팬덤 그거 별거 아니다.

 

52. 토끼탕

예전부터 토끼탕은 보편적으로 큰 인기는 없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서 보통사람 서민들도 값비싼 쇠고기 등심이네 안심이네 찾으면서 1인분에 3만원이 넘는데도 막 사서 구워 먹는다. 그 값이 장어구이나 활어회를 능가한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닭요리(닭도리탕, 닭백숙, 치킨 등)를 좋아하고 횟집들을 찾는다. 오리탕은 남녀를 불문하고 많이 찾되 토끼탕은 취급하는 식당도 많지 않고 그나마 겨울철에만 먹는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토끼탕은 꿩탕과 함께 정말 맛이 있는 별미음식이다. 토끼탕은 웅포면 웅포중학교 뒤편에 있는 <한솔가든>에서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20대 시절 내가 토끼를 수 십 마리를 키워보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풀만 잘 뜯으면 능히 키울 수 있고 가을에 배추잎, 무잎, 고구마순을 잘 저장하거나 겨울철에 아직도 살아있는 배추(봄동)를 걷어다 먹이면 되니 사료값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토끼들은 우리 집에 오는 후배들을 위해 술안주로 요긴하게 쓰였다. 훗날 후배들은 종종 토끼고기 먹던 추억을 얘기하곤 했다.

2016년부터 과일밭에 축사를 짓고 닭 몇 마리와 토끼 몇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닭은 유정란이라도 낳아주지만 토끼에게서는 도대체 얻는 게 없다. 판매는커녕 40여 년 전과는 달리 토끼는 이젠 차마 토끼를 내 손으로 잡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토끼가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토끼새끼들이 그토록 앙증맞게 예쁘기는 하지만 걸핏하면 땅을 파고 탈출하여 과일밭에서 놀면서 집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므로 기르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2019년까지 키우다가 토끼우리 탈출자들을 은근히 포기하면서 토끼사육이 자연히 중단되었다. 닭은 탈출소동은 없지만 겨울철에 물이 얼어버리므로 따뜻한 물을 제공하는 일이 너무나 번거롭고(토끼는 겨울철에 남의 밭에 널려있는 채소나 풀을 주면 되므로 그런 어려움이 없다.) 토끼처럼 역시 내손으로 잡아먹는 일을 하기 어려운데다 한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거나 또는 추운 겨울철에는 알을 제대로 낳지 않으니 아무리 재미로 키우는 일이라지만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어느 때는 분명히 사료는 너무나 잘 주는데도 어떤 때는 달걀껍질이 너무 얇아 의아스럽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좋은 계절임에도 알을 잘 낳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사료를 너무 잘 주어서 그러기도 한다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무튼 겨울철 물 당번하기가 너무도 귀찮아 작년 10월 경 마지막 남은 세 마리를 옛뚜기 닭집에서 잡아서 몸보신하고는 금년 봄에는 병아리를 구입하지 않음으로서 6여년 에 걸친 동물사육은 완전 중단되었고 닭우리와 토끼우리는 지금 텅 비어 있다.

 

53. 꿩탕

꿩탕은 토끼탕 보다도 훨씬 더 취급하는 식당을 찾기 어렵다. 등산모임 기린회에서는 금산사 연리지길 등산을 하고 나면 종종 인근 식당(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비인가 식당일 수 있다)에서는 사장님이 직접 기르는 꿩으로 맛있게 요리하여 제공한다.

어린 시절, 같이 어울리던 한 학년 위 선배들인 재철이 형과 전환 아재는 겨울철이면 콩 안에 구멍을 파고 싸이나를 끼어 넣어 꿩들이 잘 다니는 길에 놓는다. 다음날 찾아가면 죽은 꿩을 발견하게 되는데 내장은 완전히 버리고 꿩탕을 끓여 막걸리를 말(斗)로 받아다 먹곤 했다. 물론 나는 꿩잡는 일에는 전혀 관여치 않고 그저 얻어먹는 입장인데 그때는 그랬다. 벌써 50년 전 일이며 전환아재는 서울에 살다가 3년 전 예순아홉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갔다. 그리운 사람이다.

 

54. 오리탕

요즈음 탕의 대세는 닭도리탕 아니면 오리탕이다. 값이 비싸지 않아서인지 맛이 있어서인지 아무튼 엄청 많은 오리가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인데 종종 사육한 청둥오리탕을 먹기도 한다. 청둥오리는 값이 약간 비싸지만 누구 그런 거 따지는 세상은 이미 아니다. 오리고기는 콜레스트롤이 없는 고기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는데 익산시내에도 여기저기 맛있게 오리탕을 끊이는 식당이 많다. 어느 식당은 반찬이 잘 제공되어 좋고, 어느 식당은 뼈 국물을 제공하여 좋다.

금마저수지 부근 <물머리집>에 유명하고 나도 오랫동안 종종 찾던 집인데 3년 전 어느 날 서울 사돈네를 모시고 갔다가 그날 손님이 너무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형편없는 오리탕 요리(너무 오래 끓인 것인지 너무 익어버린, 그래서 살이 제대로 붙어있지도 않고 고기양은 너무 적은 아예 맛을 찾을 수 없는 부실한 음식을 내놓았다. 익산의 맛집으로 지정되고 이름난 식당으로서는 도저히 팔아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다.)에 미식가인 정사장께 부끄러워 얼굴이 뜨겁고 변명도 못하며 몸둘바를 몰랐던 일이 있은 뒤로 발길을 끊었다. 요즈음엔 주로 오리주물럭을 먹는데 인화동 <또또오리>에서 먹으면 후회가 없고, 동산동 <종가집>도 좋다.

