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구충록

청담(靑潭) 2023. 7. 7. 14:43

구충록

기생충을 속히 업새시요

정준호 지음(2023) 휴마니타스

 

  지난 4월 믿음직한 사위 정준호 박사의 새 책이 나왔다. 2011년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출판했고, 번역서로는 2014년『말라리아의 씨앗』과 2018년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가 있으며 기타 수많은 공동 번역서가 있다. 사랑하는 정박사는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으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연구소연구원(연구교수)로 재직중이며 글로벌융합대학과 의학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이 책을 소개한 글들을 옮겨 적는다.

 

 

■1970년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선 교사가 기생충이 발견된 학생들을 교탁으로 불러내 구충제를 나눠 주고 먹게 했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어떤 기생충에 감염됐는지 알리고 구충제를 삼키는 모습까지 보여 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기생충학을 전공한 정준호 박사는 한국에서 기생충 박멸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수치심’과 ‘비정상’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전국 단위 검진 및 투약 사업으로 누적 연인원 3억 명 이상,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1970~90년대 전반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생충, 채변 봉투, 구충제에 대한 경험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기생충 감염은 회충 0.03%, 구충 0%, 편충 0.41%로 거의 사라졌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번성한 공생체였던 기생충이 불과 사반세기 만에 사라진 것은 생태학적으로도 놀라운 변화이자 한국 보건 의료사의 빛나는 한 장면이다.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생충의 흥망성쇠를 통한 한국 근현대사’라는 특별하고 흥미로운 책을 소개한다.

기생충을 비롯한 감염성 질병 연구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영국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고 의학사(史)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런 한국의 기생충 정복사를 꼼꼼하게 풀어냈다.

□들어가며 : 그 많던 기생충은 어디로 갔을까? 7

1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기생충 13

2 인룡에서 수치로: 기생충을 보다 25

3 “대변을 마치 황금처럼 생각하며”: 아시아적 기생충 관리 사업의 형성 63

4 기생충 길들이기: 제주도 사상충 한일 공동 연구 사업, 1970~72년 161

5 구충 기술의 국산화: 프라지콴텔과 간흡충 207

6 기생충에게는 국경이 없다 237

나가며 : 모든 것은 기생충에서 시작되었다 261

 

■초등학교 시절 ‘변사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활달하고 교우 관계도 좋아 인기가 많았던 아이였다. 봄철 학교에서 기생충 검사를 하자 이 친구는 채변봉투 제출을 까먹지 않으려고 전날 밤 도시락 가방 앞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 뒀다. 그런데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그만 ‘그것’이 터져 버렸다. 학년 내내 친구는 도시락의 일본어인 벤또를 따 ‘변또’로 불렸다가 ‘변사또’가 됐다. 1970~8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채변봉투와 관련한 포복절도할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 국민의 90%가 배 속에 하나쯤은 키우고 있었다는 기생충이 20세기 말이 되면서 거의 ‘박멸’됐다. 이제 한국은 제3세계 기생충 관리 사업을 지원하는 상황이다. 기생충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의료사와 기생충학계에서도 길이 빛날 업적이다.

  1960~1970년대 기생충박멸협회 한 관계자는 가두 검변을 할 때 검사를 받으러 나온 시민들이 “아가씨가 어디 할 일이 없어 똥 검사를 하러 다니냐”는 말에 눈물을 쏟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인분을 비료로 사용해 농사를 짓던 과거에는 인분 속 기생충 알이 밭작물에 뿌려졌다. 그렇게 재배된 채소를 먹어 기생충에 감염되고 몸속에서 자란 기생충 알은 다시 변으로 배출됐으니 기생충 감염에는 왕후장상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칠 무렵 거의 전 인구가 한 종류 이상의 기생충에 감염됐을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기생충과 함께하는 한국인의 삶은 196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됐다. 그러던 중 기생충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1963년 10월 24일 밤 10시 30분 병원 앞에 9세 여자아이가 보호자도 없이 복통으로 쓰러져 있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 응급수술을 시작했는데 배 속에서 4㎏에 달하는 회충 1063마리를 꺼냈다. 회충이 너무 많아 소장 일부가 괴사돼 결국 아이는 죽었지만 이 소식으로 정부와 의학계는 기생충 박멸에 나서게 됐다.

  저자는 한국에서 기생충 박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치심’과 ‘비정상’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꿈틀거리는 기생충의 모습을 계속 보여 주면서 저런 것이 배 속에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며 창피한 일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입했다. 심지어 아이들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어떤 기생충에 감염됐는지 낱낱이 까발려지며 교실 앞에서 구충제를 삼켜야 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박멸시켜야 할 존재가 된 기생충에 대한 전 국민의 선전포고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생충과의 전쟁에서 나타난 좌충우돌에 관한 읽을거리만 제공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면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와의 대응 과정이 겹쳐진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라는 용어를 쓰라고 했음에도 일부에서 우한 폐렴이라고 이름 붙여 낙인찍고 혐오를 조장했던 상황 말이다. 저자는 기생충과의 전쟁에서 사용했던 수치심과 비정상성, 편 가르기 방식으로 현대에 등장하는 신종 감염병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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