 

55. 더덕북어(황태)

황태탕은 아침 해장국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강원도에서 잡은 명태를 덕장에서 말려 황태(더덕 북어)로 만들어서 국으로 끊이는 것이다. 무주고에서 근무할 때 평창스키장에서 훈련중인 바이애슬론 선수들을 격려차 갔을 때 맛있게 먹은 일이 있으나 언젠가 충청도에서 먹은 황태탕은 그저 그랬는데 역시 맛은 요리하는 사람에 달렸지 장소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싶다. 체전에서 메달을 많이 획득하여 공이 크지만 동계운동인 바이애슬론 선수 키우고 관리하느라 체육교사 배경옥 선생님 너무 고생이 많았다. 퇴직 후 어느 결혼식장에서 만난 배선생님이 너무나 멋지고 예쁘셔서 기쁜 마음으로 미모를 칭찬했다. 당시 영하 15도가 넘는 스키장에서 달을 두고 고생하시던 모습과 너무 대조적으로 행복한 모습이어서 자연히 나온 칭찬이 아닌가 싶다.

 

56. 복탕 ․ 복찜

18세기 이덕무가 하돈탄(河豚歎)이라는 시를 지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돈탄은 복의 異稱이다. 바다 돼지라는 뜻인가?

?이삼월 사이에 고깃배가 강에 머물면 하돈이 왕왕 나타나므로 시골 사람들이 잡아서 먹는데 먹고서 중독되어 죽는 자가 자못 많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그리 어리석단 말인가? 이 시를 지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나를 경계하고 한편으로는 하돈을 즐겨 먹는 자에게 보여 주고자 한다.?

《이빨은 억세고 날카로운데, 노기 띤 배는 볼록하여라. 비늘도 없고, 또 아가미도 없는 것이, 몸뚱이에 가시만 총총이도 돋쳤다. 하돈에 혹한 자들의 말인즉, 맛치곤 천하에 으뜸이라네. 비린네 가시도록 솥에 푹 삶아 후추가루 뿌려 기름도 쳐 놓으면 쇠고기 맛보다도 더하고, 생선의 방어 맛도 저리 가란다네. 사람들 하돈 보곤 모두들 기뻐하지만 나 홀로 보고선 근심일레. 아, 슬픈지고 세상 사람들이여. 목구멍 윤낸다고 기뻐들 마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난한 바닷가 사람들이 버린 복을 삶아 먹고 죽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복이란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무서운 생선으로 각인되었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매우 두려우면서도 종종 먹는 일이 있었는데 확실치는 않으나 80년대 말쯤인지 이리의 어느 한의사가 군산에서 복탕을 먹고 사망하는 사고가 있어 다시금 경각심을 가지게 되어 먹는 일이 뜸했다.

요즘 그런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리 기술이 발달해서인지 거리낌 없이 잘 먹고 있다. 횟집이나 생선탕집에서 여전히 복탕은 가격이 가장 높아 대개 1인분 2만원이다. 싱싱한 생복은 2천원을 더 받기도 하며 지리(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은 탕)로 먹기를 즐겨한다. 예전에 큰 맘 먹어야 먹던 복어탕인데 이젠 가격도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아주 평범한 대중음식이 되었다.

 

후기

이 글을 완성하는데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소감은 후일 차츰 덧붙여 보겠다.

 

56. 홍어와 홍어탕

홍어는 목포홍탁이 유명하다. 목포에서 잡은 홍어 한접시에 탁주 한사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다. 20여년 전, 전남 해안지방에 문상을 가게되면, 어쩌면 그리도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은 홍어를 내놓는지 한접시 더 달라하여 먹지 않고는 못배겼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부터 순국산 홍어는 먹을 수 없게 되고(값이 엄청 비싸서)칠레산이니 하는 냉동 수입홍어(값은 엄청 싸다)만 먹게 되었다. 

어제(2022.5.25) 흑산도에서 저녁식사에 삭힌것이 아닌 생홍어를 시켰다. 이번 여행 저녁식사는 반드시 국산 목포홍어에 흑산도산 막걸리를 먹겠다고 다짐하였고 그대로 주문하여 먹게 되었으니 정말 오랫만에 먹어보는 목포홍탁이다. 값은 홍어 중짜리 한접시 4만원, 막걸리 1만원 도합 5만원이다. 홍어는 정말 씹는 맛이 있고 막걸리 맛도 아주 좋아 대만족이었으나 밥식사가 문제였다. 

우리 익산에서는 홍어 한접시를 시키면 애를 넣어 끓인 탕을 한 그릇 무료로 떠먹으라고 제공하므로 공기밥만 시키면 식사까지 해결한다. 그런데 흑산도는 일체의 국물을 주지 않고 완전히 별도로 식사를 시키도록 되어 있다. 나는 본디 횟집에서 회와 술을 실컷 먹어도 반드시 밥을 한공기 먹는 사람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홍어탕을 시키니 밥값이 무려 3만 4천원이나 나왔다. 정말 별 맛없고 부실한 홍어탕값으로 3만원을 주려니 영 기분이 별로다. 그런데 이 집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식당들이 그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가원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세요>라고 말 하지만 많이 아쉽다. 그래서 음식은 전주나 익산이나 군산이 최고지. 그런데 홍어회(내가 반접시), 막걸리(내가 1병 반 정도)를 마시고 거기다가 홍어탕에 공기밥 한 공기가 들어가니 어찌 내 배가 견디기 힘들지 않겠는가? 1인당 4만 2천원짜리 식사를 하고는 부른 배를 안고 커피숍에서 라떼 한잔까지 하면서 등대까지 다녀오니 별로였던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배부른 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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